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63
- 출연
- 신성일, 이경희, 도금봉, 최남현, 전계현, 이민자, 황정순, 김운하, 강미애, 방수일, 장명숙, 정애란, 김신재, 전옥, 임운학, 남춘역, 장훈, 이예성, 김웅, 임해림, 이업동, 최삼, 채랑, 윤일주, 김세라, 김경란, 조정자, 조하란
영화에서 오마주(homage)라는 말은 누벨바그 세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들은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학습’했고, 그런 다음 자신들이 경배하는 위대한 거장들의 영화에 대한 존경을 자신의 영화에 담기를 원했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첫 장면, 미셀과 그의 애인이 파리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로셀리니의 < 이탈리아 여행 >의 첫 장면이다. 영화 장면 안에 등장한 오마주는 영화사에 시네필 세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누벨바그 세대가 존경을 바쳤던 대부분의 거장들이 영화가 태어난 1895년과 거의 동시에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문법을 만들었고, 개념을 발명했으며, 과학이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하나의 역사, 하나의 전통, 임권택 을 시네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에게 아마도 가장 낯설게 들리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들이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 거리를 떠돌 때 임권택은 영화를 찍으면서 길거리와 세트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임권택은 취미에서 시작한 영화감독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직업감독이었다. 하지만 임권택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불규칙하지만 반복해서 마주치는 이상한 명단이 있다. 오마주를 바치는 것만 같은 영화들. 리메이크라고 하기에는 원작이 너무 희미하고, 그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하기에는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흔적을 남겨놓은 영화들. < 남자는 안 팔려 >와 빌리 와일더의 < 뜨거운 것이 좋아 >. < 바람같은 사나이 >와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칠형제>.(그때 임권택은 <황야의 칠형제>의 원본인 <칠인의 사무라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 30년만의 대결 >과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 게다가 그 영화들과 원작을 연결시켜 질문할 때마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셨다. “그때 그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본 거에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그 대답을 하시는 순간의 표정에서 기쁨의 시간을 읽는다. 그 대답에서 임권택 감독님은 자신의 영화를 뒤로 밀어버리고 그 바탕에 있는 밑그림으로서의 영화, 아마도 기억 안의 원(原)텍스트라고 불러야 할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기원에로 거슬러 올라갔다.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임권택은 영화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벨바그 세대는 앙드레 바쟁의 지도를 받았고, 앙리 랑그루아의 프로그램으로 고전을 보았으며, 서점에서 수많은 영화서적을 구할 수 있었다. 임권택은 첫 영화를 1962년에 찍었다. 그때까지 그는 단 한 권의 영화책도 읽을 수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법을 배움. 배운다는 문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학교 바깥에서 영화를 배운다는 문제. 혼자서 스스로 영화를 배운다는 문제 앞에 서야 했을 때 임권택은 (고전이 아니라) 개봉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그가 좋아한 영화들, 자기가 감탄한 장면들. 하지만 제한적인 목록. 임권택은 그때 한국전쟁이 막 끝난 다음 폐허와 다름없는 서울에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켜 주겠다. 그때 아직 남한에는 텔레비전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도 임권택에게 영화에서의 미학적 문제에 대한 질문의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때 임권택은 무엇이 영화에서 가치 있는가, 에 관한 질문을 정식화시킬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정반대의 자리에 있던 하이데거와 아도르노는 거의 동시에 예술에서의 진리, 라는 질문을 서로 다른 빙식으로 제기하였다. 누벨바그 세대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지도자 앙드레 바쟁이 귀도 아리스타르코와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은 주제인가 형식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회적 내용과 주제에 우선하는 미학적 형식의 기준. 영화에서의 질문의 위계질서. 이 논쟁은 아마도 하나의 강령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임권택은 새로운 영화의 시작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들어왔지만 수수께끼와 같은 질서들. 쇼트의 접속. 왜 어느 순간에는 기적 같은 경험을 안겨주는데 어느 자리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가 단순하게 시나리오나 대사, 연기의 결함이나 부족에서 멈추지 않고 영화의 내재적 시청각 기호들의 오작동으로 귀결될 때 이 예술은 세계의 무질서에 대해 항상 자기의 질서, 세계와의 사이에서 가져보는 자기의 규칙, 세계와 영화를 연결하는 순간 사이의 연결의 미학에로 이어지는 질문에 이끌렸을 것이다. 임권택의 질문. 그때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찾았다. 왜 어떤 영화는 나를 즐겁게 만들고 어떤 영화는 그렇지 않은가. 그 즐거움은 무엇인가. 즐거움의 즐거움, 즐거움의 정체. 정체의 이면. 이면의 질서. 질서의 규칙들, 그 즐거움은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심지어 임권택은 그런 영화중의 한 편을 프린트를 구해서 그 즐거움의 순간을 프레임 단위로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영화를 손 안에 넣을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텔레비전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편집실에서 릴을 걸어놓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 영화중의 한 편이 조지 스티븐스의 웨스턴 <세인>이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에서 맛 본 즐거움의 체험을 몇 번이고 말했다. 1956년 11월 2일에 서울에 개봉한 영화. (그때는 대도시에 먼저 개봉한 다음 프린트가 지방 소도시로 배급되었다) 임권택이 정창화 의 연출부를 할 때였다. 1953년 파라마운트가 테크니컬러로 제작한 < 셰인 >은 웨스턴의 영화사에서 < 하이 눈 >과 함께 고전 웨스턴의 시대를 끝내고 이 장르를 변덕스럽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셰인>에게 찬사를 바쳤고(미국 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는 웨스턴사상 베스트 10에 선정했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탄식을 했다. 앙드레 바쟁은 이 영화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는 <셰인>을 ‘쉬르 웨스턴(Sur-western, 이 정의를 휴 그레이는 영어로 옮기면서 ‘Super western’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이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박상규는 이 표현을 ‘초(超)웨스턴’으로 옮겼다. 쉬르레알리슴(超現實主義)에서 가져온 접두어일 텐데 또 다른 오해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발음’으로 옮겼다)’이라고 불렀다. 바쟁은 이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쉬르 웨스턴’들은 고전 웨스턴들과 달리 자신이 웨스턴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이 장르 바깥에서, 이를테면 사회적이거나 도덕적인, 그리고 심리적이거나 정치적인, 혹은 다른 미학적이거나 에로틱한 무언가. 말하자면 이 장르 바깥으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 자신의 수치를 정당화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라고 공격하였다. (‘웨스턴의 진화’) 여기서는 <셰인>을 공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반대로 바쟁은 <셰인>을 공격하면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매혹에 대해서 어떤 찬사의 글보다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셰인>은 1889년 존슨 카운티 전쟁, 혹은 와이오밍 평원 전쟁으로 알려진 개척민과 토지 소유주들 사이에서 벌어진 유혈참극에서 느슨하게 가져온 이야기이다. <셰인>보다 본격적으로 이 소재를 다룬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의 < 천국의 문 >이다. 가난한 개척민 마을에 허름한 차림에 점잖고 예의바른 총잡이 한명이 찾아든다. 셰인이라는 이름의 남자. 아무도 이 사람을 알지 못하고 그 자신도 과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낯선 남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이 마을의 조 스타렛이다 그는 가난하지만 정숙한 아내 마리안과 어린 아들 조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걱정은 토지 소유주 라이커와 그 일당이 계속해서 이들이 힘들게 개척한 땅에서 쫓아내려는 것이다. 라이커와 그의 일당이 폭력을 행사할 때 과묵하고 조용한 셰인은 숨겨져 있던 그의 솜씨를 보여준다. 조이는 그 모습을 보고 셰인을 영웅처럼 존경하고 조의 아내 마리안도 자신도 모르게 이 남자에게 이끌린다. 그걸 셰인도 알지만 모른 척 한다. 라이커는 개척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쌍권총 총잡이 잭 윌슨을 고용한다. 검은 옷을 입은 이 사내는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을 해치운다. 라이커는 조 스타렛에게 대결을 하자고 제안하지만 셰인이 대신 그 자리에 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뽑아 잭 윌슨과 라이커를 해치운다. 셰인은 거기까지 쫓아온 조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와이오밍 평원 저편으로 떠난다. 어린 소년 조이가 멀어져가는 셰인을 향해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중의 하나를 외친다. “돌아와요, 셰인” 평원의 메아리. 바쟁은 <셰인>이 신화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바쟁에게 웨스턴은 비극의 윤리학이었다) 이 영화에서 셰인은 성배를 찾는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 중의 한명인) 것처럼 보이며, 게다가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그저 신비로운 복장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웃듯이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셰인>을 매혹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놓쳤다. 신화와 비극의 거리. 신비로운 주인공. 나는 거기에 이 주인공의 특징을 한 가지 더하고 싶다. 아무런 목표가 없는 주인공. 바쟁의 표현을 빌린다면 불가능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무한정한 방랑. 대지를 떠돌아야 하는 ‘나그네’(‘Wanderer’는 '산책자‘가 아니다)의 멜랑코리. 그래서 이 주인공은 무엇보다 우울하다. 이 우울한 주인공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종종 우유부단하게 보인다. 그 우울한 우유부단이 보는 쪽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안고 있는 슬픔. 왜 세계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고난의 슬픔에 머물 때, 거기서 발생하는 세계와 나 사이의 불화. 그 불화하는 세계가 역사에 기대어 있을 때 그 역사의 무게 아래에 눌려 찌그러지지 않기 위해 거기서 물러났을 때, 그래서 그 불화에 들어서지 않기 위해 그 입구를 스스로 차단했을 때, 나는 역사의 시간 안에서 삭제되는 것이다. 그때 경험하는 우울한 우유부단은 세상 안에 있으면서 역사 바깥에 놓여있는 자리, 이것도 아니면서 저것도 아닌 (아감벤이 쓰는 표현을 빌리면) 시시한 자리에 가는 행위의 제스처이다. 임권택에게 <셰인>과 (펠리니의) <길>은 보는 쪽의 자리에서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같은 영화이다. 어쩌면 둘 중 한 쪽, <셰인>과 < 풍운의 검객 > 중 어느 한 편만을 보았다면, 그래서 다른 한 쪽을 줄거리만으로 알고 있다면 다른 한 편이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두 편의 영화는 멀리서 쳐다보는 서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들여다보는 장면의 디테일에서 서로 겹친다. 한 가지 사실을 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임권택은 처음부터 조선시대 사극을 자신의 영화적 무대로 삼았다. 이미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사도세자와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 그리고 정조의 이야기를 궁궐 안을 무대로 실타래처럼 얽은 이야기를 풀어헤치고 묶으면서 고유한 유형의 매듭으로 고유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임권택은 조선시대 사극의 대가인 신상옥 으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임권택은 늘 겸손하게 그건 내가 연출부를 했던 정창화 감독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리고 그건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모든 인물들을 감싸 안는 정념의 연쇄고리들은 전적으로 임권택의 것이다. 하지만 <풍운의 검객>은 이상하게도 <망부석> 혹은 < 십년세도 >에서 보여주었던 조선시대 사극의 사료적 근거가 반사하는 것만 같은 장소의 질서, 인물들 사이의 위계질서. 질서가 빚어내는 운명, 그 안에서의 복종과 같은 역사와 서사 사이의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둘 사이의 친화성이 희미해졌다. 그 유사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조선시대는 기괴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워졌고 그 대신 거의 절대적이었던 질서의 체제, 그래서 숨 막힐 것처럼 촘촘하게 그 곁에 연이어 이어 붙여놓았던 제도의 고유한 거리들의 일부가 사러지거나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여기에 들어선 것은 조선시대 바깥에서 온 것 같은 인물의 등장이다. 이따금 전시하는 거의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는 무술. 왜 여기에 왔는지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설명하지 않)는 인물. 길을 잃지 않기 위한 가이드로서의 줄거리. 하지만 <풍운의 검객>은 줄거리의 독후감과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의 디테일 사이의 간극이 이상할 정도로 큰 영화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왕은 병석에 누워있고 간신들이 날뛰고 있는 시절.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최괄은 희빈 문소이와 함께 왕이 별세하면 문소이가 낳은 아들 달지를 왕위에 옹립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내서 왕자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어느 날 밤 어린 왕자를 해하려는 순간 복면을 쓴 검객이 나타나 그들을 물리친다. 그 무렵 한양 주막가에 자신을 방갓이라 칭하는 나그네가 한 명 나타나 뛰어난 무술 솜씨를 보여준다. 그의 무술을 높이 평가한 달지는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둔다. 그런 방갓을 보고 달지가 관심을 기울이는 기생 연화가 연모하는 마음을 품는다. 방갓은 최괄의 집에 매달린 초롱에 화재를 일으킨 다음 몰래 빠져나가 옥에 갇힌 영의정 김종성의 딸 난실을 구한다. 그때 우연히 그걸 달지의 집을 방문한 연화가 보게 된다. 난실은 자신을 구해준 방갓에게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노리개를 건네주면서 연모하는 마음을 품는다. (기이한 우연과 사건이 겹친 다음) 달지는 방갓이 자신을 방해하려는 목적을 지녔음을 알고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최괄은 방갓이 무술이 뛰어남을 알고 또 다른 무술의 고수인 백운선생을 부른다. 한편 연화는 방갓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난실에게 끌린다고 오해하고 그가 난실과 은거하고 있는 산 속의 암자를 달지에게 알려준다. 달지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백운선생이 방갓을 찾아냈을 때 알게 되는 것은 방갓이 백운선생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백운선생은 방갓이 살생을 일삼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꾸짖는다. 