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union2012]어느기자의 김재철 목격담
- 제작년도
- 2012
사진: " REMEMBERING DAVID BORDWELL "(Rataj-Berard 촬영), NYU Tish School of the Arts 지난 2월 29일에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다. 영화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드웰이라는 이름이 낯설 수는 없다. 이론과 비평 및 영화사를 넘나들며 공저를 포함한 2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으며 한국에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다. “영화 연구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영화의 내적 구조와 위상을 밝히는 일에 중요한 이론적 거점 노릇을 해왔다. 영화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겠지만, 내게는 좀 더 각별한 편이다. 그의 책을 번역했다는 인연 말고도 여러 면에서 빚을 졌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에서 영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문학적’ 틀이라는 자기 한계와 맞닥뜨려야 했던 내게 그의 책들은 영화형식의 독자성을 알려준 요긴한 길잡이였다. 최고의 영화 교과서라 일컬어지는 『영화예술(Film Art: An Introduction)』(1979)은 영화가 예술로서 갖는 위상에 눈 뜨게 했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규범과 다양한 스토리텔링 패러다임을 논한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1985)은 영화적 서사가 작동하는 내적 논리와 양식들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영화 스타일의 역사(On the History of Film Style)』(1997)는 제작 관행 및 기술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변화해 온 영화 스타일의 다양한 양상들을 접하게 했으며 『포스트-이론: 영화학의 재구성(Post-Theory: Reconstructing Film Theories)』(1996)을 통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고 감정을 유도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와 유럽, 아시아의 중요 감독들에 관한 그의 저작은 시대와 지역이라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현현하는 영화 스타일의 세계로 안내했다. 데이비드 보드웰의 저서 중 일부(개정판 포함) / 사진: " Books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다루는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의 작업에서 공유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옹호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자기만의 형식과 원리를 지닌 예술이며 영화의 예술성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속에 존재한다. 그는 영화의 세부를 형성하는 규범과 원칙을 밝혀내어 영화가 예술형식으로 자리할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스펙터클을 예술적 표현의 형태로 읽어내었다. 이러한 작업들의 지층에, 영화연구는 텍스트를 통한 사유가 우선되어야 하고 텍스트의 역사를 통해 정신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책을 보면 그것을 쓴 사람이 보인다. 그는 어려운 이론적 용어로 독자를 현혹하거나 현란한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거대한 이론적 틀에 의지하여 영화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에 매 순간 저항했다. 그의 논의는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여 얻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지식에 의거한다. 스스로 형식주의자이기를 고집하며 고전적 정전을 찾는 일에 전념할 때에도 우선시한 것은 실제 분석이었다. 수많은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검토에 기반하여 영화의 내적 질서를 벼리어내고, 그것과 관계하며 구성되는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다양한 나이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당연히, 다루는 영화들의 방대함에서 보드웰의 저작들은 가히 압도적이다. 더구나 그가 주요 저서를 썼을 때는 지금처럼 손쉽게 영상 자료를 얻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스캔 기술은 물론이고 홈 비디오도 없던 시절에, 영화의 이미지들을 선명한 상태로 책에 담기 위해 어두운 극장이나 편집실에서 실제 필름을 스틸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고 보정하는 데 쏟았던 엄청난 노고에 관한 목격담도 전해진다. 영화형식의 비밀을 푸는 작업에 그가 기울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여 영화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물을 명징한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직접 보고 확인한 것만이 지식으로 쌓일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학자라 할 수 있다.