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 감독
- 스티븐 S. 캄파넬리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올가 쿠릴렌코, 제임스 퓨어포이, 모건 프리먼, 제나 사라스, 사빈 팔피, 칼 타닝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1789년 혁명의 여름에 쓰인 인권선언은 재산과 생명을 불가침의 권리로 상정하였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 도둑질을 대가로 가혹한 형벌을 받은 장발장은, 불가침의 권리를 어긴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던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가혹한 처벌과 함께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도시를 둘로 갈라놓았다. 도시의 한 켠에는 전례 없는 풍요와 번영이, 다른 한 켠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빈곤이 자리를 잡았다. 도시에 넘쳐나는 이 빈곤과 마주하며 지식인들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말했다. 피에르 르루처럼 다수의 힘으로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며 ‘사회주의’를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세기말에 이르러 에밀 뒤르켐이나 마르셀 모스처럼 ‘연대’와 ‘증여’를 사회적인 것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행동과 사고를 관찰하며 문제를 분석해보자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을 말한 아돌프 께뜰레,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을 말한 루이 빌레르메, 그리고 사회학(sociology)을 말한 오귀스트 꽁트가 그들이었다. ‘social’이라는 형용사가 만들어 낸 렌즈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의 형상을 발견해 나갔고 또 발명해 나갔다. 관찰은 주장이 되었고, 정책은 안전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안전망은 도시의 삶과 습속의 ‘일반성’과 ‘정상성’ 창출을 목표로 했다. 이에 따라 남성의 경우,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은 후에는 (핵)가족을 구성하고, 내 집과 내 차를 마련한 후에는 주중에는 일터와 집을 오가고 주말에는 백화점이나 공원과 집을 오가는 ‘보통의 삶’이 20세기 들어 점차 일반화되어갔다. 20세기 중후반 서구사회는 그랬다. 1990년대 한국의 대학가에는 ‘포스트(post)’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다. 탈독재, 탈냉전, 탈사회주의라는 변화를 배경으로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너머(post)를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민족주의, 포스트발전주의 등, 대다수는 이른바 ‘선진국’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온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제 한국사회가 ‘정상’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상황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느 선진국처럼 민주주의를 누리고, 여느 선진국처럼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는 판단. 그렇기에 이제는 반봉건사회라든지 주변부 사회라 말하기 어렵다는 판단. 이런 판단들이 중첩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과, 이제는 민중을 대신하여 중산층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판단이 지식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유령은 다름 아닌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도시를 누비는 자동차의 숫자도 ‘아파트’라 불리는 주거 상품의 가격도 빠르게 늘어갔지만, 이렇다 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빠르게 증가한 것은 불안한 일자리와 불안한 삶들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사회가 경험했던 정상적인 삶의 일반화는 인류 중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고,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괜찮은 일자리, 자동차,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산층 가족을 구성하며 여가와 소비를 즐기는 삶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 간주한다. 안전망 없이 규범만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사회적인 것’을 말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담론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과 사회적 안전망의 뒷받침 없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에 관한 규범만 창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 없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구와는 다른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인 것’이 있던 것은 아닐까? 서구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습속을 창출하는 장치들이 있던 것은 아닐까?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 88 서울올림픽대회 폐회식 야경 원경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렇게 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1988 서울올림픽이었다. 정상적인 삶을 창출하는 안전망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의 외양이 만들어지는 모멘텀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아파트뿐만 아니라 백화점, 공원, 미술관, 공연장 등 정상적인 삶의 외양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배치하는 계기였다. 