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스텔라
- 감독
- 백승기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손이용, 강소연, 정광우, 권수진, 박채은, 조근직, 서현민, 신예주, 변동욱, 김태연, 민지혁, 이태린, 박도연, 권동원, 박은혜, 탁재형, 송진석, 김경영, 이지규, 주용욱, 이민주, 박주현, 문희정, 백승희, 남호성, 남서현, 백승기
최근 OTT 드라마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1)와 JTBC의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의 한 에피소드인 <미지의 세계 시즌투에피원>(2022)와 제작자이자 연출자로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 말이야 바른 말이지 >(2022) 등으로 부쩍 바빠 보이지만, 윤성호 감독의 다산성은 동시대 그 어떤 크리에이터에 뒤지지 않는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단편영화로 시작한 그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성 가득 한 작품을 거쳐 장편영화를 경유한 후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개척하더니 지상파와 케이블과 OTT에 이르렀다. 20여 년 동안 20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과 15편의 드라마를 만든 숨가쁜 시간! 여기서 쉼터 같은 작품이 하나 있다면, 바로 < 도약선생 >(2011)이다. 이 자유분방한 영화는 놀랍게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아리랑TV가 제공하는 공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의 도시를 알리기 위한 시리즈 중 한 편이었다. 윤성호 감독은 대구를 배경으로 <도약선생>을 만들었고, 윤태용 감독은 서울을 배경으로 < 서울 >을, 배창호 감독은 제주에서 < 여행 >을, 김성호 감독은 부산에서 < 그녀에게 >를, 전계수 감독은 춘천에서 < 뭘 또 그렇게까지 >를, 진광교 감독은 여수에서 < 려수 >를, 문승욱 감독은 인천에서 < 시티 오브 크레인 >을 연출했다. 65분이라는 애매한 러닝타임을 지닌, 스포츠 예능을 풍자하고 있는 건지 스포츠 영화를 조금 독특하게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이 영화는 20세기까진 한국영화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취향의 B 무비였다.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만든 단편 < 졸업영화 >(2006)로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을 수상하고 첫 장편 < 은하해방전선 >(2007)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던 윤성호 감독은 이후 단편으론 ‘두근두근’ 시리즈를, 웹드라마로는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2010)를 내놓으며 왕성한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이때 제안 하나를 받는다. 아리랑 TV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시리즈는 각 도시를 배경으로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프로젝트였다. 그의 도시는 순천. 윤성호 감독은 순천 송광사에 미국의 흑인 래퍼가 힐링 하러 온 이야기인 <소울>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때 갑자기 제작사에서 도시를 바꾸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에서 영화를 찍으면 제작 지원과 현물 협찬이 들어온다는 제안이었고, 윤성호 감독은 받아들인다. 처음 기획한 제목은 ‘육상소녀’였다. 의도는 진지했다. 육상을 빙자해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원래 들어오기로 한 제작비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래서 장면들을 빼기 시작했고, 몇몇 장면들은 즉흥적인 예능처럼 찍었다. 엔딩에서 영화를 황급하게 닫는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고, 러닝타임은 한 시간을 조금 넘기는 65분이 되었다. 제목은 <도약선생>. 주인공은 윤성호의 페르소나인 박혁권, 당시 웹드라마로 인연을 맺은 걸그룹 밀크 출신의 박재영(본명 박희본), 그리고 처음 함께 작업하는 나수윤이었다. 우정 역의 이우정과 원식 역의 나수윤. 이우정은 윤성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은하해방전선>부터 시작해 총 10편의 윤성호 감독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다. 2008년부터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2020년엔 첫 장편 < 최선의 삶 >을 내놓았다. 