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 감독
- 존 포드
- 제작년도
- 1940
- 출연
- 헨리 폰다, 제인 다웰, 존 캐러다인, 도리스 바우든, 러셀 심슨, 존 쿠알른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영화는 소설가 존 디디온의 한 문구로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논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 봐야 한다.” 시작부터 이야기가 펼쳐질 곳이 얼마나 지루한 곳인지 알려주는 이 영화에는 모든 것을 지루해하는 여자애가 등장한다. 기찻길 옆 낡은 주택에서 엄마, 아빠, 오빠 그리고 오빠의 여자친구와 살고 있는 이 여자애의 이름은 ‘크리스틴’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여자애의 이름이 ‘크리스틴’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를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기 때문이다. 뮤지컬부 오디션에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에 왜 인용부호가 붙였냐는 질문에 “제가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이거든요. 저에게 제가 준 거예요.”라고 말하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은 무척 당차지만 그 뒤 이어지는 노래와 댄스는 조금 우스꽝스럽다.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사실 조금 우스꽝스럽다. 말과 행동은 왠지 과장되어 있고 튀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새 몸통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포스터로 학생회장에 출마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급 주택이 자신의 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나 수녀 선생님 차 뒤에 “방금 예수님과 결혼했어요.”라는 푯말을 붙이는 종류의 장면들을 보다 보면 레이디 버드 혼자서 펼치는 1인 코미디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런 과장된 행동들은 레이디 버드가 ‘모든 것을 지루해 하는 여자애’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건 영화의 초반 장면부터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좋겠어.” 대학 탐방을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레이디 버드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자 엄마는 레이디 버드의 ‘의지 없음’을 지적하고 그것은 모녀 사이의 대화가 대게 그러하듯 곧 말싸움으로 번진다. 레이디 버드는 결국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린다. 이 장면은 우리의 주인공이 얼마나 발칙한 고등학생인지 보여준다. 엄마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정도라니. 또한 이 장면은 레이디 버드는 지루함을 기꺼이 참아주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화면이 전환되고 가톨릭 미사에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설렁설렁 임하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새크라멘토, 가톨릭 학교, 잔소리 하는 엄마 등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것들이 얼마나 지루한지 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가 지루한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 반에 들어가고 첫 연애를 하고 엄마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는 과정들은 바로 레이디 버드의 ‘지루함’ 때문에 일어났다. 첫 남자친구를 사귀고 첫 섹스를 하고 베스트 프렌드 대신 잘나가는 새 친구를 사귀어보려는 시도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영화는 여타의 성장 영화들처럼 도망침의 결말에 주목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도망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완벽하지 않고 실수투성이이다. 프롬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가서 엄마는 레이디 버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항상 완벽한 모습이기를 원했어.” 레이디 버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나의 완벽한 모습이라면?” 영화는 완벽하지 않은 십대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미숙하다. 이 영화가 레이디 버드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성장의 속성이다. 크리스틴이 직접 지은 ‘레이디 버드’라는 예명도 꽤나 상징적이다. 실수투성이인 사랑스러운 주인공은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데미안의 새 이미지라던가 날아오르기 연습을 하는 아기새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다루는 불완전성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둘의 관계는 묘하다. 서로를 가장 증오하면서도 가장 사랑한다. 서로가 완벽한 존재이기를 원하지만 가장 불완전하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의 성장 영화이기 전에 모녀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둘의 이러한 기묘한 관계는 초반 자동차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대학 탐방에서 돌아오던 날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다가도 곧바로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관계. 구제 옷가게에서 티격태격하다가도 괜찮은 드레스를 발견하자 바로 표정과 말투가 밝아진다. 앞서 영화가 크리스틴 혼자 펼치는 1인 코미디극 같은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었다. 초반에 받았던 그 느낌은 후반으로 갈수록 옅어진다.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이 ‘레이디 버드’ 너머의 것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친구, 엄마, 아빠 등의 이름의 관계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경험할 만한 순간들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레이디 버드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다. 진솔함을 느끼게 되는 데는 이 영화의 시선도 한 몫 한다. 이야기 전개를 화려하게 비틀고 이끌어 나간다기 보다는 어떤 관찰자가 그저 담담히 성장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후반부에서 영화는 1인 코미디극에서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로 변모한다. 끝까지 영화는 어떤 대단하거나 놀라운 순간을 통해 성장을 축복하려 하지 않는다. 완벽은 이 영화의 종착지가 아니다. 대신 새크라멘토의 풍경처럼 소박하고 천천히 그녀가 성장했음을 알린다. 첫 시퀀스에서 엄마와 딸의 대화 장면을 통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레이디 버드에게 있어 ‘지루함’의 대상에서 ‘그리움’의 대상인 것들을 나열해 보여준다. 교회와 부모님, 새크라멘토 말이다. 신입생 파티에서 술에 취해 깨어난 다음 날 아침, 레이디 버드는 뉴욕의 낯선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 발길이 향한 곳은 그토록 지겨워했던 교회였다. 교회에서 나온 레이디 버드는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아빠, 저에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 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아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엄마에게 할 말을 이어간다. “엄마도 새크라멘토 도로를 처음 달릴 때 감상에 젖었어? 말해주고 싶었어. 모든 건물들이 정겹게 느껴졌거든.”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와 엄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드러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그것을 그리워하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영화에서 조명하는 성장의 순간이다.
