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신랑의 한
- 감독
- 박윤교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김성원, 이승현, 최인숙, 추석양, 배정자, 김상순, 최삼, 임예심, 장훈, 임생출, 추봉, 임운학, 라정옥, 홍지연, 김소저, 한주열
※ 섬뜩한 이미지들이 많으니 심약한 분들은 주의를 요합니다 한국 공포영화의 주기는 파란만장하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장르는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상상력은 다양했다. < 악의 꽃 >(1961, 이용민)처럼 흡혈 식물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고, < 불가사리 >(1962, 김명제)와 < 대괴수 용가리 >(1967, 김기덕)같은 괴수 영화도 있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던 이용민 감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 살인마 >(1965)나 < 목 없는 미녀 >(1966)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 월하의 공동묘지 >(1967, 권철휘)는 한국 공포영화의 정전이 되었고, 유현목 감독의 <한>(1967)은 큰 흥행을 기록하며 ‘옴니버스 호러’의 전통을 세웠고 속편으로 이어졌다. 당대 최고의 영화사였던 신필름도 이 장르에 결코 무관하지 않았는데 < 천년호 >(1969, 신상옥), < 사녀 >(1969, 신상옥)는 당대의 흥행작이었다. 박윤교 감독의 <마계의 딸>(1983) 1960년대에 ‘준 메이저’ 장르로 시작한 한국 호러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용민, 박윤교, 이유섭, 김인수 등의 감독들이 꾸준히 작품을 이어갔고 사극의 서브 장르로서 1960년대의 유산을 양적으로 확장시켰다. < 설야의 여곡성 >(1972, 임원직), < 며느리의 한 >(1972, 박윤교) 등이 이때 등장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크리처 쪽으로 트렌드 변화가 왔다. < 반수반인 >(1975, 김기)의 늑대 인간, < 정형미인 >(1975, 장일호)의 고양이 인간, < 원무 >(1976, 박윤교)의 미이라 등 더 이상 소복을 입지 않는 공포영화가 등장했다.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등과도 합작이 활발히 이뤄졌다. 남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귀신의 손길. <삼국여한>(1982. 김인수)의 한 장면. <깊은 밤 갑자기>(1981. 고영남)의 이기선은 세련되면서도 당돌하지만 한편으론 백치미를 지닌, 복합적 이미지의 배우였다. 1980년대 마지막 호러인 <하녀의 방>(1987. 김인수). 이 시기에 이르면 호러와 에로의 경계를 거의 무너진다. 1980년대 호러의 가장 큰 특징은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의 경향이다. 즉 ‘노골적인 상업영화’라는 강력한 상업적 의지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한국영화의 산업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1970년대에는 크리처와 합작이 그 타개책이었다면, 1980년대엔 에로티시즘과 하드고어였다. 1980년대 호러에 새로운 것은 없다. 대신 표현 수위의 강도를 상승시키며 생존하려 했다. ‘여인의 한과 피맺힌 복수’라는 전통적 가치는 오롯이 살아 있지만, 그 정서와 방법론과 비주얼은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에로틱 호러’의 창궐은 시대정신에 발맞춘 것이었다.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살색 열풍’은 모든 장르를 잠식했다. 단지 ‘야한 영화’가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크게 보면 ‘선정주의’의 확장이었다. 성적 표현뿐만 아니었다. 액션 스펙터클이든 폭력 묘사든 감정 표출이든 ‘80년대식 표현’은 이전에 비해 한두 눈금 더 올라가 있었고, 호러 장르는 그 표현에 최적의 토양이었다. 당대의 에로티시즘 영화와 일맥상통했던 ‘1980년대산 호러’는 비주얼의 관능성과 폭력성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김인수 감독은 상징적 인물이었다. 1990년대엔 비디오 시장으로 건너가 <젖 소부인 바람났네 >(1995)를 연출하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80년대에 마치 그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끈적끈적한 공포영화를 선보였다. 그가 1982년에 연출한 < 삼국여한 >의 예고편 문구인 “치정과 욕정이 얽힌 성인용 공포 드라마”는 당대 공포영화 감독들의 좌우명이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 호러였던 <삼국여한>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도착적 성을 다룬 ‘섹스 과잉 공포’로서 여기에 하드고어를 결합했다. 