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구
- 감독
- 형슬우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서현우, 김이정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 지구를 지켜라! >는 외계인이라는 소재와 병구와 강 사장의 대립을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폭로합니다. 저녁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고 말하자, 장준환 감독은 “맞다. 사실 외계인 같은 덴 별 관심도 없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기도 했죠. 추 형사가 벌떼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중심으로, 현장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속보로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태프들과는 영화의 디테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데뷔 감독의 열정과 꼼꼼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죠. < 복수는 나의 것 >(2001) < 서프라이즈 >(2002)에 이어 신하균이 선택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병구는 외딴 곳에 홀로 살며 외계인의 존재를 추적하는 캐릭터죠. 내성적이지만 에너지를 내뿜을 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인데요, 신하균은 자신과 병구 사이에 꽤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기의 감정적 밀도가 높아서 한 컷 안에서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줘야 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하더군요. 이 날 촬영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신하균이 아니라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영화계에 막 얼굴을 알리는 단계였는데요, 곽경택 감독의 < 친구 >(2001)에서 유오성 의 얼굴에 지긋이 칼을 대던 조폭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였죠. 장준환 감독 현장에서 장준환 감독은 조용하면서도 섬세히 요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가 병구 역에 신하균을 떠올린 건 시나리오를 마칠 즈음인데요, 어느 잡지에 실린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보고 병구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네요. 짙은 노란색 머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염색한 거라고 합니다. 숙소에서 심심해서 그냥 한 번 해봤다는군요. 홍경표 촬영감독 최근엔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으로, 그리고 < 곡성 >(2016)이나 < 설국열차 >(2013), 더 거슬러 올라가면 < 마더 >(2009)와 이명세 감독의 < M >(2007) 그리고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등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홍경표 촬영감독. 그는 스태프 중 가장 연장자였지만 가장 활기에 차 보였습니다. 홍 감독의 촬영 플랜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카메라워크와 그린 톤이었는데요, 궁극적 목표는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봉장 위엔 병구의 집이 있습니다. 공포영화에서나 만날 수 법한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죠. 이곳에서의 촬영 공개는 없었지만,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병구는 가내수공업으로 마네킨을 만들며 외계인의 존재를 주시하는 인물인데요, 그런 캐릭터가 공간에도 잘 드러납니다. 하얀 마네킨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외계인 관련 자료들, 그리고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 >(1991)과 < 미저리Misery >(1990)를 참고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을 본 후에 감독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산은 금방 어두워집니다.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현장. 촬영장에 어둠이 깔리고, 이제는 카메라를 꺼야 할 시간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한국영화는 21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 지구를 지켜라! >은 그 극단일 겁니다. SF에서 시작해 코미디와 스릴러와 로맨스까지, 이 영화는 수많은 장르의 하이브리드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뒤틀고 여기에 패러디와 날 선 풍자를 더합니다. 그리고 관객을 공격합니다.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얼마나 병들었느냐고.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 상업영화가 감히 침범하지 못했던 영역을 순식간에 돌파해버린, 당대의 컬트이자 이젠 레전드인 작품입니다. 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지구를 지켜라!>의 현장이 공개된 건 2002넌 9월이었습니다. 강원도 태백의 어느 폐광촌. S자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고, 승합차 정도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지난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죠. 양봉장에서 병구와 추 형사가 맞닥트리는 장면이었는데요, 추 형사는 결국 벌떼 공격에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산 속인지 가늠하시겠는지요. 멀리서 잡은 로케이션 풍경인데요, 노란색 점처럼 보이는게 양봉통입니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그 앞에서 추 형사와 병구의 긴장감 넘치는 만남과 대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엔 긴장감이 흐릅니다. 추 형사는 병구가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총구 앞에서 병구는 더듬거립니다. “왜 그러세요? 저…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 그냥 벌들이 배고플까봐….” 그러다가 갑자기 병구는 추 형사의 얼굴 쪽으로 꿀을 뿌리고, 이후 벌떼 공격을 받은 추 형사는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이 날 현장 공개가 조금 이례적이었던 건, 신하균의 얼굴이 내내 양봉망으로 가려 있었다는 겁니다. 이 시기 현장 공개는 일반적으로 영화를 언론과 대중 앞에 노출하는 첫 단계였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주인공의 얼굴이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신을 골랐을까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연출부 중 한 명은 추 형사의 허리에 묶은 줄을 꽉 잡고 있고, 그 뒤엔 두툼한 매트가 깔려 있습니다. 