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
- 감독
- 송능한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한석규, 이미연, 최민식, 안석환, 박광정, 방은희, 박상면, 송강호, 이종상, 남효성, 민도기, 손민석, 김진영, 김호진, 전진태, 전홍렬, 강승용, 송영탁, 배중식, 박길수, 정성갑, 이성호, 이형수, 권오진, 신순식, 광복동, 이정욱, 서우식, 류현철, 홍석천, 문경희, 김동일, 정은주, 김석, 고진명, 권진원, 장대윤, 권재원, 한상욱, 박성웅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새로운 시작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한 시대의 마침표였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에서 이명세 감독은 이전과 판이한 시도를 선보였다. 요컨대 인공적인 세트 미학 탈피와 액션 장르에의 도전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공개된 때는 1999년 여름. 그 무렵의 한국영화들은 묘한 세기말적 감수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네 명의 사내가 이유 없이 ‘그냥’ 주유소를 턴다는 코미디 < 주유소 습격사건 >과 심해의 잠수함에서 공멸의 꿈을 꾸는 스릴러 < 유령 >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이 두 작품이 서사를 통해 자기파괴의 혼란을 담아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양식적인 면에서도 마치 지난 세기 액션영화의 관습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끓는 솥과 같았다. 낙엽 지는 가을에 시작해 겨울에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어쩌면 당시 개봉작들 중 세기말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40계단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우영민( 박중훈 )을 필두로 한 서부서 강력반 형사들이 용의자 장성민( 안성기 )을 72일의 긴 시간동안 추적한다는 단선적 구조다. 하지만 서사와 캐릭터에도 양면적인 혼란들이 담겨 있다. 영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우영민은 도입부에서 사채업자들과 혈혈단신으로 맞짱을 뜨며 자신을 소개한다. 옷차림부터 입버릇까지 형사라기보단 건달처럼 보인다. 김동석( 장동건 )을 위시한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인트로 슬로모션은 조폭영화의 상투적 이미지에 더 가깝다. 반면 범죄자 장성민은 말수가 적고 진중하며, 첫 등장 장면에서는 형사의 클래식 패션인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다. 깡패 같은 형사와 형사 같은 범죄자. 둘은 결말부 겨울비 쏟아지는 진흙탕에서 대결하며 숫제 한 몸을 이룬다. 교란은 또 있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서사에는 끝끝내 밝히지 않은 채 괄호를 쳐 놓은 대목들이 존재한다. 가령 40계단 살인사건은 플롯의 핵심이지만 범행의 이유와 동기는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수사 도중 만난 장성민의 연인 김주연( 최지우 )을 향한 영구의 감정도 내내 모호하다.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의 공식대로라면 그녀는 명백한 팜므 파탈로, 주인공 형사를 유혹하여 악의 그림자에 발을 딛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설렘과 연민, 원한이 뒤섞인 감정으로 주연을 대하는 영구는 줄곧 그녀와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두 남녀가 술을 마시고 장을 봐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감독의 전작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마냥 로맨틱하게 연출되었다. 영화는 버디 형사물과 필름 누아르를 넘나들지만 둘의 관습을 오갈 뿐 어느 하나도 올곧게 따르지 않는다. 세기말적 혼란의 극치는 영화의 형식에 있다. “표현을 계속 바꿔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는 이명세 감독의 말대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에는 흑백화면, 프리즈 프레임, 분절적인 슬로모션, 옵티컬 스텝 프린팅, 애니메이션 효과 등 액션 표현의 실험들이 연출 테크닉의 백과사전마냥 펼쳐진다. 동석과 소매치기가 맞붙는 초반부 지하철 대결 신은 구도와 편집 호흡을 서부극 결투 장면의 관습에서 가져왔다면, 장성민의 부하 짱구( 박상면 )와 영구의 옥상 격투 장면은 만월의 정경과 너풀거리는 빨랫감부터 무협영화의 클리셰인 가운데, 또 다른 용의자 영배( 안재모 )와 영구가 주유소에서 맞닥뜨릴 때는 <요짐보>의 바람이 분다. 쌍권총이나 사무라이 검 대신 가스총과 진압봉, 잭나이프가 난무하는 육박전은 돌연 적과의 탱고로 변주되기도 하고, 펀치의 타격감은 만화적으로 과장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저 장르의 혼성 모방으로 세기말 징후를 담아낸 작품에 불과할까?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진정한 힘은 오리지널리티가 빛나는 순간들에서 나온다. 훗날 < 매트릭스: 레볼루션 >의 표절 설왕설래까지 낳은 대단원의 크로스카운터 액션은 물론, 달동네 골목길의 심야 추격전도 미증유의 것이었다. 