그의 < 미녀 공동묘지 >(1985)에는 시체와의 섹스까지 등장하니, 1980년대 한국 호러의 성적 상상력은 에로티시즘에서 사도마조히즘을 거쳐 네크로맨틱에 이르는 여정이었던 셈이다. ‘호러 장인’ 박윤교 감독의 < 춘색호곡 >(1981)의 오프닝도 ‘섹슈얼 호러’라 불러도 될 만큼, 그의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톤이었고 < 천년백랑 >(1983)에서는 근친적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춘색호곡>과 <한녀>(1981, 이유섭)의 ‘귀신 액션’. 스타일과 비주얼도 더욱 자극적이며 적나라한 양상을 띠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는 호러와 무협 액션의 결합이었다. 이 시기 귀신들에게 텀블링은 기본이었으며 피아노 줄을 달고 경공술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춘색호곡>은 대표적이며, 한중일 콘셉트의 옴니버스 영화인 만큼 <삼국여한>은 중국식 무협과 사무라이 액션 등을 선보였다. 남기남 감독의 < 흑삼귀 >(1985)는 강시 영화를 좀 더 하드고어 버전으로 만든 듯한데, 1970년대 액션 전문 배우였던 권영문이 등장하며, 도사 캐릭터의 활약이 펼쳐진다. <천년백랑>의 후반부는 호러보다는 무협 액션에 가깝다. <깊은 밤 갑자기>는 다양한 광학 효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효과는 1980년대 호러의 클리셰였다. <천년백랑>에서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디졸브를 이용해 꽤 그럴듯하게 변신을 표현한다. <공포의 축제>와 <월하의 사미인곡>. 특수분장의 기술적 발전을 토대로 호러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삼원녀>의 잘린 팔과 <제4의 공포>의 잘린 머리. 다양한 효과들이 호러 장르의 시각적 쾌감을 위해 사용되었다. 1980년대 호러는, 지금 보면 약간 조잡하게도 느껴지지만 다양한 광학 효과를 통해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화면을 흐리는 블러 효과를 비롯, 렌즈를 통해 왜상을 만들고 프리즘 효과를 냈으며, 이중노출이나 디졸브 등을 통해 변신이나 빙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엔 대부분 자극적인 사운드가 결합되어 그로테스크한 기운을 더했다. 특수효과와 특수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소복 소매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 <원한의 공동묘지> 스타일의 초보적 수준도 있었지만, 때론 실감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이 분야의 기술적 발전 역사에서 1980년대는 초기에 해당하는데, 자본의 취약성에 때문에 그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당시 공포영화가 원하던 ‘쎈’ 표현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켰다. 신체를 절단하고 괴물 같은 얼굴을 필요로 했던 하드고어 콘셉트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다. 특히 김철석(특수효과)과 장인한(분장)이 만난 < 월녀의 한 >(1980, 김인수), < 마계의 딸 >(1983, 박윤교), < 제4의 공포 >(1984, 노진섭), < 월하의 사미인곡 >(1985, 박윤교) 등은 이 분야의 초석이 된 작품들이다. 기술적 발전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영화도 있다. 김인수 감독의 <제4의 공포>와 < 공포의 축제 >(1986)는 기형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 한녀 >(1981, 이유섭)은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성형 수술을 소재로 한다. < 삼원녀 >(1981, 김시현)와 <삼국여한>엔 팔이나 머리가 잘리는 신체 절단 요소가 있으며, <월하의 사미인곡>이나 <여곡성> 등 1980년대 중반 사극 호러에 오면 더욱 괴물 같은 메이크업을 선보인다. <관 속의 드라큘라>와 <흡혈귀 야녀>. 서양의 뱀파이어 캐릭터는 1980년대에 직접 도입되거나 귀신으로 변형된다.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인 <괴시>, 좀비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육체의 문>. <제4의 공포>와 <여곡성>. 메이크업을 통한 섬뜩한 ‘괴물적 캐릭터’의 탄생. ‘스네이크플로이테이션 무비’(snakeploitation)라고 불러도 무방할 <인사대전>. 이 영화에서 뱀은 무차별한 학살의 대상이며, 건물 한 채를 혼란에 빠뜨리는 재난의 원인이며, 인간과 액션 대결을 하는 가공할 만한 크리처다. 1960~70년대의 전통적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더욱 자극적인 요소로 호소하려는 1980년대 호러의 노력 중 하나는 이국적 요소의 도입이었다. 중국인 며느리의 한을 담은 <삼원녀>나 중국과 일본의 요소를 끌어들인 <삼국여한>, 혹은 국적 불명의 <흑삼귀> 등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동안 한국영화에선 선보이지 않았거나 최초로 등장하는 호러 크리처들이 등장했다. 흡혈귀들이 대표적인데, 사극 공포영화에서 여자 귀신들은 종종 흡혈을 하며 <삼국여한>에는 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받아먹는 귀신마저 등장한다. 주목할 만한 영화는 < 관 속의 드라큘라 >(1982, 이형표)다. 