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유니버셜발레단〈라 바야데르〉 프레스 리허설
- 제작년도
- 2010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현장 나는 목포가 고향이다. 태어난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목포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학 진학 때문에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렇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고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 학창 시절에는 목포를 꼭 벗어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고, 글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은 문예창작과를 가게 됐는데, 아마도 내가 다녔던 시기가 학생운동의 마지막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에 관해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갖게 된 계기가 어릴 적 봤던 5.18 민주화운동 사진집이었고 광주 비디오였다. 성당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꿈을 안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첫 풍경은 아직은 어렸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하도 통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던 주거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은 당시 목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폭력적인 서울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대학을 졸업할 즈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당시 한겨례문화센터에 있는 비디오 제작학교를 수료했다. 그때 만들었던 작품이 ‘인권운동사랑방’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나와 팀을 이뤄 두 명이 만들게 됐는데, 아마도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목포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목포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달라졌던 것 같다. 평소 바라보지 못했던 목포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목포의 장점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알게 되고, 목포에서 영화를 계속 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광주 근교에 있는 대학의 연기·영상학과에 다시 진학했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방송국에서 VJ를 했었다. KBC광주방송과 광주 KBS에서 소위 꼭지 프로그램이라 불렸던 내용을 촬영하고 편집을 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독립영화 상영회를 만들어 봤으면 하는 고민과 함께, 2014년에 작은 카페공간에서 다섯 편의 단편과 함께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게 됐다. 이 작품 중에는 내가 만든 단편도 포함돼 있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상영이 지속될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메워 주셨다. 반응도 너무 좋았다. 그때, 목포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할 때도 관객들이 찾아와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다음 해를 준비했던 것이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의 시작이었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현장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 사진: NR1FF , 필자 제공 목포 국도 1호선은 당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되어있는 도로이기도 해서, 끊어진 도로가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평화 통일에 대한 가치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영화제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목포에서도 일상적으로 독립·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상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2018년 3월, 전남 최초의 독립영화관 시네마엠엠(MM)을 개관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제와는 이제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출발해 이제 지역에서 개최되는 독립영화제 중 가장 많은 영화를 상영(2025년 기준 장·단편 포함 76편)하며 한 해의 중간에 독립영화를 평가하고, 돌아보고, 공유하는 자리가 됐다. 더불어, 곧 개관 8주년을 맞는 독립영화관 시네마엠엠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극장이 아니라, 목포 지역에서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이다. 영화관, 교육 공간, 창작자 지원과 지역 커뮤니티 허브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복합적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목포에서 독립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 된다는 점이 무척 중요하다. 상업영화관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면서 지역 관객의 영화적 감수성과 취향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역에서 영화 관람의 다양성이 끊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비록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있는 상영관은 아니지만 이 공간을 매개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소규모 상영회와 토크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지역의 젊은 영상 창작자들이 실제로 작업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촬영, 리허설, 상영 테스트가 가능하고, “MM 큐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감독들의 단편영화 제작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현실은 긍정적이지 않다. 