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자화상
- 감독
- 톰 앤더슨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인크 킹
사진: "Lichtspiel Opus 1.",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세계영화사를 뒤져나가면서 슬픈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순간? 영화가 가졌던 하나의 가능성이 역사의 폭력 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중단되었을 때. 이번에는 세계영화사의 슬픈 순간 중의 하나와 만날 차례이다. 아마 수없이 이런 순간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 1887~1941)은 18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그때 취리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중립국으로 모인 다다이스트들의 도피처였다. 여기에 한스 리히터, 트리스탕 차라, 에미 헤닝스, 한스 아르프, 하여튼 셀 수 없는 다다이스트들이 있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도 여기 머물렀고, 이웃 도시에 러시아의 동지들에게 문건을 보내던 블라디미르 레닌도 잠시 체류했었다. 아마 여기서 발터 루트만은 다다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1909년에 독일로 돌아왔고, 뮌헨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파울 클레, 라이오넬 파이닝어와 교분을 맺었다. 잠시 파울 클레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때 파울 클레는 닥치는 대로 화가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발터 루트만은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의 영화들 속의 이미지를 가져왔겠는가. (좌1) 발터 루트만 (사진: "Walter Ruttmann", IMDb ) (우2) 발터 루트만 연출 <빛의 유희, 작품 2번>(1922), <빛의 유희, 작품 3번>(1924) (사진: "LICHTSPIEL: OPUS II", MUBI / "Opus III", IMDb ) 발터 루트만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벨기에 아르 누보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헨리 반 데 벨데가 바이마르 미술 공예학교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웠다. (하지만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는 바우하우스를 곧 탈퇴하였고, 독일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초대 교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미술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쳐 가기로 한다.) 이 학교는 예술의 창조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교육 목표이자 학교의 정체성이며 바우하우스의 프로젝트라고 선언(하다시피)했다. 이 학교에 네덜란드에서 《데 스타일(De Stijl)》을 창간한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방문했고,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가 엘 리시츠키도 찾았다. 바우하우스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은 헝가리 미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였다. 바우하우스는 산업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좌) 바우하우스 (사진: "Chronology", Bauhaus Dessau ) (우) 1920년대 바우하우스 마스터 하우스에서, 라슬로 모호이-너지 (사진: "Biography", MOHOLY-NAGY FOUNDATION ) 발터 루트만은 화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표현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곧 추상주의 양식에 끌렸다. 그런 다음 영화를 끌어들였다. 이때 발터 루트만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새로운 매체, 새로운 사이트(site)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서의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테크놀로지와 추상의 형식을 서로 결합하는 미래를 선언하는 《데 스타일》의 ‘기계 미학’에 관한 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발터 루트만이 선택한 길이 아방가르드 영화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루트만 자신은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믿었다. 좀 더 간단하게 스크린을 새로운 캔버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캔버스는 ‘시간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체’였으며 여기에 “우리 시대의 속도”를 그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빛의 유희, 작품 1번(Lichtspiel; Opus 1)>(1921)이다. 영화 제목이라기보다는 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 상영 시간 11분 44초. 음악 막스 부팅. 검은 바탕 화면에 푸른색과 초록색 원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시작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형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린 이 작업은 명백히 칸딘스키의 영향 아래 놓인 것으로 보였다. <빛의 유희, 작품 1번>은 1921년 4월 27일 베를린 마르모르하우스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극장에서 한 해 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베르트 비네, 1919)을 공개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비평가 베른하르트 디폴트는 《프랑크푸르터 자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루트만은 자신의 스피드를 미래주의자 캔버스의 영화적 돌진으로부터 가져왔다”라고 썼다. 