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트리
- 감독
- 에란 리클리스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히암 압바스, 알리 슐리만, 도론 타보리, 로나 리파즈 미셸
근 몇 년간, 무언가로부터 혹은 어딘가로부터 끝없이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에 소설가 U와 걸으며, 이런 푸념을 빙빙 돌려가며 늘어놓았다. U는 결코 내게 직접 묻지 않았지만, 만약에 누군가 내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느냐 묻는다면 ‘너무도 구체적인 나, 나보다도 구체적인 나’라고 답할 것이다. 이어, 그럼 도대체 어딘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느냐 묻는다면, ‘이상하리만치 안정적인 내 바운더리’라고 답할 것이다. U는 이를 묻는 대신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무래도 한정될 수 밖에 없는 어휘로 글을 쓰는거야. 예를 들어, 사과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대신 “나는 어제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과를 먹는다”고 표현하는거지. 나는 어제 아침에도 닭가슴살 200g 한 봉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고, 오늘 아침에도 같은 닭가슴살 한 봉지를 먹었으며, 2019년에는 같은 회사의 같은 닭가슴살 300봉지를, 2020년에는 315봉지를, 2021년에는 무려 375봉지를 먹었다고 여기 적지만, 이는 결코 내가 닭가슴살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행히, 어떤 e-커머스 플랫폼도 이를 오해하지 않았고, 내게 닭가슴살 광고를 띄운 일은 여태껏 없다. 비록 룰루레몬 광고를 하루에 수십 번씩 온갖 페이지에서 보고 틈날때마다 클릭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얘기를 건너뛰고 비참하네… 중얼거렸다. 지금의 기술환경이 우리의 윤곽을 끊임없이 더듬고 이가 빠진 곳을 조물조물 채워나가기에, 나도 덩달아 원치도 않는 내 윤곽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매일 어쩔 수 없이 목격하게 되는 내 삶의 윤곽들이 어찌나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는지. 당장이라도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 U는 아마 언젠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데이터를 취합해서 넷플릭스 스타일로 다큐멘터리를 생성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올지도 몰라, 추가로 돈을 내면, 네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큐멘터리 방향에 맞게 너에 대해 심층적으로 질문해주는거지, 카메라 앞에 앉을 필요도 없어, 그냥 사진 한 장으로 영상을 생성할 수 있을테니까. 같은 소리를 하고. 나는 또 비참하네… 중얼거렸다. U는 2019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 <프리 솔로>를 내게 추천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프리 솔로>의 주인공인 등반가 알렉스 호널드의 어떤 면을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데… 착실히 준비한 티를 팍 팍 내며, 알렉스 호널드가 엘 캐피탠을 프리솔로로 성공하는 여정을 높은 완성도로 포착한 다큐멘터리 너머, 어떤 점이? 뇌 회로 어딘가가 고장난 듯한 사람의 크고 새까만 동공? 약간 돌아있는 눈빛 같은 것? 올해 여름 U와 나는 그 시커먼 광기가 잊혀질 즈음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 >(이하 <알피니스트>)을 함께 보았다. <프리 솔로>와 다르게 주인공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전혀 치밀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줄곧 어딘가가 기운 채로 나아가는 이 작품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 넣을 작품으로 제일 먼저 정한 것은, 왜긴, 결과는 엉성하게 남은 것들을 어떻게든 오므리며 애를 쓰다 끝난 꼴이지만, 그게 좋았으니까? 공동감독 중 하나인 피터 모티머는 한 화상 인터뷰에서 <알피니스트>를 통해 재야에서 믿기 힘든 등반에 연이어 성공한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조명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밝힌다. 