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괴수
- 감독
- 김정용
- 제작년도
- 1984
- 출연
-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김욱, 장철, 임해림, 최성관, 이태성, 유명순, 조학자, 이정애, 최명희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서 본 < 킹콩 > < 죠스 > < 공룡 백만년 >등을 통해 괴수영화를 알게 되었고, AFKN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접하며 급기야 괴수영화의 팬이 되었다. 외국 괴수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괴수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다양한 영화에 관심이 많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장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 덕에 < 우주괴인 왕마귀 > < 킹콩의 대역습 > < 비천괴수 > < 몽녀한 > 등의 한국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국 괴수영화는 남한판 < 불가사리 >( 김명제 , 1962)와 < 미녀 홍낭자 > < 악의 꽃 >을 빼고는 모두 관람한 것 같다. 언젠가 추석 때 방송된 북한판 < 불가사리 >를 보는데 어머니가 예전에 본 다른 ‘불가사리’ 영화가 있다고 말씀하셔서 남한판 < 불가사리 >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호기심에 어머니와 그 영화에 대한 대화를 더 나눠봤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영화의 특수효과가 조악해서 보는 내내 많이 웃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책 「괴수군단대백과」에서 고질라를 용가리로 잘못 소개한 걸 발견한 것도 < 대괴수 용가리 >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다. < 킹콩의 대역습 >은 어린 시절 형과 같이 극장에서 봤는데 너무 어릴 때여서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훗날 TV에서 방영된 것을 보고 다시 기억해낸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 괴수영화들에 대한 개인적 추억담들이 쏟아져 나온다. < 불가사리 > < 대괴수 용가리 > < 킹콩의 대역습 > < 차우 > < 7광구 > < 손님 > 한국은 괴수영화 장르의 불모지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괴수영화가 많이 나온 국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기록이 깨졌지만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은 당시 국내 역대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이듬해 나온 심형래 감독의 < 디워 >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 후 < 차우 > < 7광구 >등의 영화들이 나왔고,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 연가시 > < 손님 > < 퇴마: 무녀굴 >은 돌연변이 기생충과 식인 쥐, 뱀 요괴가 나오는 영화였다. 현재 한국 괴수영화는 괴수 장르임을 내세우기보다는 장르 영화에 편입된 형태로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야경꾼 일지>와 <밤을 걷는 선비>에서 이무기와 흡혈귀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괴수영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 대괴수 용가리 >와 < 우주괴인 왕마귀 >에는 6.25 동란으로 인한 전쟁의 공포가 담겨있고, < 킹콩의 대역습 >과 < 악어의 공포 >에 와서는 괴수의 탄생 혹은 활동의 주 무대가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 용가리 1999 >와 < 용가리 2001 > 그리고 < 디 워 >로 이어졌으며 < 괴물 >은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돌연변이 괴물이 탄생한다는 설정인데 이는 반미 정서와 한국사회 내부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차우>는 최상위 포식자가 없어서 소동을 일으키는 멧돼지 문제를, < 7광구 >에는 한일 공동개발구역에 대한 문제가 담겨있다. 해외의 경우에도 < 킹콩 > < 에이리언 > < 엘리게이터 > < 죠스 > 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데에는 그만한 원인이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괴수라는 상상 속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 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공포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나올 한국 괴수영화들도 한국 내부의 문제와 공포를 계속 담아내야 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마저 조악하게 느끼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특수효과도 꾸준히 발전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수준 이상의 특수효과가 아니면 외면해버리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가 한국 괴수영화의 발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 괴수영화를 만들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장르 팬으로서 영화 제작자들이 국내보다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으면 하는 데, 당연한 이유겠지만 해외에는 이런 장르영화의 고정 팬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의 괴수영화팬들은 할리우드 스타일로 제작된 한국 괴수영화보다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가 담긴 괴수영화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런 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괴수 영화 감상과 더불어 괴수 피겨 모으는 취미도 함께 갖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괴수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보니 컬렉션이 중단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화 속 괴수들이 피겨 제품으로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아쉽다. 