벌떼의 공격에 몸을 뒤틀던 배우는 매트 위로 풀썩 쓰러집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미뤄졌던 촬영을 빠르게 진행하느라, 이 날 거의 40컷을 촬영했는데요, 그 중 가장 중요한 컷은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은 나중에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할 벌떼들의 습격을 예상한 연기를 위해 하루 종일 몸서리쳐야 했는데요, 결국 매트 위에 쓰러졌습니다. 클로즈업 장면을 위해 얼굴에 벌을 붙이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활동력을 줄이고 침을 뽑아 공격력을 제거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방 쏘였습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게, 누구에겐 항상 벅찬 감동이겠지만 내게는 딱히 이럴 것도 그럴 것도 없는 뭐 대충 시계 침 돌아가는 걸 보다가 해가 졌구나, 해가 떴구나, 어딜 가야 되는구나, 뭘 해야 되는구나, 하는 참으로 시시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나는 왜 제육 덮밥을 먹을 걸 콩나물국밥을 먹었나, 샤워할 걸 왜 세수만 하고 말았나, 담배를 조금 적게 피웠어야 했는데, 커피를 좀 비싼 걸 살 걸 싸구려를 1kg 나 사서 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맛없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게 서럽고... 침대에 누워 이런 구질구질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인생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정말이지 깜깜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병구( 조현철 )은 주목받는 권투선수였다. 그는 ‘판소리 복싱’(!)을 기반으로 세계를 제패할 인재였다. 그럴싸하다. 격투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먹 (혹은 발)을 주고받으며 타격을 한다는 것은, 나의 리듬을 사용해 상대의 리듬을 흐트러트리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누적된 충격으로 인해 펀치-드렁크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방금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의사는 그에게 치매 판정을 내린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저도 예전엔 안 이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비호감에 답답한 사람이지만, 원래는 카리스마 있고, 신명 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친구 교환(구교환)의 흥겨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적들을 갈아 마시던 시절이 떠오르자, 병구는 다시 글러브를 끼우길 원한다. 그러나 관장(박종환)이나 민지( 이민지 )는 그런 그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거의 떼를 쓰는 병구에게, 민지는 자신과 한 판 붙어 이기면 다시 권투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훈련에 돌입하는 병구. 하지만 그의 옆엔 휘모리, 자진모리, 굿거리장단을 맞춰줄 교환이 이제 없다. “사람들 다 미안할 짓하고 사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코치님” 다른 기억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교환에 대한 미안함만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병구에게 민지는 말한다. 병구가 아직 멀쩡했을 때, 권투를 그만두고 나이트 기도를 하던 어느 날 교환은 그를 찾아와 간절히 돌아오기를 요구한다. 길거리에서 장구를 펼쳐놓고 장단 뽑아내던 교환은 비장하게 말한다. “너는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를 제패할 거야.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병구는 그런 교환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꺼지라는 말과 함께 친구이자 파트너를 내치고 결국 병구는 망가지고 말았다. 인제 와서 왜 그런 생각이 다시 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회하고 싶다. 링 위에서 말이다. < 뎀프시 롤: 참회록 >은 농담 같은 영화다. 일단 ‘판소리 복싱’이라는 것도 그렇고, 병구가 구사하는 동작들을 보면 이건 복싱이 아니라 오징어 춤을 추는 동작이 더 비슷할 지경이다.(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교환의 장구 솜씨는 영 형편없다. 그나마 민지의 잽과 스트레이트가 나름대로 각이 조금 잡혀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어쩐지 다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체육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넌지시 전한다. 미안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괴로움에 대해서, 그것 자체를 받아들이라고. 부정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기를.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으리니... 이미 우리는 죽어가고 있고 지난 것들에 사과할 방법은 없다. 참회, 그리고 다시 해 나가는 것만이 주어졌을 뿐. 영화의 마지막 부분, 병구는 민지에게 스트레이트를 제대로 맞고 다운된 상황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교환이 떠나기 직전에 해준 재미있는 이야기. “옛날에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대. 그런데 남자는 다른 여자랑 결혼했고, 여자도 다른 남자랑 결혼했대. 재밌지?” 다운된 상태에서 깨어난 병구는 긴 꿈을 꾼 거 같다고 한다. 꿈속에서 판소리 복싱 같은 걸 했던 거 같고, 관장님도 나오고, 친구도 나오고, 민지 씨도 나오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사랑하는 남자랑 여자가 있었는데... 어, 뭐더라... 아, 맞다.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대요. 농담 같던 영화가 뭔지 모를 진득한 정서로 갈아입는 순간이다. 하여튼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해는 지고, 때가 되면 침대에 눕겠지만, 아마도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 조금 덜 구질구질한 내일을 좀 그리고 싶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판소리 복싱으로 적들을 갈아 마시는 상상을 하던, 병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지 않았겠는가. 대단할 것 없이, 시시하게, 조금은 다른 기억을 쌓고 싶다. 내일부터는. P.S : 본 작품은 K’ART 미디어 콘텐츠센터에서 볼 수 있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최근에 막혀 버린 것 같다. (등록된 작품이 전부 막힌 거로 보인다.) 지금 볼 수 있는 경로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옴니버스 작품 <서울 연애>를 통해 관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