존 웨인이 돌아온다. 이번엔 황야를 떠돌던 서부사나이가 아니라 모종의 사연을 지닌 전직 복서이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링의 강자로 군림하다 고향인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보내려 한다. 이 공동체는 그를 받아들일까.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라면 공동체는 치명적인 위협 아래 놓여있고, 이 유능하고도 폭력적인 사내는 그 위협을 제거한 뒤 어쩔 수 없이 떠날 것이다. 그 자신도 공동체의 문명에 순응할 수 없는 잠재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니스프리라는 가상의 공동체에는 제거해야 할 위협이 없다. 사내는 “이니스프리는 언제나 내 마음속의 천국이었다.”고 말하는데 이곳은 정말 천국과도 같다. 테크니컬러로 촬영된 초록의 자연은 숨 막힐 듯 아름답고 마을은 한가로움과 선의로 가득하며 악인은 찾아볼 수 없다. 무대가 이처럼 샹그리라를 닮은 또 다른 존 포드 영화는 < 도노반의 산호초 >(1963) 외엔 없다. ‘말 없는 사나이’에게 주어진 유일한 숙제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완전한 결합이다. 둘은 결혼했지만 여인의 오빠는 지참금 지불을 거절하고, 여인은 지참금을 찾아오지 않는 한 동침할 수 없다고 버틴다. 하지만 결국 결합은 완수되고 정착은 성공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 말 없는 사나이 >는 포드의 드문 낙천적 로맨스영화, 어쩌면 유일한 섹스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사하고 명랑한 외피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 영화의 완성은 존 포드의 오랜 숙원이었다. 1933년 「Saturday Evening Post」에 실린 모리스 월시(Maurice Walsh)의 단편 ‘초록의 쇄도 The Green Rushes’(초록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이다)를 읽은 포드는 이를 영화화하기로 마음먹고 1936년 원작 판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실현에는 15년이 더 걸렸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믿는 제작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44년, 포드는 < 역마차 >(1939) 이래 친구가 된 존 웨인,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41)에서 인연을 맺은 모린 오하라와 이 영화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리퍼블릭 픽처스의 프로듀서 허버트 예이츠는 “이런 멍청한 아일랜드 이야기로는 한 푼의 돈도 벌 수 없다”고 투자를 거절했다. 1940년대 후반에는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포드가 자신의 제작사 아르고시(Argosy)에서 찍은 < 도망자 >(1947)의 흥행실패로 빚더미에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포드는 웨인, 오하라와 서부극 한 편을 더 찍는다는 조건으로 리퍼블릭으로부터 어렵사리 < 말 없는 사나이 >의 제작 결정을 얻어냈다. 그 서부극이 바로 < 리오 그란데 >(1950)였다. “나는 이 무렵(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도망자>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없는 사나이>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일했다. 이 영화로도 돈을 잃겠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포드는 회고했다. 전후의 포드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찍고 싶은 사적인 영화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서부극을 찍었고, 만들기만 하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 대중적 장르인 서부극(아마도 오늘날이라면 호러가 이러한 장르로 취급받고 있을 것이다)은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 10월 22일, 미국 감독협회에서 행한 포드의 유명한 연설의 첫마디 “내 이름은 존 포드요. 서부극을 만듭니다.”는 서부극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나 애착의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이 보잘것없는 영화를 만드는 하찮은 장인일 뿐이라는 자기비하의 수사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걸작들이며 이미 이 연재에서 다룬 바 있는 < 도망자 >, < 웨건 마스터 >(1950), < 태양은 밝게 빛난다 >(1953) 등이 태어난다. < 말 없는 사나이 > 역시 포드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의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가장 사적인 영화 가운데 한 편이며, 그의 영화 세계가 온전히 드러난 포드적인, 너무나 포드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완성된 뒤에도 리퍼블릭 픽처스의 수장인 허버트 예이츠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러시 필름을 본 예이츠는 “온통 초록이구만”이라며 불평했다. 더구나 129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120분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포드는 스튜디오 간부를 위한 시사회에서 129분의 < 말 없는 사나이 >를 상영하며, 정확히 120분이 지난 시점에 상영을 중단했다. 그리고 말했다. “자, 지금까지 장면 중에서 뺄 곳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간부들은 말이 없었고 결국 원본 그대로 극장 상영이 결정되었다. 이 영화는 포드의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포드는 이 영화로 < 밀고자 >(1935) < 분노의 포도 >(1940)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41)에 이어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1952년의 아카데미 영화제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문제로 잠시 우회해보자. 