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튼
- 감독
- 김병우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이진석, 김보영, 이상혁, 박진수, 김영환, 함정이, 김무신, 김병산
최근 선댄스영화제가 발굴한 재주꾼 중 한 명은 알폰소 고메즈-레존이다. 두 번째 장편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로 2015년 선댄스 드라마 부문의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던 그는 NYU(뉴욕대)와 AFI(미국영화협회)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1990년대 초부터 영화 현장에 뛰어들었다. 세컨드 유니트 디렉터로, 혹은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로, 아니면 연출부의 일원으로 그가 ‘모셨던’ 감독들의 명단은, 혹시 이 사람에게 수집벽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히 쟁쟁하다. 마틴 스코시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노라 에프런, 시드니 루멧, 마이클 만…. 최근엔 벤 애플렉 감독의 < 아르고 >(2012) 세컨드 유닛을 이끌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였다, 시작은 TV 시리즈였고 < 글리 >(2009~15)나 <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2011~ ) 등에 참여했다. 2014년엔 드디어 첫 장편영화 <일몰이 두려운 마을 The Town That Dreaded Sundown>을 내놓는다. 전형적인 슬래셔 호러 장르에 나름의 스타일과 플롯 비틀기를 가미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서 그는 환골탈태한다. 제시 앤드류스의 첫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장르적 전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과 비주얼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일몰이 두려운 마을>과 유사한 방식의 시도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깊이와 캐릭터의 매력은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 틴에이저 장르 안에서 이토록 유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작은 기적이다. 제목이 말하듯 이 영화는 ‘나’인 그렉(토머스 만)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하이스쿨 졸업반이 된 그렉. 그는 8년째 투명인간처럼 학교 생활을 해온, 거의 모든 성향의 집단들과 어울릴 수 있는, 좋게 말하면 친화력 좋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색깔 없는 ‘왕따’나 마찬가지인 십대다. 유일한 친구는 얼(알제이 사일러)이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어울린 둘의 공통점은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들은 단순한 마니아를 넘어, 영화사를 아로새긴 걸작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리메이크(라기보다는 패러디)한다. 역사 교사 매커시(존 번탈)의 방에서 빈둥대거나 영화 찍는 것 말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하지만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올리비아 쿡)과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할리우드 틴에이저 무비는 겉으로는 얄팍해 보이지만 의외로 성찰적인 장르다. 십 대들의 불안한 삶은 지향점을 알 수 없는 저항으로 치닫고,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에 빠지고, 세상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때론 힘겨운 운명의 짐을 지기도 한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친구, 연인, 교사, 부모 등의 한정된 캐릭터로 이뤄지지만, 이 제약적인 토대 위에서도 틴에이저 무비는 매우 풍성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도 마찬가지다. 전반부가 제법 발랄한 톤의 루저 코미디를 통해 십 대들의 냉소적 불안감을 담아낸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어른스럽고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와 엔딩에 가면, ‘쿨’하게 시작해 점점 온도를 올렸던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이런 드라마의 힘은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과 ‘나’ 그렉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하이스쿨 시절을 마감하고 대학으로 가는 관문인 졸업반 시기. 레이첼은 백혈병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렉은 그 어떤 꿈도 없다. 같은 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불운한 우정’이 시작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레이첼의 백혈병이다. 그렉은 “가서 친구가 되어 주라”는 엄마(코니 브리튼)의 말에 못 이겨 레이첼의 집에 갔고, 어색하게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어느덧 졸업반 내내 이어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렉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고, 레이첼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더욱 절박한 상황에 처한 레이첼이 그렉의 삶을 채찍질하고 이끈다는 점이다. 레이첼은 그렉 대신 대학 입학처에 편지를 보내고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그렉은 오히려 레이첼의 호의와 헌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그렉은 조금씩 껍질을 깨나가며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이러한 성장 영화의 측면이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의 진지한 얼굴이라면, ‘나’ 그렉과 ‘친구’ 얼이 만들어낸 수많은 영화들의 목록은 시네필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영화엔 수많은 영화들이 언급된다. 그렉과 얼은 역사 선생 방에서 컴퓨터로 베르너 헤어조크의 < 피츠카랄도 >(1982)에 대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 버든 오브 드림스 >(1982)를 본다. 