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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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 (E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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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ngo Lesson (탱고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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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제2권-피아노 레슨 앨범(PIANO LESSON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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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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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프라이비트 레슨 수입심의 결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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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프라이비트 레슨 수입심의 결과보고_통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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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신지를 함부로 추모하지 않기 위해서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과 연계한 기획입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8 아직 건강했던 즈음의 모습이나 목소리의 억양 등을 부족하나마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생각에 고인 화장을 한 채로 말도 없이 누워 있는 아오야마 신지--그건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표정이었다고 후에 들었다--의 마지막 모습을 접하는 등의 일은 이 서글픈 늙은이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 마음을 배우자인 도요타 마호에게 전화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부지게 대응하는 마호의 씩씩함에는 그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밖에 없었던 노령의 나는 그 시각, 식이 행해지고 있을 공간을 생각하면서 어느 일간지 덕분에 영화작가로서의 그의 특이한 매력과 생각지도 못한 훌륭함을 이것저것 쓰고 있었지만, 쌓이는 생각과 그것을 전하려는 말이 신문 특유의 행수와 글자수의 제한에 막혀 마냥 공전할 수밖에 없었고, 생각처럼 글이 잘 진행될 리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도 끝날 무렵에는 역시 피곤한 나머지 축 늘어진 채 일하던 책상에서 벗어나 소파로 도망쳐, 담배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TV 수상기를 향해 리모컨 버튼을 눌러야 할지 잠시 고민한 끝에, 결국 아마도 태생적인 나태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렇다 할 확실한 이유도 없이 심야 흡연과 심야 TV 화면 점등을 거의 동시에 시작하고 말았다. 그러자 작은 화면에는 뭔가 돌계단 같은 경사진 공간에 서 있다가 앉아 있다가 하는 남녀가 비쳤는데, 아무래도 연속극의 마지막회스러운 그 화면 구도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심야의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치고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것은 숏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의 작품이구나 싶어 묘한 흥분을 느끼면서, 이야기의 줄거리도 작중 인물들의 관계도 전혀 모른 채 뜻하지 않게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 화면의 연쇄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오야마 신지적인 부분도 있어, 도대체 누가 이런 드라마를 찍었는지 궁금증이 커졌고, 마지막에 흐르는 캐스트와 스태프 이름의 연쇄를 눈여겨보다 보니, <시쥬카라>(シジュウカラ)라고 하는 제목인 것 같은 그 드라마의 연출가 이름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大九明子’(오오쿠 아키코)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름은 그날 오후 집에 도착한 단행본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필름아트사, 2022)의 목차에서도 봤던 이름이어서 그 사실에 새삼 놀랐고, 발행사의 편집자인 다나카 류스케 씨에게 메일로 문의했더니, 그 사람은 영화 < 제멋대로 떨고 있어 >(2017) 등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킨 여성감독이라고 알려줘서, 나 자신의 무지--그것을 나이 탓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를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바로 그다음 날 아침부터 오오쿠 아키코 감독과 메일 교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이메일 교환을 통해 감동을 받고, 더불어 알게 된 것은 <시쥬카라>의 연출가가 영화미학교 1기 수료생으로 아오야마 신지를 스승으로 추앙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 날 심야에 완전한 우연으로, 아오야마 세미나 출신자가 연출한 ‘양질’이라고 하는 말에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극상’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마음이 깊이 움직여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아오야마 자신이 그 명함--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을 곁들여, 이 여성 감독을 나에게 소개해준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 DVD를 그 자리에서 즉시 구입한 것은 물론이다.