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엔젤
- 감독
- 해리 클레븐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한나 부드로, 에리나 로웬손, 마야 도리, 플뢰르 게프리에, 프랑수아 빈센텔리
짧은 여행의 기록(2) 3-1: 내 나이 42세, 이젠 오직… 위트앤시니컬이 있는 대학로는 내게 추억의 장소다. 90년대 후반, 나우누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아니면 신촌이거나. 그래서 매일 밤 채팅을 통해 우정을 쌓아가던 라이터37(나희도)과 인절미(고유림)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내게는 반갑고도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때 그곳에서 그들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 보다가, 혹은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다가… 모두 동년배니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한번쯤 마주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제 우리도 슬슬 관리해야 하는 나이인데 다들 건강은 괜찮은지…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번개’나 ‘추억여행’ 같은 걸 위해서가 아니다. 상을 (대신) 받기 위해서다. 처음 대리 수상을 부탁받았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3단계면 끝나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되는 것처럼. 1. 시상식장에 간다. 2. 상을 받는다. 3.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3단계면 끝나는 일이 맞긴 하다. 그 사이사이에 놓인 민망하고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제외한다면… 늦지 않게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동양서림으로 들어가는데, 어쩌면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책을 구경하고 있는 김정환 선생(시인, 69세)의 옆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나는 2018년에 출간된 내 책 [아무튼, 택시]에서 김정환 선생과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이렇게. …파마를 하고 며칠 뒤 김준성문학상 뒤풀이에서 김정환 시인을 만났다. 김정환은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 생계형 서평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후장사실주의 동인인 동시에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을 맡고 있는, 전에도 몇 번 선생님에게 인사드렸던 37세 금정연이라고 말했다. 젠장, 나는 자기소개가 정말 싫다. “뭐? 진짜?” 김정환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처럼 안 생겼는데.” 누군가 물었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은 어떻게 생겼는데요?” “문학에 대한 고뇌로 얼굴이 아주 썩었지. 이인성처럼. 근데 여긴 달라. 얼굴에 문학에 대한 고뇌가 전혀 보이지 않아. 훤해. 잘생겼어. 나랑 똑 닮았어.” 김정환 시인은 1954년생이다. 그리고 윌리스를 닮았다…… 몇 주 후에 문학과지성사 시상식장에서 김정환 시인을 다시 만났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미안했소……” 나는 괜찮다고,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나는 시상식장을 나서며 두 번 다시 파마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고 문학의 이름으로 맹세했다. 윌리스는 “내 나이 35세, 이젠 오직 돈 생각뿐이다”라는 밈으로 유명한 루이 말 감독의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의 주인공이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 다음, 그 상태로 시인을 지나칠 때까지 몇 걸음 걸어간 다음에야, 고개를 들고 위트앤시니컬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며칠 전에 새로 파마한 머리가 이마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시상식장에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좋은 소식. 스무 명 남짓한 규모로 치러지는 시상식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다음은 나쁜 소식. 그중 절반이 나와는 조금 어색한 사이에 있는 ‘선생님’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시 부문 수상자인 신해욱 시인의 내가 모르는 지인들이다… 들어가자마자 오늘도 문학에 대한 고뇌로 가득해 보이는 이인성 선생(소설가, 70세)이 있어서 꾸벅 인사했다. 이인성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근데… 누구시더라? 나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후장사실주의 동인인 동시에 한때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하며 선생님과 몇 번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던 42세 금정연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금정연이라고. 그러자 이인성이 말했다. 아, 금정연씨! 어떻게 지내시나? 요즘도 맨날 글 쓰고 그러고 있나? 나는 하하 뭐 그렇죠, 대꾸하며 마음 속으로 정지돈에게 과연 상금의 몇 퍼센트를 요구하면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위: 영화 <앙드레와의 저녁식사>에 출연한 김정환 시인, 아래: 영화 < 강변호텔 >에 출연한 김정환 시인) 3-2: 복사꽃 그날 일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시간의 베일 뒤로 수치스럽고 민망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반딧불처럼 잔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태여 그걸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좋은 기억들도 있다. 그것들에 대해서라면 언젠가 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중에서) 4-1: 꿈에 악!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나, 그리고 또 나밖에는… 오스스 몸이 떨려와서 주섬주섬 이불을 찾아 몸을 덮었다. 기억은 서서히 돌아왔다. 어제는 시상식이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했다. 그리고 술을 마셨는데, 물론 그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지난 일을 모두 잊게 해준다는 취생몽사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테라, 기네스(생), 편의점에서 파는 세계맥주 몇 개… 나는 텅 빈 방 안에 멍하니 앉아 두서없이 떠오르는 간밤의 기억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복사꽃, 복사꽃 아님, 복사꽃,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복사꽃 아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젯밤의 기억인가? 어쩌면 내가 ‘한영한사’ 마지막 연재를 준비한답시고 홍상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건 아닌가? <강변호텔>과 < 소설가의 영화 >를 보며 시인으로 나오는 기주봉이 김정환 시인이랑 너무 똑같이 닮아서 영화를 보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아니 정확히 반대로, 어제 만난 김정환 시인이 <강변호텔>과 <소설가의 영화>에 나오는 기주봉과 너무 똑같이 닮아서 현실과 픽션이 뒤섞여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마지막 가설은 이내 기각되었다. 간밤에 실제로 꾸었던 꿈의 조각들이 의식 위로 불쑥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평론가 임재철과 대통령 윤석열과 영부인 김건희가 나오는 꿈이었다… 씻고 설거지 하고 어제 (대신) 받은 꽃다발 꽃병에 꽂고 나윤이랑 영상 통화했다. “아빠! 나 여기 안산 할아버지네 집에 있어!” 나윤이가 말했다. 나윤이 안산 할아버지네 집 가고 싶어했잖아, 가니까 좋아? 물으니 “응, 전에 할머니랑 아빠랑 같이 차 타고 왔잖아”라고 했다. 그래, 바로 어제… 그러다 갑자기 내일 서울 할머니네 집에 가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까 표정이 바뀌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나한테 안 물어봤잖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꼭 물어보겠다고 했는데 단단히 마음이 상한 모양인지 안 가겠다고 해서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행신에서 출발해서 광주송정으로 향하는 12시 18분 KTX-산천 417호 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나섰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 복권방에 들러 로또와 연금복권을 한 세트씩 샀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마지막으로 행신역에 왔을 때는 공사중이었는데, 공사가 끝난 지금은 제법 넓고 환해 보였다. 연휴의 첫날이라 그런지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많았다.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뛰고 말하는 아이들. 나는 나윤이를 생각했다. 아이의 눈과 코와 입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표정들을, 무언가를 설명하기 전에 몇 번이나 곱씹는 말의 처음과 거기에 동반되는 손과 발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요? 하는 질문이 절로 들었다… 물과 초코바를 사서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내 상식과는 달리 에스컬레이터가 중간에 있는 게 아니라 1호차 쪽에 있어서 18호차를 타려면 반대편 끝까지 걸어야 했다. 아마 5키로미터 정도는 걸은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미국의 철도 전쟁, 그리고 영화의 탄생에 대해 숙고했다(리베카 솔닛의 [그림자의 강]을 참고할 것). 거짓말이다. 그저 [마틴 에덴] 오프닝 시퀀스에 짧게 지나가는 기차 장면에 대해 조금 생각했을 뿐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로또와 연금 복권은 꽝이었다. 나는 대통령 꿈을 꾼 또 한 명의 복권 당첨자가 되는 대신 그냥 윤석열 대통령 꿈을 꾼 사람이 되었다. (위: 에드워드 머이브리지, ‘Railway Tracks. P.R.R. Quadruple Tracks Monmouth’ 아래: 영화 < 마틴 에덴 >의 한 장면) 4-2: 빵과 장미 김재욱이 너무 많다. < 커피프린스 1호점 >과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에 출연한 배우 김재욱, ‘안녕하세요 제니퍼에요’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코미디언 김재욱, [쇼미더머니 11] 2차 예선에서 댐핑 좋은 붐뱁을 선보이며 심사위원 올 패스를 받은 래퍼 김재욱, 바로 오늘 내가 주문한 [데이비드 댐로쉬의 세계문학 읽기]를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 김재욱… 하지만 내가 아는 김재욱은 한 명뿐이다. 90년대 중반에 나우누리에서 만나 신촌과 대학로와 홍대와 그밖의 많은 곳들을 함께 싸돌아다니던 김재욱(아이디 gokjw). 지금 우리는 광주에 있다. 김재욱과 나. 광주는 두 번째였다. 그렇지만 처음이나 다름없다. 십년 전,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축의금을 내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 광주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건 빛이 다르다는 거였다. 과연 빛의 고을이었다. 우리는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문화전당역에서 내렸다. 마침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쏟아지는 사람들, 빛들, 노랫소리들. 금남로를 건너 김재욱이 검색해서 찾은 ‘맛집’을 향했다. 월계수식당. 김재욱은 특제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삼선볶음밥을, 나는 우삼겹짬뽕을 주문했다. 없던 숙취까지 몽땅 가시는 맛이었다. 지금 내게 숙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 GV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우리는 충장로를 걸어 광주극장을 향했다.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 식당이 있던 위쪽은 조금 북적북적한, 전국 어디에나 있는 ‘로데오 거리’ 같은 느낌이었다면 광주극장이 있는 아래쪽은 의상실과 금은방 등이 있는 좀 더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광주극장과 잘 어울리는 거리라고 해야 할까. 극장 바로 옆에는 < 김군 > 포스터가 크게 붙여진 ‘소년의 서(書)’라는 이름의 서점과 ‘빵과 장미’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었다. 