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리틀포레스트는
- 감독
- 김경은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김열자, 김경은
작년, 임순례 감독의 < 리틀 포레스트 >(2018)는 150만 명의 관객들을 동원하며 잔잔한 힐링 영화라는 장르 중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피할 수 없는 꼬리표가 있었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농촌의 낭만화”, 영화 이전부터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시골 농촌이라는 배경에 대한 논란이었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현실에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그 비판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번 비평은 그 비판 때문에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영화에 대한 변호이다. 영화는 밝고, 따스하고, 반짝거린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밝은 색감을 고수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농촌에 대한 무조건적인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혹은 그를 통해 귀농을 장려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임순례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 영화는 하나의 주장을 하는 대신 ‘힐링’을 관객들에게 선물해주고자 하는 영화이다.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발견해내거나, 그런 사회를 거세게 비판하기보다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마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영화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인공인 혜원을 통해서 스크린에 등장한다. 영화 초반, 혜원의 도시 생활은 관객 대부분이 겪는 사회 현실과 다를 게 없다. 현대 한국 사회 속 개인은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그 선택 또한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선택의 자유에 대한 조건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정적인 선택지를 고르고, 혜원도 마찬가지로 임용고시라는 선택지를 고른다. 혜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빠르게 지나가는 노량진 장면은 그녀가 안정적인 삶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상징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혜원은 허겁지겁 삼각 김밥을 먹고, 노량진에선 제대로 앉지도 않고 서서 컵밥을 먹는다. 치열한 경쟁 속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먹지 않는 식사는 경쟁에 초조한 현대인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도시에서의 속도는 불안만큼 빠르다. 그러나 혜원의 노력은 통하지 않았고, 애인이었던 ‘훈’은 결국 합격했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혜원은 그와 비교됨과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공부를 했다면, 조금 더 빨랐다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도시는 그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빠르게 먹어치운 식사는 빨리 사라진다. 혜원이 느끼는 허기는 열심히 노력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생기는 간극이다. 같은 시대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관객들 또한 갖는 이 허기를, 영화는 혜원을 통해 해소 시켜준다. 혜원의 고향인 미성리는 도시와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이 공간은 거리라는 문제 때문에 물건 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이 공간은 ‘자급자족’을 바탕으로, 영화의 속도를 조정한다. 영화 속 “최고의 요리는 자신이 직접 해먹는 요리”라는 말처럼, 직접 만들어서 먹는 요리는 느리지만,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허기를 완벽하게 채워준다. 영화 속 혜원은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사는 혼자 할 수 없는 일로, 고모와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수확한 쌀, 팥, 채소 등의 먹을거리는 다시 요리로 나눠 먹게 된다. 도시가 무한 경쟁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공간이라면, 자연의 공간인 미성리는 협력과 나눔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갑작스러운 태풍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되었어도,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혜원은 다시 일할 뿐이다. 이때 혜원은 투덜거리며 일을 하는데, 초반 도시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몰아세우던 모습과는 다시 상반된다. 모든 걸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혜원은 자신을 떠난 엄마라는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저 ‘자연히’ 일어난 일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 영화의 ‘힐링’은 이에 밑바탕을 둔다. 지금 답을 찾지 못해도 잘못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답을 찾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답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는 힐링이 어렵지 않았던 것처럼, 감독은 그 메시지도 쉽게 전하려 한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영화처럼 어렵게 삶을 성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화 속 혜원과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책임감을 덜어내고 잠시라도 편하게 지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각종 화려한 편집 방법으로 전해진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기 때문에, 감독은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끔 스크린에 보이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작업, ‘개인에게서 책임감을 덜어내는 것’은 도시와 미성리라는 공간의 색감차이로 시각화한다. 혜원이 도시에 있을 때 살았던 방은 밤이라 어둡기도 하지만, 형광등 불빛, 냉장고 안에서 나오는 인위적 불빛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칙칙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공간 속에 놓인 인물은 ‘좋아했던 남자친구와의 경쟁에서 졌다는 사실’만큼이나 어두워 보인다. 그러나 미성리에서의 혜원은 창과 문이 많은 공간에 있다. 언제든 자연광이 바깥에서 안을 비출 수 있고, 안에서 혜원이 불을 뗄 수도 있다. 창문을 통한 햇빛이나 난로 불이 비추는 혜원은 따뜻하고 깨끗해 보인다. 도시의 인공적 불빛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간 혜원은 자신을 짓누르던 책임감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힐링의 두 번째 요소는 ‘함께’이다. 영화는 인물에 대해 클로즈업을 최소화하고, 등장인물들이 늘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도록 구도를 잡는데, 이 구도는 인물들이 더욱 더 가까워보이게 한다. 이러한 구도가 잘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로, 혜원, 재하, 은숙, 셋이 함께 막걸리를 먹는 장면에서도 처음엔 막걸리 잔에 초점을 맞춘 카메라는 앉아있는 옆모습이 모두 보일 때까지 줌아웃한다. 카메라와 거리가 멀어지면서 셋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보이게 되고, 덕분에 ‘함께’라는 요소를 더욱 부각시킨다. 롱쇼트는 ‘함께’라는 가치를 나타낼 때에도 쓰이지만, ‘자연스러움’이라는 가치를 나타낼 때에도 쓰인다. 