스승의 부름 앞에 제자는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다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연화가 백운선생에게 알리고, 백운선생은 감옥에 갇힌 방갓을 구한다. 백운선생은 상소문을 올려 최괄과 문소이가 역적모의를 했음을 알리고 다시 떠나지만 달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방갓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여기고 연화와 난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막아선 달지를 물리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갓을 지켜보던 소년은 떠나가는 방갓의 등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른다. “아저씨” 하지만 그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힌다. 방갓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분명히 <풍운의 검객>은 <망부석> 혹은 <십년세도>로부터 멀어졌다. 아쉽게도 나는 그 사이에 놓인 < 영화마마 >, < 왕과 상노 >, < 닐니리 >, < 청사초롱 >을 (네가 프린트가 사라져서) 보지 못했다. 네 편의 영화. 나는 그 영화들을 건너뛰면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단절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풍운의 검객>은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다. 장르로서 반복 안의 차이. 그리고 디테일에서의 차이 안의 반복. 그 안에서 일부 인물들은 그들 자신이 놓여있는 시대에 복종하고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 부정은 저항이 아니라 억압된 것을 인정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어떤 결과가 자유를 얻게 된다, 라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고스란히 따라 가보고 싶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앙드레 바쟁의 웨스턴에 대한 견해를 뒤집어 다시 세우고 싶다. 왜 그럴 필요가 있는가. 바쟁은 쉬르-웨스턴의 영화들을 공격하면서 이 영화들이 자기가 놓여진 시대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냉전시대의 매카시 ‘레드 페이퍼’를 알리바이로 삼는 것으로부터 이 장르를 구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나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과도하게 뒤집어 쓴 알리바이. 하지만 영화가 자기의 책임, 모순, 법적인 제도, 복잡한 층위에서 요구하는 정치적인 상황, 경제적인 관계, 그 안에서 하나의 통일을 부여하려는 예술의 전투 혹은 타협, 그 전투 혹은 타협의 주관적인 결정과 객관적인 한계, 그 모든 것의 결정으로서의 역사를 형식의 일시적인 진공상태로 정지시키는 것에 대해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제 자리로 돌아간 영화. 나는 재빨리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고 싶다. <풍운의 검객> 안의 새로운 인물들, 가까스로 세워놓은 배경을 어지럽히는 행동들, 이 행동이 만들어내는 사건. 그것들은 임권택이 이제까지 복종했던 조선시대 사극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다. 어떤 시험? 임권택에게 할리우드 영화들, 그 중에서도 웨스턴 영화들, 그 중에서도 (바쟁의 분류에 따르면) 쉬르-웨스턴들은 이상적인 유토피아 모델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극 모델 안에서 웨스턴 영화를, 쉬르-웨스턴을, <셰인>을 진행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라는 하나의 시험. 그 둘은 겹쳐놓아도 괜찮은 것일까. 그 둘은 서로 공존 가능한 것일까. 그 둘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러나 어딘가에서 닮은 것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모방은 탐색이다. 무엇에 대한? 유사한 기호들.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시험. 하지만 이건 위험한 시험이다. 왜냐하면 서로 완전히 다른 배경의 무대는 그것이 작동되기 시작할 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때려 부술 지도 모른다. 이 폭력적인 접근의 교집합. 이때 교집합의 자리에 놓인 주인공은 이유 없는 자신의 고난 앞에서 아무 것도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우유부단해지고 그 공허한 행위 속에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 관점에서 다시 정의내릴 수 있는 <풍운의 검객>은 이 수수께끼의 검객 방갓을 주인공으로 한 영웅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연성을 놓고 질문을 하면 의문이 떠오른다. 방갓은 왜 한양 한 복판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왜 어린 왕자와 옥에 갇힌 난실을 구하는 것일까. 왕자도, 난실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는 왜 목숨을 걸고 최괄과 희빈 문소이의 음모를 방해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시나리오에는 있다. 방갓은 수문장 손호관의 아들 손용운으로 그의 가족이 최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살아남은 다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방갓의 모든 행위를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로 옮기면서 방갓의 사연, 차라리 손용운이라는 인물 자체를 삭제시켜 버렸다. 우리는 끝까지 방갓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추론은 그 스스로 내내 쓰고 다니면서 자신을 ‘방갓’이라고 부르는 모자를 통해 희미하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삿갓과 달리 방갓은 부모의 상(喪)을 당한 상제가 외출을 할 때 쓰는 모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누구도 방갓에게 부모의 상을 당한 슬픔에 대해서 위로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모자는 내용 없는 기호로 그와 함께 내내 머문다. <풍운의 검객>에는 대사가 없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최괄의 하인들, 달지의 부하들. 장안의 오가는 백성들. 하지만 방갓을 쓴 사람은 방갓뿐이다. 그럼으로써 방갓은 그 모두로부터 방갓을 분리해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두 번째 특별한 점. 방갓은 자기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 약속은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살인에 대해서는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다. 여기서 방갓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살인의 위협을 가하는 경우에도 그를 물리치거나 무력화시킬 뿐 거기서 멈추는 그 자신과의 약속에 있다. 그 약속이 스승 백운도사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한참 뒤에 방갓을 에워싼 달지의 수많은 부하들의 칼과 맞서야 할 때, 그래서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칼등 대신 칼날을 휘둘러야 했을 때, 그때 그 자리에 나타난 백운도사의 입을 통해서이다. 이 약속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영웅의 조건. 단지 뛰어난 무술과 빼어난 지략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방갓에게 선과 덕을 요구한다고 말하면 그건 요점을 놓친 것이다. 영웅이 영웅이 되는 순간은 그가 시련이라는 시험을 통과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임권택은 이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에 틀림없다. 그의 주인공들은 종종 이 시련을 통과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거나 부서졌다. 그 시련은 점점 혹독해졌으며 임권택의 ‘다찌마와리’ 액션 장르영화 시기에는 잔혹함을 넘어서서 (상황에서) 기괴하고 (감정적으로) 굴욕적이며 차라리 거기서 멈춰 서서 그 과정 자체에서 어떤 기쁨을 누리는 것만 같은 도착으로까지 밀고 나아갔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과정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심지어 1970년대 새마을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운동의 지도자로 거듭 나기 위해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아마도 이 과정의 가장 복잡하고 기이한 정식화는 이청준의 원작 소설을 빌려 한(恨)을 품어야만 더 높은 예술의 경지에 이룰 수 있다는 판소리 예술가들에 관한 두 편의 영화 < 서편제 >와 < 천년학 >일 것이다. 나는 이미 반복해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 질문 앞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밀고 나아갈 것이다. <풍운의 검객>에서 임권택은 이 질문을 아직 정식화시키지 않았다. 대신 주인공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조선시대 안에 어떤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라리 주인공을 조선시대로부터 소외시키면서 장르와의 사이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방갓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영웅이 되면서 그 자신에게 충만하면 할수록 조선시대는 점점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풍운의 검객>은 (바쟁의 정리에 의지해서 말하자면) <셰인>이 웨스턴에서 한 것을 조선시대에 대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임권택은 자기가 시작했던 무대를 자기의 방법으로 부정하는 중이다. 방갓은 이 공허한 무대에서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기호들 사이를 오가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걸고 무언가를 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그걸 왜 하는 지 끝내 알지 못한다. 무언가, 라는 행위와 왜, 라는 이유, 사이의 간극에서 방갓은 영웅의 시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만 그 시련의 대가는 그에게 무의미한 조선시대로부터 거의 우주적인 텅 빈 영화 바깥의 세계에로 어떤 선택의 여지없이 다시 떠나야한다는 운명적인 결론이다. 그때 이 우주는 어둠 속으로 무엇이든지 집어삼켜버린 다음 소멸시켜버리는 심연에 다름 아니다. 임권택은 영웅적인 죽음대신 차라리 여기서 영웅적인 소멸을 선택한다. 죽음과 소멸 사이의 간극. 이 절망적인 매혹, 나는 아무 것도 세상에 남기지 않고 사라버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내게 부여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그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호의 밤. <풍운의 검객>에서 영웅적인 과정은 사실상 소멸 앞에서의 잠시 동안의 머뭇거림이다. 하지만 세 번째 특별한 점에 비교하면 두 번째 특징은 아무 것도 아니다. <셰인>에서 셰인은 마리안이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리안과의 로맨스를 외면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호의를 베풀어준 그녀의 남편 조 스타렛과의 우정 때문이다. 물론 마리안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제스처를 노출시킬 뿐이다. 좀 더 복잡한 설명도 있다. 셰인은 이 마을에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에도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마리안이 아닌 누구와의 로맨스도 거절했을 것이다, 라는 가설이다. 왜 웨스턴의 주인공이 광야(wildness)에서 공동체에 왔다가 다시 광야로 떠나가는지에 관한 긴 이론이 있다. 하지만 그 이론은 우리의 논점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단지 세 번 밖에 총을 뽑지 않는 <셰인>은 셰인과 마리안과의 감정적 긴장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웨스턴이라기보다는 로맨스 멜로드라마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풍운의 검객>도 로맨스에 더 가까운 (일종의) 기사도 서사이다. 처음에는 방갓이 달지의 아흔 아홉 칸 대궐 같은 저택에서 벌이는 신출귀몰하는 지략과 음모의 모험극처럼 시작하지만 이 서사 안으로 연화와 난실이 들어오자 갑자기 두 여자가 방갓에게 보내는 정념의 로맨스로 바뀐다. 연화는 방갓을 보자마자 그가 이 서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달지가 그녀에게 보내는 관심을 외면한다. 난실은 방갓이 그녀를 옥에서 구하자마자 처음 보는 그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노리개를 건네주면서 (연인들 사이에 나누는) 정표로 삼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방갓을 사이에 두고 난실과 연화는 사랑, 질투, 분노, 원망, 하여튼 그녀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서로 경쟁적인 로맨스의 감정을 조금도 숨길 생각 없이 드러내놓고 신호를 보낸다. 이때 방갓은 둘 사이의 선택에서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둘 중 누구도 선택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방갓은 그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면서 항상 친절한 태도로 대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도 로맨스의 신호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둘 중 누군가에게 실망을 시킬까 두려워 거짓 거절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거절하는 척 하는 사랑. 우리들이 로맨스 소설에서 이미 읽은 냉담한 실패를 목표로 한 사랑의 거짓 제스처. 거절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의 변주들). 방갓이 이 로맨스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서사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서사 바깥에서 누군가 (이를테면 집에서 기다리는 그의 아내) 방갓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며. (그래서 어딘가를 가야하는 도중에 벌어진 일에 말려든 것이 아니며) 거기에 또 다른 계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왕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임무였다, 라는 이중 플롯) 아무 것도 숨기지 않은 두 여자의 속마음. 무조건적인 정념. 오히려 삼각관계에 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관되고 단조롭게 설명할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방갓의 거절은 오히려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먼저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때 어떤 로맨스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갓의 선택은 그의 적들에게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약속과 결합하면서 그가 ‘나그네’라기보다는 불가에 입문한 승려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풍운의 검객>에서 불교의 어떤 기호도 발견할 수 없으며, 또한 그런 가르침을 내린 방갓의 스승 백운도사도 스님이 아니다. 이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두 여자, 난실과 연화의 대조적인 사회적 신분이다. <풍운의 검객>의 무대가 조선시대라는 것을 환기시키겠다. 난실은 영의정 김종성의 무남독녀 영애이다. 조선시대에 시기별로 그 지위가 변하였으나 (<풍운의 검객>은 정확한 연대를 표기하지 않았다) 한때 의정부 최고의 자리였으며 그 아래 좌의정과 우의정을 두고 조선의 국사를 결정하던 자리. 그 지위의 근대적인 번역은 갑오개혁에 이르러 고종의 명에 따라 영의정을 총리대신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봉건제 왕권국가에서 임금 바로 아래의 관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딸. 연화는 그녀가 아무리 호사스러운 장안의 기방(妓房) 여주인이라 할지라도 유교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기생의 신분이다. 우리는 ‘춘향전’에서 서예와 가무에 능한 성춘향은 어머니가 기생이지만 그녀는 엄연히 기방에 등록하지 않은 여염집 규수인데도 기생의 딸이라는 이유로 남원 사또 변학도에게 술시중을 들지 않는다고 불려가 고초를 당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방갓이 두 여자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그 둘이 반대의 자리가 아니라 비대칭의 위치에 있다. 여기서 조선시대는 임권택의 영화 안으로 이상한 우회를 거쳐 회귀한다. 내면화된 조선. 오른 쪽에는 난실이 있다. 