그나마 영구아트에서 < 용가리 >와 < 디워 > 관련 피겨가 나온 적이 있었고, EBS < 한반도의 공룡 >에서 점박이 피겨가 나온 바 있다. < 괴물 >을 비롯 몇몇 한국 괴수영화들의 캐릭터 제품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만 나와서 역으로 비싸게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아끼는 괴수 피겨는? 미국에서 한정으로 나온 봉준호 감독의 <괴물> 레진 피겨와 <고질라 vs 비올란테>에 나온 1991년 버전 고질라 피겨를 꼽고 싶다. <괴물>은 당시 미국에서 한국괴수 피겨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지금도 애착을 갖고 있고, <고질라 vs 비올란테>는 직장 다니며 처음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고가의 피겨라는 점과 금형과 디테일이 훌륭해서이다. 해외 DVD, 블루레이 샵에서 발견한 한국영화 최근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괴수영화 팬들과 연락이 되어 페이스북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심형래 감독의 < 용가리 >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외국인들인데 이들의 한국 괴수영화에 대한 관심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팬아트 수준을 뛰어넘는 정교한 CG 작품까지 제작하는 등, 굉장한 열정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 나도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몇 년 전 해외에 나갔다가 DVD, 블루레이 샵에 한국 괴수영화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반갑게 느낀 적도 있다. 해외에 괴수영화 팬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이 여전히 잘 보이는 위치에 당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 차우 >는 < CHAWZ >, < 전우치 >는 < WOOCHI The Demon Slayer >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어 있었는데 국내와는 달리 괴수영화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김명제 감독의 <불사가리>, ‘ 대괴수 용가리 ’의 슈트를 재활용하여 제작한 김기영 감독의 < 미녀 홍낭자 >, 그리고 이용민 감독의 < 악의 꽃 > 이 세 영화의 필름을 찾게 되어 영상자료원에서 다 함께 볼 날이 왔으면 한다는 것이다.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김정용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는 많은 권격 영화를 연출해 이름을 알렸다. 6~70년대 스크린을 수놓던 수많은 액션 배우들이 그의 지시 아래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둘렀다. 그 명성은 무술영화의 본산인 홍콩까지 알려져 비록 공동감독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스타 홍금보와 함께 < 귀타귀 2 >를 만들었다. 또 죽은 이소룡의 영상을 편집해 집어넣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 한중합작영화 < 사망탑 >에 각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며 걸작을 만드는 데 보다는, 당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흡수하여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인기를 끄는 타입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짝퉁’이겠고 좀 더 좋게 말하면 ‘재해석’이라 말할 수 있다. 소림사를 무대로 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 소림사 주방장 >을 만들어 크게 히트를 쳤고, < 취권 >이 인기를 끌자 그는 황비홍(성룡)이 아니라 소화자(원소전)의 캐릭터를 가져와 < 무림걸식도사 >를 만들어 팬들의 뇌리에 큰 인상을 남겼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에는 80~90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책임졌던 왕룡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였다.) 특히 그의 페르소나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을 함께한 정진화 는 앞서 말한 작품들은 물론 < 복권 >, < 무림사부대행 > 등으로 ‘짝퉁 성룡’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짝퉁 성룡 뿐 아니라, 짝퉁 이소룡들의 큰 형님뻘 되는 거룡, 당룡도 그를 거쳐 갔다. (이 영화들은 그나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나은 편이고, 괴작들을 찾는 팬 사이에서 더욱 유명세가 높다. 인디아나 존스와 소림 무술의 기괴한 만남 < 아라한 >,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악명이 높은 강시 무협 < 소화성 장의사 >,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괴수물의 재앙 < 비천괴수 > 등 대부분은 자료가 없어 볼 수 없는 ‘구전 괴작’들이다.) 오늘 소개할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소림xx제자, 소림xx방 같은 영화들이 유행하자 우리의 김정용 감독은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 소림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에 ‘공물’로 바쳐지던, 아마도 병자호란 직후의 어느 즈음. 