감독상은 < 말 없는 사나이 >의 존 포드가 받았지만 작품상은 세실 드밀의 <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 >에게, 남우주연상은 프레드 진네만의 서부극 < 하이 눈 High Noon >의 개리 쿠퍼에게 주어졌다. 이 해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하이 눈>이었다. 비평 진영을 대표하는 뉴욕비평가협회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하이 눈>에 바쳤다. 양쪽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찰리 채플린의 가슴 저린 애가 < 라임라이트 >였다. 앤드루 새리스는 저서 「John Ford Movie Mystery」(1975)에서 “이 해의 포드는, 채플린만큼 무시당하진 않았지만, 지나간 시절의 진기한 골동품으로 취급당했다.”고 썼다. 눈길을 끄는 건, 위의 네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당시에 ‘공산주의자 척결’을 주창한 매카시즘과 연관된 날카롭고 복잡한 정치적 갈등 관계에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갈등이라기보다 정치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세실 드밀은 당시 할리우드에서 매카시즘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앞서 언급한 1950년의 감독협회 모임에서 그는 당시 감독협회 회장이던 조셉 맨케비츠의 모호한 태도를 비난하는 긴 연설 끝에 ‘비미국적 un-American’ 영화인으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프레드 진네만을 지목했다. 자신을 서부극 감독으로 소개한 포드의 돌발 연설은 드밀의 발언 끝에 나온 것이다. 포드의 연설은 이렇게 이어졌다고 한다. “나는 드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소. 나는 그를 존경하오. 하지만 그가 싫소... 나는 맨케비츠도 드밀도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로 알고 있소. 지금 여기서 공산주의를 두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는데, 내겐 그저 웃기는 일이오.” 그리고 2년 뒤 앞서 언급한 영화 네 편이 개봉된다. 존 웨인이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비미국적인 영화”라고 비판한 < 하이 눈 >의 각본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 칼 포어먼(Carl Foreman)이 썼고 그는 1951년에 결국 영국으로 이주했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찰리 채플린이 1952년 10월, < 라임라이트 > 런던 개봉을 위해 퀸엘리자베스 호를 타고 가던 도중에 미국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말소당해 사실상의 추방명령을 받은 사건은 유명하다. 한편 포드의 절친한 영화 동료이며 < 말 없는 사나이 >에서도 함께 작업한 존 웨인과 워드 본드는 블랙리스트를 적극 지지하는 극우파였다. 워드 본드는 매카시를 위한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고, 존 웨인은 극우파 상원의원 로버트 태프트의 지지자였으며 매카시즘 시대의 블랙리스트를 다룬 최근 영화 < 트럼보 >(2015)에서 묘사되듯 갖가지 선동활동에 앞장섰다. 극우파 배우들의 친구이자 후견인이면서도 드밀의 극우적 선동에 반기를 든 포드의 정치적 입장은 기묘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 트루만의 지지자였고 2차 대전 참전의 공훈을 인정받은 명예 해군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FBI는 포드를 ‘잠재적 공산주의자’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노동자를 위한 존 스타인벡 위원회’ 같은 진보적 조직의 기부자였으며, 스페인 내전 당시 좌파를 후원했고, 사촌이 가입한 IRA에도 돈을 보냈으며 무엇보다 존 스타인벡의 ‘사회주의적 소설’ 「분노의 포도」를 영화로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작품성을 논외로 한다면, 1952년의 아카데미는 절충적 선택을, 비평 진영은 진보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이 연재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존 포드는 자신의 정치적 미학적 견해를 거의 밝히지 않는 과묵한 남자였다.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그는 20년 가까이 마음에 품어온 < 말 없는 사나이 >를 드디어 완성했다. 이 영화는 스튜디오는 물론 포드 자신의 예상과도 다르게 관객의 환대를 받았고 그해 최고 흥행작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간주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평가를 주저했다. 두 가지 쟁점이 <말 없는 사나이>에 대한 유보적 혹은 부정적 평가와 연관된다. 하나는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마을을 이상화한 반면 진지한 탐구는 결여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당대 주류언론의 리뷰어 뿐만 아니라 걸출한 비평가 마니 파버(Manny Farber)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에게 < 말 없는 사나이 >는 “싸구려 소설에서 유래한 종잇장처럼 얇은 캐릭터들”의 연애담이며 “감상 과잉의 풍경과 설교로 가득한 < 분노의 포도 >보다 나을 바 없는 구식 상업영화”로 비쳤다. 그의 비판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럴듯해 보이는 모든 시시한 수작들(hokums)이 아일랜드인을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사람들로 보이게 만든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들에 관한 이 현혹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탐구는 교란적이다.”(‘Parade Floats’, 「Farber on Film」) 이런 견해에 대한 최근의 반론 가운데 하나는 에세이스트 벤 슈워츠(Ben Schwartz)가 썼다. “(보안관 개리 쿠퍼가 배지를 던지고 마을을 떠나는) < 하이 눈 >이 끝나는 곳에서 < 말 없는 사나이 >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블랙리스트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전복적인 영화 가운데 하나다. 