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사춘기
- 감독
- 세바스티앙 필로트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카렐 트렘블레이, 마리-프랑스 마코트, 프랑수아 파피누, 피에르-뤽 브리양, 뤽 피카르
2010년, 제 14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한 저예산 영화가 상영되었다. 초저예산 영화로서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구현된 CG,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인터넷 커뮤니티 담론을 전면 수용한 영화로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이 바람을 타고 ‘장기하가 에드우드를 만났을 때’(영화평론가 이동진), ‘지구를 지켜라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영화평론가 김도훈) 등의 평을 들으며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B급 영화, 맛이 간 영화, 아무튼 뭔가 이상한 영화에 꽂혀있던 나는 그 실체를 확인하러 한 달음에..!는 아니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이대 후문 필름 포럼에 갔던 것이다. 좌석에 앉아 있으니 불이 꺼졌고 영화가 시작하나 보다 싶어 시선을 앞에 두었던 그 때, 갑자기 스크린 옆의 문이 열리며 왼손으로는 턱 밑에 둔 핸드폰으로 플래쉬를 켜 얼굴을 비추고, 오른팔은 위쪽으로 쭉 편 채 스크린 중앙까지 말없이 걸어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이 켜졌다. 사내는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불청객을 만든 이응일이올시다.(‘이올시다’라고 하시지는 않았을텐데, 상황과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그냥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린 이유는 역시 ‘삐용삐용 B무비 시즌 2’에 원고를 쓰기 위해서이다. 시즌 1을 할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영화만 잔뜩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옛날에도 지금은 흉내도 못 낼 ‘충분히 맛이 가버린’ 영화들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박노식 감독의 < 왜? >나 최영철 감독의 < 삿갓 쓴 장고 > 같은 영화들은 지금 생각해도 (두 영화는 정 반대 방향에 있긴 하지만) 매우 썩 훌륭하게 미친 그런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때 소개한 영화들은 영상자료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그 땐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끝내주는 영화들이 있으니 영상 도서관에 오셔서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 다시 ‘삐용 삐용 B 무비’를 시작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도 아주 좋은 영화가 많이 올라가 있고, 여러 OTT를 통해서 영화를 접하기 매우 쉬운 환경이 된 지금,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라는 건 예전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진다. 이번 시즌에서 소개할 3편의 영화는 되도록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이응일 감독의 < 불청객 >이다. 이응일 감독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영화 전편을 올려놓아서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울시 관악구의 어느 자취방. 고시생 진식은 오늘도 공부에 여념이 없다. 함께 살고 있는 취준생 강영과 응일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빠져 자고 있지만, 시골에 혼자 계시는 홀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그는 오늘도 양치를 하며 민사소송법 제90조 소송대리권의 범위...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그 때 택배가 하나 도착한다. 택배에는 ‘개봉이파괘되면계약을성맆댄것으로간주함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꺼림칙한 마음에 쉽사리 열지 못하던 그 때, 방금 잠에서 깬 응일이 방에서 나와 택배를 뜯어 버린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은하계 론리스타 금융그룹에서 포인트를 관리하는 ‘포인트맨’. 그는 진식, 강영, 응일의 수명을 지금 포인트로 적립하면 나중에 영원한 삶으로 전환하여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들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에 당황하며 거부한다. 이에 화가 난 포인트맨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고 일갈하며 이들의 자취방을 우주 어딘가로 날려버린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SF를 독립, 아니 이 정도라면 개인 영화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규모에서 시도하는건 매우 드문 일이다. 개념이나 논리적인 부분으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눈으로 보이는 우주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은 대단하다. 특히 영화의 가장 주요한 아이디어인 ‘자취방 창문 밖은 우주’라는 점을 쉽게 처리하고자 한다면 그냥 말로만 때웠으면 될 텐데 굳이 창문을 열고 우주를 보여주며 불사조 성운, 블랙홀까지 구현하고 있다. (우리 같은 백수가 밖에 더 있어! 라고 외치는 장면 뒤에 국회의사당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붙어있다.) 상업영화에 비교할 수는 없는 CG이지만, 영화 전체의 톤앤매너와 착붙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이 만듦새 자체가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여러번 돌려볼 수록, 이상하게 촬영과 CG가 절묘하게 훌륭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데 이거 혹시 진짜 되게 잘한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쓸무렵에는 아. 