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시켜주는 남자들:많이 쌓였어요
- 감독
- 토미죠 타로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아오이 시호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호프 >(나홍진, 2026)는 우리가 알던 비평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비평 글 각각의 탁월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비평의 작동 방식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을 특정한 장에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제도적 패배다. <호프>는 제2의 < 디 워 >(심형래, 2007)가 아니었다.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 사이에선 <디 워> 정도의 화제가 된 것만 같았고, <호프>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고 갔음을 누구나 느꼈다. 하지만 <호프> 주위엔 논객이라 할 만한 매개가 없었다. 2007년의 <디 워> 사태는 진중권 평론가를 비롯한 일련의 기성 평론가 진영과 포털 사이트에 모인 대중의 갈등 양상으로 번졌었다. 양극단에 다중 다수의 논객이 생겼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할리우드를 향한 사대주의 등 여러 사회적 담론이 부풀었다. <호프>엔 말만 있고 뼈가 없었다. 상술한 논객, 달리 말해 중심 지대가 된 논지가 부재했다. 이것은 <호프> 스스로가 원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수의 공식 석상에서 밝혔듯 나홍진 감독은 앞만 보고 즐기는 영화를 택했다. 장재현 감독이 < 파묘 >(2024) 개봉쯤 밝혔던 태도와도 비슷하다. 극장 엔터테이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대중영화 감독들은 다 같이 ‘보기만 해도 재밌는’ 영화를 꿈꿨다. <호프>도 그렇듯 보인다. 1980년대를 가리키는 다소간의 이미지가 영화에 내포되었기는 하나 이것은 기호가 되지 않는 기표에 가까웠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이후 《씨네21》 김소미 기자가 설명한 것처럼, [1] <호프>는 작중 ‘서브 텍스트’를 최대한 장난스럽게 소거해 가는 영화였다. <호프> 개봉 이후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이든 반대하는 이들이든, 1980년대라는 맥거핀에 관해선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하지 않았다”기보단 그러질 “못했다.” 다시, <디 워>의 사례처럼 어떠한 담론의 실재라도 만들었냐의 차원에서 비평은 <호프>를 이기지 못했다. 전술했듯이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매체와 창구, 플랫폼이 <호프>로 휩싸이긴 했다. 말 그대로 휩싸였다. 그저 분위기에 휩싸인 듯 보였다. 매체부터. 《씨네21》은 <호프>의 작가, 장르, 서사 등에 관해 비평했다. 이어서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의 얄 사다트 평론가,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의 글을 실었다. 글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며, <호프>라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호프>에 대해 생산됐던 말들이 순환적으로 돌고 도는 허무의 궤에 빠졌단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좋은 비평일지라도 대중들의 거친 찬동이나 거센 반발을 그러모으진 못했다. 비평이 꼭 대중과 영합해야만 한다는 고루함의 태도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호프>에 대해서는, 한여름의 텐트폴 영화에 있어서는 제 몫을 했어야 만족스러웠을 듯하다. 대신 <호프>를 두고는 비평적 담론에 대한 논의보단 평론가 개인의 인격과 이력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잇따르기까지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동진 평론가의 말조차 그랬다. [2] <디 워> 마지막의 ‘아리랑’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별 비평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더 큰 사태다. 질량 없는 부피, 맥락 없는 요소, 총체 없는 부분. 얄 사다트 평론가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larger than life’라는 표현은, 어쩌면 위대한 블록버스터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른다.” [3] 라며 <호프>를 상찬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한국에서 <호프>를 두고 발생한 일련의 현상에 빗대어진다. 니콜라스 레이가 <실물보다 큰> 그림자를 보여줬듯이 <호프>에 대한 비평은 그것의 실재보다 큰 음영으로만 존재했다. <호프>에 대한 말은 흐릿했고, <호프>에 대한 말들에 반응하는 말들이 더 뚜렷했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해야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듀나 평론가의 말처럼 “<호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가 아무 생각을 안 할 때” [4] 이기 때문이다. <호프>는 그 내부의 원리에 천착할수록 힘을 잃는 덩어리다. 