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에는 아오야마 신지 또한 마치야마 히로미(町山広美)와의 대담 「영화의 틀은 이미 사라졌다」(映画の箍はすでに外れている)를 실었기 때문에, 오오쿠 아키코 감독은 자신이 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특별 강의」가 스승 아오야마 신지에게 읽히게 될지도 몰라 멋쩍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인 아오야마 신지의 서거로 인해 그 기회는 영원히 상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불합리하게 우리들의 곁을 떠난 아오야마 신지는,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오오쿠 아키코가 만든 탁월한 숏의 연쇄를 마치 의도하지 않은 유언처럼 나에게 알려준 것이 되었으므로, ‘아오야마 신지, 고맙다’라고 심야에 고독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는 이 후기 고령자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선물이었다. 아오야마 신지는 릿쿄대학 시절의 나의 제자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확실히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형뻘인 구로사와 기요시나 만다 구니토시 등의 세대처럼 그들이 만든 8㎜ 필름 작품을 수업 중에 상영하거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영화 얘기를 하고, 그 후에도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격의 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때 나 자신이 릿쿄대학의 교사직을 이미 그만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비상근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 제도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오야마 신지라는 이름은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을 인식한 것은 훨씬 뒤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테네 프랑세에서 열린 다니엘 슈미트 작품 상영회 때, 그의 조감독이었던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조용히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풍성한 장발을 어깨에 휘날리고 있던 그의 얼굴을 인식한 첫 번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문학부 1학년이었을 때 쓴 학기말 리포트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소론이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영화의 “눈”은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이었다’라고 쓰기 시작해, ‘그 따뜻함이 두렵고, 그 다정함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라고 끝맺었듯이, 그 ‘따뜻함’과 ‘두려움’, 그리고 ‘다정함’과 ‘공포’와의 변증법적 기술(記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대학 1학년 후기의 리포트이기 때문에 갓 스무 살이 된 젊은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에, 교사로서의 여유를 넘어선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대부분의 리포트는 거의 처분해 버렸는데, 〈a〉보다도 훨씬 뛰어난 〈A〉라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 그 짧은 글이 아직도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아오야마 신지’라고 하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것은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유레카>(2000)의 소설판을 통해, 누군가가 쓴 『백작부인』 같은 것보다도 15년 정도 전에 이미 미시마유키오상을 수상한 것에서 엿볼 수 있음에 틀림없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예를 들면 근저인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한 영화 작가의 일기 2016-2020』(boid, 2022)의 어디라도 좋은 단 한 페이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오야마의 글재주는 누가 봐도 확실한 것이다. 또한 그는 뛰어난 비평가였으며 그 비평적 눈의 선명함과 강렬함은 이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영화작가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은 현대 일본의 가장 뛰어난 영화평론가의 죽음 그 자체도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비평가로서의 측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와 나와의 공저 『영화장화』(리틀모어, 2011)에서의 긴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서 매번 느끼고 있던 것에 다름이 아니며, 그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은 이미 『아오야마 신지와 아베 가즈시게와 나카하라 마사야의 시네콘!』(리틀모어, 2004) 등을 통해서도 충분할 정도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화를 잘 찍는 감독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언어로 영화를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비평가였던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의 마치야마 히로미와의 대담에서, 마치야마 히로미가 언급한 칼 드레이어의 <게르투르드>(1964)를 놓고 “현대영화의 기선을 잡은 <게르투르드>는 누구에게나 넘어야 할 ‘영봉’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보다 현대성이 강한 <아네트> 같은 영화는 “<게르투르드>의 엄격한 가치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그 경지에서의 머뭇거림을 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 같은 정확하기 짝이 없는 가치판단을 내세울 수 있는 비평가가 지금 몇 명 있는지, 적이 염려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오야마 신지와는 2월 하순까지 이메일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신경 써서 보내준, 걸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 구름 위에 살다 >(2020)를 아내와 나란히 보면서 소파에 몸을 맡기는 다베 미카코의 몸놀림이 터무니없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아내의 반응을 전하자 아오야마 신지는 순순히 기뻐해줬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 추모글을 쓰게 되면서 아오야마 신지가 찍은 몇 편의 작품을 DVD로 다시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때문에, 전부 도중에 보는 것을 그만뒀다. 