물론 ‘빵과 장미’라는 이름은 켄 로치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빵과 장미>는 우리나라에서 2002년 5월 24일 개봉했다. 누적관객은 444명. 그 444명 중에 나도 있었다. 2002년의 초여름, 당시 만나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맞은편의 웬디스(Wendy’s) 2층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양배추 조각과 여기저기 묻은 빨간 케찹과 애드리안 브로디의 콧등 위로 떨어지던 햇빛 같은 것들이.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정말이지 시간은 늘 없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극장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중 하나)에서 서이제 작가와 함께 [마틴 에덴] GV를 하기 위해서다. 오해하면 안 된다. 이제 와서 내가 갑자기 극장을 찬양한다면 그건 제법 우스운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을 나도 안다. 나는 유운성 평론가가 말하는 ‘빛 마니아’가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씨네필 테스트도 통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우리의 기억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고 싶다. 어떤 책의 페이지를 (다시) 펼쳤을 때 문득,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라도 종종 그것을 읽던 당시의 빛과 바람, 손에 들린 종이책의 감촉과 냄새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어떤 영화에 대한 기억은 극장과 분리할 수 없이 달라 붙어 나라는 관객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서울극장에서 본 바즈 루어만의 < 로미오와 줄리엣 >, 고등학교 시절 녹색극장에서 단체 관람했던 < 콘에어 >와 <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 이대 영화마당에서 교복을 입고 본 < 셰익스피어 인 러브 >(미성년자 관람불가), 동기들과 ‘국문학 입문’ 강의를 째고 강변 CGV에서 봤던 < 친구 >와 < 신라의 달밤 >, 군대에서 휴가 나온 기분으로 불광 CGV에서 친구와 함께 봤던 < 박쥐 >, 기타 등등… 그건 어디로도 닿지 않는 개인적인 기억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건 나의 기억이다.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말처럼, 손상되기 쉽지만 기억은 과거를 되찾으려는 욕망의 원천이다. 그리고 욕망은 우리를 살게 한다. 기억이 없이는 ‘나’라는 존재도 없다. 꼭 있어야 하는 건지는 둘째치고… 그러니까 내 말은, 광주극장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얼마 전에야 광주극장에 처음, 그것도 일 때문에 가본 사람이 하기에는 조금 머쓱한 말이긴 하지만. 이 부분을 쓰며 나는 혹시 모를 기억의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해 구글에 ‘광화문 웬디스’라고 친다. 나무위키의 ‘웬디스’ 항목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2018년 2월 17일에 올라온 클리앙 게시물이다. 제목은 이렇다: “광화문에서 웬디스 먹어봤으면 아재 인정” 어 인정… (빵과 장미, 외부와 내부) 4-3: (Unexpected) Guest Visit 그렇게 싸늘한 반응의 행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2015년 12월의 어느 날 정지돈과 함께 명동 CGV에서 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 에브리씽 윌 비 파인 > GV에 버금갈 정도였다(당시 행사 직후 SNS에 ‘올해 최악의 지브이’라는 평이 올라왔다). 관객은 40명 남짓, GV가 시작할 때는 30명 정도였고, 끝날 때는 그보다 더 적었다. 몇 명이 되었건 모두들 많은 것을 잊고 복사꽃이 좋았던 것만 기억하시기를. 그러니까 서이제 작가의 멋진 말들만… (영화 < 마틴 에덴 > 중에서, 혹은 GV를 끝낸 어느 Guest의 마음) (참고로, 그날 내가 GV에서 (하려고) 했던 말들은 여기 에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민망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마음으로 광주극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 남자의 목소리로 몇 시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6시”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6시예요, 영화는 이미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남자였다. 광주에는 이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곧 나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을 큰 소리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 같아서 그 문장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남자는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시계를 잃어버린 후로는 이따금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다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시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거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을 거요.” 그는 내가 6시라고 말한 후에야 6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고 보니 오늘 아홉 시간 동안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쉬지 않고 걸어 다녔다는 걸 알게 된 것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말이오. 왔다 갔다 한 게 아니라 곧장 앞으로만 걸어갔지. 그런데 이제 보니 원을 그리면서 걸어 다녔군. 미친 짓이지, 그렇지 않소?”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나는 자주 저 극장에 갔었다오” 하고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을 곧 잊어버렸다. 나는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느 날엔가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듯이 나도 어느 날 마지막으로 극장에 갔지. 웃지 마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오. 웃지 마시오!” 4-4: 인터내셔널의 밤 (ㄱ) 트뤼포에 앉아서 트뤼포를 마셨다. 소설가 박솔뫼가 추천한 곳이었다. 나는 언젠가 ‘박솔뫼의 맛따라 멋따라’라는 제목으로 박솔뫼가 전국 각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는 유튜브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기획은 여전히 유효하며 투자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우리의 오디오비주얼 에세이가 그런 것처럼… 다만 트뤼포는 솔뫼가 직접 가본 곳은 아니었고, 이름을 듣고 언젠가 가보겠다고 기억해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갔다. 한쪽 벽면이 DVD로 가득한 작고 아담한 느낌의 바였다. 손님도 많았다. 시그니쳐 메뉴인 트뤼포는 조금 달달한 우롱하이 같은 맛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분명 고다르라면 질색을 할 맛이라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사실이 아닌 것은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나의 다큐멘터리스트적인 본성이 발목을 잡았다. 고다르가 시가를 피우는 모습은 많이 봤다. 와인을 마시는 모습도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어디서? 나는 구글에 ‘did jean luc godard drink a lot?’이라고 검색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2002년 9월에 작성된 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였다. 제목은 ‘외로운 밤들과 장 뤽 고다르와 함께 한 술자리(Lonely nights and drinks with Jean-Luc Godard)’. 25년간 토론토 국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올해 은퇴를 선언한 스티브 그레이브스톡의 부인인 케리 허프먼이, 남편이 영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안 자신은 ‘Festival Widow’나 다름없다고 자조하며 구술한 기사였다. 그렇지만 정말 멋진 순간들이 있긴 해요. 허프먼은 말한다.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지 내부 정보들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스티브가 감독을 위해 준비한 칵테일 파티나 저녁 식사에 참석하기도 하죠. 그런 자리가 아니면 백만 년이 지나도 못 만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몇 년 전에는 장 뤽 고다르랑 같이 술을 마셨는데요. 정말이지 인상적인 사람이었어요. 모두들 그에게 푹 빠져서 자기들이 뭔가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지 뭐예요! 두 번째는 2015년 6월에 작성된 더스튜디오EXEC의 ‘장 뤽 고다르의 우유를 마십시다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알고 보니 패러디 기사였다… 상반된 분위기의 기사가 이어진다. ‘와인과 와인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낫고, 빠르게 변해가는 위스키 업계에서 누구보다 빠른 소식을 전해주는 증류주 전문지’ [위스키 애드버킷]과 함께 M. Shanken Communications에서 발간하는 ‘좋은 삶과 시가의 세계를 즐기는 데 전념하는 잡지’ [시가광Cigar Aficionado] 1997년 9/10월 호에 실린 ‘프랑스 영화의 주저하는 천재’라는 제목의 인터뷰다. 인터뷰어는 LA타임스의 스콧 크래프트.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장 뤽 고다르는 극소수의 관객이 감상하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그는 변화할 생각이 없다.” 25년 전에 이미 66세였던 고다르는 말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하고 싶다. 모든 영화 속에 있고 싶고,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고 싶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사운드를 발견한 감독 중 하나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사운드를 발견한 사람들의 슬픔도 알고 싶다. 요즘은 쫓겨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영화를 만드는 건 애플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스위스 시골에 은거하는 괴짜 예술 감독을 인터뷰 하라며 자기에게 돈을 쥐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노련한 저널리스트 크래프트는 곧이어 이렇게 쓴다. 몇 해 동안 고다르는 스위스에서 개당 20달러에 판매되는 코이바를 피워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은 나른한 끽연가다. 인터뷰를 하며 그는 열두 번도 넘게 시가에 다시 불을 붙였고, 세 시간이 지나서야 한 대를 겨우 끝냈다. 값비싼 쿠바산 시가를 피우는 게 그의 유일한 부르주아적인 약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전화를 통해 시가에 대한 그의 분명한 사랑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군요." 파리에 있는 그의 조수는 고다르가 자신의 영화 < 포에버 모차르트 > 때문에 우울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고다르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촬영 직전까지 기다리는데, 그것이 그의 습관이다… (ㄴ) 나 역시 원고를 쓰기 위해 습관처럼 마감 직전까지 기다리고, 때로는 마감이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때 담배는 도움이 된다. 나는 몇 해 전에 [담배와 영화: 혹은 나는 어떻게 흡연을 멈추고 영화를 증오하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끔은 영화를 증오하기를 깜박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흡연을 멈추기를 잠깐 멈추기도 한다. 사실 내가 담배를 끊은 건 아이가 생겨서였다. 그렇다면 오늘처럼 아이와 떨어져 밤을 보낼 때는 한 대쯤 피울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은 두 대, 어쩌면 세 대 정도는… 트뤼포를 두 잔씩 마시고 우리는 트뤼포를 나섰다. 