영의정 김종성의 가문이 지금은 최괄과 희빈 문송이의 음모로 화(禍)를 당하고 난실이 한양 바깥으로 쫓겨나 그녀의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는 어린 소년과 지내고 있지만 그 음모를 밝히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면 난실은 다시 명문가의 자리에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금 바로 그것을 하기 위해 방갓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풍운의 검객> 서사의 전부이다. 이때 이 서사의 무대로서의 역사는 감정의 세계가 아니라 왕조차 복종해야하는 질서에 지배받고 있는 국가이다. 무대는 배경에서 멈추지 않고 그 서사의 토대라는 더도 덜도 아닌 근거의 지평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가 끝난 다음, 그러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의 첫 번째 장면을 떠올려보자. 지금 한양 바깥 산속 암자에서 지내는 처지이지만 난실이 다시 복권하고 원래의 자리에 갔을 때 방갓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다. 난실은 지금이 예외의 상태이지만 방갓에게 원래의 자리라는 것은 없다. 나그네의 자리. 일시적인 잉여의 위치.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였고, 양반은 사회의 기득권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이었으며 그들을 천민들과 분리하였다. 난실은 그 중에서도 최고위층의 사대부 집안, (한 번 더) 그 중에서도 영의정의 자식이다. 난실이 방갓을 허락한다 할지라도 그녀의 (어쩌면 남아있는) 가족, 가족의 친척들, 그녀가 되돌아온 사대부, 그들을 둘러싼 선비들, 그 모두를 구성하는 신분사회인 조선은 방갓이 그들 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관한 사극영화의 멜로드라마 서사들. 양반집 따님, 혹은 남편을 잃은 과부가 하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맞이하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들. <풍운의 검객>은 방갓이 난실의 로맨스 제안을 받아들이면 마지막 장면 디음 장면은 정확하게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멜로드라마 영화를 반복하는 비극의 첫 장면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왼 쪽을 볼 차례이다. 이때 연화는 난실의 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옆이 아니라 위와 아래의 자리에 완강하게, 거의 불변의 위치에서, 사회적 조건 아래, 고정된 상태로 머물 것이다. 조선시대에 기생은 신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에 해당했다. 물론 기생들 사이에서도 다섯으로 나뉜 등급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으뜸인 일패기생(一牌妓生)은 임금 앞에서만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달지를 상대하는 연화는 문무백관만을 상대하는 이패기생(二牌妓生)이었을 것이며, 이패기생 중에는 가무와 서예로 한양 장안에서도 그 명성이 드높은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은 유교의 원리가 가치였던 사회였다.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 의 가치아래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권하는 여자들은 유교라는 텍스트를 난잡하게 만들고 올바른 도덕적 삶에 대한 타락의 사례가 되었다. 도덕은 유교에서 명령이다. 나는 똑같은 가정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방갓은 난실대신 연화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이상한 장면. 방갓은 난실의 노리개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연화의 기방을 찾는다. (그런데 이게 위험을 무릅쓸만한 일인가) 연화는 그때 자기를 보고 싶어 찾아온 것으로 오해하고 방갓에게 안겨 자기의 속마음을 고백한다. 이때 방갓은 매장하게도 난실의 노리개를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방갓의 태도에 관한 질문, 이 방문을 통해서 방갓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표면적인 진정한 목표는 (이 이중적인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노리개가 아니라 연화를 실망시킴으로써 그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론. 가장 단순하게 그 행위가 다른 남은 선택인 난실을 위한 것이라면, 혹은 반대로 연화를 실망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감정을 바꿔놓기 위해서라면, 어느 쪽을 향하건 사랑의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방갓은 어느 쪽도 선택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이 공허한 방문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이때 방갓을 둘로 찢어서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방갓은 자시니 난실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인 연화에게도 향한다. 방갓은 정말 연화를 받아들일 마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상대는 연화라는 대상에게 일시적인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난실의 노리개는 핑계이며 연화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여기에 왔(을 수 있)다. 그런데 마치 방갓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화는 흠모하는 자기 마음을 고백한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여기에 왔다면 방갓은 왜 그 고백을 거절하는가. 여기에 도착하는 전까지 방갓에게 연화는 어떤 대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하여 고백을 듣는 순간 어떤 대상이 연화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자리라는 것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연화는 대상이긴 하지만 방갓이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였다. 그러므로 연화는 방갓에게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연화가 자신을 방갓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이라는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연화는 즉시 단순하게 사랑의 감정에 고정된 존재로 축소된다. 그러므로 질문은 단순해진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왜 여기서 질문은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가 아니라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고 옮겨진 것일까. 로맨스 서사의 무대가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다시 번역하면 당신은 기생인 나를, 천민인 나를, 유교의 가치 아래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나를, 그런 나의 연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로 옮겨질 수 있다. 방갓이 거절하는 것은 연화가 아니라 연화가 놓인 사회적 위치이다.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나그네인 방갓이 그걸 거절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지금 당신이 이 선택의 남은 절반을 잠깐 잊은 것이다. 신분사회의 로맨스. 난실과의 일시적지만 이 맹목적인 로맨스는 방갓을 상상할 수 있는 (하지만 임금을 제외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려놓는다. 방갓은 영의정 김종성의 딸 난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방갓은 두 개의 선택 사이에서 (셰인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태도에서는 별 차이 없이) 우유부단해진다. 어떤 우유부단? 난실의 사랑을 받을 때 방갓은 그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뒤로 물러나고, 연화의 사랑을 받을 때 방갓은 자신이 난실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부터 내려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뒤로 물러난다. 이때 이 두 개의 뒤로 물러남이 비대칭의 이유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방갓이 어떤 계산도 없이 로맨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방갓은 조선시대 안에서 계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계산의 비대칭이 방갓을 우유부단한 슬픔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방갓의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 사이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선택 이후의 선택은 방갓이 조선시대로부터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다. 임권택은 퇴각의 마지막 자리에 <셰인>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를 배치하였다. 셰인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전문적인 해결사인 총잡이 잭 윌슨과 대결을 벌인다. <셰인>에 매혹된 관객은 누구나 이 마지막 대결 장면을 언급한다. <풍운의 검객>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방갓과 달지 사이의 단 한 번의 마지막 대결 씬이다. 이미 최괄과 희빈 문소이는 백운도사가 올린 상소문으로 연화석상에서 나라의 명을 받고 대역 죄인으로 포도청 금부(禁府)에 의해 구금되었으며. 방갓은 난실과 연화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길을 떠나던 중이었다. 떠나가는 방갓을 따라온 건 난실을 모시던 어린 소년 시종과 그 자리에서 구금을 피해 달아난 달지뿐이다. 물론 시종 소년의 역할은 영화 내내 거의 존재감이 없다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방갓과 달지의 대결을 바라보는 증인의 시선으로서의 역할, 말하자면 <셰인>에서 셰인과 잭 윌슨의 대결을 바라보는 증인의 존재이자 신화를 완성시키는 임무를 가진 마리안의 어린 아들 조의 자리이며, 그런 다음 떠나가는 방갓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의 존재로서 거기 있는 것이다. 총에서 칼로 바뀐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대결, 웨스턴 영화의 마을 중심에 자리한 술집 바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들판에로의 이동.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단지 산등성이 언덕 풀밭을 흔드는 정도를 넘어서서 들판 전체를 흔드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어디에선가 안개가 몰려온다. 화면은 일부가 정도로 짙은 안개. 바람결에 그 안개가 사방을 덮는다. 안개를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이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1943년에 만든 첫 영화 < 스가타 산슈로(姿三四郞) >의 마지막 대결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마디로 굉장한 시퀀스. 물론 임권택은 그때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영화는 1998년 10월 20일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에 따른 허가까지 한국에 수입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1967년은 극장이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고, 임권택은 해외에 1978년에 처음 나가보았다. 하지만 단지 들판에서 바람이 분다는 설정에서 멈추지 않고 방갓과 달지가 서로 마주보는 장면의 구도 일부는,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심지어 본 적도 없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첫 영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씬의 디테일은 임권택 스타일의 특별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씬이 <풍운의 검객> 전체로부터 마치 떨어져 나온 다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오직 여기서만 씬 전체에서 장소의 위와 아래, 그 장소와 관계하는 기후의 변화와 그것이 서사에 관여하여 만들어내는 미장센의 효과, 그 안에서의 동선의 이동과 그 동선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으로 이루어지는 몇 겹의 배치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단조롭던 이 영화의 동선과 장소의 배치는 오로지 이 장면만을 위해서 마치 숨겨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방갓이 달지와 마주치는 장면은 소년의 시선의 위치 때문에 산등성이 언덕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달지는 떠나는 방갓을 멈춰 세운다. “이봐, 결판을 내야지” “싫다” “그건 네 생각이고, 어차피 너와 나는 끝장을 봐야하는 입장이다” “싫다,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웃기지마라” 그리고 달지가 칼을 뽑아든다. 방갓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갓을 벗는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 둘은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산 비탈길 아래로 위치를 옮긴다. 마치 위에서 소년이 내려다보기에 좋은 위치로 옮겨야한다는 듯이 그렇게 이동한다. 이때 화면을 채우는 것은 갑작스러운 바람소리이다. 조금 전까지 평화롭던 이 산등성이에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단지 장르의 약속 이상으로 그 바람이 너무 세고 큰 규모로 불기 시작하기 때문에 기이하고 심지어 초현실적인 감흥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대결장면은 임권택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어떤 스타일? 이 대결 장면이 2분 40초에 이르는데도 임권택은 서로를 마주보는 방갓과 달지 사이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찍은 쇼트를 마주보게 만든 다음(shot_reverse shot) 둘 사이만을 번갈아 오갈 뿐이다. 이 대결에서 달지가 칼을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은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방갓은 마지막 순간 단 한 번 칼을 휘두를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방갓은 그 한 번으로 달지의 양쪽 무릎을 베어 그를 땅에 무릎 꿇게 만든다. 임권택은 이 씬에서 액션의 디테일 대신 서로 마주보는 시선의 교환, 그때마다 위치를 옮겨 찍은 카메라의 위치와 구도, 무엇보다도 바람소리와 화면을 덮치는 것만 같은 안개로 진행한다. 최소의 액션. 이때 씬의 진행에서 위계질서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디테일들 사이의 위계질서. 이때 임권택이 거기서 찾은 디테일은 서사의 안쪽으로부터 말 그대로 표면, 영화라는 표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영화의 표면, 영화라는 표면. 표면의 광경. 광경의 디테일에 관한 방법론. 나는 거의 멈춰 서다시피 이 마지막 씬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임권택은 분명히 거기서 무언가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마치 마지막 씬의 기쁨을 위해서 이미 만든 영화의 전부를 바꿔도 상관없다는 것만 같은 태도. 임권택의 1960년대 영화를 설명할 때 대부분 고통의 감정으로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본 것은 분명히 기쁨의 정념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고통 안에 숨어있던 기쁨을 끌어내려고 애쓸 것이다. 물론 기쁨이 비가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매번의 쇼트라는 양태 안에 담겨있는 속성의 표현이라면, 그래서 그 표현이 영화를 견디게 해주는 실존적인 상태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서 정념의 형상에 관한 설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실패를 무릅쓰고 이 형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거듭 되돌아올 것이다. 그걸 해낼 수 있다면 임권택 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이 없는 디테일을 경유하여 정념의 형상에 관한 표현의 순간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1978년은 모든 것이 나쁜 상태였다. 이미 3년 전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다음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다. 