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보이 12725
- 감독
- 김지곤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형률, 김봉대
<소년> 중 (사진: " 소년 ", 전주국제영화제 / © James Benning)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조립식 미니어처 완구에 민트색 페인트를 칠한다. 노스롭 그러먼(Northrop Grumman),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 등 완성된 미니어처 외벽의 간판에는 미국의 글로벌 방위 산업체 이름들이 새겨진다. 그 위로 학교에서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년의 읊조림이 얹힌다. “전쟁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배웠어/ 우리가 겪었던 위대한 전쟁들에 대해 배웠어/ 독일과 프랑스에서 싸웠지/ 언젠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야.” 1964년 발표된 피트 시거(Pete Seeger)의 저항적인 포크 송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요?(What Did You Learn At School Today)’는 미니어처 모델의 양식화된 조립 과정과 기이한 대조를 이룬다. 정글의 소리와 멸종된 짐승의 포효가 곁들여진 공룡 뼈의 모형으로 열리는 영화 < 소년 >(2025)은 제임스 베닝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문 시도로, 의뭉스러운 도입 직후 작가 특유의 엄격한 패턴을 제시한다. 베닝이 묘사하는 것은 실재적인 세계 이미지가 아니다. 베닝은 풍경을 포기하고, 텅 빈 블랙박스를 배경으로 구조물을 만들고 라디오를 듣는 소년의 관점을 취한다. 시간을 횡단하는 이 가상의 소년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잘못되어가고 있으며, 무언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구조는 명확하다. 플롯은 8개의 분절로 구성되는데, 각 파트는 미니어쳐 모형을 조립하는 손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가는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샤이렐스(Shirelles),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냇 킹 콜(Nat King Cole) 등의 노래, 그 뒤를 이어 완성된 모형을 배경으로 하여 1961년부터 2016년까지의 미국 현대사에서 분기점을 형성한 정치적 연설을 병치한다. 이미지는 순수한 유희처럼 보이지만, 사운드는 군산 복합 비즈니스를 위한 폭력과 전쟁의 연대기를 재생한다. 냉전의 종식과 평화를 외치는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인종 분리를 주장했던 백인 정치인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 흑인들의 힘에 대해 역설하는 인권운동가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이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노동운동가 세사르 차베즈(César Chávez), 이란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을 인정하는 보수의 상징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기후 위기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환경운동가 세번 컬리스-스즈키(Severn Cullis-Suzuki), 미군의 지속적인 이라크 주둔을 옹호하는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핵무장 종식을 촉구하는 반핵운동가 헬렌 칼디콧(Helen Caldicott)의 연설과 군산복합체의 성채는 아이러니하게 충돌한다. 시대의 아젠다를 초점으로 한 연설의 선집은 인종 분리와 시민권, 이주 노동자 착취, 중동 위기, 복지와 환경 문제, 전후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연대기 순으로 망라하면서 권력과 자본 또는 둘 다에 대한 욕망의 결과를 보여준다. 노래가 연설에 응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아니면 모두가 풍자와 야유의 찬양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임스 베닝의 작품은 역사의 무게와 집단 기억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끊임없이 탐구해 왔지만 이번에는 사뭇 노골적인 어조와 직설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임스 베닝의 영화를 정의해 온 사색적 무드를 탈피한 생동감이다. 언제나처럼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유머를 가미한 표현 요소들, 예컨대 붓질을 하는 손동작, 리드미컬한 음악, 그리고 풍부한 질감의 연설 대사 때문에 활력이 넘친다. 이미지, 소리, 단어의 조합은 언뜻 보기에는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호한 통일감을 전달한다. 한편으로 지난 10년간 베닝의 작업들처럼, 구조나 내용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디테일에 대한 궁금증도 피어난다. <소년>의 경우, 설정을 알아차리고, 패턴에 대해 상상한 뒤, 곧바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니어처 모형에 색칠을 하는 손은 같은 사람의 것일까? 저들은 평소에도 모형을 조립하고 색을 칠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장면을 위해 고용된 배우들인가? 