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
- 감독
- 최하원
- 제작년도
- 1972
- 출연
- 윤정희, 신영일, 김창숙, 허장강, 사미자, 조용수, 임생출, 임성포, 최삼, 손전, 황민, 곽태용, 김소조, 이정애, 김경란, 김지영, 정미경, 정경화
< 독짓는 늙은이 >의 감독으로 알려진 최하원 감독은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이했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는 달리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하지 않고 자라났다. 대신 한국영화와 미국영화, 유럽영화 등을 보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역사소설에서부터 통속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적인 것과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초등학교 시절 문교부 편수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중앙청 인근으로 이사를 왔고, 당시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던 경무대는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다. 1950년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경복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채 코트에 서보기도 전에 6.25전쟁이 발발했고,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로 피난을 갔다. 폭격으로 폐허가 돼가던 서울과는 달리 제주도는 평화로웠고,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따뜻한 곳이었다. 얼마 후 임시수도가 부산으로 정해지자 아버지는 최하원 감독만 데리고 부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피난지 경복중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임시로 지어놓은 천막학교에서 공부가 될 리 만무했고, 영화관을 찾아 장 콕도, 빌리 와일러 감독 등의 영화를 보고, 가끔 농구를 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환도해 본격적으로 농구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최하원 감독을 눈여겨본 국어선생님이 글을 써보라 권유했고, 그 말이 동기가 되어 농구부 생활을 접고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면서 작가와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문예영화와 함께 시작된 영화 인생 제대로 된 영화 공부를 하고 싶어 유학을 꿈꾸던 최하원 감독은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해 테아뜨르 리이블과 연희극회에서 연출을 담당하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군에서 제대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는 등 유학을 가기에는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지 않았고, 대신 신경균 , 이병일 , 이성구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본격적인 연출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만난 작가 이상현 과 작곡가 최창권 은 영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감독 데뷔 후 이상현 작가와 함께 한 작품은 없지만 열정 가득한 젊은 영화인으로서 영화의 본질과 비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또한 작곡가 최창권은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 중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고,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수렴돼야 한다는 뜻을 공유한 동료로서 최하원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부분의 음악을 담당했다. 군복무 중 <철둑> <무승부> 등의 시나리오로 영화전문잡지인 <씨나리오 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던 최하원 감독은 그의 첫 번째 연출작으로 황순원 원작 소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를 연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서울 곳곳에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던 1968년,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또한 이론으로만 배웠던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죄책감과 혼돈 속에 있는 주인공 현태의 심리 상태 등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2014년 4월 구술 인터뷰 당시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2015년 발굴되었고,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친 뒤 곧 일반에게 공개된다. 최하원 감독은 데뷔작을 통해 주목받는 감독의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고, 이후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60~1970년대 활동했던 많은 감독 중 소위 잘나간다는 감독들은 한 해에 5~8편까지 연출할 정도로 당시는 다작의 시대였다. 하지만 최하원 감독은 한 해에 1편 혹은 2편 정도만 연출했다. 당시 외국영화와의 격차를 인지하고 있었던 최하원 감독은 외국영화를 흉내 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 한국영화만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소재 선정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작품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나온 두 번째 작품이 < 독짓는 늙은이 >(1969)였다. 첫 작품에서 인간 내면의 혼돈을 표현하기 위해 흑백필름을 선택했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독’의 기본이 되는 ‘흙’의 느낌을 영화 전체에 흐르게 하려고 카메라에 황토색 필터를 끼우고 촬영했다. 또한 영화의 중심이 되는 송영감의 집(집과 작업장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집)을 표현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결국 세 곳의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것을 이어 붙여 완성했고,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하다 이후 최하원 감독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문제와 시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김동리 의 소설 <무녀도>는 무속과 기독교 간의 대립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영화 < 무녀도 >(1972)에서는 무당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어머니 세대와 구세대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하는 아들 세대와의 갈등, 한국 여인의 삶에서 늘 동반되는 ‘한(恨)의 문제’를 승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물을 다룰 때에도 이어지는데 < 고백 >(1971)에서는 혼전 성관계 문제를, < 갈매기의 꿈 >에서는 당시 한창 붐이 일던 미국 이민 문제를, < 타인의 숨결 >(1975)에서는 미감아 문제를, < 마지막 포옹 >(1975)에서는 청각장애아들의 모습을, < 황혼 >(1978)에서는 변화된 가족 간의 관계를, < 절정 >(1978)에서는 부부 간의 정절을, < 겨울사랑 >(1980)은 성범죄 문제를 다루고 있어 한국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이야기들을 영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 출연진이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연습하고 촬영한 < 30일간의 야유회 >(1979)는 당시 들어선 신군부에 대한 우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또한 < 새남터의 북소리 >(1972), < 초대받은 사람들 >(1981), < 초대받은 성웅들 >(1984)로 이어지는 영화들은 이전에 터부시돼왔던 종교영화의 예술성과 흥행성을 입증시키며 한국영화 장르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1984년부터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설립과 함께 교수로 부임해 10여 년 동안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보다 실용적인 이론과 살아 있는 제작교육을 위해 영화 서적을 번역하고, 집필하기도 하면서 한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보던 영화가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최하원 감독의 < 절정 >이 바로 그런 영화들 중의 한편이다. 최하원 감독은 <독짓는 늙은이>외에는 요즘 관객들이 특별히 기억할 만한 영화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감독들 중의 한명이다. < 무녀도 >, < 서울의 연인 >, < 소 >, < 마지막 포옹 >, < 겨울사랑 >등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작가의 개성을 지닌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78년 개봉된 < 절정 >은 하이틴 영화의 물결이 지나간 후 밀려들기 시작한 술집 호스티스영화의 파도속에서 제목만으로는 그렇고 그런 호스티스 영화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부부관계의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관계의 단절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완성도 있는 멜로드라마다. 여자( 김영애 )는 남편( 김희라 )의 문란한 사생활과 외도에 혐오를 느끼고 이혼한다. 그러나 곧 이혼을 후회하고 신혼 여행지에 홀로 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과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역시 결혼 생활에 문제를 겪으며 아내( 김형자 )를 자살로 몰고 간 남자( 한진희 )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할퀴며 가까워진다. 알고보니 그들은 이미 과거에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신혼여행을 왔던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것. 신혼친구라 부르며 서로에게 한자락의 존재 의미라도 찾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닌 사랑의 진실임을 깨달은 여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지만, 남자는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최하원 감독은 부부 파경의 원인을 여자-아내( 김영애 )와 남자-남편( 한진희 )으로부터 공평하게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곤 했던 많은 한국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당시의 한국영화가 여전히 여성의 육체를 함부로 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진일보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우울과 고민에 뻐져 누워있는 여자-아내(김영애)를 쓸데없이 선정적으로 잡아내는 불필요한 앵글과 조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와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TV와 상업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최하원 감독은 이런 타협의 흔적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서 영화의 힘을 지속시키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끝나면 성적 이미지 대신 관계의 단절에 대해 고뇌하는 현대인이라는 이미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것이다. < 절정 >은 영화의 대부분을 두 사람 여자( 김영애 )와 남자( 한진희 )의 비일상적(?)적인 대화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씬들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단조로운 느낌이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상당히 풍부하고 뛰어나다. 최하원 감독은 두 주인공의 심연으로 파고들기 위해 풍부한 상징성을 사용한다. 더불어 우울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촬영과 미장센. 극단적 조명의 활용을 통한 초현실적 장면의 삽입은 내면이 황폐화되어 있는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스토리가 선형적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회상과 상상이 두서없이 드나들면서 관객의 집중력을 조금 요구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스타일적 실험이야말로 영화 <절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약간의 불친절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렇듯 영화 <절정>을 단순히 여성용 멜로드라마의 한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영화 속에 숨겨놓은 감독의 칼날은 무척 날카롭다. 그만큼 최하원 감독이 1968년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로 데뷔한 후 10년 동안 쌓아왔던 내공과 야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다. < 절정 >은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관계의 파경이라는 소재를 우회하여 고도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소통 부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최하원 감독이 바라보는 70년대 후반 도시인의 모습은 이렇듯 내면이 공허하다.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야 마는 남자( 한진희 )의 패배주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영화를 보면 마초적 남자다움을 유난히 강조한다. 무국적 액션영화에서 남자주인공들은 비현실적이리만치 강하지만, 현실을 반영하려는 드라마 장르에서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죽음이라는 파토스로 돌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남자는 여자보다 나약한 존재다. 그런점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사랑의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며 도시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여자는 얼마나 강한가! 내용적으로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려는 것. 남자와 여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결국 여자에게 좀 더 자비를 바라는 것 등은 여전히 70년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최하원 감독의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멋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글: 이성훈(한국영화 애호가) 김영애 한진희 김희라 김형자 감독 최하원 각본 이희우 촬영 양영길 1978년 116분 칼라 판매원 지구비디오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1281
