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 감독
- 정소희, 섹알마문
- 제작년도
- 2018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결백과 고통, 소외에 대한 세계관에 근거한 이창동의 인본주의적 이야기들은 그를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작가로 추인하였다. 스타일과 주제의 선택은 자연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던 초기작들을 넘어 작품을 거듭할수록 다의적 메타포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동의 영화는 개발과 번영, 선진화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한국 사회가 우리들의 시야 바깥으로 밀어내었던,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둔 이야기들이다. < 버닝 >(2018)은 사회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분열에 관한 형이상학적 스릴러이다. 지극히 평범한 디테일까지 의례적으로 보여주는 성향 때문에 이 영화에는 정확한 의미와 유효성을 확인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정보가 흩어져 있다. 이창동은 하나 이상의 해석에 적합하도록 체계적으로 계산된 세부 디자인으로 복잡함을 가장(假將)하는 플롯을 제시한다. 스토리의 정합성을 부정하는 영화는 기만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함축한 긴 롱테이크 쇼트로 시작한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쇼트의 프레임을 트럭의 문이 3/4 정도 가리고 있다. 단순한 구도를 지속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프레임 안의 디테일을 관찰할 시간이 주어지며, 그중 어떤 것이 앞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인지를 추측하도록 요구한다. 잠시 후 문의 뒤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곧이어 연기의 기원인 담배를 든 손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한 청년이 얼굴로부터 프레임 안으로 진입한다. 종수(유아인)이다. 의미 맥락을 추정하기 힘든 이 이미지는 하나의 지시이며 플롯을 추진하는 모터이다. 종수가 몰고 다니는 트럭의 문은 프레임을 가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조성하고 이 비(非) 가시성은 최초의 미스터리가 된다. 뒤이어 나타나는 종수는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등을 보이고 서서 트럭 문을 열고 옷더미를 어깨에 올려 인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종수의 뒤를 따라가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 종수는 ‘90% 폐업 세일’을 하는 옷 가게 앞에서 요란한 춤을 추면서 호객을 하는 두 명의 나레이터 모델을 스쳐 안으로 들어간다. 종수의 뒤를 따라 온 카메라가 먼 발치에서부터 그녀들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종수의 시선에 동조된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왼쪽에 있는 여자는 종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가 간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카메라는 종수의 뒤를 따르기를 멈추고 안으로 들어간 종수의 동태를 살피는 여자의 전신에 고정된다. 나중에 밝혀지기로 그녀는 종수의 초등학교 동창 해미(전종서)이다. 첫 대면에서 해미는 종수를 알아보지만, 종수는 알아보지 못한다. 즉, 해미는 보지만 종수는 보지 못한다. 해미가 종수를 단번에 알아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구도는 해미를 시선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다룬다. 이 롱테이크는 종수의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관객들이 종수의 동조자가 될 수 있도록 부추긴다. 해미가 종수를 보는 행동과 해미를 객관화하는 영화적 계획 사이의 불일치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어긋남이라는 테마와 연결된다. 카메라가 그녀를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이 결여된 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타자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거나 거부하는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2분여에 달하는 오프닝 롱테이크 쇼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선의 권력과 그 대상, 드러난 것과 잠재된 것 사이의 관계를 서사화하는 플롯의 쟁점을 압축하면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통해 ‘태우다’라는 모티프를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해미와의 몽상적인 재회 이후 종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종수는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는 대다수 장면은 그의 시점을 통해 걸러진다. 그가 보는 것을 우리도 보고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해미의 방에 비치는 햇빛에 종수의 시선이 옮겨갈 때 카메라는 그 빛에 초점을 맞춘다. 불안한 꿈 장면에서 화염의 환영이 종수를 방문했을 때 관객들에게도 위협이 전해진다. 해미와의 에로틱한 만남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고 종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고양이 ‘보일’을 돌보기로 한다. 이렇듯 <버닝>은 해미의 고양이에서 종수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 사항들이 플롯의 진행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야기이다. 복잡한 스토리텔링 영화들처럼 식별된 주제와 내러티브 구성 요소는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해미와 동행한 부유한 남자 벤(스티븐 연)이 나타난 이후부터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문 뒤에 가려진다. 해미의 실종은 가장 큰 미스터리이며 종수를 미로로 몰아가는 필사적인 탐사 시퀀스에 들어서면서부터 해미 뿐 아니라 고양이와 우물, 두절된 전화 통화, 인적이 끊긴 비닐하우스 따위의 가려진 존재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벤의 방화는 물질에서 비(非) 물질로, 존재에서 비 존재로 상태를 전환시키는 행위이다. 오프닝 신의 담배처럼 벤의 방화는 존재하지만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사물들을 창조한다. 6분여의 기나긴 롱테이크로 구성된 결말부는 오프닝 쇼트와 공명한다. 여기서 종수는 ‘노는 일’을 한다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개마저도 메타포로 대체하는 벤을 살해하고, 태워버린다. 이 장면에서 성공적으로 재현되는 초현실주의적인 기운은 화염에 그을리는 벤과 포르셰에 대한 단정적인 해석을 유보한다.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을 반으로 갈라 벤의 영역과 종수의 영역을 마주 보게 하면서 카메라의 위치를 이동하는 신 안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이음매를 확신시켜줌으로써 이창동은 종수가 벤을 태우는 한계 공간을 만든다. ‘태우기’의 양가적인 의미는 롱테이크를 통해 완성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버닝>은 담배를 태우던 종수가 벤을 태우면서 끝이 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시선, 세계관을 초점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리얼리티와 메타포, 종수와 벤으로 구체화된 이분법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표면과 심층에 항상 놓여 있다. 