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영상] 해고 소식을 들은 박성호 기자의 아내 응원의 문자메시지
- 제작년도
- 2012
<그저 사고였을 뿐> 중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Les Films Pelleas) 몇 해 전 한 시네필 커뮤니티에서 “영화, 어디까지 봤니(소위 ‘시네필력’ 테스트)”의 끝판왕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권역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로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민망함이 스쳤다.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지만, 우리에게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 영화들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편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은 앞다퉈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들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이 지금 가장 역동적인 작가군이 형성되고 있는 흥미로운 화수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해 주요 영화제 수상작 리스트에는 이 지역 감독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산업적인 지형도 바뀌고 있다. 필리핀과 태국이라는 전통적인 영화 강국 외에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신흥국들이 자국 상업영화로 박스오피스를 주도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탄탄해진 산업적 기반 위에서 작가주의 영화들이 칸, 베를린, 로테르담 등 서구권 영화제를 휩쓰는 현상은 이제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졌다. 한편, 검열이나 전쟁으로 억눌려 있던 서아시아권의 목소리 또한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망명지에서 혹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영화를 만들던 이들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도하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들의 언어로 동시대의 서사를 드러내고 있다. 비슷한 역사적 상흔과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우리로서는 이 흐름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 그 거대한 파도의 맨 앞자리에 선 젊은 작가들의 데뷔작들을 통해 아시아 영화의 현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쓸모 있는 귀신>: 눈을 뜨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Best Friend Forever 불교 국가이자 뿌리 깊은 민간신앙의 전통을 가진 태국은 동남아의 오랜 영화 강국이다. 하지만 강력한 검열 탓에 근현대사나 사회적 이슈를 직설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이 몽환적인 숲과 은유로 점철된 것은 이러한 억압에 대한 미학적 응답이었을 것이다. 반면 < 쓸모 있는 귀신 >(랏차뿜 분번차초케, 2025)은 태국 주류 장르인 호러 코미디에 SF와 퀴어 코드를 뒤섞으며 노골적으로 장르를 융합하고 파괴하는 혁신적인 태도를 취한다. 진공청소기에 빙의한 귀신이 다른 귀신을 퇴마하고 살아있는 남편은 혼령의 기억을 붙들려 애쓴다는 설정은 자칫 난해하거나 신인 감독의 객기 어린 실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놀라운 지점은, 그 황당한 설정 속에 태국 사회, 더 넓게는 국가 폭력의 은폐와 트라우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심어놓았다는 데 있다. 영화는 기억을 저장하는 타임캡슐로서 매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교육 제도와 레거시 미디어가 철저히 은폐하려 했던 태국 민주화 과정의 잔혹한 상흔을 이토록 대담하고 환상적인 화법으로 직시한 영화가 또 있었던가. <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 나비가 되기 위한 인고의 시간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베트남 영화는 강렬한 색감과 회화적인 구도에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팜 티엔 안 감독은 이 시각적 유산을 능숙하게 다룰 뿐 아니라 편집이라는 시간의 리듬마저 훌륭하게 조율해낸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교한 롱테이크는 단연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때론 아름답게 때론 무심하게 스쳐 가는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기원전부터 수백 세대를 거쳐 ‘사람이 가꿔온’ 장소이자 척박한 정글을 일군 땀, 수천 년에 걸친 전쟁의 피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눈물이 배어 있는 역사적 지층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던져진 주인공의 삶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시골로 내려가 장례를 치르며 조카를 돌봐야 하는 현실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오롯이 그의 몫에 달려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베트남 영화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지점은 그간 금기시되던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무심한 듯 툭 건드리는 대목이다. 그것이 당국의 실수였든 의도치 않은 허용이었든 이 장면은 베트남 영화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 호랑이 소녀 >: 소녀의 해방이 선사하는 날 선 카타르시스 사진: IMDb , 부산국제영화제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에서 소녀의 신체적 변화는 흔히 부끄럽고 감춰야 할 대상으로 치부된다. 아만다 넬 유 감독은 12세 소녀 자판을 통해 이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자판은 초경을 불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몸이 겪는 변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바디 호러’라는 장르는 사회적 억압을 찢고 나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선택이 된다. 영화를 견인하는 힘은 소녀들이 뿜어내는 야생적인 활력이다. 기성세대가 씌워놓은 차별과 억압의 프레임을 내면화하는 대신, 자판은 두려움마저 집어삼키고 사회가 경외하는 호랑이로 탈피한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것만큼 큰 자유가 어디 있을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정작 본국인 말레이시아에서는 검열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진 전복적인 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자서전>: 깨지 않는 숙취 같은 독재의 그림자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KawanKawan Media < 자서전 >(막불 무바락, 2022)은 독재 정권이 끝나면 곧 공정한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던 청년의 순진한 믿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수십 년간 이어진 독재의 잔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미세한 틈새에서 악취를 풍긴다. 