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도
- 감독
- 탐 고타니
- 제작년도
- 1983
- 출연
- 리차드 분, 프랭크 컨배스, 도시로 미후네, 티모시 패트릭 머피, 윌리암 로즈, 빈 아마츄, 소니 치바, 아라이 이왜, 제임스 얼 존스, 로라 젬서, 마코, 킨 오마에, 단바 데츠로, 아사노 마유미, 마이크 스타
2021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확진자와 중증환자의 급증으로 산산이 깨졌다. 작년 연말이 돼서야, 이젠 2020년 2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완전히 다른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그렇게 달라진 건 아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좀 덜 돌아다니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어딜 가든 조금만 유명한 곳들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극장의 풍경은 다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신작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잠시 활기를 띨 만하면 방역 조치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2년째 반복되면서, 극장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이렇게 적은 관객들로 극장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영화론자’나 ‘영화주의자’들이 극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극장에서 영화보는 일을 찬미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극장의 죽음은 이젠 가까운 미래의 일이 되어버렸다. 관객이 사라진 조용하기도 스산하기도 한 극장에 갈 때마다 쓸쓸했다. 이 고요함 속에서 때론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은 늘 낮은 곳부터 고이므로 실질적 피해는 영화산업을 하부에서 받치고 있는 작은 회사들과 독립창작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극장에 갈 수 없는 관객에게는 OTT가 대안일 수 있겠지만, 산업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OTT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는 가급적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을 더 많이 포함시키고 싶었다. 올해에는 나의 2021년 사사로운 리스트 10편의 영화 중 클레이 자오의 < 노매드랜드 >에 대해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좋은 평론가들의 훌륭한 글에 더 보탤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노매드랜드>가 품고 있는 고통과 아름다움에 대해 몇 마디 더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극장에서 본 영화였고,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 영화였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노매드’는 누구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의 제목은 떠돌이, 뜨내기, 부랑자, 정착하지 못하는 자, 유목민, 유랑자, 방랑자 등등의 뜻을 가진 ‘Nomad’와 땅 또는 지역이라는 뜻의 ‘Land’가 합쳐진 단어인데, 원작도 같은 제목이다. 그런데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이 원작 논픽션에는 부제가 달려 있다.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그는 2014년 하퍼스 매거진에 ‘은퇴의 종말: 노동을 그만둔 삶을 감당할 수 없어질 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글을 읽고 감동 받은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노매드랜드」를 출간했다. 여기서 ‘노매드’는 ‘노매드 노동자’, 혹은 ‘워캠퍼(workapmer = work+camp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2007년과 2008년 사이 발생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했다. 주로 이 시기에 평생에 걸쳐 쌓아온 경제적 기반을 잃어버린 은퇴자들인데,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담보대출금의 족쇄를 끊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밴과 RV, 트레일러를 집 삼아 좋은 날씨를 따라 단기 일자리에서 다른 단기 일자리로 이동하면서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계절에 맞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물론 이들이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만으로 떠밀리듯 이런 삶을 선택한 건 아니다. ‘노매드’로서의 삶은 은퇴 후의 경제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노매드’들끼리 적극적으로 연대하기도 한다. 저자 제시카는 2014년부터 무려 3년 동안 실제 RV에서 살면서 ‘노매드’들을 따라 약 2만 4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 클레이 자오의 영화와 그의 세계 제시카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원작에는 저자의 취재를 도와 노매드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린다 메이’라는 이름의 이 인물은 영화에도 같은 이름으로 직접 출연하는데, 영화에서도 남편을 잃고 고향을 떠난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을 노매드의 세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오래된 동료 제작자인 피터 스피어와 함께 이 책의 판권을 구입한 후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면, 그 영화는 아마도 저자인 제시카나 린다 메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매드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그럼으로써 미국 사회의 또 다른 현실을 들여다보는 정치적이고 시사적이며, 고발적인 영화, 차갑고 딱딱하고 쓸쓸한 톤의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러브콜을 흔쾌히 받아들인 클레이 자오는 뻔하고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클레이 자오는 원작의 세 번째 챕터에 나오는 미국의 오래된 기업의존형 도시인 엠파이어를 고향으로 둔 ‘펀’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원작이 그려낸 부조리한 미국 사회를, 꿈과 결핍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사회적 약자들이 살고 있는 클레이 자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장기를 살려, 실제 ‘노매드’들을 영화에 출연시켜 자신의 삶에 대해 발언하게 함으로써, 원작의 르포르타주적인 면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노매드랜드>는 마치 실제 ‘노매드랜드’라는 현실 속에 전문배우인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빗 스트라탄을 투입하여 영화를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독과 훈련된 전문 배우들은 노매드들의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함께 들어주고,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이야기는 <노매드랜드>의 서사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영화만들기 방식은 캐나다 퀘백 지역을 대표하는 드니 코테 감독이 2009년 연출한 다큐멘터리이자 극영화인 <카르카세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에서 드니 코테는 수백 대의 자동차의 무덤에서 살아가는 한 노인의 집 마당에 4명의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투입하여 서사에 긴장을 만들어냄으로써 서사를 진행시켰다. 클레이 자오 감독은 이처럼 자기만의 영화만들기 방식을 통해 다루는 주제와 소재, 인물과 사회적 맥락의 역학 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한편, 어떤 영화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식하고, 자신만의 인장을 찍어왔다. 그의 경력과 전작을 살펴보면 그는 정말 '이상하고 특별한' 감독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으면서도 미국적 가치와 정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그걸 섬세하게 영화에 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특별한 재능은 <노매드랜드>에서 정점을 찍었다. 1982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는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기 전 에밀리 디킨스의 모교였던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도대체 왜 중국인들은 함께 모여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정치학을 시작했지만 그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장편 데뷔작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2015)와 두 번째 영화 < 로데오 카우보이 >(2017)를 연달아 만들었다. 배경, 인물, 주제, 배우, 연출방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연작이나 다름없는 이 두 영화에는 클레이 자오의 영화 세계를 떠받치는 주요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 장편 데뷔작 <Songs My Brother Taught Me>는 - 국내 포털에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라는 제목으로 올라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Brother’는 ‘형제’가 아니라 ‘오빠’로 번역되는 것이 맞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상영된 후에 포털에 제목이 올라갔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아마도 <오빠가 가르쳐준 노래>가 되었을 것이다. -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빠와 여동생, 남매의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우스 다코타의 파인 릿지 인디언 보존지구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년 조니인데, 그는 졸업 후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떠나 LA에 가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여동생이다. 한편, 그로부터 2년 후 같은 지역에서 촬영된 두 번째 영화 <로데오 카우보이>의 주인공은 이제는 한물간 로데오를 사랑하는 브래디다. 그는 로데오 경기 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후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간절한 꿈을 포기하는데, 여기에도 핸디캡을 가진 여동생이 등장한다. 이 두 영화는 모두 가족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청년과 여동생으로 상징되는 가족, 그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이 두 편의 영화 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동생은 마치 클레이 자오 감독처럼 느껴지는데, 감독은 이런 방식을 통해 그가 품었던 ‘가족주의’에 관한 질문과 그 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담아낸다. 클레이 자오가 담아낸 노매드의 세계 클레이 자오가 <노매드랜드>에서 창조한 ‘펀’이라는 인물 역시 상실감과 결핍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펀은 2편의 전작에서 창조한 두 청년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남편을 잃은 ‘펀’은 마치 이들의 40년 또는 50년 후의 모습 같다.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한 이 두 청년들은 평생 결핍과 상실감은 숨겨둔 채 살다가, 가족마저 사라지면 그들의 어깨에는 허무함이 하나 더 얹어질 것이고, 결국 그들은 평생을 부유하듯 살게 될 것이다. 뗄 수 없는 결핍과 상실감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 이터널스 >에서도 변함없이 등장한다. 게이, 흑인, 애정 결핍, 치매, 청각 장애 등 너무 정치적이어서 오히려 재미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초능력과 함께 결핍을 부여받은 히어로들, 결국 지구인에 대한 애정으로 창조주를 배신한 그 히어로들은 영원히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갈 것이다. 클레이 자오의 세계에 존재하는 중요 인물들은 이런 상실감과 결핍으로 규정된다. 