지독히도 뻔하고 지루한 이유에서 시작한 작품이긴 하지만, 피터 모티머는 또 어떤 인터뷰에선 본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버린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듯, “… 이 영화의 문제는, 어떻게 이 유령같은 1) 마크의 성격을 포착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우리가 그것을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우릴 신경 쓰지 않는지… (… the question of the film is, how do you capture Marc's personality, this elusive thing? And there was kind of no better way to capture it than by showing how we couldn't capture it. How he didn't care about us…)” 2) 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소 상충할 수 있는 두 얘기가 모두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이 영화가 어딘가 찌그러진 듯한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의 전반부는 ‘세간의 인정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산만을 기백있게 오르는'에 초점을 맞춰 그럭저럭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지만, 절반이 되기 전 쯤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종적을 감춘 뒤 부터는 처음의 욕심을 놓은 것이 명백하다. 그래서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고, 두 감독이 돌연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지 맘대로 하니까 사랑스럽지 않냐고 하는 부분처럼, 영화도 사랑스러워진 것 같아. 맞아, 나는 그 부분이 특히 귀엽고 좋았는데, 그냥 제 영화보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더 사랑하는거 같아서 웃기고 좋았어. 돌아온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감독들에게 어떤 등반을 프리솔로로 처음 도전할 때 이를 촬영하는 것은, 아무리 각별히 신경써서 준비하더라도 그 자체로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앞으로 촬영할 모든 등반이 새로운 도전이 아닌 이미 성공한 프리솔로잉을 재연하는 (감독들 입장에선) 다소 김이 빠진 채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내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등반 자체에는 각이 잘 안 선 것 같아 <프리 솔로>와는 다르게 긴장감도 크게 만들어내지 못했고. U는 두 감독이 <프리 솔로> 같은 것을, 혹은 <프리 솔로>보다 더 짜릿한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냐고 내게 물었다. 당연한 거 아냐? 그래도 내 생각에 <알피니스트>는 투명한 맛이 있어. 감독들이 하나도 숨기질 않았어. <알피니스트>는 <프리 솔로>의 주인공 알렉스 호널드가 자기보다 쩌는 등반가로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심지어 그 인터뷰 음성 뒤로 깔린 영상은, 영화 후반부에 홀연히 사라진 마크-앙드레가 로브슨산 엠퍼러 페이스를 성공하고 돌아와서 그걸 재연한 촬영본을 아무런 설명없이 쓰잖아. 그래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장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려고. 맞아. 영화는 이리저리 고군분투했지만,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다른 등반에서 눈보라에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마무리 된다. 결국 피터 모티머 감독의 인터뷰처럼 결국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포착하지 못한 채로 끝난 것이다. 아마도 피터 모티머, 닉 로잔 두 감독은 너무도 희미하게 흩어진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초상을 그대로 내놓고 싶었을 것이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사망 후 편집됐을 <알피니스트>는 텅 빈 곳들을 적당한 풋티지, 모션그래픽 영상, 방향 없이 수집된 여러 진술 등으로 채우고 있다. 나레이션을 맡은 피터 모티머는, 마크-앙드레 르클렉에게서 어떠한 구체적인 답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등반가이기도 한 자신의 오랜 질문인 등반의 본질에 대한 것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말로 영화를 시작하고, 그게 이 허술한 영화를 근사하진 않더라도 사랑스럽게 만든다. 망한 다큐멘터리, 만세! U, 나는 올해 내내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구체적이라고 느껴져서 힘들었어. 어떤 누구에 대해서, 어떤 것도,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 내 자신에 대한 것 마저도. 답답하고, 앞으로 차에 치일 일은 없을 것만 같아서. U는 뇌의 회로가 하나 고장난 사람처럼 텅 빈 새카만 눈빛을 하고선, 내 말은 못 들은 척 한 채 의뭉스럽게 군다. 만약 마크-앙드레 르클렉이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등반했다면, 영화는 달라졌을까? 내가 그에 대해 답하기도 전에 U는 덧붙인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어제 산에 올랐다.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오늘도 산에 오른다. *** 1) 넷플릭스는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에서 'elusive'를 '유령 같은'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2) Capturing the Elusive: an interview with Peter Mortimer and Nick Rosen, "What If Cinema...", 2022.