무언가 위협적인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그 해가 시작되었을 때 영화배우 최은희 가 북한에 납치되었다, 고 발표했다. 3월 1일에 윤보선 전(前)대통령을 비롯하여 민주인사들이 ‘3.1 민주선언’을 했지만 그 해 가을 10월에 정부는 휴전선에서 세 번째 남침 땅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선거에서 박정희는 삼선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그때 한국 ‘상업’영화 장르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하이틴 청춘영화뿐이었다. 그리고 새마을영화, 반공영화, 문예영화라는 이름의 정책영화들이 외국영화 스크린 쿼터를 얻기 위해 그저 의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열은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유현목 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해야 할) < 장마 >를 완성했지만 거의 아무도 보지 않았다. 김기영 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찍은 다음 일 년 동안 개봉을 시키지 못했다. 이 영화를 시네필들이 발견하기까지는 박찬욱 의 열렬한 지지를 기다려야만 했다. 김수용 은 마치 실험영화를 만들기라도 하듯 대사가 없는 영화 < 웃음소리 >를 찍었다. 하지만 비평은 미처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침묵을 지켰다. 영화인들을 향해 “피고(被告)”라고 말하길 즐기던 하길종 은 완전히 항복하듯이 물러나서 < 병태와 영자, 속 바보들의 행진 >을 거의 자포자기하듯이 찍은 다음 그 이듬 해 2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임권택 은 그 안에서 묵묵히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 해에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 임권택을 임권택으로 만든 < 족보 >를 만든 해였다. 그런데 그 해에 임권택의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 두 편을 더 찍었다.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와 < 가깝고도 먼 길 >.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두 편의 영화가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두 편 모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전쟁영화 < 울지 않으리 >가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 희생당한 아이들, 여기서 반격하기라도 하듯 환상의 서사가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총을 들고 어른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한다. 상징적인 비유들. 아이러니의 전복.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두 편은 완전히 다른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다. 임권택 은 주제에 대한 어떤 탐구나 소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없이 여기서 오로지 영화가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만 같다. 이런 경우. 영화는 너무 쉽게 관습에 복종해왔다. 이 예술의 문법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의 표본에서 끌어내고 거기서 체계를 만들었다. 문법이 만들어내는 경우. 그것을 따라가면서 만들어진 영화들. 임권택은 그것을 ( 정창화 를 경유하여) 경험으로 배운 다음 그것이 그의 영화 안에서 관습이 되었을 때 그 영화들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 왕십리 >에서부터 눈에 보이게 임권택의 영화는 느려지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야하는데 그냥 지켜보았고, 주고 받아야하는데 두 사람을 하나의 화면에 놓아두었으며, 이따금 이야기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아무 상관도 없는 풍경 안에 놓인 그 사람을 멀리서 쳐다보았다. 영화가 무언가를 느껴보는 시간. 임권택은 제제나 소재가 아니라 영화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마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영화라는 문제. 영화 안에서의 질문. 종종 이 질문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어떤 대답도 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 그 대답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각자의 결론이 있을 뿐이다. 그때 결론은 힘의 방법을 지시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힘은 거기에 있어요. 아무도 영화에서의 힘을 정의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그 힘은 이제까지의 관습을 부숴버릴 것이다. 예술에서 형식의 문제는 그 예술의 존재의 문제이다. 여기서 그 예술의 위계질서의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할 것이다. 예술의 능력이 형식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임권택은 판단의 순간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때 판단은 반성이라고 살짝 말을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을 더 음미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전형적인 세계. 자유로운 활동. 이때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영화 자체가 부서질 수도 있다. 임권택은 자신이 위태로운 자리에 왔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한 번 더 반복하듯이 말하겠다.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을까. 아마도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를 각자는 자기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영화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자본과 정치, 예술.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제작자와 검열관과 영화감독.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처음에는 ‘위기 영화(Crisis film)이라고 정의 내려진 다음 하위 자르로 재(再)명명된) 재난영화(Disaster Movie)로 기획했(던 것 같)다. 할리우드는 1973년 < 포세이돈 어드벤처 >의 성공으로 일련의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졌고 < 타워링 >에서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스필버그의 < 죠스 >도 일련의 재난영화 장르로 기획된 영화이다. 예기치 않은 지진으로 발생한 해양해일이 제야의 파티를 벌이는 거대한 관광유람선을 덮친다. 상하가 뒤집힌 배에서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승객들은 시시각각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미로 같은 구조물 속에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수입한 회사이다. 물론 그때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규모의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아동 재난영화로 기획되었다. 이 영화를 본 검열관은 먼저 ‘아동’ 주인공 영화라는 사실에 안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씬에서 중공(그때는 중국을 ‘中共’이라고 불렀다. 물론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자이지만 사람들은 ‘中國共産黨’의 약자처럼 읽었다) 화물선에 구출된 주인공 김한 어린이에게 ‘중공’ 선원들이 북한으로 보내줄까, 라는 질문에 완강하게 저항하며 대한민국, 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검열관들에게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1968년 12월 1일 강원도에 침투했던 무장공비들이 마주친 삼척 시골마을의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그 일가 전체를 살해한 사건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승복 일가 참상은 박정희 정권 내내 반공(反共)교육과 홍보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검열관에게는 아동 교육홍보 반공영화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다는 문제와 만나게 되면 완전히 다른 질문이 된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거대한 배가 뒤집히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아니며 엄청난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피노키오>가 아니다. 혹은 하이 테크한 스펙터클 < 라이프 오브 파이 >가 아니다. 영화라는 시스템이 허락하는 조건과 상황. 영화에서 이미지의 생명은 화폐, 라고 고다르가 말했을 때 그 말은 고통스러운 전언이다. 영화에서 어떤 풍경이 있을 때, 거기에 어떤 사물이 나타날 때, 그 사물이 사건이 될 때,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야 할 때, 이 모든 관계는 화폐의 연쇄고리이다. 종종 우리들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영화에서 하위 체계에 놓아둔다. 시나리오의 많은 장면들은 쓰기도 전에 삭제된다. 찍을 수 없는 장면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문학과 영화의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풍경은 화폐의 권리이며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설명은 둘 사이의 등가성을 인정하고 교환 가치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임권택이 찍어야하는 풍경. 진행해야 하는 사건. 그냥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열두 살 소년 김한 어린이가 표류하는 이야기가 그 전부이다. 달리 가족과 연락할 도구도 없으며, 구조를 요청할만한 방법도 없다. 가지고 있던 트랜지스터라디오는 김한 어린이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다음 (한국방송은 더 이상 잡히지 않고 주파수에는 중국 방송만이 잡힌다) 배터리가 방전된다. 이 소년이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배가 너무 좁다. 주변의 풍경은 바다가 전부이다. 텅 빈 미장센.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캐스트 어웨이>가 아니다. 게다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구조대는 허락할 수 있는 제작비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1978년은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에 도착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여기엔 별다른 사건이 있을 수 없다. 임권택은 그걸 끌어안고 바다로 나아갔다. 물론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서사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돛단배 한 척에 별다른 엔진도 없이 바다로 떠밀려 내려간 다음 라디오 방송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전 국민적인 구조 대상이 되었는데도 레이더망과 헬리콥터 수색을 피해서 조류의 흐름을 따라 저 멀리 공해상으로까지 떠밀려갔다는 진행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게다가 동해 벌섬 근처에서 실종되었다면 동해상에서 떠돌았을 텐데 그 배를 왜 ‘중공’ 화물선이 구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왜 이 영화의 설정을 서해로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때 한국은 대만과 수교를 맺고 ‘중공’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그런데 아무런 외교적 분쟁 없이 김한 어린이는 (아마도) 인도적 차원에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 족보 >과 같은 해에 찍은 영화이다. 그 이듬 해 임권택은 < 깃발 없는 기수 >와 < 짝코 >를 연달아 연출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임권택의 관심은 서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영화에서 서사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의 무의미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의 이야기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의 순서를 무시하고 서사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겠다. 평화롭게 야구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 그때 공이 멀리 날아가고 김한은 그 공을 주우려다가 나무 위의 새장을 발견한다. 김한은 나무에 올라가 새장에서 새알을 꺼내려다가 새장을 나무에서 떨어트린다. 그때 동네 할아버지가 와서 야단치며 그 새장을 다시 나무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그만 나무에서 떨어진다. 가난한 할아버지는 응급치료만 받고 병원을 떠나자 걱정이 된 아이들은 치료비를 모으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시작이다. (하지만 중간 과정은 김한 어린이가 배에서 표류할 때 플래시백으로 다시 진행된다) 궁리하던 김한은 용돈을 받기 위해 해안가 마을에서 큰 배의 선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알고 지내던 칠성이형이 돛단배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걸 보고 김한은 호기심에 몰래 그 배를 훔쳐 타고 바다로 간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지루해진 김한은 잠깐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배가 바다 한 복판으로 흘러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이다. 그런 다음 1시간 10분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 설명할 내용이 없다. 설명할 드라마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갑자기 배가 나타난다. 누군가 구조 요청을 보낸 것도 아니고 또 무언가 단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우연히 바다 한 복판에서 배를 만난다. 표류하던 김한은 ‘중공’ 화물선에 구조되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반 친구들을 만난다. 영화가 더 이상 진행해야 할 사건이 없는데도 거기 영화가 있을 때 비로소 영화적, 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체자레 자바티니의 정식화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각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이 정식을 밀고 나아갔다. 임권택은 1953년에 자바티니가 주장한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사유’를 읽지 못했다. (이 글은 지금도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임권택이 영화에서 이론이 정식화시켜놓은 자리를 우회해서 자기 자신의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같은 자리에 도착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았다. 결국에는 동일한 결론. 예기치 않게 여기서 임권택은 영화에서 잉여의 시간들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되었다. 임권택은 이전에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이 영화가 섬세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섬세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시련은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사건이 아니라 잉여의 시간들을 견디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를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 만다라 >는 없었을 것이다. 잉여의 시간들로 이어지는 만행 길.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왕십리>에서부터, 그것도 전체가 아니라 아마도 절반으로 나눈 후반부에서, 임권택의 영화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드라마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들 사이의 관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순간적이긴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는 그걸 <둘째 어머니>에서도 보았다. <만다라>(1981) 다소 장황하게 이 문제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임권택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제까지 잘 설명되지 않은 상태의 형식이 있다. 처음 볼 때는 통상적인 설명에 따라 이 상태를 나태한 형식으로만 받아들였다. 