미국을 견딜 수 없어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는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존 웨인이 연기한 주인공 션 쏜튼처럼 포드 역시 폭력, 물질적 성공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예기치 않은 결과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The Subversive St. Patrick’s Day Classic’ 「New Republic」 2013. 3. 16.) 다른 하나는 존 웨인이 모린 오하라의 엉덩이를 걷어찬 뒤 강제로 끌고 오는, 악명 높은 장면과 연관된다. 태그 갤러거가 “수백 년 동안 연극 무대의 관습 가운데 하나였던 엉덩이 차기 때문에 그토록 오래 욕먹은 감독이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장면은 영화에서 여성혐오 표현의 중요한 사례로 꼽혔으며, 지금도 IMDb에는 ‘misogyny’가 이 영화의 첫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 말 없는 사나이 >는 반여성적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숭배에서 강간까지」에서 몰리 해스켈은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한다. “존 포드의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 가운데 하나인 < 말 없는 사나이 >의 분명한 주제”는 “결혼을 통해 이름과 함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여성의 진짜 두려움”이다. 모린 오하라가 연기한 여주인공 메리 케이트가 가구와 지참금에 집착하는 이유는 “가구가 처녀 시절의 이름처럼 그녀의 인격의 일부이며, 돈은 그녀가 남편에게 완전히 의지해서 그에게 흡수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지참금을 얻어냈을 때 메리는 돈을 난로에 던진다. 남편이 돈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해스켈에게 <말 없는 사나이>는 존 포드의 가장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이다. 여기선 두 쟁점에 대해 더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엇갈리는 견해들이야말로 그의 소속 없는 정치성과 마찬가지로 존 포드의 영화가 지닌 정박될 수 없는 모호성과 복합성의 징표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말 없는 사나이 >를 볼 때마다 나는 무장해제당하는 느낌에 빠진다. 춥고 주렸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안식의 항구에 이른 느낌. 더 이상 닻을 올리고 싶지 않은 이 무력감에 가까운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비판적 평자들이 말하는 ‘당의정처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선의와 유머의 사람들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달콤함은 쓴맛을 감추는 당의가 아니다. 존 포드의 세계를 유랑해온 우리에게 그 달콤함은 이 세계의 심장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성취감 혹은 안도감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 기차역. 한 사내가 기차에서 내린다.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존 웨인. 군복 차림도 아니고 탄띠도 매지 않은 웨인이 도착하는 모습을 이전의 포드 영화(< 역마차 > < 데이 워 익스펜더블 > < 아파치 요새 > < 황색 리본의 여인 > < 리오 그란데 >)에선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그는 지금 환하게 웃고 있다.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저 거구의 낯선 사내가 왜 이곳에 온 걸까. 낚싯대도 카메라도 없이. 이들에겐 과도한 호기심 외엔 어떤 적의도 경계심도 없다. 존 웨인은 드디어 싸울 필요도 다시 떠날 필요가 없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첫 시퀀스만으로 겨룬다면 < 말 없는 사나이 >는 포드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다. 이니스프리로 가려는 낯선 사내 주위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안내자를 자처하며 한바탕 수다를 벌인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하고 싶은 말을 제멋대로 떠들고 웨인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잠시 목적지를 잊어도 좋은 세계, 얼마간의 지체가 아무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세계, 오히려 그 짧은 지체의 시간이야말로 평온과 웃음이 가득한 천국과도 같은 세계, 5년 뒤 < 라이징 오브 더 문 >(1957)의 두 번째 에피소드 ‘1분간 정차’에서 온전히 펼쳐질 그 소란스럽고도 사랑스런 세계. 황야에서 맹수처럼 싸워 승리하고도 행복할 수 없었던 사내가 그런 세계에 비로소 도착한 것이다.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션 쏜튼이며, 어릴 때 이 곳을 떠나 미국에서 살다가(나중에 밝혀지지만 권투 챔피언이었던 그는 시합에서 한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때문에 링을 그리고 미국을 떠났다) 몇 십 년 만에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배경 서사가 설명된다. 하지만 존 포드 영화를 오래 만나온 우리에게 존 웨인은 이 개별 서사에 갇힌 인물이 아니다. 상호텍스트적이거나 초텍스트적 존재로서 그는 미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돌아온 것이라기보다, 서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서부를 고유명사가 아니라 서부극이 창안한 장소로서의 보통명사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미국관객이 아닌 우리가 별다른 노력 없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이 우리를 미국관객보다 존 포드의 세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그러니 마니 파버의 비판론과 벤 슈워츠의 옹호론을 잊어도 좋을 것이다. 