이 작품이 어느 IPTV를 통해 수입된 이름 모를 감독의 영화였다면 많아야 수백 명 정도가 기억하는 B급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프>는 한국 영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700억 원(추정)짜리 대작이다. ‘컬트’가 될 수 없다. 세상에 수백억 원을 들여 수백만 명이 봤으며 북미와 유럽에 배급된 컬트영화란 성립하지 않는다. 존재론적인 모순. <호프>는 작아야 하지만, 너무 커졌다. 역도 성립한다. 더 커야 하지만, 너무 작아져 버렸다. 모순은 더해진다. <호프>는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국내 평자들에게 모종의 비평적 요구를 선보인 ‘작가주의적’ 작품으로 소비됐다.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하나의 토큰처럼 사용한 유럽 영화계의 전략이었을까. 여하간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나홍진은 봉준호 , 박찬욱 이후 한국영화를 견인할 것만 같은 인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상황에 <호프>를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매체와 평단의 방기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말해도 문제, 말하지 않아도 문제. 하지만 마땅한 방법론 따위 없는 듯한 절벽. 필자는 이에 관해서 ‘한국식 작가주의의 패배’라는 요지의 단상을 남겼다. [5] 영화보다 큰 곳이 아니라 감독의 세계관에 들어가 비평하던, 즉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의 영화를 작가 개인의 것으로 탐색하던 2000~2020년대의 작가주의 비평으론 <호프>에 대적할 수 없단 것이다. <호프>와의 싸움은 애초부터 패배의 운명, 허무의 감각을 타고났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호프>의 내적 가치는 딱히 없다. 이 가치 없음의 가치에 관해 구구절절한 글을 쓴 적도 있다. [6] <호프>에 부여된 비평의 질료란 영화 바깥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그 어떤 틀로도 규정되지 않는 아웃라이어이기에, 장르적으로도 영화사적으로도 작가주의적으로도 큰 가치가 없는 부수이기에, 한국영화가 꾸준히 배태해 온 다성적 모방의 성취에 극도로 기대고 있기에, 대신 내부적으로는 자체적 맥락을 일절 가미하지 않았기에 유의미” [7] 하다. 간단히 말해 <호프>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영화 매체의 테두리를 오고 가는 원심력의 원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작품과 작가를 탐하기보단, 비평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제도의 지형도를 더 면밀히 살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비평 제도와 비평적 틀은 ‘바깥’을 이야기하는 힘을 잃어왔다. 구심력을 택해왔다. 임재철 평론가는 1999년 《필름 컬처》 1호의 권두에서 이 사태를 예견했다. “현재 한국의 영화 비평은 글쓰기가 응당 가져야 할 제도와의 긴장감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있다. 비평 자체가 마치 자신이 제도의 일부분인 것처럼 -심지어 아무런 대중적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도-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목격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비평의 자족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평이 영화 창작 주체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화 제도의 구성원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산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통은 위상의 차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거칠게 볼 때 한국식 작가주의란 감독들을 신봉하고, 그들의 미시 세계를 해제해야 한다는 1990년대 전후 국내의 시네필리아적 계보에서 연장했다. 그런데 <호프>에서 나홍진의 작가성 같은 것은 이 거대한 콘텐츠 놀음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었고, <호프> 비평에 제대로 맞물릴 수 없었다. 비평은 작품과 제도, 그 어느 곳과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이가 문제의식을 느꼈다.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을 느낀 듯하다. 『호프 끝장』 [8] 이라는 제목으로 8월 31일 출판 예정인 하나의 평론 선집은 이에 관한 리액션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책의 소재는 <호프>를 둘러싼 모든 긍정과 부정의 반응이며, 이 책은 반응을 생산하는 모든 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다.”라는 책 소개 글이 단서다. 이야기를 더 나누자는 제스처이며, 유의미한 시도인 듯하다. 다만 이러한 기획조차 <호프>의 허무를 완연히 이기긴 힘들 것이라 슬그머니 비관해 본다. 