영화와 미술은 표현주의 영화들과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친교를 맺었다. <빛의 유희, 작품 1번> 중 하지만 <빛의 유희, 작품 1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상품 광고 아이디어를 찾던 쪽이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방가르드와 비즈니스가 서로 결합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예술은 다시 한번 돈이 되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산업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였다. 발터 루트만뿐이 아니라 많은 실험 영화 작가들이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그들은 작업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곳은 바우하우스였다. 산업 디자인의 관점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한 ‘예술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새로운 통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영화라는 표현 대신 매체로서 ‘빛의 구성과 조립으로 이루어진 이 종합’에 관해 1922년 《데 스타일》에 ‘생산, 재생산’이라는 글을 썼다. 발터 루트만은 자신의 작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왁스-커팅기에 관한 허가권을 얻은 다음 1926년에 로테 라이니거의 영화 <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1926) 오프닝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중 일시적으로 영화(와 미술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에 다리를 놓았던 순간은 1933년 나치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교하면서 갑자기 사라졌다. 발터 루트만은 추상적인 이미지의 ‘빛의 캔버스’를 버리고 산업 디자인 영화에 관심을 돌렸다. 1935년, 발터 루트만은 군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실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그가 1928년에 모스크바 여행을 다녀온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감독직에서 해고하고 그 자리에 레니 리펜슈탈을 지명했다. 그 영화가 < 의지의 승리 >(1934)이다. 발터 루트만의 경력은 여기서 끝났다. 오스카 피싱거는 나치 독일을 피해서 1936년에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월트 디즈니의 < 환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940) 작업에 참여했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1937년에 시카고에 머물렀고, 미국에 개교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아주 짧았다. 한스 리히터는 작업을 중단하고 1940년 뉴욕에서 영화를 가르쳤다. ‘빛의 캔버스’는 그렇게 섬광처럼 빛을 발한 다음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하나의 순간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6년 정지돈과 오한기와 이상우와 나는 <펫 시티>라는 제목의 ‘페이퍼시네마’를 만들었는데, 앨런 튜링의 뇌를 쪼아먹은 앵무새 마부제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되며 조류가 인류를 지배하게 된 세상에서 분투하는 주인공 잭(a.k.a. 짹)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일종의 대체역사 SF였다. 벨라 발라즈는 옛날 영화가 우리에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라는 문화가 너무도 빠르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래된 예술이 대개의 경우 지나간 시대의 정신을 거기에 합당한 형식에 담아 표현했다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 아직 ‘역사’가 아닌 우리의 최근 모습이며 그 어색함이 우리를 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방금 <펫 시티>의 로그라인을 보며 슬쩍 (비)웃었다면 그 때문이다, 아마도…… 그러니까 문제는 웃음이고, 웃음의 종류다. 그게 처음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정지돈과 내게 ‘우리가 사랑하는 21세기 한국 영화’라는 주제로 한달씩 번갈아가며 연재할 것을 제안했을 때 우리가—적어도 나는—떠올린 것이었다.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일은 거의 언제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소위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영화라는 우정 운운하면서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모습을 보라. 소문난 영화사랑맨이자 시네마테크의 얼치기 인류학자였던 뤽 물레는 < 알카사르 작전 >에서 자신과 친구들을 한 마디로 묘사한다. 시네필들이 다 그렇듯이 그는 입냄새가 심했다, 라고…… < 인생은 소설이다 >의 개봉에 맞춰 알랭 레네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세르쥬 다네는 < 히로시마, 내 사랑 >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주었던 충격에 대해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네는 말한다, 내가 말해서는 안 될 그의 어떤 무엇인가를 말했다는 듯이 그는 조금은 쌀쌀한 태도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마치 내가 그의 레인코트를 칭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유년기를 응시했던’ 영화들은 공유 불가능하다는 것, 심지어 그 영화들의 작가와도 공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웃음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지돈씨가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모양이다. —두 종류의 한국 영화가 있습니다. 