클레이 자오는 남편이 죽은 후 남편과 함께 살았던 하지만 이제 망해버린 엠파이어를 떠난 펀의 이야기, 그리고 펀이 길 위에서 만난 노매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결핍과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는 도구로써, 미국 서부의 눈부시도록 쓸쓸하고 아름다운 실제 풍경을 영화 곳곳에 배치한다. 그는 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약 5개월간 25명의 스텝과 함께 일곱 개 주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표현법 때문에 너무 낭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능한 비판이겠지만, 기억할 것은 아무리 고단한 인생이라도 삶의 숨통을 띄워주는 낭만의 순간들을 에너지원 삼아 한발 한발 전진한다는 것이고, 또한, 항상 슬픈 표정으로 있어야만 피해자가 아니며, 가난하다고 해서 늘 고통받고 힘든 표정으로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답기를 요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답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들이 진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의도치 않게 사회가 약자와 피해자들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약자성’ 또는 ‘피해자성’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펀의 내면은 이미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고, 그는 생계를 유지할 충분한 돈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편하게 정착해 살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다시 길 위에 선다. 이제 길 위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주어진 노동을 하고, 밴을 타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차박’을 한다고 해서 그의 삶이 진실하지 않거나, 그가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서부극으로써의 <노매드랜드>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의 장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건 ‘펀’의 여동생이 던진 말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언니를 방어해주기 위해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노매드들이 하는 일은 개척자들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펀이 미국 전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서부극과 연결시킨다. 이미 클레이 자오는 서부극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로데오 카우보이>가 공개된 후 언론은 이 영화를 ‘웨스턴’ 장르로 이해했고,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에 대해 ‘한 중국 이민자 출신의 영화감독이 미국의 가장 오래된 장르(웨스턴)를 혁신적으로 바꾸어냈다’고 평했다. 실제로 클레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에서도 웨스턴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이터널스> 전까지 자신의 모든 영화를 촬영했던 촬영감독 조슈아 제임스 리처드와 함께 <노매드랜드>를 촬영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펀’이라는 인물은 결국 집을 떠나 황야로 걸어 들어가는 존 웨인의 현대적인 캐릭터이어야 하고, 존 포드의 고전 영화를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쇼트들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이렇게 해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포획된 한 인물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서부극에 등장하는 서부개척자들 또는 영웅들과 노매드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부극의 인물들은 도착과 정착을 원하지만, 노매드들은 떠남과 방랑을 원한다. 서부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집과 마을을 지을 장소를 향해 전진한다. 그들은 항상 수평선을 향해 걸어가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노매드랜드>의 노매드들은 정착했던 곳을 떠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수평선을 향해 가지만, 그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은 길이다. ‘펀’이 분명하게 말했던대로 그들은 houseless지만 homeless는 아닌 것이다. 로드무비로써의 <노매드랜드> 그러므로 <노매드랜드>의 인물들은 정착하고 머물던 곳을 떠나 길 위에 선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서부극이라기보다 오히려 로드무비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서부극은 마지막에 갈등이 해결되고, 로드무비는 끝날 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태반의 로드무비는 성장영화와 동의어다. 하지만 <노매드랜드>는 이런 일반적인 로드무비와 다르다. <노매드랜드>의 펀은 길 위에 있지만, 목적이 없다. 그는 생존을 위해 길을 선택한 자다. 그의 목적은 방랑이다. 그래서 그는 정착을 두려워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두 번씩이나 정착할 기회를 얻는다. 한번은 여동생에게서, 한번은 남자친구에게서, 그러나 그는 편안한 침대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선다. 모두가 이런 삶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실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일부러 육체적 불편함을 선택하는 일은 그렇게 낯설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몬티 헬만의 마스터피스 < 자유의 이차선 >의 낭만주의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1968년 파격적인 결말을 담은 전설적인 로드무비 < 이지라이더 >가 세상에 나온 지 3년 만에 나온 이 영화는 건조하고 불친절하지만 도전적인 로드무비이면서 <이지라이더>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결말을 가진 영화다. 몬티 헬만의 최고 걸작이며, 영화사에서도 <분노의 총성>과 함께 종종 언급되는 영화다. 로드 무비의 장르적 컨벤션을 전복시키는 이 영화는 제대로 된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이 왜 차를 집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끊임없이 자동차 경주를 하면서 앞으로만 달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주한다. 목적지가 동부인 것 같지만,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다. <자유의 이차선>이 내재하고 있는 주제는 이렇게 <노매드랜드>의 주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두 영화 모두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차의 이미지로 끝이 난다. 물론 <자유의 이차선>이 한 발 더 나아가지만, 목적과 목적지 없이, 오직 차로 달리는 것만이 목표인 로드무비는 50년 후에 한 이방인 출신의 미국 감독의 손을 통해 환생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격변의 60년대를 방황하던 <자유의 이차선>의 이름 없는 젊은이들은 50년 후 <노매드랜드>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파산한 ‘노매드’의 모습으로 다시 길 위에 선 것이다. “어디에나 틈은 있어.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오지“ 제시카 부르너의 <노매드랜드>의 원작 첫 장에는 레너드 코먼의 문구가 써 있다. "어디에나 틈은 있어.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오지." 클레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원작을 클레오 자오의 방식으로 변주한 영화지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틈과 빛’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틈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집이 아닌 길을, 정착이 아닌 방랑을 선택한 자들에 관한 영화. 그‘노매드’들이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찾아가는 영화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따뜻하게 그려냈다거나, 눈부신 미국 서부의 풍경 때문이 아니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져버린 희망 없는 인생도 살아낼 수 있는 세계,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도 가능한 삶이 존재하는 세계, 전통적인 사회적 통념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를 정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긍정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세계에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오빠가 가르쳐 준 노래), 결국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하며(로데오 카우보이), 살기 위해 길 위에서 노동을 하고(노매드랜드), 각자 결핍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사랑 때문에 창조주(부모)의 명령을 거부한다.(이터널스). 이렇게 클레이 자오의 세계 속에는 꿈 같은 거 없이 상실감과 결핍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존엄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좁은 틈으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고 있다.
무해한 풍경과 친절한 예의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길가 한편의 나무 그늘 아래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가 농작물을 작은 소쿠리에 담아 팔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길목에서 할머니는 맹목적일 정도로 성실하게 자리를 지킨다. 매일 늦은 오후 퇴근해 자전거를 타고 동생이 있는 집에 돌아가는 계란장수 청년은 말도 없이 비닐봉투에 계란 다섯 개를 담아 할머니에게 주고 떠난다. 눈이 부시도록 쨍한 연두 빛 논밭을 가르며 달려가는 자전거 위로 분홍과 연보라가 섞인 노을이 하늘에 스며든다.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영화 < 소리도 없이 >는 인스타그램의 여행 포스팅에 등장할 법한 무해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오프닝의 시체 처리 장면 바로 다음에 붙인다. 시골 장터의 평범한 계란 장수처럼 보였던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은 조직 폭력배들에게 고문과 살인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고 깔끔하게 시체처리까지 해주는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의 일은 공유오피스 대여사업처럼 일상적이고 체계화되어 있다. 꼼꼼하게 우비, 고무장갑, 위생모자를 착용하던 창복은 자신이 입은 노란색 우비가 태인이 어린 시절 입던 것이라며 회상에 젖기까지 한다. 때리는 사람의 신장에 맞춰 사람을 매달고, 피가 묻지 않게 겉옷을 보관해주고, 바닥에 넓게 비닐을 깔아주는 작업과정은 전문적이고 분업화되어있다. 이들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업계의 프로다. 하지만 창복과 태인은 왜 그 사람이 납치되어 살해당하는지 절대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잠시 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거기까지이다. 곧 살해당할 그는 조립라인 위의 처리해야할 일거리에 불과하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폭력과 살인의 끄트머리에서 포장과 폐기를 담당하는 창복과 태인은 스스로를 악인이라 생각지 않는다. 특히 창복은 죄를 사해줄 것이라 믿는 다종다양한 종교에 기대 죄책감을 가볍게 털어 버리고, 근면성실과 겸손을 강조하며 지루한 충고를 쏟아내고, 소소한 배려와 선행을 베풀며 자신을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라 믿는다. 창복은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복신앙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다. 태인은 불만이 있어 보이지만 창복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다. 태인은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누구도 그의 의견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마지막 ‘판단’을 내린 후 생각을 멈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는 더 이상 소통하기를 거부한다. 