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드
- 감독
-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 제작년도
- 1996
- 출연
- 제니퍼 틸리, 지나 거손, 조 판돌리아노, 존 P. 라이언, 크리스토퍼 멜로니, 리차드 사라피앙, 메리 마라, 수지 브라이트, 마가렛 스미스, 배리 카이벨, 피터 스펠로스, 이반 케인, 케빈 마이클 리차드슨, 진 볼컨
공포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조건 본다. 소재가 흥미롭거나, 취향에 따라 고어 장면이 많을 것 같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 뭐든지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끌리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건, 고어가 많이 나오건 말건, 원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아무리 설정이 그럴듯해도 긴장감이 전혀 없다면 허탕이다. 고어 장면이 많아 나오면 적당히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주로 하나에 집중된다. 공포감, 긴장감,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하위 장르로 내려가면 단 하나의 포인트에도 만족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마니아들에 한정한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연출력에 따라서 너무 차이가 난다. < 링 > < 주온 > 등을 제작하며 J-호러를 이끌었던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는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테크니컬한 장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캐릭터가 좋고, 플롯이 뛰어나다 해도 연출력이 부족하여 지지부진하다면 공포영화로는 낙제점이다. 공포 없는 공포영화는 일반인에게 호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 < 데드 캠프 >처럼 너무나 식상한 소재일지라도 긴장감이 뛰어나면 찬사를 받는다. 물론 장르 영화의 특성상 관습은 중요하다. 공포영화 마니아는 특촬물 마니아 못지않게 관습을 좋아한다. 난도질 영화에서 살인마들은 언제나 뚜벅뚜벅 걸어 다닌다. 마이클 마이어스도, 제이슨도 절대로 뛰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달려서 도망치는 희생자들은 언제나 발목을 잡힌다. 살인마의 위엄을 지키면서도 살육의 순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래서 공포 패러디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찍지 않을 때 맹렬하게 뛰는 살인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관습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일반 관객에게는 역겹고 식상한 영화가 되겠지만 마니아는 만족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일단 모든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아니면 내키는 대로 본다. 소재가 약간 흥미로운 영화를 고르긴 하지만 확률은 동일하다. 캠핑을 간 젊은이들이 살인마를 만난다. 그야말로 뻔하지만 일단 본다. 살인마의 캐릭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추격 장면이 살아 있고 죽음의 순간이 짜릿하기만 하다면 좋다. 공포영화 마니아 역시 전작이 좋았던 감독을 일단 고르고, 다음으로는 마구잡이로 본다. 대체로 실망한다. 확률은 높지 않다. 수작을 만나는 건 1/5 정도 될까. 요즘 같이 공포영화가 침체되어 있는 시대라면 수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른다. 신작이 나와도 가급적 보지 않다가 감상평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 사우스바운드-죽음의 고속도로 >(이하 사우스바운드)도 볼만하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손이 갔다.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 V/H/S: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 >가 작은 성공을 거둔 후 옴니버스 공포가 많아졌다. 일본은 아예 옴니버스가 대세다. 실화 괴담이 공포물의 주류가 되다 보니까 세밀한 플롯이 없어도 되는, 간단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옴니버스 공포에 주력한다. <신미미부쿠로> <토리하다>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등. 옴니버스는 길면 30분, 짧으면 3분에서 5분 정도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 필요도 없다. 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고, 도망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런 정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귀신이 등장하고 쫓길 때의 임팩트만 있으면 성립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유행은 공포의 근원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기본기를 잊게 하는 경우도 많다. < 사우스바운드 >는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다. 피를 뒤집어쓰고 운전하는 남자 두 명이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여성 세 명이 있다. 아내와 통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남자가 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남성이 있다. 일단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그들은 헤어날 수 없다. 끝없이 반복하다가 결국은 죽거나 갇혀버린다. <사우스바운드>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이상한 존재가 등장한다. 휴게소에 들렀다가 같은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두 남자에게 이상한 것이 보인다.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디멘터 같기도 하다. 그들이 뒤를 따른다. 아무리 달려도 같은 길 위에 있고, 기이한 존재들이 뒤를 따른다. 그러니까 <사우스바운드>는 초자연적인 공포영화다. 한 번 길에 들어선 후 헤어날 수 없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포물. 완전하게 독립된 이야기들은 아니고, 기묘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같다. 그리고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와 미세하게 겹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기도 하고 극적인 사건으로 조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공유한다. 자책. 그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죽은 딸을 위해 복수하기도 하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악마 같은 존재들과 싸우기도 한다.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선 그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는 동일하다. 그들 모두 길 위에서 맴돈다. 살았건, 죽었건. 마치 오대양을 떠도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 때문에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저주에 빠져 길 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 사우스바운드 > 각각의 에피소드는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무엇인지, 사이비 종교는 대체 무엇을 섬기는 것인지, 그들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책망하다가 스스로를 무간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일지도. <사우스바운드>는 무리하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상황에만 집중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에서 각각의 공포를 안겨준다. 엄청난 감흥은 없지만 계속 보게 된다. 어차피 걸작이 아니라면, 공포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순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느끼기만 한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까.
