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장미
- 감독
- 박진영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인권, 정상훈, 손담비, 김성철, 박철민, 이규복, 김중희, 강인찬, 송시연, 윤서인, 신현준, 탁재훈, 허가윤, 안준태, 정종훈, 이승은, 정준현, 김선예, 김정남, 원근자, 김대근, 김도현, 배경남, 김수경, 송예진, 서지은, 현지호, 하수진, 김윤용, 남기주, 문득산, 김예진, 황주리, 이윤승, 최재원, 옥주리, 이종수, 임용순, 유인혜, 이정우, 오기덕, 이수정, 장수길, 김태형
남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특수 집단, 학교와 군대. 폭력과 권력으로 대변되는 주류 남성성은 이 폐쇄적 남성공간을 통해 획득되고 구성된다. 말하자면 남자 고등학교는 ‘예비 남성’인 소년들의 병영체험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곳은 의리와 우정으로 대변되는 남성 결합의 공동체인 동시에 숭배, 질투, 분노의 감정이 오가는 잔인한 결투의 장이다. 왕성한 발육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의식상태는 잔혹한 공격성향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른바 왕따(집단따돌림) 현상은 그러한 정념의 발화일 것이다. 차이에 대한 이질감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그저 재미있으므로 강자는 약자를 괴롭힌다. 이 풋내기 수컷 문화로 점철된 남고에 마선과 마택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우팅 당한 마선은 급우들 사이에서 ‘호모새끼’로 낙인 찍혀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같은 반의 마택은 그에게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선듯 마선의 편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얼굴 가득 여드름 꽃이 핀 두 인물은 배우가 아닌 실제 고등학생이다. 반의 아이들은 마선을 향해 “호모새끼”, “더러워, 역겨워”, “진짜 저 새끼 너 애인이야?” 등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마초적 대사들을 시종일관 쏟아내는데, 그것이 뻔한 설정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그 또래의 문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또래의 비전문 배우로 캐스팅했기 때문이리라. 한편, 둘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으니 바로 음악이다. 마선은 드럼, 마택은 베이스를 연주한다.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두 사람은 나란히 교내 밴드부에 합격하게 되고, 밤새 연습을 하면서 미묘한 감정을 쌓아간다. 둘은 말이 아닌 음악의 언어로 교감하기 시작한다. 밴드 음악에서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하고 받혀주는 드럼과 베이스의 긴밀한 관계만큼이나 이 둘의 합주는 찹쌀떡 궁합을 보여준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이들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동물 왕국의 아이들은 둘을 연인으로 간주하여 공개재판을 연다. 마택은 자신마저 따돌림을 당할 상황에 놓이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선에게 배반의 장미를 던진다. “김마선, 니 애인한테 가서 똥구멍이나 핥아!” 영화는 학교 내 남성 동성애자의 현실을 다루기는 하지만, 성적지향에 따른 차이보다는 집단 괴롭힘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호모포비아라는 특정한 소재를 토대로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왕따 현상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마택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가난, 외모, 장애, 성적 등으로 치환하여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이유들은 급우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겠지만, 동성애자란 정체성은 혐오와 경멸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일 듯이다. 이같은 경계의 불확실성은 둘의 관계와 정체성도 해당된다.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마선이 동성애자인지 아니면 단순 루머에 의한 따돌림의 피해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스스로 긍정도 부정도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선을 향한 마택의 감정이 약자에 대한 연민인지, 혹은 음악적 연대감을 나누는 우정인지 모호하다. 심지어 마택 역시 클로짓 게이로서 마선을 향한 묘한 애정을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가 마선을 특별히 신경 쓴다는 것 외에는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의 모호성은 영화의 단점이기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흔히 우리가 확연하게 선을 긋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란 것이 실상 불명확하고, 또한 남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특수한 차별과 폭력의 문화를 보편적인 따돌림 현상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자면 자칫 영화가 평범하게 설명되는 듯하다. 분명 < Bomb! Bomb! Bomb! >은 관습적인 내러티브를 거부한 채 실험적인 영화를 제작해온 쌍둥이 감독 김곡 , 김선 의 이전 영화와는 달리 친절한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그러나 비타협창작집단 곡사의 인장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드러난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물원’의 제물이 된 마선은 홀로 책상에 앉아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소위 ‘동물원’이라 불리는 이 놀이는 교실에 왕따 한명을 가둬넣고 동물 취급을 하는 집단따돌림의 한 종류이다. 이 잔혹한 놀이는 광기에 사로잡힌 수컷집단에 의한 희생양의 정신적 화형식이다. 창문을 두드리며 광분하는 아이들을 비집고 이내 마택이 나타난다. 그는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교실문을 열고 마선에게 다가간다. 동물원의 동물로 만난 마선과 마택. 이때 침묵을 지키던 마선이 말한다. "마택아, 쟤들 다 죽여버릴까?" 그리고 정말 음악과 함께 모두를 죽여 버린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마지막 두 주인공이 선사하는 전복의 쾌감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 제의를 보며 분노에 휩싸여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 교실을 폭파 시키고 싶은 기분에 휩싸일 때, 카운트다운하듯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Bomb! Bomb! Bomb!)하며 안과 밖은 역전된다. 광분하던 창밖의 아이들은 마선과 마택의 연주에 열광하는 군중으로 변하고, 우리의 분노와 슬픔은 흥분과 전율로 뒤바뀐다. 윗옷을 벗은 채 그들만의 상상적 공간 속에서 발광하듯 합주하는 마선과 마택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폭발력있는 오르가즘을 발휘한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한 세계의 전복. 모든 아름다운 영화가 그렇하듯 < Bomb! Bomb! Bomb! >은 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PS: < Bomb! Bomb! Bomb! >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시선 시리즈 중 < 세 번째 시선 >(2006)에 포함된 작품이다. 시선 시리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로, 2003년 < 여섯 개의 시선 >에서 시작돼 박찬욱 , 류승완 , 임순례 , 장진 , 김태용 등 총 52명의 쟁쟁한 한국 영화감독들이 참여했다. 알려진 바로는 2015년 정지우 감독의 < 4등 >을 끝으로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여 잠정적 중단 되었다고 한다. 이 훌륭한 기획이 올해는 부활할 수 있길 바라본다.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