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데인저러스
- 감독
- 빌리 디시코, 데이비드 핀처, 마이클 잭슨, 데이빗 켈로그, 존 랜디스, 앤드류 모라헨, 빈센트 패터슨, 조 핏카, 허브 릿츠, 존 싱글턴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마이클 잭슨, 나오미 캠벨, 낸시 카트라이트, 댄 카스텔라네타, 길비 클라크, 맥컬리 컬킨, 테스 하퍼, 헤비 D
시작은 올해 2월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영화제와 상영회가 온라인 상영과 개최라는 대안적 방식을 선택하기 전, 정상적인 형태로 개최된 마지막 국제영화제였던 베를린영화제에서 소다 카즈히로 감독을 만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공개된 < 멘탈 >과 이어지는 <정신: 제로>라는 신작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소다 감독과는 2018년 중국에서 잠시 만난 이후 재회한 셈이었는데, 정치 이야기, 미국생활 이야기, 작업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신: 제로>가 소다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떨어지는 숫자나 년도를 기념하거나 그걸 계기로 행사를 도모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숫자에 맞춰 무엇인가를 하는 게, 명분이나 근거를 설명하기에 여러모로 용이하다는 현실적이라는 그간의 경험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무엇이든 같이 해보자, 라는 제안을 즉석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전후로, 하라 가즈오 감독의 2019년 영화 < 레이와 시대의 반란 >을 보면서 소다 가즈히로의 전작 < 선거 >와 연결하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이후 모리 타츠야 감독의 <나는 신문기자다>를 본 후로는 ‘선거’와 ‘언론’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본사회를 조망하는 기획을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봄이 지나면서, 민환기 감독이 작업해오던 제주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든 녹색당 고은영 후보를 따라가는 < 청춘 선거 >가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선거’라는 소재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쟁쟁한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과 일본사회가 공히 처해 있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함께 논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미리 그려보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올해 일어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강고한 체제로 굳어진 기존 정당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는 소수정당이나 보통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과정을 기록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하라 가즈오 감독의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2019년 7월에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 10명의 후보를 낸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와 그들의 선거 도전기를 따라가는 영화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도 꽤 알려진 ‘거리의 정치인’ 야마모토 타로가 주도하는 신생정당으로, 진보적인 경제정책과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반대와 원전 중단 등 일본사회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급진적 정책들을 내세우는 정당이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주인공은 야마모토 토로가 아니다. 물론 그가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하라 가즈오 감독이 집중하는 주인공은 비례대표로 출마한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다. 도쿄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경제학자이자 2014년 커밍아웃한 트렌스젠더이자 ‘여장남자교수’로 유명한 야스토미 아유미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건 2018년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이다. 당시 말을 타고 유세를 벌이던 파격적인 모습과 이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약들로 화제를 모았던 그에게 야스모토 타로가 2019년 참의원 선거 비례대표 출마를 제안하면서 그를 다시 선거판으로 불러들인 것. 2018년 당시 야스모토 아유미에게 흥미를 가졌던 하라 가즈오 감독은 유튜브 채널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다음에도 선거에 출마하면, 관련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농담처럼 약속을 하는데, 그 약속을 기억한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가 하라 감독에게 연락해온 것이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은 사건과 인물을 집요하게, 오랫동안 촬영하며 기록한다. 대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대상과 소통하면서, 최대한 가감 없이 그들의 말과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다. 그런 점에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하라 가즈오 감독의 작품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면서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특이한 지점들을 동시에 지닌 영화다. 