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번 켈러의 여행
- 감독
- 린 램지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캐슬린 맥더못, 짐 윌슨, 돌리 웰스, 사만다 모튼
영원히 잊고 싶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참혹한 순간들이 있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한 사진으로 박재되는 그 순간들은 불현 듯 지금의 일상을 덮쳐오기도 한다. 묻어두었던 과거가 밀려오는 그 감각. 현재의 삶을 꺾어버리고 무력하게 만드는 그것에게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긴 할까. 조(호아킨 피닉스)가 생각해낸 방법은 자신의 죽음이다.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납치, 감금 등의 사건을 처리하는 해결사인 그는 생생히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고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들은 조의 생각을 갉아먹는다. 소리치는 아빠와 식탁 밑에 숨은 엄마, 그런 엄마의 손짓, 아빠의 발, 그가 쥔 해머. 혹은 파병 시절 구하지 못했던 피해자 여성들, 그들이 갇혔던 컨테이너의 손잡이, 손잡이를 열자 보였던 시체 더미. 손전등 아래 보이는 시체의 얼굴. 눈. 입. 벌어진 입. 조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길을 걷다 행인의 얼굴을 마주하다가도, 편집되어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에 괴로워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 영원할 것 같은 그 괴로움. 조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꿈꾼다. 마치 여기에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지는 죽음을. 이렇듯 사라지고 싶은 조의 심리와 그런 그를 트라우마에 가두는 조의 현실은 그가 길을 걷는 장면들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길을 걷는 조를 스크린에 배치한다. 한 구석과 정중앙.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조는 원래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영화는 그가 떠나기 직전 혹은 직후의 공간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조는 8차선 도로 너머에서 언뜻 보이거나, 벌판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조금 스친다. 죽음으로서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은 조의 심리는 스크린에서 정말로 사라지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조가 손쉽게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를 끈질기게 프레임의 정중앙에 배치하는데, 이로 인해 길을 걷는 조는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갇혀있는 듯 보인다. 예컨대 영화 초반부, 현관문이 아닌 골목길로 난 쪽문을 통해 집을 나서는 조의 모습에서 이러한 구도가 여실히 나타난다. 카메라는 건너편 도로에서 그를 마주 봄으로써, 골목길을 한참 걸어 나오고 있는 조가 프레임 상에서는 여전히 한 자리에 머물도록 만든다. 결국 조는 가정폭력의 기억이 서린 집의 그늘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이러한 서사의 시각적 구현에서 전작 <케빈의 대하여>(2011)와 <가스맨>(1998)을 통해 은유적 이미지를 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평가받은 린 램지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편, 괴로운 과거에 갇힌 조는 괴로운 현실에 놓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를 만난다. 시의원의 딸인 니나는 권력 세력이 연루된 성폭력 조직에 납치되어 끔찍한 성폭행 범죄에 노출되고, 조는 시의원으로부터 니나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범죄 현장에서 그녀를 구출한다. 그리고 잠시 뒤, 니나를 조수석에 태워 돌아가던 차 안. 조는 문득 니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숫자를 거꾸로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조와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조가 그러했듯이. 이렇듯 카운트다운을 하는 니나의 행동은 니나가 조와 닮아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지점은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의 첫 번째 카운트다운이 등장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어두운 화면에서 나지막히 카운트다운을 하는 조의 목소리 직후 비닐을 뒤집어 쓴 채 질식사하기 직전인 그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때문에 조의 카운트다운 끝에는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남긴다. 반면 니나는 자살시도는커녕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로 카운트다운을 하며 영화에 등장한다. 그 숫자의 끝에 니나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쉽게 유추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카운트다운 하는 것인지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니나는 또 다시 권력자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니나를 잃은 이후 조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주변인들의 죽음이다. 조는 분주하게 움직여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알 만한 이들을 찾아가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현장에 뒤늦게 도착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조가 자살시도를 할 때마다 그를 찾고 부르며 죽음을 중단시키던 어머니는 손 쓸 새도 없이 권력세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제 그에게는 죽음을 저지할 어머니의 부름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조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래도록 꿈꾸던 죽음을 택한다. 