따라서 트럭 문 뒤에서 종수가 담배를 태우며 나타나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 장막에 의해 가려진 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자 하는 윤리적인 주제를 암시한다. 플롯의 끝에 종수는 눈에 보이는 허상을 살해하고 태워버림으로써 메타포 뒤에 가려진 현실을 보기로 한다. 과연, 그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닝>은 스토리텔링의 두 가지 양식, 예술적 형상화 방식의 두 극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종수가 소설을 쓰게 되는 동기와 과정, 결과로 나타난다. 벤을 살해하고 태우는 장면으로 이행하기 전에 이창동은 종수가 해미의 원룸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신을 배치한다. 카메라는 창문에서 뒤로 물러나 해미의 방과 서울 도심의 풍경을 프레임의 좌우에 나란히 놓는데, 이는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남산 타워에서 바라본 시점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 시퀀스는 존재의 확실성에 대한 영화의 질문을 완성하고,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망각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일종의 미장 아빔(액자 속 이야기)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여자친구의 얼굴을 치장하는 벤을 보여주는 신은 유일하게 종수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장면이고 벤을 살해하는 마지막 신에서는 오프닝 직후 관객의 눈을 대신해왔던 종수가 벤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진짜 작가가 되어가는 종수의 글쓰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14년 6월 11일은 지옥이었다. 아침 6시 사이렌 소리가 산을 감쌌고 경찰과 공무원은 군홧발로 가슴을 드러낸 할매들의 몸을 짓밟았다.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들은 목에 감긴 쇠사슬을 무 자르듯 커터로 잘라냈고, 1년을 지켜온 집을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4곳의 농성장을 하루 만에 철거한 경찰과 공무원은 주민들이 토해내는 울분을 뒤로하고, V자를 그리며 유유히 산을 내려갔다. 10년 동안 투쟁한 밀양에는 국가도 사람도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는 미약한 힘에 치를 떨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집실에 틀어박혀 밀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잘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영화는 그해 10월에 완성되었고, 영화로 밀양 투쟁을 알린다는 명목 하에 밀양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은 멀어졌다. 밀양에 살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6.11 행정대집행 다음날, 밀양 투쟁 시즌2를 선언하고 전국을 누볐다. 주민들이 지옥 같은 순간을 빨리 떨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늘 곁을 지켰던 연대자들 덕이다. 련 감독의 < 즐거운 나의 집 101 >은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연대자를 주목한다. 영화는 101번 철탑 부지에서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송전탑 건설로 국가가 파괴한 것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다. 구미현 어머니가 간이 딱 맞는 짭짤한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다. 그곳엔 비닐하우스로 만든 농성장만 있을 뿐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다. 행정대집행 예고장이 수시로 날아오지만 신기하게 긴장감도 없다. 10년 동안 송전탑 반대를 하며 터득한 투쟁의 노하우는 ‘놀고먹고 웃자!’였다. 사람들은 각자 놀고먹기 위해 산 아래서 밥, 반찬과 물, 맥주를 메고 오고, Joon’s카페와 요서요 북카페를 연다. 옆 산봉우리엔 쿵쾅쿵쾅 공사가 한창이지만 101번 부지에는 고등어 파티와 음악회가 열리며 웃음소리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101번 식구들은 산 아래서는 너무나 쉽게 누리는 작은 것에 소중함을 깨달으며 작은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현장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서 흥미롭게 바라봐야 할 지점은 감독이 현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이다. 련 감독은 현장을 멀리서 지켜보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 또 한 명의 연대자가 된다. 함께 밥을 먹고, 음악을 즐기고, 웃고 떠든다. 제목에서 농성장을 ‘나의 집’으로 호명한 이유가 영화 속에서 온전히 묻어나, 관객에게 현장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급기야 감독은 6.11 행정대집행 때 한 명의 주민이 되어 나의 집을 지키기 위해 목에 쇠줄을 감고 카메라를 든다. 극장에서 6.11 행정대집행 장면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그때의 분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 이후 그 순간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던 나와 달리 감독은 그 장면을 올곧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의 큰 줄기 중 하나는 행징대집행 1년 이후 어진이가 101번 부지에 오르며 자신의 소회를 나누는 것이다. 어진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밀양 소식을 듣고 연대한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밀양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에서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진이가 오른 곳엔 101번 송전탑이 거대하게 버티고 있다. 어진이는 송전탑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어진이에게 “너한테 101번은 뭐야?”라고 묻는다. 어진이는 힘들었던 곳이지만 우리가 전기 없고 물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대준 아저씨처럼 배짱이도 밥 먹을 수 있는, 평지에서 만들 집의 롤모델이었다고 말한다. 어진이의 경험과 깨달음은 도시에서 각자 섬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 밀양에는 101번을 포함해 62개의 괴물 같은 송전탑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시험 송전은 마쳤고 올여름이면 본격적으로 송전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밀양 투쟁을 끝났다고 규정짓지만 밀양 주민들은 오늘도 탈핵 탈송전탑을 외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패배하지 않기 위해, 당신들이 받았던 연대에 힘을 나누기 위해, 기어코 즐거운 우리 집을 짓기 위해, 오늘도 현장을 찾는다. 당신은 폭력이 난무하는 이 나라에서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 즐거운 나의 집 101 >을 보고 우리나라의 현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집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공동체 상영 문의: jelesais@naver.com 상영 소식: https://www.facebook.com/즐거운-나의-집-101-900476853393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