또한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담론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정상적인 습속을 창출하기 위한 캠페인과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되는 계기였다. 이러한 도시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이들에 관한 드라마 <우리는 중산층>(1991)과 <말로만 중산층>(1991~1992)이 방영된 것은 올림픽 직후였다. 그랬기에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탄생을 말하고자 한다면 서울올림픽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논문에서 필자는 서울올림픽이 정상적인 삶으로서의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수단이자, 습속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정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문서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잡지와 도서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 서울의 골목 골목마다 남아 있는 권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또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통제하고자 한 권력의 강박을 보여주고자 했다. 서울올림픽을 도시와 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메가이벤트(mega event)로 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을 탈정치화시키고 우민화시키고자 올림픽을 개최했다고 하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가이벤트라는 프레임은 정상적인 삶과 습속을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에 한계를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책은 존 매칼룬과 요시미 슌야 등의 공연론을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이라는 기획에서 마무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공연의 기획에서 커튼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해 보고자 했다. 또 그 범위가 무대 제작에서부터 배우 준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기에 ‘연출’이 아닌 ‘드라마투르기(극작법)’로서 올림픽의 준비와 상연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사진: (상)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식전공개행사, 입장)( 1 , 2 )", (하)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 공개 행사( 1 , 2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럴 때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다. 권력을 손에 넣은 군인들이 사회 구성원들과 맺은 것은 그럴듯한 공연에 관한 계약이라는 것. 그런 군인들은 서울올림픽을 위해 전 국민을 배우로 동원했고, 관객이 될 외국인의 시선을 앞세워 서울이라는 무대를 만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과 무대 아래 감출 것을 나누었다는 것. 올림픽 이후에는 무대가 확산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연출하는 배우가 되어갔다는 것. 서울올림픽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은 군인을 대신하여 가상의 외국인과 공연 계약을 맺고 공연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는 외국인들에게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음으로써 한국사회 내 지지를 획득하는 사회적 질서로서의 88년 체제를 탄생시켰다는 것. 하지만 이런 공연 계약은 무대의 위와 아래를 나누어 사회적 갈등에 분열에 취약하다는 점.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극장도시’라는 표현에는 필자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필자가 거주하던 서울 관악구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꿈꾸며 상경한 이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공간이다. 서울은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좁기만 한 원룸이나 고시원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도시다. 이런 공간에 사는 이들이 불안과 우울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은, 한강이 되었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되었든 집 바깥의 어딘가 그럴듯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을 사진으로 남기며 자신의 삶을 전시 내지 상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럴듯한 공간의 다수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서울은 보여줄 수 없는 내 방과 보여주고 싶은 공원, 박물관, 백화점, 미술관 사이의 대비가 분명한 도시이자 무대의 위와 아래가 명확한 도시이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전시적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서울은 극장도시인 것이다. 사진: “ 서울 풍경 ”, 서울특별시 서울사랑 (문덕관) 박해남(사회학 연구자) l 계명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20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의 도시와 도시 속 삶들을 연구하고 있다.