그의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삶 또한 끝날 것이다. 40, 39, 38, 저 멀리 엄마의 시체가 수장되는 것이 보인다. 37, 36, 주머니에 한 가득 돌을 넣은 조 또한 곧 저 깊은 강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33, 32. 기다리던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조는 문득 카운트다운을 하던 니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때 조는 왜 니나의 카운트다운을 떠올렸을까. 29, 28, 환각처럼, 니나가 물속에 가라앉는 것이 보인다. 니나의 카운트다운은 죽음을 향했던 것일까, 혹은 삶을 향했던 것일까. 20, 19. 조는 결국 주머니의 돌을 빼내고 수면으로, 햇빛으로 올라간다. 환상처럼 보이던 니나 또한 그를 따라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조는 오랫동안 꿈꾸던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길을 나서며, 니나를 구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니나는 조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자신에게 향할 수 있었던 칼을 다른 누군가에게 겨누어 괴로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낸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조를 향해 무던하게 “이제 괜찮아요.”라는 말도 건넨다. 이는 조가 니나를 구해내는 동명의 원작소설과 다른 결말이다. 이에 대해 린 램지 감독은 여자 아이 캐릭터를 수동적으로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며, 서사 내에서의 역할이 많아진 만큼 캐릭터의 이름 또한 원작과 다른 니나로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게 만들었다는 그 설명처럼, 니나는 죽음을 향하지 않은 카운트다운을 한 듯하다. 그리고 그 카운트다운은 이제 조와 함께한다. 두 사람은 괴로움뿐인 현실의 끝에서 그렇게 만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혼자서 살아내야만 했던 두 사람은 이제 어떤 현실을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 살아갈 현실은 과연 지금까지의 삶보다 더 나은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향하는 카운트다운의 끝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두 사람은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 죽음을 택하지 않고 길을 나설 것이라는 점이다. 니나와 마주앉은 레스토랑의 한 구석. 니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완벽한 죽음을 생각한다. 발랄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에서 당장 죽음을 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죽음을 택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죽음은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돌아온 니나는 조를 조용히 깨우며 말한다. 나가요, 아름다운 날이에요. 아름다운 날이구나. 니나의 말을 따라 읊조리던 조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영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와 니나가 사라진 이후에 남겨진 빈자리를 포착한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그들은 이곳에 있었던 흔적을 남겼다. 흔적 없이 그림자처럼 사라지던 두 사람은 이제 함께 길을 나설 것이다. 부디 그 삶에서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도 괜찮을 만큼 괴롭지 않기를, 그들이 있었던 빈 테이블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기원한다.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올해로 3년째 하다 보니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고 원고 독촉을 받으며 이 원고를 쓰는 일이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다시, 올해 본 영화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들 중 사사로운 리스트에 넣을 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했으므로, 이번엔 주로 2017년 하반기 극장 개봉작과 이 시기에 본 영화들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올해의 베스트 영화에 넣을 영화들은 되도록 제외하면서 사사로운 마음으로 나만의 2017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올해의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먼저 애니메이션 한 편,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 너의 이름은 >과 함께 흥행했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애니메이션 < 목소리의 형태 >, 10대의 왕따 문제를 소재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넘어서서, 소통과 다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세련되고 유려하게 담아낸 영화는 별로 본 적이 없다. 10대는커녕 20대 이야기를 다룬 청춘영화조차 대부분 교훈과 감동을 버무려내기 위해 애쓰는 한국영화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 너머에 있는 영화다. 그리고 한국영화 두 편, 정윤석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와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극영화 < 초행 >, 두 감독의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을 모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할지 모르지만 이 두 감독은 한국영화 미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제 3년째 사사로운 리스트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넣은 할리우드 영화 차례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의 최근 경향의 중심에는 마블과 DC의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겪고 있는 히어로들이 있다. 