러브라인
- 감독
- 정다이, 소준영, 오두경, 김성훈, 권아영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브론테 스탠필드, 정다이, 김소우, 댄 버키, 앤드류 토마스 벌데테, 여대현, 이어진, 전희연, 정철, 조재경
2002년 | 좋은영화, 영화사 시선 감독: 장규성 | 각본: 손재곤 | 각색: 이원재 이원형 | 제작: 김미희 한지승 안영준 | 기획: 강우석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강승용 | 음악: 손무현 CAST 무라카미: 김수로 | 황보: 임원희 | 하나코/상미: 김정은 | 갑두: 서태화 2002년은 한국영화가 아마 가장 폭주했던 시기였습니다. 과감하고 극단적인 시도들이 이어졌죠. 흥행 재난을 맞이하긴 하지만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장선우 )이 파격적인 기획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 복수는 나의 것 >이 나왔던 것도 2002년이었죠. < 죽어도 좋아! >( 박진표 )나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 이무영 ) 같은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규성 감독의 < 재밌는 영화 >도 ‘2002년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할리우드에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패러디 영화였는데요, 무려 33편의 한국영화가 코믹하게 인용됩니다.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반대하는 일본 천군파는 기념 공연이 이뤄지는 곳에 폭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중심엔 한국은 무조건 싫어하는 무라카미가 있죠. 김수로가 역할을 맡았는데요, 단정한 양복에 뿔테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이었지만… 곧 부채춤을 추는 족두리 한복 차림으로 바뀝니다. <재밌는 영화>는 전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날 촬영도 전주에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이뤄졌죠. 관객으로 무려 2,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어야 하는 신이었는데요, 대규모 군중 역시 전주시의 도움으로 쉽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부채춤을 추는 공연자들은 전주예고 무용과 학생들이었습니다. 한편 붉은 악마들 옆엔 이 날 사건을 막기 위해 남한의 KP 요원 황보(임원희)가 있습니다. 황보는 일본에서 온 저격수 하나코/상미(김정은)와 러브라인을 형성합니다. <쉬리>(강제규. 1999)의 한석규-김윤진 커플에 대한 패러디죠. 천군파가 무대에 설치한 폭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미는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 폭탄을 손에 들고 소리칩니다. “모두 꼼짝 마!”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빴던 배우였던 김정은은 촬영 기간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장에서 집중력 만큼은 최고였습니다. 남한의 대통령(김인문), 북한의 국방위원장(정진각) 그리고 일본 천황(정재진)이 한 자리에 모여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2,000명의 엑스트라와 세 대의 카메라가 동원된 대규모 현장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장규성 감독에겐 다소 버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확성기를 들고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은 베테랑 감독을 연상시켰습니다. 10년 동안 연출부 생활을 했고, 특히 김상진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 하면서 쌓은 내공 덕분 아닐까 싶습니다. 장규성 감독이 김정은에게 장면 컨셉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밝고 코믹한 이미지로 사랑 받는 스타였죠. 첫 영화도 역시 코미디 장르로 선택했는데요, “고정된 이미지란 대중이 그 배우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개된 또 하나의 신은 도심 총격 액션 장면이었습니다. <쉬리>에서 가져온 신이죠. 촬영 장소는 역시 전주시의 전격적인 협조로 전주시의회 앞 도로에서 대대적인 교통 통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버스를 장악한 무라카미가 기관총을 난사합니다. 건너편에선 남한의 KP 요원인 황보와 갑두(서태화)가 대응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인데… 뭔가 지나치게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냅니다. 천군파 요원인데요, 앞에 있는 김학규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노이즈’의 멤버였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낯이 익으실 텐데요 배우 임형준입니다. <쉬리>에선 OP 특공대원 역할이었는데요 이번엔 천군파 요원입니다. 총격 신을 위해 특수효과 스태프들이 자동차에 장치를 하고 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현장이었지만, 인근 주민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 견학(?)을 했습니다. 이 날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버스 폭파 신이었습니다. 컷 사인이 나자마자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소화 작업을 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큰 규모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고 특수효과가 동원되는 장면이었음에도 장규성 감독의 현장 장악력은 돋보였습니다. 임원희와 서태화와 김수로. 그들은 <재밌는 영화>를 더욱 ‘재밌게’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독립영화 감독인 ‘나’는 흔히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나, 막 디지털로 이행하던 시기인 1990년대 후반에 영화감독이 되었다. 흡사 삐삐거리는 모뎀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정겨운 PC통신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던 때, 감독은 요세미티라는 별명을 가진 매킨토시 G3를 소개받고 그로부터 9년간 요세미티로 영화를 편집해 왔다. < 웃음 >, < 연애에 관하여 >, < 뽀삐 >, < 앞산전 >까지. 감독은 어느 날 요세미티의 물리적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추억을 기록할 것을 결심한다. 요세미티가 진실로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자연을 경외했던 시간에 대한 기시감이 언뜻 스친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다. 오래된 낡은 것에 스티커를 붙이고, 이름을 지어주고, 말을 나누는 행위, 그 유치한 경험 가운데, 소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의 단단한 차원을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영화는 드라마의 외형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다수 개입되어 있다. 영화 속에 이야기 대부분은 사실에 가깝고, 추억되는 에피소드와 언급되는 영화,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그때 그 시설 스탭이고, 배우이고, 동료이다.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나’를 재연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전 영화 만들기 과정에 대한 몇몇 인터뷰 신에서 감독은 진짜 묻고 싶었던 것을 질문하고 인터뷰이는 응당 답할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극과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양식적 구조는 영화에 특별한 재미를 더한다. 강호에 의리가 떨어진 시기 < 웃음 >의 편집 기사를 자청했던 정창익과 편집을 익히는 과정에선 뜻하지 않은 러브라인이 발견된다. < 연애에 관하여 >에선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한 다양한 비유가 등장 하는데, 분당 13,200원의 택시미터기에 비유된 필름의 소요비용과 각본에서 편집까지 감당해야 하는 1인 제작시스템의 등장은 본격적인 디지털 영화 시대의 진입을 반영하고 있다. 나름 거액의 지원금을 받았던 디지털 장편영화 < 뽀삐 >에 이르러서는 감독의 작가세계를 구축하는 독특한 자아에 대한 고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작품을 완성해 왔던 작가적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또 다른 욕망과 실패. 그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한동안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방송외주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단 한명의 친구도 만들지 못했던 감독 마침내 다시 영화세계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이 난무하고, 고통이 감독을 철학케 했던 시간, 그러나 친구들이 있었던 그때로. 감독은 다시 요세미티를 꺼내든다. <앞산전>은 감독이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용기 준 작품으로 요세미티는 막대한 분량의 테잎을 우직하게 감당하며 그 자신의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기적처럼 완성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 제작 기반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것이 들어선다. 누군가는 미래를 선도하겠지만, 대부분은 변화를 따라갈 뿐이다. < 요세미티와 나 >는 그 시대를 통과한 감독 자신을 포함한 독립영화인들에게 대한 기억이고 추억이다. 때문에 영화는 수행적이고 성찰적인 다큐멘터리의 면모를 품고 있다. 요세미티를 이야기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반추하는 감독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그리움을 떠올릴 수 있다.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이는 김지현 감독의 영화적 방식은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부팅에 성공해 주었던 요세미티처럼 아슬아슬한 구석이 있다.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쌓아 올린 감독의 영화들. 그것을 돌아 볼 수 있는 진정한 여유를 가지게 된 감독은, 이제 요세미티를 딛고 어디로 나아갈까. <요세미티와 나>를 보고 나면, 감독의 전작이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