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킨
- 감독
- 마이클 고틀립
- 제작년도
- 1987
- 출연
- 앤드류 맥카시, 에스렐레 게티, 킴 카트랄, 제임스 스페이더, G.W. 베일리, 캐럴 데이비스, 스티브 비노비치, 크리스토퍼 마허, 메샤크 테일러, 필리스 뉴먼, 필 루번스타인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 지구를 지켜라! >는 외계인이라는 소재와 병구와 강 사장의 대립을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폭로합니다. 저녁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고 말하자, 장준환 감독은 “맞다. 사실 외계인 같은 덴 별 관심도 없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기도 했죠. 추 형사가 벌떼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중심으로, 현장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속보로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태프들과는 영화의 디테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데뷔 감독의 열정과 꼼꼼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죠. < 복수는 나의 것 >(2001) < 서프라이즈 >(2002)에 이어 신하균이 선택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병구는 외딴 곳에 홀로 살며 외계인의 존재를 추적하는 캐릭터죠. 내성적이지만 에너지를 내뿜을 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인데요, 신하균은 자신과 병구 사이에 꽤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기의 감정적 밀도가 높아서 한 컷 안에서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줘야 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하더군요. 이 날 촬영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신하균이 아니라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영화계에 막 얼굴을 알리는 단계였는데요, 곽경택 감독의 < 친구 >(2001)에서 유오성 의 얼굴에 지긋이 칼을 대던 조폭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였죠. 장준환 감독 현장에서 장준환 감독은 조용하면서도 섬세히 요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가 병구 역에 신하균을 떠올린 건 시나리오를 마칠 즈음인데요, 어느 잡지에 실린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보고 병구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네요. 짙은 노란색 머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염색한 거라고 합니다. 숙소에서 심심해서 그냥 한 번 해봤다는군요. 홍경표 촬영감독 최근엔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으로, 그리고 < 곡성 >(2016)이나 < 설국열차 >(2013), 더 거슬러 올라가면 < 마더 >(2009)와 이명세 감독의 < M >(2007) 그리고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등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홍경표 촬영감독. 그는 스태프 중 가장 연장자였지만 가장 활기에 차 보였습니다. 홍 감독의 촬영 플랜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카메라워크와 그린 톤이었는데요, 궁극적 목표는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봉장 위엔 병구의 집이 있습니다. 공포영화에서나 만날 수 법한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죠. 이곳에서의 촬영 공개는 없었지만,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병구는 가내수공업으로 마네킨을 만들며 외계인의 존재를 주시하는 인물인데요, 그런 캐릭터가 공간에도 잘 드러납니다. 하얀 마네킨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외계인 관련 자료들, 그리고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 >(1991)과 < 미저리Misery >(1990)를 참고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을 본 후에 감독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산은 금방 어두워집니다.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현장. 촬영장에 어둠이 깔리고, 이제는 카메라를 꺼야 할 시간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몸’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서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1982년 < 애마부인 >부터 시작된 ‘에로티시즘 영화’에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사회파 영화’에서도 ‘몸’은 중요한 화두가 된다. 사창가를 중심으로 ‘카수 영애’의 고달픈 삶을 그렸던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원래는 그 속편으로 기획되었던 < 바보 선언 >(1984), 박철수 감독의 < 어미 >(1985)와 < 안개기둥 >(1986), 이원세 감독의 < 여왕벌 >(1985), 김호선 감독의 < 서울 무지개 >(1989) 등의 영화에선 인신 매매, 페미니즘, 미국, 정치 매춘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몸을 통과해 스크린에 투영된다. 