압록강 인근 어딘가에 위치하는 ‘성도사’라는 절에 자매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일가를 몰락시킨 ‘이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이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나라의 부자. 일종의 인신매매범으로 조선 여인들을 납치하여 팔아먹고, 그 과정에서 잔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이귀는 문화재 절도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아들인 흑풍을 시켜 성도사의 보물인 ‘황금약사여래상’을 약탈한다. 절의 주지 삼장법사는 청나라에 잡혀간 여인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 열을 모아 함께 복수하라고 일러준다. 미후, 미사는 열 명의 여인을 모아 황금약사여래상을 되찾고 이귀에서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 헤라클레스 ’적 고난보다는, 동료를 모으고 그들이 각기 다른 스킬을 가져 도와가며 펼치는 ‘ 반지의 제왕 ’ 같은 모험담을 좋아한다.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꽤 재미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심은 어떻게 재미있는 그림의 다찌마리를 만들 것인가에 더 치중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을 ‘화냥년’의 배경이 된 시대로 설정하고 여자들에게 무술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뿐이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점으로 무공을 펼친다든가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맞짱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분명 10명의 여걸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는 것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 영화에서는 그냥 살이 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좀 남자 같거나... 하는 식의 특징만 주어졌을 뿐 그다지 특별난 무공들은 없다. 사실 마지막 전투까지 진행하면서 그들은 하나씩 몸빵을 하고 퇴장하고 마는 정말이지 으악새. 그러다보니 이게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미후 역을 맡은 당시 미녀 권격 배우로 유명했던 김명아 선생이 이 영화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무리 남성과 다를 바 없는 무술이라 하더라도 선천적으로 여성이 가지고 태어난 곡선이 거칠기만 한 격투 장면을 좀 더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걸 즐길 새도 없이 여기저기 실소가 터지는 장면들에서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싸우기로 하고 모인 처자들이 힘들다고 도망을 가려 하자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심각한 얼굴을 한 미후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린 여자라고 방관만 해야 옳은가요. 나라가 약한 결과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넋두리였어요... 편히 쉬세요....” 라며 설득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대사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시대 배경을 그렇게 하고 보니, 뭔가 이야기는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서 였을까? 어차피 도둑맞은 여래상 찾고 이귀한테 복수만 하면 되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많다. 삼장법사가 죽고, 백년사의 송월법사를 찾아가고, 이귀는 백년사의 사천왕상을 훔치려 하고, 그 와중에 여걸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데다가 또 다른 여걸은 잃어버렸던 서방님을 찾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해야지 다찌마리는 채워 넣어야지 게다가 이 영화의 카피가 ‘82년은 여성 코믹 액션의 해!’ 였으니 코미디도 해야 하고... 제대로 굴러가기 참 힘든 상황은 맞는 거 같다. 그래도 권격 영화의 황금기를 보냈던 사람들인 만큼 액션은 상당히 멋진데, 김명아 와 정진화 그리고 이귀(배우 이름을 찾지 못했다)의 3인 격투장면은 상당하다. 특히 싸움의 초반에는 이귀가 자신은 장애인이라며(이런 설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수세에 몰리니 벌떡 일어나 발차기를 한다) 의자에 앉아 초식을 펼치는 장면이 있는데 박력이 대단하다. 물론, 이런 이귀의 사망이 있는 줄도 몰랐던(언급도 없었다) 함정에 빠져 죽는 허탈한 것이긴 하지만. 이귀가 죽자마자 ‘감사합니다’가 떠오르며 가슴을 두 번 때리는 야속한 우성프로덕숀.. < 소림십대여걸 >은 무협영화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 갈 때쯤 행해진 여러 시도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끼얹은 팩션의 형태를 취해보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오늘도 실패다. 전반적으로 허탈한 이야기와 뜬금없는 애국심 그리고 약간의 괜찮은 다찌마리로 대충 빚어진 영화다. 감독 본인이야 안타깝겠지만(필모그라피를 봐서는 그닥 안타까울 것은 없을 듯하나) 이런 영화의 깨알 같은 재미를 찾는 나 같은 관객도 있는 법이니,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한 것일지도. 김정용 감독은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오다가 2001년 < 우먼 파트너 놀자 >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김명아 김해은 방희정 감독: 김정용 각본: 윤석훈 개봉극장: 아세아(서울) 관람인원: 37,28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