예를 들면, < 헬프리스 >(1996)에 몇 번인가 삽입된 기타큐슈의 어떤 공장의 무인 숏.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 숏의 적확한 삽입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 피사체를 향해야 할 몇 개의 앵글 중에서,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 하는 적확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의 위치를 아오야마 신지가 선택하고 있다고 하는 그 절대적인 올바름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점으로부터, 내가 아오야마 신지의 ‘눈’을 깊게 신뢰하게 된 계기인 < 셀레브레이트 시네마 101 >(1996)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VHS 테이프로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두려워하는 그 예스러운 장치에 낡은 테이프를 삽입했더니 갑자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묘한 소리가 기계로부터 흘러나오며 어느 버튼을 눌러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테이프를 꺼내려 해도 금속제 뚜껑이 닫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때까지는 간신히 기능하고 있었던—사실 『존 포드론』의 집필 때문에 그의 TV 작품을 보기 위해서 몇 번이나 사용하고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기재는, 아오야마 신지 때문에 기능 부전에 빠져 버렸으니, 부디 책임을 져달라고 말하고 싶은 바다. 다행히도 지금은 VHS로 봐야 할 작품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오야마 신지 이 사람아’라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자네는 우리 집의 낡은 VHS 재생장치를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네. 얼마나 밉살스러운 남자인가. 하기야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오야마 신지의 비평적 선명함과 강렬함이 다소 무뎌지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시로 그렇게 지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 자신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순간이다. 2018년 월드컵 때 그와 메일을 교환하다가 모드리치를 남군 장교에 비유한 것은 틀림없이 바로 나였다. 실제로 아오야마 신지는 그 비유를 보고 이렇게 썼다. ‘잠이 부족한 나날에 대해 보답받았다고 할까, 내가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가르쳐 주셔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다. 나는 모드리치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남북전쟁을 그리는 포드와 페킨파의 서부극을 월드컵에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매우 납득이 가는 해설’(p.189)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맹세코 말하지만, 그렇게 쓴 나의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은 이 좁지 않은 세계에서도 아오야마 신지 한 명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에 대한 은밀한 연애편지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일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그를 울려 버린 적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낮에 도착한 《문학계》에 실린 「존 포드론 제1장-II. 수목」을 단숨에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눈물샘이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 말 없는 사나이 >를 거쳐 <일곱 여인> 부분에 접어들었을 때, 사정을 모른 채 옆에 있던 여배우가 “웬 오열?”이라며 놀라워했다. 이것은 나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시게오미 군과 관련된 일이 깊게 관계하고 있는 것 같다. 외아들을 잃은 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p.422)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오열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은 아오야마 신지밖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확신하고, 나 또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미우라 하루마를 <말 없는 사나이>의 모린 오하라처럼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터무니없이 감동적인 < 도쿄공원 >(2011)을 찍고 난 직후였다고 생각되는데, 시게오미가 스즈키 다쿠지 감독의 <나는 고양이 스토커>(2009)나 스가누마 에이지 감독의 <속삭임>(2009)의 음악 작업을 끝낸 이후 몸이 약간 좋지 않아 처음으로 입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문병을 가서 그 병실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안에서 쾌활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되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아오야마 신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당분간 젊은이들끼리 대화를 즐기도록 놔두자고 생각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신진 작곡가인 시게오미와, 그의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아내로 둔 영화작가 사이에는, 도요타 마호를 둘러싼 무수한 화제가 있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분이 지나도, 반 시간이 지나도, 결국은 1시간이 지나도, 아득한 병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1시간 반 정도 후에야 야구 모자를 쓴 아오야마 신지가 복도를 지나며 ‘아아, 와 계셨습니까’라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하자, ‘아아, 시게오미 군,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병실에서 나를 맞아준 시게오미는 시게오미대로, 몸이 나아지면 함께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은 채,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차기작의 음악 작업을 의뢰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지 않았고, 아오야마 신지의 수줍은 표정도, 그 통통 튀는 웃음소리도, 그와의 긴 대화를 진심으로 즐기던 시게오미의 자랑스러운 미소도, 이제는 영원히 상실되고 말았다. 