수감된 아버지를 대신해 은퇴한 장군의 저택에서 일하게 된 청년 라킵은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냉혹한 어른의 세계를 학습한다. 그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거짓을 덮고 우발적인 폭력을 묵인한다.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 새겨진 부패는 라킵의 내면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인도네시아의 신예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막불 무바락 감독은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을 부자 관계를 연상시키는 개인의 서사로 치환하여 설득력을 얻는다. 과거의 유령이 현재의 청춘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그 서늘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표현이 허용된다는 사실 자체에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희망을 엿보게 된다. <대통령의 케이크>: 달콤한 케이크 위로 흐르는 씁쓸한 아이러니 사진: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이웃 국가와의 전쟁과 강압적인 철권통치 아래 놓인 1990년대 이라크. < 대통령의 케이크 >(하산 하디, 2025)는 이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9살 소녀 라미아에게 떨어진 숙제는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할 케이크를 구해오는 것. 경제 제재로 당장 먹을 빵조차 부족하고 사기꾼이 들끓는 거리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하지만 절대권력과도 같은 선생님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소녀는 길을 나선다. 시장과 검문소에서 마주친 어른들은 소녀를 도울 여력이 없거나 오히려 이용하려 든다. 그러나 라미아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았을 리 만무한 비전문 배우가 보여주는 그 단단한 눈빛은 연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체득한 앙상한 강인함처럼 보여 마음을 울린다. 가장 달콤해야 할 케이크를 구하기 위해 가장 비정한 현실을 통과해야 하는 아이러니. 영화는 그 끝맛이 달콤함이 아닌 강렬한 메시지임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저 사고였을 뿐>: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외치는 진실 앞서 살펴본 데뷔작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올해 가장 주목받은 영화중에 하나인 < 그저 사고였을 뿐 >(자파르 파니히, 2025)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늦은 밤 운전 중에 발생한 로드킬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도입부 이후 자기의심과 복수심 사이에서 국가폭력 희생자들이 겪는 끊임없는 갈등이 고조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정부로부터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라는 가혹한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저항의 서사를 써 내려온 작가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저 사고였을 뿐>은 제목이 주는 무심함과는 대조적으로, 이란 사회 내부에 깊게 뿌리 박힌 불신과 권위주의,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적 심리를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층 서늘해진 시각으로 해부한다. 국가적 트라우마가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묵직하게 웅변하고 있다. 사진: Cinema Galeries 스크린으로 목격하는 아시아의 오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전반적인 경향을 짚어보자면, 동남아시아는 적극적인 국제 공동 제작의 틀을 활용해 자본과 기술의 한계를 영리하게 극복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서아시아는 국가 정책의 기조가 과거의 통제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선회하며 산업 성장의 새로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두 지역 모두 이전보다 압도적인 작품 수와 두터워진 작가군을 배출하며 영화 산업의 비약적인 고도화를 이뤄내고 있다. 물론 모든 곳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이란과 같이 정부의 직접적인 검열과 통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역행의 길을 걷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날카로운 저항의 언어로 거듭난다. 억눌린 목소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기어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본래 영화는 소설이나 미술 등 인접 예술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해왔지만 동시에 대중과 가장 밀착된 예술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 왔다. 과거에 금기시되었던 소재를 수면 위로 올리고 소외되었던 관점을 복원하는 이들의 시도는 단순한 미학적 성취를 넘어선다. 특히 초반에 열거한 다섯 편의 영화들은 각기 다른 국가, 장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맥락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응시다. 이들은 국가가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나 사회가 강요하는 금기를 외면하지 않고 장르적 상상력 혹은 집요한 리얼리즘을 통해 스크린 위로 기어이 끄집어낸다. 특히 이 작품들이 모두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윗세대가 남긴 부채와 상흔을 물려받았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법으로 해석하고 기록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망각에 저항하는 기록이자 억압된 목소리들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낯선 아시아 영화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또한 지난한 근현대사를 통해 비슷한 고통과 성장을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지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는 취미를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군분투에 보내는 가장 조용한 응원일지 모른다. 스크린 너머 그들의 치열한 오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박성호(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l 10년 이상 해외에 거주하며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A Million Years (2018) 등 다수의 단편 및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