1. 1980년대, 이장호 의 시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신의 나이가 4.19와 5.16 시절에서 멈췄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를 자각 있는 청년으로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현의 표현처럼 1980년에 나이가 멈췄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끝없이 흘러가지만, 멈춰 있는 의식의 시간과 공간은 집요할 정도로 제자리 걸음이다. 그 제자리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제 발 밑을 더욱 깊게 파내려 갔을 것이다. 그 파내려간 자국, 나는 그것을 1980년 한국 근대의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1980년대 한국영화들 역시 그 상처의 흔적, 어눌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상처의 자국으로 본다. 그 영화들 속에 등장한 인물들, 그들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더 못나고 집요하며 파괴적이었다. 그 역할은 대체로 남자들이 맡았다. 남성 감독들은 그렇게 남성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1980년대의 한국 영화도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광란의 1980년대를 다시 되돌아본다면, 1980년대는 한국의 근대가 겪어야 될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독재 정권에 대한 ''힘없는 저항''은 당연히 또다른 독재 군사 정권을 낳았던 것이고, 그 독재 정권이 추동했던 경제 개발은 당연히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했고, 그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한 경제 개발은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의 미덕을 당연히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호 감독이 서있었던 지점은 바로 그 곳이었다. 우리가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서 언제나 이장호를 앞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장호는 독보적인 동시에 1980년대 영화 청년들에게는 ''스승''이었다. 그는 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한 인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다. 과거 '1980년 ''서울의 봄''에 때맞추어 나타난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를 시작으로 해서...'라고 표현할 당시의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란 바로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젊은 평론가들이 80년대 영화를 대상으로 뽑은 베스트 10에서도 이장호 의 영화는 < 바보선언 >(1위), <바람불어 좋은 날>(2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6위), < 과부춤 >(8위) 등 무려 네 편이나 포함될 정도였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이장호를 가장 많이 언급한 까닭은 6,70년대 한국영화의 전통을 흡수하여 80년대에 쏟아낸 피드백 장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장호 감독보다 여러모로 선배격인 감독들과 동년배 감독들도 그러한 역할을 했지만 그가 유독 돋보인 까닭은 가장 충무로적으로 자라났으면서도 가장 격변기의 청년의식을 잘 대변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풍부한 공식 기억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또 한국영화를 ''직업적으로'' 기억하는 평론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잊혀지고 있다. 그 망각은, 현란한 변화로 압축할 수 있는 21세기식 변화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즉, 80년대식 시선으로 이장호 의 영화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집단 기억 상실증 혹은 현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뭔가 석연찮은 미학의 부재 등이 그 망각 현상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는 이장호의 시대였다. 2. 이장호 라는 상처 이장호 는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감독길로 들어섰고 다행히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춘의 아름다움과 애정을 노래한 < 어제 내린 비 >(74), < 너 또한 별이 되어 >(75), <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75) 등을 연거푸 만들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5년간의 강제된 공백기간을 가졌다. 당시의 한국은 남자머리가 길다고 파출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자르거나 길을 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던, 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혹한 불행의 시기였지만 대통령의 부하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눌 정도로 국민들의 억제된 민주화 요구가 서서히 폭발 직전에 다다른 그 시절은 상대적으로 그의 의식이 첨예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 바람불어 좋은 날 >(80)은 바로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세 청년이 결국 서울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독재 정권의 경제 개발과 그 개발이 가져온 빈부의 격차와 인간성의 파괴 등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재기작에 심었던 것이었다.