그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머지않아 86세가 되어 가는 이 후기 고령자는, 이를 위한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아오야마 신지를 함부로 추모하지 않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신초」2022년 6월호) 필자 - 하스미 시게히코: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 영화 분야 저서로는 『영상의 시학』(1979), 『감독 오즈 야스지로』(1992), 『영화의 신화학』(1996), 『고다르 혁명』(2005), 『보기 레슨: 영화사 특별 강의』(2020), 『쇼트란 무엇인가』(2022), 『존포드론』(2022) 등이 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이 글의 무료 게재를 허락해주신 「신초」 편집부와 하스미 시게히코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この文の無料掲載をお許しいただいた「新潮」の編集部と蓮實重彦様にお礼を申し上げます。) ※ 이 글의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note.com/monthly_shincho/n/n442dd74c8048 )
[월간스크린]아웅다웅 로맨스: <동갑내기 과외하기>(김경형, 2003)
2003년 |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감독: 김경형 | 원작: 최수완 | 각본: 박연선 | 각색: 김경형 | 제작, 기획: 이서열 허대영 | 촬영: 지길웅 | 미술: 오상만 김현옥 | 음악: 이경섭 CAST 수완: 김하늘 | 지훈: 권상우 | 종수: 공유 | 호경: 김지우 | 지훈 부: 백일섭 | 지훈 모: 김혜옥 | 수완 모 : 김자옥 | 수완 부: 오승근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인터넷 소설과 청춘영화의 결합입니다. < 엽기적인 그녀 >( 곽재용 , 2001)부터 시작되어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에서 정점을 맞이했는데, 그 중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 동갑내기 과외하기 >였습니다. 이 영화로 김하늘은 새로운 이미지를 더했고, 권상우는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죠. 2002년 12월에 촬영 현장을 공개했습니다. 장소는 양수리 종합 촬영소의 세트장이었고요.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의 첫 과외 장면이었는데요, 지훈은 ‘호사다마’를 당구 용어로 여기고 ‘to 부정사’는 몰라도 ‘정사’는 안다며 깐족대는 동갑내기 제자입니다. 그런 제자 앞에서 수완은 철 없는 연애 사건을 들켜 버리네요. 낮에는 과외 전선에서 뛰고 밤에는 스쿠터를 타고 닭 배달을 하는 수완. 고등학교를 유급한 제자 지훈 앞에서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해 결국은 화를 터트립니다. 이 영화 전까지 김하늘은 ‘멜로’ 이미지가 강했고 TV 중심으로 활동했는데요, ‘청춘 코미디’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고 영화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를 굳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됩니다. 대학 진학? 지훈의 목표는 소박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하지만 아직 공부할 자세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권상우는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 화산고 >(김태균, 2001)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에 이어 계속 교복 입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2004년엔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에 출연하기도 했죠. “유니폼 입는 캐릭터가 그래도 멋진 것 같아요. 나중에 신부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예언이었을까요? 그의 꿈은 1년 후 < 신부 수업 >( 허인무 , 2004)으로 이뤄집니다. “사면초가가 무슨 뜻이야?” “다구리 붙을 때 사방에 적이라는 뜻이지!” 불량스러운 수업 태도를 보여주던 지훈은 아예 담배까지 꺼내 입에 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권상우는 포즈 잡기가 어색한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쳤습니다. 티격태격 하는 설정이지만 현장에서 김하늘과 권상우는 척척 죽이 맞는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쳐요.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상대방을 참 기분 좋게 해주는 배우예요.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요, 권상우 씨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우리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김하늘) “하늘 씨는 나보다 오래 연기한 선배지만,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하늘 씨랑 꼭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권상우) 그리고 두 사람은 3년 후에 < 청춘만화 >( 이한 , 2006)에서 재회하죠.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지금까지 나온 코미디랑 다른 점이 있다면 ‘깨끗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에요. 제목이 ‘과외하기’인데, 난잡할 수 있겠어요?(웃음)”(권상우) “코미디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다면 그건 배우들이 망가진 행동으로 웃기려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도 물론 그런 장면이 없지 않죠. 하지만 막무가내로 웃기려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와 상황으로 웃긴다는 게 장점이에요.”(김하늘) 결국 참지 못한 수완은 지훈의 코에 담배를 쑤셔 넣습니다. 권상우가 아플까 싶어 김하늘이 몇 차례 NG를 거듭하자 김경형 감독이 한 마디 던집니다. “아프게 쑤셔 넣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힘차게 해!” 