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감독
- 윤성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황제성, 서영주, 이채은, 조한철, 백현철, 박혁권, 김정화, 배용근, 박희본, 김예리, 윤성호, 임지규, 성다솜, 정지연, 김조광수, 권은수, 노수산나, 부지영, 박동훈, 이우정, 최진원, 김은주, 이랑, 감동환, 이한나, 조선명, 이은정, 신우식, 음소, 윤쥐, 수아, 유유남, 윤경상, 박종환, 공효진
최근 OTT 드라마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1)와 JTBC의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의 한 에피소드인 <미지의 세계 시즌투에피원>(2022)와 제작자이자 연출자로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 말이야 바른 말이지 >(2022) 등으로 부쩍 바빠 보이지만, 윤성호 감독의 다산성은 동시대 그 어떤 크리에이터에 뒤지지 않는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단편영화로 시작한 그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성 가득 한 작품을 거쳐 장편영화를 경유한 후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개척하더니 지상파와 케이블과 OTT에 이르렀다. 20여 년 동안 20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과 15편의 드라마를 만든 숨가쁜 시간! 여기서 쉼터 같은 작품이 하나 있다면, 바로 < 도약선생 >(2011)이다. 이 자유분방한 영화는 놀랍게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아리랑TV가 제공하는 공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의 도시를 알리기 위한 시리즈 중 한 편이었다. 윤성호 감독은 대구를 배경으로 <도약선생>을 만들었고, 윤태용 감독은 서울을 배경으로 < 서울 >을, 배창호 감독은 제주에서 < 여행 >을, 김성호 감독은 부산에서 < 그녀에게 >를, 전계수 감독은 춘천에서 < 뭘 또 그렇게까지 >를, 진광교 감독은 여수에서 < 려수 >를, 문승욱 감독은 인천에서 < 시티 오브 크레인 >을 연출했다. 65분이라는 애매한 러닝타임을 지닌, 스포츠 예능을 풍자하고 있는 건지 스포츠 영화를 조금 독특하게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이 영화는 20세기까진 한국영화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취향의 B 무비였다.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만든 단편 < 졸업영화 >(2006)로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을 수상하고 첫 장편 < 은하해방전선 >(2007)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던 윤성호 감독은 이후 단편으론 ‘두근두근’ 시리즈를, 웹드라마로는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2010)를 내놓으며 왕성한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이때 제안 하나를 받는다. 아리랑 TV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시리즈는 각 도시를 배경으로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프로젝트였다. 그의 도시는 순천. 윤성호 감독은 순천 송광사에 미국의 흑인 래퍼가 힐링 하러 온 이야기인 <소울>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때 갑자기 제작사에서 도시를 바꾸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에서 영화를 찍으면 제작 지원과 현물 협찬이 들어온다는 제안이었고, 윤성호 감독은 받아들인다. 처음 기획한 제목은 ‘육상소녀’였다. 의도는 진지했다. 육상을 빙자해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원래 들어오기로 한 제작비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래서 장면들을 빼기 시작했고, 몇몇 장면들은 즉흥적인 예능처럼 찍었다. 엔딩에서 영화를 황급하게 닫는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고, 러닝타임은 한 시간을 조금 넘기는 65분이 되었다. 제목은 <도약선생>. 주인공은 윤성호의 페르소나인 박혁권, 당시 웹드라마로 인연을 맺은 걸그룹 밀크 출신의 박재영(본명 박희본), 그리고 처음 함께 작업하는 나수윤이었다. 우정 역의 이우정과 원식 역의 나수윤. 이우정은 윤성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은하해방전선>부터 시작해 총 10편의 윤성호 감독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다. 2008년부터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2020년엔 첫 장편 < 최선의 삶 >을 내놓았다. 나수윤은 <도약선생>에서 윤성호 감독과 처음 만나, 이후 여러 편의 웹드라마에서 함께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동성 친구인 우정(이우정)과 원식(나수윤). 남친이 생긴 우정은 대구에서 서울로 떠나게 되고, 원식은 매달린다. 우정은 원식에게 “뭔가를 보여 줘. 크고 높고 늠름한 걸”이라고 말하고, 원식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영록 코치(박혁권)에게 장대높이뛰기를 배운다. 여기에 재영(박재영)이 합류하고, 그들은 다양한 트레이닝을 통해 조금씩 도약한다. <도약선생>은 윤성호 감독의 단편과 웹드라마를 꾸준히 ‘복용’해온 관객에겐 익숙하지만, 그의 영화 문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꽤 난해한 도전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낯선 가장 큰 이유는 ‘생뚱맞음’이다. 이것은 윤성호 감독의 클리셰이자 유머 감각인데, 그 핵심은 ‘서사의 실험’이다. 파괴까지는 아니지만, 윤성호의 영화는 ‘일반적인’ 극영화의 구성과 사뭇 다르다. 