스톱모션이라는 미학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이론에 의하면, 이 예술 장르에 적합한 미학의 뿌리는 색채론과 표현주의, 그리고 비선형적 공간구성 등 상당 부분 모더니즘적 전통에 기대어 있다. 물론 필름(film)이라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소비가 가능하게 된 시점이 모더니즘의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그 시대적 모멘텀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초기의 애니메이션이 상당 부분 실험적 영화의 틀 내부, 그리고 모더니즘 회화 작가들의 활동에 의해서 유지된 점도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색채, 움직임, 추상화(abstract), 분절적 공간 구성 등은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미학적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적어도 전통적인 애니메이션(orthodox animation)에서는.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 접근, 또는 적용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양식이 있는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세트를 제작하고, 퍼펫을 만들어 그것들을 실재하는 공간에 배치한 다음, 이들의 포즈를 사진이라는 기계적 특성을 이용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실사영화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괴테의 색채론 보다는 데카르트의 광학이론이, 캐릭터와 공간의 비선형적 분절보다는 선형적이고 비분절적인 공간 구성이 우선한다. 무엇보다도 스톱모션은 가상의 빛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광원으로 공간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작품 제작의 공간은 오히려 실사영화의 세트촬영을 축소한 형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과 실사영화의 특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가 각자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나갈 때에도 실사영화의 한 꼭지(마치 최근의 디지털 영화의 그것처럼 영화 속 FX 효과의 하나로서 합성)로 최근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스톱모션 이미지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공유하며 두 영역 사이의 다양한 이미지들과 쉽게 병치되거나 합성될 수 있다. 후에 언급할 김강민 감독의 < 38-39°C >은 이러한 스톱모션 이미지의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들의 환영적 병치 또는 환상적 리얼리즘 목욕탕을 찾은 한 중년의 남성이 (아마도 아버지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기억하게 되는 백일몽의 이야기를 담은 < 38-39°C >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며, 종이를 이용해 인형을 만든 페이퍼 퍼펫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에 사용되는 퍼펫은 쇼트의 특성과 카메라의 앵글에 맞춰 각각 별도로 제작되었는데, 캐릭터들은 평면의 색면이면서 동시에 카툰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작품의 세트는 모두 정교하고 깊이감 넘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목욕탕 입구와 내부로 나뉜다. 입구는 평면적인 배경을 애니메이션의 레이어와 같이 배치하고 입체적 소품들을 병치하여 독특한 느낌을 환기시킨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주요 공간인 욕실 내부는 상당히 입체적이고 빛과 그림자에 의해 구분되어 상당히 실사 영화적이다. 세트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며, 오랜 기간 노하우를 통해 완성된 스타일처럼 보인다. 예의 언급처럼 스톱모션 이미지의 이중적 의미에서 보이는 공간들은 비단 세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품의 쇼트구성도 마찬가지인데, 욕실 내부를 그린 두 번째 시퀀스 초반 역시 상당히 실사 영화적이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쇼트들 사이로 녹아들어 있는 공간의 인서트들은 이 작품의 독특한 이미지만큼이나 신선하면서도 우아하다. 특히 목욕탕 내부에 스며든 수증기와 빛의 궤적을 더듬는 장면들은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실제 빛과 광선에 대한 이해와 재능을 놀랍도록 실감하게 만든다. 다시 작품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목욕탕에 찾아온 남성의 이야기이다. 공중목욕탕의 ‘남탕’ 하면 흔히 떠오르는 키워드는 보통 ‘문신남’, ‘때’, ‘아버지’, ’바나나우유’ 정도가 되는데, 이 작품도 오래되고 홀로 남겨진 듯한 공중목욕탕의 이미지 속에서 중년이 된 남성을 통해 ‘아버지’를 소환한다. 작품의 두 번째 시퀀스인 백일몽 장면은 이러한 아버지를 호명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작품의 초반과 후반에 언급되는 팽이는 시간과 엮인 과거로의 상징적 배치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작품에서 과거의 한 장소를 소환하는 과정이다. 감독은 과거의 이미지(등이 붉게 타오른 아버지)를 소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물질적인 필름이미지를 동시에 불러들인다. 영화관에서 셀룰로이드 필름이 타들어 가는 듯한 이미지부터 필름 스트립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속도감 있는 색면들의 병치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충돌시키고 있다. 마치 렌 라이(Len Lye)의 작업처럼 보이는 느닷없는 이미지들은 스톱모션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프로젝션처럼 보이는 배경 이미지들과 함께 병치되면서 물질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감독의 이러한 이미지 병치는 스톱모션 이미지라는 이중적 양식에 절묘하게 들어맞으면서도 동시에 표현주의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스스로의 작가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감독은 작품 속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히 다양한 방법을 접목하고 있는 듯한데, 투명한 유리를 카메라 앞에 두고 소프트렌즈 효과를 만들기도 하며, 미디어 파사드와 같은 프로젝션 기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후반 과정을 통해 작은 이미지의 변형을 주기도 한다. 가장 원형적인 빛의 이미지와 그것에 대한 이해력, 세트와 캐릭터에 주어진 색채와 유려한 미장센, 그리고 자유로운 이미지들의 인서트와 텔롭(작품의 이미지 위에 얹히는 타이포그래피) 등은 그가 가진 작품의 색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간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복제와 움직임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완성하는 동시대적인 이미지인 ‘합성’이미지에 가깝다. 