진짜 잘 만든거 맞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농담들이 정말 재밌어서 많이 웃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괜시리 반복적으로 리코더를 찾는 강영이나(중반부 쯤에 왜인지 ‘울밑에 선 봉선화’를 연주한다), 포인트맨의 초능력으로 갑자기 영어만 사용하게 된 응일, 포인트맨과 싸우다가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해서...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 되는데... 이젠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씁쓸히 되뇌이는 진식 등 전반적으로 뜬금없고 어설프며 지금 보면 예스러운 농담들이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고시생,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색한 위치가 되어 곰팡이 가득한 자취방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청년들. 그들에게 ‘수명’을 강탈하려는 포인트맨. 그는 자취방 브라더스의 수명을 앗아가려는 명분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인을 욕만 할 뿐. 그들을 따라잡려 노력할 의지도 없는 녀석들! 인구는 해마다 감소하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으며 산소와 영양분을 소비하며 지구의 공간만 차지하는 놈들! 너희는 잉여인간이야! 쓰레기 같은 쓰레기들! 빌어먹을 루저들! 내가 너희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할 기회를 주겠다.” 그 보람된 일은 수명을 포인트로 바꿔 미국 앨러배마에 거주 중인, 민간의료보험을 경영하며 국가에 헌신한 77세의 잭 도슨씨에게 넘기는 것이다. 너무 직접적이라 뭐 더 해설이 필요없는 정도의 직유다. 마치 UCC를 보는 듯한 화질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2006년쯤부터 촬영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화질이었을 것이다. (SONY의 PD-150을 사용했다고 한다.) 4K, 8K도 접하기 쉬운 지금 본다면 아쉬울 순 있지만, 이 부분만 견딘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며 여러번 돌려보았는데, 묘한 것이 개봉 당시에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고, 이야기 또한 더욱 시의적절하게 느껴져 웃다가 괜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꼭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2010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크게 들었다. 이응일 감독은 <불청객> 이후 몇 편의 단편, 웹드라마 등을 연출했고 현재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신다고 한다. 언젠가의 그의 작품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이런 재능을 단 한편으로 갈음하는 건 관객으로서 정말이지 너무도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불청객>은 이응일 감독의 유튜브 채널 ‘토토모’에서 관람할 수 있다.
(본문 속 사진을 클릭하시면 링크가 열립니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 이 어두운 세계에서 희망 가득한 긍정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걸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영화의 현재는 참으로 좋지요!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최상이죠! 그런데 내 생각보다 더 좋다면 어떡한다. 하지만 호들갑 떨진 맙시다. 그것도 좋지만 누구도 심장 마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쇼크받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내가 LP를 자주 듣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브릿팝을 듣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더라도 뉴오더는 전혀 브릿팝이라고 할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Republic]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브릿팝은 9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다소 복고적인 기타 팝을 가리키는 다소 두루뭉술한 용어다. 전설적인 60년대에서 패션과 태도, 분위기와 멜로디를 빌려온 브릿팝은 그런지로 대표되던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20년 넘도록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차게 식은 차를 후후 불어 마시던 영국인들의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1997년 신노동당을 표방하며 18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토니 블레어 정부는 브릿팝의 흥행을 등에 업고 쿨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영화, 패션과 축구를 아우르는 일종의 문화 캠페인을 벌인다. 실제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블레어는 하원 파티에 브릿팝 밴드들을 부르며 힙한 모습을 과시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훗날 펭귄북스에서 3권으로 출간된 대변인 알라스테어 캠벨의 일기에 따르면, 다우닝가에서 열린 총리 취임 기념 연회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랄프 파인즈와 함께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참석할 거라는 소식을 전달받은 TB(토니 블레어)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가 그를 초대한 건지 모르겠군. 그는 분명히 미친 록큰롤 같은 소동을 일으킬 거고 나는 전설적인 사건의 희생양이 되겠지. 앨런 맥기(*오아시스를 발굴한 크리에이션 레코즈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노엘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받아내야 해. 맥기는 떨고 있는 총리에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노엘은 괜찮을 거라고, 오아시스의 다른 반쪽(리엄 갤러거)을 초대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연회 당일, 아내를 대동한 노엘이 맥기와 맥기의 여자친구와 함께 총리 관저에 도착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를 마주한 블레어가의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굳어버렸다. 