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2002년 11월에 지근거리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영화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강연을 했던 그는 엄정한 이론가나 날카로운 비평가라기보다는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찬 시네필에 가까워 보였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엄밀한 분석을 펼쳐내었지만 그러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떠 있는 소년마냥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알아차린 ‘놀라운’ 영화형식의 세계를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다는 에너지로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그의 책들이 보여주는 정확성과 치밀함이 개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간의 작업들이 지적 관심을 넘어서 영화에 바치는 우회적인 방식의 애정 고백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시네필적인 열렬함을 잃지 않으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균형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론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꽤 예외적인 영화학자로 그는 내게 기억되어 있다. 영화를 향한 그의 사랑의 농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었던 듯하다.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일하던 대학 강단을 떠난 이후에 오히려 블로그나 비디오 에세이, DVD 컬렉션 등으로 반경을 넓히며 더욱 생산적으로 활동했다. 디지털 기술의 고속 성장으로 영화의 존재 방식이 더욱 복잡해지는 상황에서도 보드웰은 영화형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락시키지 않으면서 영화 매체의 변화 가능성을 꾸준히 탐문해 왔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영화를 논한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오랜 기간 영화를 향해 열정과 수고로움을 쏟은 정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보드웰을 능가할 자가 없어 보인다. 눈을 감기 며칠 전에도 자신의 블로그( davidbordwell.net )에 글을 썼을 만큼,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와 함께 있었다. 영화가 당면했던 사회현실적인 조건과 문화적 위상에 주된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한동안 그의 책들을 열어보지 않고 있던 차에 그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처럼 독보적인 ‘영화주의자’를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허전함을 지울 길 없다. 늦었지만 그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976년, 전 덴마크영화박물관 본부 앞에서, 데이비드 보드웰.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사로잡는 영화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호기심은 역사적 사고를 통해 충족될 수 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어제 일어난 일로부터 야기된다. 영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Finally, if we have any curiosity about the films that captivate us now, we can start to satisfy it by thinking historically. What happens today springs from what happened yesterday. By trying to understand film history, we better understand the movies of our moment. -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 " Doing Film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오영숙(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HK연구교수) l 영화가 공동체의 심리적 현실과 맺는 유의미한 관계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문화 담론』(2007), 『탈북의 경험과 영화 표상』(2013),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2024) 집필. 『진짜 눈물의 공포(The Fright of Real Tears)』(슬라보예 지젝, 2004),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데이비드 보드웰, 2007) 번역.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이것은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남편 고향에 살러 왔다가 아들마저 유괴로 잃는 여자의 이야기, < 밀양 >( 이창동 , 2007)의 카피 문구였다. 수난이 많았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종종 이 질문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 질문을 가지고 한국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 이 생명 다하도록 >( 신상옥 , 1960)을 만나게 된다. ‘이 생명 다하도록’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에 개봉한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한운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한운사의 첫 장편소설이었는데 ‘방송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에서 낭독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전쟁 이후 라디오가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부상하면서 방송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청실홍실>로 시작된 라디오 드라마 붐은 방송극 원작의 영화화를 견인했고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한국영화 붐에 촉매 역할을 했다. 그 중 하나가 한운사의 <이 생명 다하도록>이었다. 