창복과 태인은 가능한 다른 이들의 삶에 얽히지 않으며 그들의 세계를 최대한 축소하고 경량화한다. 그들의 삶에 타인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교류하고 돈 벌며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친절과 예의이다. 이 영화에서는 언뜻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모호해 보인다. 드러난 행위만 보면 모두가 성실하게 자기 일 잘 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예의바른 태도가 도덕과 윤리를 대치한다. 그들은 꼬박꼬박 ‘선생님’ ‘실장님’ ‘부장님’이라 부르며 서로를 높이는 호칭을 붙이고 존대를 한다. 일이 끝나면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도 잊지 않는다. 조직 폭력배 실장은 태인이 말을 안(못) 한다고 하자 입을 크게 벌리고 천천히 말하며 입술을 읽게 하는 ‘배려’를 베푼다. 유괴 아동을 인계한 범죄자들은 아이들이 잠시라도 편하게 머물도록 알록달록한 가구와 장난감이 있는 놀이방을 갖춰둔다. 하지만 이 모든 친절과 예의범절, 상대방을 배려하는 ‘선한’ 행위에 실제로 타인의 의향과 행위의 맥락은 빠져있다. 그들이 공들여 제공하는 태도와 형식은 자기 목적과 이익을 위한 것이다. <소리도 없이>는 오프닝에서 상세한 시체처리 과정과 목가적인 농촌풍경을 붙여, 형식과 내용의 뒤틀어짐, 순간적인 기분과 지속적인 정동의 불일치, 사건의 맥락과 단발적 행동의 모순이 팽배한 동시대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창복의 ‘노란색 우비’ 대사는 둘이 오래 함께 일한 사이좋은 직장 선후배나 유사 부자관계인 것처럼 들리지만, 곱씹어보면 창복이 태인을 어릴 때부터 착취해왔다는 사실을 가늠해볼 수 있다. 혹은 창복이 태인을 납치한 걸 수도 있다. 창복과 태인의 관계에서 태인은 분명 피해자다. 토끼의 기지와 별주부의 어리숙함 홍의정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별주부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별주부전>에서 별주부는 용왕의 병 치료에 쓸 약으로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뭍으로 올라온다. 별주부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며 수궁으로 토끼를 유인하지만, 토끼는 육지에 간을 두고 왔다는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한다. <소리도 없이>에서 태인은 별주부이고 유괴 아동 초희(문승아)가 토끼다. 납치된 초희는 토끼 가면까지 쓰고 있다. 창복과 태인은 유괴조차 자기들의 의지로 행하지 않는다. 영화는 ‘의도치 않게’, ‘엉겁결에’를 강조한다. 수동성의 강조는 가해자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다, 피치 못했다’는 모두 가해자들의 반복되는 전형적인 대사가 아닌가?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선택의 계기는 늘 존재했다. 분명 피해가 발생했고 돈을 받아내기 위한 인질이 된 초희는 그 피해자이다. 그런데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질적인 세계의 초희가 태인의 삶의 반경에 들어오게 되면서 태인은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인 초희가 역으로 자신과 동생을 도와주는 행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초희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창복과 태인의 기분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난장판인 집안을 치우고 태인의 동생 문주를 씻기고 식사예절을 가르친다. 방치되어있던 문주는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 가족의 초희를 만나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태인조차도 이러한 초희에게 마음을 연다. 마음의 동요는 타인을 인지하게 하고 그것은 생각과 판단을 요청한다. 별주부 역시 창복과 태인처럼 자기 의지보다는 용왕에 대한 충심과 자기 관직의 수호를 위해 움직인다. 이 우화에서 토끼는 낯선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황을 판단한다. 뭍에서도 토끼는 약자이기 때문에 늘 포식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머리가 좋아야 한다. 용왕이 간을 원할 때 발휘한 기지는 갑자기 생겨난 능력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들만 귀하게 여기는 집안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랐을 초희는 부모의 맘에 들기 위해 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태인의 집에서 초희가 한 행동은 토끼의 기지와 유사하다. 그렇다고 태인과 문주, 부모를 향한 초희의 마음이 완전히 가짜인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는 순간적으로 진짜일 수 있다. 태인이 초희를 장기밀매업자에게 보냈지만 마음을 바꿔 구한 것, 초희가 무서울까봐 화장실 밖에서 손뼉을 쳐준 것, 유괴와 몸값 요구에 참여했지만 가족들에게 돌려보낸 것도 진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별적 선행이 애초의 가해를 뒤집을 순 없다. 반복해 말하지만 태인은 유괴범이고 가해자이며, 초희는 유괴된 아동이며 피해자이다. 영화는 이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태인을 약자이자 피해자로 만드는 창복을 제거한다. 태인의 선택을 대리하는 창복이 사라지면서 태인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게 된다. 그 순간에 태인은 조직폭력배 실장이 죽으면서 남기고 간 양복을 입는다. 양복은 좁디좁은 자신의 세계 밖의 다른 삶을 상징한다. 그러나 선악을 판단하고 도덕과 가치를 사유하는 주체적 삶은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태인은 자신의 선택으로 가장 선한 일을 했다고 판단한 바로 그 순간, 자신이 유괴범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홍의정 감독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피해 생존자이자 머리를 잘 쓰는 주체적인 토끼보다는 어리숙하고 용왕의 말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별주부에 감정이입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별주부는 용왕만큼은 아니지만 토끼를 납치한 가해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초희는 가해자를 정확하게 지목하고 호명한다. 태인은 그 지명이 힘에 겨운 듯 도망치며 동경했던 ‘사유하는 주체’의 양복을 벗어 던진다. 도덕이 사라진 시대의 알레고리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낭만주의 예술에서 상징에 비해 폄하 당하던 수사인 알레고리를 재개념화하고 조명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상징은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순간적으로 총체성을 이루며 명징하고 스스로 완결성을 갖는 아름다운 기호이다. 반면 알레고리는 우연적이고 무정형적이며 여러 시간적 계기 속에서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역사적 번역과 파편적 몽타주의 작동을 요구한다. 알레고리에서 의미는 은폐되어있음으로 해서 소통의 (불)가능성과 다의성이라는 의미작용 그 자체를 노출시킨다. <소리도 없이>는 <별주부전>처럼 피해와 가해, 즉 도덕의 알레고리이다. 벤야민이 재개념화한 알레고리처럼 현대 사회에서 피해와 개해의 문제는 명징하지 않으며 복잡하다.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이라는 통일된 정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위치도 다중적이고 뒤집어질 수 있다. 피해자는 주체적이고 똑똑할 수 있다. 가해자는 소소한 선행을 베풀고 예의바르거나 어리숙할 수 있다. 또한 한 사건에서 가해자인 이가 다른 사건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게다가 현대의 소비주의 사회에서 가치와 형식은 쉽게 뒤집어진다. 무해한 아름다운 풍경, 선행, 예의 이런 것들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모두가 고객이고 모든 행위가 ‘손해 보지 않으려는’ 거래일뿐인 시대에 단순히 서비스의 형식일 뿐이다. ‘착한 가격’, ‘착한 소비’처럼 말이다. 역으로 사람은 손쉽게 상품이 된다. 유괴범과 장기밀매업자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은 고객 만족을 위해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거래 품목일 뿐이다. 도덕이 사라진 시대,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형화된 모습도 부재하고 그 위치성도 복합적인 시대에, 알레고리의 서사는 그 불일치와 혼란을 드러낸다. 그러나 알레고리가 각 사건에 분명히 존재하는 피해와 가해 사실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레고리는 피해와 가해가 발생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양상이 기대한 바와 다르다며 혼란스러워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고전 서사 <별주부전>이 토끼의 ‘간계’와 별주부의 ‘충심과 어리숙함’을 강조하며 순간적으로 감정이입을 뒤집지만 납치 사건에서 피해자는 토끼요 가해자는 별주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피해와 가해의 서사와 캐릭터는 복잡하고 기대를 벗어나 혼란스럽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와 가해자 혹은 피해와 가해 사실을 규정하고 밝혀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양복의 무게 태인은 양복을 입으면서 처음으로 생각하는 주체가 된다. 그의 삶에서 이 계기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는 사유와 판단의 주체로서 가해자임을 받아들인 것인가, 아니면 사유 없는 행동을 수행하며 테이프에 녹음된 기도소리에 기대어 살아갈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즉석 사진의 인화과정처럼 검은 무지 화면 이후 서서히 드러나는 ‘소리도 없이’라는 제목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영화는 태인처럼 뒤늦게 자신을 호명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게, 의도치 않게 ‘괴물’이 된 태인은 사유를 통해 대면한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 영화의 처음 제목은 ‘소리도 없이 괴물이 된다’였다). 타이틀씬 이후 영화는 창복, 태인, 초희, 문주가 따뜻한 햇살 아래 즉석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멜랑콜리한 이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초희가 부모에게 보낼 사진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었던 사진과 비교해 무엇이 더 진실인가. 둘 다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저 순간의 넷은 즐거웠지만 그렇다고 초희가 유괴된 아동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지는 상징처럼 순간적이다. 순간을 포착한 스냅 사진 이미지는 알레고리 속에서 총체화를 방해하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의미작용이 가능해진다. 말하기를 멈췄던 태인은 그 스스로가 소통불가능성 시대 의미작용의 알레고리였다. 사유를 시작하고 가해자가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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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편의 임권택 의 첫 번째 영화에 관해서 썼다. 첫 번째는 그의 ‘두 번째’ 첫 번째 영화 < 달빛 길어 올리기 >이고, 두 번째는 그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다. 이번에는 나의 첫 번째 임권택 영화를 쓸 차례이다. 말하자면 나의 마들렌의 시간. 부디 당신께서 잠시 동안 내가 되찾은 시간에 잠겨서 배움을 구했던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길. .... “혹은 그처럼 오랫동안 기억 바깥에 버려진 그런 기억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분해되어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조언. 그래서 나는 그것을 여기서 불러오려고 한다. “뿌리 깊게, 무형으로, 집요하게, 충실하게, 오래 동안 넋처럼 남아있어,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 환기하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종종 나는 동료들과 임권택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말고 문득 질문을 한다. 당신이 첫 번째 본 임권택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물론 이 질문은 자료를 거슬러 올라가서 기억을 더듬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의 정확한 판본은 당신이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고 본 첫 번째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는 것이다. 