포플레이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이사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바로 옆옆 건물이었는데, 그전에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 십 미터 정도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골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바로 직전까지는 늦은 시간의 종로 뒷골목 같은 느낌이었다면 갑자기 쿵쿵쿵! 비트가 쏟아지는 클럽, 클럽형 소주방, 혹은 대형 헌팅 포차…들이 연이어 있었다. 모두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그때야 김형수 이사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 가면 아주… 시끄럽죠, 혹자는 광주가 어떻게 이러냐고 하기도 하던데.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우리에게 물었다. 광주가 그러면 뭐,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음이 드럼 비트처럼 뿜어나오는 골목에서 우리 두 명의 늙은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금연 거리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까) 에어컨 실외기 뒤에서 담배를 피웠다. 보헴 시가 1미리. 오랜만에(어제 시상식장 뒤풀이에서도 강보원의 담배를 빌려 피우긴 했지만) 담배를 피우니 머리 끝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우리는 포플레이를 향해 올라갔다. 포플레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JBL4344 스피커와 가게를 꽉 채운 70년대 소울풍의 음악, 그리고 살 빠진 월터 화이트를 닮은 사장님을 제외하면. 사장님이 우리를 보았고, 우리도 사장님을 보았다. 잠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우리가 방해를 했나, 나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쑥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제가 이 베이스를 좋아해가지고, 조금 크게 듣고 있는데 손님이 왔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바에 앉았고, 사장님은 메뉴판을 주는 대신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베이스를 치는 건 흑인밖에 없어요. 그런 농담도 있잖아요. 신은 흑인에게 운동능력과 음악을 주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적절하진 않은 농담이지만요. 저는 아직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모르겠어요. 버드 파월이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경찰이 차를 세웠어요. 그리고 문을 열라고 하더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파월의 손을 경찰봉으로 내려친 거죠. 한 대, 두 대, 세 대… 사정없이요. 미국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망가뜨린 거예요. 단지 흑인이 차를 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그런 나라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돼? 그건 좋은 일이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파월 노래를 들으면 슬퍼요. 아무리 신나는 노래라도, 자꾸 그런 게 생각나서 여기가 너무 아파요. 아주 미치겠어요… 근데 그거 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에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김재욱이 물었다. 아시는군요! 사장님이 반색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세요? 우리는 몇 잔의 보드카 토닉을 마시고,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도 그만큼 마셨다. 크림 치즈와 누텔라를 바른 크래커를 먹었다. 소울과 재즈, R&B를 들었고 조르디 사발이 연주하는 비올의 소리를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간에 대해서, 잃어버린 꿈들과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변해버린 것들에 대해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제 아무 상관없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그때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와 스팅의 ‘셰입 오브 마이 하트’를 신청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일어나자 사장님이 계단 위쪽에 재떨이가 있으니 그곳에서 피우라고 했다. 좁은 계단 아래로 살짝 보이는 길거리는 술집 조명으로 대낮처럼 환했다. 반대로 우리 위쪽은 어두운 심연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담배를 끊은 우리 둘은 거듭해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계단 아래 빛 / 계단 위 어둠)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잔을 부탁했다. 사장님이 김재욱에게 메모장을 주고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달라고 하더니 두꺼운 책을 뒤적이며 사주를 봐주었다. 똑닮은 자식이 있다고 나오네요. 김재욱이 자식은 없다고 하자 사장님이 말했다. 만약 자식을 낳으면 똑닮은 자식이 나올 거예요… 내년에 내게 딱 맞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인연을 만난다고 나오네요. 이미 결혼을 했으면 어쩔 수 없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와우! 내년이죠? 43살부터 63살까지 20년 동안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시기네요. 영어로 골든 이어즈. 앞으로 20년 동안 전성기라는 말이에요, 무슨 일을 해도 잘 돼요. 축하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주를 보니 저도 좋네요. 다음은 내 차례였다. 사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메모장을 들여다보았다. 일종의 데자뷰가 느껴졌다. 결혼 전에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을 때 내 소득증명서를 받아본 은행 담당자의 표정이 딱 그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 한동안 언성을 높이며 통화하던 사장님이 한층 더 심각해진 얼굴로 메모장을 들여다보다가 내게 물었다. 혹시 결혼하셨어요? 네, 결혼했어요. 아! 다행이네요. 이런 사주는 결혼 안 하면 큰일나는 사주거든요.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쩐지 겁이 나서 물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여태까지는 조금 일도 잘 안 풀리고 겨우겨우 살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망하거나 잘못되지는 않아요. 저를 믿으세요. 이건 진짜에요. 그리고 자식 복이 있어요. 나중에 자식 덕을 좀 볼 거예요. 내가 너무 사랑하고 나를 무척 사랑해주는 자식이 있어요, 라는 말을 듣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와 함께 지낸 후로 눈물이 많아졌다. 그리 좋은 사주는 아닌 모양이라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손님 술을 만들어준 사장님이 다시 책을 들춰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약간 노래방 보너스 타임 같은 느낌으로. “49살부터 69살까지 전성기네요! 정말 두 분 다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가 이렇게 보는데 전성기가 지났으면 할 말도 없고 속상하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이제 잘 될 일만 남았어요. 정말 축하합니다!” 나는 월트 화이트를 닮은 사장님에게 진심으로 몇 번이나 거듭해서 감사드렸다. 동시에 마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지나치게 영화적인 경험이 아닌가? 만약 내가 통 속의 뇌라면? 어떤 미친 홍상수가 끊임없이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는 거라면…?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영화 관객인가봐… (흑백 장면: <강변호텔>, 컬러 장면: < 엽기적인 그녀 >) 0-0: 집으로 그날에 대해서라면 약간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음 날로 우리의 시계를 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침. 우리는 광주극장에서 잡아준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아침밥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기차를 타러 광주송정역으로, 김재욱은 혼자 국군광주병원 옛터로. 광명역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타고 안산으로 갔다. 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밥을 남기면 미스터 온실가스가 나오잖아.” 핑크퐁 기후변화 동요에서 온실가스의 존재를 알게 된 나윤이가 평소와 달리 밥을 싹싹 비웠다. 그러더니 박수 치는 엄마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향해 밥그릇을 들어보였다. 의기양양하게, 마치 상패라도 보여주듯이… 이어 아내가 내가 없는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한번은 나윤이가 손을 뻗어 크게 움직이면서 “해가 이렇게 떠서 여기(가장 높은 곳) 오면 아침이고 이렇게 가면 저녁이야”라고 해서 아내가 이렇게 뜨면 바로 아침이고, 가장 높은 곳에 가면 점심이고, 이렇게 가면 저녁이라고 정정해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나윤이가 아니라고 짜증내서 한참 그걸로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그래 알았어, 그럼 그렇게 생각해, 하고 넘어갔는데 한참 지나서 나윤이가 귓속말로 소곤소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가 이렇게 뜨면 아침이야…”라고, 마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는 갈릴레오처럼… (미스터 온실가스) 한동안 [뽀롱뽀롱 뽀로로]에 푹 빠져 지내던 나윤이는 [아기상어]와 [핑크퐁],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바다나무], [꼬모], [따개비 루], [엉뚱발랄 콩순이] 등을 거쳐 요즘은 [캐치! 티니핑] 시리즈에 과몰입 중이다. 차에 탈 때마다 티니핑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고, 티니핑 인형을 안고 자고, 본인은 ‘사랑해 하츄핑’ 엄마는 ‘솔직해 끄레핑’ 아빠는 ‘다정해 꾸래핑’이라고 역할을 분배해 놀기도 하며, 티니핑 게임에서 나오는 카드를 모으고, 이빨을 닦거나 밥을 먹을 때면 아빠에게 티니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티니핑 놀이동산을 선물해주지 않을까봐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으려고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정작 [캐치! 티니핑]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번인가 보여주려고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런 게 바로 본편은 보지 않고 설정과 2차만 판다는 건가. 한 번은 내가 물었다. 나윤아, 왜 티니핑 만화는 안 봐? 그러자 나윤이가 말했다. “나는 안 봐도 다 알아.” 실제로 나윤이는 [캐치! 티니핑]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노래나 스티커북이나 카드를 통해서 혹은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거 반, 스스로 지어낸 거 반. 어쩌면 지어낸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내가 프린세스 로미라고 하면 자꾸 “프린세스 로미가 아니라 롱이!”라고 고쳐주는 게 약간 짜증날 때도 있지만(‘로미’가 맞음), 안 봐도 다 안다는 나윤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거다. 나는 한때 (상업 영화라면)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와 유럽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던 사람이다. 물론 미국 영화를 제일 많이 보고 한국 영화도 적지 않게, 유럽 영화는 가물에 콩나듯 보긴 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고, 이 연재를 시작할 무렵에는 극장에는 전혀 가지 않고 1년 동안 보는 영화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와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도망친다고 해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나. 그리고 영화.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 주말 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함께 앉아 돌리는 채널 사이사이에. 어느새 씨네필로 가득해져버린 트위터 내 타임라인에.