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피리
- 감독
- 리디아 스타이어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마티아스 괴르네, 마우로 페터, 알비나 슈아기무라토바, 크리스티아네 카르크, 아담 플라체트카, 마리아 나자로바,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
오페라 영화 < 춘향뎐 >(2000)은 한국의 예술적 유산인 판소리와 시네마의 형식을 병합하고자 한 거대한 야심의 소산이다. 임권택 영화 세계의 큰 성취 중 하나인 이 영화는 서구 오페라 영화의 표준 관행에서 벗어나 한국의 토착적 오페라인 판소리의 특징에 의해 그 독창성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판소리는 완전히 드라마틱한 장르가 아니라 사설이 포함된 내러티브와 배우들의 가상 연기로 구성된 드라마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임권택의 다른 영화 < 서편제 >(1993)의 주제였으나 <춘향뎐>에서 그의 관심은 소리에 통달하기 위해 시력을 희생한 여인의 삶을 묘사하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판소리가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영화에 통합되는 <서편제>와 달리 <춘향뎐>에서는 판소리의 형식이 서사를 추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뎐>의 서사는 영화 속 영화의 형식으로 미장 아빔의 구조를 형성한다. 임권택은 판소리 설화의 시각적 삽화에 의해 중단, 중첩, 교차하는 모의 무대 공연을 겹쳐둔다. 즉, 내러티브 공간은 단일화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층위로 나뉘며 영화의 이미지는 판소리 공연 연출과 춘향 이야기의 시각화라는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그 양상을 살펴보자. 소리꾼 조상현의 노래와 사설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기능을 하고 용의주도하게 계산된 배치에 따라 내레이션과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가 교차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무대 공연은 내러티브 전개의 중요한 길목에서 다섯 번 등장한다. 몽룡(조승우)과 춘향(이효정)이 만난 직후, 몽룡이 춘향을 떠난 이별 직후, 몽룡의 장원급제 직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액자구조로 출발하여 액자의 프레임이 점점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구성은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영화의 언어를 판소리의 언어와 병합하려는 예술적 작의의 산물이다. 다섯 개의 공연 장면 사이에 끼워 넣어진 삽화는 판소리의 서사 전개 방식과 영화적 어휘의 조화를 곳곳에서 연출한다. 특별히 임권택은 소리꾼의 입을 통한 구술 전개와 시각적 재현을 절묘하게 겹쳐놓음으로써 그 속성에 있어서 상이한 두 예술 매체(판소리와 영화)의 공감각적 합일을 이루고 있다. 소리꾼의 노래와 사설이 흘러갈 때의 리듬과 음율, 호흡의 고저/강약, 정서의 기복은 쇼트의 형태, 길이, 편집, 배우의 연기로 적확하게 번안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인 디제시스는 이 영화가 서양 오페라 영화의 전통과 변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마술피리>(1975)나 조셉 로지의 <돈 지오반니>(1976) 같은 오페라 영화들에 무대 공연과 오페라 서사의 영화적 시각화 사이에 위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 디제시스 구성에서 흥미로운 점은 연극 무대 가창자들의 목소리와 영화 속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가 춘향 이야기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목소리는 그것이 속한 디제시스에 국한되는 반면 노래하는 목소리는 두 디제시스를 초월한다. 즉, 노래하는 목소리는 노래의 시각적 삽화를 동반하는 보이스오버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판소리 연주자의 노래 내용이 이몽용과 춘향이 만나는 곳의 풍경을 묘사할 때, 이미지 트랙은 오페라 무대에서 그 풍경의 사실적인 영화적 이미지로 이동한다. 이때 노래하는 목소리는 보이스오버로 계속된다. 판소리 연주자들은 노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화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양 오페라 영화와 구별된다. 판소리에서 노래하는 부분을 ‘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아니리’로 구분하는데, 가창자가 등장인물과 화자의 이중 역할을 하는 것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에 존재하지 않는 판소리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이중적 역할은 영화적 이미지와 오페라 가창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판소리의 영화적 제작을 서양 오페라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창출한다. <춘향뎐>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잠재력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춘향뎐>에서 판소리 가수가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미지는 영화의 메타 내러티브에서 따온 것이며, 이러한 다중 내러티브는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를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미지 관계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판소리 가수의 공연이다. 