이미 내 주변에는 1962년 2월 4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이 질문이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그런 다음 공중에 매달린 시간. 약간의 우회. 1979년 그해 봄.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그때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영화의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세 개의 별은 알프레드 힛치콕과 장 르누아르, 그리고 고다르였다. 물론 당신은 다른 이름을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거기에 몇 개의 별을 더할 것이다) 그때 앙드레 바쟁의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차라리 한 줄씩 외우고 있었다. 그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내게 해 준 충고. 시를 음미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 시를 불러내서 낭송할 만큼 외어야만 해요. 그때 비로소 당신은 한 단어씩, 한 문장씩 맛보게 될 거에요. 나는 영화를 음미하고 싶었다. 거의 매일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보았고, 1968년 이후 서울에서 상영된 단 한편의 쇼 브라더즈 영화도 놓치지 않았으며, 매주 주말 텔레비전에서 명화극장을 보았다. 그때 내가 본 한국영화들은 대부분 나를 실망시켰다. 당신은 이 시절 한국영화의 대부분이 반공영화이거나, 새마을영화이거나, 혹은 문예영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각색영화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외화 스크린 쿼터를 따내기 위해서 최소의 제작비로 재빨리 촬영한 다음 의무 상영일수를 마치기가 무섭게 간판을 내렸다. 대중들은 텔레비전으로 모두들 떠난 다음의 일이다. 내게는 어떤 나침반도 없었다. 나는 한국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다만 동시상영으로 내가 보고 싶은 영화와 함께 상영할 때 할 수 없이 절반만 본 다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떠났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문학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비평은 전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계간지를 읽기 시작했다.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은 배움의 시작이었다. 김병익과 염무웅, 그리고 백낙청, 그런 다음 김현. 누구보다도 박현채. 민족문학론이라는 말. 내가 사는 땅. 제 3세계로서의 한국문학. 처음에는 그렇게 내 앞에서 오래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두 개의 말,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나는 문학비평에서 사용된 말들을 영화로 번역해서 읽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 말을 고스란히 한국영화에로 돌렸다. 한국영화, 당신은 무엇입니까? 그때부터 나는 한국영화를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하나의 씬 안에서 서로 맞지 않았으며, 등장인물들은 종종 서로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었고, 줄거리는 너무 나빴으며, 대사들은 상투적이었고, 후시로 녹음한 대사들은 입과 따로 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남산에 자리했던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가끔씩 마련한 상영 일정을 찾아가 최인규 의 < 자유만세 >, 이강천 의 < 피아골 >,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유현목 의 < 오발탄 >, 김기영 의 < 하녀 >, 신상옥 의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를 보았다. 한국영화는 아주 가끔씩만 좋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나라에서 나는 마치 외국영화를 보듯이 한국영화를 보았다. 아마 봄날 이었을 것이다. 그날 걸어가던 길 가로수가 막 피어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 수업은 마침 휴강이었으며, 나는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오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면 건물 오층에 작은 극장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 극장의 이름이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날 상영되는 영화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표를 산 다음 극장에 들어갔다. 아침나절 이른 오전의 텅 빈 객석. 따분한 표정을 한 매점 소녀. 운 좋게도 영화는 잠시 나를 기다린 다음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항상 가장 나쁜 자세로 영화를 보았다. 먼저 언제나 가운데 통로 쪽 가장자리를 잡았다. 두 손으로 옷깃을 잡은 다음 의자 깊숙이 몸을 반쯤 비틀고 그런 다음 한쪽 발을 앞의 의자에 걸치고 다른 발을 그 위에 포개어 올려놓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영화가 시작한 다음에야 알았다. 그냥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줄거리는 시작하자마자 아, 오늘은 망쳤구나, 라고 나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조선총독부. 일제 강점하를 무대로 한 영화. 경기도청 총력 1과에 다니는 일본인 다니( 하명중 )는 지시에 따라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는 지주 설진영( 주선태 )를 만나러 간다.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창씨개명을 하는데 유독 수원 지역의 반발이 심해서 다니는 지역 유지인 설진영을 만나 설득을 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드라마로도 방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미 영화에 관심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이 영화의 진행이 내가 실망한 것과 달리 갑자기 어느 순간 어떤 특수한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두 개의 순간. 이 순간(들) 사이의 간극. 어쩌면 실망이 나로 하여금 텅 빈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그저 이미지의 표면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여기엔 설명해야할 새로운 조건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없어도 되는 장면들이 길게 이어지고, 때로 있어야 할 장면들이 없으면서 새로운 리듬이 나타났다. 간단한 예. 영화의 이상한 계산법. 4 +6 +5 와 2 +6 +7 을 각각 더하면 그 결과는 동일하지만 이 두 셈의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때 동일한 결과를 다시 7 +0 +8 로 늘어놓으면 0은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때 0은 ‘제로’가 아니라 미지수 x가 되는 것이다. 왜 그 자리는 비어있는가.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서관 서가의 빈 칸. 어느 순간보다도 영화가 시작되고 19분이 막 지났을 때, 다니가 설진영의 집에 머물면서 혼자 저녁을 맞이하며 문득 여기가 한국의 전통적인 집 안이라는 느껴보기 시작할 때, 이 영화는 (그 당시의)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리듬으로 전체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 리듬이 전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의 선에서 시작되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나는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내가 지금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때 이걸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이 리듬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몹시 우아하다는 걸 보았다.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포스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監督 林權澤’이라고 써 있었다. 그 당시 한국 영화포스터는 이름을 모두 한자로 썼다. 임권택 의 68번째 영화. 그런 다음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 족보 >가 내가 본 첫 번째 임권택의 영화는 아니다. 이미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동시상영을 하는 다른 영화와 함께, 하지만 나는 그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때로는 중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하여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아왔(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인터뷰를 위해서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그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족보>는 내가 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염두에 두고 차례대로 보기 시작한 첫 번째 임권택 영화이다. 나의 첫 번째. 차례로 본다는 문제. 나는 거기서부터 셈을 시작하였다. 무엇이 나중에 오고 무엇이 먼저 나타난 것일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아있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을 임권택이 계산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나타난 그 영화의 어쩔 수 없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 족보 >는 일제 강점하 1930년 경성에서 태어난 다음 여기서 10살 때까지 살았던 일본인 가지야마 토시유키(梶山季之)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먼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이때 드라마 대본으로 한운사가 쓴 각본을 영화사 화천공사에서 가져와 임권택 에게 영화화를 제안하였다. 가지야마 토시유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사람은 임권택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67년 신상옥 이 만든 < 이조잔영 >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의 많은 소설들이 한국에도 번역될 만큼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가지야마 토시유키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조선’에 대해서 향수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기 소설 속에 그려냈다. 그러나 그가 ‘조선’에 관한 소설만을 쓴 것은 아니며 추리와 포르노를 곁들인 일본 기업소설로 더 유명하다.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가 1975년 홍콩에서 원인불명으로 객사했다는 사실이다. 그 말은 가지야마 토시유키는 임권택의 <족보>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가 쓴 소설 속의 문학적 ‘조선’에 대해서 평가할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 그 대신 먼저 가지야마의 소설을 살짝 읽어본 다음 영화에로 옮겨갈 것이다. 소설 <족보>에서 다니가 설진영을 찾아오는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도를 따라 작은 내가 흐르고 있다. 파란 풀 무리였던 뚝도, 버드나무 가로수도 이제는 갈색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빨래를 하고 있는 농부의 손이 찬물에 빨갛게 얼어 보인다. 마른 풀 위에 널어놓은 흰 저고리와 치마는 무딘 초겨울의 햇살을 받으면서 왠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으로 눈에 비친다. 길의 좌우는 넓고 끝없는 추수가 끝난 그루터기가 우수수 기분 나쁘리만큼 정연하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조금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임권택 은 대본을 읽은 다음 이 소설의 원작을 읽었다. “내가 원작을 읽어보니까 이미 기울어져가는 한국 농촌풍경을 그려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지배자의 입장에 선 사람의 감상이 풍경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요. 