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특히 적지 않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영화책들에 가득. 내가 구독하지만 보지는 않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영화를 보는 정지돈과의 대화와 또 다른 사람들과의 스몰 토크 속에. 정말이지 영화는 어디에나 있고, 나는 내 손가락에서도, 발가락으로도, 나를 둘러싸고 있고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는 영화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람에 쓰여 있고,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정말 그렇다. 다만 내가 그것들을 보지 않을 뿐이다. 질문. 내가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영화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영화와 영화에 대한 담론, 플랫폼, 매체, 2차 컨텐츠, 기타 등등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말하고 있다. 카세티가 말하는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미세먼지나 방사능이 그런 것처럼—세상에 흘러 넘쳐서 좋든 싫든 우리는 영화의 영향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국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처럼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0-1: 잠언 영화가 꿈이라는 오래된 비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더 이상 그것이 인간의 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극장이 꾸는 꿈이다. 영화는 기계들이 꾸는 꿈이고, 사물들이 꾸는 꿈이다. 세계가 꾸는 꿈이고, 그것은 종종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0-2: 마지막 편지 친애하는 지돈씨에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제 차례의 마지막 원고를 보냅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우리의 원고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티븐 샤비로의 [탈인지], 이언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영화의 재배치’ 같은 글들을 읽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인간의 꿈이 아니라 사물들이 꾸는 꿈이라는 아이디어는 그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그건 어디로도 닿지 않은 채 공상에 더 가까운 짧은 질문의 형태로 남았을 뿐이지만요. 그때그때 떠올랐던 자잘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원고로 만들기 위해 저는 쉼없이 자르고 붙이고 버리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춤을 춰야 하는 불운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왜 이런 압박을 느낀 걸까요? 그건 아마도 ‘한국 영화’가 제 안에 있는 것들, 너무도 강렬하게 발현하고 있기에 외면할 수 없던 많은 것들을 불러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것이 기호 속에 포착해 넣은 그 무언가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매번 글을 쓰고 나면 저의 정신은 그 문장들을 들여다보고 뒤집어보고 마치 새로운 양식인 것처럼 씹고 또 곱씹어보았습니다. 글을 써 나갈수록 수많은 질문들, 끝없이 속아나는 수수께끼들을 반추하게 되었고, 깨어 있는 삶과 잠들어 있는 삶, 저의 모든 삶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이 원고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도, 이제 원고를 보내드리는 것도 아마 이러한 중압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일 겁니다. 정처 없이 떠난 여정과도 같은 이 글에는 밝혀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하기보다는 사소한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한국 영화’ 그리고 그곳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에 다가갈 수 있었기를, 그 존재가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글을, 이 책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K정연 0-3: 끝 “헤이 클로버, 캐치 티니핑 노래 틀어줘” 나윤이가 말하면 클로버는 “바이브에서 캐치, 티니핑 율동 동요 앨범을 재생할게요”라고 말하며(요즘 나윤이는 그 말을 따라 하는 데 재미 붙였다) 노래를 재생한다. 빛나는 마법을 보여줘 (캐치캐치!) 예쁜 마음을 모아 티니핑 타임 가끔 그건 내게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말이다. (구글 번역기에서 언어 설정을 잘못해서 발생한 오류, 그런데 이건 정말 오류일까?) *이 글에는 늘 그런 것처럼 다른 작품들의 인용이 있고, 대부분은 본문에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가독성이나 여타 다른 효과를 의도하고 일부러 명기하지 않은 부분은 아래와 같다. 4-3 두번째 문단의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에서 해당 장의 마지막 "웃지 마시오!"까지의 내용은 토머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김현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모자])에서 아주 약간의 수정과 함께 인용했다. 0-0 중 “정말이지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부분은 Wet Wet Wet의 노래 ‘Love Is All Around’의 가사를 조금 수정해서 인용했다. 0-2 편지라는 형식과 몇 개의 문형, 그리고 문장들은 뤽 다르덴의 [인간의 일에 대하여](조은미 옮김, 미행 펴냄)의 서문에서 빌린 것이다. 특히 “왜 이런 압박을 느낀 걸까요?”에서 마지막 문장까지는 아주 약간의 수정과 함께 그대로 인용했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우리 아빠는 최고야. 우리 아빠는 무서워하는 게 하나도 없다. 커다랗고 험상궂은 늑대도 안 무서워한다… 우리 아빠는 최고야… 고릴라만큼이나 힘이 세고, 하마만큼이나 늘 기분이 좋다. 우리 아빠는 최고야… 그리고 나를 얼마나 웃겨 주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좋다. 왜 그런지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아빠>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대다수의 영국 관객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2000년에 발표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말이다. 출간과 동시에 아이를 둔 가정의 필독서가 되었고, 이후로 매년 아버지의 날이면 아이들은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머그잔을 선물한다. (때마침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회가 지금 서울에서도 열리고 있다) 마커스 아미티지의 2014년 단편 < 우리 아빠 >도 비슷한 대사로 진행된다. “우리 아빠는 나를 학교에서 데려오고… 이발소에 함께 가기도 하지… 우리 아빠는 신문을 볼 때면 늘 불평을 늘어놓고… 금요일에는 항상 피시 앤 칩스를 먹고… 휴일에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지...” 초반만 하더라도 주인공의 아빠는 그림책 속 아빠처럼 멋지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평범한 (혹은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의) 아빠로 여겨진다. 크레용으로 그린 이미지는 그다지 그림 실력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 보이는데, 여기에 담긴 모습에도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야수파의 회화처럼 그 속에는 뭔가 거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거친 기운은 이내 핸드헬드 카메라로 급박하게 찍은 영상처럼 불안정하게 끊임없이 부유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과 동네 풍경은 왁자지껄하다. 처음엔 그저 활기 넘치는 소란스러움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빠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면서 표현은 강렬해지고, 움직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우리 아빠는 신문을 볼 때면 늘 불평을 늘어놓지… ‘빌어먹을 세상, 내 탓이 아니야’…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것들, 우리 나라에서 당장 꺼져버려’…” 소란스러운 거리의 풍경 속에 10대 또래들의 일탈이 언뜻 보이기도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방관, 방치하는 듯하며, 이주민과의 갈등이 담기기도 한다. 어쩌면 그건 그저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와중에 빚어진 후끈함의 여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주인공인 아이는 그림책의 감성을 가진 ‘순수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복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말이 꽤나 어리숙하게 들린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말을 더듬는 횟수가 잦아지고, 발음도 뭉개진다. 오프닝에서 굵은 활자로 “My” “Dad”라는 제목이 등장한 것처럼, “My” “Dad” “Says”라는 대사는 단단하고도 투박한 글꼴로 이야기 사이에 줄곧 등장한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이미지에는 차츰 균열이 생긴다. 크레용 그림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거나 프레임 이미지가 찢어지면서, 그 아래로 활자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이미지를 비집고 등장하는 활자는 신문 기사를 뜯어 붙인 입체주의의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하며, 다다의 활자 차용처럼 의미를 없애버리는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아빠에 대한 언급이 되풀이되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활자의 개입도 더 강도를 높인다.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개입하는 이 활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짐작하듯 ‘아빠가 늘 보는 신문’이 뱉어내는 표식들이다. 줄기차게 선정적이고도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옐로우 저널리즘. 아빠는 신문을 안 읽어서 거칠고 무식한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읽어서 거칠고 무식하다. 신문이 처음부터 아빠를 거칠고 무식하게 세뇌시켰다기 보다는, 아빠의 불만을 신문이 ‘이민자의 문제’로 여기도록 ‘프레임’을 짜줬다. 불안을 불만으로, 불만을 분노로, 분노를 혐오로, 그리고 증오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크레용 그림과 활자의 뒤엉킴, 반복되면서 겹치고 뭉개지는 내레이션이 카오스를 이루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이 경찰과 맞서고 있다. 훌리건의 모습을 한, 반이민자 집회의 장면. 양측의 충돌이 벌어지는 순간 영상은 정지한다. 멈춘 그림이 찢어져 나가면서 그 아래로 거친 흑백 사진이 드러난다. 포토저널리즘에 전형적으로 쓰이는 사진 이미지이다. 이를 통해 < 우리 아빠 >는 이 이야기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지칭한다. 사진이 크레용 그림의 실체를 폭로해내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드러내는 것은 바로 주인공의 얼굴이다. 마침내 보여지는 아이의 얼굴은 생각보다 앳되다. 돌이켜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10살 안팎의 아이로 여겨지다가, 중간에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인 듯싶었는데, 다시 10살 초반대로 변한다. 아이는 아빠라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어느덧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책의 마지막은 아빠와 아이가 두 팔 벌려 꼬옥 끌어안은 장면인데 반해, 마커스 아미티지의 < 우리 아빠 >에서는 한껏 겁먹은 아이가 아빠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2015년) 한국에 소개된 외국 단편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작으로 꼽는다.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 작품이기 때문이고, 새로운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 < 우리 아빠 > 감상하기 https://vimeo.com/97812533