영미권의 호러 캐릭터인 드라큘라를 도입해 한국적 맥락에서 퇴마를 가한다. < 흡혈귀 야녀 >(1981, 김인수)는 기존의 사극 귀신에 흡혈의 모티브를 두드러지게 결합시킨다. 좀비 영화도 등장한다. < 괴시 >(1981, 강범구)는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평가되는데, 해충 박멸을 위한 초음파 실험이 시체들을 깨어나게 한다는 설정이다(방사능이 원인이 되었던 조지 로메로의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1968)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기환 감독의 <육체의 문>(1981)엔 좀비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여자들을 연달아 살해한다. <제4의 공포>엔 화상으로 흉측한 얼굴을 지니게 된 남자가 마치 미이라처럼 얼굴을 붕대로 휘감고 등장하며, <여곡성>엔 괴물처럼 변해버린 마님이 등장한다. 독사에 물린 여자가 뱀파이어가 되는 < 몽녀한 >(1984, 강범구)과 기형 인간이 등장하는 <공포의 축제>도 언급할 만한 영화다. 동물들도 한몫 했다. 고양이, 뱀, 까마귀 등의 동물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의 매개체’가 되는 전통적 소재였는데 1980년대에 와서는 더욱 끔찍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학살’의 대상이 된 것. 홍콩과의 합작 영화인 < 인사대전 >(1983, 김선경)은 < 홀로코스트 >(1980, 루게로 데오타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뱀들을 무차별로 죽인다. <원한의 공동묘지>에선 수많은 고양이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이런 살풍경은 이전 호러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잔인한 스펙터클이었다. <여곡성>엔 전설의 ‘지렁이 국수’ 장면이 있다. <망령의 웨딩 드레스>의 계단 신. 김기영 감독의 미장센을 연상시킨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무당의 딸인 하녀는 주술적 위력과 함께 섹슈얼한 힘으로 집을 장악한다. 1980년대 공포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별장이나 외딴 곳의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굳이 이름 붙인다면 이른바 ‘맨션 호러’의 등장이다. 할리우드의 ‘하우스 호러’가 집에 깃든 악령이나 저주로부터 섬뜩한 기운을 가져온다면, ‘맨션 호러’는 집 자체에 영혼을 부여하진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여기서 억울한 죽음과 복수극이 벌어진다. 그런 면에서 < 하녀 >(1960, 김기영)나 < 마의 계단 >(1964, 이만희) 같은 1960년대 한국 스릴러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듯하다. 1980년대 ‘맨션 호러’는 공포 장르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의도 속에서 과거의 유산을 되살리는 시도였다. 그 전형은 < 망령의 웨딩드레스 >(1981, 박윤교)다.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는 우연히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여자를 자신의 별장 하녀로 고용한다.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마치 <하녀>의 하녀처럼 남자를 차지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우물에 던져버리지만, 마치 <마의 계단>처럼 그녀는 다시 출몰한다. 귀신인지 산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구도는 < 귀화산장 >(1981, 이두용)에서 병원장과 간호사의 관계로 변주되며, <깊은 밤 갑자기>에선 주술적 요소가 가해진다. 특히 <깊은 밤 갑자기>는 전원 저택의 안주인(김영애)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망상 속에서 미쳐가는 여성을 보여준다. <살인마>를 리메이크 한 < 목없는 여 살인마 >(1985, 김영한). 외딴 폐가와 병원을 오가는 <제4의 공포> 등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작품들. 한편 < 악녀의 밀실 >(1984, 김선경)이나 < 요색유희 >(1985, 강대선)는 집에 깃든 악령의 존재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1980년대, 작게나마 호러 전문 배우진이 형성된다. 정세혁과 박암은 대표적. 사진은 <망령의 웨딩 드레스>와 <삼국여한>이다. <미녀 공동묘지>의 진봉진과 곽은경. 그들도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이다. 1980년대 호러엔 이국적 이미지의 배우들이 종종 등장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괴시>의 유광옥, <여곡성>의 홍명진, <월녀의 한>의 박병순, <제4의 공포>의 정현숙. 서양의 호러가 가톨릭 사제를 주로 퇴마사로 내세운다면, 한국의 공포영화엔 대사나 법사의 존재가 있었고 십자가 대신 불교의 상징인 ‘卍’(만)이 있었다. <여곡성>과 <월녀의 한>에 등장하는 ‘卍’.