나수윤은 <도약선생>에서 윤성호 감독과 처음 만나, 이후 여러 편의 웹드라마에서 함께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동성 친구인 우정(이우정)과 원식(나수윤). 남친이 생긴 우정은 대구에서 서울로 떠나게 되고, 원식은 매달린다. 우정은 원식에게 “뭔가를 보여 줘. 크고 높고 늠름한 걸”이라고 말하고, 원식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영록 코치(박혁권)에게 장대높이뛰기를 배운다. 여기에 재영(박재영)이 합류하고, 그들은 다양한 트레이닝을 통해 조금씩 도약한다. <도약선생>은 윤성호 감독의 단편과 웹드라마를 꾸준히 ‘복용’해온 관객에겐 익숙하지만, 그의 영화 문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꽤 난해한 도전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낯선 가장 큰 이유는 ‘생뚱맞음’이다. 이것은 윤성호 감독의 클리셰이자 유머 감각인데, 그 핵심은 ‘서사의 실험’이다. 파괴까지는 아니지만, 윤성호의 영화는 ‘일반적인’ 극영화의 구성과 사뭇 다르다. 느슨한 챕터 구성인 <도약선생>은 한 국면이 넘어갈 때마다, “원식, 불심검문에 걸리다” “코치님은 채식주의다”라는 식으로 쨍한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흥미로운 건, 내레이션의 화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다중 시점 서사는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론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걸 교란시킨다. 여러 명의 화자들은 때론 장면을 멈추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영화라는 장치’를 드러내는 건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전반부를 대표하는 방식이었다. (왼쪽 사진) 윤성호 감독의 작품엔 종종 동료 감독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육상 체험장의 사회자는 최근 < 잔고 : 분노의 적자 >를 내놓은 한국 B 무비의 스페셜리스트 백승기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도약선생>은 배우 김종수의 초기작 중 한 편이다. 그는 대구스타디움 관리인으로 출연한다. 원래 썼던 시나리오가 어떤 완결성을 지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축약’된 <도약선생>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는, 툭툭 끊기고 난데없으며 즉흥적인 톤이 주는 묘한 아우라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실제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의 기록과 연습 방식과는 상이함”을 경고했듯, <도약선생>에서 전영록 코치(내내 가수 전영록의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오는)의 트레이닝 방법은 독특하다. 기본적인 러닝에서 시작해 요가를 경유해 평행봉과 점핑을 거쳐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시 쓰기 수업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순전히 우발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이 과정을 장대높이뛰기를 위한 트레이닝 커리큘럼으로 제시하는 셈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서사 구조를 따르는 듯하면서 그 내용은 예능과 다름없는, 변칙적 서사 전개다. 재밌는 대목은 실제로 대구 육상 스타디움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잔디에 들어간 죄로 관리인(김종수)에게 야단을 맡는 전영록과 선수들 앞에 갑자기 전영록의 군대 후임이었던 김 병장이 등장하고, 여러 후임들이 합세한 갑작스런 술자리가 이어지며, 그들은 군대 시절을 회상하고, 갑자기 모두 일어나 소주병에 회오리를 일으키며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고삐 풀린 서사 전개는, 갑작스레 장대높이뛰기가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바꾸는 스포츠라는 대사가 등장함으로써 의외의 방식으로 봉합된다. (왼쪽 사진)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 장대높이뛰기를 요약하는 이 영화의 모토다. 소주병을 잡고 있는 사람은 < 장례식의 멤버 >(2009)를 연출한 백승빈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얼굴에 붕대를 감고 연을 날리고 있는 전영록. 그의 모습 위로 노래 ‘도약은 패턴’이 흐른다. 이처럼 <도약선생>은 마치 아나키스트처럼 ‘영화적 서사’라는 것을 뒤흔들고, 그러면서도 정말 신기하게도 소정의 기승전결을 갖추며 전진한다. 