슈워츠의 한 문장은 고쳐 쓸 수 있겠다. < 하이 눈 >이 아니라 서부극이 끝나는 곳에서 < 말 없는 사나이 >는 시작한다. 말하자면 <말 없는 사나이>는 포스트 서부극이다. 서부극에는 독이 있다. 아무리 서부극을 사랑한다 해도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서부극은 ‘정당한’ 폭력과 제거의 서사다. 서부는 황야의 규칙 즉 더 강하고 유능한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공동체의 위협은 서부사나이의 정당한 폭력(주로 사적인)으로 제거된다. 어떤 예술 분야도 영화만큼 제거의 폭력을 애용하지는 않으며, 그 발원지에 서부극이 있다. 불가능한 공존, 불가피한 폭력과 제거라는 장르적 관습은 서부극의 율법이며 포드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에 가장 가까운 영화이며,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서부극”이라고 말한 < 웨건 마스터 >(1950) 조차 넘어서지 않은 계율이다. 서부극의 독이 제거의 폭력이라는 장르적 관습 자체에 있는 건 아니다. 서부사나이는 폭력으로 악인을 제거한 뒤 공동체에 정착하지 않고 떠난다. 사적 폭력의 행사자인 자신 또한 공동체 문명의 위협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축복은 그의 것이 아니며, 용감한 그에게 안식은 없다. 그는 자신의 총알이 악인을 꿰뚫은 다음 결국 자신에 이를 것임을 알고도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이 영웅적 결단의 비극적 정념이 서부극 관객을 사로잡는다. 서부극의 폭력은 대개 정의의 실현이라는 에토스 이면에 감춰진 자기 비극화의 파토스에 실려 있고, 이제 폭력은 설득이 아닌 정동(情動)의 문제가 된다. 정의로운 제거의 폭력이라는 장르의 계율이 위험해지는 건, 자기도취적 정념이 폭력의 동력원이 되는 이 지점에서다. 션 쏜튼이 떠나온 것은 바로 그 위험한 계율의 장소인 서부다. 그가 성난 얼굴로 서부와 전장을 누비던 존 웨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의 쏜튼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링은 서부를 지배하는 황야의 규칙을 양식화한 공간이다. 20세기 초까지도 권투는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야만적 스포츠였다. 더구나 링에서 쏜튼은 정당한 폭력으로 상대방을 죽였다. 그는 ‘정당한 살인자’라는 딜레마를 서부사나이와 공유한다. 그의 이력은 서부사나이의 이력의 알레고리다. 그러니 존 웨인의 션 쏜튼을 어떻게 황야를 떠나온 서부사나이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말 없는 사나이 >의 장소는 서부와 완전히 다른 곳인가. 쏜튼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기묘하게도 여기서 말 경주와 결투를 요구받는다. 서부극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습이 실행되는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말 경주는 서부극에서의 목숨이 걸린 추격과 도피와 무관한 말 그대로 이 마을의 전통이 된 시합이고 축제이며, 쏜튼이 끝내 피하려 했던 메리의 오빠와의 결투는 제거가 아닐 합일에 이르는 경로다. 말하자면 <말 없는 사나이>는 서부극의 핵심적 관습을 끌어오면서 서부극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 제거가 아닌 공존에 이른다. 요컨대, 존 포드는 이니스프리라는 가상공간에서 서부극의 관습을 반복하며 그것을 공존의 제의로 역전시킴으로써 서부극의 독을 씻어낸다. 말 경주 들판과 사람들 결투 두 사내가 주먹다짐을 벌이는 결투 장면보다 그 제의성을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나른한 평화만 가득하던 마을에 두 사내의 싸움이 예고되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삽시간에 모여든다. 한가롭던 초록 들판을 싸움 구경꾼들의 행렬이 가득 메우고, 성직자들을 포함해 마을 사람 모두가 내기에 뛰어든다. 모두 이 폭력의 대결을 고대했던 것이다. 술집 주인이 말한다. “오늘이 이니스프리 최고의 날이군.” 한없이 이어질 듯한 결투가 끝난 뒤 두 사내는 어깨동무를 하고 메리에게 향한다. 폭력을 피할 수 없다면 혹은 그것에의 동경을 멈출 수 없다면, 유일한 출구는 폭력을 제의화하는 것이다. 모두가 폭력에 환호하는 데 어떤 제거도 발생하지 않는 제의, ‘정당한’ 에토스의 위장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파토스로서의 폭력, 그래서 도덕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윤리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폭력이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제의. 이를 서부극의 살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쏜튼이 도착한 장소를 해독된 서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니스프리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한 장면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쏜튼은 어렵사리 구입한 옛집에 도착한다. 오래 비워져 있었을 그 집에 누군가 벽난로를 피워놓았고 청소 중이었는지 쓰레기를 모아두었다. 전 장면에서 우리는 쏜튼과 메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목격했으므로, 누가 그랬는지 쏜튼도 알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도 알 수 있다. 저녁의 잔광이 스며드는 창문을 바람이 세차게 흔들고 실내엔 약간의 긴장이 흐른다. 이때 이 영화에서 가장 괴이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진다. 쏜튼이 돌을 집어 들더니 괴성을 지르며 창문을 향해 던지고 유리창이 깨진다. 숨어있던 메리는 놀라 일어나더니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지른 뒤 집 밖으로 달려나가려 한다. 쏜튼은 그녀를 잡아챈 뒤 격렬한 바람을 맞으며 입을 맞추고, 메리는 쏜튼의 뺨을 때리려 한다. 이 시퀀스는 논리적 연관이 없는 행위와 쇼트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왜 쏜튼은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 했던 옛집의 창문을 깨트리며 괴성을 지르는가. 숨어있는 메리를 불러내려 했다 해도 그는 왜 이런 난폭한 방법을 택하는가. 