또는 스톱모션이라는 사실적인 세트에 느닷없이 ‘낯설게’ 접근해 들어오는 캐릭터와 이미지들은 결국 이 작품을 환상적 리얼리즘에 가깝게 만들어 버렸다. 스톱모션이라는 경계 사실 스톱모션은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제작기법이다. 말하자면 초기 실사영화의 기법 연구 과정에서 등장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CG와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인해 그 자취를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스톱모션은 많은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그 나름의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때로는 실사 영화적 기법으로부터 때로는 전통적 애니메이션 기법, 그리고 디지털 기술합성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전통적 ‘손(手)’의 기법을 여전히 주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말이다. 물론 김강민 감독의 본 작품도 이러한 경계 이상에 위치한 놀라운 작품이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향연 또는 병치는 지면상 언급하지 못한 다른 다양한 미학적 성과들과 함께 스톱모션이라는 이미지의 또 다른 경계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의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38-39°C > 전편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rRS1yhIhEHQ < 38-39°C > 메이킹 영상: https://vimeo.com/26085766 차기작 < 사슴꽃 > 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MfX9BE8BTB8
스웨덴의 인기 동화 ‘핀두스’의 작가 스벤 느르드그비스트는 “(작품 속에) 염소와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던 시절과 내 아이들을 키울 때의 추억이 다 담겨 있다”며 자기 내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에 따라 동화를 써나가는 작업과정을 한국의 일간지를 통해 소개했다. 유사한 사례로 이란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자전적 성장통을 독특한 그림체로 녹여낸 그래픽노블 <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는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했고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면서 관객에게도 깊은 몰입감과 감성을 배가로 전달했다. 영화의 경우 캐릭터의 삶이 자기 몸에 밸 때까지 연습하고 공부한 뒤 고도의 열정으로 촬영에 임하는 지독한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 나의 왼발 >과 < 데어 윌 비 블러드 >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2013년 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링컨>으로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서 영화사의 한 줄을 새로 썼다. 그는 촬영이 없을 때도 링컨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살았다고 한다. 스벤 느르드그비스트와 동화 <핀두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영화 < 링컨 > 화두로 펼친 몇 가지 이야기들은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는 작가와 배우의 경험, 연륜, 그리고 열정과 신념 등에 의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공식’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30년간 일본, 나아가 전 세계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한 획을 긋고 시대를 풍미하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개점휴업상태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지브리의 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역량을 가진 애니메이터들이 이상적 노동환경에서 최고의 작품을 지향하는 지브리의 유토피아적 제작 시스템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브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수작업의 노동집약적 제작방식 고수, 재미와 상상력을 넘나드는 감독의 신화적 메소드 결핍, 소비층이 두꺼운 10~20대의 신세대 가치관이나 관심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높고 좁은 스펙트럼의 무거운 주제가 핀포인트에 어긋나면서 결국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출한 개인적 역량과 남다른 감성의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지브리 공방 시스템에 2013년 미야자키 감독 은퇴로 생긴 리더십의 공백이 무엇보다도 큰 붕괴 원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브리의 위기는 1937년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 이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까지도 고루한 2차원 셀과 뮤지컬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변화의 혁신에 둔감했던 최고경영자의 무능으로 이미 두 번의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던 미국의 디즈니 위기와 다를 바 없다. 디즈니의 첫 번째 위기는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후에 찾아왔다. 1966년 탁월한 능력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기업을 이끌었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후계자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의사 결정력이 떨어지면서 창의적인 사업 대신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운영에 치중함으로써 부실경영의 여파가 198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1985년 개봉한 < 타란의 대모험 The Black Cauldron >(테드 버만, 리처드 리치)은 10년간 제작 기간을 가졌음에도 구태한 파스티슈로 흥행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한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클 아이즈너다. 