< 맨발의 청춘 >의 엄청난 성공 뒤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김기덕 감독은 왕성한 연출활동을 통해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전쟁영화 < 남과 북 >(1965)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그려냈으며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SF장르에 도전해 < 대괴수 용가리 >(1967)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 말띠 신부 >(1966)를 성공시키며 코미디 영화 연출의 재능도 보여주었다. 코미디와 교훈적인 메시지 < 말띠 신부 >는 1963년 이형표 감독이 연출한 < 말띠 여대생 >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1979년 만들어진 < 말띠 며느리 >와 함께 말띠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속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기 센 여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며 “말띠 여자들이 드세다”는 사회적 편견을 재확인시키고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말띠해의 미신을 부정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선다는 결말을 통해 <말띠 신부>는 다른 두 작품과 그 입장을 달리한다. 거짓 임신으로 남편에게 금욕과 가사노동을 강요하고, 친구를 성희롱하는 남자를 혼내주는 귀여운 악녀들의 활약과 당당함을 통해 <말띠 신부>는 코미디 보기의 즐거움과 함께 교훈적인 메시지 또한 거부감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해낸 수작이다. 영화는 말띠 올드미스 황정순 의 결혼식 장면으로 요란하게 시작한다. 말띠 여자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모이고,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울려 퍼지는 찢어질 듯한 ‘운명교향곡’은 앞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곧 등장한 사주센터 사장 김희갑은 여러 커플의 에피소드를 실례로 들며 사주궁합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또한 1966년 병오년은 백말띠의 해로 이해에 태어나는 여자는 특히 팔자가 세기 때문에 절대로 아기를 낳지 말라고 당부한다. 말띠해와 사회풍조 늦깎이 말띠 신부인 황정순 은 밤마다 기운을 못 쓰는 남편( 박암 )에게 정력드링크를 만들어 먹이며 잠자리를 강요한다. 두 번째 말띠 신부인 남미리는 백말띠에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남편( 윤일봉 )에게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애처가 남편은 집안일을 도맡으며 아내에게 헌신한다. 말띠신부 엄앵란 또한 백말띠 해에 출산을 피하기 위해 남편( 신성일 )에게 임신했다고 속이고 잠자리를 거부하며 가사 또한 떠넘긴다. 넘치는 성욕을 주체할 길 없는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나 머지않아 두 말띠 신부의 거짓 임신 사실은 들통이 나고 분노한 남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당한 방식으로 분풀이를 하는 등 부부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말띠해인 1966년 1월 1일 개봉해 더욱 화제가 된 < 말띠 신부 >는 부부간의 애정행각과 대사가 다소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개봉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요즘 시대에 “말띠 여자는 드세고 팔자가 세다”라는 소리를 하면 손가락질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미신을 믿고 말띠해에 여아를 낳지 않으려는 풍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2년 말띠해가 임박한 2001년 겨울에는 조기출산을 위한 제왕절개수술이 급증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상천외 코미디 < 말띠 신부 >를 만드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코미디영화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말띠 신부>는 김기덕 감독의 유일한 코미디영화가 되었지만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 연출자로서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산한다. 주체 못하는 정력을 소모하기 위해 절구 찧기 운동을 개발한다는 발상은 기발함이 넘치며, 남편의 정력증진을 위해 온갖 괴상한 이름의 정력제를 넣어 칵테일을 제조하는 늦깎이 신부 황정순 의 능청스러운 모습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의 코미디적 압권은 무엇보다도 가슴에 손을 넣고 있는 나폴레옹의 그림을 패러디한 대목일 것이다. 평소 위장병 때문에 가슴에 항상 손을 얹고 있던 나폴레옹 대신 <말띠 신부>에서는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있는 나폴레옹의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런 행위가 사실 정력 증진을 위한 요가적인 시도였다는 해석은 가히 기상천외하다. 풍성한 음악이 담긴 영화 < 말띠 신부 >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은 영화가 가진 음악적인 풍성함에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해서 ‘What I’d Say’의 번안곡을 몸을 흔들어대며 불러대는 젊은이들은 196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최초의 록그룹 ‘키보이스‘로 이들의 모습은 당시 한국의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최창권 은 1966년 데뷔 이래 110편의 영화음악 만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이다. 만화영화 < 로보트태권V >의 음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는 < 무녀도 > < 삼포가는 길 > < 고교얄개 > < 문 >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등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하며 한국 영화음악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초기작인 <말띠 신부>에서 최창권 음악감독은 클래식과 재즈, 라틴, 인도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영화에 생기와 웃음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