웃겨서 계속 보고 싶은 한국 영화와 웃겨서 더는 볼 수 없는 한국 영화. 전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이) 그럼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서교동 콜마인에서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친구들’(가제)이라고 이름 붙인 연재를 위한 일종의 기획회의? 작전회의? 나는 약간 복잡한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둘이 하는 공동작업이 설레기도 했지만, 장 루이 셰페르의 말마따나, 나는 영화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할 자격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 지나치게 자주 가는 지돈씨와 달리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갔던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콘 에어>를 본 건 기억나는데…… —정연씨, 제발 니콜라스 케이지는 잊으세요.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 더 록 >, < 패밀리 맨 >, < 스네이크 아이즈 >, < 비상 근무 >, < 페이스 오프 >, < 시티 오브 엔젤 >,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 같은 영화들을 보며 생각했다. 왜? 왜 죄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 거야? 그건 아직도 내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사람이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좀처럼 잊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지돈씨에게 내가 가장 최근에 본 한국 영화인 < 남산의 부장들 >에 대해 말했다. 중반까지는 무척 몰입해서 봤다, 중반을 넘어가며 조금은 동어반복적이고 지지부진한 느낌이, 클라이막스 이후에는 뭔가 잘 정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재밌었다, 다만 어느 순간 —한국 현대사를 다룬 정치 영화가 아니라 가족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이병헌이랑 이희준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계속 보다보니까 추석에 삼촌들이 고스톱 치다 싸우는 것 같고, 이성민은 꼰대 아버지고,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김소진은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일하는, 레비 스트로스적인 의미에서 족외혼을 통해 교환된, 문자 그대로 출가외인이며…… 겉으로는 세련된 척, 젠틀한 척, 서로 존중하는 척하면서 뒤로 은근히 견제하고 돌려서 까고 음모를 꾸며 뒤통수치는 외국의 정치물과 달리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보다 직접적이라는 감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건 내게 아쉬움보다는 한국에서 한국 영화 나온다,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이런 이야기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관객으로서 나는 정치라는 공적인 관계까지 가족이라는 사적 프레임을 통해 파악하는 관점이 너무 익숙하다. 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관객으로서 내게 한국 영화는 어떤 시대를 다루건 지나치게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가족처럼…… 그래서 우리는 한국 영화를 보고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작품의 매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종종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걸까? 우리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너무 좁아. 약간의 여유가, 숨을 돌릴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해. 늘 그랬던 것처럼 지돈씨는 자신에게 아이디어가 있다고 했다. 무려 세 개나! “봐, 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라고 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들뢰즈는 묻는다.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은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고 자주 오지 않는 일종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은 뭔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가끔은. 하지만 매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지돈씨는 어떻게 아직도 매번 아이디어가 샘솟는 거지? 지돈, 유 돈 스탑 네버 스탑? —첫 번째, 22세기의 영화 청년들이 우연히 21세기 초반의 영화를 발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이에요. 일종의 SF처럼.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베터 콜 사울>에 나오는 영화과 학생들이었다. 어쩐지 22세기에도 그들은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영화과 학생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천재 감독이 될 수 있었지만 전공을 잘못 택한 22세기의 사울 굿맨에게 착취 당하며…… —두 번째, 이건 방금 니콜라스 케이지 얘기하다가 떠오른 건데, 재밌게 봤지만 이상우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영화들이라는 컨셉인 거죠. 