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후 < 어둠의 자식들 >(81), < 낮은 데로 임하소서 >(81), < 바보선언 >(83), < 과부춤 >(83)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성 드라마 혹은 관객과 현실을 이어주는 영화들이 있는가하면, 여러모로 동의를 구하지 못한 작품인 < 일송정 푸른 솔은 >(83)이나 < 무릎과 무릎사이 >(84), < 어우동 >(85)같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 그의 부정적인 재능이 결집된 < 이장호의 외인구단 >(86), < 와이의 체험 >(87) 등이 그의 작품연보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사회 반영의 의지, 흥행 집착, 작가의 지향 등이 마구 뒤섞인 그의 작품연보는 보는 이들은 물론 본인조차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도 불안한 기간을 거치면서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평자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는 해도, 이 작품에 대한 견해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그리고 이야기와 형식의 독특한 경지를 확보한 것이라는데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장호 는 이 작품에서 민속신앙과 우리 민족의 용해된 삶,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가차없이 침범 당하는 개인의 삶, 분단과 통일에 대한 뒤틀린 견해로 가득찬 사회 등을 풍부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만 본다면 그는 작가이자 격조 높은 예술가였다. 그러나 예술가이면서도 그는 영화 제작자였다. 판영화사를 차려서 우습고도 야릇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장호를 근대 한국의 상처이자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상처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정확한 문맥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와 행적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영화의 모더니티, 신파성, 한국형 내러티브와 스타일, 집단주의, 사회문화적 맥락 등은 이장호 를 통하여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뉴 웨이브, 이장호]({영상문화정보}, 2002년 여름호)에 실린 글을 토대로 다시 쓴 글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교수) / 2003년 <프로필> 1945년 5월 15일 서울 출생 1966년 홍익대학 미술대학 건축미술과 2년 수료. < 작품 연보 > 1974 '' 별들의 고향 ''감독 데뷔 제13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 제11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신인상 수상 1975 어제 내린 비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6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1980 바람불어 좋은 날 제19회 대종상 감독상 수상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작품상ㆍ대상 수상 1981 어둠의 자식들 (흥행 베스트)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2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제21회 대종상 작품상ㆍ감독상 수상 제18회 한국연극ㆍ영화예술상 작품상 수상 1983 일송정 푸른 솔은 제 22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수상 1983 바보선언 시카고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OUTSTANDING OF MERIT' 수상 1984 과부춤 일본 키네마준보 우수외국영화에 선정 1984 무릎과 무릎사이 (흥행 베스트) 1985 어우동 (흥행 베스트) 1986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86 이장호의 외인구단 (흥행 베스트) 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2회 동경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1987 Y(와이)의 체험 1988 바보선언 ''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베를린 국제영화제 영인터내셔널포름 부문 동시출품으로 ZITY상, CALIGARI상 각각 수상 1988. 9. 제 26회 뉴욕 필름페스티발 선정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990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1992 명자 아키꼬 쏘냐 1995 천재선언 제9회 기독교문화대상 영화부문 수상 < 주요 경력 > 1996년∼2000년 8월 31일 -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1997년 -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1997년 - 제1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 창작 오페라 ''황진이'' 연출, 예술의 전당<오페라하우스> 공연 2000년 - 중국문화부초청 8월 24일, 25일 북경 21세기극장 오페라 ''황진이''공연 연출 2000년 - (사)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2001년 -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TM 공동개최기념공연 오페라 ''황진이'' 도쿄 신국립극장공연(4월 15ㆍ16일) 연출 2001년 - 전주시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02년 - 미주 한국일보 초청 오페라 ''황진이'' LA -Hollywoo d KODAK 극장 공연 (8월7. 8일) 연출 2002년 11월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3년 현재 - 전주대학교 예체능영상학부 연극영화전공주임교수 < 주요 논문 > 「부천 영상산업화 연구보고서 」(공동), 부천시 , 1997년. 「일본문화개방 이대로 좋은가?」(단독), 아태평화재단 , 1998년. 「큰 정신 작은 영화」(단독), 한성대학교 , 1999년. < 주요 저서 > 「모두 주고 싶다」 태멘출판사 , 1980년 「바보처럼 나그네처럼」 도서출판 산하, 1987년 < 기타 영상제작배급실적 > 1986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 제작배급 1987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작배급 1987년 - Y의 체험 제작배급 1988년 - 깜동 공동제작배급 1988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2 공동제작배급 1989년 - 독일 이탈리아 합작영화 '' 모모 '' 수입배급 1989년 - 베르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죄''(영국제작)수입배급 1989년 - 미스코뿔소 미스터코란도 제작 배급 1990년 - 미국영화 ''헬레이저'' 수입배급 1991년 - 미국영화 '' 헬 바운드 '' 수입배급 1992년 - ' '숲 속의 방 '' 제작배급 1992년 - '' 핸드백 속 이야기 '' 제작배급 1994년 - KBS 텔레비젼 특집드라마 3부작 ''너의 뺨에 입 맞추리'' 외주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