1984년 파라마운트사에서 전격 영입된 아이즈너 회장은 영화사업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맞은 디즈니를 다시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돌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기 탈출에 대한 그의 전략은 첫째, 비전을 제시하고 둘째, 유능한 인력을 뽑는 데 주력하고 셋째, 조직개편을 통한 창조적 조직을 구성하고 넷째,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었다. 아이즈너의 전략과 더불어 특히, CG 기술을 도입한 < 인어공주 >( 1989), < 미녀와 야수 >(1991), < 라이온 킹 >(1994) 등은 예술성과 아울러 흥행 성공작이 된다. 이렇게 아이즈너 회장의 위기 극복으로 얻은 이익은 1984년 16억 달러에서 1997년 220억 달러, 시가총액도 20억 달러에서 670억 달러로 크게 성장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마이클 아이즈너, 로버트 아이거, 제프리 카젠버그 디즈니의 두 번째 위기는 아이즈너 회장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다. 결국 아이즈너 회장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과 경영진과의 다툼으로 인해 주주들의 신뢰를 잃고 2005년 사임했다(대표적인 실책으로, 침체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킨 제프리 카젠버그를 1994년 해임하지만 그가 설립한 드림웍스는 < 슈렉 >(2001)으로 디즈니와 아이즈너를 조롱하며 대박을 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05년 후임자인 로버트 아이거가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다시 한 번 창의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ABC방송 기상캐스터로 출발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아이거는 아이즈너 밑에서 일할 때 그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거의 리더십으로 인해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를 해치는 관료적 경영이 점차 사라졌다. 테마파크, 리조트, 스튜디오 등 각 사업부 단위는 스스로 권한을 갖고 책임 있게 일하게 됐고,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있을 때 루카스 회사로부터 1000만 달러에 매입한 회사)와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두 제작사 간 계약이 만료된 2005년에 이어 2006년 1월 24일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로부터 픽사 지분을 모두 인수해(74억 달러 M&A) 2D 셀 애니메이션 명가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 명가인 픽사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애니메이션 분야의 세계적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아이거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실적은 다시 상향세로 돌아섰다. 2011년 408억300만 달러의 매출액에 88억2500만 달러의 순익을 내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2012년에는 루카스 필름까지 인수한다. 이러한 성장은 그가 창의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마케팅 목표 계층을 기존 유아 중심에서 10대와 20대, 나아가 중·장년층 등 전 연령층으로 확대시킨 것이 턴어라운드에 주효했다.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실증 조사를 통해 ‘단기간에 성장한 기업들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지만, 위대한 기업들은 대부분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전환점을 거쳐 도약한다’고 했다. 그 전환점이란 바로 ‘위기와 극복의 모멘텀’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통한 경험을 좌절로 끝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지고 극복해야 한다. 최근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청춘>의 배우 조정석, 정우, 정상훈은 모두 무명기간이 길었고 고생 끝에 현재의 자리에 올라왔다는 공통점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받으면서 관심을 모았다. 음반시장에서는 10년 전 음반판매량에 비해 20% 줄어든 침체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위한 음악이 아닌 귀를 위한 음악을 만든다’는 영국 여가수 아델의 강한 신념을 담은 3집 앨범 ‘25’가 스트리밍 없이 작년 11월 20일 발매 이후 1주일 만에 338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굳혔다. SF영화 단일작품으로 38년을 이어가는 시리즈 ‘스타워즈’의 7번째 영화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가 개봉 이틀 만에 전 세계 매표실적 2억500만 달러(2,960억 원)로 제작비 2억 달러(2,360억 원)를 넘어선 오늘, 30년이란 시간을 지브리의 열정으로 꽃피운 상상과 창조력의 연륜을 믿으며 테크놀로지 시대의 혁신과 비즈니스의 통찰로 < 가구야공주 이야기 >가 희망하던 ‘다시 살아나는 생명체’처럼, ‘애니마(Anima)’로 부활해 진화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여,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 < 바람이 분다 >(2013)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허둥대며 만든 영식함상전투기 ‘제로센(零?)’의 망상으로 우월에 찬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허황되고도 참담한 부활은 꿈도 꾸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