1969년 1월 27일 한 남자가 어린 조카와 함께 여권을 위조해서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를 경유한 다음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미리 대기 중이었던 중앙정보국 직원들에게 체포되었고 서울로 송환되었다. 당시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한국은 이 나라에 파병 중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양국 간의 협력하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수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그는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남한으로 귀순하였고 이 사건은 냉전 관계였던 남북한의 긴장 속에서 남한 체제의 우위에 대한 전리품처럼 보도되었다. 이수근은 귀순한 다음 중앙정보국 판단관 대우를 받으면서 반공강연과 북한체제 비판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 북한에 아내가 있었지만 새로 결혼을 했고 이 귀순은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함께 거의 영웅적인 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은 북한에 두고 온 아내의 조카 배경옥과 남한에서 탈출할 결심을 했고 하노이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중앙정보국은 이수근이 이중간첩이었으며 남한에 위장 귀순한 다음 고급정보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 시도를 했다고 발표했다. 1969년 5월 10일 이수근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이수근의 출국을 돕거나 관련된 자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수근은 판결에 대해 항소했지만 형이 확정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만인 1969년 7월 2일 사형을 집행했다. 또한 이수근과 동행한 조카 배경옥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고 이에 항소하여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한국사회는 간첩이라는 단어 앞에서 창백해졌다. 간첩 이수근 약간 우회를 해보자. 장르는 약속의 세계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생성되고 재편된 다음 수많은 텍스트들의 시행착오들로 이루어진 이합집산의 과정 끝에 하나의 양식(mode)을 갖게 된다. 물론 처음 시작은 시장 안에서 박스 오피스 목록에 올라온 영화의 성공을 재생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장 안의 비즈니스는 이 성공에 어떤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가정을 하였다. 반복 어구. 어떤 법칙.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 있을까. 이때 이 과정에는 반복적으로 영화가 시장에 던져진 다음 대중들과의 (이윤을 사이에 둔) 협상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펼쳐나가는 자기 운동 과정이 포함된다. 여기서 핵심은 장르 안에서 그 스스로 발전하는 선형진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수없이 많음 모델들이 도전을 해오고 그 과정 안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특별하게 뮤지컬) 장르를 연구해 온 스티브 닐은 장르의 원형이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모든 장르 영화들은 그 자체로 모두 예외적인 사례라고 푸념을 했다. 이때 장르 영화들은 약속 안에 영화 바깥으로부터 그 약속 자체를 기형적으로 비틀기 시작하거나 혹은 예상치 않은 블랙홀, 때로는 긴장할만한 새로운 코드들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그 순간의 시끄러운 사회적인 사건이나 위협적인 혹은 흥분할만한 정치적인 분위기, 지적학적으로 가까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하여튼 역사의 계기와 토픽으로부터 장르는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러오는 대중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설 때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잘 알려진 사례. 로빈 우드는 1970년대 공포영화들이 다루는 ‘타자’들이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흑인, 여성, (청바지를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1960년대 대항문화들, 그중에서도 인종 인권운동, 페미니즘, 좌파 정치운동에 대해 전통적인 WASP 보수적인 사회가 느끼는 두려움의 도상화(iconography)라고 설명했다. 김소영은 좀 더 흥미로운 제안을 하면서 한국 공포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결의 패턴으로 며느리 귀신과 시어머니의 대립을 한 쌍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장르가 지역 문화의 정치학에 따라 새로운 계열을 만들어내는 이접적 종합의 한 예가 될 것이다. 블리스 쿠아 림은 이 논쟁을 좀 더 멀리 밀고 나아가면서 판타스틱 영화들은 어떻게 장르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을 공존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탈구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하자면 장르 안에서 유령들은 언제 귀환하고 또한 어떻게 존재하며 그런 다음 결국 그들은 누구에게 추방되는가, 에 의해 멜랑콜리해진다.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벤야민에 기대서 하는 중이다. 간첩 좀 이상한 말이지만 스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 말이 왠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간첩이라고 하면 무언가 오싹해진다. 간단한 실험. 존 르 카레의 고전적인 ‘스파이 스릴러’인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를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간첩」이라고 번역한다면 단지 그 차이를 뉘앙스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반공 국가 남한에서 북한으로부터의 현실적인 위협은 세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학습되었다. 한국전쟁 세대에게는 그 공포가 재침(再侵)이라면 다음 세대에게는 우리들 사이에 스며든 ‘그림자 같은’ 간첩과 거의 ‘슈퍼맨’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것으로 ‘코스프레’ 한 무장공비로 이원화되었다. (그리고 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전형성은 여전히 ‘남한’ 영화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의 ‘북한에서 남파한’ 세 명의 ‘간첩’ 주인공들) 역사의 우여곡절. 1980년 5월 광주 ‘이후’ 남한에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운동과 (현장 참여의 전술을 학습하기 위하여) 실천적 투쟁을 전개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학습을 통해 ‘주체사상’을 수용하는 세대가 나타나면서 간첩이라는 반공 ‘어젠다(agenda)’는 묻혀 버렸다. 그 유명한 학생운동권 내부의 NL과 PD의 사상노선투쟁.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후 세습한 김정일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긴장 관계 안에서 평화정책을 유지했고 그 기간 동안 남한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점점 북한은 ‘종이 늑대’로 그 이미지가 변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성장이라는 국제관계 안의 복잡한 정치 공학이 작동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교류도 큰 몫을 차지했다. < 쉬리 >와 < 간첩 리철진 >을 거쳐 이데올로기를 탈색시켜나간 21세기 간첩의 이미지는 그래서 < 의형제 >처럼 거의 위협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매력적이거나) 혹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우스꽝스러워졌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겠다. 간첩은 더 이상 괴물이거나 추악하거나 교활하기는커녕 순정파 ‘꽃미남’(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에 만들어진 간첩영화 < 운명의 손 >을 보고 있으면 간첩은 ‘미스터리’ 하거나 ‘스릴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공포영화에 나타나는 존재처럼 유령이면서 동시에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들이다. 여기서 그들은 장르 안에서 활동하는 약속의 기호가 아니라 공기 속의 비-존재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생활의 일부이다. 간첩을 점점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어낸 것은 그만큼 남한 사회에서 타자가 스며들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이루고 일상생활이 안정적인 구조로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서 간첩 영화는 액션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 사이에서 교집합을 이루며 그 하위 장르(sub_genre)가 되어갔다. 물론 1970년대에 나타난 일련의 ‘여간첩’ 영화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사건 >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은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나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층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제시하였다.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복잡한 이데올로기의 네트워크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1970년은 이 영화를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이때 임권택 은 자신이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언제나, 언제나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지는데, 임권택은 자신의 영화가 북한과 어디선가 만나게 될 때 갑자기 움츠러든다. 나는 단지 그의 전기적 측면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이따금 영화 안에서조차 자기가 어떤 상황에 반복적으로 다시 불려간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 보기를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임권택은 그 안에서 수동적 주체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이 된다. 게다가 1970년은 모든 상황에서 불리했다. 베트남을 경유하여 새로운 냉전의 분위기가 사회를 덮쳤고 박정희는 제7차 대통령 선거를 그 이듬해 목전에 두고 있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영화산업은 그 안에서 정치 공학적으로 가냘픈 부문에 지나지 않았다. 임권택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자리를 최대한 수축시켰다. 거기에는 어떤 은유나 상징의 자리도 없다. 그 안에서 상상력은 몸을 숨겨야만 했다. 현재라고 가정된 순간. 그 안에 멈춰서야 할 때 장르는 안전한 보호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임권택은 장르의 규칙에 따르는 것을 바깥의 법칙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종종 장르 안에 머물 때 사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곤 했다. 물론 그것은 오해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와 달리 충무로에서 장르란 대부분의 경우 대중적인 유행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법칙 없는’ 법칙이라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은 수동적인 반복 안의 반복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반복이란 본질상 상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임권택이 반복이라고 생각한 것 안에는 이미 그 내부를 차지하고 있는 자극과 반응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장르 안에서 반복하는 것은 차이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재현 사이를 차지하는 불화의 활동이다. 