정치 연설과 ‘손’의 소재(所在), 정체성은 관련이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게임을 통해 하나의 모델-패턴을 제시하고 노래와 연설이라는 발화 형식의 의도적인 병치를 창조하여 ‘청취’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엄격한 구성, 역사와 기억을 유희하는 개념적 구조로 관객의 인식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권력과 파시즘의 은유이자 현재에 재건되고 있는 과거의 망령들을 형상화함으로써 예술과 정치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것이다. <소년> 중 (사진: " 소년 ", 전주국제영화제 / © James Benning) 베닝은 <소년>을 “수십 년 동안의 일기를 읽으며 만든, 친밀하고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하지만 영화는 사적인 노스탤지어를 넘어서며, 꼰대의 한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감정도 초월한다. 베닝이 제시하는 8개의 스토리는 군국주의의 포괄적인 역사를 회고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엿보기와 수사적 장식을 제공하는데, 이와 같은 병치의 전략은 계보학의 차원을 서사에 부여한다. 베닝은 과거의 렌즈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6천5백만 년 전 공룡을 사라지게 하는 대절멸의 도래, 뼈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다음에 소멸할 종(種)은 인류가 될 것, 이라고 경고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과 그들의 위협받는 미래에 대한 근심을 담은 이 영화는 말과 행위의 불일치가 초래할 것들에 대한 전망도 보여준다. 투쟁과 몰락, 재건에 익숙해진 것처럼 계속해서 모형을 칠하고 조립하는 손들의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파괴적이다. 마지막에 베닝은 군산 복합 비즈니스의 최종 장을 화면 중앙에 배치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원자 폭탄 ‘리틀 보이’의 모형은 소문자 영어 제목(<little boy>)에 담긴 ‘소년’의 순수성을 폭파한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새기는 소년의 사색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진보와 그 대가, 역사의 폐쇄적 순환 궤도에 대해 성찰하는 <소년>은 인류의 서사가 주요 사건뿐 아니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결정들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시청각 요소들의 조합은 일관된 패턴을 따르고 베닝의 전작들에 비해 해석의 어려움이 덜 하지만, 이 영화의 시청각 은유는 개별 요소들의 총합을 능가한다. 상징적인 연설과 정적인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베닝은 시적인 환기와 정치적 명제 사이를 왕래한다. 스토클리 카마이클의 시민권 연설이나 헬렌 칼디콧의 핵에 대한 경고처럼, 언어의 힘이 이미지를 이기는 순간들은 깊은 영감을 준다. (상) <엘.코헨>(2018), <알렌스워스>(2022) (사진: " L. COHEN ", " ALLENSWORTH ", VIENNALE) (하) <미국>(2022), <브레스리스>(2023) (사진: "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 " BREATHLESS ", RÉEL Archives) 제임스 베닝이 지속적으로 헌신해 왔던 ‘풍경’에 관한 에세이로 영화를 읽을 수도 있다. <소년>에는 두 가지 경관 양식이 작동한다. 먼저 파랑, 노랑, 갈색 등의 채색으로 지속하여 변동하는 경관이다. 두 번째는 완성된 미니어처 모형을 길게 비추는 타블로 쇼트가 자아내는 인상으로 여기서 연설은 일종의 음성 해설처럼 기능한다. 환경음과 음악의 지배를 받는 베닝의 영화들(< 엘.코헨 >, <알렌스워스>, <미국>, < 브레스리스 >)처럼 <소년>은 역사적 풍경에 대한 인내심 있는 응시가 된다. <미국>(2022)은 <소년>과 매우 유사한 도식을 구현한 영화이다. 같은 길이의 정지 이미지 50장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이미지 앞에는 검은 무지의 배경에 미국의 50주를 나타내는 캡션이 붙는다. <미국>은 베닝의 다큐멘터리 실천이 세상을 향한 창, 즉 화면 속 현실을 재구성하려 하지 않고 관객에게 경험을 창조하고 전달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소년>은 <미국>의 전략을 확장한다. 정지 카메라로 촬영한 롱 쇼트, 역동적인 요소들이 섞인 정적인 피사체를 포착하는 베닝의 스타일 서명은 <소년>에서 개별 쇼트의 구성과 프레임 안에서 단조로운 요소들의 기하학적 배치로 대체된다. 대중음악과 정치 연설이 어우러진 미국의 작은 풍경들을 기록하는 단조로운 타블로를 통해 베닝은 미국 역사의 토대를 재구성하기 위한 풍경화를 제시한 것이다. 역사를 미니어처로 관람하는 <소년>의 시청 경험은 시간의 지속과 인내를 요구한다. 베닝은 언제나처럼 우리들이 개념적 퍼즐을 조립하도록 내버려두고, 조립을 위한 부품들만을 제공한다. 그가 모델을 구축했듯이 관객은 부품들을 조립해야 한다. 국방비 지출, 인종 정치, 노동운동, 핵전쟁, 기후 위기에 대한 사전 지식과 선입견, 그리고 음악적 취향에 따라 <소년>은 베닝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자, 그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l 영화주간지 《필름 2.0》 편집장,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글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5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 피부색깔=꿀색 >이 개봉했다. 벨기에 입양아인 감독, 융 헤넨(한국명 전정식)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자그레브, 안시, 아니마문디 등의 애니메이션페스티벌뿐 아니라 몬트리올 국제어린이영화제, 토리노영화제 등 전 세계 80개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23개의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2013년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택했고 만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으며 버려짐, 아시아 등을 다뤄왔다. < 피부색깔=꿀색 >의 동명 원작만화의 출판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이의 영상화는 더 많은 관객들과의 소통 기회를 마련했다. 