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주식회사
- 감독
- 데이빗 실버맨, 피터 닥터, 리 운크리치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존 굿맨, 빌리 크리스탈, 마리 깁스, 스티브 부세미, 제임스 코번, 제니퍼 틸리, 밥 비터슨, 존 라첸버거, 프랑크 오즈, 댄 거손, 스티브 서스킨드, 보니 헌트, 제프 피전, 사무엘 로드 블랙, 김진태, 이인성, 김옥경, 김익태, 나수란, 임은정, 유해무, 서문석, 김현직, 김혜미, 박상일, 최병상, 한호웅, 이윤선, 이진화, 이호인, 설영범, 김환진
벌써 12년 전이다. < 몬스터 주식회사 >를 보면서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대기업 ’몬스터 주식회사‘는 참 깜찍한 설정을 지녔었다. 괴물들이 인간 아이들에게 겁을 주고, 그 아이들의 비명을 밤새 수집해 에너지를 만드는 비명 발전소였으니까. 그 와중에 최고 엘리트 사원인 털 뭉치 ’설리‘와 파트너 ’마이크‘, 인간 꼬마 부의 뭉클한 교감은 더없이 사랑스러웠고, 몬스터 주식회사 직원들의 과도한 실적경쟁은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12년 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과열 경쟁 속에서 픽사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 몬스터 대학교 >를 내놓았다. 마치 일에 찌든 직장인들이 풋풋했던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듯. < 몬스터 대학교 >의 핵심은 먼 훗날 ‘고수’가 될 설리와 마이크, 그들도 한때는 대학생이었고, 겁주기를 배웠다는 얘기다. 몬스터들의 대학 생활을 아이비리그 캠퍼스 생활에 적용시켜 캐릭터들의 배경을 쌓아가는 솜씨가 맛깔스럽다. 누구보다 열심히 겁주기 공부를 하지만 웃기게 생겨서 문제인 외눈박이 공부벌레 ‘마이크’. 겁주기로 뼈대 굵은 가문 출신에다가 생긴 것도 무서워서 별 노력을 않고도 주목받는 ‘설리’. 극과 극의 두 괴물이 4년제 명문 사립대학 ‘몬스터 대학교’(이하 ‘몬대’)의 신입생이 되어, 겁주기 전공 수업에서 처음 만난다. 훗날 명콤비가 될 두 라이벌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면서 드러나는 ‘몬대’ 생활의 면면은 재치가 넘친다. 몬대의 캠퍼스, 강의실, 운동장, 도서관, 남녀 클럽 등등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물론, `몬스터 리그‘의 라이벌 대학 공포공대와의 신경전, 그리고 학내에서 벌어지는 ’겁주기 대회‘까지.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몬스터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다. `몬대’의 전반적인 모습은 미국 동부 대학인 하버드와 MIT, 스탠포드, UC버클리의 캠퍼스 모습이 바탕이 됐다. 드림웍스나 블루 스카이 등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도 물론 이런 치밀한 자료 조사와 노력을 한다. 다만, 현실 세계의 리얼리티를 애니메이션 속 세계에 세세하게 적용하는 부분에서 픽사 애니메이션이 지니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지나가 버린 것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그 정서야말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정수다. 장난감과 놀던 유년 시절(< 토이 스토리 >,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삶(< 월.E. >), 되찾아야 하는 부자 관계(< 니모를 찾아서 >)처럼. < 몬스터 주식회사 > 직원들이 겁주기 초과근무까지 하느라 잃어버린 대학생활의 낭만은 신선하고 즐겁다. 신입생 때부터 겁주기 스펙을 쌓아야 하는 몬대생들의 고충이 현실의 대학생들 못지 않지만, 그래서 더 유쾌하고 뭉클하다. 대학생활에서 사회생활까지 이어지는 타고난 능력과 노력의 차이, ‘겁주기’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 몬스터도 대학을 다녀야 인정받는 사회의 허세도 곰곰이 되짚게 된다. 12년이 지났어도 늙지 않은 ‘설리’ 역 존 굿맨과 ‘마이크’ 역 빌리 크리스탈의 목소리 또한 한몫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픽사 스토리의 탄력성이랄까. 마이크와 설리가 어떤 사회생활을 하는지 아는 입장에서도 < 몬스터 대학교 >의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리얼리티와 상상을 결합해 새롭고도 팽팽하게 끌어가기 때문이다. ‘설리’를 포함한 괴물들의 털이 얼마나 부드럽고 생생한가 하는, 기술의 완성도는 부럽지 않다. 역시 부러운 건 스토리를 만드는 상상력이다.