그 풍경 자체가 음산하고 살풍경하고 별로 정이 붙지 않는 그런, 이미 기울어져가는 나라이면서, 풍경 자체로 기울어진 나라의 을씨년스러움을 계속 잡아나가는 거요 ... (중략) 그런데 나는 왜정시대를 살면서, 이런 가혹한 지배 아래서도 한국인끼리 일어나고자 하는 활력이 그 안에 있다고 보는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둘 사이의 차이. 소설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계절이다. 거의 가을이 끝나가고 추수도 마친 다음 이제 막 겨울이 오기 시작할 때 시작했던 소설은 영화에서 막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계절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소설이 일인칭 화자 나,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을 영화는 바꾸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소설은 거의 다니의 독백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풍경들은 거기 그 자체로 존재하는 대신 모두 주관적인 감정을 담고 형용사의 세계로 옮겨간다. 다니의 발길. 나의 시선. 이때 이 영화를 본 다음 나는 기묘하게도 소설에서 영화에로 각색하면서 단지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서 초여름으로 옮겨갔다기보다는 무언가 계절을 거슬러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정시대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력에 넘치는 조선인”의 계절. 초여름. 한창 피어나는 나무들. 이제 막 시작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논밭들의 기운. 일본인들이 지배하지만 이 땅의 계절을 어찌해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제 강점하이다. 결국 설진영은 창씨개명의 요구 앞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저항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다니는 그 장례식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여름이 끝날 것이다. 그런 다음 가을이 지나가면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잠시 미룬 계절의 잠깐 동안의 이야기이다. 역사 안의 틈새. 잠시 동안 가졌던 시간의 일시적인 환대. 예정된 수순. 하지만 그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간격. 말하자면 임권택 의 간격. 그렇다. 내가 임권택의 영화에서 본 것은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간격이었다. 내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간격의 리듬들. 영화가 그 어떤 한계에 부딪칠 때 그 안에서 찾아내는 새로운 면들, 또 다른 선들, 그 안에 가득 찬 힘이 모여 있는 점들. 그런데 그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붙잡은 질문. 나를 사로잡은 힘들.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S# 10 S# 11 S# 12 S# 13 S# 14 S# 15 S# 16 S# 17 S# 18 S# 19 S# 20 첫 만남의 과정. 순서대로 하는 내 경험의 고백. 판에 박힌 듯한 질서의 리듬이 갑자기 멈추고 이 모든 것들이 다시 구성될 때, 그래서 마치 기습처럼 내게 느껴졌을 때,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 머물면서,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들을 베끼고 있는 듯한 질서로부터 갑자기 빠져나와 쇼트의 리듬이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갈 때,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내가 모르고 있을 때, (여기서 내가 느끼고 있을 일인칭 주어의 이동을 유심히 느껴주시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볼 때, 나는 새로운 영화와 만났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항상 새로운 영화와 만났다. 영화가 시작한 다음, 가지야마 토시유키의 소설 속의 다니의 방문을 소개한 바로 위의 문장을 영화로 옮긴 그 장면에서부터였다. 임권택 은 가지야마의 소설에서 다니가 설진영을 찾아오는 장면을 20개의 쇼트로 찍었다. 매우 건조하게 찍힌 조선총독부 실내 구석에 홀로 서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긴 다니를 보여준 다음 갑자기 영화는 바깥으로 나온다. 나는 < 족보 >를 설명하면서 몇 차례이고 갑자기, 라는 말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어느 순간, 자꾸만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은 갑자기, 의 쇼트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경성을 벗어나서 수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장면이 없다. 그 대신 생각에 잠기자, 마치 그가 상상하는 조선의 풍경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이미, 수원의 설진영 마을의 근처에 와 있다. 첫 쇼트는 다니가 멀리서 걸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S# 1) 이때 이 장면은 이상한 방법으로 다니를 바라본다. 그는 여기에 막 도착했다기보다는 마치 그 풍경 안에서 낯설지만 무의미한 오점이 묻어나오듯이, 혹은 스며 나오듯 (수동적으로) 보여 진다. 더 이상한 다음 쇼트. 카메라는 거기서 그대로 아주 멀리 떨어져서 다니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롱 쇼트로 농촌 초여름의 한가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S# 2) 나는 소설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니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 두 번째 쇼트는 다니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다니를 바라보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풍경이 다니를 바라본다. 그런 다음 수평으로 소나무 솔밭길 사이를 따라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가는 다니를 보여준다. (S# 3) 그가 고개를 들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 나무 위에 평화롭게 앉는 백로를 본다. (S# 4) 하지만 임권택은 재빨리 다니의 시점 쇼트를 중단시킨다. 다니의 쇼트로 돌아오면 그는 초록색이 파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 사이를 들여다보면서 한껏 풍경을 느껴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S# 5) 이 설명의 방점은 보여준다, 에 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다니. 임권택은 조금도 그런 모습에 동요되지 않는다는 듯이 수평 로우 앵글로 내려앉아서, 마치 카메라가 그 갈대밭 너울거리는 갈대 중의 하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다니를 바라본다. (S# 6)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카메라. 그 무심함. 그때 등 뒤의 버들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그렇다. 이 장면 전체를 연결하는 힘은 바람의 방향에서 오는 것이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 여기서 살아본 사람만이 느껴보는 초여름의 기호. 다니는 마치 바람에 날려서 금방이라도 여기에 도착한 다음 그 바람결을 따라 이 풍경 속을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저 멀리 논밭을 매는 남편을 위해 점심 찬을 준비한 아낙이 딸의 손을 잡고 막 도착했다. 롱 쇼트.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해가 중천에 든 시간.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풍경은 온전하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S# 7) 가방을 움켜쥐고 주눅이라도 든 듯, 다니는 경이에 차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간다. 그건 분명히 식민지 지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다니는 그저 이 풍경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주춤거리는 이방인으로 보일 뿐이다. 이때 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막 시작한 초여름 옷을 입고 있는 동안 오로지 다니만이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두터운 마지막 겨울 옷, 혹은 이른 봄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마치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인다. 게다가 흰색으로 이어지는 조선 사람들의 하얀 의상과 대조적으로 누런 군복색 옷을 입은 다니는 풍경 속에서 죽은 색처럼 보인다. 수채화처럼 물기가 묻어나는 초여름 풍경 안에 유화의 질감과도 같이 두텁게 처리된 낯선 인물. 당신은 그 사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S# 8) 이때 이 장면의 위로 여자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청각적 쇼트의 반응. 저 편에 네 명의 조선 처녀가 한복을 입고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기를 방문한 낯선 일본인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마치 그의 존재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걸어온다. 흩날리는 초록색 갈대밭. ( S# 9) 그걸 웃으면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걸어가며 마주보는 다니. (S# 10) 하지만 이 쇼트는 처녀들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그녀들 중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같은 말의 반복.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저 멀리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이 보인다. (S# 11)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얕지만 제법 넓은 개울가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는 다니를 다시 한 번, 필요 이상으로 멀리 떨어진, 롱 쇼트로 바라본다. (S# 12) 여기서 음악이 끝난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여기까지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바로 그 다음 장면부터이다. 카메라는 여전히 다니를 쳐다볼 뿐이다. 더 정확하게 다니는 이 장소의 내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는 바깥에서 포함된 얼룩이다. 거기에 있지만 들어맞지 않은 운동의 일부. 보여 지지만 보지 않는 전체의 일부. 중단된 시선의 교환. 왜 이 교환은 불가능해진 것일까. 그때 그것을 어떻게 다시 문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까. 아니, 이 이상한 쇼트들의 진행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일까. 음악이 끝나자 (S# 13) 다니는 이 동네 입구에 막 도착하여 그 안으로 들어선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다니를 감싸 안듯이, 그를 안으로 이끌듯이, 마주보는 대신, 그의 등 뒤에서 걸어가는 방향을 향해 바라본다. 처음으로 동네 입구에 선 청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니가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니를 바라본 첫 시선. 그러나 그가 아직 시선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는 다니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갑자기 카메라는 집 안에 들어와서 대문 바깥 저편에 걸어오고 있는 다니를 아주 작게 보여준다. 사내 한명이 허둥지둥 달려와 집 안의 동네 어른들에게 일본인이 나타났다고 알리자 저마다 한마디씩 수군거린다. (S# 14) 그런데 누구의 집? 여기서 이상한 쇼트가 등장한다. (S# 15) 바로 눈앞에 초록색 나뭇잎이 초여름 바람에 흔들릴 때 시네마스코프 2.35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왼쪽 끝 너머에서 오른 쪽 너머까지 한 채의 한옥이 거기 있다. 그리고 그 한옥 중앙에 대문이 있다. 그 대문 안으로 한옥의 그 너비에 비해 볼품없게 작은 점처럼 보이는 롱 쇼트의 다니가 들어간다. 이때 다니를 따라 들어가는 대신 그 집안의 방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열린 방문을 통해 바라보면서 그를 마중하는 쇼트가 등장한다. (S# 16) 그 방에서 한 사내가 서둘러 나와 다니를 맞이하며 “저, 그런데 어디서 오셨지요?” 라고 묻는다. 이때 그 방이 오로지 한옥에만 존재하는 대문 옆 바깥 행랑채라는 사실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이건 오로지 이 집, 한옥에서만 성립되는 쇼트이다. 