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기획 - 베이비붐 세대, 1500만명의 출발
- 감독
- 김새별, 토요다 료스케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김혜영, 구사나기 쓰요시(초난강)
8, 90년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가 IMF로 버블이 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부모는 잠실의 아파트에서 밀려나 옆 동네 월세 빌라에 살면서도 부동산 버블 시대에 대한 향수와 인생 역전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를 지켜보는 감독의 카메라는 그들의 부동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뒤쫓는다.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건설과 부동산 열기는 그대로 베이비 붐 세대의 욕망이 되었고, 베이비 붐 세대인 감독의 부모 역시 화학 공장에서 일하다 집 장사에 눈을 떠 시대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건설과 개발, ‘하면 된다’로 요약되는 시대는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시대에 자리를 내줬고, 그렇게 바뀐 시대의 수레바퀴 아래서 감독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 민중들이 깔려 죽었다. 이 영화는 게임에서 언제나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바로 그 ‘개미’들에 대한 이야기다. < 버블 패밀리 >의 감독은 부동산 호황기에 ‘집 장사’를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선 부모 아래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외동딸이다. 그 딸이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씁쓸한 경제적 몰락 위에 서 있는 부모님의 오늘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여러 갈래 안에서도 가족 다큐는 한국적 가족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상당히 껄끄러운 작업이다. 또한 가족의 내밀한 사연을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기에 복잡한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 다큐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은 부모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촬영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끝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미움이든 포용이든 말이다. 그래야만 갈등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객관적인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조금 이상하다. 부모의 가장 추레하고 비참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모를 의식하고 마음 쓰는 감독이 보인다. 허물어져 가는 살림살이에도 끝까지 부동산 한 방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를, 때론 어이없는 헛웃음으로 대하다가도 곧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기도 한다. 평가하고 해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가 결국은 그 과정에서 부모의 삶의 궤적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경우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 엄마가 빚까지 져가며 딸의 이름으로 사둔 임야를 바라보며 감독은 중얼거린다. “이 땅 때문에 빚을 져야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만 같다.” 감독 자신 역시 부모로부터 환경과 습성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을 그래서 스스로도 자기 영화의 대상인 부모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씁쓸하게 인정하는 창작자의 태도에 뭔가 신뢰가 갔다면 이상한 얘기인 걸까. 이 영화는 감독의 가족사를 통해 근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개입해 들어온 자본주의의 문제 즉 지정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한국의 중산층이 87년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에서부터 90년대 소비 자유주의시대, 97년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어떻게 비상하다 추락했는지를, 우리는 부동산의 몰락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정보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미들은 언제라도 치명타를 맞고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영화는 증언한다. 부동산 몰락이 베이비 붐 세대 생애사의 한 챕터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생애사에는 또 다른 형태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폴 지아마티가 그 특유의 권태로움을 가득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로 한 남자와 거의 장난전화로 추정되는 통화를 하고 있다. 한밤중인데 남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자기 와이프를 바꿔 달라고 하다니. 이제 당신 와이프가 아니라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왜 누드사진을 나에게 보냈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이 남자, 척 보기에 괴팍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캐릭터다. 아내는 없고, 딸과는 떨어져 살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자신의 옛 스캔들을 팔아먹는 책을 썼다. 그 스캔들이라는 건 바로 주인공 자신이 오랜 옛날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폴 지아마티가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바니. 이 영화는 바니의 입장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이야기다. 한국 개봉제는 < 세 번째 사랑 >이라는, 뭔가 같은 제목의 영화가 한 30편쯤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의 타이틀이지만 원제는 <바니스 버전 Barney’s Version>이었다. 영화는 훌쩍 1960년대로 돌아간다. 바니는 유럽에서 소설을 쓰는 친구, 술과 담배에 쩔어 있는 여자친구, 그 밖에 캐릭터 이름이 크레딧에 등장하지 않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거의 무위도식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임신을 했고 바니는 곧바로 결혼을 한다. 