부산 범일동 등지에서 촬영된 이 가파른 달동네를 포함하여, 영화는 유독 사라져가는 지난 세기의 공간과 풍경들에 집착한다. 재건축을 앞둔 주연의 낡은 맨션, 인질극이 벌어지는 이발소, 거기에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태백의 폐광이다. 작품세계의 관점에서 이것은 이명세 특유의 인공적 세트 공간에 바치는 고별사이기도 하다. 한 시대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공간의 선택만이 아니다. 애초 영화의 화자는 동석으로, 그의 내레이션은 사건의 경과를 해설한다. 늘 원칙을 준수하고 범죄자들에게도 반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영화 후반 장성민에게 피습당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후에는 수사를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불사하는 형사 영구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순수의 집행자가 잠든 사이, 자신의 법도에 따라 악을 제압한 흉폭한 집행자는 엔딩 컷에서 ‘쨍하고 해 뜰 날’의 미래를 해맑게 기약한다. 그리고 그 기약대로, 새로운 세기의 한국 경찰영화를 열어젖힌 것은 강철중(< 공공의 적 >)과 박두만(< 살인의 추억 >)이라는 영구의 직계 후예들이었다.
영화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손에 들어보았을 앙드레 바-쟁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는 이제는 어렴풋한 향수마저 깃든 느낌이다. 이런 질문을 할 때에는 보통 영화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전제된다.(그냥 폼 잡으려고 책장에 비치해놓은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이긴 하지만) 움직이는 그림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이 매체는 재미있게도 ‘시간’에 대해서 마술을 부리며 ‘예술’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단순히 활동사진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영화들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진리와도 같았던 이른바 아트 하우스 영화들이 몰락하고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마술을 부리기 시작하고... 아아 도대체 영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온몸으로 부딪힌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도 거칠거칠한 최야성 감독. 그는 무려 20세에 < 검은 도시 >를 감독하며 (아직도 깨지지 않는) 최연소 감독의 기록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 2014년 현재까지 총 7편의 영화를 감독한 그는 충무로의 아웃사이더였고 영화광들의 조롱거리였으며 본인 스스로는 ‘여자 대신 고정관념을 벗기며’ ‘창작, 독창성으로 세계적 쇼부를 치는’이라 말하는 영화감독이었다.(다 본인의 실제 언급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본인만의 영화제작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남들이 한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둘째, 최소한의 제작비만을 사용한다. 셋째, 가장 사실적인 것이 가장 영화적인 것이다. 라는 것이다. ( < 로켓트는 발사됐다 >의 DVD 서플먼트에 들어간 이 인터뷰에서 3대 원칙 중 2번째 원칙을 설명하며 술값을 아끼려 사무실에서 김치에 병맥주를 마시는 알뜰 넘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야성 감독 3대 영화제작 원칙 < 로켓트는 발사됐다 >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나간 작품이다. 이 영화의 홍보 카피이기도 했던 ‘노 시나리오, 스냅무비’(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로 남들이 했던 것을 피해갔고, 모든 배우들을 ‘이게 세계적으로 되는 영화예요. 한 번 도와주세요.’로 잠깐잠깐 우정 출연시켰기에 제작비가 거의 안 들었다. 또한 가장 사실적인 것을 위해 최야성 감독은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단 본인의 3원칙은 지킨 셈이다.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영화’를 생각하면 일단 톰 디칠로의 < 망각의 삶 >이 떠오른다. 스티브 부세미가 분한 독립 영화감독은 촬영장에서 발생하는 온갖 변수와 상상도 할 수 없었던(그러나 일단 발생하니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그렸던 완성과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을 속 터지게 지켜본다. 그래도, 그런 영화 현장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버릴 수 없다는 결론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웃음과 낭만, 그리고 씁쓸함이 교차하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로켓트는 발사됐다>는 안타깝게도 그런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보다는 땡처리 옷 장사의 어려움이 더 리얼하게 그려져 있었으니... 