다니가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을 이미 바라본 마루 위에 선 사내들 중 아무도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야 할 일. 그때 다른 누군가는 그걸 구태여 하지 않는다. 체계의 세계, 순서의 절차.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진 안내. 그를 따라 다니는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언제나 쇼트는 집 안에서 다니를 맞이하는 방식으로 찍혔다. 중문간 행랑채에서 마을의 노인 둘이서 바둑을 두고 있고 다니는 낯선 동작으로 인사를 하며 마루로 올라올 때 카메라는 두 노인보다 더 안쪽에서 들어서는 다니를 쳐다본다. (S# 17) 그런 다음 카메라는 더 깊숙이 집 안으로 들어가 작은 정원에 서 있다. 이때 사내가 어른의 허락을 받아 나오면서 안채 쪽 마당에서 중문간 행랑채 너머 열린 방문 너머 서 있는 다니에게 전한다. “저, 들어오시랍니다” 집 안에서 더 깊숙한 집 안으로. 그 다음에서야 공손하게 한국인의 방법으로 예를 갖춰 절을 하는 다니의 쇼트와 만난다. 이때 열린 방문 바깥에서 다니의 뒷모습 너머 병풍 앞에 앉아있는 설진영을 보게 된다. (S# 18) 여기서 카메라는 절을 하는 다니의 뒤에서 그만큼 내려온 다음 무릎을 꿇은 다니보다 조금 더 낮은 수평 로 앵글로 서 있다. 그런 다음 명함을 건네고 (S# 19) 비로소 다니와 설진영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란히 앉은 투 쇼트가 등장한다. (S# 20) 순식간에 지나가긴 했지만 이 쇼트들의 과잉은 내게 섬광과도 같았다. 존 포드는 이렇게 찍지 않았을 것이다. (< 수색자 >) 알프레드 힛치콕은 이렇게 집 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 레베카 >) 장 르누아르는 이렇게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 게임의 규칙 >) 오즈는 이렇게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 임권택 은 쇼트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전적인 연출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 족보 >는 한국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영 도 낯선 이가 이렇게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 하녀 >) 신상옥 도 이렇게 낯선 이가 방문하지 않는다.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임권택만이 지금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지금 나는 누가 옳고 그르냐는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멈춰 서야만 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멈춰 세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갑자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윤곽. 한참 뒤의 인터뷰. “다니는 설진영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집이 그 만남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 그 쇼트들이 거기 있어야만 합니까?” 대답을 하기 전에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여긴 한국인거요. 그게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을 만나는 태도인거요, 거기 그런 게 없으면, 그건 한국영화가 아닌 거요, 그러니 그건 도리가 없는 거요” 후렴구. 도리가 없다. 이 무서운 말. 없어도 상관없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거기 있어야만 하는 쇼트들. 이때 비로소 그 쇼트 안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쇼트 안에서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건 마치 집 안에서 그 나라 사람이 살아야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한국이라는 환경. 그 위에 세워진 집. 그런데 그 집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의 방향을 따라 뻗어나가면서 세워진 삶의 틀일 것이다. 벽면과 그 벽의 창문들. 창호지 위로 스며드는 반투명의 햇빛.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그걸 느껴보아야 한다. 적어도 내게 <족보>는 집과 함께 다시 시작하였다.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아온 영토의 한 순간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임권택은 내 아버지와 그 영토의 시간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공통감각. 그들이 살아온 영토. 말 그대로 바탕. <족보>는 그 위에 미장센이라는 면을 세우고 인물들의 동선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주춧돌 위에 선 다음 옆으로 이어지는 가옥의 선을 따라 구도와 단면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 그때 구도는 프레임이 되고 단면들은 쇼트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이상한 인용. “K가 도착했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묻혀있었다.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으며, 어렴풋이나마 큰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도 없었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나무 다리위에 서서 허공으로 보이는 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그는 잠자리를 찾으러 갔다... ” 카프카의 <성>의 첫 문장. 물론 가지야마의 <족보>와 임권택 의 < 족보 >와 카프카의 <성>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러나 다니가 조선의 한 마을, 창씨개명을 완강히 거절하고 있는 이 동네 앞에 들어선 다음, 난공불락의 설진영의 집 안에 들어서서 그가 끝까지 느꼈을 난처함에는 왠지 카프카의 기계 안으로 들어온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이리저리 내쫓기면서 그 어떤 것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경험만을 한 채,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을 뒤쫓았다는 느낌을 준다. 나에게 <족보>는 카프카와 프루스트,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루이스 캐롤이라는 기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용이 오해를 불러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낯선 세계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 다니를 설진영은 기꺼이 환대한다. 설진영의 옆에 앉아있는 옥순. 그의 딸. 물론 그녀가 등장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다니와 옥순 사이의 판에 박힌 듯한 감정선이 생겨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상황은 종종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수 없이 같은 상황을 보았다. 그러나 임권택은 옥순의 선을 이야기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이때 낯익은 선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상투적인 기능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임권택은 그것을 거기 있는 다른 이미지가 차지하도록 이끌었다. 내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순간. 다니는 설진영의 집에서 저녁 만찬을 먹은 다음 그의 집에 머문다. “벌써 6시군요” 시간의 신호. 이제 막 매직 아워가 끝나가는 시간. 초여름의 느린 저녁. 하늘은 아직도 어둠이 시작되기 직전의 푸른 하늘이다. 다니는 사랑채에서 나와 저녁의 밤공기가 가져다준 초여름의 바람을 느껴본다. 그 앞에 이어지는 정원. 다니는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일까. 멀리서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판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충만한 것만 같은 장소. 그때 쇼트는 다니와 정원을 찍는 대신 사랑채 마루 앞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는 다니를 단 하나의 프레임에 담은 다음 다니의 시선을 수평으로 놓고 수직으로 바라본다. (S# 1) 수평의 인물의 시선과 수직의 기계의 시선. 그때 둘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다음 각자의 계열에 따라 작동한다. 임권택 은 거기서 더 물러나면서 수평의 상상선 반대편에서 정원을 가로질러가는 다니를 롱 쇼트로 보여준다. (S# 2) 시네마스코프의 우아한 길이. 그런 다음 어둠이 떨어지고 있는 한옥 기와의 지붕을 보여준다. (S# 3) 다니는 이 정원을 느껴본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한옥 가옥의 면들. 그때 다니의 저 뒤편에서, 마치 스크린의 일부에서 구멍이라도 뚫리듯이 작은 문이 열리면서 거기서, 저 멀리서, 작은 점처럼, 옥순이 걸어 나온다. 이 조용한 화면에서 들리는 나무로 만든 대문소리. 그 소리가 다니를 멈춰 세우고 그 쪽을 보게 만든다. 옥순은 저 멀리서 천천히, 사뿐사뿐, 다니에게 걸어온다. 고무신이라는 신발의 속도, 이때 다니는 잠시 멈춰 섰다가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수평으로 걸어가고 옥순은 저 멀리서 화면 앞에 있는 다니에게 수직으로 걸어온다. 그러나 이때 두 사람은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은 서로 (아직은, 그리고 겉으로는 앞으로도) 아무 사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인(의 딸)과 손님의 사이일 뿐이다. 나는 이 장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왜 여기서 옥순으로 하여금 저 멀리서 걸어오게 한 다음 이미 충분히 앞 장면에서 설명된 설진영과 다니의 호의적인 사이를 다시 한 번 딸 옥순의 입을 빌려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무엇보다 지금 이 데드 타임은 내게 무엇을 느껴보기를 요구하는 시간의 기호일까. 이때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이 쇼트가 이상하게도 어둠 속에서 다니와 옥순을 보여주려 한다기보다는 그들의 표정을 포기하고서라도 더 물러남으로써 만들어내는 새로운 광경의 발견, 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더 넓고 더 큰 화면으로 이루어진 로 앵글의 구도라는 사실이었다. 이때 어스름한 초여름 저녁 막 어둠이 내린 직후의 한옥의 기와의 선들이 거기서 우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쇼트 바로 앞 쇼트의 느닷없는 인서트의 이미지가(S# 3) 구태여 등장시킨 한옥 기와지붕이라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고다르가 니콜라스 레이를 설명하면서 말한 교육의 쇼트. 이때 임권택은 지워져가는 어둠 속에서 모습은 사라져가면서 선으로 남아있는 한옥 기와지붕의 윤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같은 말의 반복. 사라져가는 선. 어둠 속에 지워져가는 한옥. 일제강점하의 조선. 근대 앞의 한국. 그 속에서의 음미.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 불러일으키는 그 가련한 시네마스코프의 선. 윤곽으로서의 영화. 물론 < 족보 >가 모든 점에서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 안으로만 들어오면 난처할 정도로 상투적인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나쁜’ 일본 관료들은 서투를 정도로 도식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가 시작되면 이상할 정도로 영화는 단조로워진다. 그 속에서 마주치는 과도하리만큼 넘쳐나는 민족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힌 쇼트들. 설진영에게 자발적인 창씨개명 협조를 구하지 못하자 일본인들은 그의 딸 옥순의 약혼녀에게 독립군과의 (있지도 않은) 관계를 자백받기 위하여 그를 붙잡아 고문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영화에서 이미 수없이 본 장면의 기계적 반복. 이미 수 없이 경험한 장면의 거의 학습에 가까운 감정의 반복. 일제 강점하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찬 거의 장르에 가까운 이야기. <족보>는 이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마치 이 장면들을 피해갈 수 없다는 듯이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이 영화는 갑자기 모든 점에서 무력해지기 시작한다. 혹은 임권택 은 이 장면들 안에서 구태여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장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수동적인 규칙들. 그것이 만들어내는 종종 자포자기에 가까운 영화적 클리셰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족보>는 기괴하리만큼 좁은 통로사이를 오가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충실하고 창조적인 내부성과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외부성. 