아직 책의 내용을 상세히 읽진 못했지만, 기획 배경과 사전 공개된 한 꼭지의 다음 내용에 미루어 보았을 때 그렇다. “그렇기에 <호프>는 신정원 과 < 차우 >를 다시 불러내며 ‘한국의 시네필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9] 두 가지의 의문이 드리운다. 첫째, 『호프 끝장』이 택한 책의 물성은 <호프>란 허무를 모종의 틀에 가두기 위한 방책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호프>의 범석( 황정민 )과 주민들이 외계 종족을 보고 느낀 공포의 감정과 유사한 반응일 테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제야 <호프> 안쪽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글 역시 <호프>의 허무를 이기지 못한 사례의 하나란 이야기다) 정체 모를 언어가 눈과 귀를 파고들 때, 우리의 본능은 자연스레 공포를 느낀다. 도망가거나 공격한다. 『호프 끝장』은 후자인 듯하다. ‘끝장’이라는 제약의 언어를 통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의 확산을 한 주머니에 가두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낯선 괴물을 포박하여 감금하듯이 비평가들은 이것에 대한 ‘끝장’을 원하는 듯 보인다.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호프>의 크기는 웬만한 주머니의 용적량을 넘어섰다. 둘째, 왜 한국의 ‘시네필’들이 <차우>로 단결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증의 시작은 꽤 개인적이다. 필자 역시 저 부름에 사전적으로 응답한 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7월 6일 <호프>의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필자는 개인 SNS에 <호프>의 뚜렷한 레퍼런스가 <차우>임을 언급했다. [10]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겪었던 세대에게, <차우>와 신정원 감독은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충무로의 자기반영적 패스티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호프>는 이런저런 장르적 요철을 뿌리 삼아 발진한 대중영화이기에 <차우>의 호명엔 어느 정도 당위성이 생긴다. 틀린 말이란 의도가 아니다. <호프>와 <차우>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 ㈜영화사 수작,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사진: Daum ) 여기서 짚고 싶은 점은 <호프>가 <차우>의 적자라든지 하는 비평적 주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라 말하는 필자의 태도야말로 이 속 간지러운 의문의 원흉이다. 김신 평론가는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에서 동시대 한국 시네필들의 폐쇄성 또는 군집성을 지적한 적 있다. “다수의 시네필 집단은 종종 영화와 비평에 관한 정보를 얻는 몇 가지 디지털 채널을 일종의 단일 신경망처럼 공유하는 초개체 생물 군집처럼 보일 때” [11] 가 있다는 것이다. 적확하다. <호프>에 대한 <차우>의 연상은 어느 순간부터 동시대 평자들에게 하나의 집단적 기억으로 각인됐다. ‘시네필들의 단결’은 이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끈끈하다. 그럼에도 재차 집합 구호를 외치는 일은, 지금의 ‘시네필 단결’이 대중적으로 유효한 테제를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는 허무감의 역설적 발로일 것이다. <호프>와 <차우>의 비교 논지는 작금 시네필리아적 행위의 특질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김병규 영화평론가는 동시대 시네필리아들이 20세기(한국이라면 2010년대 이전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기억에 짓눌려 비명을 지른다고 썼다. “어쩌면 동시대 영화는 더 이상 유효한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눌어붙은 세계를 다시 조형하는 시네필리아의 작업이 된 것” [12] 이다. 요즈음 대개의 시네필리아는 과거의 유산을 파먹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호프>를 보며 한국 장르영화의 계보를 따지거나 <차우>를 떠올린다. 이럴수록 작품 내부를 향한 비평에 더해, 그 작동 방식과 환경까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투보다 전쟁. <호프>에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주민들을 모을게요 『호프 끝장』은 <호프>를 끝장내지 못할 것이다. “비평계 공론장이 점차 고립된 상황, 그리고 그게 고립된 원인이 비평계 내부에 있다고 말하며 또 다른 고립이 생성되는 상황의 원인을 몇몇 평자들의 책임”(김신) [13] 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환경 변화가 수반됐다. 여기서 그 변화와 일일이 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힘도 없다. 작금의 상황에 놓인 그 어떤 비평적 주체도 <호프>를 둘러싼 제도의 불명확성을 다잡진 못한다. 좁디좁은 비평계란 ‘군체’가 700억 원짜리 <호프>를 이기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호프>는 약 59조 원짜리 X(2022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금액)를 이기지 못한다. <디 워> 사태를 재연할 역량은 소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가 다수의 말을 쏟아 내는 쪽이 훨씬 큰 경제력을 생산한다. 