전남은 제작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도시이기에, 별도의 공모사업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제 중 시네마엠엠 옥상 상영 전경 그래도 영화제를 개최하고 독립영화관을 만든 후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지역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목포에서 독립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렵거나 낯선 일이었는데, 이제는 “시네마엠엠에 가면 새로운 영화를 만날 수 있다”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지역 관객들이 ‘감상하고 싶은 작품의 선택지’로서의 독립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 흐름이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넓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창작자들이 목포에서 실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촬영할 장소, 상영할 공간, 전문가의 조언, 시사회 같은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과정’이 시네마엠엠을 중심으로 가능해졌다. 그동안 수도권에만 존재하던 창작 생태계의 일부를 지역에서도 구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MM 큐레이션”과 같은 제작지원 프로그램과 관객 프로그램을 경험한 젊은 감독들과 관객들은, 자신의 첫 작품을 목포에서 만들고, 그 영화를 통해 다시 시네마엠엠에서 관객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 정말 지역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창작과 상영이 같은 도시에서 순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시네마엠엠 주관 신진작가 시사회 전남 목포에서 독립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늘 ‘불안정함’과 함께 걷는 일이다. 비상설 영화관이기 때문에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특히 2년 동안 전액 삭감되어 버린 지역 영화 예산은 절망감을 가져다준다. 독립영화관에 대한 지자체와 정치인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지역 영화는 여전히 뒤로 밀려나 있다. 문화 활동을 하는 것보다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창작자 지원이나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감독이나 학생들 의 열정은 크지만, 그들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제도나 구조 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한계를 계속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고, 그만큼 부담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간의 활동을 지역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시네마엠엠 주관 글로컬 영화교육 포럼, 청소년 영화교육 현장 가장 기본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지원 구조 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일은 시장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정책과 예산이 꾸준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올해도 가능하고 내년에도 가능하다’라는 예측 가능성이 생겨야 창작자들도 안심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특히 독립영화관 운영비, 장·단편 제작 지원, 지역 영화제 운영비 등 지역 영화의 핵심 인프라에 대한 안정적인 예산 배정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 영화가 살아남는 힘은 결국 관객 에게서 나온다. 관객이 많아서라기보다 ‘이 공간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관람객 한 명 한 명이 영화관의 생존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시네마엠엠은 월 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운영된다. 모든 비용을 엠엠에서 부담하고 티켓을 발권하면서 독립영화를 언제든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관람 시스템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고, 현재 회원은 160명 정도 된다. 지역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태도, 선호의 폭을 넓히려는 마음, 지역에서 만든 영화를 응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활동가 들 역시 버티는 힘과 공동체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열정만으로 유지되는 공간은 오래가기 어렵다. 일을 함께 나누고,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지역 문화 기반을 ‘함께 만든다’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영화는 결국 사람이 지키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한 명, 활동가 한 명, 창작자 한 명이 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결정적 존재다. 지역 영화를 바라볼 때 ‘이 작은 불씨가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 조금씩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우리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영화인과 관객을 만난다. 이 지면을 통해 만난 여러분들을 올해 8월 여름, 목포 시네마엠엠에서 만나고 싶다. * 현장 사진: 필자 제공 정성우(시네마엠엠 대표) l 목포에서 영화교육과 영화제를 만들어 가고, 가끔 영화도 만든다. 