그리고 영화는 갑작스레 “우연히도 결전의 날”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절정에 다다르고, 갑작스런 이사를 하는 우정 앞에, 원식 역시 갑작스레 대미를 장식한다. “애정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건지, 대미를 장식하고 싶어서 애정을 길어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은, 어쩌면 영화 전체의 전반적인 주객 전도 상황을 요약하는 듯하며, 역시 갑작스레 전영록이 지니고 있던 치명적 문제가 폭로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샹송 톤의 주제가 ‘도약은 패턴’이 흐르면서 영화를 닫는다. 여기서 윤성호 감독이 직접 쓴 가사는 음미할 만하다. “도약, 슬픈 믿음의 도약/약도, 약도를 들고 도착/도착, 제 시간에 도착/아아 그러나 나는 성도착/애착, 가쁜 착오들의 고착”으로 시작되는 가사는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렇게 마무리된다. “패턴, 자기만의 패턴/아니 어쩌면 자기 기만의 패턴/유턴, 너를 목격하고 유턴/아니 어쩌면 너에게로 돌아가는 P턴/그렇게 나는 아직 인턴, 너에게 훌쩍/뛰었다 착지하는 나는 영원한 인턴/랜턴, 너는 나를 비추는 랜턴/윈스턴, 피아노는 역시 조지 윈스턴/볼턴, 이청용이 있는 볼턴/워싱턴, 오바마가 사는 워싱턴.” 한국영화의 삽입곡 중, 이토록 중독성 있는 라임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격조 있는 대미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인천, 원준( 백승기 )은 동네 대소사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맘씨 좋은 청년이지만 정작 본인은 ‘서른 살까지 한 번도 못해봤다’는 성적(性的)열패감으로 고민이 많다. 그 콤플렉스의 여파인지 아직 변변한 직업도 없는 원준, 비슷한 처지에 틱장애를 앓는 절친 영진( 성충경 )과 서로 ‘호구’라 농짓거리하며 소일하는 나날의 연속이던 그 앞에 정체불명의 생명공학 박사( 조한철 )가 나타난다. 박사가 발명한 마성의 아바타( 손이용 )에 원준의 의식을 탈착식 USB처럼 오가게 해주겠다는 희대의 제안. 실랑이 끝에 생체실험에 동참한 원준은 정말 그 효험을 누리기 시작한다. 아바타의 탈을 쓴 원준의 고만고만한 픽업에 이성들이 홀린 듯 넘어오는 인생 대반전. 그렇게 누리던 뒤늦은 향락은 동네 북카페에서 일하는 지나(박지나)를 만나며 알맞게 스탑, 생애 최초로 누군가에 대한 순정을 호구 취급 받지 않고 키워가는 호시절이 시작되려는 순간, 존재냐 의식이냐 양자택일하란 뜻밖의 통첩이 떨어지고... 이 희한하게 친근한 이야기의 연출과 주연을 맡은 백승기 감독은 실제로 인천 배다리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정든 아이콘들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고향에서 영진 역의 성충경과 함께 미술교사를 하고 문화축제를 이끄는 한편 ‘꾸러기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자칭타칭 C급 영화제작소의 운영에 열정을 쏟아왔고 (이들의 자족적인 전작 중에는 캠코더를 개조해 3D효과를 재현한 <아바타의 눈물> 등 어마어마한 패러디물이 많다. 동네 상영회에는 손수 셀로판지로 제작한 3D안경을 돌렸다는 후문) 마침내 부천영화제 장편부문에 < 숫호구 >를 올렸다. 전문인력 아닌 친목을 기반으로 한 무리들이 만들어낸 영화이니만큼 단점도 뚜렷하다. 촬영은 거칠고 편집은 서툴다. 런닝타임은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비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살짝 아쉽다. 여성 캐릭터들은 대상으로 호명된 것 외엔 별다른 입체감이 없으며, 대화를 살리기 위해 동원된 육두문자는 극의 필요에 비해 과잉이다. 그런데 그 아쉬운 투입요소들이 어우러져 ‘최선을 다해 막 만든’ 영화의 개성을 웅변한다. 그러니까 핸디캡이 오히려 관전 포인트가 되는 지점들. 가령 ‘마성’이어야할 아바타의 외모가 생각보다 아쉽지만 수줍은 호남을 섭외한 후 그 개성을 밀고 가는 우직함이 또 매력이다. 그밖에 아쉬운 동시녹음을 메꾸느라 반창고처럼 삽입된 더빙의 귀여운 이물감, 감당 못할 롱테이크를 뒤늦게 점프컷으로 만회하느라 생긴 운율 등등. 아이러니 하나 더. 주인공이 자조하듯 읊어대는 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지만 오히려 무성영화적인 순간에 감독의 재능이 반짝인다. 한껏 부푼 마음을 대변하듯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던 폭죽이 동행의 뜻밖의 말을 듣자마자 시든 소변 줄기마냥 하강하는 장면이라든지. 아바타의 몸을 빌린 주인공이 연인에게 “나를 사랑해요? 정말 나를 사랑해요?” 묻곤 “예, 사랑해요” 라는 대답에 통곡하듯 제 가슴만 두드리는 (그 `나`는 내가 아니기에) 역설까지. 타인에 몸을 의탁한 주인공과 달리 이 `꾸러기`들은 지역공동체의 아쉬운 쌩얼만으로 영화를 직조했고 (이것은 왜 독립영화가 아니란 말인가) 이제 막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견적과 경험의 한계를 긍정한 채 그 자구책을 고민하는 예술가에게 사람들은 반응하는 법. 꾸러기여, 영원히 꾸러기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