다작 감독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침묵하던 하라 감독은 2017년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으로 귀환한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 감독만의 작업방식은 8년이 넘게 촬영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도 그리고 올해 공개된 또 다른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다룬 <미나마타 만다라>는 15년을 촬영했고 편집에만 5년이 걸려 6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그의 역작 중의 하나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완성까지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2019년 6월, 메일을 통해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에게 연락을 받았고, 6월 26일 처음 만나 제작을 결정했고, 그리고 기자회견부터 이후 16일간의 선거운동 기간까지, 대략 3주간의 촬영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제작기간을 비교하자면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독의 언급이 있다. 그건 오락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인터뷰나 마스터 클래스 같은 강연에서도 감독은 관객이 흥미를 느낄 장면이나 요소들을 넣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라고 종종 언급하고 있는데,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감독의 작업 중에서 가장 재치 있고 오락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그건 아무래도 선거라는 제도가 지닌 연극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압권은 목장에서 키우던 말을 도심에 데려와 선거유세에 활용하는 장면들. ‘Protect our children, heal the world’를 공약으로 외치는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는 이번에도 말을 이용한 선거유세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도심에 나타난 말의 이질적인 이미지만큼 그의 선거유세는 우리에게 기이하게 다가온다. 오락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이지만, 영화는 레이와 신센구미 비례대표로 출마한 다른 후보들에게도 고른 관심을 보여준다. 비례대표 중에서도 우선 순위를 받은 두 명의 중증 장애인 후보, 환경운동가 출신의 후보, 싱글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여성후보, 일본창가학회가 모태인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면서 보수화되자, 그에 반발하는 창가학회 멤버이자 오키나와 출신의 후보, 편의점 세븐 일레븐 점주로 대기업 횡포에 맞서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후보 등이 등장해 자신들의 공약과 주장들을 당당하게 밝힌다. 선거는 말의 성찬이다. 다양한 주장과 선언들이 분출하는 열린 공간.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같은 무게를 갖지 못하고,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하며,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 그건 선거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일상에서도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들의 목소리는 늘 왜곡되고 감춰진다. 그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주민들도 <미나마타 만다라>의 환자들과 가족들도 겪고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왜곡되고 소외되어 온 그들의 이야기. 그래서 하라 감독은 그들의 곁에서 오랫동안 기록하며 그들의 진심이,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말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도 감독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주류 언론에서 배제된 소수정당 후보들의 주장과 진심들. 정치는 사람을 잇는 수단이지 소통을 가로막는 장치가 아니다, 라는 믿음. 그래서 감독은 10명의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과 증폭되는 감정들을 가까이서 끈기 있게 담아낸다.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 시민들을 좀비처럼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한 저항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스릴러’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는 발상. 그래서 좀비들이 등장하는 플래시몹을 기획해 유세현장에서 진행하지만, 막상 영화에는 저작권 문제로 그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기괴한 사운드효과를 배경으로 깔고 자막과 함께 영상만 내보는 장면은, 하라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백미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진지한 연설을 하는 와중에, 술 취한 아저씨가 등장해 어슬렁거리자, 후보보다 취객에 더 흥미를 느끼고 카메라에 담으려 하는 장면도, 감독의 여유와 코미디적 감각이 건재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료화면과 유튜브 영상을 활용하고, 재치 있는 자막처리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소수정당의 의미 있는 시작을 함께 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돋보이는 건, 여전한 감각과 시대정신을 지닌 하라 가즈오 감독의 태도와 그의 영화세계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사극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라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1980년대는 1970년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한국영화 산업이 장기 침체로 접어든 시기. 