그렉의 아버지(닉 오퍼맨)도 헤어조크의 팬으로 < 아귀레 신의 분노 >(1982)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렉의 방엔 프랑소와 트뤼포의 < 400번의 구타 >(1959)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그는 실의에 빠졌을 때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렉이 얼과 함께 만드는 영화들의 제목들 역시 가관이다. 잉마르 베리만의 <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에서 모티브를 얻은 <일곱 마리 물개 The Seven Seals>에선 기사와 죽음의 사자가 황당한 체스를 둔다(‘seal’엔 봉인과 물개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마이클 파웰의 ‘엿보기’에 대한 범죄 영화 < 저주의 카메라 Peeping Tom >(1960)는 <똥싸는 톰 Pooping Tom>으로 바뀌었는데, 주인공은 뚫어뻥의 공격을 받는다. 이외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가 <양말장치 오렌지 A Sockwork Orange>가 되고, 데이비드 린치의 <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이 <원숭이 맥주 Brew Vervet>가 되고, 루키노 비스콘티의 <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 >(1971)이 <테니스장에서의 죽음 Death in Tennis>이 된다. 과거 8mm 시대 영화광을 연상시키는 그렉과 얼의 이러한 ‘영화 장난’들은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 독특한 결을 부여한다. 전작인 <일몰이 두려운 마을>에서도 ‘영화 속 영화’의 컨셉트로 연쇄살인극을 구성했던 고메즈-레존 감독은 두 번째 영화에선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영화 유희적 본성을 드러내며, 그 기발함과 유머는 자칫하면 느슨해질 수 있는 루저 스타일 틴에이저 무비를 활기 찬 소동극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영화 만들기’라는 행위는 결코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 순간을 위한 토대가 된다. 그렉과 얼은 태어나 처음으로, 기존에 있는 영화를 비트는 것이 아닌 순수한 창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바로 레이첼을 위한 영화다. 그러나 ‘진짜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야심은 곧 난항을 겪고, 결국 얼이 그만 둔 상태에서 그렉 혼자 영화를 완성한다. 병원에 있는 레이첼과 그렉이 그 영화를 함께 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여기서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장면이 환기시키는 감정의 진폭은 상상 이상이다.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는 현재 할리우드 틴에이저 장르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이며 자유로운 작품이다. 관객과 대화하듯 진행되는 내레이션, 별나면서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 묵직한 드라마와 코미디를 자연스레 결합하는 솜씨 등 이 영화는 많은 영화적 미덕을 지녔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느새 ‘삶과 죽음’에 대해, 아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묻는다. 피상적으로 “우리에겐 꿈과 희망이 있잖아?”라며 대충 얼버무리며 끝나는 청춘 영화와 비교하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사족 하나. 이 영화의 위트 넘치는 카메라 워크가 궁금해 크레디트를 유심히 살펴봤다면, 우린 의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Cinematography by Chung-hoon Chung’. 맞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바로 한국의 정정훈이다. 박찬욱 감독과 < 올드보이 >(2003)부터 호흡을 맞추었고, < 스토커 >(2013)로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미국에서 솜씨를 인정받았고,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인 < 블러바드 >(2014)에서 우울하고 정적인 촬영을 선보이더니 세 번째 할리우드 영화 <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에선 마치 날개를 단 듯 역동적이며 재미있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가 만들어낸 비주얼들 역시, 이 영화를 꼭 ‘봐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2월 29일 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된 신예 브리 라슨. 이전까지는 레이더망에 포착된 적이 없는 배우다. 그간 배우로 또 가수로 20여 년간 연예계 경력을 쌓아 왔다고 하지만, 그녀를 수상작인 < 룸 >과 연결해 줄 단서는 단 하나였다. 바로 <룸>을 연출한 레니 에이버러햄슨 감독이 인터뷰마다 언급한, 그녀의 전작 < 숏 텀 12 >(2013) 였다. 에이버러햄슨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17살에 납치되어 무려 7년간 창고에 갇힌 채 성폭행당하고 출산을 하고, 그 아이를 키우며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한 <룸>의 주인공 조이의 인생 역정을 연기할 배우로 브리 라슨을 점찍었다고 했다. 브리 라슨의 이전 필모그래피와 별다른 접점이 없는 진지한 드라마.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작년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상영관이 거의 없었고, IPTV로 거의 직행하다시피 했으니 이 시점에서 다시 끄집어낼 이유가 충분히 더해졌다. < 숏 텀 12 >의 제목인 ‘short term 12’는 청소년 보호소를 뜻한다. 부모로부터 성적 학대나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집단 보호소다. ‘단기(short term)’라는 말을 아예 명명하고 있는 만큼, 이곳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 같은 건 없다. 그저 단순히, 보호 기간 만큼은 별 탈 없이 지내다 나가면, 기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는 끝나는 셈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어린 영혼들은 날이 서 있고 제멋대로이며, 어른에게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과 직접 매일매일 대면하는 이들이 바로 숏텀 12의 관리직원이며, 그레이스(브리 라슨)는 그 직원들 중 한 명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영화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핸드헬드 화면을 고수한다. 