쉽게 말하면 길티 플레져 같은? 그런데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지돈씨와 나는 종종(실은 거의 항상) 글을 쓸때 서로를 등장시켜 할 말 못할 말 모두 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상우를 등장시킬 때는 어쩐지 조심하게 된다. 상우씨가 특별히 뭐라고 한 적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점이에요, 지돈씨가 말했다. 여기서 이상우는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정연씨와 저의 초자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인 거죠. —세 번째, 각자 상대를 내세워서 서로가 본 영화에 대해 쓰는, 금정연은 정지돈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정지돈이 영화를 보고 느낀 걸 기록하고 정지돈은 금정연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금정연이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거예요. 3인칭 미니 픽션처럼. 물론 가장 내 마음에 든 건 세 번째였다. 22세기의 한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시점에서 21세기 초반의 한국 영화를 보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지만 상상하긴 힘들었고, 이상우에게 절대 말할 수 없는 영화는 이상우에게 절대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영화 경험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등장인물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촌에 있던 녹색극장과 이대 앞 영화마당, 서울극장과 단성사와 피카디리와 씨네코아 같은 시내의 극장들에 대해 말했다. 비디오대여점과 극장에서 했던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도. 좌석들 사이에 떡하니 커다란 기둥이 있어 시야를 가리던 코아아트홀에서 < 버팔로 66 >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정지돈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그걸 극장에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볼 수 있죠. 내가 대답했다. 충분히 오래 전에 서울에서 태어나기만 했다면…… 정지돈이 영화를 본 곳은 대구극장과 한일극장과 만경관이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96년 대구극장에서 < 미션 임파서블 >을 보며 처음 돌비서라운드를 경험했고, 그때부터 브라이언 드 팔마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질문. 만약 당시로서는 최첨단 음향시설이 설치된 대구극장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보지 않았다면, 그와 드 팔마의 관계는 지금과 달랐을까? —귀를 중심으로 한 영화 경험은 관객의 자아로 깊숙이 진입한다고 토마스 엘새서가 말하긴 했죠. —그럼 지돈씨 자아 깊숙이 드 팔마가 있는 거예요? 와, 대박. —아니요. 제 자아 깊숙한 곳에는 드 팔마가 없습니다. 정지돈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탐 크루즈가 있죠. 귀와 음향은 영화 경험의 공간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라고 엘새서는 쓴다. 우리는 모퉁이에서, 그리고 벽 뒤에서, 심지어 우리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과 눈부시게 환한 환경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많은 전통적 접근 방식이 영화 관객을, 이성적으로 동기화되고 목적 지향적인 방법으로 관람하며, 객관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로 간주한 반면, 귀는 균형 감각과 공간적 감수성과 같은 요소로 초점을 옮긴다. 관객은 더 이상 영화 밖에 머무는, 시각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이미지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음향적, 공간적, 육체적으로 영화적 조직과 엮여 있는 신체적 존재다…… 이듬해에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 단테스 피크 >를 돌비서라운드로 보다가 등 뒤에서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며 지돈씨는 쓸쓸하게 덧붙였다. —지금은 무엇에도 놀라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요. 정지돈은 또 아버지와 함께 한일극장에서 < 클리프행어 >를 보기 위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일화를 들려주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아무래도 못 보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아버지가 줄에서 쓱 나가 돌아다니던 암표상을 부르니 형님, 오셨어요? 하며 암표를 주었다고 했다. 어린 그에게 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처럼 느껴졌던 몇 안 되는 기억이라고. 비슷한 무렵, 나 역시 아버지와 함께 < 쥬라기 공원 >을 보러 극장에 갔다. 마감에 허덕이는 만화가였던 아버지는 아는 암표상 동생이 있지는 않았고, 허름한 극장에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지도 않지만, 단순히 극장에 데려 갔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와 얽힌 기억 중에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밖의 다른 좋은 기억들은 집에서 비디오로 함께 < 구니스 >를, <레이더스>를, < 8번가의 기적 >을, < 어비스 >를, < 스플래쉬 >를, < 폴리스 아카데미 >를, < 오복성 >을, < 총알탄 사나이 >를, < 로보캅 >을, < 토탈리콜 >을, < 다이하드 >를, < 프레데터 > 같은 영화들을 보던, 보다가 어머니와 싸우기 전까지는 그래도…… 헐리우드파였던 내 아버지와 달리 지돈씨의 아버지는 장 가뱅을 좋아하던 유럽파였다. 이걸 헐리우드에서 헐리우드 나고 유럽에서 유럽 난다고 해야 할지. 