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는 흥행을 위해 좀 더 강렬한 이미지와 스토리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와 낙후한 자본 구조 속에서 장르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클리셰를 반복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충무로에서 더 이상 호러는 생산되지 않는 멸종 상황에 이르며, 이 암흑기는 < 여고괴담 >(1998, 박기형)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진다. 10년 넘게 제작되지 않은 셈인데, <여고괴담>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왕성하게 부활한 호러는 2010년 이후엔 다시 침체기에 들어섰다. 한국영화의 수많은 장르들 중에서 가장 격렬한 흥망의 사이클을 보여주는 장르, 호러. 지금은 잠시 침체되었지만 언제 또 새로운 모습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등장할지 모른다. <원한의 공동묘지>의 마지막 신을 장식하는 자막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원한은 죽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맴돌고 있다.”
한국 호러 영화가 비루한 조국의 건축 상황 때문에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했다. 성과 대저택이 있어야 제목도 근사하게 뽑고 그림도 나올 텐데, 현대 남한 땅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박윤교 가 감독하고 이종세가 각본을 쓴 < 마녀성 >에도 성은 안 나온다. 대신 영화는 제목의 성을 대체할 나쁘지 않은 공간을 찾아낸다. 바로 화장장이다. 화장장이라고 특별히 무서운 곳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이 공간에 대한 당시 한국 관객들의 편견을 적절하게 이용했다면 효과가 꽤 그럴싸했을 것이다. 요새 추모공원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먹히지 않겠지만.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등장하는 것도 화장장이다. 지문을 읽어보자. 뇌성벽력이 일면서 비바람이 사납게 분다. (중략) 번개불에 들어나는 화장장의 검은 굴뚝과 을시년스런 건물. (중략) 어디선가 비 바람결에 들려오는 여인의 애절한 통곡소리. 이후 등장하는 것들은 거미줄, 번개, 비바람, 뇌성, 호롱불. 이 정도면 호러 영화 분위기용 소도구들이 총동원된다고 할 수 있다. 포스터 영화의 주인공 희정은 아시아 영화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클럽 가수이다. 당연히 미인이고 (‘백옥같이 아름다운 얼굴, 그 어딘가 우수에 가득 찬 얼굴,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눈동자’) 단골 팬들의 충성도도 높다. 지금 희정은 백영민이라는 모 회사의 전무와 연애 중인데, 영민의 청혼을 계속 거절하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유부남 시절(현재는 상처한 상태)부터 희정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하나 있는데, 그는 상현이라는 악당이다. 여기서 악당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유는 더 이상 내가, 이런 행동을 나쁜 짓으로 인식하는 게 상식인 문명국에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대사를 보면 둘이 어떤 관계인지, 상현이 어떤 인간인지, 이 영화가 만들어진 60년대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어떤지 드러난다. 생각 같아서는 2010년대 문명인의 관점에서 마구 비웃어주고 싶지만... 하여간 들어보시라. 상현: 딴 놈이 생긴 모양이군. 허지만 난 아직 널 놓아주질 않았어. 이 김상현이가 그렇게 호락호락 할줄 알았나? 희정: 그래서 어떻게 하실 작정이죠? 상현: 어떡하다니? 결혼을 해야지. 희정: 뭐요? 상현: 왜 놀라지? 네게 있어서 나는 처음 남자라지 않았어? 그렇담 내가 책임을 져야지. 희정: 철면피! 그 수많은 여성을 울리고도 아직도 속이 풀리지 않으세요! 흥, 그림자처럼 날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악마! (중략) 상현: 지금 난 어느때 보다도 네가 필요해. 어린것들이 할머니만을 의지하며 자라가는 게 내겐 견딜 수 없는 부담이거든... 아직도 이런 인간을 ‘효자에 상남자’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걸 생각하면 2010년대 문명인의 자존심은 허물어져 버린다. 상현과 헤어진 뒤에 화장장과 희정의 관계가 드러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희정은 화장장에 산다. 아버지인 이 서방은 화장터의 화부이고 이 직업을 조선 시대 백정처럼 수치스러워한다. 그가 직업 말고 수치스러워하는 건 그의 아내이다. 그에게 “젊은 네가 무슨 죄가 있다구. 어서 네 에미가 죽어야 할 텐데”는 당연한 일상 대화이다. 희정의 어머니이고 이 서방의 아내인 그 인물은 지문에 ‘괴여인’이라고 나온다. 