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
- 감독
- 박생기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고세윤, 박서희, 박혜영, 백종석, 유민지, 김정인, 김아영, 권미정, 성호경, 최성훈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를 보기 전, 주목한 이름은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사카모토 유지였다. 도이 노부히로도 뛰어난 감독이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4)를 연출했던 도이 노부히로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다. <이상의 결혼> <파랑새> <스트로베리 온 더 숏케이크> <운명의 사람> <잠자는 숲> <중쇄를 찍자> 등등. 화제를 모은 최근작으로는 2016년에 찍은, 연애와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남녀의 다정하고 은근한 사랑 이야기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정작 실천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과 현실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 드라마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도쿄 러브 스토리>(1991)의 각본을 쓴 작가다. 당시 월요일 밤 9시가 되면 거리에서 젊은 여성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고, ‘게츠큐’라고 불리는 월요일 밤 9시의 후지드라마는 최고의 인기 드라마 산실이 되었다. 1967년생이니, <도쿄 러브 스토리>를 쓴 것이 25세. 자기 세대의 일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고,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사카모토 유지는 밝게만 그려내는 TV 업계에 질렸다며 96년, 돌연 일을 그만둔다. 한동안 연극과 소설 등을 파고들던 사카모토는 2002년 다시 각본을 쓰며 돌아온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우리들의 교과서>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콰르텟> <아노네> 등 화제를 모은 작품이 즐비하다. 복귀 이후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은 화제작보다 문제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사카모토가 다루는 드라마의 소재는 이지메, 아동학대, 싱글 마더, 직장내 괴롭힘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렌디 드라마의 원점이 사카모토 유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사카모토의 드라마는 마주보기 불편한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대중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둡기만 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둠에 먹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그가 보여주는 청춘의 사랑은 어떨지 궁금했다. 영화 작업은 오랜만이었다. 사카모토는 2004년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당시 일본 영화계의 흐름을 바꾼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김미 해븐>(06)과 <서유기>(07)의 시나리오를 쓴 후 15년 만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영화에 돌아왔다. 도이 노부히로와는 이전에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와 <콰르텟>을 함께 작업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대 초반 남녀의 사랑을 그린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작은 사랑 이야기. 대단할 것 없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울림이 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스물한 살의 키누는 말한다. 토스트를 바닥에 떨어트리면, 늘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다고. 살면서 유별난 행운이 찾아온 적 없고, 누군가 관심 있게 쳐다봐 준 적도 없는 평범한 인생.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지내고,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좋아하고, 열광해도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무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대학생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자신이 찍힌 것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흥분이 있을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동급생은 자기를 무시하는 듯 관심 있는 듯 거리를 두며 지낸다. 키누도, 무기도 눈에 띄지 않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아주 보통은 아니다. 키누와 무기는, 일본식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문화계다. 책, 영화, 만화, 음악, 전시 등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전철 막차를 놓치고,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심야 카페에서 ‘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던 직장인 남녀는, 마니아로 불릴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면서도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마녀 배달부 키키>를 실사로 보고 좋아하는 부류다. 함께 있던 자리에서 뭐라 말할 수 없었던 키누와 무기는, 밖에서 ‘오시이 마모루’를 떠올리며 즐겁게 대화한다. 그들의 대화는, 만남은 이렇게 ‘문화’로 시작되고 흘러간다. 좋아하는 작가가 같고, 같은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마침 신고 있는 신발도 같은 브랜드다. 무기의 집에 간 키누는 마츠모토 타이요와 나난 키리코, 모치즈키 미네타로,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만화와 나가시마 유, 호무라 히로시, 이시이 신지,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 꽂힌 책장을 보며 말한다. ‘거의 내 책장이잖아’라고.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호감으로 시작된 사랑은 같은 것을 함께 경험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20년에서 시작한다. 카페에 앉은 남녀가 음악을 듣는다. 이어폰을 한쪽씩 자신의 귀에 꽂고, 같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뒤편에 앉은 키누가 말한다. 저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니야. 다른 자리에 앉은 무기가 또 말한다. 엔지니어는 섬세하게 양쪽에 다른 소리를 배치하여 함께 들으면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거야. 키누와 무기의 옆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헤어진 것이다. 관객은 두 사람이 이제는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동거를 하는지 보게 된다. 궁금하다. 이렇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남녀는, 어떤 과정을 통해 헤어지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택하게 한 것일까. 키누와 무기는 보통의 남녀다. 키누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프리터가 된다. 