감독의 디렉션에 용기를 얻은 김하늘은 과감한 연기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로 뒤늦은 데뷔를 하는 김경형 감독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현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KBS에 입사해 드라마 현장을 먼저 접한 그는 이후 영화의 매력에 빠져 사표를 던지고 충무로에 뛰어들었고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김성홍 , 1990)의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첫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슬픈 역할을 맡았던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 현장은 조금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감독님이 나이에 비해 참 젊으세요. 장난꾸러기?(웃음) 감독님이 오히려 저희들한테 애교도 부리시고요. 그러니까 스태프들도 편하게 풀어지고 배우들도 풀어지고…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죠.” 김경형 감독이 권상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와중, 김하늘은 휴지를 입에 대고 기침을 합니다. 촬영 당시 몸살 감기였는데요, 이날 촬영도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죠. 그런데… 그 감기가 바로 권상우에게 옮은 것이었다는 사실. “감기 걸려서 입원까지 했다가 거의 나을 때쯤 됐는데, 상우 씨가 또 감기에 걸려서 온 거예요. 저한테 감기 옮긴다고 장난으로 막 침 튀기고 그랬는데, 정말 다시 감기 든 거 있죠.”(김하늘) “제가 진짜 죽일 놈입니다.(웃음)”(권상우) 김경형 감독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장면의 톤을 배우들에게 전합니다. 한편 두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시나리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차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냥 하겠다고 했죠.”(권상우) “저도 차 안에서 봤는데, 원래는 드라마 <로망스> 촬영중이라 그 대본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잠깐 본다고 읽기 시작한 <동갑내기 과외하기> 시나리오를, 차에서 내려 식사하러 갈 때까지 들고가게 됐어요. 그리고 쉽게 결정 내렸어요.”(김하늘) 영화에선 ‘날나리’지만 학창 시절 권상우는 ‘범생이’였습니다. “저는 진짜 고등학교 때 커피숍 한 번 안 가봤어요. 친구들이랑 운동하고, 주말에 영화 보러 가고, 가끔 친구네 집에서 놀고. 담배도 안 피우고요. 재밌게 노는 학생이긴 했어도, 겁이 많아 얌전했어요.” 사정은 김하늘도 마찬가지. “학교 다닐 때 제일 말썽 부린 게 지각 정도였죠.” 지길웅 촬영감독은 우리에겐 이준익 감독의 < 황산벌 >(2003) < 왕의 남자 >(2004)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신부 역으로 잠깐 출연하기도 하는데요, <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 >(2007)에선 김호정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일하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는 거예요.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정말 행복하지도 않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내가 왜 항상 밝은 척 웃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게 다 일이 즐겁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지고, 그러니까 좀 더 좋은 연기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화예요.”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저는 솔직히 드라마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 짜증나요. 주눅 들어서 연기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영화 촬영장에 오면 훨씬 편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하고 싶어요. 이제 봄이 되면 데뷔한 지 딱 2년이에요. 그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고 사람들이 ‘권상우 뭔가 했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권상우가 뭔가 한’ 첫 작품인 셈입니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패러글라이딩이 취미인 지훈.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 당한 동갑내기 과외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이후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나간다. 필름 감는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가운데 연기에 몰입하는 권상우. 그런데 갑자기 동시녹음 기사가 버럭 호통을 칩니다. “누가 배에서 꼬르륵거려!” 그 주인공은 권상우였고, 멋쩍게 웃으며 자진납세 하는 바람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한국영화걸작선]러시안 소설
롱테이크의 화면, 반복되는 내레이션, 어느 시대인지를 알 수 없는 한적한 분위기. < 러시안 소설 >은 동시대 한국영화의 흐름에서 외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가 뿜어내는 시차는 영화를 만든 신연식 감독이 동시대와 다른 곳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이 시대의 유행과 다르기 때문이다. < 피아노 레슨 > < 좋은 배우 > < 페어러브 >를 거쳐 온 신연식 감독의 영화에는 장르적 관습을 구축하거나 자극적인 것을 내세우고자 하는 야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각본과 제작을 겸한 < 동주 >에서도 보여지 듯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대한 일관된 관심은 또렷하다. 신연식 감독은 예술가란 무엇인지, 예술가의 초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 러시안 소설 >은 재능도 없어 보이는 소설가 지망생 신효의 이야기다. 그는 경미라는 잘 나가는 소설가와 연애를 해보기도 하고, 친구의 아버지이자 우현제를 세운 당대 최고의 소설가 김기진에게 인정받고자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김기진의 아들이자 친구인 성환은 신효를 도우며 작품과 삶에 대한 충고를 건넨다. 신효가 머무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인 우현제에는 소설가 정석과 그의 딸인 가림이 머물고 있다. 이들도 느슨하게 신효에게 말을 건넨다.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인물 중의 하나는 신효의 재능을 인정하고 도와주려고 애쓰는 재혜라는 여성이다. 한 남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헌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작 < 페어러브 >의 남은( 이하나 )과도 슬쩍 겹쳐있다. 