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념
- 감독
- 임흥순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강상희, 강상문, 김봉진, 김정민, 김성주, 오국만, 한신화, 최성희, 강태권, 김경훈, 김민경, 김순자, 김은희, 임흥순
지난주 화제가 된 ‘대통령 제주 4.3 추념사’에서 1978년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부터 최근 영화 < 지슬 >, < 비념 >까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 작품들이 거론되었다. 그렇다면 1970년대까지 4.3은 영화에서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다음은 < 산(The Mountain) > 1) 이라는 영화 도입부에 삽입된 내레이션이다. “1948년 4월 3일. 네 번째 달의 세 번째 날. 치욕의 날. 제주도 사람들은 절대로 잊지 않을 날. 우리는 조용한 섬사람들입니다. 고립의 정적에 익숙한 자연과 신의 뜻에 적응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끔찍했던 날 고요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인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겨우 몇 달 동안 제주도 인구의 4분의 1이 말살됐습니다. 6만 명이 죽음을 당했고 8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왜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2) 이처럼 4.3으로 인한 제주도민의 죽음과 피해를 비교적 가감 없이 전달하는 <산>은 놀랍게도 최근작이 아니다. 1963년 미 공보원이 제작한 42분의 중편 문화영화이다. 이 영화는 아마도 1950~1970년대 거의 유일하게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산>은 제주도의 비극을 다분히 프로파간다적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무장대의 방화로 집을 잃은 고 씨 무장대를 추격하는 토벌대 토벌대 사이에서 담을 쌓는 주민들의 모습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했다는 즐거움이 사그라든 후 세상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없었지만 우리는 통치 받고 있었고 군대는 없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일부 껴 있던 경찰대가 있었습니다. 이 파괴 분자들의 세력은 밤에 남몰래 북에서 내려오는 동료들로 인해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의 내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듯 영화는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에서 희생당한 민간인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시각은 다분히 편파적이다. <산>은 4.3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어린 딸과 이웃에 홀로 남겨진 다섯 살배기 남자 아이를 데리고 거주지인 산에서 쫓기듯 도망 나와 해안에 정착한 고 씨의 삶을 그린다. 고 씨는 남자 아이 이름을 ‘사삼’이라 짓고 과거를 숨긴 채 자신의 아들로 키운다. 시간이 흘러 산으로 돌아가 재정착에 나선 고 씨는 성인이 된 사삼과 딸 을순에게 숨겨왔던 지난 일들을 밝힌다. 친남매가 아닌 것을 알게 된 사삼과 을순은 결혼을 하고 가족은 산간을 일구며 살아간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고 씨 해녀일을 하는 을순을 찾아온 사삼 땅을 개간하는 고 씨 가족의 모습 <산>은 전반적으로 무장대의 잔혹함을 강조하며 악으로 규정하고 토벌대를 민간인을 보호하는 선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반공선전영화의 한계를 갖는다. 4.3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반공영화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숨겨왔던 제주도의 비극과 혼란했던 당시의 상황을 전면에 드러내는 영화를 ‘이 시기 왜 제작했느냐’이다. 그 배경에는 1963년 대통령선거와 1964년의 한일회담 그리고 한라산국립공원계획 등의 관광개발을 비롯한 제주도 종합개발이라는 여러 가지 선전요인이 있었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63년 여름,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현안으로 혼란스러웠다.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과 야당의 선거 후보 문제로 정계는 시끄러웠으며 미국이 한일국교를 압박하며 한일회담이라는 뜨거운 이슈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3년 6월 초 박정희의 제주도 시찰 후 4.3사건 이재민 복구사업 지시가 내려졌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공고문을 통해 이 사업이 영화 제작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제주도를 다방면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재민의 재정착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4.3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제주도의 관광개발을 위해서 새로운 선전과 홍보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제주도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홍보 선전하기 위해 과거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고 포장하는 전략 중 하나로써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3년 이재민 복구사업 공고문 무장대에 고문당하는 주민 토벌대와 맞서는 무장대 대장과 대원들 제작 주체인 미 공보원은 한일국교 이후 제주도를 방문할 해외 관광객들과 4.3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수많은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들의 문제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영화는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되 4.3은 한국 내부의 사상전쟁으로 벌어진 지나간 과거이며, 현재 제주도는 공산주의에 승리한 자유주의의 희망이 피어나는 새로운 땅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제작주체인 미 공보원은 4.3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군정의 모습은 삭제한다.