느슨한 챕터 구성인 <도약선생>은 한 국면이 넘어갈 때마다, “원식, 불심검문에 걸리다” “코치님은 채식주의다”라는 식으로 쨍한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흥미로운 건, 내레이션의 화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다중 시점 서사는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론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걸 교란시킨다. 여러 명의 화자들은 때론 장면을 멈추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영화라는 장치’를 드러내는 건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전반부를 대표하는 방식이었다. (왼쪽 사진) 윤성호 감독의 작품엔 종종 동료 감독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육상 체험장의 사회자는 최근 < 잔고 : 분노의 적자 >를 내놓은 한국 B 무비의 스페셜리스트 백승기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도약선생>은 배우 김종수의 초기작 중 한 편이다. 그는 대구스타디움 관리인으로 출연한다. 원래 썼던 시나리오가 어떤 완결성을 지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축약’된 <도약선생>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는, 툭툭 끊기고 난데없으며 즉흥적인 톤이 주는 묘한 아우라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실제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의 기록과 연습 방식과는 상이함”을 경고했듯, <도약선생>에서 전영록 코치(내내 가수 전영록의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오는)의 트레이닝 방법은 독특하다. 기본적인 러닝에서 시작해 요가를 경유해 평행봉과 점핑을 거쳐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시 쓰기 수업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순전히 우발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이 과정을 장대높이뛰기를 위한 트레이닝 커리큘럼으로 제시하는 셈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서사 구조를 따르는 듯하면서 그 내용은 예능과 다름없는, 변칙적 서사 전개다. 재밌는 대목은 실제로 대구 육상 스타디움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잔디에 들어간 죄로 관리인(김종수)에게 야단을 맡는 전영록과 선수들 앞에 갑자기 전영록의 군대 후임이었던 김 병장이 등장하고, 여러 후임들이 합세한 갑작스런 술자리가 이어지며, 그들은 군대 시절을 회상하고, 갑자기 모두 일어나 소주병에 회오리를 일으키며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고삐 풀린 서사 전개는, 갑작스레 장대높이뛰기가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바꾸는 스포츠라는 대사가 등장함으로써 의외의 방식으로 봉합된다. (왼쪽 사진)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 장대높이뛰기를 요약하는 이 영화의 모토다. 소주병을 잡고 있는 사람은 < 장례식의 멤버 >(2009)를 연출한 백승빈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얼굴에 붕대를 감고 연을 날리고 있는 전영록. 그의 모습 위로 노래 ‘도약은 패턴’이 흐른다. 이처럼 <도약선생>은 마치 아나키스트처럼 ‘영화적 서사’라는 것을 뒤흔들고, 그러면서도 정말 신기하게도 소정의 기승전결을 갖추며 전진한다. 그리고 영화는 갑작스레 “우연히도 결전의 날”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절정에 다다르고, 갑작스런 이사를 하는 우정 앞에, 원식 역시 갑작스레 대미를 장식한다. “애정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건지, 대미를 장식하고 싶어서 애정을 길어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은, 어쩌면 영화 전체의 전반적인 주객 전도 상황을 요약하는 듯하며, 역시 갑작스레 전영록이 지니고 있던 치명적 문제가 폭로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샹송 톤의 주제가 ‘도약은 패턴’이 흐르면서 영화를 닫는다. 여기서 윤성호 감독이 직접 쓴 가사는 음미할 만하다. “도약, 슬픈 믿음의 도약/약도, 약도를 들고 도착/도착, 제 시간에 도착/아아 그러나 나는 성도착/애착, 가쁜 착오들의 고착”으로 시작되는 가사는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렇게 마무리된다. “패턴, 자기만의 패턴/아니 어쩌면 자기 기만의 패턴/유턴, 너를 목격하고 유턴/아니 어쩌면 너에게로 돌아가는 P턴/그렇게 나는 아직 인턴, 너에게 훌쩍/뛰었다 착지하는 나는 영원한 인턴/랜턴, 너는 나를 비추는 랜턴/윈스턴, 피아노는 역시 조지 윈스턴/볼턴, 이청용이 있는 볼턴/워싱턴, 오바마가 사는 워싱턴.” 한국영화의 삽입곡 중, 이토록 중독성 있는 라임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격조 있는 대미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 사이비 >가 2013년 11월 21일 개봉하며 전국에 < 돼지의 왕 > 이후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사회고발’, ‘리얼리티 잔혹 스릴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쎈’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그의 단편 < 지옥 > 시리즈에서부터 예고되었다. 주제에 대한 끈질긴 일관성으로 감독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기존 한국애니메이션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 색다른 느낌이랄까? 