즉, 이미지는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판소리 공연을 보여준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판소리 가수의 내레이션이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그 내레이션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보이스오버가 되는 것이다. 목소리는 메타 디제시스 세계에서, 이미지는 판소리 서사의 디제시스에서 유래하여 두 가지 차원의 디제시스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셋째, 이미지와 사운드 모두 판소리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를 떠나 영화 속 춘향 이야기의 디제시스로 이동한다. 판소리 사설과 노래과 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완전히 영화적이 되는 순간이다. 가장 흥미롭게도 네 번째 형태의 음악-이미지 구성에서는 영화에서 말하는 대사와 무대에서 판소리 가수가 부르는 가창이 동시에 제시되는, 일종의 ‘더블 보이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이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하는 신은 이 네 가지 형태의 음악-이미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고문 신은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인 판소리 내러티브의 영화적 시각화로 시작됩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문 현장으로 이미지가 이동할 때 노래하는 목소리가 멈추고 판소리의 말하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할 준비를 지시한 후 변학도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무대에서의 가창이 보이스오버 사운드 트랙으로 돌아온다. 판소리 보이스오버는 집장사령이 고문을 위해 이동하는 거동과 움직임, 형장을 들고 와 땅바닥에 흩뿌리고 그중 하나의 형장을 선택하여 들어 올리는 행위를 설명한다. 음성과 이미지의 이러한 구성은 위에서 이야기한 음성-이미지 유형의 두 번째 범주를 보여준다. 다음은 세 번째 범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가창의 보이스오버가 아니라 집장사령의 말과 겹쳐지는 대사가 보이스오버 역할을 하여 고문당하는 춘향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사설로 묘사한다. 고문 장면의 극적이고 음악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춘향은 일자 포악으로 변학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말로, 그 위에 겹쳐지는 판소리 가창은 노래로 분리된다. 일종의 아리아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에 대한 임권택의 영화적 표현은 ‘더블 보이싱’의 사례를 제공한다. 화면에서 춘향의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창자의 소리는 동일한 가사를 각각 말과 노래로 발음한다. 그리고 춘향의 고문 이미지 위에서 서로 다른 층위의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춘향의 저항과 변학도의 명령, 집장사령의 타격이 교차하는 매질 현장에서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 세계로 이미지 트랙이 이동함에 따라 춘향의 말하는 목소리가 이중 보이스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판소리 가수의 목소리가 최종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즉,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유형, 극장에서 춘향을 공연하는 판소리 가수의 노래를 화면에서 듣고 본다. 고문 신은 원천 판소리처럼 음악적 정교함과 감정적 강렬함 면에서 가장 흥미롭다. 이 장면을 통해 임권택은 연극 무대에서 노래로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넓은 의미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영화적 연출을 완벽히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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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마술피리 감독, 시나리오: 정재은 | 제작: 오기민 | 촬영: 최영환 | 프로덕션 디자인: 김진철 | 음악: 조성우 CAST 태희: 배두나 | 혜주: 이요원 | 지영: 옥지영 | 비류: 이은실 | 온조: 이은주 2000년대 초 한국영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의외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의외’라는 건 산업적인 의미입니다. 요즘 같으면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 안에서 제작될 법한 아이템이 메인 스트림 안에서도 제작되곤 했다는 거죠. < 고양이를 부탁해 >가 그렇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의 ‘스무 살 여성’들이 세상과 맞닥트리는 이야기. < 여고괴담 >(박기형, 1998)의 오기민 프로듀서가 설립한 ‘마술피리’의 창립작인 이 영화는 당시 충무로 규모 있는 투자사 중 한 곳인 아이픽쳐스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메이저였던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맡았던 작품입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2001년 3월의 어느 날,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인천 월미도. 태희와 혜주와 지영과 쌍둥이 자매인 비류와 온조. 다섯 친구가 오랜만에 모이는 장면이죠. 버스를 타고 월미도에서 동대문 의류 상가로 이동하는 그들. 