이 와중에 험상궂은 얼굴로 못된 인간들을 몽땅 몰아내고 유인원의 세계를 탄생시킨 <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은 올해 유일하게 마음을 움직인 할리우드 영화였다. 사실 보고나서야 알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 렛미인 >의 미국 버전을 연출한 맷 리브스였다는 걸, 빤한 영화가 좋을 땐 항상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감독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음은 올해 영화제 상영작 2편, 우선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오드리우스 스토니스 감독의 < 여자와 빙하 >, 최근 몇 년간 본 최고의 시적 다큐멘터리였다. 구 소비에트 연방과 주변 나라의 감독들은 몽타쥬의 본질과 그것이 가지는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드리우스 스토니스 감독은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그리고 올해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데뷔작 중 한 편인 < 신의 나라 >, 영국 출신 프란시스 리 감독의 데뷔작으로 요크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국판 < 브로크백 마운틴 >으로 불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올해 최고의 영국영화 중 한 편임을 확신한다. 내년에 개봉하지 않는다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첫 TV 드라마 < 비밀의 숲 >.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는 TV 드라마를 넣을 수 있다. TV 드라마의 형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회 정보의 양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그러면서 세련되게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수연 작가의 이런 솜씨는 좀처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스릴러 영화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영화가 벤치마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17년 하반기 개봉작 3편. 2012년 < 신의 소녀들 >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2016년 영화 < 엘리자의 내일 >,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차가운 리얼리즘을 표방한 동유럽 영화는 언제든 보고 싶다. 이제 그의 영화는 어떤 경지에 올라간 것 같다. 거기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국의 린 램지(< 케빈에 대하여 >), 미국의 켈리 리처드(<어떤 여인들>), 프랑스의 미아 한센-러브(< 다가오는 것들 >)와 함께 항상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또 한 명의 여성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 로드 무비 <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포착해내는 청춘의 빛과 그들의 감정은 황홀하다. 이런 클로즈업이라면 어떻게 쓰든 얼마나 쓰든 괜찮다. 그리고 올해 리스트의 마지막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와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 로스트 인 더스트 >(2016)의 시나리오 작가 테일러 쉐리던의 본격적인 첫 연출작 < 윈드 리버 >다. 볼 날을 기대했던 몇 안 되는 영화였다. 누군가는 실망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올해 선택한 10편의 영화 중 쓰고 싶은 유일한 영화였다. 테일러 쉐리던 테일러 쉐리던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미국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는 현재까지 쓴 3편의 영화를 통해 기존의 장르 영화에서 보던 흔한 이야기를 다층적인 콘텍스트에 얹어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원래 배우였다. 2005년 <베로니카 마스>를 시작으로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썬즈 오브 아나키>에 출연해 부서장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러다가 2011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저예산 호러 영화 <고통 Vile>을 연출했다. 이 무렵 주로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던 모양이다. 2012년 즈음에 시나리오 상태였던 < 시카리오 >와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는 40살이 넘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젖혔다. 그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진 첫 결과물은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였다. 사실 드니 빌뇌브는 지금이야 가장 주목받는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지만, 원래 캐나다에서 주로 활동했던 감독이다. 첫 출세작은 8번째 영화 < 그을린 사랑 >(2010)이었다. 거의 한국 드라마 수준에 육박하는 감동의 막장 이야기를 힘 있게 연출하여 특히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2편의 영화를 더 연출했지만 그는 여전히 캐나다 바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2013년이 끝나갈 무렵 테일러 쉐리던의 시나리오 <시카리오>를 만났다. 그의 11번째 연출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201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호평을 받았다. 처음으로 영화화된 쉐리던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감독과 작가의 인생을 바꾸어버렸다. 드니 빌뇌브는 이후 < 컨택트 >(2016), <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를 연달아 연출하며 할리우드에서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감독의 자리에 올랐고, 테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 이후 데이빗 메킨지가 연출을 맡은 <로스트 인 더스트>(2016)가 공개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는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었고, 아카데미영화상 및 많은 영화상의 시나리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자신이 각본을 쓴 세 번째 작품이자,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작품이지만 본격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 윈드 리버 >를 완성했다.