괴성과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들었을 메리는 왜 거울을 본 다음에야 비명을 지르는가. 매우 로맨틱한 조우가 될 수도 있을 장면에서 바람은 왜 이토록 거칠게 두 남녀에게 몰아치는가. 하지만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이런 질문이 무의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포드는 표면을 매끈하게 가다듬어 하나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는 감독이 아니다. 바람, 예기치 않은 괴성과 유리창 파열, 거울과 지체된 비명, 다시 바람, 흩날리는 스카프와 옷자락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의 숨 가쁜 연쇄 후에 격렬한 키스가 이뤄진다. 이 키스 장면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한 장면의 감흥은 그 장면의 미장센과 행동이 이전 쇼트들이 누적한 감정과 만나 표현된다. 온갖 이질적인 시청각적 이미지들의 연쇄야말로 보통의 경우라면 로맨틱한 입맞춤에 그쳤을 이 장면에, 태그 갤러거가 경탄한 “절정, 사랑, 이해, 공포, 고통, 모욕, 분노, 두려움, 수치와 같은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 모감보 >(1953)의 클락 게이블과 그레이스 켈리의 키스 장면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감정의 만화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이 포드의 디테일이다. 옛집에서의 키스 시퀀스와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 한참 뒤에 등장한다. 결혼은 했으나 지참금 문제로 아내에게 동침을 거부당하는 사내 쏜튼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의 곁으로 메리가 조용히 다가온다. 메리에게 쏜튼은 말없이 작은 들꽃을 따 건네준다. 짧은 정적이 흐른다. 구애하고 키스하고 청혼하고 결혼했으나 아직 온전히 아내가 되지 않은 여인. 더 이상 소용없을 장미 꽃다발 대신 건네진 이 가녀린 들꽃에는 소란스런 격정과 흥분 이후의 슬픔, 우울, 간절함, 예의, 조심스러움이 사랑의 마음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답고 가슴 저린 장면이다. 포드의 영화를 이질적인 것들의 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가 말 그대로의 축제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감정의 종잡을 수 없는 소란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해독된 서부인 이니스프리는 폭력적 제거의 행동 이미지를 대신하는, 긴 스펙트럼의 감정의 빛을 난반사하는 포드적 디테일의 카니발이기도 하다.(계속)
< 타바코 로드 >(1941)는 당대에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실패했으며 오늘에도 존 포드의 영화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영화에 속할 것이다. 앤드루 새리스의 표현을 옮기면 이 영화는 “1940년과 1941년에 거둔 존 포드의 엄청난 성공행렬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사람들은 최고의 위치에 오른 포드가 왜 이런 프로젝트에 손댔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포드의 열렬한 찬미자인 태그 갤러거의 두꺼운 저서도 이 영화에는 단 세 문장만 할애한다. “시나리오를 쓴 누널리 존슨은 < 타바코 로드 >가 엉성하고 서투른 구식 코미디에 의존함으로써 대실패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몇몇 마술적 순간들이 등장하지만.... < 굽이도는 증기선 >에서 하층민을 바라보는 포드의 단순명료한 시선이 여기선 들뜬 포퓰리즘의 과장된 제스처로 대체되었다.” < 타바코 로드 >의 원작은 브로드웨이에서 1933년부터 1941년까지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우며 대성공을 거둔 연극이다. 어스킨 콜드웰Erskine Caldwell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잭 커크랜드Jack Kirkland가 희곡을 썼다. 앤드루 새리스는 이 영화의 실패 이유가 당시 할리우드 제작준칙(hollywood production code)이 콜드웰의 재기 넘치는 음란함과 커크랜드의 화장실 유머를 용인하지 않는 바람에 존 포드와 누널리 존슨이 원작의 많은 부분을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 판단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이 영화의 제작 경위에 대해선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어 당시 포드의 의중을 알긴 힘들지만, 적어도 포드가 그의 영화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든 음란함과 화장실 유머 때문에 원작에 이끌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1937년 오마하, 연극 <타바코 로드>가 공연되는 극장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영화의 지지자는 두 사람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2014년 서울과 부산에서 존 포드 회고전이 열릴 무렵 간행된 「씨네21」에 보내온 자신의 존 포드 10베스트 명단에 < 타바코 로드 >를 포함시켰다. 이 명단에는 포드 전문가들도 잘 거론하지 않는 무성영화 <버킹 브로드웨이>(1917) <켄터키 프라이드>(1925)도 들어있다. 그리고 하스미다운 코멘트가 덧붙여져 있다. “< 철마 >(1924) 혹은 < 3인의 악인 >(1926)에서 시작해 < 수색자 >(1956)으로 끝나는, 그리고 < 밀고자 >(1936) < 역마차 >(1939) < 젊은 날의 링컨 >(1939) 등이 포함되는 포드의 10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은 우리에게 쉬운 일이다. 하지만 도쿄의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에 내 마음은 포드의 덜 알려진 영화들로 향한다. 물론 추운 날에는 이 명단이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포드 열광자인 린지 앤더슨이다. 