시시때때로 탈출을 시도하는 소년 새미. 18살이 되어 곧 시설을 떠나야 하는 마커스 같은 보호소 아이들은 이 ‘건조한’ 화면 속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던져진다. 그레이스 역시 소란을 일으킨 아이에게 “넌 한 단계 강등이야, 방으로 가!”라며 냉정하게 벌칙을 준다거나, 아이들 몰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감시자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부모도 상담사도 아닌’ 안전한 보호자로서 기능하던 그녀가 이 적정선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는 건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이곳에 오게 된 15살 소녀 제이든(케이틀린 디버)과의 만남 이후다. (같은 관리직원으로 일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막 임신을 한 그레이스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같은 고통을 당해 아이를 낙태한 경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그레이스에게 제이든은 더 이상 보호소의 아이가 아닌, 자신처럼 아프게 성장하지 않길 바라는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 된다. 제이든(케이틀린 디버) < 숏 텀 12 >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관리자이기에 앞서 피해자였던 한 여성이 이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면서 일종의 장르 영화로서의 구조가 확립된다는 점이다. 원장의 말처럼 관리직에게 “눈물 해석은 필요 없”으며, “성범죄자 부모를 (그들이 책임지고) 모두 고발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게 거의 자신이 겪었던 일과 유사하며 그 때문에 지금도 자신의 행복이 위협당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시 ‘끌려간’ 소녀를 위해 밤늦게 야구방망이를 들고 가택침입을 해서라도 보호해 줄 강인한 히로인으로 자처하기 시작한다. 요양원에 갇힌 수잔나(위노나 라이더)를 용감하게 이끌던 < 처음 만나는 자유 >(1999)의 카리스마 넘치던 리사(안젤리나 졸리)나, 더 나아가 연약한 여성 델마(지나 데이비스)를 보호해주는 < 델마와 루이스 >(1991)의 터프한 루이즈(수잔 서랜든)같은 여성들을 연상해 주게 해주는 장치다. 바로 미셸 파이퍼가 골칫거리 반항아들을 도맡고 소통하게 되는 < 위험한 아이들 >(1985) 같은 구조와 이 영화가 확연히 달라지는, 여성의 소통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지점이다. 다시 브리 라슨의 이야기를 꺼낼 시점이다. 이 아슬아슬한 지켜보기에 긴장을 더하는 건 그레이스를 연기하는 브리 라슨의 연기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호흡을 같이 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움직임과 달리, 유독 그레이스의 움직임은 고정되어 있다. 그들을 붙잡아 두려는 냉정한 시선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 룸 >에서 납치, 감금이라는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이기에 앞서, 비극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를 다그쳐 탈출을 꾀하는 엄마가 취한 그 차갑고 냉정한 그 시선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쁘다는 수식어보다는, 강한 인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진 그녀는 과장되게 꾸미지 않았지만, 잊기 어려운 강렬함을 내뿜으며 시종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많은 관객에게 소개되지 않았던 인디영화지만 < 숏 텀 12 >를 통해 브리 라슨의 연기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었다.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B급 코믹물이나 하이틴물에서 고만고만한 연기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브리 라슨을 극적으로 탈출시킨 셈이니 그 공로가 크다. < 숀 텀 12 > 장편(좌측), 단편 포스터 < 숏 텀 12 >는 원래 21분짜리 동명의 단편(2008)를 발전시켜 만든 작품이다.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 작품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다시 장편으로 제작됐다. 단편에 출연했던 배우 중 단 한 명의 배우(랩을 즐겨하는 마커스 역의 키스 스탠필드)만이 다시 장편에 출연한다. 다큐멘터리적인 지점과 장르적인 스토리라인이 혼재되어 결론에 감정이 좀 과하게 이입되며, 영화가 조금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지만 장점은 뚜렷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는 감독이 단편에서 장편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발전시킨 견지해 온 대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잘 드러난다. 숏텀 12에서는 방문을 걸어 잠글 수 없는데, 자칫 아이들이 격해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방문이 ‘오픈’되어 있는 것과 달리, 아이들의 마음은 굳건히 닫혀있다. 영화는 아이들이 그 닫힌 문을 조금씩 여는 작업을 지켜보는데, 그 과정의 묘사의 온도가 따뜻하다. 랩을 좋아하는 흑인 소년은 랩으로 버림받은 자신의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해 내는데, 관리직원들도 그런 그의 재능을 북돋아 준다. 떨어진 형제들과 가지고 놀던 낡은 인형을 빼앗긴 아이에게 다시 그 인형을 찾아다 되돌려 주는 관리직원의 마음 씀씀이도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장치다. 그림과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제이든은 친구가 된 상어의 요구로 발을 하나씩 떼어줘 잡아먹힌 문어의 이야기로 자신의 다친 심경을 표현해 낸다. 첫 장면, 보호소를 탈출하던 아이로 시작된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대구법처럼 또다시 탈출을 감행하는 아이와 이를 잡으려는 관리직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건조한 단기 청소년 보호소에 작은 희망의 기운이 느껴진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