내 생각을 바꾼 건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와 < 가깝고도 먼 길 >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동일한 문제의식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둘을 분리해서 설명할 것이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임권택은 드라마가 전부라고 결론을 내린 다음 영화는 거기에 복종해야한다는 믿음으로 장치들을 동원하고 그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작했다. < 망부석 >은 이미 그가 이 시스템의 장인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기이한 방식으로 모더니즘 영화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배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질문을 배웠다. 영화에서 리얼리즘은 문학과 다른 경로를 밟아 나아갔다. 귀도 아리스토타르코와 앙드레 바쟁의 논쟁. 사회 안에서의 영화의 리얼리즘이라는 정치적 규정과 영화 안에서 세계의 존재의 형식에 대한 반론. 환상 없는 세상 앞에서 영화는 쇼트가 세계라는 시간 속에 놓여야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영화는 무엇을 느껴보는가. 대답이 기괴하게도 빈곤의 실체가 아니라 시간의 형식이었다. < 오발탄 >이 리얼리즘 영화이자 이미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따라가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거리에서 무작정 배회하는 실직자들. 그저 거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쇼트들. <오발탄>은 < 자전거 도둑 >이 아니라 < 흔들리는 대지 >이다. 그런 다음 < 만추 >와 만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펜스. 단지 그것뿐인 쇼트들, 아마도, 아마도 안토니오니의 풍경. 거기서 1974년 세대, 이장호 와 하길종 , 김호선 은 각자의 방법을 배웠다. < 별들의 고향 >, < 바보들의 행진 >, < 영자의 전성시대 >. 물론 거기서만 배운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하게 잡종 교배된 역사가 있다. 그때는 아무런 설명도 알지 못했다. 1974년 세대는 자신들이 왜 그렇게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친숙한 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단지 변방의 영화 문화에 속하던 그들이 동시대 ‘우드스탁 제너레이션’이 된다는 흥분만이 거기에 있었다. 네오리얼리즘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누벨바그를 경유하여 아메리칸 뉴 시네마로 다가온 할리우드가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그들 세대가 몰락한 다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들 곁에서 멀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성립이라는 문제. 저렇게 진행해도 괜찮은가. 새로운 시청각 기호들의 배치. 저렇게 촬영해도 괜찮은가. 그것들이 창조해내는 영화적 상황, 저렇게 편집해도 괜찮은가.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감각. 이때 임권택은 그 상황에 적응해야 할 필요는 느꼈(을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어떤 단절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임권택의 영화에서 종종 나태하다고 비난한 장면들, 사실은 그 순간에 임권택은 그 장면이 사건 안에서 네 것이거나 내 것인지 결정할 수 없는 어떤 개입이 가능한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실험, 이라는 말을 피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실험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시험과 실험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실험이 그 예술의 존재론에 질문을 던진다면 시험은 그 예술의 능력에 대한 반성적 판단을 요구할 것이다. 임권택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모한 드라마를 끌어안지 못했을 것이다. 무모한 드라마? 무엇보다도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자꾸만 균형이 깨져버리고 방향을 상실한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표류. 여기서 임권택은 사실상 드라마를 어떻게 해서든지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해야만 개입의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하나의 위기. 드라마의 위기.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영화의 어디쯤 온 것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전에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기승전결은 하나의 리듬이었으며,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아름답게 다루는데 거의 모든 영화적 순간들이 바쳐졌다. 여기서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의 리듬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거의 아무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감정의 어느 지점에 온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이상한 것은 한 쪽은 표류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탐색을 하고 있는데 끝내 둘 사이에서 어떤 끈도 발견하지 못한 채 김한 어린이는 완전히 바깥으로 빠져나간 버린 다음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둘 사이에는 아무 드라마도 없다. 물론 임권택은 돛단배를 탄 김한 어린이를 하나의 시퀀스로 놓은 다음 육지에서 걱정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군부대. 돛단배의 주인인 칠성이와 그의 아버지, 분주히 그들 사이를 오가는 월간 신여성 기자 혜미를 또 다른 시퀀스로 놓고 그 둘 사이를 교차편집 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라진 효과. 그 둘은 각자 활동할 뿐이다. 이때 임권택은 이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자리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얻으려면 영화 바깥으로 나와서 무능력하게 그저 이쪽과 저쪽을 쳐다보는 도리밖에 없다. 불균질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두 개의 시퀀스. 그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 사이에서 의도적인 어떤 결과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하나는 바다 위에서 진행되고 다른 하나는 육지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다. 적어도 이 차이를 임권택은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다. 김한 어린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바다 위로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김한 어린이를 직접 탐색하기 위해 배를 빌리기까지 하지만 그런 다음 아버지는 배와 함께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한 어린이가 귀환할 때 공항에서 다시 나타난다) 오직 유일한 예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지친 김한 어린이가 환상을 볼 때 저 멀리서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구조선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뿐이다. 그런데 마치 누구도 바다 위에 올 수 없다는 걸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그들은 저 멀리서 나타난 다음 갑자기 김한 어린이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마치 그들끼리 바다에 관광을 나오기라도 한 듯,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김한 어린이에게서 고개를 돌린 다음 다른 곳을 보면서 그들끼리 즐겁게 웃는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 씬은 김한 어린이가 바다 저쪽을 바라보자 화면은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out_of_focus)로 시작한다. 어쩌면 원래의 목표는 김한 어린이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헛것이 보일만큼 지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보조적인 설명 씬처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주관적인 환상 속에서 김한 어린이가 구조를 받는 대신 버림을 받을 때 이상할 정도로 보는 쪽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왜냐하면 문득 여기서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깝고도 먼 길>에서 벌어지고 만다) 이 공포에 질린 환상은 영화 전체에서 마치 오점처럼 작동한다. 오점? 그렇다. 자칫하면 영화에서 오점은 의미의 네트워크 전체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권택은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설명할 때마다 거의 반복하듯이 같은 말을 했다. “지엽적인 재미를 따라가다가는 영화 전체를 망치는 거예요” 이 씬이 영화에서 무슨 특별한 장치도 아니고 이야기의 전환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김한 어린이에게 최소의 위기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협적으로 거기에 있다. 임권택은 여기서 드라마가 수순을 밟아나가는 방법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 장면 앞에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이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진부한 것으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거의 집중력이 없어 보이는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상투적인 실패작의 전형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권택은 이 영화를 반대편의 극단에 가져다놓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좀 더 이 장면에 머무르고 싶다. 임권택은 아주 가끔 이상한 환상, 혹은 꿈을 갑자기 사사 안에 밀어 넣을 때가 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게다가 서사에서 오점일 뿐만 아니라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이 전 해에 연출한 < 옥례기 >에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꿈 장면이 나온다. 옥례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중매 시집을 간다. 그리고 첫 날 밤 이 남자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인데다가 정신박약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이 표현이 ‘멸시’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의 언어로 서술하는 중이다) 옥례는 꿈에서 이 동네를 도망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잡으러 몰려온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는 사실상 정반대이다. 옥례는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내조한다. 어떤 의심도 없이 내내 옥례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이때 이 환상 혹은 꿈은 단지 그것이 현실인가 아닌가, 혹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단순한 진위 판단의 여부를 슬그머니 넘어선다. 여기서 장황한 정신분석의 개념을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점은 서사에 끼어든 꿈, 혹은 환상은 단순하게 서사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종종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한 어린이는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안도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부모님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제까지 말썽을 부리면서 개구쟁이로 생활한 자기를 이 기회를 빌려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실은 이 꿈이 말하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금 웃는 것은 자기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외면하면서 기쁨에 차서 웃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정은 단지 짓궂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한 어린이는 구조된 다음 표류하던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공통점은 여전히 표류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동일한 상태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의 요구이다. 못 찾는 것인가, 버림받은 것인가. 사실로부터 해석에로 옮겨갈 때 영화는 드라마를 고정점으로부터 풀어헤쳐 놓게 된다. 서사 안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교환과 교정, 그 사이에 놓인 선택의 불확정성. <옥례기>(1977) 그렇다면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왜 임권택에게 드라마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단지 그걸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리우드의 위대한 고전영화들은 드라마 안에서도 결코 진부한 공식 안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그걸 감탄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그게 너무나도 놀라워서 연출부 시절에는 그의 동료들과 프린트를 카피한 다음 프레임 단위로 그걸 경이롭게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그 대답의 일부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여기까지 우리는 그 한 척의 작은 배만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바다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임권택은 영화 앞에서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는 세계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건 모든 영화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걸 피하고 싶으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 앞에서 스튜디오는 얼마나 조잡한가. 종종 세계는 시나리오를 때려 부셨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멈추지 않는 비. 정반대로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지 않는 비. 무한정 기다릴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시스템의 영화라면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속수무책인 바다로 영화를 가져다 놓았다. 평면의 공간. 미장센 제로의 장소. 단 한 명의 등장인물, 열 두 살의 어린 아이. 아주 작은 배. 영화는 여기서 다가가는 것과 멀리 물러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거기서는 레일을 깔아놓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크레인을 세워서 상하로 움직일 수도 없다. 단조로운 망원렌즈.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힘겨운 자세로 바라보는 클로즈업의 단편들. 나는 어떤 장면의 구도에서 이석기가 무거운 35미리 카메라를 들고 그 작은 배 위에서 위태롭게 찍을 수밖에 없었을 자세를 떠올리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보다 삼년 전인 1975년,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스필버그는 <죠스>를 찍은 다음 두 번 다시 바다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상어와의 바다에서의 쫓고 쫓기는 추적극을 보러가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할 수 있는 한 바다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계속해서 해변에서만 머물다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11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다로 나간다. 임권택은 어촌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먼저 나간다. 아니, 나가버린다, 라고 말하고 싶다. 바다에는 김한 어린이가 대결해야 할 대상이 없다. 구태여 그것이 있다면 바다 위에서의 시간이다. 