만약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상영시간을 비례로 ‘핵심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법 같은 게 있다면 애석하게도 < 로켓트는 발사됐다 >의 내용은 영화를 찍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어진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땡장사(‘사장님이 미쳤어요!’류의 문구로 호객하여 떨이로 의류를 판매하는 형태) 옷 장수 최야성 사장이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결국 아르바이트로 위장한 양아치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옷을 도둑맞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90분의 상영시간에서 60분이 대충 이런 내용에 유명 배우들의 우정 출연으로 연출된 ‘썰렁 때리는’ 개그들이다. 우리는 시나리오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로켓트는 발사됐다>는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제작자이며 주연배우이기도 한 최야성 감독이 당시로선 신선한 시도를 한 것은 그럭저럭 인정해줄 수 있다. 한 가지 그가 착각했던 것은, ‘아무도 안 한 것’이 ‘아무도 생각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이 자주 호명된다. 독창성, 신선함의 상징으로 최야성 감독이 닮고 싶어하는 감독인데, 그는 옷가게 구석 소파에 누워 < 저수지의 개들 >을 보며 ‘타란티노를 재끼는’ 영화를 만들겠다며 중얼거린다. 문제는 그 중얼거림이 영화를 만들기 전의 다짐 같은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있는 영화의 한 숏 이라는 것이 문제다. 어찌어찌 유명 배우들을 만나 영화출연을 타진하며 ‘세계적으로 쇼부를 보겠다’고 수 없이 다짐을 하지만 그 다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다짐하는 과정을 봐야만 하는 관객은 그래서?? 어쩌라고?? 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로켓트는 발사됐다>의 크랭크 인 장면에서 끝난다. “하여튼 영화 하나 찍기 되게 힘드네.” 라고 지나가듯 말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봤던 배우들이 사실 영화의 스태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내가 본 장면들의 촬영이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과 시작이 맞붙어 있는 순환구조. 돌고 도는 인생사. 색즉시공 공즉시색. 감독이 자신만만(사실 그리 자신만만하지도 않다. 영화상 보이는 그의 태도나 말투는 거의 기어들어가다시피 하다. 안쓰러워...) 하게 말한 것 같은 영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8살의 어린 영화감독이 뭔가 다른 것을 하고자 하는 안간힘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카메오 비슷하게 출연하는 중구난방의 배우들.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데, 최종원 , 김보성 , 현석 , 독고영재 , 허준호 , 박준규 , 조상구 , 박상면 , 가수 정광태 , 개그맨 김용 (이 분은 아예 조연급 분량이다), 시인 원태연 , 영화감독 김기덕 , 김두영 (영화 마니아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 주글래살래 >의 바로 그 감독이다.) 등 그야말로 다국적군이라 불릴만한 우정의 무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캡쳐 뜨나 했더니... 감사한 포스터 1997년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스타트 같은 해였다. 이창동 감독의 < 초록물고기 >, 김성수 감독의 < 비트 >, 송능한 감독의 < 넘버 3 >가 차례로 개봉했고 장윤현 감독의 < 접속 >, 임권택 의 < 창 >, 배용균 감독의 <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 역시 이해에 개봉했다. (흥행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의 < 3인조 >도 같은 해 공개되었다.) 이런 좋은 작품들이 쏟아질 때, < 로켓트는 발사됐다 >는 개봉관을 한 곳도 잡지 못하고 3주간의 무료 상영을 했다. 다시 언급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거나 당시 평가받지 못한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이상이며 꿈이었던 시절의 향수가 남아있는 작품 같아 길티 플레져 비슷한 호감이 생긴다. 신선한 시도와 트래쉬 무비 사이 어디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 영화를 뭐라고 평가하든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why not? 아님 말구! 감독 최야성 은 <로켓트는 발사됐다> 이후 2편의 영화를 더 제작, 감독하고 현재는 MC야성 이라는 이름의 가수로, 3건의 특허를 등록한 발명가로, 중견화가 조범제 화백의 매니저로... 하여간 바쁜 삶을 살고 계신다. 과연 도전의 귀재라 불리는 사내답다. 최야성 독고영재 김보성 감독: 최야성 각본: 최야성 개봉극장: 시네마천국(서울) 관람인원: 69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