노엘은 블레어의 성공을 축하했고, 블레어는 노엘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리고 둘은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고 싶지 않다… 영상 1. 다우닝가에 도착하는 노엘 갤러거 그날 노엘은 술을 진탕 마셨고, 별다른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으며, TB와 쿨 브리타니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물론 영원한 적은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수상을 지낸 제3대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의 말이다. 1997년은 브릿팝이 이미 프로파간다로서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던 해였다.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 전쟁의 당사자였던 블러가 브릿팝의 죽음을 선언하며 미국적인 향취로 가득한 다섯 번째 앨범 [블러]를 발표했고, 80퍼센트에 달했던 블레어의 지지율은 어느새 52퍼센트로 급락했다. 1999년 노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옵저버’에 입사한 햇병아리 기자였던 닉 패튼 월시에게 신노동당은 변장한 토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어, 그렇잖아? 똑같은 똥들이 있는 다른 날들일 뿐이지. 그 뭐야, ‘우리는 이제 모두 중산층입니다We’re all middle-class now’? 그건 정말 모욕적이었어. 중산층이 된다는 건 좀 있으면 자살할 거라는 말이잖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일이 바로 중산층이 되는 거라고! 그럼 애초에 총리가 주최한 파티에는 왜 참석한 거냐는 신참 기자의 질문에 노엘은 조금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난 그냥 이렇게 생각했지. 영국 총리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젠장, 내가 빌어먹을 괴짜라도 된 것 같군. 나는 그날 밤에 기사 작위라도 받으려는 모양이라고 확신했어. 누구나 살아가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잖아, 안 그래? -한 마디로 하면 이거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불역열호. -…정연씨,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떠오르지 않나요, 지돈씨? 케이팝으로 시작해서 < 기생충 >과 < 오징어 게임 >으로 그리고 다시 BTS와 청와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랑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겠어요? JD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보다는 딸기와 퍼지로 코팅된 쇼트브레드가 들어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군요. 먹고 싶다 벤앤제리. -아니, 저기요. 과거에서 배운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는 지금… 음악 1 ‘Ice Cream as Main Course’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온다.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Ice Cream as Main Course’ 전주다. 갑자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JD를 바라본다.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핀 조명을 받으며 건반을 두드리고 있던 JD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먹을 꼭 쥔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길을 닦은 사람들입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오늘날의 거리 말예요 ♪타투 바와 스포츠 바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생각을 들을 수 없죠 ♪그것들이 가라앉으며 내는 잘랑잘랑잘랑 소리뿐 ♪에너지 드링크를 섞은 보드카 한 잔 더 ♪그치만 옛날로 돌아가면 ♪우리도 쿨했었는데 ♪헐리우드의 Musso and Frank’s에서 ♪우리는 메인 코스로 아이스크림을 시켰죠 ♪실크로 된 터번을 쓰고 ♪초코 우유를 마시면서 ♪물론 럼주 한 잔은 옆에 두고서 ... ... ... 노래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우리는 후렴을 함께 소리높여 합창했고, 아마 어느 부분에서는 눈까지 감았던 것 같다. < 어바웃 어 보이 >에서 휴 그랜트가 그랬던 것처럼. 영상 2 <어바웃 어 보이>의 한 장면 정말이지 나는 뮤지컬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슬프게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나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콜라를 본다, 라고 정지돈은 [영화와 시]에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영화를 소비할 때는 배스킨라빈스나 벤앤제리스를 보는 거라나 뭐라나. 나는 다른 많은 이름들처럼 벤앤제리스라는 이름도 정지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벤앤제리스는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신의 두 친구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1978년 설립한 회사다.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매각되었지만 독립적인 운영 방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벤과 제리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샌더스를 위해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버니의 열망(Bernie’s Yearning)이라는 한정판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는데, 민트향 아이스크림을 덮고 있는 얇은 초콜릿 막을 숟가락으로 깨부수고 마구 뒤섞음으로써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부를 99퍼센트에게 골고루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까요? 벤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아이스크림의 맛을 표현하자면 참여(participatory)의 맛이 난다고 하고 싶군요. 