여기에는 어떤 통일의 고정점이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내부와 외부가 나누어진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니가 설진영의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거의 모든 쇼트들이 초여름의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을 쇼트들이 느끼면서 한옥의 선과 면들이 이 모든 인물들의 동선을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활동하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이 집을 떠난 다음 조선총독부의 건물로 이동하면 어두운 군복을 입은 일본군들이 가장 상투적인 일제 강점하의 반일영화의 관습에 따라 힘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옥순과 다니 물론 임권택 이 이 둘 사이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예. 잠시 동안 옥순의 약혼자를 일본군이 고문하는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여기서 고문의 장면을 전시하는 것은 다소 기괴하지만 설진영이나 옥순이 아니라 다니의 앞에서이다. 나는 이 설정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옥순의 약혼자와 옥순과 다니. 말하자면 매개항으로서의 옥순. 우리는 물론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통역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옥순을 두 사람의 사이에 설진영이 불렀을 때, 그래서 다니와 옥순이 서로 마주할 때, 그 둘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흐르는 감정의 선을 영화의 관습적인 규칙에 따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임권택은 그 선을 이 이야기 안에서 그저 가능세계로 남겨둔다. 다니와 옥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가능은 그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표현하는 것을 감추면서 단지 영화가 그걸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갈 때 그는 우연히도 옥순의 약혼자와 다리에서 서로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이 쇼트는 아무 것도 기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이 장면을 약간만 찡그려서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의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롱 쇼트로 잡은 구도. 이 쇼트와 동일한 위치에서 우리는 이미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너가던 동일한 쇼트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혼자서 이 다리를 건너갔다. 이번에는 맞은편에서 옥순의 약혼자가 걸어온다. 당신은 이 시퀀스가 다니가 아니라 옥순의 약혼자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옥순의 약혼자는 설진영이 몸져눕자 방문한 다음 조심스러이 병색을 살펴보고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옥순에게 인사를 한 다음 돌아간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다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진영의 집에 오기 위해서 이 영화의 지리적 지도에 따르면 반드시 이 다리를 통과해야만 한다. 설진영의 집으로 가는 기호. 이때 우리는 옥순의 약혼자를 따라가다가 다니를 그 다리에서 마주친 다음 다시 다니를 쫓아서 설진영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다리를 막 지난 다음 다니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든 것처럼,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궁금증이라도 생긴 것처럼 이 남자를 돌아본다. 그러나 옥순의 약혼자는 녹색으로 펼쳐진 논밭 사이의 바람결 속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등을 내보이고 걸어간다. 이 시선의 실패한 교차는 이상할 정도로 보뇩옜二?멈추게 만든다. 다니는 무엇을 느낀 것일까. 왜 다니만이 느낀 것일까. 이 두 말의 차이를 동시에 생각해주기 바란다. 약간의 첨언. 나는 여기서 다소 소심한 추측을 해보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두 개의 계열이 있다. 하나는 다니의 계열이다. 다른 하나는 옥순의 약혼자의 계열이다. 이때 둘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은 물론 옥순이다. 이 연결이 우리에게 쇼트의 감정적 성질을 읽어보도록 요구하는 것은 옥순이 여자라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호 사이에 일제 강점하의 일본과 조선이라는 칸막이 쳐진 두 개의 나라가 이 둘 사이를 강제로 찢어내면서 일종의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 가능한 사랑과 불가능한 사랑. 나는 여기서 옥순의 약혼자에서 시작한 쇼트의 진행이 다리에서 다니를 만난 다음 고스란히 반대의 역순으로 다시 우리를 되돌리는 배치를 생각해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 쇼트의 진행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할 정도로 예절바르면서 어딘가 수줍게 그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각자 다른 자리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운명을 알지 못한다. 그건 오로지 우리들을 위해서 배려한 것이다. 그때 이들을 계속 겹쳐 놓으면서도 임권택은 결정적으로 불편한 자리를 피하면서 우리들에게 그들의 관계의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내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잉여의 쇼트들의 진행처럼 보인 이 장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국 감정의 파국이라는 쇼트와 대면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중의 파국. 그런데 왜 이 장면의 순간을 피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이 순간을 피해야한다는 그 절대적인 노력. 그런 다음 이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될 임권택의 외면. 말하자면 자신의 등장인물에게 갖는 임권택의 ‘한국에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예의의 쇼트.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의 결정에 관한 결정적 순간을 한참이 더 지난 다음 < 길소뜸 >에서 다시 만났다. 두 개의 결정이라는 말의 (공유로서의) 차이. 나는 이 순간을 임권택의 영화에서 ‘외면의 쇼트(face-away-shot)’라고 정식화시키고 싶다. 이 쇼트들은 거의 깨달을 사이도 없이, 미처 돌아볼 분명한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들 사이의 감정적 의미를 우리에게 육화시킨다. 이때 이 장면을 성립시키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영화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우리들은 이들 사이의 고귀한 감정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위태로운 그 관계의 감정 안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나중에야 비로소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종종 임권택은 < 족보 >에서 많은 장면들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의 쇼트들의 능력과 가능한 경험들 사이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종합에 관한 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 족보 >는 그런 의미에서 비탈에 선 영화처럼 종종 보는 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내가 임권택 을 발견한 것은 이 영화가 막 시작하고 난 다음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오는 순간이었지만 내가 앉은 자리에서 이 영화를 두 번 보게 만든 것은 설진영이 집안의 창씨개명을 결정하고 난 다음 자신은 자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약간의 장황한 설명. 설진영은 창씨개명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에 이르고 만다. 손자들마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면서 할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린다. 설진영은 손자들에게 내일 창씨개명을 하마, 라고 약속한 다음 아내에게 긴 독백을 한다. 여기서 설진영이 인용하는 문장은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조선백자에 빗댄 조선 문화(에 관한 주관적인 감상)을 담은 글이다. 이때 임권택은 갑자기 이야기의 계열로부터 벗어나 조선 백자의 이미지 쇼트를 차례로 열거하기 시작한다. 멈춰 세운 카메라. 오로지 백자만이 담겨진 쇼트. 그 단조로운 화면. 하나의 백자가 마치 다른 백자들을 불러오기라도 하듯이 이어지면서, 차라리 백자들이 증식이라도 하듯이, 그런 다음 무려 10쇼트가 차례로 이어진다. 조선 백자라는 그 자체의 세계. 이 말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이 순간 조선백자는 영화보다도 우월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야기가 여기서 중단되어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조선 백자가 만들어내는 기품과 역사가 민족에게 안겨준 슬픔을 여기서, 이 절대적인 쇼트들의 병풍 앞에서, 영화가 느껴보는 시간을 할 수 있는 한 늘려본다. 나는 당신이라고 써야할 자리에 영화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렇게 영화를 진행한다. 나는 이 순간 거의 멈추어 섰다. 그런데도 임권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한옥 기와 지붕을 보여준 다음, 그 기와의 장면을 차례로 5개의 쇼트로 펼쳐 보인다. 이때 이 쇼트들을 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쇼트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쇼트. 차라리 쇼트가 우리를 바라 보는듯한 시간. 그런 다음 갑자기 다음 쇼트와 마주친다. 바로 이 장면. 설진영은 초여름 한 낮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가로수길이 늘어서있는 길 저 편에서 걸어온다. 이때 우리는 15개의 쇼트를 음미하면서 차례로 마주하였다. 혹은 쇼트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쇼트는 원래의 계열로 돌아오는 대신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설진영을 마치 조선 백자를 음미하듯이, 그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이걸 환유의 쇼트라고 단순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쇼트는 그냥 단 한 마디로 거의 절대적이다. 35초 동안 꼼짝도 않는 카메라. 아무런 대사도 없이, 거기서 우리는 초여름의 바람을 느껴본다. 나무를 흔드는 그 바람결. 그런데도 그 바람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설진영이 저 멀리서, 거의 멈추어선 듯한 망원렌즈 앞으로, 그렇게 걸어온다. 그저 그의 흰색 한복 옷깃이 바람에 가끔 흩날릴 뿐이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때 당신에게 충고를 하고 싶다. 이 장면은 발췌해서 보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이 쇼트들의 진행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의 비밀을 맛보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이 장면과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경험적으로 그 방법이야말로 시네마틱 센스를 느껴보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의 비밀을 느껴보는 절대적인 방법이다.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S# 10 S# 11 S# 12 하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이제 임권택 이 이야기의 선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다음 오로지 영화의 힘만으로 버텨보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설진영은 동 사무소에서 가족들의 창씨개명을 차례로 한 다음 자기 이름만 남겨 놓는다. 소장이 의아하게 묻자 그저 무심하게 “게까지는 아직까지 생각해보지 못했소. 