그는 “관점의 일관성을 고수하면서도 무드와 악센트를 교차시키는 포드의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 타바코 로드 >를 제시한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회한에 찬 애상과 격렬한 슬랩스틱, 냉혹한 풍자와 부드러운 감상성을 오가며 무드를 끝없이 변주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특출한 솜씨”를 보여주는 포드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내로라하는 포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만큼 극단적으로 견해가 갈리는 영화는 <타바코 로드> 외엔 찾기 힘들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노부부인 지터 레스터와 에이다 레스터는 목화농업으로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황폐화한 타바코 로드에 살고 있다. 17명 정도의 자식을 두었지만(그들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젠 모자라고 착한 딸 엘리 메이와 역시 모자라지만 거의 미친 아들 듀드, 그리고 유령처럼 주위를 서성이다 불현듯 사라지는 노모가 가족의 전부이며, 끼니를 잇기 힘들만큼 가난하다.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의 땅이 은행에 차압당하고, 며칠 안에 농지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3대째 살아온 타바코 로드를 떠나야 할 처지다. 위기의 지터 노인은 엉성한 작전을 벌인다. 사적인 소감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2005년쯤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정상이 아니어서 마음이 가는 인물은 하나도 없는 데다, 특히 소란스럽고 경박한 아들 듀드는 때리고 싶을 만큼 짜증 나고 거슬렸다.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는 사실상 없으며,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인물들이 벌이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헛소동과 실소가 새 나오는 촌스런 유머와 슬랩스틱이 영화의 거의 전부였다. 난센스 코미디를 넘어선, 요즘의 은어로 ‘병맛’ 코미디였다. ‘이건 위대한 존 포드의 영화일 수가 없다.’ 황당무계한 영화 리스트라는 게 있다면 당장 최상위에 올리고 싶었다. 이상한 일은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즉각 해명하기 힘든 과격하고 대담한 몸짓이 관류하고 있다는 느낌,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보다 사적이고 무모한 그 몸짓이 모종의 해방감을 빚어낸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이 영화보다 1년 전에 만들어져 모두에게 절찬 받은 < 분노의 포도 >를 다시 본 뒤에 더욱 강해졌다. 만일 누군가 <분노의 포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면 < 타바코 로드 >를 당분간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분노의 포도>에서 뭔가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타바코 로드>를 보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사적인 느낌의 몇 자락을 말해보려 한다. < 분노의 포도 >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영화는 포드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례없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메시지의 노골적 언명이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여기서 하층민인 톰 조드 일가는 나쁜 세상에 의해 상처 입고 수탈당해 떠도는 순결하고 가련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우리는 이 시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의미에서 이 시선이 규범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의 견해가 아니라 작품 안에서라면 특별히 칭송할 것도 문제 삼을 것도 없는 이 규범적 시선이 존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우리가 봐온 바와 같다. 존 포드의 영화는 대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스테핀 페칫이 연기하는 흑인은 충직하지만 멍청하며, 인디언은 강직한 전사와 잔혹한 살육자를 수시로 오간다. 여성들은 <일곱 여인> 등 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수동적이며, 하층민들은 대체로 선량하지만 소란스럽고 잘 속는다. 포드의 탈규범적인 성향은, 그의 정치적 보수성을 비판하는 진보적 비평가들에 의해 종종 경시되지만, 그의 작품이 지닌 특별한 활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포드는 지금 세대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전력투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거침없다는 포드의 각인이 새겨졌다”고 말할 때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 분노의 포도 >는 공백과 비약의 수사학(<분노의 포도> 편 참조)에도 불구하고 < 러틀리지 상사 > < 샤이엔의 가을 > 등과 함께 포드의 드문 규범적인 영화에 속한다. < 굽이도는 증기선 >(1936)이 하층민의 악덕과 무지 그리고 미덕과 용기가 난장을 벌이는 축제의 영화라면, <분노의 포도>는 무고한 하층민의 고난과 시련이 점화한 분노의 영화이며 정의의 영화다. 두 영화 사이에 놓인 1939년의 ‘젊은 링컨’은 난장의 도취에서 정의의 소명으로 망설이며 느리게 이행한다. < 타바코 로드 >의 놀라운 점은 중년의 포드를 성공으로 인도한 이 궤도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스스로 탈선한 열차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가난한 주요인물 모두가 동정할 여지도 없는 금치산자에 가까우며, 서사는 비루한 소동들의 연쇄일 뿐이다. 얼핏 보기에 포드는 < 분노의 포도 >에서와는 정반대로 이 가련한 하층민들을 조롱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터 노인은 가족과 합세해 아내(지터의 막내딸)가 도망갔다며 징징거리는 사위 러브(놀랍게도 워드 본드가 연기한다)를 구타해 그가 갖고 있는 무를 빼앗아 먹으며, 도망간 막내딸 대신 언니를 그에게 반강제로 보낸다. 