이 소설은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고 전란을 거치며 두 딸마저 잃은 김기인 대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김 대령을 간호하며 그 옆을 지킨 부인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과부만 30여만 명이 발생했음에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가 없던 상황에서 과부나 진배없는 기구한 여성 화자의 고백은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일기의 고백체는 라디오에서 낭송되기에도 적합한 것이었다. ‘방송소설’의 인기 덕에 이 이야기는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개봉 시기에 맞춰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1) , 한운사는 인기 방송작가로,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 시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이 한편의 영화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모든 전몰장병과 상이용사, 그리고 그 유가족 앞에 삼가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전후 재건의 이념과 논리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바로 1949년 태백산 토벌 작전 중에 김 대위( 김진규 )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장면이 제시된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 ‘선경 엄마’ (최은희 )는 의사에게 남편의 목숨만이라도 살려 달라 애원한다. 담당의사가 ‘그나마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인도적이냐, 그냥 죽이는 것이 인도적이냐?’고 고민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김 대위가 성기능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부부의 삶이 위태로울 것임을 말해준다. 이후 영화는 부부 갈등을 축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로 전개되는데 한국전쟁은 그 갈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장애인 남편과 슬하에 두 아이를 둔 주부로서의 삶만으로도 고달픈데 전쟁이 일어나자 선경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것은 물론 적치를 피해 군인 남편을 피난시키고 그에게 삶의 동기도 부여해야 하는 사명까지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부부 갈등을 넘어 전후 재건의 문제로 확장되며 1950년대 말의 현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연루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동시기에 많이 나왔던 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멜로드라마의 계보에 놓이면서도 다른 영화들보다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120회에 걸쳐 낭독되었던 소설이 109분의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 따른 축약과 변용은 이 영화가 지닌 정치성의 좌표를 드러낸다. 소설은 일기 형식이므로 시간 순에 따라 전개되면서도 수도육군병원 시대, 서울대학부속병원시대, 천호동시대, 남한산성시대, 서울 수복, 대구 피난시대, 부산 피난시대, 환도 이후로 공간 별로 나뉘어 서술된다. 따라서 원작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한국전쟁의 전개, 그리고 전후 복구의 과정을 소상하게 들려주며 한국전쟁에 대한 르포르타주의 성격을 지닌다. 영화에서는 ‘수도육군병원―피난지 부산―환도’로 압축되며, 사건 또한 삭제되거나 축약되는데 그러면서 멜로드라마로서의 애정 갈등에 초점이 놓인다. 삭제되거나 축약된 부분이 주로 전쟁의 실상에 대한 세부적인 목격담이나 현실 비판이라면, 확장과 변용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선경 엄마와 미스터 조의 인연이다. 원작에서 선경 엄마가 미스터 조를 만나는 것은 대구 국제시장이고, 부산에서는 ‘양부인’이 된 여고 동창을 만난다. 대구 피난시대는 전체 분량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살하면서 선영 엄마에게 유산을 남기고 가는 것은 부산에서 만난 동창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미스터 조를 부산 국제시장에서 만나고, 그와의 우정이 부부관계의 핵심 장애가 된다. 그러면서 미스터 조의 여동생 영선이 ‘양부인’인 것으로 변용된다. 원작에서는 미스터 조와의 인연과 양부인의 자살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상관이 없는 것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화에서 영선이 자살하는 데에 오빠인 미스터 조( 남궁원 )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영선( 정성숙 )은 여관방에서 선경을 돌보아주던 친절한 여성으로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오빠를 만나고 그가 양부인이 되었다고 비난하자 자살하고 만다. 그녀는 유서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떳떳할 줄 알았는데, 오빠를 보고나서 ‘똑바로’ 보게 되었다.”라며, “뒷골목에서 ‘떳떳이’ 살지 못할 운명”이기에 죽는다고 이유를 밝힌다. ‘똑바로’, ‘떳떳이’라는 부사는 오빠라는 존재 자체가 요구하는 기준이다. 가부장적 규범을 따르자면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오빠는 여동생을 지킬 의무가 있었지만 전쟁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타락한 여동생은 ‘썩어빠진 변명’이라는 오빠의 비난 앞에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다. 미스터 조 남매의 행동은 무력이 전면화되는 전쟁을 겪으며 전통적인 가부장적 윤리는 무너졌음에도 오히려 그 규범은 강하게 요구되고 결과적으로 그 수행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려지는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는 현모양처의 도리로서 ‘남성 능력을 잃은 남편’을 지키기 위해 공적인 영역에 끌려나오고 사회적 노동까지 전담해야 하는 선경 엄마의 모순된 처지와도 겹친다. 더 문제적인 것은 결국 영선이 죽으면서 남긴 돈으로 김 대위는 전쟁과부를 위한 시설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재기한다는 점이다. 