무기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대가가 너무 작다. 자신의 꿈을 찾겠다는 무기의 말에, 니이가카에 사는 아버지는 이제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답한다. 동거를 시작한 키누와 무기는 알바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을 유지해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알바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러스트 일만으로 안정적인 미래는 없다는 것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현실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같은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으로 온전하게 각자의 생활을 유지해야만 ‘동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삶 없이 함께 하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무기는 영업직으로 취직한다. 키누는 회계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한다. 무기의 바람은 현상유지다. 키누와 함께 이대로 주욱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책도, 영화도, 게임도 이제는 즐길 여유가 없다. 봐도 재미가 없다. 일하는 틈틈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도다. 키누는 책을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 일한다. 되도록 좋아하는 것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쓰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가깝게 지내며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면서, 현상유지를 하고 싶지는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 이야기다. 빛나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하지만 그들의 매순간이 완벽해서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키누가 좋아하는 미라 전시를 무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가스탱크이지만 무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키누는 함께 보러 간다.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으니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미묘한 순간들을 부드럽게, 정서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서서히 어긋나는 과정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건과 충돌이 아니라 미묘하게 어색하거나 낯선 공기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키누는 엄청 좋아할 때도 막 흥분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진하게 감정이 밀려든다. 관객이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영화 속 일상의 공간에 채워 넣는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대신,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스쳐 지나가며 관객이 상상하게 만든다. 스스로 깨닫게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서서히 잠겨드는 영화다. 키누와 무기가 사회의 완강한 벽에 부딪쳐 좌절할 때에도, 세상 안에서 키누가 자신의 ‘취향’을 붙잡고 종종걸음을 칠 때에도, 공감을 느끼며 바라보게 된다. 이건 멋진 사람들의 화려한 연애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작고 흔들리는 순간들의 이야기다. 결코 끝나지 않을 인생의 이야기. 언제나 내 주변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키누와 무기는 헤어지고도, 여전히 같은 취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67년생, 도이 노부히로는 63년생.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다.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금 20대의 이야기를 너무나 신선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구조사취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언제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세상은 언제나 경이로우니까. 여전히 젊음이 사카모토 유지에게는 있다. 사카모토 유지의 젊은 대사, 장면을 보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고, 마음이 끌린다. 젊다. 젊음의 빛나는 순간이 한껏 나의 세상에 비치는 영화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다. 그래서 즐겁고, 또 슬프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듯이.
< 포드 v 페라리 >의 도입부, 차를 몰고 가는 캐롤 셸비. 그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카레이서다. 화면에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 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은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캐롤의 내레이션은 후반에 다시 나온다. 캐롤이 스카우트해 르망 대회에서 끝내주는 레이스를 벌이고 돌아온 켄 마일스가 시승차를 테스트하고 있을 때다. 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캐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켄이 모는 시승차의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 끝에 폭발한다. 캐롤과 그의 스탭들이 사고 장소로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다. 켄 마일스는 그렇게 영화에서 단숨에 퇴장한다. ‘넌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할 여유도 없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더이상 차를 몰 수 없는 레이서 캐롤 셸비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켄 마일스는 물리적으로 진짜로 죽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백짓장처럼 얇은 카레이싱의 경험을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도의 한계 끝에 다다르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도에 관해 이심전심 서로 통하는 친구들이다. <포드 v 페라리>는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전문가주의에의 헌신이 가닿을 수 있는 어떤 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는 것, 그렇지만 이 심원한 도의 깨달음의 끝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종말과 같이 단순하다. 그저 죽는다는 것뿐이다. 은퇴해서 스포츠카를 디자인해 파는 사업으로 성공한 캐롤 셸비에게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중역 아이아코카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포드의 신형 개발차로 르망 레이스에 참가하자는 프로젝트다. 캐롤은 레이서 파트너로 켄 마일스를 스카우트한다. 여전히 현역이지만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근근이 레이싱 대회에 나가면서 적자투성이 카센터를 운영하며 호구하는 켄은 캐롤과 함께 레이싱 훈련에 돌입한 후에도 포드사의 마케팅 임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캐롤과 켄에게 그들이 만들고 타는 차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의미이며 다른 어떤 교환가치도 갖지 않는 것이지만 포드 회사의 임원들에게 차는 셀링 포인트가 집약된 도구이자 기호이다. 