정작 우리 부자는 헐리우드에 가본 적도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헐리우드건 유럽이건 아버지들이 우리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아빠인가? 우리는 한국 영화를 죽여야 하나? —그건 < 화이 >에서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친부 하나에 계부 다섯, 마지막에는 상징적 아버지까지 일곱 명이나 죽이잖아요. —정연씨, < 암살 >을 생각하세요. <화이>에서 친자인 여진구에게 죽었던 이경영은 <암살>에선 친자인 전지현(B) 대신 자기 아버지를 직접 죽이지 못하는 인물들이 모인 살부계의 일원인 하정우에게 죽습니다. 그건 수정주의죠. 영화라는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아요. 지돈씨와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고 대신 연락을 끊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의 기원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영화 쪽으로 이끌었다는—엄밀히 말하면 영화 언저리에서 방목했다는—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세르주 다네는 시네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단지 학교 수업과 병행해서 행해지는 또 다른 수업이자 지식을 주입하는 과정이었으며 이 수업에서 노란 표지 시기의 <카이에>가 길잡이 역할을 했고 몇 사람의 성인 통행안내인들이 우리의 은밀한 공모자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시네필이 아니고 한 번도 시네필이었던 적은 없지만, 우리들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최초의 성인 통행안내인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인다. 정확히 다네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저기 어딘가에 발견해야 할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바로 그 세계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이거다! 그때 갑자기 정지돈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외쳤다. —한국의 영화는 일종의 교육-장치입니다.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적교육체제인 거죠. 로라 멀비는 주류 영화가 남성의 판타지와 쾌락을 제공하며 남성의 응시를 위해 구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네는 시네필cinéphile을 영화-아들cine-fils라는 이보다 분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조어로 바꿔 말했고요. 아버지에서 아들로 내려오는 가부장적인 사적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한국에서 모두 두 곳입니다. 극장 그리고 목욕탕! —그건…… 마치 고대 로마 같은 이야기네요. —그렇죠! 캐롤라인 래빈에 따르면 학교는 열을 지어 정렬한 관객 개념을 고대 극장에서 빌려 왔습니다. 따라서 세 가지 학교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학교, 감옥, 그리고 극장. 레프 마노비치는 스크린의 계보에서 영화 스크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람객이 자리를 뜨지 않고도 다른 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움직이는 가상의 시선이죠. 하지만 이 가상적 운동성은 새롭게 제도화된 관객의 부동성을 대가로 얻어진 것입니다.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의 수감자를 수용하기 위한 대규모 감방, 즉 영화관이 지어진 거죠. 수감자-관객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습니다. 바로 그게 제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걸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싫어하는 것 치고 극장에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니에요? —정연씨,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어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사회, 푸코는 그걸 훈육사회라고 불렀다. 훈육사회는 감옥, 학교, 작업장, 병원 등 감금 환경의 구성으로 규정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극장이 추가되어야 한다. 들뢰즈는 우리가 훈육사회를 넘어—윌리엄 버로스의 표현을 빌려—통제사회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감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다. 들뢰즈는 말한다. 통제는 훈육이 아닙니다, 고속도로로 사람들을 감금하지는 않지만, 고속도로를 통해 통제 수단을 늘릴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 고속도로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전혀 갇혀 있지 않고 무한히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데도 완벽하게 통제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 극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소름…… 하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영화에 대해 말해야 하는 거지? 목욕탕이 배경인 곽경택의 < 억수탕 >? 하지만 그건 20세기 영화인데…… 아니면, 홍상수의 < 극장전 >……? 그날 밤, 책상 앞에 앉아 스포티파이가 추천하는 맞춤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앨라니스 모리셋의 ‘넌 알아야 해You Oughta Know’를 흥얼거리는데, 등장인물들이 그 노래를 부르던 두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먼저 <투어의 끝>에서 제이슨 세걸이 분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일행들이 차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 그리고 < 북스마트 >에서 케이틀린 디버가 친구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열창하는 장면. 