최근에 만든 극영화 < 너만 보이는 시간 >(2024)과 다큐멘터리 < 갈 수 없는 나라 >(2022), 그리고 웹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작업들을 지역에서 만들어 간다.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금녀의 벽이 여태껏 깨진 적이 없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상임지휘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우상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사사 받고, 천부적인 재능과 악마 같은 권력욕을 과시하며, 클래식 스타로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러브콜들에, 일거수일투족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그녀는 ‘교향곡 5번’만 연주하면 꿈에 그리던 말러의 교향곡 전곡 지휘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절정의 순간, 클래식계에서 제명당한 한 젊은 여성의 자살과 성추문 미투(Me Too) 그리고 새로 뽑은 단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리며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흡사 실제 음악업계 인물의 추락을 담아낸 듯 생생한 디테일과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토드 필드 감독의 16년 만의 연출 복귀작 < 타르 >는 굴곡진 서사와 드라마틱한 비극 대신 섬세한 인물 직조와 그 배경을 리얼하고 꼼꼼하게 스케치하며 권위적이고 욕망이 꿈틀대는 예술의 뒷면을 고스란히 까발린다. 가상의 음악가를 다루는 만큼 이를 진짜처럼 연기해 낼 주연배우와 진짜 음악을 구현해 낼 음악감독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토드 필드는 영화 제작을 진행하며 캐스팅 1순위로 주연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을, 그 다음으로 음악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를 섭외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1982년 아이슬란드에서 출생한 힐두르는 영화 초반 실명으로도 잠깐 언급되는데, 클래식과 영화음악, 아방가르드 사운드를 넘나들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여성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지닌다는 영미권의 4대 트로피 EGOT(에미, 그래미, 오스카, 토니) 중 EGO를 달성한 채 토니상만 남겨두고 있는 그녀는 음악가 집안(아버지는 작곡가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 남동생은 밴드 음악을 하며, 남편은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첼로에 빠져들었다. 아이슬란드 예술원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작곡 및 뉴 미디어를 전공한 힐두르는 연극과 무용, 공연을 위한 곡들을 썼고, 최근 오스카를 수상하기도 한 하우슈카나 <다크>의 벤 프로스트, < 파친코 >의 니코 뮬리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밴드에서 연주 및 녹음을 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아울러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틈틈이 네오 클래식과 힐링 뮤직, 아방가르드한 현대음악 사이에 위치한 독특한 자신의 솔로 앨범 5장을 발표하며 좋은 평가도 얻었다. 2011년부터는 영화음악으로 저변을 넓혀 핀란드와 브라질, 슬로바키아, 터키 등 여러 국적의 작품들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게 된 건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영화음악가 요한 요한슨이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일련의 작품들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힐두르 구드나도티르 힐두르는 이미 2006년 요한 요한손이 작업한 곡들이나 앨범 그리고 힐두르 자신의 솔로 앨범에 참여하며 여러 차례 교류한 바 있는데, 공감각적인 엠비언트가 몽환적으로 발휘되는 드론 사운드에 중후하면서도 매혹적인 어쿠스틱 음색의 스트링(첼로)을 조화시켜 음악적 방향성과 색채를 공유했다. 요한 요한손이 안타깝게 약물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그가 진행하려 했던 시카리오의 속편 <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와 TV시리즈 < 체르노빌 >을 이어받아 호평을 받았고, 공동으로 작업하던 <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까지 마무리 지으며 명실상부 그의 사운드를 계승한 새로운 음악가의 출발을 알렸다. 여기에 스판덱스 쫄쫄이 유니폼이나 입고 돌아다니는 유치한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의 편견과 한계를 부셔버리고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 조커 >의 음악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되는 찰리 채플린의 아이러니와 마틴 스콜세이지의 비정하고 시니컬한 기운을 잔뜩 물려받은 이 고전적인 영화는 힐두르의 슬픔을 잔뜩 머금은 스산한 사운드로 광기어린 애수의 초상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조커>로만 힐두르는 20개가 넘는 음악상을 휩쓸었으며 골든 글로브 최초로 음악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여성 작곡가이자, 오스카 음악상이 단일부문으로 합쳐진 이후 최초 여성 수상자고, 역대 오스카에서 3번째로 음악상을 수상한 여성 작곡가가 됐다. 토드 필드는 음악을 리허설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음악을 작곡하는 건 어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왜 좌절하게 만드는지, 그 심리적이고 정서적 측면을 샅샅이 담아내고 싶었기에 <조커>로 날개를 단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모든 제작 과정 전반에 관여하길 바랐고, 그 열의와 진심에 반해 그녀는 자신이 맡을 예정이었던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암스테르담>에서 하차하면서까지 <타르>에만 1년이 넘는 시간을 집중해 매달렸다. 힐두르는 <타르>에서 보통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3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하나는 이른바 ‘템포 매핑’이라 부른 - 영화와 캐릭터 간의 사운드 동기화를 이루는 - 비공개적인 음악 과정을 거쳤고, 다른 하나는 리디아 타르가 극 중에서 작곡하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은 영화를 위한 진짜 스코어 작업이었다. 