사극은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주도한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작’ 장르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오면, 사극은 과거의 위용에서 멀어지며 양적 팽창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에로티시즘 사극’이었다. 모두 ‘에로’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전통의 올곧은 계승은 있었다. 사극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여인 잔혹사’는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이두용 , 1984) < 자녀목 >( 정진우 , 1985) < 씨받이 >( 임권택 , 1987) 등의 수작들을 보유했다. ‘궁중 사극’의 흐름도 건재했다. 이두용 감독은 신상옥의 < 내시 >(1968)를 나름의 스타일로 뛰어나게 리메이크 했다. 신상옥 의 영향력은 여전했는데 그의 < 연산군 >(1961)과 < 폭군 연산 >(1962)을 잇는 < 연산군 >( 이혁수 , 1987)과 < 연산일기 >( 임권택 , 1988)가 등장했다. 계유정란을 다룬 < 사약 >( 김효천 , 1984), 당시 사대부와 왕실을 농락했던 여인의 이야기 < 어우동 >( 이장호 , 1985) 등도 만들어졌다. 임권택의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5)도 빼놓을 수 없는 ‘사대부 사극’이다. 배창호 는 < 황진이 >(1986)에서 미학적 실험을 했고, <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 >( 박철수 , 1987)도 당대 사극의 독특한 지점이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어우동> <연산일기>. 1980년대 ‘A급 사극’의 계보. 여기까지는 1980년대 나름의 ‘A급 사극’ 리스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극’, 즉 ‘B급 사극’, 좀 더 구체적으로 ‘에로 사극’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80년대 에로 지형도에서 사극이 처음부터 야한 기운을 얻은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초엔 홍콩과의 합작이나 위장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무협 사극이 쏟아졌고, < 팔불출 >( 고응호 , 1980)처럼 코미디나, 호러 장르 혹은 종교 영화 등과 결합되었다. 변화의 조짐은 1980년대 중반에 보였다. <어우동>과 < 변강쇠 >( 엄종선 , 1986)는 에로의 원투 펀치와도 같은 결정타였다. 특히 <변강쇠>는 모든 것을 규정했다. 이 영화의 변강쇠( 이대근 ) 이후 절륜한 정력을 지닌 거구들이 스크린에 횡행했으며, 옹녀( 원미경 ) 이후 독거미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치명적 성욕의 소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민속의 장이었던 사극은 바야흐로 적나라한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강쇠>의 시작은 의외로 근엄하다. 18세기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변강쇠>는 이 영화의 의의를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성 윤리의 해학적 의미의 참뜻을 에로티시즘으로만 간과하려는 상업성을 탈피하면서, 그 시대의 유랑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서사적 영상미로 승화시켜 무분별한 성은 곧 자기 파멸이라는 교훈을 던짐으로써, 우리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에 재조명하고자 한다.” <변강쇠>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모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변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옹녀의 유랑으로 끝을 맺는다. 다소 중언부언하는 서론이지만, 판소리 <가루지기전>을 원작으로 하는 <변강쇠>는 에로티시즘을 해학과 교훈의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다. 해학이라 한다면 정사로 산이 뒤흔들리며 옹녀 때문에 줄초상이 나 한 마을 남자의 씨가 마르는 식의 과잉된 성적 표현일 것이다. 한편 교훈이라면 술에 취해 장승을 뽑은 변강쇠가 신령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정력의 과시가 불러온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에로 사극은 교훈보다는 해학에 방점을 찍으며 < 고금소총 > 시리즈( 지영호 , 1988~95) < 호걸 춘풍 >(이혁수, 1987) < 이조 춘화도 >( 박호태 , 1988) < 껄떡쇠 >( 김진국 , 1989) < 후리꾼 >(최거영, 1991) 등 ‘호색한’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방사를 벌이는 영화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에로 사극의 위대한(!) 점은 단지 남자의 욕망만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변강쇠>에서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는 옹녀다. 변강쇠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딜레마는 언제나 욕정의 결핍 상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는 모두 죽는다. 남성의 죽음을 담보한 섹스의 히로인 옹녀. 