캐롤과 켄은 최고 수준으로 설계된 차로 한계를 돌파하는 레이싱에 매달리지만 포드의 임원들은 레이싱에 동원된 차를 통해 새롭고 매력적인 삶의 표상을 대중에게 팔고 싶어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마케팅 목적으로 르망 대회를 이용하는 포드 사 임원들의 관료주의와 캐롤과 켄의 전문가주의가 부딪치는 대립과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 저류에 흐르는 것은 도구화된 삶을 지향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이념과 거기에 순응하는 가운데서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개인들의 도구화되지 않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역설이지만 삶에 대한 자각은 너덜거리는 차의 부속에 대한 자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켄 마일스는 레이싱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자기 훈련을 지켜보던 아들 헨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빨리 달리면 차의 속도는 올라가지만 나머진 모두 느려져. 요렇게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는 거야. 그럼 다 보여... 차에겐 다정해야 해. 아래서 신음하는 그 녀석을 딱하게 느껴야 돼.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해. 저길 봐. 저기 퍼펙트 랩이 있어. 실수도 없고 모든 기어 변속과 코너 공략이 완벽한 랩.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해.” 기계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를 다루면서 그걸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고 다정하게 대하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소모되는 그걸 딱하게 여기면서 모든 기능 조절이 완벽한 ‘퍼펙트랩’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켄 마일스는 그 자신 역시 그가 다루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마모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하면서 죽음/폐기의 경계로 다가가는 존재이다. 최고 시속을 오래 버텨내는 최고의 자동차는 그 대가로 짧게 존재하고 대체되지만 인간은 대체될 수 없다.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동차 기계의 부속품들과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같은 열에 놓고 대하는 켄과 마일스는 결국 여러 겹으로 꼬인 삶의 모순을 받아들여 견딜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그들의 분신으로 여기고 대하지만 그걸 팔거나 타서 마모시키고 그들을 고용한 포드사는 그들을 도구로 이용해 하찮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과 켄은 그들의 운명에 장쾌하게 대들고 즐긴다. <포드 v 페라리>가 자동차 레이싱을 소재로 한 여타 영화들과 다른 우월한 개성을 갖는 것은 속도의 쾌감에 화면의 리듬을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싱의 경쟁상태를 묘사하면서도 초점은 레이서와 차의 혼연일치 상태, 나아가야 할 때와 늦춰야할 때를 의식하는 레이서의 마음으로 관객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켄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할 때 캐롤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아직 아냐...아직 아냐...지금이야’라고 외는 주문과 그에 조응하는 켄의 운전은 속도와 경주에 주목해 즐기는 이 장르의 관성을 깨트린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애초 약속과 달리 켄 마일스를 르망 레이스 팀에서 제외하려는 포드 2세 회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를 레이싱카에 태운 캐롤은 전속력으로 차를 모는데 회장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가공할 속도에 공포를 느끼고 눈물을 질질 짠다. “난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이걸 보셨어야 했는데. 이걸 느껴보셨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게 극한의 스피드는 눈으로 즐기는 것이지 몸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포드 v 페라리>에서 포드 2세 회장을 비롯해 삶과 비즈니스의 철학에 관해 장광설을 펴는 인간들은 결정적 순간에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비루한 존재임을 감추거나 쉽게 망각해버린다. 포드사가 애초 인수하려 했던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의 회장 페라리는 자기 회사를 인수하려는 포드 경영진의 제안을 일축하면서 “포드 2세는 포드 1세가 아니다.”라고 인수 제안 책임자 아이아코카에게 쏘아붙인다. 르망 레이싱 경기장 현장에서도 포드 2세 회장은 개막식 행사 참석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난다. 포드 마케팅 수장의 잔꾀로 포드 차가 나란히 결승지점에 골인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난 후에 1등을 달렸던 켄 마일스는 자기 보다 뒤에서 출발했던 같은 회사 동료 레이서에게 우승을 도둑맞는다. 망연자실한 켄 마일스에게 관중석에서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이는 페라리 회장이다. 황당하고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캐롤에게 마침내 사태를 파악한 켄은 말한다. “차를 팔아야 한다 이건가?” 그리고는 시상을 하는 포드 2세 회장과 중역 일행을 본다. 그는 이어 말한다. “차를 파는 게 저 사람들 일이니까. 네가 약속했던 건 레이스였어. 우승이 아니야. 끝내주는 레이스였어. 끝내주는 차야. 빠르지. 더 빠를 수 있었어. 7리터 엔진은 좋지만 차대는 지금보다 가벼워야 해. 접합 알루미늄이 어떨까 싶은데. 더 갈아엎어야겠지만 효과 좋을 거야. 한 100kg 줄일 걸.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샤워하고 차도 좀 마시고. 샌드위치나 하나 먹고 가자. 내년에 전부 다 박살내버리자고.” 적재적소로 대사를 아끼면서 과시적이지 않은 스타일로 드라마를 운반하고 미국 작가주의 영화의 무궁한 소재인 전문가주의의 내밀한 본질을 장쾌한 시각적 묘사로 그려낸 <포드 v 페라리>는 다른 한편으로 할리우드의 위선적인 프로파간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스템의 도구화를 거부하는 두 주인공 장인을 통해 은밀히 수행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부담 없이 영화를 보게 하면서도 곱씹을 것이 많은 이미지와 대사의 절제된 인장을 통해 장르영화의 작가주의가 여전히 가능한 미국영화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끝 장면에는 시스템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운명을 긍정하는 재치있는 언급이 나온다. 켄 마일스가 죽은 후 차 세일즈 비즈니스에 심드렁한 채 시간을 죽이던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아들 헨리를 집 앞에서 만난다. 안부 인사를 전하다가 캐롤은 켄이 쓰던 렌치를 헨리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공구는 쓸모 있지. 이걸로 뭘 만들거나 고치기도 하거든.”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네 아빠는...” 헨리가 말을 이어받는다. “아저씨 친구였죠.” “그래. 친구였지.” 인간이든 공구이든, 각자의 쓰임대로 뭘 고치거나 만들면서 존재할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