본 영화 내에서나 앨범에서 결코 들을 수 없는 ‘템포 매핑’ 작업은 상당량의 곡들이 상황이나 캐릭터에 맞는 BPM과 템포로 만들어져 리허설과 세트장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고, 캐릭터 내면의 리듬을 음악적으로 안내하고, 이를 통해 배우들이 몸짓 언어로 구현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이는 음악을 전공했고,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기도 했던 토드 필드 감독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자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힐두르였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극중에서 리디아 타르는 딸에게 바치는 곡을 작곡하느라 안 풀리는 멜로디를 잡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메인 테마로 등장하는 “For Petra”다. 힐두르는 대본에서 이 장면을 읽자마자 상승 기조의 멜로디 단서를 바로 떠올렸는데, 작곡가이자 음악가가 외부 세계의 소리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시켜서 음악으로 완성하는지, 또 그 집착이나 탐구의 과정 속에서 음악이 되기 전의 소리들과 마주할 수 있단 점에서 인상적인 결과물로 다가온다. 물론 영화상 리디아 타르는 결코 완성하지 못하지만, 후술할 컨셉 앨범에선 첫 단서였던 1분 언저리의 보컬곡과 함께 로버트 에임스가 지휘하고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분에 이르는 대곡으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유령처럼 들리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40여분에 이르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가는 스코어가 있다. 거의 후반에 몰려있는데 관객은 거의 알아차리기도 힘든 정도로 희미하고 잠재의식 수준에서 작동하는 공감각적인 사운드디자인으로, 매우 건조하고 느리지만 불안하고 섬뜩하며 흥미진진한 영화에 현재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는 영화에서 다루는 권력형 갑질과 성추문 등 불편하고 민감한 요소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자극적으로 소비하거나 부각시키지 않고, 온전히 리디아 타르가 직접 마주하는 체험적 측면에 주력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음악상 후보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런 연유로 <타르>의 사운드트랙은 정확히 말해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리디아 타르가 노란 딱지로 유명한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만약 앨범을 냈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컨셉 앨범인 동시에(그래서 이 앨범에 앞서 얘기한 “For Petra”의 완성곡이 담긴 이유다!), 리디아 타르의 실시간 플레이리스트며, 토드 필드와 힐두르가 원했던 “클래식 음악을 준비하는 작업들의 모든 지저분함”을 담고 있는 체험형 실황 앨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케이트 블란쳇이 직접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5번의 완벽한 연주가 아닌 리허설들만 일부 수록됐고, 줄리어드에서 인상적인 수업을 하며 직접 시범을 보인 바흐의 “평균율 1번 프렐류드”나 임시 단원으로 뽑힌 첼리스트(소피 카우어)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곡이라며 보내 준 영상 속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그리고 영화의 시작을 여는 페루의 주술사이자 치료술사 노래나 오래된 뮤지컬 넘버에, 리디아 타르가 만들었다는 가정 하의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작업한 결과물과 그 단서들로 다시 재구성된 3악장짜리 현대음악 소품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영화의 세계가 현실 속으로 확장돼 발휘된 비장의 OST인 셈이다. 이 앨범만으로 온전하게 <타르>의 음악을 모두 즐길 순 없지만, 적어도 리디아 타르가 어떤 음악 세계에 살아왔고, 또 추구해가고 있는가 가상의 방향성을 생생하게 제시하고 전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힐두르 구드나토티르는 2024년 자신에게 놀랄만한 명성을 안겨다 준 조커의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로 다시금 영광을 재현할 준비를 하고 있다. Track List 1. For Petra (Vocal Version) - Hildur Guðnadóttir 2. Mortar - Hildur Guðnadóttir 3. Introductory Words 4. For Petra (Recording Session) - Hildur Guðnadóttir 5. Hildur's Impressions 6. Tár: I. Largo - Hildur Guðnadóttir 7. Tár: II. Allegro - Hildur Guðnadóttir 8. Tár: III. Moderato - Hildur Guðnadóttir 9. Symphony No.5 in C-sharp minor / Pt.1: I. Trauermarsch & II. Stürmisch bewegt (Rehearsals) - Gustav Mahler 10. Symphony No.5 in C-sharp minor / Pt.3: IV. Adagietto (Rehearsals) - Gustav Mahler 11. Introductory Words (Recording Session) 12.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V. Allegro (Recording Session/First Take/Excerpt) - Edward Elgar 13. Control Room Talk (Recording Session) 14.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V. Allegro (Recording Session) - Edward Elgar 15. Applause (Recording Session) 16.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 Adagio – Moderato (Recording Session/Excerpt) - Edward Elgar 17. Here's That Rainy Day - Jimmy Van Heusen / Johnny Burke 18. Prelude in C major, BWV 846 from The Well-Tempered Clavier (Lesson/Excerpt) - Johann Sebastian Bach 19. Lydia Tár Field Recording 20. Cura mente - Fernandez