그녀는 언제나 겁탈이나 보쌈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수절 과부의 반대편에 있는 공격적 섹슈얼리티의 여성이다. <변강쇠>의 첫 장면, 옹녀는 첫날 밤에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남성의 옷을 벗기고 불을 끈다. 첫날 밤 장면은 과거의 사극에서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변강쇠>의 옹녀는 그 관습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적극성을 보여주며, 이어지는 정사 신에서도 그녀가 섹스를 리드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이대근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간판 스타였다. (왼쪽부터) <호걸 춘풍> <고금소총> <가루지기>의 이대근. 변강쇠뿐만 아니라 옹녀 캐릭터도 이후 후손들을 거느리며 이른바 ‘궁합 장르’, 즉 강한 양기와 음기를 지닌 남녀가 드디어 만나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들이 등장한다. < 속 변강쇠 >(엄종선, 1987) < 변강쇠 3 >(엄종선, 1988)를 비롯 < 가루지기 >( 고우영 , 1988) < 합궁 >( 남기남 , 1988) < 고금소총 2 >(지영호, 1990) < 색녀도 >(박호태, 1990) 등이다. 옹녀가 영감을 준, 에로 사극의 또 다른 흐름은 ‘유랑녀 서사’다. 이것은 <어우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마치 ‘호스티스 멜로’를 연상시킨다. 가난, 집안의 몰락,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공동체의 추방…. 여러 이유로 떠도는 여성은 결국 몸을 팔게 된다. 여성의 운명성을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컨셉트로, < 됴화 >( 유지형 , 1987)는 아예 저주를 타고난 여성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후 < 호호전 >(박호태, 1988) < 들병이 >( 유진선 , 1989)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에로티시즘’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에로 사극 역시 사극 장르의 한 갈래였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했다. 즉,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이 장르의 많은 것을 규정했고, 여기서 만들어진 긴장 관계가 오히려 에로티시즘 강화하기도 했다. 이른바 ‘씨받이 장르’는 대표적이다. 반드시 남자를 통해 대를 이어야 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대를 잇기 위해 소실을 두거나 오로지 아들 생산을 위한 도구인 ‘씨받이’를 두곤 했다. 이 설정에서 수많은 변주가 이뤄졌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대표적. <변강쇠> 시리즈의 엄종선 감독이 만든 < 사노 >(1987)은 숨겨진 수작인데, 나이 든 양반이 하녀 오월(원미경)를 건드리자, 그녀와 결혼을 약조한 머슴 들판(이대근)은 오월을 데리고 도주한다. 이외에도 < 잦은 방아야 >( 김병기 , 1989) < 살꼬지 >( 김인수 , 1989) < 요화경 >(박호태, 1988) < 소녀경 >(박호태, 1992) 등이 있으며 < 빨간 앵두 > 시리즈는 3편(박호태)에서 갑자기 사극으로 선회해 씨받이 이야기에 <변강쇠> 콘셉트를 결합한다. <변강쇠>로 신드롬을 일으킨 엄종선 감독, 이대근, 원미경이 다시 만난 <사노>는 숨겨진 수작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서늘하면서도 통렬하다. 씨받이만 있었을까? 아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집안에서 그 문제가 남자 쪽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마님과 은밀하게 통정할 ‘씨내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로 튼실한 머슴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이 분야 최고의 걸작. 하지만 이후 에로틱해지면서 약간은 <변강쇠> 톤으로 변했고, <소녀경>에선 씨받이와 씨내리가 관계를 맺는 단계에 이른다. 이외에도 < 홍두깨 >( 김준식 , 1990) < 씨내리 >(남기남, 1993) 등이 있다. <씨받이>처럼 여성의 육체(자궁)을 어떤 도구로 이용했던 과거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있었지만. 씨받이와 씨내리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자극적 캐릭터로 인해 대부분 선정주의와 소재주의로 치달았다. 그러면서 개척된 분야가 이른바 ‘회춘녀’ 장르다. < 어울렁 더울렁 >( 차성호 , 1986)은 그 시작. 이른바 ‘목밀녀’, 쉽게 말하면 ‘대추녀’ 순이( 김문희 )가 주인공이다. 대추녀는 양반들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둔 스무 살 정도의 하녀로, 아침에 여성의 그곳에 대여섯 개의 대추를 넣었다가 저녁에 꺼내먹으면 젊은 여성의 기를 받아 정력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씨받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육체를 도구화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종종 몸을 묶는 SM 관계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소 변태적인 설정이지만, “올해 같은 흉년에 살아남기가 쉬운 줄 아느냐!“라는 양반의 호통 앞에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유랑녀’처럼 ‘대추녀’도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 목밀녀 >(차성호, 1988) < 회춘녀 >( 방순덕 , 1989) < 춘화춘풍 >( 최기풍 , 1990) <소녀경> 등 적잖은 영화들이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조 춘화도>나 <고금소총> 같은 영화들인데, 이 영화에서 긴 세월 동안 병을 앓던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그 병을 치유한다. ‘회춘녀’의 반대편엔, 여성의 묵은 성욕을 해소시켜 주던 ‘육봉남’들이 있었던 셈이다. (왼쪽) <홍두깨>는 씨내리 장르의 영화다. (오른쪽) ‘대추녀’ 장르의 시작인 <어울렁 더울렁>. 이 장르는 종종 SM 컨셉트로 흐르곤 했다. 