이 시장 논리의 당연함은 거의 장르적일 정도로 세계에 고착됐다. 어쩌면 “호프 끝장”이란 제목은 이 한계를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자조한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일단 주민들을 모아 대응하겠다는 성애( 정호연 )의 말처럼, 할 일은 해야겠다는 종류의 동력이었을까. 마음이 이상하다고 요령부득 뇌까리기만 하는 범석처럼 무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덧붙여 필자 나름의 극복 방식도 제언해 보고 싶다. <호프>에 대한 비평의 (뒤늦은) 승리 방식이란 두 가지로 고려된다. 첫째, <호프>의 자결을 기다린다. 상업영화의 자결이란 개봉 상영의 끝, 그로 인한 대중들의 무관심이다. <호프>는 거대 외화들의 공습 시점에 맞춰 이미 피를 흘리는 중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이다. < 환송대 >(1962)에 관한 크리스 마커 자신의 말, “사랑은 시간에 대한 유일한 승리”를 변주하자면 “시간은 <호프>에 대한 비평의 유일한 승리”일 것이다. 하나로 뭉치지 않은 채 맥락 없이 흐트러져버린 비평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위해선 훨씬 더 긴 시대의 틈이 필요하다. 쓰고 보니 두 방식 모두 ‘하릴없는 기다림’의 다른 말이다. 범석이 왜 무력해졌는지 잘 알겠다. <호프>에 대한 말들을 모으고, 그것들의 쓸모없어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성애처럼 낙관으로 억지 부리듯이, 의도적으로 최대한 많은 문장을 모으려 했다. 결론적으론 이 글 역시 무수한 실패의 종이 쪼가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호프>의 안쪽처럼 난삽한 구성이 되더라도 일부러 그러려 했다. 여하간 그 과정에서 《씨네21》, 《필름 컬처》와 같은 오래된 영화 전문지부터, 《쿨투라》라는 문화지, 독립출판물, X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블로그, KMDb 영화글 등의 여러 창구를 통과했다. 지금 영화에 관해 (필자처럼 나름 고관여로) 말하고 쓰는 이들의 경로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 모일 테다. 하여 이런 상상도 해본다. ‘성애가 주민들을 한곳에 모은다면, 외계인들은 외려 더 손쉽게 인간들을 절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란 무서움.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사족 끝으로 정직하게, 이 글의 원료는 필자의 사적 회한이자, 자의식 과잉의 내적 독백이었다. 설령 아무도 듣지 않았더라도, 왜 <호프>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을 하지 못했을까. 빙빙 돌려 그 허무의 가치를 어떻게든 격상하려 한 것일까. ‘<호프>에 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겠다는 지각은, ‘<호프>를’ 말할 수 있겠단 사실과 같지 않은데 말이다. 정치에 대한 영화와 정치적 영화를 갈랐던 고다르의 말처럼, 저 둘은 엄연히 다르다. 태초부터 <호프>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씨네21》 지면에 별점 4개를 주었다는 일의 책임감이었을까. 그렇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작가적 기호(記號)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嗜好)로 유희할 순 없는 것일까. (사실 그러기는 싫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려는 의지의 동반사멸” [14] 이 팽배한 이 시대에, 모든 비평은 에세이가 될 수밖에 없을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여 이 글처럼 우리는 계속 영화에 ‘관한’ 무언가에 더 크게 반응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모든 물음은 마베이요의 빛나는 심장처럼 아무 의미 없는 허세에 가까울까. 어쨌거나 한 명의 관객이자 평자로서는 <호프>의 허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 <호프>를 두고 무슨 말이 남았나? 아니, 애초에 왜 말했나? *** [1] “ [특집] 백주 스릴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 칸 경쟁부문 <호프> 첫 시사 리뷰 ”, 《씨네21》 1558호, 2026. 5. 29. [2] “ 이 세상은 아직 ”.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개인 블로그에 <호프> 별점에 대한 일종의 후기를 남겼다. 2026. 7. 20. [3] “ [기획] 가속이 향하는 곳, 얄 사다트 평론가가 본 <호프> ”, 《씨네21》 1568호, 2026. 8. 6. [4] “ [특집] <호프>의 외계인은 왜 백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 외계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장르 읽기 ”, 《씨네21》 1566호, 2026. 7. 24. [5] “ 사회는 영화보다 크다. 네 가지 관점으로 보는 2026년➊ 한국식 작가주의의 한계를 마주한 2026년 ”, 《씨네21》 1570호, 2026. 8. 21. [6] “ [영화]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유의미하다. ” 《쿨투라》 2026년 8월호, 2026. 7. 