우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하나의 시기를 통과했다. 얼마 전까지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모두가 거리를 두었던 시기였는데, 또 조금 지나갔다고 그랬던 시기마저 생경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겠지만, 문화예술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더 극명하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배우들은 자신의 능동성이 기반되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외부의 선택에 의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필요한 직업이다. 어떠한 작업이 들어가게 되는지, 또 그 작업 안에서 내가 어울리는 배역이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 우선 영화작업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 OTT 작업들은 늘어났지만, 그 역시도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장벽이었다. 대부분의 1차 오디션들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오디션 현장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가 없고,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한 피드백을 들을 수 없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직업인데,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영역이 더 늘어났다. 또 독립영화는 현장에 대한 통제가 늘어나다 보니 자본이 더 필요해졌고, 촬영 중에도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원래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작업들인데, 이를 더 가중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시작될 때, 문화예술계는 바로 직격탄을 맞았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재가 아니라는 감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오던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인 걸까. 그러한 고민의 시기에 나는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 >(이하 <우천사>) 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제이 감독의 캐스팅 제안 전화가 걸려 왔고, 그 당시 제목만 듣고도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왜 천국에 갈 수 없고, 왜 사랑은 할 수 있는걸까. 천국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였고 진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한제이 감독은 이와 더불어 현실이 비록 천국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첫 미팅은 마포역 근방 한제이 감독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한낮이었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수줍은 미소의 한제이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 담쟁이 >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있었고, <우천사> 관련 캐스팅 보드가 반대편에 있었다. 한제이 감독은 강한 자신감으로 이 영화를 소개했다. 누군가의 강렬한 확신은 다른 이들을 확 이끈다. 한제이 감독이 그런 경우였고, 나는 감독의 그 자신감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하게 될 역할은 ‘주영’이라는 캐릭터였다. 첫사랑에 빠져 사랑만 믿고 돌진하는 사랑 그 자체의 캐릭터. 한제이 감독은 실사영화보다, < 벼랑 위의 포뇨 >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나 박수연이라는 사람의 밝은 부분을 최대한 꺼내 쓰고 싶다고. 주영이는 예지라는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태권도를 같이하는 성희, 오래된 동네 친구 민우, 엄마와 태권도 코치 등 여러 관계 속에 있었다. 시나리오는 한 번에 후루룩 읽힐 정도로 재밌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주고받는 대화들도 흥미로웠고, 사건도 큼직해 인물들의 삶을 이끌고 있었다. 다만, 폭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몇 가지 염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성추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단 한 번이라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서 시각적인 자극이 덜했으면 하는 것.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을 보여주되, 보는 이로 하여금 2차 가해는 절대 없었으면 했다. 한제이 감독에게 이 지점을 말하였고, 같은 지점에서 한제이 감독도 우려를 하고 있었기에 서로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조율해 가며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태권도 선수인 주영이를 위해, 태권도를 한 달 반 정도 화, 금 2시간씩 오서독스 무술팀에게 배웠다. 태권도부를 연기할 배우 친구들과 함께 훈련했다. 처음엔 기초체력, 점차 촬영할 씬 동작들로 진행되었다. 태권도 씬들과 더불어 주영이는 맞는 씬들이 몇 개 있어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최대한 통증이 없을 방법을 오서독스에서 열심히 구상해 주었다. 아예 타격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으로 보호구를 착용했고 이러한 배려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현장에서도 무술팀은 액션 씬에 항상 동행해 주었고 먼저 몇 번의 시범 리허설을 해보았다. 그 공간에 맞게 동작을 수정해 주었고, 그 덕분에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리딩은 전체 리딩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예지 역의 이유미 배우를 처음 만났었고, 둘 다 낯가림이 있어 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었다. 