한 단락에 걸친 < 러시안 소설 >의 길고 복잡한 인물들의 관계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영화는 신효라는 지망생을 둘러싼 관계들을 건드린다. 그 가운데 또렷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신효의 열정이다. 과연 그는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정작 그가 어떤 작품을 쓰는지는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뭔가 에너지는 있지만 세련되지 않은 그의 습작에 대한 단상들이 흘러나온다.). 신효는 소설을 쓰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 열정은 재혜를 탄복시키고, 끝내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지점에서 < 러시안 소설 >은 시간의 번지점프를 감행한다. 27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중년의 신효도 어색하지만 화면의 톤과 분위기도 사뭇 달라져 있다. 마치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서로 다른 분위기의 영화를 겹쳐 놓으면서 신연식 감독은 고전적인 영화 이야기의 파괴를 감행한다.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인 성환, 경미, 재혜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27년의 시간 속에서 깨어난 신효는 그가 흠모했던 김기진 작가 이상으로 최고의 소설가 반열에 올라와 있다. 이 간극은 예술가의 두 가지 유형을 생각하게 만든다. 전반부가 예술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면, 후반부는 최고의 예술가가 된 자의 무기력하고 황망한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 간극을 통해서 신연식 감독은 예술가의 완성은 이처럼 우연적이고, 비약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아이러니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간극은 예술의 비약, 예술가의 도약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버린다. 그 시간 동안 잠들어있던 신효는 깨어난 후의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 작품들을 불태워 버렸다. 그렇다면,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고, 유명세를 만들어 낸 이는 누구일까? 성환일까? 재혜일까? 아니면 경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일종의 맥거핀(미끼)일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시간이 무엇인지를 간극을 통해서 드러내는 데 있다. < 러시안 소설 >은 예술가의 시작과 끝만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을 완성시키는 신화의 과정을 제거해 버린다.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영화로서 예술가의 신화화 과정을 제거해 버린다. 도대체 신효의 작품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반향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그것은 일정하게 현실에서 발생하는 예술의 신화를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고흐의 작품이든 하나의 예술이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건 그 자체가 예술을 완성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 사건들을 따라 고민하는 작가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예술가를 둘러싼 신화화 과정 대신 신화화 되는 순간들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알맹이만 제거한 채 예술가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들을 건드리는 < 러시안 소설 >은 일종의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신연식 감독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의 신화화’에 대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 조류인간 >을 거쳐 < 동주 >로 이어지는 예술가의 이야기들은 신효의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는 작품들이다(<조류인간>이라는 제목은 < 러시안 소설 >에 언급되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은 지금은 아주 유명했지만, 정작 그는 당대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시인 중 하나였다. 사후에 발간된 이 시집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는가를 촘촘히 보여주면서 <러시안 소설>과는 다른 예술가의 시간을 선택한다. 그중에는 윤동주처럼 이미 알려진 예술가의 리스트도 있고, < 조류인간 >처럼 신연식 감독이 창조해 낸 가상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있다. 두 방향 다 일정하게 흥미롭다. < 러시안 소설 >의 무명씨들을 생각해 보자. 무명의 예술가 신효를 사랑한 재혜, 예술가가 선망하고 탐미하는 경미, 예술가 친구를 슬쩍 도와주는 성환 등의 캐릭터가 또 다른 예술가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신연식 감독이 알게 모르게 아이돌이나 새로운 배우들을 발굴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선택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만큼이나 그는 대중문화나 현실에서 예술가의 삶을 고민하는 인간과 배우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사실 예술을 둘러싼 욕망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것이다. 한 천재적 개인이 아니라 천재적 개인을 발굴하고 북돋워 주는 예술가의 친구들이 있기에 예술을 비로소 꽃을 피운다. 신연식 감독의 영화가 예술가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이 지점에서다. < 좋은 배우 >에서 연극 무대에 올라와 있는 이들이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결국 나 혹은 네가 어떤 예술가 혹은 예술가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탐문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가 있다. 동주 곁에 몽규가 있었던 것처럼, 몽규 곁에는 동주가 있다. 그들은 멀리 있는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의 예술가들, 고민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신연식 감독의 영화는 그러한 인간상을 그려내는 것에서 항상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