차차 할 거요, 잘 부탁하오”라고 말을 끊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 사무소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 나서는 설진영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마을 청년들이 트럭에 짐을 싣는 모습을 본다. (S# 1) 나는 여기까지 그냥 무심코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돌아오는 설진영을 따라 가깝게 다가간 카메라는 수평으로 이동한다. (S# 2) 저 멀리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마치 여름이 지나가는듯한 이 기분. 설진영은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동네 어느 집에 들어선다. (S# 3) 그리고 그 집의 조카와 마주 앉아 그 집 사정을 듣는다. (S# 4) 그런 다음 집을 떠나는 설진영은 골목길을 돌면서 다른 사내와 마주친다. (S# 5) 그리고 골목 담장 길을 따라 혼자 걸어오는 설진영을 보여준다. 점차 설진영으로부터 멀어지는 카메라. (S# 6) 아마도 설진영의 오랜 친구일 법한 동네 어른의 방에서 두 사람의 짧은 대화 (S# 7) 그리고 골목 담장 길을 따라 혼자 걸어가는 설진영 (S# 8) 걸어오는, 과 걸어가는 쇼트의 이어짐. 누군가의 집 대문으로 들어서면 그를 반기며 말한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S# 9) 그 누군가의 집을 나서는 설진영을 바라보는 더 멀리 떨어진 카메라 (S# 10) 그리고 거기서 더 멀리, 아마도 밭 건너에서, 걸어가는 설진영을 바라보는 먼 롱 쇼트. (S# 11) 점점 멀어진다는 말. 세상으로 멀어져가는 시간. 그리고 나서, 해가 떨어지고, 한옥 집이 어둠에 잠겨서야, 설진영은 자기 집 대문으로 들어선다. (S# 12) 이 12개의 쇼트는 사실상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또한 임권택 자신도 여기에 어떤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별다른 대사가 없으며, 어떤 쇼트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쇼트들을 데드 타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쇼트들은 그 계보 안으로 들어선다. 로셀리니가 다시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앙드레 바쟁이 정식화하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하나의 형식으로 만든 시간. 멈추어 섰지만 이상하게 동요하는 시간. 이야기에서 아무 것도 더 나아가지 않지만 앞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시간. 이때 이 시간은 변화를 묘사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찰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어떤 예측도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고 우리도 거기서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때, 거기서 새로운 시간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당신이 고작해야 이야기를 쫓아간다면 여기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설진영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치 직선을 중단한 다음 의도적으로 곡선을 그리듯이 동선을 연결하기 시작할 때 이 행동은 어떤 이야기도 동반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서 이어질 뿐이다. 거기에는 낭만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비통한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쇼트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처음 보았거나, 반복해서 등장했지만 별다른 설명이 없었던 인물들이다. 설진영은 그들 중 누구에게도 오늘 오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결정. 말하자면 사건. 그런 다음 다시 일상의 시간 안으로 되돌아올 때 임권택은 거기서 조금씩 물러난다. 이 씬은 수십 번을 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 한 마디로 이 12개의 쇼트는 < 족보 >에서 그 어느 장면보다도 중요하다. 그건 이 장면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S# 1 S# 2 S# 3 S# 4 S# 5 S# 6 이 12개의 쇼트가 끝났을 때 어쩌면 영화는 이미 함께 끝난 것일 지도 모른다. 설진영은 그날 하루를 끝내고 조용히 이부자리에 눕는다. 그의 죽음에 동반하는 것은 ‘한 오백년’의 슬픈 가사이다.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이 영화에서 우리가 들은 노래. 그 다음은 느닷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눈부시도록 화창한 초여름 한낮 펼쳐진 마당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흰색 상복을 한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장면과 갑자기 만난다. (S# 1) 그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동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이제까지 이 영화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 족보 >에서 카메라가 이야기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인상을 받은 장면은 그 이전까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거의 대담하리만큼 과격하게 손으로 들고 (말하자면 ‘핸드 헬드’) 카메라가 그 인파 속을 꿰뚫고 지나간다. 그 카메라는 흰 색 옷으로 가득 찬 상갓집 방문객들 사이를 지나 그들 사이로 이 집을 다시 찾은 다니를 보여줄 때까지 통과한다. 이때 다니는 이들 모두와 대조적으로 검은 색 양복을 입고 찾아왔다. 흰 색과 검은 색. 수 없이 많은 흰 점과 단 하나의 검은 점. 전통적인 한복의 물결과 단 한 벌의 양복. 전통과 근대. 마치 다니를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카메라는 그를 보자 마치 자석처럼 다가간 다음 다니를 따라서 그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이때 이 장면을 낯설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대낮에 이토록 과격한 카메라의 운동이 드러나 보이고 있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정도의 사람들, 그것도 상갓집을 방문했을 때의 소란스러운 청각적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다. 마치 소리를 잊어버린 것만 같은 쇼트. 그저 운동만 남아있는 화면. 이때 다니의 방문을 가로 막아 나서면서 한 노인이 그의 멱살을 잡으며 “네, 이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라고 외쳐볼 때까지 화면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쇼트는 그런 다음 다시 무겁게 침묵이 내리 누른다. 이 쇼트는 단지 이 씬의 시작이 아니라 이제까지 진행되어왔던 영화 전체와 ‘설진영이 없는’ 나머지 사이의 단절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결정적이다. 아마도 임권택 은 이 씬을 마치 하나의 쇼트처럼 찍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S# 2) 다니가 설진영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집을 찾아오는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은 다음 마루에 올라와 방 안에 둘러앉은 마을 어른들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드리기까지 어쩔 수 없이 나누어야 하는 쇼트를 액션 매치로 두 개의 장면을 연결한 것은 그 예이다. 그런 다음 다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마당에 서 있는 옥순을 바라본다. (S# 3)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다니는 설진영의 영정사진 앞에 간다. (S# 4) 이 네 개의 쇼트의 길이는 짧은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낮이고 설진영은 이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었으며 지금 마당과 방에는 문상객들로 넘쳐난다. 그런데도 이 집에서 우리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무거운 침묵. 그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기보다는 영화가 화면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이 비대칭이 가져오는 음향적 관계는 이상하게도 내게 화면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계절과 관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여름 대낮의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침묵. 나는 여기서 시각적 운동과 음향적 침묵(속의 선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기묘한 부조화 사이에서 어떤 정신적 이미지를 느껴본다. 다니는 설진영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국식의 예법에 따라 절을 올린다. 그때 마치 그 절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진영의 영정 사진을 클로즈업 한다. (S# 5) 좀 더 정확하게 설진영의 사진 위로 다니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이면서 두 개의 이미지가 겹친다. 여기서 이 문장을 곡소리를 듣듯이, 노래를 부르듯이 소리를 내어 읽어주실 것. 웅얼거리듯이 들리는 아이고, 아이고, 라는 곡소리. 망자를 위한 후렴구. 마치 그 절에 대한 반응이라도 오듯이, 다니의 작별인사에 대답을 하듯이, 설진영이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들었던 ‘한 오백년’의, 그 선율을 곡소리 위로 이어 듣게 된다. 이때 절을 올리는 다니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위치는 정확하게 설진영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이다. (S# 6) 그렇게 절을 올리는 다니를 바라보는 유일한 시선은 옥순의 눈길이다. 다니의 바로 뒤에 상복을 입고 앉아있는 옥순. 등과 얼굴. 두 개의 신체. 교차하지 않는 시선. 그때 옥순의 눈길은 다니의 절하는 모습을 따라서 이동할 것이다. 절을 한 다음 일어나는 다니의 등 뒤로 설진영의 영정사진이 보일 때, 두 개의 이미지가 하나가 될 때, 사실상 두 개의 쇼트가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때, 옥순의 마음속의 두 사람이 하나의 눈길 안에 머무를 때, 고인 앞에 절하는 기계적인 운동이 감정의 이미지로 넘어올 때, 감정의 여러 다발이 거기서 각자의 좌표를 설정할 때, 이 모두를 하나로 감싸 안는 것은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바치는 한국적 장례의 예절이라는 복잡한 절차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예절의 액션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의 마지막 작별인사. 상여가 나가는 순간, 그 장면의 비통한 아름다움, 달리 말할 수 없는 그 작별의 아름다움.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장면 앞에서 거의 숨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 고맙게도, 이 장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어떤 장면들은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간 다음, 그 시간의 마모를 견디지 못하고, 그저 망가져버리는 영화 속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목을 탄식하였다. 그러나 < 족보 >는 그때 내가 본 아름다움이 말 그대로 숭고하리만큼 보는 나를 사로잡은 다음 그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움직임의 힘이 발생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볼 때마다 일깨워주었다. 이 말의 방점, 다시 볼 때마다. 물론 나는 이 장면을 카메라의 움직임과 쇼트의 단위, 그리고 인물들의 동선과 이러 저리 휘어진 논두렁길의 곡선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는 그 설명을 그냥 지나쳐버린 다음 만들어내는 그 무언가의 출현이 거기 있었다. 무언가는 거기서 매번 소멸하겠지만 그러나 반대로 무언가는 거기서 불멸하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은 이미지의 힘이 아니었다. 나를 이끌어 어느 순간으로 들어 올린 다음,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의 공중에 나를 매달아 놓고, 마치 멈춘 듯한, 그 어떤 힘의 약속, 프루스트라면 시간으로부터 탈취한 그 어떤 순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특별한 진공의 시간, 이 장면은 임권택이 내게 한 약속의 시간이다. 어떤 약속? 영화, 더도 덜도 아닌 영화라는 약속. 나에게 임권택 은 여기서 시작하였다. 아니, 그렇게 나는 임권택을 만났다. (계속) 1978년 110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화천공사 각본 한운사 촬영 이석기 음악 정민섭 미술 김유진 편집 김희수 하명중 다니 주선태 설진영 한혜숙 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