어딘가 탐탁지 않았던 결혼 생활은 아내가 사산을 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내가 가졌던 아이는 흑인 친구의 아이였던 것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던 아내는 결국 자살하고 바니의 첫 번째 결혼은 그렇게 끝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북미식의 추억 팔이 영화다. 1960년대 히피들이 가장 핫 한 세대였던 시절, 방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일로 취급되던 그 시대를 유럽에서 보냈던 추억담 속에는 베이비 붐 세대의 리버럴함, 예술 지상주의가 지나쳐 예술병으로 발전해 버린 그 세대의 예술관 등이 스쳐지나 듯 때로 독한 농담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영화는 곧바로 1970년대 미디어의 고성장 시대로 옮겨간다. 집시처럼 살던 바니는 몬트리올로 가서 삼촌이 소개한 TV 프로덕션 일을 시작한다. 유대인인 바니의 가족은 자신들의 이스라엘 인맥을 이용해 회사를 급성장시킨다. 그런 가운데 바니는 어느 부잣집 딸을 만나 두 번째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고약한 농담을 즐기는 아버지가 사돈과 잘 통하지 않는 약간의 장애 요소가 있지만 유럽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도 모조리 피로연장으로 찾아와 흥겨운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바니는 이번 결혼도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다. 물론 완벽한 결혼이란 없고 누구나 막연하게나마 결혼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이 두 번째 결혼에서는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완벽한 여인을 만나버린 것이다. 술에 취한 채로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바니는 터벅터벅 걸어가 아름다운 여인 미리엄과 인사를 나눈다. 이 여자는 다르다. 시가를 피운다고 핀잔만 줄 아는 대학원생 아내에 비해 이 여자는 몬테크리스토라는 시가의 별명과 그 사연까지도 꿰고 있다. 아이스하키광인 바니는 결정적으로 미리엄이 남긴 메모 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몬트리올이 역전승 했어요”라는 메모.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한 순간 아내가 “나도 그래”라며 빰에 입을 맞춘다. 바니의 사랑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는데. 피로연이 끝나자 바니는 비를 뚫고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미리엄을 찾아 그 앞에 앉는다. 다짜고짜 “우리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미리엄은 기겁한다. “우리는 방금 만났을 뿐, 그것도 당신의 결혼식장에서”라고 말한다. 기차표도 끊지 않은 관계로 결국 내리게 되지만 바니는 소년이라도 된 듯 기차를 따라 달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 세 번째 사랑 >은 때로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예측 불가능하기도 한 방향으로 계속 플롯이 트위스트 된다. 어딘가 장황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알고 보니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모데카이 리클러의 동명 소설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는데, 이 영화는 그 설정이 1막을 훨씬 지나고 나서야 등장한다. 폴 지아마티는 그 특유의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그러나 어쨌든 나이 들어 보이는 인상으로 젊은 시절로부터 노년에 이르는 40여년간의 바니를 연기했다. 결국 2011년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기 귀신들이 몇 등장하는데 일단 그 고약한 농담을 일삼는 바니의 아버지는 더스틴 호프만이다. 바니의 두 번째 아내는 미니 드라이버, 그리고 바니를 사로잡는 지성미 넘치는 미녀 미리엄은 로자먼드 파이크다. 은근히 호화 캐스팅이다. 1970년대의 바니는 ‘천하에 쓸모없는 프로덕션’이라는 겸손이 지나친 이름을 가진 자신의 회사에서 척 보기에 이미 3류인 드라마를 제작하는 등 직업적으로 그리 만족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매주 뉴욕에 살고 있는 미리엄에게 선물과 꽃을 보낸다. 미리엄은 제발 이러지 말라며 전화를 하지만 바니는 누구의 말을 귀담아 듣는 캐릭터가 아니다. ‘위대한 생각은 언제나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돌직구 애정 고백을 일방적으로 계속할 뿐이다. 그러니 어디 결혼 생활이라는 게 제대로 되겠는가. 하루종일 잔소리를 해 대는 아내를 별장에 두고 바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거기서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한다. 전 재산을 다 털리더라도 이혼하고 필생의 사랑인 미리엄에게 가겠다고. 그리고 별장으로 돌아오자 대단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부적절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사랑, 아니 두 번째 결혼은 정리가 되고 이 영화의 제목인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되는데 영화는 사실 지금부터 진짜 볼만하다. 여기까지는 떡밥만 깔아놓은 셈이다. 이 영화는 40대 이상을 위한 영화다. 단언할 수 있다. 결혼도 해 본 사람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결혼과 사랑의 차이점을 매우 디테일하고 세심한 감정으로 다룬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잊혀지 듯 사랑도 서서히 지워진다. 그리고 사랑을 대체하는 다른 감정들이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 사랑을 대체하는 다른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남자의 인생 역정을 비연대기 순으로 셔플하면서 스릴러적 장치도 이용하고, 나름 반전 아닌 반전도 있는데 한국 관객들에게는 제법 외면당했다. 로자먼드 파이크가 < 나를 찾아줘 >를 찍기 전이었기 때문일까. 감독은 리처드 J 루이스. 어디서 많이 듣던/보던 이름이라면 아마도 미드 CSI 시리즈 때문일 것이다. 여러 편 감독했고 여러 편 프로듀싱 했다. 주인공 바니와 비슷한 직업인데 아마도 이 영화는 그런 감독의 자아실현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폴 지아마티 때문일까 알렉산더 패인의 영화 같은 느낌도 좀 드는데 그만큼 치열하게 파고드는 영화는 아니다. 잔잔한 듯 시끄럽고 평이한 듯 독특한 영화.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만 보고 있어도 2시간 14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은 안락하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