융은 부모와 형제들과 다른 피부색을 지닌 이방인이었고 부모의 관심을 잃고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까 두려운 소년이었다. 책이 날카롭게 때로는 유머를 담아 솔직담백하게 꿀색 피부를 지닌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고 있다면 영상은 다소 다른 느낌을 전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융의 실제 모습과 입양 후 유년시절의 기억을 오가며 그의 방황과 고민을 그려내지만 그 어조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융의 등장은 애니메이션으로는 담보할 수 없는 사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또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으로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해내고 있다. < 피부색깔=꿀색 >은 허구를 다루는 애니메이션과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극과 극에 위치한 장르 간의 만남이 의외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두 장르 간의 교차가 주는 강력한 힘은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 랜드레스 감독의 < 라이언 >은 1960년대 촉망받던 천재 애니메이터로 <워킹>이란 단편으로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라이언 라킨의 삶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예전의 빛나던 재능은 사라진 채 몬트리올 시내에서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는 라이언 라킨은 작품 속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감독과 그의 실제 인터뷰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 그들의 캐릭터들을 통해 전달된다.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얼굴의 유실이나 훼손으로 겉으로 드러나고 감정적인 동요는 촉수나 머리카락의 움직임으로 극적으로 표현된다. 자신과 주변인의 목소리를 통해 회상되는 라이언의 삶은 독창적인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실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때문에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하이로 에두아르도 카릴로, 오스카 앤드레이드 감독의 <리틀 보이스>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인해 불안 속에 떨고 있는 콜롬비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작품은 이들의 인터뷰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세상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전은 이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복면을 한 사나이들에게 아빠가 끌려가고, 군인들의 유혹에 아이들까지 총을 들게 되며, 마을은 전투로 인해 쑥대밭이 된다.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눈과 음성으로 묘사되는 내전의 모습은 피와 총탄이 난무하지도 않고 반군과 군인들이 위압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이와 전쟁이라는 대비되는 소재의 충돌은 오히려 아이들이 느끼는 슬픔과 공포의 울림을 더욱 크게 해주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어른들에게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어떤 상상이든 그려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픽션을 다루기에 최적화된 수단 중 하나일지 모른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최고의 조합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의 행간 사이나 그 너머에 숨죽이고 있는 이야기들은 애니메이션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올 수 있으며 애니메이션은 사실과 만남으로써 허구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다양한 방식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올 한해 동안 국내에서 개최된 여러 영화제를 통해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두드러진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다. 즉, 창작자가 허구를 실제처럼 구성하여 이야기를 표현하는 극영화(Fiction film)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허구가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나 인물을 직접 시각화 하면서 주제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로서의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먼저 4월에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최근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이였다>(감독: 앤 마리 플레밍), <사랑하는 이들>(감독: 사만다 무어) <100개의 다른 코>(감독: 안드레아 도르프만), <예술가와의 인터뷰>(감독: 쉬라 아브니), < 템비의 일기 >(감독: 김지수 ) 등 다수의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특별전을 통해 소개했다. 