이러한 느낌은 < 돼지의 왕 > 때 아쉬웠던 작품의 미술적, 애니메이션적 완성도가 많이 보강된 점과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한 연출적 완성도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동작이 뻣뻣하고 표정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지 못하는 기법상의 문제가 눈에 거슬렸지만 저예산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돼지의 왕 >이 20개 관 내외였던 것이 비하면 < 사이비 >는 New의 투자배급으로 개봉관이 80개 관으로 늘어났으며, 그에 힘입어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관객 2만을 돌파했다. 3억 5천 정도의 제작비와 2억 정도의 마케팅비(영진위 개봉작 지원 포함)를 모두 다 합친다 해도 5억 내외로, 평균 제작비만 30억 내외의 기존 상업 작품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낙관적인 평가는 아직 금물이다. 연 감독의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마니아층마저 비판적인 목소리를 서슴지 않는 적극적인 소수가 지지하는 영화이기에 초기 관객유입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식적인 예상 성적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르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답답한 현실의 벽은 조금씩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 사이비 >는 이미 국내 개봉 전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해 10월 20일 폐막한 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51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11편의 경쟁작과 겨루어 < 치팅 >(미국, 빌 플림튼)과 공동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제86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예비후보로 선정되는가 하면 최근엔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제17회 홀랜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해외의 반응과 평가가 오히려 더 뜨거운 것 같다. < 돼지의 왕 >이 덜 정리된 듯한 스토리와 극 구성이라면 < 사이비 >는 보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극 구성임에도 힘이 넘쳐났다.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주제의식과 주인공 캐릭터인 김민철( 양익준 )의 쎈 캐릭터가 돋보였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뼈가 사무치는 사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적 현실을 질리게 만든다. 상대역 최경석 장로( 권해효 )의 평범한 마스크 속의 전형적 죄질 나뿐 사기꾼 또한 영화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캐릭터다. 여기에 한배를 타게 된 젊고 매력적인 성철우 목사( 오정세 )의 막판 파국은 신의 전도자 이전에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들어선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김민철의 딸 김연선( 박희본 )은 포악무도한 가부장의 전형인 아버지의 피를 뼛속까지 거부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캐릭터다. 그 밖에도 무능하기 그지없는 공권력과 무지하고 허황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은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인 인물들로 설정된 것 같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만 종교가 아닌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파헤침을 통해 결국 도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참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사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를 김민철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김민철의 토굴 속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은 인간적 한계와 본질에 대한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선문답과 같은 것이리라. 이러한 연 감독의 저예산 속도전을 통한 성공전략은 일찍이 세계 어느 스튜디오에서도 시도된바 없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시장기반이 좁고 허약한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적은 예산은 스튜디오 규모의 최소화, 빠른 제작기간, 제작기술 효율성을 극대화, 지원사업의 적극 활용, 국제적 영화 무대의 공략이라는 전략 하에 산학협력을 통한 신진인력을 활용한 디지털제작시스템의 적극 활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이후 얼마 안 돼서 벌써 세 번째 장편 프리프로덕션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전해 듣고 연상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속도전에 혀를 내둘렀다. 차기 작품은 < 서울역 >이라는 장편으로 공포의 비판적 은유로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지는 야심 찬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