여러 차례 묘사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헝크러진 기인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낡고 땟국이 흐르는 저고리를 입어 흡사 마귀할멈 같은 꼽추. 나중에 이 여인을 목격한 남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쌀자루같은 혹이 가슴까지 내려온 데다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마귀할멈처럼 아주 흉악한 얼굴의... 가장 중요한 외모 특징이 얼굴의 혹인데 처음 묘사에 나오지 않은 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각본가가 중간에 추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여간 희정이 자기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느낀 영민은 한밤중에 희정을 미행한다. 화장장에서 마주친 이 서방이 그를 되돌려보내려 하지만 그는 몰래 화장장 건물로 다시 들어간다. 그의 뒤를 지문이 ‘캡의 사나이’라고 부른 남자가 미행하는데, 그를 뒤에 붙인 건 상현이다. 이 뒤에 벌어지는 소동은 <스쿠비두>의 한 장면 같다. 화장터 테마의 귀신들린 집에서 두 남자가 벌벌 떨며 돌아다니다가 ‘괴여인’을 만나 기겁해 비명을 지르고 기절하거나 달아난다. ‘캡의 사나이’는 용하게 달아나는 데 성공하지만 영민은 그만큼 운이 좋지 못하다. 지문만 읽으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택시 안에서 ‘캡의 사나이’의 말을 들은 상현이 ‘어쨋던 눈에 가시같던 그 녀석이 상송장이 되어 화구속으로 들어갔다는 건 좋은 현상이야’라고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죽었나 보다. 그 뒤로 영민은 그냥 안 나오고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Scooby Doo Openings 영민의 실종이 아닌 ‘괴여인’을 갖고 희정을 협박하던 상현은 (“몬도가네의 일급 가수 이희정과...그리고 마귀할멈! 이건 멋있는 탐정소설 감인데 핫핫핫... 어때? 내일 아침 조간에 특종뉴스로 네가 크로즈업 된단 말이야.”) 이번엔 ‘캡의 사나이’와 함께 직접 화장장을 찾는다. 앞에서와 거의 비슷한 소동이 벌어지다가 이번엔 상현이 자기를 공격하는 괴여인을 단도로 찔러 죽인다. 두 남자는 허겁지겁 달아나고 이 서방과 희정은 어머니를 화장한다. 그 뒤의 사건 전개는 어이가 없다. 희정은 정말로 상현과 결혼했다! 이제 이 서방은 화장터 화부 일을 그만두고 상현, 딸, 상현의 어머니 박 씨 그리고 전처가 낳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무도 상현이 괴여인의 죽음과 관련 있다고 믿지 않는 거 같다. 이들의 결혼에 상현의 협박이 관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후 영화의 무대는 상현의 별장이고, 당연히 귀신이 된 괴여인의 복수가 중심이 된다. 첫 번째 희생자는 ‘캡의 사나이’인데, 지문을 보면... 유리창이 깨어지고 커텐자락이 아무렇게나 바람에 날린다. 그 침대위에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처박혀 있는 사나이. 실내의 가구들이 파괴되어 방안이 난장판이다. 암만 봐도 살인 현장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박씨가 ‘꿈에 볼까 무섭다’며 아들을 현장에 보낼 뿐이다. 화장터에서 사라진 영민의 경우도 그렇고, 60년대 작가들에겐 단역의 죽음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었나?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주로 전형적인 한국 호러 영화 깜짝쇼의 연속으로, 굳이 자세하게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단지 권선징악이 고픈 독자들을 위해, 영화가 불타는 별장 속에서 괴여인과 상현이 뒹굴면서 끝난다는 것은 밝혀두어야겠지.
지난 회에는 ‘공포’라는 글자가 들어갔지만 별로 공포스럽지 않은 영화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납량특집’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만한 영화를 골랐다. 여러분에게 크나큰 공포를 전해줄 영화는 박윤교 감독의 < 망령의 곡 >이다. 우리나라 공포영화는 많은 수가 원한을 다룬 귀신 영화다. 이 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로 여성들의 수난에 따른 억울함을 다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들, < 여곡성 >, < 월하의 공동묘지 >, < 살인마 > 등등에서 등장하는 ‘한을 품은 여자 귀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는 드라큘라, 강시, 늑대인간 같은 다른 나라의 괴물들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캐릭터였다. 이 귀신은 특히 ‘한’이라는 응축된 억울함을 주된 힘으로 사용하는데 이 한이 깊고 넓을수록 귀신의 파워는 한층 더 세진다고 할 수 있겠다. < 망령의 곡 > 역시 비슷한 설정의 귀신이 등장하는데 다른 귀신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점들이 눈에 띄어 재미있는 영화다.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호 김만호의 아들 김태화는 나이 서른을 먹은 5대 독자 노총각이다. 