혜원이 농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야외의 ‘자연적인’ 공간에 놓이는 장면마다 카메라는 그녀와 거리를 더 벌린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봄과 가을의 장면에서는 혜원의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익스트림 롱쇼트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이런 구도는 인간이란 존재가 자연에 비해 너무나 사소하고 작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 같다. 그러나 자연은 혜원을 억압하고 있기 보다는 그녀와 함께 장면을 완성해주는 역할을 하고, 혜원은 자연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이는 계절의 순환성이라는 자연의 특성과 다시 한 번 연결된다. 자연의 연결점들 속 혜원은 점차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아주 특별한 영화는 아니다. 영상, 인물, 주제의식 어떤 면에서도 영화는 평범하고, 그러나 평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객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었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힐링 때문에 농촌이 너무 낭만화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영화가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작은 숲’은 혜원의 공간일 뿐, 관객들이 가질 힐링의 공간은 그 어떤 곳, 도시 깊숙한 안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저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찾기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영화를 조금 더 편하게 보는 관객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흥행이었다. 올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 리틀 포레스트 >의 흥행은 극장가에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남성중심의 장르영화가 각광받는 분위기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적은 제작비에, 김태리 가 첫주연을 맡은 작품.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로 돌아와 꾸려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전부다 보니 스토리라인도 단조로웠다. 임순례 감독이 < 제보자 >(2014)의 흥행에 실패한 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이니 전작의 흥행이라는 수식어도 없는, 소위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총알이 부족한’ 영화였다. 개봉 2주차 흥행 역주행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앞서 열거한 모든 흥행 약점들은 <리틀 포레스트>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왔고 극장가 비수기임에도 영화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흥행 반열에 올랐다. 관객들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극장가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에 환호했고, 소소한 이야기로 자극적인 설정의 장르영화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은 더 이상 남성 캐릭터의 등장과 자극적인 설정, 높은 예산의 영화만 흥행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변명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선례를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1996년 장편 < 세친구 >로 데뷔, 올해 22년. 임순례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세상밖으로> 스크립터 시절 이경영, 문성근, 여균동과 숲세권, 슬로우 푸드, 소확행 등의 가치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 일본 원작이 있지만, 혜원의 시골생활은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층의 사고를 여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 2018년의 ‘트렌드’를 담아낸 영화 같지만, 이 이야기가 탄탄하게 힘을 받은데는 임순례 감독이 지난 영화들을 통해 보여준 지향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경쟁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이 사회의 약자를 향한 마음, 근 10년 간 지속해 온 유기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여성영화인 모임의 활동에서 이어진 끈으로 현재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함께 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 일하며 여성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철학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로 또 한 번 임순례 감독의 건재함을 입증한 현재,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임순례 감독의 시간들을 살펴보려한다. 임순례 감독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건 ‘한국에서 그 시절, 여성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도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차기작을 내놓고 호평 받는가’에 대한 답변과도 같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처음 영화계에 뜻을 품고 입문하기까지 90년대 초반의 상황으로 볼때 감독 데뷔까지는 쉽지 않은 굴곡이 있었다. 감독들의 데뷔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데뷔의 순간』(주성철 저)에 보면 “여자라서” 영화감독이 되는 걸 불가능해 보인다는 시선에 처음엔 꿈을 접고 처음엔 영문학과를 택하기도 했으며, 감독을 꿈꾸는 여자들 대부분이 스크립터 역할이 주어지던 때라, 오히려 그 인식을 피하려고 부러 연출부의 다른 포지션을 꿈꾸기도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어쨌든 감독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우회로를 탐색하던 끝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그는 여균동 감독의 < 세상 밖으로 >(1994)의 연출부에서 스크립터로 일한다. 그 시기에 임순례 감독이 스스로 만든 영화가 독립단편 영화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낸 < 우중산책 >(1994)이었다.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근무하는 매표직원 여성의 이야기를 응시한 작품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영화계가 임순례 감독을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마침 당시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일반적이던 충무로 도제시스템을 통해 입봉을 하려했다면 장벽이 될 요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제 수상으로 입증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는 다소 빨리 찾아왔다. 그렇게 2년 후 <세 친구>(1996)가 첫 장편 연출작이 되었다. < 미망인 >(1955)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수식되는 박남옥 감독 이후 흔치 않은, 한국 여성감독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록할 만한 등장이었다. <세친구> 주인공들과 함께 <세 친구>와 이후 < 와이키키 브라더스 >(1996)까지, 단편 <우중산책>과 더불어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으로 불리는 세 작품은 다르지만, 무력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영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세 친구가 갑작스레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에게 가하는 압박과 모순을 여실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 받았으며, <세 친구>에서 묘사된 씁쓸한 청춘의 삶은 차기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이어진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 성우( 이얼 )이 떠났던 고향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에 다시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꿈꾸던 밴드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에 치여 허우적대는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가 바라보는 친구들의 현재가 씁쓸하게 묘사된다. 