압델라티프 케치체가 감독을 맡았던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는 두 명의 레즈비언이 주인공이다. 한 명은 유명한 여배우 레아 세이두가 또 한 명은 무명의 여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연기했다. 2013년 그해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화는 황금종려상도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영화적 성과와 무관하게 단 하나에 시종일관 매혹되어 있었다. 아델의 입이었다. 아델의 저 육감적인 입이 무언가를 먹거나 상대방 파트너의 어딘가를 애무할 때가 그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나의 감상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감독은 오디션을 위해 만났던 아델이 레몬 타르트를 씹는 모습을 보고, 즉 그 입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아델의 그 입뿐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 개그맨 >은 한국영화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다. 이 영화는 이명세 의 연출 입문작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외양을 지닌 나이트클럽 삼류 개그맨 이종세( 안성기 )가 허름한 이발소의 무식하지만 착한 뚱보 문도석( 배창호 )과 야심에 가득 찬 미인 오선영( 황신혜 )과 함께 무장 강도짓을 하다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이종세가 이발소 의자에 앉아 꾸는 한낱 백일몽으로 밝혀진다. <개그맨>은 발상의 참신함과 인물들의 독창성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의 출현이라 인정받았고 지금도 그 빛은 바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그맨>의 이 정통적인 혹은 통사적인 평가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개그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면모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배우로서의 배창호와 그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유달리 빛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기 중에서도 특별한 연기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우물거리는 입으로 먹어대는 그 연기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이발사 문도석은 이종세의 꿈에서 함께 강도짓을 해나간다. 그는 그게 배우의 길이라고 착각한다. 당시 가장 뜨거운 인기 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연기력은 함께 등장한 전문 배우들 안성기 나 황신혜 를 압도하고 있다. 문도석을 연기하는 배창호는 그가 등장하는 거의 매 장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행위는 무언가 먹는 것에 대해 거론하거나, 먹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 영화배우 지망생으로서 영화도 꽤나 많이 보아 왔다고 자부하는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영화를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문도석이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는 것은 리차드 플레이셔의 영화 < 바이킹 >(1958)에서 커크 더글라스가 잔치를 벌이며 통닭을 씹어 먹는 장면이다. 이내 문도석은 말한다. 역시 보신탕은 똥개가 최고라고. 이건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문도석의 거의 모든 연기는 먹는 것으로 통하고 이 영화의 정점도 먹는 것으로 통한다. 예컨대 문도석이 출현하는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이종세는 만화방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 그때 문도석이 절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이종세의 옆에 앉아 말을 시킨다. 아이 같거나 혹은 어수룩하거나 하는 인물의 성격이 그 쪽쪽 빨아대는 입 모양만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린 그때 알게 된다. 만약 무언가 먹지 않으면 무언가라도 입에 물고 씰룩거려야 한다는 사실은 문도석이 등장하는 세 번째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종세 앞에서 오디션을 보듯이 샹하이 박의 흉내를 내는데, 이걸로는 무언가 모자라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를 얼른 주워 입가에 물고는 연기를 이어간다. 그때서야 그는 만족스럽다. 은행을 털기 위해 사전조사를 나간 자리에서 짝짝 껌을 씹어대는 그 입은 그의 천진난만할 정도의 우둔함을 표현하고, 의심스러운 문도석을 뒤따라 온 은행의 청원경찰 앞에서도 여전히 우둔하자 이종세는 문도석의 입에 만두를 쑤셔 넣는다. 화장실에서 통닭을 발라 먹고 해변에서 오선영에게 프러포즈하는 이종세에게 “감독님 인절미 좀 드세요”라고 엉뚱하게 말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도 될 것이다. 