가부장적 계급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수절하는 젊은 과부다. 언제나 은장도를 꺼내 들고(하지만 자결하진 못한다), 열녀문 기둥을 어루만지는(결국 그것은 무너지게 된다) 그녀들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가장 모순적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시대의 규율에 의해 한없이 욕망을 억눌러야 했지만 결국 본능을 선택한다. < 마님 >(김인수, 1987)는 이 분야의 전형적인 작품. 마님(김문희)은 몇 년 째 수절 중이며 열녀문을 하사 받은 정숙한 여자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절을 찾아 불심에 호소하지만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하인( 백일섭 )은 마님을 사랑하지만 이때마다 마님은 “이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냐!” “그래도 이놈이!”라며 물리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얼싸안게 된다. 김인수 감독의 <마님>. 마님과 머슴은 결국 맺어진다. 그러나 과도한 억압은 반드시 저항과 전복을 낳게 된다. 욕망은 절대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인데, < 사방지 >( 송경식 , 1988)은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이러한 테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흉악범과 광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방지( 이혜영 )는 겉모습은 여성이지만 남성을 지닌 양성구유다. 절에서 성장하는데 예불 드리러 오는 청상 과부 이소사( 방희 )는 사방지를 거두어 몸종으로 데려가지만, 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사방지>는 수절하는 마님, 계급 사회의 모순, 여성의 운명성 같은 사극의 관습을 계승하면서도 파격을 추구하며 ‘여인 잔혹사’의 서사에 균열을 낸다. 이외에도 < 이조 여인숙명사 청상계 >( 윤석봉 , 1991)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양병간 , 1993)처럼 과부의 욕망을 해방시킨 ‘안티 열녀문’ 콘셉트의 사극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계급 사회 속에서도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들이 만만치 않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양반집 마님이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며 긴긴 밤을 외롭게 보낼 때, 옹녀나 도화 같은 ‘타고난 성적 파워’를 지닌 여성이나 무당이나 주모 혹은 하녀들은 거침 없이 방으로 남성을 끌어들였다. 1980년대 가장 파격적인 사극 <사방지> 마지막으로 언급할 이 시기 에로 사극의 특징은 느닷없는 판타지다. < 변강쇠 2 >(엄종선, 1987)에서 변강쇠(김진태)가, <가루지기>에서 옹녀(김문희)가, 소변으로 폭포를 만든 후 수많은 영화들이 이 엄청난 과장법을 예사롭지 않게 모방했다. 시간 파괴의 경향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호걸 춘풍>에서 춘풍(이대근)은 기생들과 디스코를 추며 “백 년 후에 유행할 춤”이라고 말하고, < 장미 속의 살모사 >(강구연, 1989)의 머슴 살모사( 조형기 )는 ‘라 밤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추기도 한다. 강구연 감독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에서도 이런 파격을 시도하는데, 조선 시대 여인들이 캉캉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 고금소총 3 >(지영호, 1995)과 < 애마와 변강쇠 >( 김문옥 , 1995)는 타임머신 콘셉트를 이용해, 배지기나 변강쇠 같은 캐릭터가 현대의 필리핀과 서울에 나타나 자신의 파워를 과시한다. 1980년대 사극의 파격적인 상상력들. (상단) <빨간 앵두 3>과 <애마와 변강쇠>. 현대로 온 배지기와 변강쇠. (하단 왼쪽) <장미 속의 살모사>에서 기생은 현대식 속옷을 입고 있다. (하단 오른쪽)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캉캉 춤. 당대 에로 사극의 시그니처 숏인 ‘방뇨 신’. (상단 왼쪽) 그 시작은 <변강쇠 2>였다. (상단 오른쪽) <고금소총>에서 달비의 강력한 방뇨. (하단 왼쪽) <합궁>에서 남자의 힘찬 방뇨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하단 오른쪽) <미지왕>(1996. 김용태)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방뇨 신을 패러디한다. 어쩌면 1980년대 충무로 지형도에서 에로티시즘 사극은 가장 과격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장 욕망에 충실했으며,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양산했던 장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극은 10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에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2003)나 < 왕의 남자 >( 이준익 , 2004) 등을 통해 ‘웰메이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 ‘B급 사극’의 저렴하면서도 진솔한 상상력이 되돌아오진 않았고, < 가루지기 >( 신한솔 , 2008) 정도의 시도가 있을 뿐이었다. + 이로써 작년 말부터 시작된 1980년대 장르 영화에 대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그리고 가끔씩 피드백을 주셨던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지면을 열어주신 한국영상자료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콘셉트로 옛날 영화들을 정리할 날을 기약하며, 10회에 걸친 연재를 닫는다.