마치 <세 친구>의 막막한 청춘의 20년 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은 드라마 장치를 통해 임순례 감독은 개개인을 압박하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화두를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잇단 비평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임순례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는 미약했다. 호평과 반대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은 장편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 박찬욱 , 봉준호 , 김지운 , 류승완 등의 감독이 대거 출연하며 한국의 장르영화가 ‘뉴웨이브’라는 말로 지칭되며 활황을 맞기 시작할 때 정작 여성감독들의 입지와 여성이 주최가 되는 영화들은 자취를 감추었던 시절이다. 그 사이 임순례 감독은 인권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 < 여섯 개의 시선 >(2003)중 한 편인 < 그녀의 무게 >를 연출했다.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에서 한 여성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작품으로, 단편 <우중산책>에서부터, 이후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7), < 날아라 펭귄 >(2009) 등에서 임순례 감독이 표방한 여성 서사와 맥을 잇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연출의 기회는 쉽게 찾질 못했던 휴지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임순례 감독의 ‘부활’을 알리는 기회가 찾아온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은 자신이 가진 주제가 대중과의 접점을 획득한 첫 순간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한 명필름과 함께한 작품으로, 전작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 6년 만의 신작이었다. <우생순>은 모든 면에서 기록적인 작품이었다. 전작의 흥행을 입증하지 못한 감독이 시장의 기대를 얻지 못한 채 손을 댄 작품이자, 흥행 취약장르인 스포츠 영화라는 우려도 가지고 있었다. 또 여성이 전면에 나선 여성 주연 영화라는 점도 우려의 지점이었다. 기획으로만 보자면 역시 대중의 선택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애초 ‘여성감독’으로서 의식을 배제한 채 매 작품 임했던 그가 침체된 여성감독의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으라. 하지만 “이번만은 손익분기점을 맞추겠다”는 감독 자신의 의도에서 시작해,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룬 성공은 당시 충무로 여성감독의 명맥을 환기하는 기록할 만한 성과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여성으로, 주부로, 비인기종목으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국가대표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처우와도 겹쳐지며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우생순>은 소외받는 핸드볼 선수들의 분투라는 점에서 다분히 상업적인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임순례 감독의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씁쓸한 정서를 나눠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소 ‘마이너’하다 칭해졌던 요소들을 탈피하고자, 나현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해 감동이 있는 휴먼드라마의 틀을 완성했으며, 스포츠영화가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편집 역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리틀 포레스트>가 그랬듯, 약점이라고 지적된 <우생순>의 모든 요소들이 오히려 극장가에 신선한 환기를 시켜주는 요소로 다가온 결과다. 임순례, 이미례, 박남옥, 이정향 이후 임순례 감독은 기존 약자를 돌아보던 시선을 확장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는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교육 열풍, 기러기 아빠 문제와 식성과 취향 등에 인색한 우리사회의 풍경을 모자이크 한 <날아라 펭귄>을 거쳐, 시골로 내려간 아나키스트 최해갑 가족의 충돌을 통해 자본주의, 환경 파괴, 국가, 교육의 문제를 되새김질 하는 < 남쪽으로 튀어 >(2012),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제보자>(2014)등에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은 임순례 감독의 색깔로 다가왔다. 또한 그 사이 상업영화의 사이즈에 머물지 않고 작은 영화의 기획과 연출로도 활동을 이어왔다. 우시장에 몰래 소를 팔러 갔다가 소와 여행을 하며, 자아를 찾는 한 남자의 내적 성장을 그린 작품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2010)을 연출하며 자신의 삶의 철학을 견지해 왔으며, 연출가의 역할을 하는 그 시기, 동물보호를 위한 옴니버스영화 < 미안해, 고마워 >( 송일곤 , 오점균 , 박흥식 , 임순례, 2011)의 제작 총지휘와 연출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영화로 실천해 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임순례 감독을 만난 건 영화계 성폭력 예방, 피해자 지원을 모색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서였다. 『씨네21』과 든든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함께 센터장으로 역임된 명필름 심재명 센터와 회의를 가지기도 했는데, 영화계에서 소외된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임순례 감독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함을 안겨준다. 지난 3월 열린 개소식에서 임순례 감독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활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지 않냐”며 미투운동은 “권력을 가진 남자의 횡포와 이에 공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자 어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각종 편견에 찬 시선으로 위축됐던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운동을 전달하며, 미투운동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임순례 감독이 개진해 온 필모그래피 자체에 충무로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법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런 면에서 배급과 투자가 규모가 큰 영화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여성감독의 약세를 몸소 겪고 지켜보면서, 영화계 수직계열화의 흐름에서도 설 자리를 잃지 않고 지금의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발언 중 “자주 영화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영화의 매력”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지난 22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캐릭터가 이 사회의 힘없는 청년, 여성, 소외된 자,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그 소통의 창구를 지속적으로 열어준 임순례 감독의 자리가 지금의 극장가에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리틀 포레스트>의 성공 이후 임순례 감독의 행보가 기대되고 또 매번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