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고, 곧바로 칸영화제로 직행하여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미국 변방 3부작 테일러 쉐리던은 스스로가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 로스트 인 더스트 > < 윈드 리버 >를 미국 변방 3부작(frontier trilogy)으로 부른다. 세 영화의 배경이 모두 현대 미국의 변방이기 때문이다. 이 3부작은 특정한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이 세 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먼저 이야기해야할 것은 영화 속 공간이다. 변방은 정부의 사법권이 잘 닿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세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는 이런 공간적 배경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기를 갖게 된다. 여기서 이 삼부작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주’와 ‘정착’이다. 변방은 이주가 용이하고 정착이 어렵다. 그러므로 이미 변방에 정착한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다.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이주민은 잠시 머물렀다 어제든 떠날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의 삶 역시 부유한다. 불안한 삶은 폭력을 내재한다. 폭력으로 나를, 내 삶을,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주민과 정착민 사이에는 긴장이 만들어지고, 그 긴장이 깨지면 폭력이, 그리고 그 폭력은 다시 범죄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 3부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폭력’이 된다. 3부작에는 인간에 내재된 폭력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얼마나 폭력에 발목이 잡혀있는지가 그려진다. 테일러 셰리던은 자신의 영화 속 폭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종은 폭력적이고, 폭력은 말 그대로 삶의 접착제다. 그러나 폭력을 사악하게 사용하는 유일한 종은 인간뿐이다.” 그는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현대 미국의 변방의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주와 정착, 폭력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섬뜩한 스릴러 영화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배경으로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과 그로 인한 폭력의 이면을 차갑게 담아낸다. 불명확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FBI 요원인 여주인공은 원칙을 지키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정부가 개입하여 얻어낸 마약과의 전쟁의 결과물은 다시 전직 마약 두목에게 돌아간다. 선악이 불분명해진 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미국의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정체를 드러낸다. 한편, 멜랑콜리한 감성이 느껴지는 서부극의 느낌이 물씬 나는 범죄 스릴러 영화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배경은 몰락해버린 미국 서부 텍사스이다. 영화는 가족을 위해 은행을 터는 형제 강도와 이를 쫓는 텍사스 두 경찰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해버린, 그래서 이제는 미국의 변방으로 몰락한 서부의 모습을 노란빛의 화면에 담아낸다. 웨스턴 장르를 통해 찬양받으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미국 서부를 개척했던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 백인 남성들은 이 영화에 와서 몰락한 채 퇴장한다. 범죄를 처단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던 서부극의 총잡이들은 이제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은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로스트 인 더스트> 앞에는 신서부극(네오 웨스턴)이라는 단어가 붙곤 한다. < 윈드 리버 > 그리고 쉐리던이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은 또 다른 미국의 변방,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미국 와이오밍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다. 미국 정부의 인종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쉐리던은 이곳을 잘 안다. 한 때 오랫동안 이런 보호구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영화의 연출을 다른 감독에게 맡기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윈드 리버는 겨울이 되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눈 폭풍이 며칠씩 몰아치는, 끝없는 백색 설원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광활한 공간에서 인간은 한낱 점과 같다. 그 새하얀 눈밭에서 처참한 모습을 한 한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FBI의 관할이다. 지역 사법권의 부재는 외부에서 초짜 여성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을 윈드 리버로 불러들이고, 여기에 인디언 경찰과 야생동물 헌터 코리(제레미 레너)가 합세한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디언 보호 구역의 삶은 그 곳의 풍경만큼 스산하고 황폐하다. 