29. [7] 4)와 동일. [8] 『호프 끝장』 알라딘 북펀드 웹페이지 . [9] 『호프 끝장』의 출판사 ‘디깅룸’의 X(구 트위터) 게시글 . [10] https://www.instagram.com/p/Dacd6WLj8aH/?igsh=M285cnVvcmZ5cXF1 [11] 김신. “ 사진적 이미지에서 확률론적 이미지로: 2020년대 전후 시네필 커뮤니티와 영화 속 대화에 관한 단상 ”, 2024. 11. 21. [12] “ [비평] 우리 모두 곤경에 처해 있다, 김병규 평론가의 <여행과 나날>과 <슈퍼 해피 포에버> ”, 《씨네21》 1540호, 2026. 1. 21. [13] 10과 동일. [14] 이광호. “ 1인칭 사이 1인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 ”, 2024. 5. 21. 이우빈(영화기자) l 《씨네21》 기자. 친구가 없어 영화관에 가고 집에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본 1997년생. 최근엔 저널리즘 비평이 대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 중.
아트하우스 모모 매표소 전경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국내 최초 대학 내 상설영화관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하우스 모모 는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2008년 8월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대학 내 상설영화관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지하 4층에 자리하고 있다. ECC는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건물로 연 면적 2만여 평에 총 6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설계 당시부터 영화관을 포함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영화관 이외에도 강의실, 식당, 은행, 약국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다. 건물이 워낙 커서 처음 방문하는 경우 3번 출입구를 미리 확인하고 오는 것이 좋다. ECC 건물 3번 출입구로 들어와 좌측 끝까지 오면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다. 1관이 먼저 보이고 그 옆으로 서가라는 극장 공간과 매표소, 2관이 나란히 이어진다. 현재 아트하우스 모모는 총 2개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두 관 모두 휠체어석 2석 포함 138석이다. 극장 외관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전경 영화 관람에 있어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개관 당시에는 디지털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필름 상영 시스템도 함께 도입해 상영을 진행했다. 객석 경사도 다른 극장에 비해 높게 설계되어 앞사람이 스크린을 가리지 않도록 하였으며, 어떤 영화를 상영하더라도 화면비에 맞춰 마스킹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이 더해져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이름을 서울의 젊은 시네필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화여대 안에 영화관이 개관하다 보니 개관 초 남성 관객들로부터 출입 가능 여부를 문의받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모모’ 라는 이름과 영화사 백두대간 영화관의 이름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1973)와 한 편의 영화로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의미하는 ‘매직 오브 무비 오아시스(Magic Of Movies Oasis)’라는 어구를 합쳐 만들어졌다. 모험심이 많은 소설 『모모』의 주인공처럼 영화관이 예술영화 불모지를 개척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모험을 떠나는 듯한 캐릭터를 극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1994년에 설립된 영화사 백두대간은 자사에서 수입·배급하는 다양한 해외 예술영화들을 국내에 전달하고자 예술영화관을 만들어왔다. 동숭씨네마텍과 씨네큐브 광화문을 거쳐 현재는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국내 극장 문화를 한 단계 높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목적 아래, 전 세계 영화 중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상영작과 기획전, 그리고 영화제들 모모의 상영작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신작 중심이지만, 백두대간의 색깔을 잃지 않기 위해 고전 영화를 중심으로 한 큐레이션도 분기별로 진행하고 있다. 2025년의 경우 신작 중심 편성, 영화 강좌 교육 프로그램 재개, 고전·장르 영화 기획전 강화, 신진 기획자나 단체를 발굴해 진행하는 협업 프로그램, 이렇게 4가지 방향으로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하반기에는 이전부터 함께해온 ‘ 아랍영화제 ’, ‘스웨덴영화제’, ‘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를 개최해 극장과 영화제의 색깔을 접목시키며 다양한 관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극장 로비 특정 국가의 영화제를 모모에서 자주 개최하게 된 것은 영화사 백두대간이 수입·배급해온 작품들이 주로 제3세계 혹은 유럽 영화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제 초기 기획 단계부터 극장 운영까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관 초기 환경영화제 와 아프리카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아랍영화제와 스웨덴영화제까지 유치하게 되었는데, 이 두 영화제는 특히 각 국가의 문화적 다양성과 가치관을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목표 아래 매년 개최하고 있다. 