성희 역의 신기환 배우는 같이 태권도 훈련을 하면서 더 친구처럼 친해진 상태였고, 민우 역의 김현목 배우는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했었어서 사적으로도 친했던 친구였다. 영화 속의 상황과 배우 개개인의 친밀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배역의 몰입도가 중요했는데, 사실 나는 상대역이 이유미 배우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스크린에서 보아왔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덩이처럼 몸을 내던져야 하는 첫사랑이기에, 상대 배우가 매우 중요했고 유미에게는 사랑의 이미지가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는 모든 씬들의 앞뒤 연결을 생각하고, 그 순간에 살아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씬들을 꼽아보자면 노래방 씬과 바닷가 씬이다. 노래방 씬은 내가 사랑을 인지하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가슴 떨림을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예지의 음성을 자세히 들었고, 예지의 눈빛을 열심히 흡수했다. 이 씬을 준비하면서 자우림의 '애인발견' 노래를 꺼내 들었었고, 촬영에 들어가자 노래 전주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떨림을 느껴 예지와 눈을 못 마주치는 그 순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또, 바닷가 씬은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으로 주영이는 계속 살아갈 테니까. 그 씬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을 꺼내 보이는 순간이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드는 부끄러운 두근거림들. 실제로도 그 두 씬을 찍을 때 예지만 보고, 다른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이라는 것을 지우고, 예지에게 더 집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만은 아니다. 주영이에게는 소중한 친구인 성희와 민우가 있었다. 민우는 나를 웃게 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같이 텐션이 올라가는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성희는 같이 태권도부에 있는 친구인데, 내가 만든 전사 속에서 주영이는 성희가 태권도를 해서 따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가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권도에 있어서 실력차가 발생할지라도, 주영이는 성희에게 열등감이 없었다. 성희는 원래 잘하니까. 질투하지 않았고, 응원하는 관계였다. (이런 순수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원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성을 민우나 성희에게 반영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성희에게 일어난 일에 주영이는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성희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성희를 챙기느라 예지를 못 챙기는 순간들이 너무하지 않냐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나는 주영이라면 그 순간에 미안함으로 성희를 더 챙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영화 전체 촬영 20회차 중 주영의 회차는 총 19회차였다. 주영이는 영화에 흐르고 있었어서, 거의 매 회차에 출근했다.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체력을 쥐어짜서 매 회차를 촬영해 내기 때문에, 매일 전력을 다해 임했던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고 체력을 써가며 촬영을 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정말 좋아하니까 연기를 한다는 자체에서 쾌감을 느껴 이를 지속해 가는 것 같다. 함께하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담아내는 작업. 배우 개인적으로 늘 최선을 다해도 아쉬운 순간은 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한 씬 한 씬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시기였음에도 <우천사>는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다다음해인,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게 되었다. 위기를 넘긴 후 만나게 된 영화제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관객들을 만나고, 반응을 듣고, 내가 더 힘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상영의 경험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느낀다. 내가 연기한 순간들이 그들에게 가 닿고, 또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들을 선사하는 것. 이 순간 때문에 나는 계속 연기를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개인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무력감을 느끼긴 했었지만, 영화작업을 하고 나니 또다시 해나갈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이 작업들은 이 연결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에 독립영화 작업이 잠시 줄어들지언정, 아예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혼자 서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 해내는 연기의 책임감들을 더 배우게 되었고, 혼자있는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가 잘 지나간 것처럼, 인생 역시도 계속 흘러간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시대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두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서서 시대와 함께 걸어 나가려 한다. 무력하기도, 씩씩하기도 하면서. 코로나 시기를 무사히 지나 보낸 우리 모두의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