이어지는 것은 < 트립 투 이탈리아 >에서 롭 브라이든과 스티븐 쿠건이 차를 타고 가며 앨라니스 모리셋의 ‘Jagged Little Pill’ 앨범을 두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다. 티키타카 끝에 둘은 CD를 트는데 “내가 당신을 열받게 하나요?Do I stress you out?”라는 첫소절이 나오자마자 브라이든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그래Yes, you do.” 그리고 장면은 다시 < 레이디버드 >에서 어린 주인공이 기타를 치며 ‘아이러닉Ironic’을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에 떠오른 것들을 어떤 순서로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튀어올라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마치 작은 빅뱅처럼. 한 마디로 그건 들뢰즈가 말하는 “내게 아이디어가 있어”의 순간, 단지 영화적인 것밖에 될 수 없는 아이디어의 순간이었다. 톰 앤더슨, < 타짜 >, 한국, 그리고 노래방이 한데 섞인…… 톰 앤더슨은 로스앤젤레스가 등장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이어 붙여 <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을 만들었다. < L.A. 컨피덴셜 >, <긴 이별>, < 블레이드 러너 >, <히트>, < 차이나타운 > 같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켄트 맥켄지의 <더 엑사일즈> 같은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도시의 장소들, 건물들, 거리들, 교통체제, 재개발, 도시의 기원을 둘러싼 신화, 도시를 통제하는 경찰 권력, 인종차별과 계급문제를 모두 아우르는 중층적인 영화-에세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톰 앤더슨의 영화를 본 이후로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일, <담배와 영화>라는 책을 통해 나름 시도했으나 결코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나는 지돈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한국 영화 속에 나타나며 한국 영화를 한국 영화로 만드는 한국적인 장면들을 모은 일종의 에세이 영화를 만드는 거죠, 우리가 직접! 이번 연재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기획 단계에서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한국 영화에 대한 한국 영화를 만드는 두 사람의 좌충우돌 편력기를 그린 일종의 제작 노트가 되는 거고요! 지돈씨는 동의했고, 나는 검색과 기억에 의지해 노래방이 나오는 영화(25개)와 목욕탕이 나오는 영화(12.5개)의 목록을 정리해서 지돈씨에게 메일로 보냈다. 왜 노래방이냐고? 목욕탕이 극장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사적교육체제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면, 노래방(룸싸롱이나 가요주점 등을 포함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치가 구비된 방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은—정확히 말하면 한국 영화에서 재현되는 노래방은—한국의 남성들이 우애를 다지는 호모소셜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성 인물들이 함께 노래를 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 친구 >에서 유오성이 부르는 ‘마이 웨이’나 < 비열한 거리 >에서 천호진이 부르는 ‘올드 앤 와이즈’와 < 광복절 특사 >에서 송윤아가 부르는 ‘분홍 립스틱’이나 < 너는 내 운명 >에서 전도연이 부르는 ‘오빠’를 비교해보라.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꿀벌 이야기에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한국사람 이야기에 노래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하필 박무석이 곽철용 앞에서 ‘불나비’를 부르는 <타짜>의 장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에요? —지돈씨, 그건 말이죠…… (다음 회에 계속) *참고도서 [영화의 이론](벨라 발라즈 지음, 이형식 옮김, 동문선, 2003년)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세르쥬 다네 지음, 정락길 옮김, 이모션북스, 2013년)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장 루이 셰페르 지음, 김이석 옮김, 이모션북스, 2020년)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질 들뢰즈 지음, [사유 속의 영화], 이윤영 옮기고 엮음, 문학과지성사, 2011년) [영화 이론 –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토마스 앨새서.말테 하게너 지음, 윤종욱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년) [페미니즘 영화이론](쇼히니 초두리 지음, 노지승 옮김, 앨피, 2012년) [형식들](캐롤라인 레빈 지음, 백준걸.황수경 옮김, 앨피, 2021년) [뉴미디어의 언어](레프 마노비치 지음, 서정신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년)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올해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한 <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August at Akiko’s >(크리스토퍼 마코토 요기, 2018)는 연초에 봤음에도 연말이 된 지금까지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영화다. 하와이 배경의 음악 영화인데, 하와이 출신의 음악 애호가이자 하와이 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인 앤더슨 리가 일찍이 작품을 보고 귀띔해줬던 덕에 미리 로테르담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보기로 자청하고 갔었다. 긴 설명 없이 “작은데 잘 만들었어. 