임권택이 바다로 간 것은 거기서 바다를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기서 마주하는 것은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이때 그것은 드라마로서 주어진 공포라는 장치가 아니라 영화 앞에 마주하고 있는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그걸 영화가 견뎌볼 수 있을까. 세 개의 질문, 첫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들은 이 대답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망스럽다. 임권택은 아직은 드라마의 장치 안에 머물면서 교차편집을 하면서 여전히 망설인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임권택은 바다가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영화가 감당해야하는 순간들과 마주한다. 그 해에 임권택은 <족보>를 찍으면서 설진영 노인이 일렬로 늘어선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사이를 걸어오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장면에 대해서 나는 이미 설명했다) 여기는 도호 스튜디오가 아니다. 이 바람은 <요진보>의 거대한 선풍기 바람이 아니다. 그저 그 시간에 부는 바람. 영화가 그때 거기에 있다는 문제. 지금 바다는 화면 앞에서 명백하게 과잉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영화가 드라마를 포기하고 그 과잉에 몰두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이 나왔을 것이다.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무엇을 찍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임권택은 여기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이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 바다는 어떤 은유도 상징도 아니다. 그런데 그 공포가 종종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말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바다, 라고 써야 할 자리에 공포, 라고 말했다. 방치될 수밖에 없는 환경. 바다는 그저 거기에 있다. 마치 재난과도 같은 그것. 이제까지는 그냥 놓아두면 영화의 장치들을 닥치는 대로 망가트려버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 그런데 거기에 장치들을 대신하는 세계의 체험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을 임권택은 몇몇 순간에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그냥 내버려둔다. 영화에서 상실이란 없다.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물러날 이유가 없어졌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에서 충분히 실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독도에서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를 찍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임권택의 표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 장면들이 증명하는 기이한 선물, 바다라는 영도(零度)를 깨달았을 때 그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계속)
종종 임권택 을 공격하기 위해서 ‘따분한 계몽영화’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이 단정적인 범주와 싸우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그건 공격적인 지시어를 꺼내 든 쪽도 마찬가지이다. 계몽은 매우 긴 철학적 토론의 역사를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계몽은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 서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지식 사이에 스며든 권력 장치의 작동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칸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칸트는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 다음 1798년 다시 한 번 약간 질문을 바꾸어 혁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았다. 그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쓴 「계몽의 개념」에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계몽의 방식에 몸서리쳤다. 계몽이라는 이름의 후퇴. 이 역설적인 패배. 우리들이 계몽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꺼내 들 때 대부분은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글은 다른 단상들과 함께 1969년 4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하지만 푸코는 이 말을 재치 있게 뒤틀었다. 그는 계몽주의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계몽이라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을 빌린 대답)을 읽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에 있었던 지적인 불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는 이 논쟁을 다루기에 적절치 않다. 하지만 나는 ‘계몽영화’라는 개념 속에 서로 완전히 대립적인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는 것만은 환기시키고 싶다. 종종 이 논제를 쉽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게으른 비평가들은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서 (미처 정의내리지 못한) ‘계몽영화’라고 부른 다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 영화들이 국가에 의해서 산업에 부과된 강제적인 수행인 것처럼 부른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근대의 과정을 밟아나갔고 농촌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는 단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 존재하는 (약간 따분한 표현이지만) 둘 사이의 간극에는 어떤 지체가 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있다. 여기에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관계를 일시에 와해시키고 경작자의 농작물에 대한 노동의 결과를 자본주의 노동지대로 전화시키는 과정에는 토지의 소유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차액지대라는 다소 까다로운 잉여가치의 모순이라는 계산법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계산은 내 몫이 아니다. 이 과정에 국가가 폭력적으로 개입했을 때 예술이 항상 국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도브첸코는 이 개입을 시적으로 옹호했다. (< 대지 Zemlya >(1930)) 부뉴엘은 처음에는 다소 에매한 입장을 취했다. (< 빵 없는 대지Las Hurdes >(1933)) 반대로 누군가는 이 개입을 필요한 악이라고 옹호하기도 하였다. 물론 필요한 악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잘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rung」 이 시기에 임권택 은 근심스럽게 그 폭력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강제적인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임권택은 (아주 직접적인 의미에서) 계몽교훈극 영화에 가담했다. 그건 사실이다. 아마 그 첫 영화가 < 아내들의 행진 >일 것이다. 1974년은 새마을 운동이 국가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해이다. 하지만 그런 다음 < 아내 >와 < 옥례기 >를 찍고 나서 새마을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후’이다. 임권택은 자발적으로 계몽 교훈극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사태가 기묘한 것은 이 첫 번째 교훈극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화가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때 임권택은 단순하게 계몽에 합류하는 이상으로 사회 안의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에 대해서 선악을 구별한 다음 가혹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때 공동체의 도덕은 다소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임권택의 도덕은 지나가 버린 공동체와 도래할 (혹은 해야 할?) 공동체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금은 틀렸지만 그 비판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종종 모호하다. 그래서 다소 따분하게 여겨지는 훈고주의적 향수처럼 느껴지던 설교가 어떤 때는 갑자기 공허할 정도로 원칙적인 자리에 창백하게 머물면서 현실 안에서 거의 불가능한 비판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임권택의 일관성은 거의 무조건적인 충실함이다. 무엇에 대한? 여기에 이상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이웃에 대한 충실함. 이때 자기 자신의 주인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이웃의 자리에 대한 충실함이 지켜져야 할 때 여기에는 자기와 이웃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어야 하는 전체선이라는 불길한 구름이 떠오른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구름.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덩어리. 건드릴 수 없는 자리에 떠 있는 저 그 무엇. 나는 여기서 구름이라는 표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붙잡을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는 저 모호함이 종종 공허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저것이 마치 (이 말을 피하고 싶지만) 큰 타자처럼 아주 분명하게 머물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 세계에는 어떤 권리도 없고 오직 의무와 책임만이 있다. 어떤 의무? 그것을 쳐다보아야 할 의무. 어떤 책임? 그 의무를 지켜야 할 책임. 그것이 이 세계에 머무는 방법이다. 임권택은 이 방법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종종 그 구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싶어 할 때 생긴다. 그때 임권택은 그 자리를 법정에 넘기거나(< 법창을 울린 옥이 >) 혹은 왕의 자리에서 명령하는(< 망부석 >과 < 십년세도 >) 형식을 취했다. 그런 다음에도 그의 영화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이 자리를 구태여 남겨 놓았다. 종종 임권택이 절제와 단호한 결정에 따른 결말을 마련했다고 설명하는 후기 영화들에서조차 그 자리는 좀 더 세련되고 때로 뒤로 물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김두한이 어린 시절의 친구 김동회가 혼마치깡의 일본 야쿠자 하야시 패의 앞잡이가 되어 대결을 청할 때 갑자기 지식인이었지만 거지패로 전락한 사내가 끼어들어 상대방의 민족의 도리를 외마디처럼 따져 묻는다. (< 장군의 아들 >) 나는 임권택의 영화 전편을 놓고 이 자리에 관한 긴 목록을 작성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큰 타자의 자리를 가장한 국가의 요구와 임권택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 자리를 채우려는 노력 사이에서 1970년대 혹은 80년대 초의 영화들이 겹치면서 사태를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 복부인 >은 임권택 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그래서 심지어 순수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계몽교훈극이다. 좀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1979년 10월 26일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신을 국가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새마을운동을 근대화의 정책으로 집행했던 장기집권 독재자인 대통령이 부마항쟁에 이어진 요정에서의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아주 잠깐 있었던 80년의 봄의 기운이 전혀 없다. 그건 그해 만든 다른 영화 < 짝코 >에서 그나마 희미하게 느껴지던 그런 열린 숨통의 약한 기운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임권택은 정치적인 담론들 사이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다. 물론 <복부인>은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임권택의 영화는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반공영화에 대한 반(反)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짝코>도 반공 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복부인>을 보고 난 다음 잠시 멈추게 되는 것은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경멸감이다. 그것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정치경제학적인 계몽의 관점에 선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 그럼에도 여기에 그 과정에 대한 분석적 비판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임권택의 새마을 운동 계보 임권택 은 돈을 종종 징그럽게 쳐다본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것은 돈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마치 임권택은 돈이 자본주의의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전염병인 것처럼 대하면서 돈을 다루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사이에서 그 누군가의 악에 의해 다른 누군가가, 혹은 그 전체가, 붕괴되는 대신 아무 문제 없었던 관계에 돈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어서 생겨난 새로운 관계 사이의 잉여가치에 의해 타락하는 것처럼 다루었다. 여기서 이 설명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형식 자체의 비밀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 잉여가치의 이면에 숨겨진 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다룬다. 미처 보지 못했지만 형식 뒤에 숨져진 돈의 이면이 만들어내는 물신숭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 잡초 >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정한다. 그런 다음 그는 긍정의 계열과 부정의 계열 양쪽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전자의 계열이 ‘새마을 영화’인 < 아내들의 행진 > < 아내 > < 옥례기 >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 맨발의 눈길 > < 내일 또 내일 > < 복부인 > < 오염된 자식들 > 그리고 < 티켓 >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 다음 마치 이것이 돈에 대한 이론적 실수인 것처럼 양쪽의 계열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권택이 함께 계몽교훈극의 양식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돈의 문제가 완전히 이야기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의 운동이 관계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관찰을 중단했을 뿐이다. 이 두 개의 계열에서 이상한 것은 한쪽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다루었던 부의 축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수수께끼처럼 악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계열은 거의 공존하듯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마치 임권택은 둘 사이에 아무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번갈아 두 계열 사이를 오갔다. 여기에 단순하게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티켓>은 이전의 영화들이 무대로 삼았던 서울로부터 강원도의 작은 항구도시로 물러난다. 물론 둘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나는 부의 축적을 향한 ‘선한’ 의지가 있다. 다른 하나는 부의 효과에 의해 ‘나쁜’ 선택을 한다. 물론 그 둘이 결국 도달하는 차이는 정반대의 자리이기는 하지만 문득 그 결과를 바라보면서 그 둘이 서로에 대한 외설적 버전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 복부인 >은 그 점에서도 좀 괴상해 보인다. 