지터는 어렵사리 구해온 옥수수를 먹느라 아이들 몰래 삶아 먹느라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와 집을 떠났다가 얼떨결에 돌아온 지터가 “어제부터 할머니(그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듯)가 안 보이네. 저기 숲으로 가서 죽었나 보군”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기가 막힌다. 물론 등장인물의 슬픔에 카메라가 깊이 동조하는 ‘마술적 순간’들이 간혹 등장하지만, 이 장면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왜소해 아무리 봐도 애상과 풍자, 슬랩스틱과 감상이 균형을 맞추었다는 린지 앤더슨의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런 표현은 < 굽이도는 증기선 >과 < 젊은 날의 링컨 >에나 어울릴 것이다. 무엇보다 포드는 이 영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시키길 거부하려는 것처럼 결말조차 터무니없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모든 소동이 엉겁결에 정리되었을 때, 그가 얻은 건 10달러밖에 없다. 7년 동안 멈춘 목화 농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필요했을 두 아이는 그사이에 떠났다. 그는 이미 농사지을 힘이 남아있지 않아 보일 만큼 늙어버렸다. 그런데도 이 추레하고 왜소한 노인은 어이없게도 “올해가 내 인생 최고의 해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 타바코 로드 >는 < 분노의 포도 >를 뒤집어버린다. 마치 <분노의 포도>가 자기 영화가 아님을 강변하려는 듯, 같은 사회적 처지의 주인공을 내세워 놓고 인물도 사건도 모두 저열화하며, 진지한 감정과 의미 있는 행동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간혹 이질적인 것들을 뒤섞되 균형과 조화를 파기한다. 자기 반동 혹은 자기 파괴의 시도처럼 보이는 포드의 이런 선택의 동기를 짐작하기는 힘들다. 다만 <타바코 로드>를 보고 나면 포드를 불균형의 충동, 불협화음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 작가로 다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뿐이라면 < 타바코 로드 >는 ‘흥미로운 실패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난감함 속에서도 내가 매혹된 건 이 영화의 어떤 몸짓과 운동의 형상들이다. 난센스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방향의 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부서짐의 운동이고 유일하게 일관된 행위가 있다면 사물을 부수는 행위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그러하다. #1 #2 #3 타바코 로드로 불리는 이 공간은 이미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다. 이웃의 저택도 지터의 초라한 오두막집도 모두 폐허의 형상이다. #4 #5 폭발음을 내며 위태위태하게 마을 길을 달려오는 지터의 작은 지프는 담을 부수며 진입하고 스스로도 바퀴가 하나씩 내려앉는다. 비가 쏟아지면 지터의 헛간도 현관도 내려앉는다. 이런 붕괴의 형상이 도입부에 제시되었다면 통상적 서사는 붕괴의 반대방향 즉 재건과 재생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 타바코 로드 >의 서사도 표면적으로 그런 방향을 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 출신 중에서 제일 멀쩡한 청년 팀이 지터를 도우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거의 핑계다. <타바코 로드>의 진정한 관심사는 이 붕괴 직전의 공간에 고급승용차가 소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다. 경위를 간단히 밝혀두자.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돌아온 이웃 여인 베시는 이 마을의 엉터리 목회자이자 얼치기 예언자다. 그녀는 지터의 정신 나간 아들 듀드(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게 유일한 취미인 저능아다)에게 반해 그와 결혼한 뒤 자신의 재산 전부인 보험금 800달러를 고급승용차(Ford Super De Luxe Convertible)를 사는 데 써버린다. 지터는 1년 치 농지 임대료 100달러가 없으면 쫓겨나게 되므로 이 승용차가 향후 벌어질 사건의 중심에 놓일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사태는 황당무계하게 전개된다. #6 #7 #8 #9 모자란 듀드는 차를 사자마자 나무를 들이받고 덮개를 미친 듯 뜯어내며 차를 부수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봐주겠다며 전조등을 만지던 지터는 차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결과 하루 만에 고급승용차는 초라한 고물이 되어버린다. 차를 몰래 팔아 100달러를 마련하려는 지터의 시도 외엔, 이 고급승용차를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다. #10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가 등장한다. 운전을 방해했다고 듀드가 러브에게 시비를 걸자, 칭얼거리던 러브는 이제야 워드 본드답게 말없이 듀드를 때려눕힌 뒤 길가에 처박힌 차를 뒤집어 박살 내버린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헛소동의 심장이다. 붕괴 직전의 이 공간에 고급승용차가 소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라는 < 타바코 로드 >의 진정한 관심사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그것도 함께 부서져야 한다. 이 이질적 사물이 빨리 타바코 로드 자신의 형상처럼 무너져 내려야 한다. < 타바코 로드 >는 표면의 서사와는 무관하게 부서짐의 운동이며 붕괴의 유희다. 지터의 마지막 대사는 붕괴운동의 완료를 위장하며 동시에 암시하는 말이다. 사태가 호전될, 다시 말해 붕괴가 멈추고 재건이 개시될 어떤 전망도 없을 때, 가장 좋은 일은 죽음이다. 지터도 할머니처럼 사라져 죽어갈 것이며 이것이 타바코 로드의 형상이 이를 종착지일 것이다. 이것이 훌륭한가, 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다만, 서사의 표면적 흐름과는 정반대의 운동과 형상이 전개되는 기괴한 영화를 달리 본 적이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