관객이 만드는 극장, 모모 큐레이터 아트하우스 모모는 영화 상영 이외의 프로그램으로 개관 초기에는 책,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장르를 접목한 교육과 청년 대상 영화교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모모가 운영된 지 17년째인 지금은 시네필 관객이 늘어나 예술영화와 고전영화 중심의 기획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트하우스 모모의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한 관객 참여 프로그램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관객이 주인이 되는 영화관’이라는 극장의 슬로건 아래 2010년에 시작된 ‘모모 큐레이터’는 관객들이 직접 극장의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기획하는 활동이다. 능동적인 관객이자 적극적인 영화관 방문자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으로 아트하우스 모모의 관객 정체성과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코로나19 기간 4년간 잠정 중단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다행히 2025년 초 재개되어 6월부터 영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다가오는 9월에는 ‘모모 큐레이터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1기부터 10기까지의 기존 참여자들과 운영자들이 실질적인 운영에 힘을 보탰다는 점이 관객 큐레이터 부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극장 1관 내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관객 변화 아트하우스 모모의 관객층 변화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나뉜다. 코로나 이전에는 연 10만 명 수준의 관람객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주 관객층은 시네필과 서대문구 주민들, 신촌 일대 대학생들로 이루어졌다. 코로나 이후에는 절반 수준인 5만 명 정도로 관객 수가 줄며 비대면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오히려 20대 초반 관객들이 극장에서 직접 영화를 보는 경험을 찾아 발길을 늘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동숭씨네마텍 시절부터 이어져 온 코어 관객층이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한편, 완전히 새로운 20대 관객층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평일 관객의 70~80%가 20대로, 오전에는 주로 서대문구 주민과 고전영화 관객이, 오후에는 20~30대 시네필과 인근 대학생들이 극장을 찾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말에는 전 연령층이 골고루 방문하고 있으며, 운영진은 코로나 이전 관객 수를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새로 유입된 관객과 오래된 관객 모두 아트하우스 모모의 시그니처로 꼽는 것이 매표소와 부활한 종이 티켓이다. 매표소에서 직접 사람을 통해 티켓을 끊는 행위 자체, 그리고 손에 쥐는 종이 티켓에 관객들은 남다른 만족감을 표한다. 종이 티켓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2017년 부활했는데, 코로나를 지나며 영화관을 찾는 이들에게 더욱 각별한 것이 되었다. 극장 내 서가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이화여자대학교 ECC 지하 4층, B402 2) 설립일 : 2008년 8월 (운영주체 백두대간 1994년 설립) 3) 대표자 : 조성모 (설립자 이광모 전 대표) 4) 공간구성 : 이화여대 ECC 지하4층 내 2개관과 매표소, 사무실 및 모임공간 5) 극장구성 : 2개관, 각 136석 + 휠체어석 2석, 총 276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오전 10시~ 오후 10시, 연중무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평일 10,000원, 주말 11,000원, 조조 6,000원, 기타 2,000원 추가할인(청소년, 우대, 이화여대생), 주차 할인(영화 관람 시 4시간에 2,000원, 두 편 이상 볼 경우 종일 5,000원) 8) 조직 - 백두대간 극장운영실에서 운영 - 구성원 6인: 운영실장(1인), 프로그래머(1인), 운영홍보담당(1인), 영사담당(1인), 매표담당(2인) 9) 주요 장비(영사 장비, 음향) - Christie CP2000 DCP 영사기 2대, 35mm 영사기 2대(미사용) - QSC DCA 1824 시네마앰프 등 취재 일자 : 2025년 7월 22일 글/인터뷰 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