임권택 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희극에는 자신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점을 고백하곤 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무겁고 종종 어두우며 희극적인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낭만적인 기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따금 희극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1969년에 만든 시인 천상병의 기행에 관한 희극 < 신세 좀 지자구요 > 이후 임권택은 이 장르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복부인>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조금도 우습진 않지만 임권택은 그녀들의 행동을 다소 과장된 톤으로 우스꽝스럽게 다룬다는 점에서 희극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한혜숙이 연기하는 한 여사가 달동네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복부인이 되어 처음에는 아파트 투기를 하다가 땅 투기에 나서고 그녀들을 상대로 커미션을 받던 부동산 업자가 사기를 치고 해외로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이 이들을 덮쳐 모두 감옥으로 간다.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오는 세 여자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서로에게 ‘여사’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끝내 우리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익명의 존재. 그녀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 불려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또한 누구도 그 자리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가 거기에 있다. 한 컷으로 촬영된 들고찍기 두 번째 괴상한 점. < 복부인 >은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난폭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지닌 영화이다. 임권택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을(hand_held)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정교한 구도를 선호하며 종종 그 자리에 멈춰 서서(fixed) 등장인물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 같은 거리를 선택한다. 더군다나 임권택은 <복부인>을 찍은 이듬해 그의 가장 명상적인 영화 중의 한편인 < 만다라 >를 그렇게 멈춰 선 채 망원렌즈로 멀리서 바라보면서(long_shot) 찍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촬영 스타일의 변화를 찾고 있지 않았다. 임권택은 사실상 < 족보 >에서 자기 스타일을 찾았고 그런 다음 그걸 밀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부인>은 거의 예외적으로 인물을 따라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서 몹시 흔들리거나 때로 인물 동선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당신은 이때 가벼운 경량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미첼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던 시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이 여기서 서정민에게 요구했을 카메라의 스타일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뉴스를 찍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복부인의 생태를 고발한다는 심정으로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복부인>은 드물게도 (그리고 아마 거의 마지막으로) 1.33 사이즈로 찍은 영화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이 영화의 화면을 보고 있으면 고전적인 4대 3 비율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떠오른다. 만일 스타일로 설명한다면 <복부인>은 <족보>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나중에 나타날 것의 준비라는 과정의 바깥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하게 불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에 담긴 분노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보는 내내 그걸 느낀다. 그래서 그 과정 자체를 중단하고서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그 어떤 대상이 여기에 있다. 이때 해야 할 그 무엇이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여기에 있다. < 복부인 >은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과 타협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한 부정적 계기인 것이다. 우리가 이걸 완전히 역전시켜서 물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복부인>에서 임권택 이 한 것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만 했다. <복부인>은 이야기 안에서 보기에는 도덕적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임권택에게 윤리적인 결정이다. 그걸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리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한다. 나는 지금 <복부인>의 미학적 결정을 물어보는 중이 아니다. 이 영화를 형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간다면 너무 빈곤하고 앙상해서 누구라도 그냥 빨리 지나쳐가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여기에는 임권택이 이건 그렇게 해야만 한다, 는 어떤 태도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복부인>은 < 짝코 >가 만들어지던 해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고 < 깃발 없는 기수 >와 < 만다라 >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계열이 여기에 공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복부인>은 < 내일 또 내일 >에서 < 오염된 자식들 >로 가는 그사이에 놓여있다. 여기에는 다루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충동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진동의 목표는 형식 안에 통합될 수 없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내가 임권택의 내면을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비평의 자리를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에게 돈은 미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에서 더 있는 그 무엇이다. 후렴구 같은 반복. 더 있는 그 무엇. 그래서 때로 임권택의 계몽교훈극들은 마치 자본주의 바깥에 놓인 것처럼 시작한 다음 거기에 돈이 침입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다소 따분하게 설명하면 임권택은 고전경제학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고 그 잉여의 형식을 분석하는 자리로 밀고 나가지는 않기 때문에 그가 보수주의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임권택이 단지 국책영화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수동적인 영화들을 추월해서 자발적으로 그 과정의 불행과 경제적 행위 뒤에 놓여있는 도덕적 타락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 그는 무언가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심지어 자신의 영화 안에서 나타나야 할 과정의 형식조차 포기한다. <복부인>이 취한 다소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부정확해서 종종 도덕 교과서적)인 관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섬뜩해지는 순간은 그때 나타난다. 내내 돈의 교환관계에서 계약의 사법적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위법의 행위에 대해서 반감을 표시하던 이야기에서 비교적 주변에 놓여있던 인물들이 한 여사와 함께 계급적 상승을 하는 동안 이따금씩 등장하다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주인과 노예의 전도된 관계로 도약을 시도할 때 임권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경멸의 태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한 여사의 어머니. 그녀는 영화에서 아주 가끔 등장해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한 여사를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변화를 과정 안에서 보면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한다. 하지만 아주 이따금 등장하는 어머니는 마치 그녀의 인격이 집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으로 이 신에서 저 신으로 옮겨갈 때 점프한다. 아니, 차라리 돈이 만들어낸 재산과 그에 따른 부의 축적이 가져온 새로운 관계에서 두 명의 다른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돈은 인물과 사회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돈이 가져오는 가장 큰 효과는 그 인물에 대한 타자로서의 또 다른 그 인물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인물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된다. 좀 더 명료한 설명. 그 인물에 돈이 플러스 될 때 그 인물은 +a가 아니라 a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혹은 이동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임권택은 모순이 발생할 때 그 안에서 어떤 종합도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모순이 점점 더 확장되면서 전체가 붕괴되어 간다. 다만 그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몹시 무서운 사실. 아무리 모순이 확장되어도 세계가 붕괴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건 그의 경험주의적 진술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확장되어도 세계가 몰락하지 않을 때 세계는 끝이 없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물은 간신히 견디면서 점점 더 찌그러진다. 그때 항상 임권택이 선택하는 방법은 둘 중 한 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때 이야기의 고정점이 되었던 인물을 삭제하거나 아니면 이야기 바깥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혹은 내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복부인>은 <짝코>와 동일한 결말을 맞는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다. 혹은 <만다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참선의 세계에서조차 그런 결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세계가 남는다. 혹은 지옥이 기다린다. 세 번째 괴상한 점, 혹은 맨 처음의 질문. < 복부인 >이 계몽교훈극의 형식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교훈은 어딘가 당혹스럽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긴 설교가 나온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은 토지 사기를 당하기 직전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이때 마침 그녀들이 땅 투기에 치마 바람으로 바깥으로 나도는 동안 내기 화투에 빠진 남편들이 타짜들의 짜고 치는 도박에 걸려들기 직전 마찬가지로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나는 일부러 복부인과 그녀들의 남편을 거의 반복하듯이 썼다. 그런 다음 그 둘은 우연히도 운 나쁘게 같은 경찰서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 복부인과 남편의 대면, 그리고 남편의 일장연설 양쪽을 번갈아 본 다음 “지금이 어느 땐데 정신 못 차리고 이래?”라고 야단치는 형사에게 한 여사의 남편이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형식을 빌려서 긴 설교를 한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 저들 복부인들의 투기는 사기 도박꾼들보다도 훨씬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저 여자들 때문에 주택과 땅값은 천장을 모르고 뛰고 결국 그 대가를 마지막으로 치르는 것은 저 여자들의 투기와는 하등 관계없는 영세민이요, 실수요자들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찍혔고 그러면서 필요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다. 영화는 이 대사를 하는 동안 마치 경청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약간 웅변을 하는 것처럼 하는 이 설교는 < 복부인 >이 일종의 교육극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환기시킨다. 그들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 시련을 겪었고 이제 설교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 대사가 끝나면 암울한 감옥이 보여지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영화는 끝난다. 대사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 대사 안에서 땅 투기와 도박 중에 어느 쪽이 더 “반사회적 해악”인지를 따지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잘못을 따져 물을 자격이 있느냐고 바보같이 반문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이 대사는 <복부인>이라는 계몽교훈극이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그런데 이때 이 대사에는 어떤 교훈도 없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이 경찰서에 온 것은 경찰의 부동산 사기단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의 투기 과정이 드러나 함께 검거된 것이지 그녀들의 땅 투기 과정에서 “투기와 아무 상관 없는 영세민들이요, 실수요자들의” 고발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또한 이야기에서 세 명의 복부인은 서울 인근 지역의 재개발 지구의 농토를 소유하던 할아버지를 속이긴 했지만 그녀들은 그 과정에서 영세민들과 거의 어떤 불화도 겪지 않았다. 그 땅은 내놓은 물건이었으며 그녀들은 중개업자로부터 그 땅을 사들인 다음 되팔았다. 여기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거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 여사는 자신의 남편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교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거시적인 경제적 관점을 도입한다면 그녀들은 시차 간 차액을 이용하여 부당한 착취를 한 것이긴 하지만 <복부인>은 그런 관점과는 멀리 있다. 그녀들이 부동산 중개업자 송 사장을 통해 그 정보를 미리 취득하기는 했지만 여기는 지금 1980년이고, 그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는 행정과 자본 사이의 부의 재편과정의 일부였다. 몹시 끔찍한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대통령들도 부동산에 뛰어들어 친인척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의 명단이 있지만 나는 논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이제 막 한강 이남에서 강남이 세워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는 야만의 시간이 시작하던 영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설교는 교훈의 형식을 빌려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대답을 구하기 위해 그저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면 끝내 대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 복부인 >은 영화가 시작하면 공항에 남편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서 중동에서 (아마도) 장기간 일을 한 다음 지금 막 귀국하는 길이다. 그런 다음 장모를 만나 호언장담하면서 그동안 600만 원이나 벌었으니 이제 집도 사서 이런 달동네를 벗어나자고 말한다. 그가 되돌려 받는 말은 그 돈으로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느냐는 대답이다. 600만 원이나 벌었다는 가치의 평가와, 600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대답 사이의 간극. 