데뷔 장편 영화고. 한 번 봐봐”라던 앤더슨의 말에 믿음이 갔다. 또 그 친구가 추천한 만큼, 화이트워싱 논란을 일으켰던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알로하Aloha>(2015) 같은 영화들과는 달리 하와이의 모습을 좀 더 현실성 있게 그리기도 하겠지 싶었다. 실제로 가보면 관광객을 포함한다 쳐도 하와이에는 백인이 소수라는 느낌이 확연히 들 정도로 아시아 태평양계의 인종이 많다. 토속 하와이인들뿐만 아니라 수 세대 전서부터 하와이에 이민 가서 정착한 아시아계 가족들, 앤더슨네와 같이 좀 더 최근에 들어간 가족들 등등 다양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마코토 요기 감독도 일본계 하와이 출신이다. 증조부모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에서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갔다가 끔찍한 노동 조건과 부당한 계약에 혹사를 당했다고도 한다.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는 도시 소년으로 잘살았지만, 그 전 가족 중에 하와이섬을 야반도주한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자살한 여러 명과 마약 중독과 학대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가족 사이의 소곤거림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아계 가족인 만큼 이런 트라우마의 역사는 드러내놓고 회자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감독은 전 세대들이 고생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덕에 잘 살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얼굴 없는 조상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 예술 MFA를 받고 본토에서 생활하게 된 그는 이런 조상들과 끊긴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1년 넘게 하와이섬에 살면서 영화 준비를 했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한국 영화 관객과의 대화가 많았던 것 같은 로테르담에서 나는 숨이 턱에 걸려 뛰어다니다가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는 상영 당일이 돼서야 관객과 함께 처음 보게 됐다. 관람 전 심기를 잠시 말하자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속된 말로 빡친 상태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부 상피까지, 여러 가지 일을 둘러싼 고질적인 문제들부터 시작해서 그날 영화제 센터에서 꽤 떨어진 극장을 찾아가는데 나타나지도 않아놓고 차비를 청구한 우버 예약 차량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일로 빡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관람을 시작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는 이런 내 안의 모든 불협화음을 더욱더 심하게 진동시키다가 궁극적으로는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좀 상투적인 표현을 쓰자면 <어거스트 앤 아키코즈>는 ‘힐링 영화’다. 음악가 '더티 비치스Dirty Beaches'로도 알려진 알렉스 장 후앙타이가 주연이다. 대만 태생으로 하와이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영화 속에서도 ‘알렉스’라는 이름의 30대 중반 음악가 역이다. 인생의 뭔가 안 좋은 전환점이나 방황기를 맞은 것 같은 모습으로 오랜만에 하와이에 도착해서 할머니 집을 찾아가지만, 당황스럽게 집은 사라졌고 모르는 사람의 새집이 공사 중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전화를 걸어본 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 가족 관계의 근절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사라진 어린 시절 하와이의 모습과의 근절도 느끼는 알렉스는 더욱 방황하는데, 결국 흘러 들어간 곳은 ‘아키코즈 부디스트 베드 앤 브렉퍼스트 (Akiko’s Buddhist Bed and Breakfast)’이다. ‘아키코’라는 일본계 미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 시설로 새벽에는 명상도 하고 낮에는 요가도 하는 곳이다. 푸르른 자연 속에 옛 일본계 농장 가옥들을 개조한 B&B는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개구리들이 밖에서 합창으로 울어대는 곳이기도 하다. 아키코는 항상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열대 꽃을 한쪽에 꽂은 채, 주로 민소매 차림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70대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다소곳한 일본 할머니는 절대 아니다. 거의 락커 할머니 느낌이다. 인생을 좀 사신 분이다. 긴말을 묻지 않고도 알렉스가 방황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름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가이드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호놀룰루 태생의 일본 이주민 3세 아키코 마수다가 영화 속 아키코 역을 맡았다. 배경이 되는 B&B도 실제 그녀의 것이다. 현실과도 매우 비슷한 두 인물의 설정 때문에도 그렇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 두 사람과 많이 협업하고 즉흥 연기도 많이 장려했다고 한다. 알렉스는 자기 안의 갈등과 상실감, 죄책감 등으로 힘들어할 때 색소폰으로 울부짖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키코와 함께 앉아 명상을 하다가 그녀가 해주는 기도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동네 꼬맹이와 놀아 주기도 하고, 공동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자아 밖으로 시선과 성찰을 돌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불협화음과 소음이다. 