여름이 늘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사이에 쏙쏙 박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의 전쟁이 또 시작되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3D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전면전은 비켜가면서 매달 한두 편씩 극장에 투하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선제공격을 감행한 드림웍스의 < 드래곤 길들이기 >에 이어 7월 1일 < 슈렉 포에버 >이 개봉했고, 7월 22일과 29일엔 차례로 팬층이 두터운 두 편의 일본 애니가 아이들을 노린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새 극장판 < 명탐정 코난 : 천공의 난파선 >과 < 도라에몽 : 진구의 인어 대해전 >이다. 정식 개봉작은 아니지만, 7월 15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건담 특별전’이 열린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극장판의 걸작들을 8편 만날 수 있다니 ‘오덕’은 아니지만 흥미로워 보인다. 8월엔 픽사의 전설을 이어갈 < 토이 스토리 3 >, 린타로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 요나요나 펭귄 >이, 9월까지 가면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를 만들었던 블루 스카이의 < 슈퍼배드 >가 있다. 그 와중에 일본 현지에선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가 7월 17일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거의 여름을 찜쪄 먹을 기세. 그런데 가만히 이 리스트를 쳐다보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감독들의 크레딧 때문이다. 개봉했거나 대기중인 애니메이션들 속에서 세월과 성장, 변화가 보인다. 먼저 < 드래곤 길들이기 >의 경우 8년 전 <릴로 앤 스티치>라는 걸작을 만들었던 크리스 샌더스와 딘 데블로이스가 연출을 맡고 있다. 드림웍스는 디즈니 출신의 이 두 감독을 데려와서 그동안 말발로 시건방을 떨던 기조를 버리고, 서사와 3D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활력은 있으나 품위는 없었던 유머를 개조했다고 할까. 구관이 명관. 오랫동안 숙련돼온 장인들의 기술과 경험이 발휘된 측면이 있다. 70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한 린타로 또한 노장 투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선 세대교체와 색다른 변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 슈렉 포에버 >의 경우 < 듀스 비갈로 > < 스카이 하이 > 등 실사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던 마이클 미첼이 감독을 맡고 있다. 하기야 < 인크레더블 > < 라따뚜이 >의 감독인 픽사의 브래드 버드가 실사영화 < 미션 임파서블 4 >의 연출을 맡는다니 그 반대도 가능할 일. 코미디에 강한 실사 감독의 기용은 정체된 시리즈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효과가 있었는지, <슈렉 포에버>는 제 무덤을 파던 < 슈렉 3 >때보다 나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2편 이후 11년만에 개봉하는 < 토이 스토리 3 >에선 픽사의 세대교체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리 언크리치는 < 토이 스토리 2 >와 < 몬스터 주식회사 > < 니모를 찾아서 >의 공동 감독 출신. 재탕, 삼탕이라는 비난이 있긴 해도 <토이 스토리 3>는 픽사의 간판 브랜드인데, 여기에 꾸준히 양성해온 내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꽤 부럽다. 픽사 내부에서 훈련과 경험을 축적, 계승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로 픽사, 드림웍스와 함께 할리우드 애니의 ‘빅 3’를 구성해온 블루 스카이의 신작 < 슈퍼배드 >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을 영입,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려 애쓰는 중이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세대교체를 고민해온 스튜디오 지브리는 최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의 연출을 36살의 젊은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맡겨 화제가 됐었다. 96년에 지브리에 입사, 애니메이터로서는 < 모노노케 히메 >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했던 요네바야시는 지브리의 거대 재앙이었던 <게드 전기>의 미야자키 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에 비하면 훨씬 기대 받고 있다. 미야자키가 좋아했던 영국의 아동문학 <마루 밑의 소인들>이 원작이고, 지브리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 여전한 까닭에 얼마나 신선할 지는 미지수지만, 지브리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의 하나로 보이긴 한다. 세대교체와 노장투혼은 월드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특히나 가장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꼭 필요하다. 전통을 이어가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거대 경연장에서, 우리는 너무 단발성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나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배울 건 있다. 눈에 불을 켜고 3D만 쫓아다니지 말고, 정신과 경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문화를 육성하는데 돈 좀 쓰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