단순하게 말하면 남편의 노동에 대한 임금의 가치가 느리게 축적되는 동안 재빠르게 상승한 사회 자본의 가치가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꿈은 즉각적으로 좌절된다. 그건 이미 그가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예고된 일이다. 그의 집은 마치 등산을 하는 것만 같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달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엔 택시도 가지 못한다. 아내는 택시비를 낸 다음 잔돈을 받기 위해 운전기사와 승강이를 벌이고 그런 다음 남편으로부터 ‘쪼순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한 여사는 주택 청약금을 든 아파트를 보기 위해 나갔다가 거기서 복부인으로 나선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얼떨결에 그녀들에게 당첨 순위인 아파트 청약번호를 넘긴 다음 며칠 후에 600만 원을 번다. 동일한 액수. 당연한 말이지만 돈은 질적으로 다른 모든 대상을 동일한 가치의 척도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그 앞에서 남편이 중동에서 그 돈을 벌기 위해 팔아야 했던 노동력의 양과 시간은 한 여사가 단 며칠 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 아파트를 환매한 차액과 동일한 교환가치의 수치가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이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로 전화된 노동의 형식을 내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전자이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영화들은 과격한 정치적 해결을 제시하지만 대답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켄 로치는 매번 도식의 덫에 걸려든다. 후자를 선택하고 이 문제의 핵심으로 인물을 끌어당긴 다음 그 심연까지 들여다본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소매치기 >이다. 물론 임권택 이 브레송의 방법을 따른 것은 아니다. 브레송은 그 간극 자체를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먼저 돈과 손의 운동을 보여준 다음 그 운동을 감옥으로 이동시킨다. 미셀은 마지막 순간 안타깝게 독백하듯이 말한다. “당신에게 이르는 길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두 영화가 모두 감옥에서 끝났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하지만 <복부인>은 <소매치기>가 아니다. 임권택은 이 계보의 한쪽 끝을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과 내용 사이의 매듭이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실재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수수께끼에 이르는지를 다루지는 않는다. <복부인>은 다만 형식의 효과 안에서 내용에로 되돌아가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형식을 다시 내용으로 전도시키는 과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 관해서 약간 도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 여사가 자신의 동창인 박 여사와 정 여사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남편은 이야기의 뒤편으로 물러난다. 한 여사의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은 이따금 등장하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뀐다. 이때 임권택 은 < 복부인 >의 이야기를 사회로 확장하는 대신 가족 안에 머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시피 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복부인>은 근본적으로 홈드라마이다. 이것이 맨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장황한 설교가 영화 자신과 조응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바깥으로 나간 남편이 자기의 원래의 자리에로 되돌아오려는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마치 이 마지막 장면은 <복부인>이 설교의 신과 나머지 영화 전체 둘로 나뉘어 있으며 이 신에서 다른 부분 전체가 미처 말하지 않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반대로 이 설교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반문이 거기 고스란히 따라온다. 임권택은 이 설교를 단지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야 하며 남편은 (다시 한 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주체의 정립을 위한 헛소리에 가까운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에 임권택의 많은 영화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나서야 했으며 그녀들은 남편과 역할을 바꾸거나 자식들 앞에서 어머니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거나 때로 그녀 혼자 자립해야만 했다. 남편의 설교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다시 한 번 영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중동에서 돌아온 남편과 그의 아내 한 여사(와 딸과 장모)가 살고 있는 집은 영세민들의 동네였으며 한 여사가 복부인 동창들을 만나게 되는 아파트 분양 현장에 간 것은 그녀 가족의 실수요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집(home)과 집(house) 사이의 간극이 있다. 그런 다음 이 둘은 내용으로서의 집과 형식으로서의 집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 둘이 조응하는 대신 형식으로서의 집은 갑자기 내용에 구멍을 뚫은 다음 새로운 네트워크로 빠져나가면서 자기의 형식에 조응하는 새로운 참조틀로서의 내용을 찾기 시작한다. 이 공식은 여러 차례 임권택의 영화에서 반복되었다. 이제 서로 다른 두 개의 내용을 갖게 된 형식으로의 집은 자신의 (확대)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에 집중하면서 낡은 내용을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도시키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한 여사와 남편 사이의 부부관계는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복부인>은 기이할 정도로 남편과 한 여사 사이에서 부부관계를 보여주는 그들만의 아주 사소하거나 은밀한 장면이 없다. 그런 장면이 비어있어도 될 만큼의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 있는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남편이 한 여사에게 이 관계에서 실패하거나 무심하게 대하는 어떤 순간도 없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중동에서 벌어온 600만 원이 집을 사는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곧장 부동산의 네트워크 안으로 뛰어든다. 임권택은 이 간극이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난장판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여기에 어떤 영화적 형식을 부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권택에게 영화에서 형식이란 절대적으로 그 인물의 외재적 내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오로지 재귀적으로 경청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들어야만 <복부인>이 지닌 계몽교훈극으로서의 진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내용이 형식의 타락에 대한 방어선이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만일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내용 자체가 소외의 모습으로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임권택의 도덕은 여기서 나온다. 그는 대상이 자신이 지닌 내용을 포기하고 형식이 압도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형식으로부터 내용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은 둘 중 하나이다. 대가를 치러야 하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 그때 내용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야만 이 셈은 비로소 성립된다. 임권택의 도덕이 처음 시작할 때는 항상 보수적인 자리에서 시작하거나 때로는 국책 홍보의 일부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추월해서 자신의 도덕을 집행하기 시작할 때 섬뜩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끝’ 네 번째 괴상한 점, 혹은 영화 이후의 시간. < 복부인 >의 마지막 설교의 장면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떤 화해의 시간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자기 자신을 위한 반성의 시간이 없다. 설교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끝난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저들, 이라고 부른 다음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이라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린다. 남편은 아내를 용서할 생각이 없으며 아마 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그럴 것이다. 남편은 사기도박의 피해자이고 아내는 부동산 투기의 사기조작에 일부 가담했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간의 벌금을 내고 경찰서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 부부는 함께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다음 남편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아내의 반론은 여기에 없다. 계모가 되어 남의 자식에게 애정을 베풀면서 자기 자식을 홀대하며 평생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낳은 자식과 마주해서 서로의 입장을 길게 논쟁하다시피 전개했던 < 둘째어머니 >를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에는 형평성을 잃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여기에는 남편의 오만이 있다. 이 설교의 앞부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중략)” 남편은 자기의 자리를 희생자의 자리에 가져다 놓은 다음 복부인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소 까다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복부인의 “반사회적 해악”을 비판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에 와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은 그 전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한 여사는 종종 집에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나 귀가를 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딸을 걱정했으며 남편이 속을 썩인다고 말을 하면서 여전히 관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동안 춤바람이 나긴 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성적인 교제를 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약간 조롱을 섞어 말하자면 그녀가 부동산 투기를 하고 다니는 동안 남편이 사회경제적인 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세상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남편이 한 것이라곤 화투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가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이 장소가 경찰서라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임권택 은 교훈의 순간 종종 법정이나 경찰서, 혹은 교실과 같은 제도 기구의 장소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그 설교를 제도의 담론처럼 환유시킨다. 임권택이 이루어낸 환유의 설교를 하는 장면에서 미학적으로도 가장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떤 한계까지 밀고 나아간 순간이 < 티켓 >에서 정신병원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대화일 것이다. <복부인>에서 순서는 이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결국 타락한 형식이 마지막에 도착할 장소는 경찰서일 것이다. 한 여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맨발의 눈길 >) 혹은 미쳐버리는(<티켓>) 것은 여기에 올바르지 않은 목적지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계몽교훈극이다. 이때 이 장소에 형식의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형식이 되어버린 남편이 같은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여기서 남편이 한 여사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둘 모두를 사법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형식을 바라볼 수 있는 내용의 일그러진 시선이 필요해진다. 남편은 우월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사의 자리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노름판과 부동산 투기. 타짜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도박 화투의 희생자들. 부동산 투기 전문가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부동산 복부인들. 이 둘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진 거울이 그 둘을 마주 보게 만든다. 회화에서의 관점의 이동에 의한 잉여지식의 자리. 이때 내용은 형식을 내면화하고 주관화시키지 않으면 그 형식이 본래적으로 출발했던 내용의 도착적인 욕망을 읽어낼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로 돌아가기 위해 이 말을 할 때 그 설교는 고스란히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한 여사의 반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구태여 그 말을 해야 한다면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은 그 반복을 찍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중요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몽교훈극의 대답은 언제 와야 하는가. 영화가 끝난 이후로 미루어 놓아쐽옳求짙옛틈句옜덫옛호옰颱督쳐杞옳求짙? 임권택 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자리를 영화 안에 남겨놓았다. 이때 이 대답이 구조 안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옳은가, 라는 반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교훈이 목적론적이 되는 것은 옳은가. 그래서 많은 계몽교훈극들은 이 대답을 사후적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자리를 영화 바깥에 포함시켜 왔다. 임권택은 그 자리가 가진 불편함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안에 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그의 영화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유지된 거의 유일한 태도이다. 종종 임권택의 영화를 본 다음 설명적이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도 이 불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다소 몸서리를 치듯이 끄덕이며 대답한다. 잘 아는 것 같죠, 그런데 그걸 정말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는 어떤 화해도 없다. 그는 이 화해가 심지어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오fot동안 생각해왔다. 그런 다음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임권택의 영화는 그 말이 영화 전체의 활동 자체를 통해서만 제대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올바른가는 내가 해야 할 질문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그 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계속) 1980년 9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세경흥업 각본 윤삼육 촬영 서정민 조명 김강일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