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밝힐 계획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 공보원은 그보다는 영화에서 악의 무리로 그려지는 무장대의 재현에 심혈을 기울인다. 제작진은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를 모델로 한 극 중 배역에 조천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홍성중을 캐스팅했는데, 조천중학교는 바로 이덕구가 교사로 재직한 학교였다. 홍성중 은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산>을 촬영할 당시 겪었던 내적 갈등을 2015년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사 3) 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4.3과 이덕구에 대한 엇갈린 평가, 무고하게 희생된 주민들의 비극을 내색하지 못하고 지시하는 대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민의 정체성을 담담히 밝힌다. 1950~1970년대 제주도는 국가 홍보선전영화에서 주로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관광지역으로 그려졌으며, 극영화에서는 문명이 곳곳에 닿지 않은 낙후된 지역으로 그려지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은 거의 유일하게 4.3을 다룬 영화라는 특징을 갖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정부와 미국 공보기관의 프로파간다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1) <산(The Mountain)> - 한국영상자료원 험프리 렌지(Humphrey W. Leynse) 콜렉션 소장자료 2)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3) 한국영상자료원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1 - 윤일봉‧홍성중‧고인하』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는 두 편의 영화 < 지슬 >(2012)과 < 비념 >(2012)이 화제를 몰고 있다. 올레길 개발과 저가 항공 노선의 활성화, 도시로부터의 탈출과도 같은 제주로의 이주, 자본과 국가의 개발 논리 앞에 날것으로 놓인 `세계 7대 자연경관`. 타자화된 공간으로서 제주도에 대한 이런 (육지에서의) 유행들 속에서 제주 4.3 사건의 소환이 또 다른 타자화나 역사를 통한 억지스러운 통합을 불러오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영화는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외부와 같은 내부로서 최근 육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제주를 이국적인 상품이 아닌 온전한 존재로 드러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수작들이다. <지슬>에 대한 평론가 김혜리의 말처럼 이 두 작품은 '관광지와 무덤 사이'라는 간극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어쩌면 육지인인 `우리`에게 제주는 그 간극 자체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국인의 문화적 상상력 속에 적극적으로 등장하게 된 제주에 대해 생각할 때에 < 지슬 >을 감독한 오멸 감독의 작품 리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가 꾸준히 제주에 대한 작업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 어이그, 저 귓것 >(2009)은 제주의 뮤지션이라고 할 만한 양정원의 음악과 제주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귓것(귀신/바보)`들의 삶을 그의 독특한 영화언어 안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에서 사고를 당한 용필( 양정원 분)은 목에 깁스를 한 채 빈손으로 고향 제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산소가 흉측하게 파헤쳐져 있는 것을 발견한 용필은 제주의 바람이 제주의 돌 위로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목 놓아 운다. 그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휘감아 도는 웅장한 배경음악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공허와 슬픔 속으로 함께 빠져 들어간다. 동네 삼촌(어르신)이 나타나 '남의 묘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묻기 전까진 말이다. 순간적 침묵, 엄습하는 어처구니없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토속적인 느낌의 통통 튀는 배경음악. 이렇게 < 어이그, 저 귓것 >은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의 귓것 같은 삶`이라는 주제를 오프닝 시퀀스의 짧은 지속 안에서 잘 보여준다. 우리는 < 지슬 >에서 만났던 오감으로 가득 찬 스크린을 이 영화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에서 유머는 일종의 미학인데, 이런 명백한 개성이 오멸 감독의 (역사의 무게를 넘어선) 또 다른 소품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오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딸을 낳으면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고 사내를 낳으면 엉덩이를 발로 찬다'는 제주의 속담이 떠오른다. 낄낄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숙연해지는 것은 제주의 생명과 삶을 유지해 온 여성들에 대해 그가 지닌 존경 탓일 것이다. `귓것 같은 삶`에서 세속적 생산성과 대비되는 새로운 가치를 찾고 싶은 필자의 개인적 욕망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럴 수 없는 것은, 그가 귓것들의 유유자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제주 여성의 노동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