리오타르라면 규칙이 명령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라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소박하게 질문하고 싶다. 무엇이 영화를 피곤하게 만드나요.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잘 설명되지 않는 침묵과 우울한 명랑함이 기묘하게 서로 얽혀 들어가는 영화이다. 침묵? 그렇다. 이상할 정도로 이 영화는 인물들이 대사를 자제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게 미학적인 의도라기보다 무언가 말실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좀 더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의도적인 명랑함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우울함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라도 하듯 명랑한 척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감춰놓은 비밀을 찾기 위해 홍콩에서 귀국한 딸 아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랑함. 왜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애도를 표현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를 뒤쫓으면서 비밀을 파헤치고 한편으로는 사랑에 빠지면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남 형사의 과장된 명랑함. 나는 이 세계가 1970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이미 결정된 상황. 이때 이 우울한 기분의 바탕에는 운명이 무겁게 드리워진다.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장르에서 조합은 운명을 결정한다. 이때 이 명랑함은 마치 그들의 운명에 대한 방어술처럼 보인다. 영화의 시작 영화가 시작했을 때 먼저 긴 침묵이 이어진다. 임권택 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1970년을 “거의 성의 없이 그저 주문이 들어오면 영화를 찍어내는 어떤 목표도 없던 시절이”라고 말했지만 이 시퀀스는 적어도 영화를 연출한다, 는 문제에서는 자신감을 과시하는 순간이다. 시작하자마자 우리들의 기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시골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굣길에 나서는 장면. 그런 다음 텅 빈 교정에 어둠이 내리자 이 학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시내들은 서로 잘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대사가 없다. 그저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뿐이다. 그들은 각자의 임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건 그들뿐만 아니라 영화의 동선과 쇼트들의 방향도 망설임이 없다. 펼쳐지는 시퀀스. 그 안에서 이야기는 아직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그러므로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오직 동선의 탐색만이 있다. 임권택은 시작하자마자 13분 40초에 이르는 (구태여 부르자면) ‘금괴 프롤로그’를 최소의 대사로 진행시킨다. 이때 그 대사가 너무 적어서 이 시퀀스를 보고 나면 거의 대사가 없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시작을 대사 없이 진행시키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아무 준비가 안 되었고 영화 안의 인물들은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들. 이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임권택은 분명히 그걸 즐기는 중이다. 그래서 그걸 더 벌려놓으려고 한다. 이 사내들은 조심성 없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장실에 방문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낸 다음 밤늦게 교무실에 남은 교장과 (아마도) 수위를 망설임 없이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런 다음 장비를 꺼내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적을 숨길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미 옆방에는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그걸 어딘가에 숨길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 뒤져나가던 그들은 무언가를 찾자마자 즉각 마룻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금괴를 찾아낸다. 이때서야 비로소 이들은 이 금괴를 찾기 위해서 잠시 모인 것뿐이지 그들이 한 패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이지 여전히 어떤 대사도 없다. 임권택은 주의 깊게 금괴를 발견하는 순간 우두머리의 처분을 바라보는 대신 그들로 하여금 그저 금괴만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그건 이들 사이에 우두머리가 없다는 뜻이다. 시선을 잡아당기는 힘.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각자 모였지만 각자 헤어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금괴를 각자의 몫에 따라 아직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섯 명이고 자동차는 다섯 명이 탈 수 있을 뿐이다. 그러자 한 사내( 장동휘 )가 제안한다. 자, 여기서 누구 한 명이 내려야 할지를 카드로 결정하지. 우리는 장르 영화의 세계 안으로 들어왔음을 잊으면 안 된다. (장르의 약속에 따라) 여기서 내리는 단 한 명이 금괴를 차지할 것이며, (스타의 법칙에 따라) 내리는 사람은 장동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 내기의 쇼트를 찍지 않았다. 빈 쇼트의 술래잡기. 할리우드가 발명한 천재적인 빈칸. 임권택의 고전적인 배움의 편집. 여기서 각자의 계열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오로지 동선만 활동하기 시작한다. 임권택은 이 대사의 쇼트에서 한밤중에 자동차가 달리는 장면을 바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 한 쇼트가 빠지면서 누가 이겼는지 혹은 졌는지, 누가 내렸는지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대신 금괴를 차지한 자동차는 황급하게 달려가다가 길목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에 의해서 폭발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이다. 그리고 거의 말이 없는 이 도입부는 (다소 놀랍게도) 영화 전체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이상할 정도로 균형 감각을 잃은 영화이다. 이 위태로운 균형이 미학적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국은 그러해야 한다, 는 연출의 결론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는 내내 이 간극을 줄일 생각이 없다. 폭발로 인해 시체를 분간할 수 없는 그 여섯 명 속에 아버지 민충식이 포함되어 있었고 홍콩에서 귀국한 딸 아미는 아버지의 생사를 놓고 그 행방을 찾아 나선다. 계속해서 아미를 위협하며 그녀를 암살하려는 악당들이 나타나고 그때마다 아미를 구하려는 남 형사가 개입한다. 한편으로는 아미와 남 형사의 (감정적인) 간격을 좁혀들어 오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 민충식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간다. 한쪽은 가까워지고 다른 한쪽은 점점 뒤로 물러난다. 아미는 두 번 아버지와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flash_back) 한 번은 범죄자들을 불러들인 다음 금괴와 함께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들으면서 자신이 돈 가방을 들고 집을 떠나 홍콩으로 가던 날이다. 그때 아버지는 아미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바꾼 가방을 건네면서 “아버지는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건넨다. 다른 한 번은 커튼 뒤에 숨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10센티 빗나가게 총을 쏘아 그녀를 덮치려던 사내를 살해한 현장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때 아버지는 그저 아무렇게나 허공에 던진 맥주 캔을 빠짐없이 명중시킨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준다. 이 두 개의 에피소드는 몹시 이상해서 아미의 아버지 민충식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심중조차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지금은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시키지만) 1970년이다. 국내에서 총기는 불법 소지이며 영국령이었던 홍콩에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아미에게 사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 가지 더. 그런데 왜 아미는 홍콩에 간 것일까. 그녀는 거기서 무엇을 한 것일까. 임권택 은 미스터리 장르를 불합리한 세계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가 지나칠 정도로 역사의 무게와 자본의 운동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세계 안에 사람들이 던져져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자비하게 어떤 합법칙성의 규칙에 따라 부서져 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여기에는 슬픔도 동정도 없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의 잔인한 동어반복. 임권택은 영화와 현실 세계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좋다고 믿는다. 그것은 단순하게 세계를 재현하려는 방식으로서의 리얼리즘에 대한 믿음이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그것만이 허구에 불과한 자기 영화의 이야기를 보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발적으로 거의 불투명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희미하게 보이는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마치 안개와도 같은 상황. 이 세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그건 끝내 밝혀져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지키기라도 해야 하는 것만 같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를 둘러싼 것은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초점을 놓친 것만 같은 그 희미함이다. 어쩌면 이것은 임권택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응하는 한 방식일 지도 모른다.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잃어버린 관심. 아무것도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아닐 때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력을 잃어가는 자발적인 포기.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그저 영화를 만들고 있을 뿐이에요. 냉전 체제하에서 묵묵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듯이 어떤 불평도 없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감독. 하지만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이야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딸을 데리고 10억 원이나 하는 금괴를 들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수근이라는 그림자. 아주 희미한 그림자. 하지만 그때 <그 여자를 쫓아라>를 보면서 어떻게 일 년 전의 그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이 영화는 모른 척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마치 자기 자신이 (존 르 카레의 소설 속의) 앨릭 리머스같은 태도를 취한다고나 할까. 희미해지는 시야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그렇게 괴상해지는 것은 이야기가 절반을 지날 때이다. 아버지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찾아가던 아미는 전문 내기 도박꾼들이 모이는 (이른바) ‘하우스’를 방문한다. 