그의 부모님은 신붓감을 찾기 위해 백방을 수소문하는 한편, 조부는 증손자를 보기 전엔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조급함을 더한다. 그러던 중, 태화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드나드는 절 승가사에서 고아로 자란 행자 점례를 발견하게 된다. 예쁘고 성격마저 참한 점례를 급하게 신부로 맞이하게 된 태화네 가족은 그녀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점례는 이 모든 것을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녀가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기고 만다. 몸에서 난소종양이 발견되어 아이를 낳으면 점례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태화의 가족들은 점례가 어떻게 되든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버틴다. 이윽고 다가온 출산일. 그때까지 점례는 생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 남편을 불러 자신이 죽으면 승가사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당부한다. 사내아이가 태어나고, 기어코 죽어버린 점례. 태화는 부하직원들을 시켜 승가사 뒷산에 아내를 묻어주길 당부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잠깐 졸던 태화는 “아이, 추워... 아이 추워...” 라는 환청을 듣는다. 아내 점례의 목소리였다. “산모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평범한 귀신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이다. 게다가 초반부는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이 클리셰의 퍼레이드라 불러도 좋을 만큼 뻔하다. 요새야 드라마에서도 사용하지 않을 표현들이지만 80년대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지루함을 참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부분만 지나면, 다른 귀신들은 보여주지 못한 무시무시한 복수에 여러분은 치를 떨 것이다. 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는 하지만 막 고어씬이 난무하거나 귀신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것 같다거나 하는 종류는 아니다. 다만, 이 점례 귀신이 보여주는 복수의 집요함이 장난이 아니다. 점례는 일단 겁을 준다. 환청과 환영을 통해 남편인 태화의 눈에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을 ‘관이 무거워서 귀찮다’는 이유로 승가사의 뒷산이 아닌 다른 곳에 묻은 부하직원을 처단한다. 자신이 설정해놓은 폭파구역에 들어가 폭사 당하는 안 기사와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남편의 손에 (실수로) 살해당하는 최 기사. 그리고 태화는 부하직원의 죽음들 앞에서 실성해버린다. 다음 타깃은 자신의 죽음을 묵과한 병원 원장이다. 그녀는 간호사에 빙의되어 원장을 위협한다. 원장은 메스를 들고 간호사를 죽이려 하고, 겁에 질린 간호사는 옥상까지 도망갔다가 원장과 함께 사이좋게 추락사하고 만다. 점례의 살생부에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주변인들의 처단 이제 본격적인 김 씨 일가에 대한 복수가 행해져야 하는데, 영화는 갑자기 25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이 뜬금없는 전개에 여러분은 당황할 것이다.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저 컷 하나 바뀐 걸로 사반세기가 흘러버린 것을 성의 없다거나 어이없다고 말할 수는 있을 테지만, 그러지 말자. 놀라지 말자. 이것은 한을 품은 귀신의 집념을 보여주려는 연출인 것이다. 나 역시 좀 얼떨떨해서 이게 뭔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아주 중요한 힌트를 주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풀어낸다. 점례가 사망 당시 낳은 아들 경수가 25살이 되어 이제 장가간다고 들떠있는 것이다. 경수는 아내 영숙과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다. 이때, 집에는 때마침 손님이 한 사람 와 있다. 그는 점례를 키웠던 승가사의 주지 스님. 스님이 집으로 들어오자 내내 누워있던 경수의 조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25년간 실성해있던 태화는 정신을 차린다. 경수는 아내와 함께 태화에게 인사를 올리고 복덩이 손주며느리가 들어와 이제야 가문이 일어서겠다며 신이 난 할머니와 함께 경수 역시 흥이 오른다. 그러나 할아버지만이 인상이 좋지 않은데 그는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수의 아내 영숙에게는, 점례가 빙의되어 있었다. 이들이 한 집에 모인 밤부터는 점례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일단 그녀는 영숙의 몸에 빙의되어 시어머니를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 칼을 들고 시아버지의 방에 찾아가는데, 그의 뒤에서 칼을 내려치는 찰나! 