하지만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 앞에서 친구들은 옷깃을 꼭 여며야 했는데요, 그 바람은 마치 이 청춘들이 장차 겪게 될 현실이라는 거센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 바람은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대형 강풍기가 만들어내는 바람 앞에서 배우들은 ‘바람 맞는 연기’를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영상원 출신인 그는 < 도형일기 >(1997) < 둘의 밤 >(1999) 등의 단편으로 각광 받았고,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민규동, 1999)의 스크립터로 충무로에 진입한 지 2년 만에 자신의 장편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자인 오기민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프로듀서이기도 했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의 여성 감독은 흔하지 않았죠. 그런 이유로 정재은 감독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의 고유한 분위기는, 모니터 확인 시간입니다. 감독과 주연배우 다섯 명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니터 앞에서 친구들이 옹기종기 친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매우 정다웠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에게만 첫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최영환 촬영감독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오롯이 혼자 촬영을 책임져야 하는 첫 영화였습니다. 역시 감독처럼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요, 이후 최영환 촬영감독은 < 피도 눈물도 없이 >(류승완, 2002)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2004) < 타짜 >(최동훈, 2006) < 세븐 데이즈 >(원신연, 2007) < 전우치 >(최동훈, 2009) < 베를린 >(류승완, 2012) < 도둑들 >(최동훈, 2012) < 국제시장 >(윤제균, 2014) < 베테랑 >(류승완, 2014) <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2016) 등의 카메라를 잡습니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 월미도까지 온 혜주(이요원)은 쌍둥이 자매인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를 발견합니다. 인형 뽑기에 빠져 있는 자매. 이미 적잖은 인형을 뽑았는데요, 이 장면을 위해 마련한 소품이 아니라 진짜로 뽑은 거라고 하네요. 이재용 감독의 < 순애보 >(2000)에서도 역시 쌍둥이 자매로 데뷔한 이은실, 이은주 자매는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혜주는 오랜만에 만난 지영(옥지영)에게 염색이 촌스럽다며, 집에서 혼자 한 거 아니냐며, 타박을 합니다. 배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 때문에 촬영은 잠깐씩 중단되곤 했습니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 다섯 명의 친구가 다 모였습니다. 한편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이 조금 독특했던 건, 한국영화 최초로 전문 조감독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도제 시스템에선 조감독은 감독으로 가기 위한 통로이고, 연출부에서도 퍼스트, 세컨드, 써드 등으로 위계가 형성되어 있죠. 하지만 전문 조감독은 감독에 종속된 직책이 아닙니다. 감독과 수평적 입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지금은 ‘옥고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옥지영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첫 영화였습니다. 패션 모델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실제 이름과 같은 ‘지영’이라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했죠. 이 영화로 배두나, 이요원과 함께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배두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창 주목 받던 라이징 청춘 스타였습니다. 2000년 봉준호 감독의 < 플란다스의 개 >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던 그녀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한 뼘 더 캐릭터의 영역을 넓혔죠. 특유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순수하고 꿈꾸는 듯한 이미지가 황금비율로 섞인 캐릭터가 바로 ‘태희’였습니다. 배두나는 이 캐릭터로 백상예술대상과 춘사영화제와 부산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이 영화에 안착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녀가 받았던 네 개의 영화상, 즉 백상예술대상과 디렉터스컷 시상식과 청룡영화상의 신인여우상, 그리고 춘사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은 모두 <고양이를 부탁해> 덕분이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꿈 많은 태희(배두나), 현실적인 혜주, 약간은 어둡고 세상에 냉소적인 지영, 굳건한 자매애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비류와 온조.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다섯 친구가 세상과 드디어 대면하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