여기서 한눈에 사기도박을 알아채고 비밀을 밝힌 다음 아미는 마담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물론 마담은 그녀에게 알려줄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마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마담은 아미가 아버지와 함께 공모하여 마치 그녀도 행방을 모르는 척하면서 진정한 행방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제 발로 ‘하우스’를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때 남 형사가 악당들로부터 아미를 구해내고 ‘하우스’로부터 탈출한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심야에 탈출한 남 형사와 아미의 차를 뒤쫓아 검은 세단이 황급히 따라붙는다. 고문에서 깨어난 아미는 쫓기는 차 안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그녀가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의 장면(point_of view_shot)들이 모두 초점이 안 맞는다.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앞이 보이질 않아요” 거의 결정적인 한 마디.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 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신체 훼손의 테마가 등장하고 있음을 눈여겨본다. 종종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망설임 없이 상대방에게 신뢰의 표현으로 망설임 없이 팔을 잘라 내주거나(<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원한의 두 꼽추 >) 혹은 눈이 먼다. (< 돌아온 왼손잡이 > < 애꾸눈 박 >) 이것은 액션 장르 영화의 규칙이 아니다. 물론 이 시기의 충무로 액션 활극 영화들은 과도할 정도로 홍콩 쇼 브라더즈 무협영화인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에 영향을 받았고 신체적인 불구가 되는 것이 마치 활극을 위한 주인공의 영웅적 시련을 거치는 정화 과정처럼 다루어졌다. 몇 번이나 반복된 질문에서 임권택 감독님은 약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거, 하늘을 날고 하는 액션들은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영화에 알 수 없는 힘이 넘쳐나고 있었던 건 사실이죠. 그땐 영화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 영화를 보고 왔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따라가는 영화에서 주인공의 눈이 멀면 단지 주인공의 일부 기능을 상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능 일부를 손상당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활동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역할은 수동적인 상태에 놓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나는 < 그 여자를 쫓아라 >가 < 서편제 >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좀 더 까다로운 조건. 아미가 눈이 머는 이 시퀀스는 거의 정확하게 영화 절반에 해당한다. 이미 절반을 넘긴 이 영화에서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멈출 방법은 없으며 아미가 자신의 잃어버린 시력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익힐 수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로 부족하다. 영화에서 절반이란 애매한 시간이다. 히치콕이 < 사이코 >에서 절단시킨 이 이상한 시간. 게다가 아미는 지금 당장 수술을 받으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아버지를 찾는 일이 급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그걸 거절한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만일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정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임권택 은 절반의 시간에 이르렀을 때 누구보다도 이제 아미가 아버지를 대면할 시간이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장르에서의 운명의 시간. 비밀은 밝혀질 것이고 조각난 정보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미는 그것을 미루려고 하는 중이다. 이때 이 대면에서 무언가 불균형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아미가 눈이 멀자 정작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진다. 그녀는 더 이상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또한 작은 동선조차 위험해진다. 게다가 그녀는 갑작스레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조그만 활동도 할 수 없다. <그녀를 쫓아라>는 액션 활극 영화이고 ‘그녀’ 아미는 시력을 잃고 거동조차 불편해진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아미의 시력을 놓고 벌이는 게임의 시퀀스는 거의 없다. 이를테면 1968년 6월 28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 어두워질 때까지 >에서 장님 오드리 헵번은 해가 진 다음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방의 불을 끄고 방의 배치를 알고 있는 자신의 지각을 이용하여 힘겹게 싸운다.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기나긴 마지막 시퀀스. 하지만 임권택 은 그런 시퀀스를 제시할 생각이 전혀 없다. 혹은 불가능하다. 아미는 갑자기 눈이 멀었고 홍콩에서 돌아온 그녀가 머무는 곳은 거의 숨을 데가 없는 호텔 방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이다. 그저 호텔에 머물면서 사건이 올바르게 돌아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인질이 되어 이야기의 미끼가 되는 것이다. 미끼? 그렇다. 스스로 해결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를 다른 차원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구조의 일부가 된 희생. 차라리 음모의 잉여와도 같았던 그녀가 (끊임없이 아미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에게 홍콩에게 돌아가기를 권한다) 비로소 빈자리를 채우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구조 안에서 오작동하고 있던 자기의 올바른 역할. 이때 이야기는 갑자기 추락하듯이 마지막 시퀀스를 향해서 곤두박질친다. 물론 아미의 아버지는 죽지 않았으며 그녀가 끌려온 곳은 아버지 민충식의 지하실이다. 더없이 적절한 장소. 이제 비밀이 밝혀질 시간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왜 아미가 앞을 보지 못하는 수난을 선택했는지 알게 된다. 물론 아미는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미처 알지 못하면서 내린 이 결정은 마치 이미 운명이 알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히스테리로 반응하는 선택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미 알고 있는 운명. 나는 지금 장르 안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환기시키고 싶다. 아미는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주어진 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중이다. 이때 아미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 자기의 주체를 포기한 채 오로지 수동적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거기서부터 약간 줄거리를 더듬어보자. 아버지 민충식은 금괴를 들고 서해안을 거쳐 북한으로 갈 계획이다. 그는 자신이 모은 범죄자들을 모두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아미를 데려온 수행자들도 죽인다. 이때 민충식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그는 금괴를 찾는 임무를 가지고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가까스로 찾은 금괴를 들고 북한으로 올라갈 생각인 것이다. 여기서 미처 생각지 않았던 장면이 아미와 민충식 사이를 새롭게 매개한다. 사건이 시작되기 훨씬 전의 이야기.(flash_back)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민충식은 독립운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다음 동지 박만수를 밀고하고 살아남는다. 이때 박만수의 갓난아기인 딸이 그의 시신 곁에서 울고 있고 민충식은 “속죄의 뜻으로 길러”야 한다고 결심한다. 물론 갓난아기인 그 딸이 아미이다. 민충식과 함께 살아남아 회사를 경영하는 김 사장은 함께 북으로 올라가자는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면서 계속 “이 돈이면 외국에 가서도 살 수 있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민충식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자네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나?” 민충식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 북한에 가고 싶어 한다. ‘인민영웅’이 된다는 것. 우리는 한국 근대사 안에서 이루어진 충무로 장르영화의 규칙에 따라 민충식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 민충식은 좌익계 독립운동의 노선을 따랐을 것이며 한국전쟁 중에 휴전이 되면서 북한에 올라가지 못하고 남한에 남아 머물면서 언제든지 ‘귀환’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한에서의 민충식은 (그의 직업이 무언지는 설명이 없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어 큰 부를 축적했으며 (그는 별장에 가까운 집에 살고 있다) 남한에서 오로지 아미만을 키우면서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그는 어떤 가족도 없다) 민충식은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단지 “영웅이 되기” 위해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가고 싶어 한다. 민충식은 완전히 모순된 목표를 향해 접근하는 중이다. 우리가 민충식을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이수근을 1969년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우울한 공명현상. 이때 임권택 이 여기서 수행하는 연출의 목표는 민충식과 아미의 대면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다. 아미는 이미 민충식의 수중에 들어왔고 민충식은 김 사장과 함께 금괴를 영구차에 실은 다음 서해로 향할 때까지도 눈앞에 있는 아미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반대로 실려 가는 아미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아미가 자기를 영구차에 실어 데려가는 사람이 아버지 민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차를 가로막고 나선 남 형사와 그의 동료의 차와 카 체이스를 벌이는 순간 내뱉는 욕설의 음성 때문이다. 아버지의 욕설. 그건 이제까지 아미의 기억 속에서 항상 다정하고 온화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다. 보지 못하는 아미가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때 아버지는 같은 목소리로 두 인물이 된다. 여기에는 찢어진 아버지, 서로 다른 아버지, 두 명의 아버지가 분간할 수 없게 희미한 모습으로 아미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민충식을 보지만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아마 이보다 더 장르 안에서 이중간첩에 대한 창백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1970년 그해 영화의 순간은 달리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조준하기 임권택 은 이 순간을 좀 더 거북하게 만든다. 거북하게?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남 형사가 몰고 온 자동차를 피해 달아나던 영구차는 탈선해서 시냇가에 빠진다. 그런 다음 민충식과 남 형사가 그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총격전을 벌이다가 한 자루를 시냇가에 떨어트리고 난 다음 남은 한 자루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대결을 벌인다. 주인을 옮겨가는 총의 운동. 전형적인 서부극의 컨벤션.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임권택은 안소니 만의 영화를 품고 있다는 감상이 떠오른다. 