주지 스님이 나타나 점례를 타이른다. 하지만 점례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스님조차 공격을 하고, 결국 점례보다 더 귀신같은 스님(점례는 발로 뛰며 공격을 하는데 스님은 순간이동을 하신다.)의 퇴마에 의해 승천을 하고 만다. 이제 가족의 평화는 찾아왔을까? 복덩이가 들어온 줄 알았더니... 이 영화의 귀신이 독특한 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바로 복수하지 않고 주변인만 처단한 후 25년을 기다렸다는 것인데, 이유는 아마도 경수의 아내에 빙의되어 들어가 손주 며느리라는, 본인이 위치했던 같은 자리에서 복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손자 며느리 영숙과 할머니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점례와 시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과 똑같이 찍었는데, “찬물에 손 담그지 말고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고... 어서 손자를 보아야 한다.” 하는 대사마저 완전히 똑같다. 자신이 피해를 봤던 자리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25년을 참아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자리가 어쨌든 자기 아들의 아내(!)의 자리라는 것이 꽤나 파격적이다. 그녀가 복수에 성공했다면 아들 경수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글쎄. 장담 못 할 일이다. 25년을 사이에 둔 똑같은 대사 두 번째 특이한 점은,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원한에 사무친 여성 귀신들이 최후에는 복수에는 실패하지만 가해 당사자들의 뉘우침을 듣고 어쨌든 한을 풀고 승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점례는 주지 스님에 의해 ‘퇴치’된다는 점이다. 점례는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 가족을 저주한다. 물론 시아버지 만호와 남편 태화는 자신의 비인간적 행태를 반성하고, 또 죗값을 치르기 위해 선행을 지속하며 살 것을 다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 장면은 점례와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인과응보’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죽는 것은 주변 인물들과 시어머니뿐, 이 가족의 핵심권력인 남자들은 모두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시어머니도 귀신이 되어 이 집 남자들을 벌하러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영화는 ‘한국 공포영화의 거장’이라 불렸던 박윤교 감독이 말년에 만든 작품이다. 그는 데뷔 초기부터 공포영화를 만들기 시작해 < 백골령의 마검 >으로 흥행감독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이후 < 옥녀의 한 >, < 며느리의 한 >, < 꼬마신랑의 한 > 으로 이어지는 ‘한(恨) 트릴로지’를 만들고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 망령의 곡 >은 핍박받는 며느리의 한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상황에서 살해돼 귀신이 되고, 또 귀신이 되어서도 변변한 복수도 못 하고 ‘퇴마’ 당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흥행은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6~70년대 흥행사로 이름을 날렸던 박윤교 감독이지만 80년대에 들어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또 한 번 재기를 노렸던 망령 시리즈의 2탄 < 망령의 웨딩드레스 >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좀 더 현대적인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당시의 트렌드를 잘 따르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망령’ 이라는 이름이 구식으로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전통적인척하면서 변태스러운 <망령의 곡>이 취향에는 더 잘 맞는 것 같다. 가끔 뻔할 것 같이 생각되는 영화에서 이런 의외의 설정들이 튀어나오는 재미가 결국 B급 영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뜨거워지는 여름, 맥주 한 캔씩 들고 여자친구와 함께 <망령의 곡>을 보며 더위를 쫓는 건 어떨까. 여자친구가 “니네 어머니가 저러면 어떡할 거야?”라는 질문을 하면 어쩌냐고? 자.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지미옥 정세혁 박암 감독: 박윤교 각본: 유일수 개봉극장: 대한(서울) 관람인원: 77,819명(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