배창호 가 연기하는 문도석의 먹는 행렬은 배창호의 그 연기에 힘입으며 점점 이 영화의 중요한 정점으로 우릴 이끌어 간다. 이 영화에는 유일한 사망자가 있다.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 일행의 차가 고장 났을 때 그 차를 고치러 왔다가 문도석에게 총을 맞게 되는 자전거 수리공이다. 그 때문에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도 꿈속에서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 수리공을 문도석 혼자 방문했을 때 그의 대사는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수리공은 라면을 먹고 있다. “야, 그 라면 참 맛있겠습니다. 계란을 안 넣어 드시는 걸 보니까 라면 맛을 아시는 분이구만. 괜히 맛 낸다고 계란이니 파니 집어넣으면 라면 맛만 버려요. 그저 라면은 민짜가 좋지요”문도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는 반찬 하나를 냉큼 주워 먹는다. 계란,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은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 개그맨 >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기차역 대합실 장면이다. 모든 것이 파국에 이르렀다. 문도석은 사람을 죽였다. 일행은 부산으로 도주하기 직전이고 여기는 새벽의 역 대합실이다. 그때 문도석은 흰 달걀을 먹고 있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를 머리에 깨서 먹고, 그리고 또 하나를 먹고. 오선영의 대사에 따르면 벌써 스무 개도 더 먹었다. 그러니 이때 달걀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파국의 운명이며 무너져 버린 꿈이며 다가올 불행이다. 옆에 앉은 오선영이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도 말을 못 알아듣고 문도석은 흰 달걀을 건네준다. 배우가 되겠다는 문도석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괴리를 바탕으로 한 우화의 가장 정점에 바로 이 흰 달걀이 있으며 그 흰 달걀을 무아지경으로 먹는 문도석이 있고 그 문도석을 연기하는 신들린 배창호가 있다. <개그맨>이 뛰어나다면 바로 이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았을 때도 내게는 배창호와 그의 입과 그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흰 달걀만 보였고 기억됐다. <개그맨>은 놀랍게도 문도석의 영화이며 배창호의 영화다. 이 장면으로써 이 영화는 내게 걸작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압델라티프 케치체가 감독을 맡았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는 두 명의 레즈비언이 주인공이다. 한 명은 유명한 여배우 레아 세이두가 또 한 명은 무명의 여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연기했다. 2013년 그해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화는 황금종려상도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영화적 성과와 무관하게 단 하나에 시종일관 매혹되어 있었다. 아델의 입이었다. 아델의 저 육감적인 입이 무언가를 먹거나 상대방 파트너의 어딘가를 애무할 때가 그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나의 감상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감독은 오디션을 위해 만났던 아델이 레몬 타르트를 씹는 모습을 보고, 즉 그 입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아델의 그 입뿐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개그맨>은 한국영화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다. 이 영화는 이명세의 연출 입문작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외양을 지닌 나이트클럽 삼류 개그맨 이종세(안성기)가 허름한 이발소의 무식하지만 착한 뚱보 문도석(배창호)과 야심에 가득 찬 미인 오선영(황신혜)과 함께 무장 강도짓을 하다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이종세가 이발소 의자에 앉아 꾸는 한낱 백일몽으로 밝혀진다. <개그맨>은 발상의 참신함과 인물들의 독창성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의 출현이라 인정받았고 지금도 그 빛은 바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그맨>의 이 정통적인 혹은 통사적인 평가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개그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면모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배우로서의 배창호와 그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유달리 빛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기 중에서도 특별한 연기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우물거리는 입으로 먹어대는 그 연기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이발사 문도석은 이종세의 꿈에서 함께 강도짓을 해나간다. 