왠지 일본식 불교 명상과 기도를 할 때면 완벽한 정적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아키코는 인생의 시끄러움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예를 들어 거의 정글 같은 수풀 속의 가족 묘지를 정돈하러 가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사람들과 둘러서서 기도할 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철학으로 알렉스도 불협화음과 갈등 속에서 맑은 색소폰 소리와 마음의 평화를 찾아 나가기도 한다. 영화의 제작비는 $100,000 (원화로 1억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미국 영화치고 초저예산인데, 갖가지 현물 지원과 심지어 밥을 해서 갖다 주는 지역 주민들의 도움까지 있었다고 한다. 예산이 작았음에도 아름다운 전경들과 빛과 소음까지 하와이의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감독과 스태프는 현지 로케이션의 모든 것을 활용한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프로덕션 밸류”는 뒤지지 않는 영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로스앤젤레스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타내기도 했다. (이 작품의 조은수 촬영 감독은 < 해어화 >(박흥식, 2015) 등을 찍기도 한 한국인이다.) 브루클린에 근거지를 둔 ‘팩토리 25’라는 독립 영화 및 음반 제작〮배급사가 내년 3월부터 미국에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를 개봉시킬 예정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제작자들은 아직 해외 배급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새라 킴’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김사화는 “우린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한정적으로라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 영화와 그 속에 담긴 힐링의 메시지들을 최대한 나누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전한다. -에필로그- 워낙 연초에 본 영화라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2018년 11월 도쿄 필멕스 심사위원으로 와서 쟁쟁한 경쟁작 10편을 진하게 보는 와중에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를 다시 보게 됐다. 이날 숙소로 들어오기 전에 본 것은 230분짜리 <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An elephant sitting still >(후 보, 2018)라는 작품이었다. 멀리 만저우리에 있다는 코끼리를 꿈꾸는 네 명의 주인공이 중국의 소도시에서 하루 동안 겪는 일련의 우울하고 화나고 끔찍한 사건․사고들을 따라가는 수작이다. 중국의 현재 자화상을 그렸다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당시부터 찬사를 받은 영화다. 소설가 후 보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서로 ‘하지만 어디 가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해도 인생은 다 이래’ 식의 담담한 대사를 읊기도 하는 영화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이 영화를 완성할 즈음, 후 보 감독이 자살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 그의 웃는 모습이 담긴 추모 사진이 나오는 순간, 우린 방금 어느 한 사람의 성명서를 본 것인가, 삶의 무게와 아픔을 못 이기겠다는 자살 편지를 본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근 4시간 동안 그의 영화와 함께 호흡한 끝에 압도적인 충격과 슬픔이 몰려왔다. 히비야의 밤거리를 헤매다시피 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와이파이가 자꾸 끊기는 일본 부띠끄 호텔 쪼끄만 방구석에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 재관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갈등과 부조화는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의 것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우리에 갇혀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나 혼란스러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이 두 영화에는 사뭇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에 나오는 코끼리의 거친 울부짖음은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에 나오는 알렉스의 색소폰 울부짖음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알렉스의 색소폰 소리는 거친 울부짖음 끝에 차차 맑은 조화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영화를 재관람하면서 다시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웠다. 평소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후 보 감독도 영화를 만들고 나서 아키코즈 부디스트 베드 앤 브렉퍼스트 같은 델 경험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와이의 햇볕과 터프한 할머니의 온기, 다른 곳에 가면 가끔은 기적 같은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더라면 말이다. 중국 영화인들이 대면하고 있는 억압인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상상일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말이다. 애달픈 젊은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와이의 푸르른 숲과 그 속에 있는 민박집에 마주 앉아 눈 감고 명상을 하며, 기도를 하듯 노래도 하고, 색소폰도 불고, 눈물도 흘리는 두 사람 알렉스와 아키코를 생각하며 동경에서의 새벽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