이들 영화들은 에이즈와 여성의 문제, 신체적 결함과 성형 혹은 예술, 이혼과 이주, 정치적 망명, 전쟁과 아동, 고문의 피해 등과 같은 현실 속의 문제들을 사적(私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에 사용된 각종 애니메이션 기법들은 사실의 단순한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진실’ 속으로 들어가서 이를 새롭게 시각화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5월에 개최된 서울환경영화제는 지난해 제63회 칸영화제에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울부짖는 섬 Barking Island>(감독: 세르쥬 아베디키안)을 상영하면서 감독과 함께 특별한 대화시간을 마련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와 디아스포라(Diaspora 집단이산 혹은 집단이주)로 인한 아픈 역사를 경험한 세대의 아르메니아인을 부모로 두고 있는 감독은 20세기 초반 터키 이스탄블 앞바다의 작은 섬에 강제로 버려진 채 갈증과 굶주림으로 비참하게 죽어간 3만여 마리의 유기견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독특한 ‘움직이는 회화’ 기법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세르쥬 아베디키안 감독이 애니메이션 <울부짖는 섬>을 통해 그려낸 역사적 사건은 제노사이드와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겪은 자신의 ‘조국’ 아르메니아에 대한 메타포이자, 국가권력의 부당한 횡포와 범죄 그리고 은폐와 망각의 역사에 경종을 울리는 정치적 우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연극연출가이자 영화배우이기도 한 세르주 아베디키안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자신의 다른 단편영화 특별상영과 함께 마스터클래스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레니나칸의 대지진을 기록한 그의 또 다른 실험적인 단편 다큐멘터리 <영원한 빛>은 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 가운데 하나로 상영되기도 했다. 콜럼비아 내전 속에서 혼돈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리틀 보이스 Little Voices>(감독: 오스카르 안드라데, 하이로 카리요)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동시에 상영되었다. 특히 <리틀 보이스>는 전쟁의 비극을 겪은 네 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직접 3D 그래픽 속의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고, 나레이션 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가 영화에 직접 사용되어 전쟁의 끔찍한 상황과 순수한 아이들의 희망과 동심을 역설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일반적인 기록영상이나 픽션영화와는 또 다른 진실과 감동을 제시한다. 또한 EBS국제다큐영화제는 2009년 이란 대통령 선거 시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거세게 타올랐던 ‘녹색혁명’의 현장을 담은 <그린 웨이브 The Green Wave>(감독: 알리 사마디 아하디>를 소개했는데,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기법 이외에도 블로그, 트위터, 휴대폰 촬영영상, 디지털 카메라 등 미디어 혁명을 반영한 다양한 클립들로 영화를 구성하여 민주주의를 향해 거리로 나섰던 이란 민중들의 투쟁을 역동적으로 포착하였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와이드앵글 부문을 통해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 나의 저승길 이야기 Crulic - The Path to Beyond>(감독: 안카 다미안)를 선보였다. 루마니아 국립영화연극예술대학 교수이기도 한 여성 감독 안카 다미안은 절도죄에 대한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며 폴란드 감옥에서 장기간 단식 투쟁을 벌이다 33세의 나이에 사망한 루마니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클라우디우 크룰릭의 실제 이야기를 주인공 1인칭 화법의 나레이션과 함께 포토 꼴라주, 수채화, 오일 페인팅, 오브제, 모션 그래픽, 스톱 모션, 컷-아웃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인상적으로 시각화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는 서로 화합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현실의 단순한 기록이나 재현이 아니라, 사유의 확장과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은 보다 폭넓게 다가온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지나치게 다큐멘터리를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은 곧 ‘픽션과 판타지’라는 편향과 오해가 오랫동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실 영화 창작자에게 현실 혹은 실제는 영화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도착점이며, 그 여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들은 바로 진실의 문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