영선의 죽음은 < 쌀 >(1963)에서 오빠(신영균)의 사업을 위해 여동생 영란이 술집 여자가 되었지만 사업이 완수된 이후에 슬그머니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 상이군인(남궁원)은 5.16을 통해 복귀하는 데 반해 첫 장면에서 그를 타일렀던 술집 여자들은 서사에서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 로맨스그레이 >(1963)에서 바걸인 만자(최은희)와 보영(조미령)이 근대화의 역군인 젊은이(신영균)를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 그러나 죽거나 떠나야했던 여성들과 달리 선경 엄마는 상이군인 남편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므로 ‘성생활’을 포기하고 남편을 선택함으로써 환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남성 인력은 부족해졌으나 재건은 꼭 해야 하는 전후 상황에서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헌신의 이념과 논리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59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60년 7월에 개봉하였다. 이 기간은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폭발했던 4.19를 가로지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5.16 이후의 경제 근대화에 보다 어울리는 이념과 논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방송소설에 이어서 이 영화 또한 크게 흥행했다는 것은 그러한 이념과 논리의 지향점이 대중의 기대지평과 조응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영화는 1960년대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징후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것이 이 영화에서 처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신상옥 영화가 1958년 < 어느 여대생의 고백 > 이후 < 악야 >(1952)나 < 지옥화 >(1958) 유의 전위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전후 재건과 경제 근대화에 필요한 계몽 논리를 멜로드라마에 녹여내어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노선을 선택하고 그것이 연이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시대적 요청을 선취했기에 신상옥 감독은 < 상록수 >(1961), <쌀>(1963)로 이어지는 영화를 먼저 만들 수 있었고 1960년대 내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1) 한운사, 『이 생명 다하도록』, 삼한출판사, 1960.6. 2) 박유희,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책과함께, 2019, p.35. >> 이 생명 다하도록 VOD 보러가기 <<
내 삶에서 은교의 시간이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이적요의 시간이 조만간 혹은 확실히 언젠가는 닥칠 거라는 걸 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라고 힘겹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던 그 노인인 듯 청년 같던 그 남자가 떠오른다. 어느 날 그의 삶 속으로 은교가 왔다. 그리고 세상이 열렸다. 일흔의 ‘국민시인’ 이적요( 박해일 )의 인생에 불쑥, 열 일곱 여고생 은교( 김고은 )가 뛰어든다. 은교의 등장으로 인해 ‘커다란 관’ 같던 시인의 집은 여름 숲으로 바뀌고, 느려져가던 노인의 맥박은 다시 힘차게 고동친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으로 평생 스승 이적요의 곁을 지키던 소설가 서지우( 김무열 )는 은교의 등장이 탐탁지 않다. 은교의 깃털 같은 발걸음은 두 남자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은교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인의 노트는 서지우의 거짓 명성을 흔드는 일대 사건의 발화점이 된다. < 은교 >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문학동네)를 < 해피엔드 > < 사랑니 >의 정지우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소설과의 유사도를 묻는 질문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동시에 무의미하다. ‘거울’이 ‘별’이 ‘연필’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지듯 박범신의 ‘은교’와 정지우의 ‘은교’는 다를 수밖에 없다. 대신 400페이지가 넘는 동명 소설은 영화 <은교>의 견고한 뿌리이자 절대적 ‘시제’로 자리 잡는다. 가림없는 노출신과 적나라한 섹스신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것들이 그들에게도 존재함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배치된다. 가슴과 성기 그리고 사랑과 욕정, 그것은 여고생에게도 명망 있는 노시인에게도, 젊음에게도 늙음에도 공평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박범신의 소설 「은교」가 ‘납으로 된 옷’을 입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시인 이적요의 폭풍 같은 사랑과 쓸쓸한 소멸을 후일담으로 회고한다면, 정지우 의 영화 < 은교 >는 이적요와 은교 그리고 서지우의 관계를 현재적 멜로드라마로 풀어놓는다. 복원 될 길 없는 젊음, 공유할 수 없는 관계의 역사, 훔칠 수도 따라 잡을 수도 없는 재능. 이적요와 은교과 서지우는 각자 서로를 질투하고 욕망하고 또 사랑하며 낭떠러지를 향해 뒤엉켜 굴러간다. 또한 ‘시인의 노트’ ‘서지우의 일기’ ‘변호사의 목격담’이 교차되는 소설 속 ‘은교’가 세 남자에 의해 묘사된 ‘대상’이라면, 영화 속 은교는 능동적인 화자가 되어 제 목소리를 낸다. 극 초반을 경쾌하게 이끄는 유머나 후반의 드라마 역시 은교의 행동과 자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입구를 발견한 것도 출구를 찾는 것도 은교다. 너무 늦게 쓰여진 노인의 연서. 그것을 너무 일찍 읽어버린 소녀. 답장 없는 편지를 평생 써왔던 미련한 청년. 그들에게 불어닥친 짧지만 강렬했던 폭풍이 잦아든 자리에 남는 것은 쓸쓸함과 외로움이다. 바로 뒤에 있는 사랑을 차마 뒤돌아 안지 못하는, 본능을 이기는 슬픈 체념이다. 잘 가라, 은교야. 잘 가라, 더는 나의 것이 아닌 청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