그는 그게 배우의 길이라고 착각한다. 당시 가장 뜨거운 인기 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연기력은 함께 등장한 전문 배우들 안성기나 황신혜를 압도하고 있다. 문도석을 연기하는 배창호는 그가 등장하는 거의 매 장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행위는 무언가 먹는 것에 대해 거론하거나, 먹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 영화배우 지망생으로서 영화도 꽤나 많이 보아 왔다고 자부하는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영화를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문도석이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는 것은 리차드 플레이셔의 영화 <바이킹>(1958)에서 커크 더글라스가 잔치를 벌이며 통닭을 씹어 먹는 장면이다. 이내 문도석은 말한다. 역시 보신탕은 똥개가 최고라고. 이건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문도석의 거의 모든 연기는 먹는 것으로 통하고 이 영화의 정점도 먹는 것으로 통한다. 예컨대 문도석이 출현하는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이종세는 만화방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 그때 문도석이 절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이종세의 옆에 앉아 말을 시킨다. 아이 같거나 혹은 어수룩하거나 하는 인물의 성격이 그 쪽쪽 빨아대는 입 모양만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린 그때 알게 된다. 만약 무언가 먹지 않으면 무언가라도 입에 물고 씰룩거려야 한다는 사실은 문도석이 등장하는 세 번째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종세 앞에서 오디션을 보듯이 샹하이 박의 흉내를 내는데, 이걸로는 무언가 모자라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를 얼른 주워 입가에 물고는 연기를 이어간다. 그때서야 그는 만족스럽다. 은행을 털기 위해 사전조사를 나간 자리에서 짝짝 껌을 씹어대는 그 입은 그의 천진난만할 정도의 우둔함을 표현하고, 의심스러운 문도석을 뒤따라 온 은행의 청원경찰 앞에서도 여전히 우둔하자 이종세는 문도석의 입에 만두를 쑤셔 넣는다. 화장실에서 통닭을 발라 먹고 해변에서 오선영에게 프러포즈하는 이종세에게 “감독님 인절미 좀 드세요”라고 엉뚱하게 말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도 될 것이다. 배창호가 연기하는 문도석의 먹는 행렬은 배창호의 그 연기에 힘입으며 점점 이 영화의 중요한 정점으로 우릴 이끌어 간다. 이 영화에는 유일한 사망자가 있다.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 일행의 차가 고장 났을 때 그 차를 고치러 왔다가 문도석에게 총을 맞게 되는 자전거 수리공이다. 그 때문에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도 꿈속에서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 수리공을 문도석 혼자 방문했을 때 그의 대사는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수리공은 라면을 먹고 있다. “야, 그 라면 참 맛있겠습니다. 계란을 안 넣어 드시는 걸 보니까 라면 맛을 아시는 분이구만. 괜히 맛 낸다고 계란이니 파니 집어넣으면 라면 맛만 버려요. 그저 라면은 민짜가 좋지요”문도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는 반찬 하나를 냉큼 주워 먹는다. 계란,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은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개그맨>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기차역 대합실 장면이다. 모든 것이 파국에 이르렀다. 문도석은 사람을 죽였다. 일행은 부산으로 도주하기 직전이고 여기는 새벽의 역 대합실이다. 그때 문도석은 흰 달걀을 먹고 있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를 머리에 깨서 먹고, 그리고 또 하나를 먹고. 오선영의 대사에 따르면 벌써 스무 개도 더 먹었다. 그러니 이때 달걀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파국의 운명이며 무너져 버린 꿈이며 다가올 불행이다. 옆에 앉은 오선영이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도 말을 못 알아듣고 문도석은 흰 달걀을 건네준다. 배우가 되겠다는 문도석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괴리를 바탕으로 한 우화의 가장 정점에 바로 이 흰 달걀이 있으며 그 흰 달걀을 무아지경으로 먹는 문도석이 있고 그 문도석을 연기하는 신들린 배창호가 있다. <개그맨>이 뛰어나다면 바로 이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았을 때도 내게는 배창호와 그의 입과 그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흰 달걀만 보였고 기억됐다. <개그맨>은 놀랍게도 문도석의 영화이며 배창호의 영화다. 이 장면으로써 이 영화는 내게 걸작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