한국영화걸작선과 < 무릎과 무릎사이 >( 이장호 , 1984)의 만남. 만약 이 ‘기이한 조합’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아마도 당신은 성적 판타지가 만개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무릎과 무릎사이>를 본 관객일 가능성이 높다. 때로 어떤 영화는 잊히지 않는 몇몇 장면을 뿌리 삼아 밑도 끝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다가, 어느새 ‘상상의 영화’가 되어 원작을 압도하곤 한다. <무릎과 무릎사이>가 바로 그런 영화다. (관람 당시 중고생이었던) 한 남자의 인생을 관람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 나인 하프 위크 >(애드리안 라인, 1986)에 필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한국영화. 그것이 <무릎과 무릎사이>다. 강렬한, 너무나도 강렬한 이미지 < 무릎과 무릎사이 >는 3S(섹스, 스포츠, 스크린)로 대변되는 198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한국 영화보다 선정적인 제목을 지닌다. 특히 그 주인공인 이보희 가 의자에 앉아 무릎을 치켜세운 모습을 전면에 노출한 포스터는 이 작품에 농밀한 느낌을 더한다. <무릎과 무릎사이>의 제목이나 포스터의 관능에 견줄만한 영화는 < 올 레이디 두 잇 >(틴토 브라스, 1994)이 유일하다. 어쨌든, <무릎과 무릎사이>는 제목과 포스터에서 남성 관객의 에로틱한 욕망을 낚아채려 했고, 그해 한국영화 흥행 2위라는 성적은 이 전략이 꽤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장호 는 이 영화의 성공과 함께 1980년대 중반 충무로를 대표하는 흥행사로 재도약한다. < 무릎과 무릎사이 >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경멸할 만한 것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실제로 강간에서 쾌감을 얻는 여성 주인공 자영( 이보희 )의 캐릭터나,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하여 관음증적 쾌락의 도구로 삼는 연출, 타락한 여성을 남성이 용서하고 구원하는 도식적 드라마 등, <무릎과 무릎사이>는 여성 비하적인 설정과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이 <무릎과 무릎사이>에 대한 비평적 접근을 가로막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무릎과 무릎사이>는 무관심 속에 버려두기에는 텍스트의 ‘비균질성’이나, 남성의 가학적인 성적 판타지를 안전하게 유지시켜주는 상업적으로 영리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 관객의 기억에 평생 달라붙을 만한 강렬한 쇼트의 힘만큼은 한국영화 중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 무릎과 무릎사이 >에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몇몇 장면이 있다.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자영에게 그녀에 대한 소유욕으로 가득한 동창( 임성민 )이 찾아온다. 동창은 무릎을 중심으로 자영의 신체를 애무한다. 이장호 는 동창의 행동과 자영의 리액션을 과감하게 이어 붙인다. 동창의 손을 따라서 자영의 몸을 부유하는 카메라. 자영의 입술. 이 모든 것의 빅 클로즈업. 그리고 그 반복. <무릎과 무릎사이>는 관객들에게 클로즈업이 사물의 확대라는 것, 우리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영화적 기법이라는 것을 온전하게 가르쳐준 영화다. 이 장면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조금도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무릎과 무릎사이>의 압권은 비 오는 밤 벌이는 동창과 자영의 정사 장면일 것이다. 이장호는 해변 장면보다 이 장면에서 더욱 과감해진다. 폭우, 천둥, 번개와 두 사람의 정사가 앙상블을 이루면서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중 가장 압도적인 ‘야한 이미지’를 완성한다. 어린 시절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가 있다면, 이 장면에서 의외로 노출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우리 세대에게 가장 ‘야한’ 장면으로 착시적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것이 쇼트의 힘이고, 이미지의 강렬함이다. 이장호는 신체의 노출이 아니라, 음향이 가미된 쇼트의 리드미컬한 구성만으로 그것을 성취한다.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 < 무릎과 무릎사이 >에는 두 무릎 사이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사이’가 존재한다. 자영의 동생은 마이클 잭슨에 빠져있고, 이는 전통을 추구하는 자영의 연인 조빈( 안성기 )와 대조를 이룬다. 또한 억압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순결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자영을 성추행하는 서양인 선생의 대립이 있다. 실제로 자영이 서양인 선생이 성추행했던 무릎에 페티시즘적 쾌락을 갖게 된 것은 억압적인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자영은 한국 사회가 전통과 서구화로 찢긴 지점, 바로 그 ‘사이’에 위치하는 인물이다. 달리 말해, 그녀의 페티시즘적 쾌락은 전통과 서구화의 충돌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혼란의 병적 징후인 것이다. 이장호 가 전통적 판소리와 클래식 연주의 교차 편집 등의 장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 무릎과 무릎사이 >는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해 여성의 신체를 경유한 것일까, 아니면 여성의 신체를 탐닉하기 위한 알리바이로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끌어들인 것일까? 어쩌면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이 작품을 두 질문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당시에 이장호 는 ‘내 영화의 겉포장은 섹스, 내용물은 정치’라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에 남은 것은 내용이 아니라 겉포장이다. 한마디로, 이미지가 모든 것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