나는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아미는 차가 시냇가에 처박힐 때까지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때 민충식과 함께 북한으로 가려던 김 사장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아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미안하다, 아미야. 저놈은 네 아비가 아니다. 민가 놈은 네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총을 놓고 싸우느라 잠시 잊어버린 아미는 차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민충식과 남 형사를 향해 걸어가다가 시냇가에 던져져 우연히 발에 밟힌 총을 들어서 그들을 향해 겨눈다. 그때 그녀가 겨누는 사람은 (당연히!) 남 형사가 아니라 아버지 민충식이다. 이제까지 떠돌던 임권택 의 의도는 비로소 도착한다. 민충식은 아미를 버리지 않고 기른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아미의 아버지를 배신했지만 자신의 배신에 대해서 민충식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말에 깜짝 놀란 김 사장의 반문에 “속죄라도 해야지”라는 대답을 하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여기에 어떤 다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아미는 아버지에게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고 민충식은 아버지로서의 의무 이외의 어떤 것도 아미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 아미에게 두 가지 요구의 명령이 내려진다. 하나는 어떤 조건 없이 매번 아미를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그녀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남 형사가 지금 민충식의 총구 아래 있다는 것이다. 앞선 한 발은 빗나갔지만 이번에는 명중할 것이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남 형사는 그 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 사장이 좀 전에 알려준 대로 민충식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민충식이 이제까지 아미를 키워준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아미는 지금 당장,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미처 망설일 틈도 없이,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아미의 곤궁과 임권택 의 그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아미는 두 개의 층위에서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냐, 사랑했던 사람이냐,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 사장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미는 장르 안에서만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임권택으로 옮겨가면 질문은 까다로워진다. 그때 이 곤궁은 정확하게 아미와 반대의 차원에서 오작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임권택이 저항감을 느끼는 것은 민충식이 또 다른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미가 민충식을 쏘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때 그런 행위를 해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은 도덕적이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려버리면 윤리적인 결정이 되는 곤궁에 떨어진다. 도덕과 윤리 사이의 간극. 이때 임권택의 입장에서 아미가 민충식을 총으로 쏘아서 아버지의 죽음을 선택했을 때 얻는 이득에서 남 형사를 구하는 것은 철저하게 부차적인 자리로 물러난다.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방아쇠를 당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기른 아버지를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이때 아버지란 무엇인가. 두 명의 아버지. 아버지는 딸의 첫 번째 사랑의 (불가능한) 대상이자 욕망의 전술을 기입하는 (주인으로서의) 타자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비유를 가져와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미 아버지에 대한 아미의 두 개의 회상 속에서(flash_back) 하나가 그녀에게 사격을 가르쳐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작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아미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총을 쏜 적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총을 쏘아야 할 순간 아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한 설정. 장르 영화 안에서 총을 남근에 비유하는 것은 거의 클리셰에 가까운 해석이다. 하지만 이 상투적인 비유가 여기서 이상하게 뒤틀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민충식은 아미를 아들로 키우고 싶어 한다. 혹은 아들의 기표를 부여한다. 그 비유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약간 반격하듯이 반문을 하고 싶다. 만일 아미가 여기서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가장 바보 같은 대답은 남 형사가 아미를 도와줄리 없다는 것이다. 그 대답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그래도 남 형사는 아미를 도와줄 것이다. 정말? 물론이다. 왜냐하면 남 형사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월북하려는 민충식을 추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의 오해가 핵심이다. 아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 이야기를 덮어씌우면서 이야기의 논점을 흐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총은 아미가 끝내 아들이 되지 못하는 것을 증명하는 기표이다. 그녀는 남근을 부여받았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사용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야기의 논점을 흐릿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임권택은 어떻게 해서든 이 영화가 북한으로 월북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 그 여자를 쫓아라 > 를 보았을 때 첫 인상은 마치 아미와 남 형사의 로맨스 활극처럼 보일 정도이다. 위장하는 주인 기표. 하지만 우리는 경우의 수를 모두 셈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가장 이상한 계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쏘는 대신 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쏠 생각이 없는 결정이 하나 더 있다. 이 순간 아미가 가진 곤궁과 달리 임권택을 갑자기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그것은 북한에 아미를 데려가려는 민충식을 긍정하는 정치적 제스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음산한 그림자가 떠돌기 시작한다. 민충식의 죽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보자. 그런 다음 이 모든 기괴한 수익과 손실의 계산 안에서 벌어진 활동을 한 자리에 모아보자. 임권택 은 이 짧은 순간의 셈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지를 알아챈 다음 그 결정적인 순간을 비껴간다. 어떻게?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셈을 치를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린다. 그저 아미는 남근의 기표를 손에 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이 영화에서 한 역할의 사실상의 전부이다. 마치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뒤이어 한발 늦게 도착한 남 형사의 동료는 자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충식을 총으로 쏘아 쓰러트린다. 임권택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다시 장르의 마무리 안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딸 아미의 품에 안긴 아버지 민충식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아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른 아버지도 아버지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며 그가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그 여자를 쫓아라 >는 분명히 1970년이라는 상황의 영화이지만 임권택 은 자기와의 사이에 놓인 긴장을 피해가기 위하여 장르의 장치 안으로 들어간 다음 영화를 결정 불가능한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회색의 안갯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임권택이 원하는 것이다. 그는 이수근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지는 못할망정 (그때 누가 그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 수 있었겠는가)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수근은 남한에서 모든 걸 얻었다. 새로운 아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집. 새로운 삶. 새로운 일. 하지만 그는 여기를 다시 떠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 곁에 민충식을 가져다 놓고 싶다. 민충식은 남한에서 모든 걸 얻었다. 새로운 좋은 집을 가졌고 자본주의 남한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끝내 어떤 새로운 가족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저 (남의) 딸 아미와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럼에도 그는 북한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실패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임권택의 어떤 계략을 읽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소설이 시작된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임권택은 연출의 계략을 동원해서 성공적으로 곤궁을 빠져나왔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1970년은 끝나지 않았다. 혹은 막 박정희의 70년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시작. (계속) 아직 남은 이야기. 이수근 사건에 대한 후일담. 198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의문 제기 과정 속에서 일부 중앙정보국 관리들의 증언을 통하여 이수근은 위장 귀순한 것이 아니며 지나친 중앙정보국의 감시와 북한에 두고 안 가족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3국으로 다시 망명할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만일 그가 다시 북한에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홍콩에서 캄보디아로 경유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언에 따르면 이수근은 제3국에 가서 남북한 체제 모두를 비판하는 증언 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며 이에 당황한 중앙정보국이 그를 이중간첩 사건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관련자 증언 및 관련 자료 재검토를 통해 2006년 12월 “중앙정보부가 이수근을 위장 간첩으로 조작 처형한 것으로 판단하며 이에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법원에서의 재심 심판을 요청”한다고 권고하였다. 이에 2008년 12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수근을 위장 간첩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고 21년간 감옥 구금을 한 조카 배경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것이 우리의 근대사이다.(계속) 1970년 86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한국영화사 각본 나한봉 촬영 이문백 조명 정경희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희라 윤정희 장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