이 시기 이른바 ‘뉴 웨이브’의 작은 흐름을 만들었던 신인 감독들의 시선에서도 ‘몸’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이미례 감독의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984), 장길수 감독의 < 밤의 열기 속으로 >(1985), 장선우 감독의 < 성공시대 >(1988) 등이 테마를 전달하는 수단은 ‘육체’이며, 그 위엔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신승수 감독의 데뷔작인 < 장사의 꿈 >(1985)도 이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육체가 어떤 식으로 마모되고 만신창이가 되는지를, 두 남녀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일봉( 임성민 )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온 새벽의 인력 시장. <장사의 꿈>은 몸이 사고 팔리는 그곳에서 시작하는 ‘거래되는 육체의 오딧세이’인 셈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벽돌 공장으로 가지만 곧 그곳을 그만두고, 씨름 선수에 도전하지만 대회 예선에서 떨어진다. 이때 우연히 만난 소매치기 멍군( 김동수 )은 일봉을 ‘장군’이라 부르며 그를 포르노 현장에 소개한다. 그곳에서 만난 상대 배우 애자( 금보라 )는 악랄한 제작자이자 기둥서방 같은 존재인 마대수( 송경철 )에게 철저하게 착취당하는 신세. 일봉은 애자를 보호하려다 마대수에게 폭력을 가해 전과자가 되고, 출소 후 애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장군 복장을 하고 가게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거나 막노동 판을 전전하는 일봉. 봉제 공간에서 일하는 애자. 그들은 어느 약장수( 김인문 )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지만 임신 중이던 애자는 자동차 사고로 사산하고, 그들은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다. 유한 마담들의 성적 대상인 남창이 된 일봉은 애자를 잊지 못하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애자는 스트립 댄서가 되어 있다. < 장사의 꿈 >의 일봉과 애자는 1970년대 개발 독재와 1980년대 천민 자본주의가 도시의 하층민에게 가하는 육체적 수탈을 보여주는, < 영자의 전성시대 >(1975)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가정부-여공-창녀를 거쳤던 영자가 결국은 불구가 되었듯, 일봉과 애자도 육체적 마비 상태에 이른다. 일봉은 남창 생활 끝에 성 불구가 되고, 스트립 댄서가 된 애자는 마치 산 송장처럼 표현된다. 여기서 <장사의 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혹시 실체는 없는 ‘도시의 유령’은 아닌지 의심한다. 애자는 일봉에게 독백처럼 말한다. “당신과 내가 서로 만지는 건, 몸이 아니라 조명 불빛이에요.” 일봉이 애자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도 애자는 마치 귀신처럼 일봉 옆에 나타나 몸을 기댄다. 애자의 판타지 장면에서 그녀는 아무 사람도 없는 거리를 벌거벗고 달리거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거리에 서 있다(이 장면엔 소리가 없다). 포르노 촬영장과 나이트클럽 스테이지의 불그스름하고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나체로 누워 있는 애자의 모습은 마치 귀신 혹은 시체처럼 보인다(이때 일봉은 말한다. “애자 씨, 몸이 차갑더군요.”) 애자의 육체가 불빛 사이를 유령처럼 빠져나가는 존재라면, 일봉의 육체는 쇼윈도의 마네킨처럼, 무엇인가를 전시하기 위한 욕망의 매개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마치 ‘옷걸이’와도 같다. 씨름 대회에서 탈락한 후 덥수룩한 ‘수염을 밀어버린’ 그는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고’, 범죄자가 되어 ‘죄수복을 입으며’, 호객 행위를 위해 ‘장군 옷을 입고’, 남장이 되어 매끈한 ‘정장 차림’이 된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옷을 입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규정될 뿐이다. 황석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신승수 의 < 장사의 꿈 >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당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듯하지만,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임성민 은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교묘히 뒤집으며,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에로’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당시 한국영화의, 아니 한국 사회의 실체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엔,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애절한 섹스 신이 있다. 포르노를 찍던 일봉과 애자는 “컷!”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섹스를 한다. 도시에서 소외 당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당대 그 어떤 에로티시즘 영화도, 이 영화의 이 장면보다 더 비참하고 진정성 있는 섹스 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