죽은 채 발견된 소녀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백인 공사장 인부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광활한 자연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범죄를 저지른 이 백인들은 결국 인디언들에게 유일하게 빼앗아 가지 못한 그 백색의 자연 속에서 죽어간다. < 윈드 리버 >는 이렇게 오래전 인디언을 학살하고 그 땅을 차지했고, 이제 한 인디언 소녀를 잔인하게 폭행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백인들의 범죄를 정부의 사법권으로 처벌하지 않고, 인디언 아내를 둔 코리를 통한 복수로 마무리한다. 따라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인디언이 아니라 인디언의 아내를 둔 백인 남성(코리)과 백인 여성(제인)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쉐리던이 가지고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거주 경험과 인디언 커뮤니티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영화의 끝에 등장하는 자막을 생각하면, 코리는 분명 쉐리던의 분신이므로, 이 영화를 통해 정말 쉐리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폭력으로 밖에 지킬 수 없는 인디언 보호 구역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것이다. 쉐리던은 <윈드 리버>에 대한 인터뷰에서 작가로서의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토리텔러로서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옆에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이 명백하게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점은, 질문함으로써 우리 세계를 비춰보도록 하고, 결국 관객이 질문을 하게 함으로써 어떤 변화를 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쉐리던이 각본을 쓴 이전 두 작품을 떠올려보면, 이 영화에는 이런 하나의 사회적 의미 이상의 다양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쉐리던의 세계에선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캐릭터를 찾기가 어렵고, 각 인물에게는 많지 않지만 정확하고 필요한 대사가 딱 그만큼 주어진다. 그래서 한 시퀀스에서 다른 시퀀스로 넘어갈 때 꽤 대담한데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정에 대한 설명이 거의 필요 없다. 그렇게 인물들은 안정적인 감정의 인과관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에선 공간 자체가 캐릭터화 되어 공간과 인물이 상호작용을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의미를 끌어낸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윈드 리버라는 공간의 입장에서 보면 살인사건과 이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인디언 보호구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치적 영화가 되지만, FBI 요원의 입장에서 보면 한 여성 초짜 법률 집행인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희생자의 슬픔을 진심으로 이해해 가고, 갖은 고초 속에서 결국 사건 해결에 성공하고 살아남은 과정을 담은 성장영화가 되거나, 야생동물 헌터 코리의 입장에서 보면 딸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아버지가 딸을 잃은 친구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여 복수에 성공하는 범죄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딸을 잃은 아버지 마틴의 입장에서 보면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과정을 담은 심리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삼부작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다른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 주제는 바로 ‘아버지’, 자식을 지키는 데 실패한 아버지다. 적에게 무참하게 가족을 잃은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의 아버지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가난 밖에 물려줄 수 없어 형과 함께 은행을 털기로 한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아버지 토비(크리스 파인), 살해된 딸과 마약으로 망가진 아들을 지켜내지 못한 < 윈드 리버 >의 두 아버지 코리(제레미 레너)와 마틴(길 버닝햄), 이 무능하고 실패한 아버지들은 잔인하게 복수하거나,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가만히 슬픔을 체화한다. 결국 쉐리던의 세계는 이 실패한 아버지들을 통해 더 커다란 은유의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테일러 쉐리던이 만들어낸 세계 난 테일러 쉐리던이 미국 변방 삼부작을 통해 구축해낸 세계를 좋아한다. 폭력이 가득한 이 세계는 우울하고 슬프고 황폐하며 차갑다. 끝없는 절망도 섣부른 희망도 없다. 사랑 때문에, 부조리한 구조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그 흔한 로맨스 하나 없는 세계다.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명백하게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세계, 그러나 우리는 이 견고해 보이는 세계조차. 천천히, 보이지 않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변화는 결국 사람으로 비롯된다는 것도. 지난 수년간 암흑기를 겪었던 우리가 그랬듯, 이 삼부작의 각기 다른 공간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 -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의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다시 마약 두목이 된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토비(크리스 파인)과 해밀턴(제프 브리지스), < 윈드 리버 >의 두 아버지 코리(제레미 레너)와 마틴(길 버닝햄)과 살아남은 FBI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 - 도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화 되고 있는 < 시카리오 2: 솔다도 >(2018)와 케빈 코스트너의 출연을 전제로 각본과 연출을 맡은 TV 드라마 <옐로우 스톤>(2018)을 기다리는 나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