참여하시겠습니까? 깔끔한 폰트와 배색이 돋보이는 벤엔제리스의 홈페이지에는 맛의 무덤이라는 섹션이 있다. 그곳에는 화석 연료(초콜릿 쿠키 조각, 공룡 퍼지 및 퍼지가 물결무늬로 스월된 스윗 크림 아이스크림), 거북이 수프(퍼지로 코팅한 캐러멜 캐슈넛과 물결무늬로 스월된 바닐라 아이스크림), 둔감한 신성(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퍼지 우유가 스월된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리고 다크 퍼지 우유), 도시의 혼돈(코코넛 아몬드 퍼지 칩과 뉴욕의 슈퍼 퍼지 덩어리가 스월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만남 그리고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및 다크 초콜릿 덩어리, 피칸과 구운 아몬드의 조화), 악랄한 조합(피칸, 아몬드, 건포도와 초콜릿 칩이 들어간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은퇴한 아이스크림들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쿨 브리타니아의 것도 있다. 그림 1 쿨 브리타니아 묘비 쿨 브리타니아 1995~1998 이 맛은 엄청난 강타자였지만 - & 파울로 아웃되었습니다. 딸기 앤 쇼트브레드 - 독실한 사랑의 조합 하지만 슬프게도 마땅히 누려야 할 명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기기엔 너무 영국스러웠나 봅니다. 말라버린 강둑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블러의 베이시스트이자 ‘알렉스 제임스 제공Alex James Presents’, ‘좋은 웨일스 공녀 모드Good Queen Maude’, 그리고 뉴오더의 노래 제목을 딴 ‘블루 먼데이Blue Monday’ 등 빛나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다수의 치즈를 생산하는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성공적인 영농기업인 알렉스 제임스는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제 일부가 죽어요. 이런 식의 사카즘은 영국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에서 로렌스 스턴, 토머스 드 퀸시,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G.K. 체스터턴 등으로 이어지는 두터운 계보(절반 이상이 아일랜드계로 이루어졌다는 게 특히 영국적이다)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리씨는 자신이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더 스미스의 재결합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꾸한 바 있다. 스미스라고? 그 이름은 내게 말라버린 강둑에서 죽어가는 물고기를 연상시킬 뿐인데? 브릿팝이요? 그건 그냥 똥처럼 들리는 소리죠. 펄프와 프로젝트 밴드 JARV IS...의 리더이자 최근 웨스 앤더슨의 영화 < 프렌치 디스패치 >와 함께 하는(companion) 샹송 커버 앨범을 발표하며 뜨뜻미지근한 솔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또 한 명의 영국 전통 사카즘 전수자 자비스 코커는 2017년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민족주의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깃발을 흔드는 음악 같은 게 아니었어요. 브릿팝이라고 불렸을 때는 정말로 불쾌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어떤 대안적인 문화를 전용해서 거기에 유니온잭을 꽂고 크레딧을 모두 가져가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심지어 다섯 번째 회고록을 출간한 유명인들이 득실득실한 영국의 문화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코커의 첫 번째 회고록은 2022년에야 출간된 예정으로, 책소개에 따르면 이것은 자비스의 독특한 삶, 펄프, 20세기 대중문화, 좋았던 시절과 그가 차라리 잊고 싶은 실수라고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일생 동안 축적된 파편들은 글쓰기와 뮤지션십, 퍼포먼스와 야망, 스타일과 연출 기법 등 그의 창작 과정을 보여준다. 이건 인생 이야기(life story)가 아니다. 다락방 이야기(loft story)다. 회고록의 제목은 [좋은 팝, 나쁜 팝Good Pop, Bad Pop]이라고 한다, 세상에. 혼톨로지, 혹은 지나간 미래/도래할 과거의 유령 그림 2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한 장면 그러니까 문제는 책이고 음반이고 영화다. 닉 혼비의 소설(책)을 각색한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Fidelity>(영화)에서 챔피언십 바이닐이라는 이름의 레코드점(음반)을 운영하는 존 쿠색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다.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날 얄팍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것이 빌어먹을 진실이다. 블라블라블라. (어디선가 자비스 코커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나는 내가 깊다고 말한 적 없어, 나는 아주 깊게 얄팍하지 ♪내 지식의 부재는 광대하고, 내 지평은 좁다 ♪난 내가 크다고 말한 적 없어, 똑똑하다고 말한 적도 없지 ♪만약 네가 내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거야 ♪여어엉원히 말이야 -책들, 음반들, 영화들은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JD가 이어 말했다. -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책들, 음반들, 영화들이 중요한 건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요. -같은 말 아닌가요? -아니요. 존 쿠색의 말을 생각하세요. 같은 영화에서 쿠색은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죠. 불행하기 떄문에 음악을 듣는 걸까, 음악을 듣기 때문에 불행한 걸까? 그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정지돈에 따르면 그것들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는 늘 심령 현상을 전달해왔다고 키틀러는 말했습니다. 라캉에 의하면, 실재계에서는 시체라는 단어조차도 완곡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정지돈은 계속해서 키틀러를 인용했다. 1837년 모스 부호가 발명된 후, 영매 강령술자들의 ‘노크를 하는 영혼들’이 망자의 영역에서부터 각자의 메시지를 가지고 즉각 뒤이어 등장했습니다. 또한 사진 건판들이 영혼이나 유령의 모상들을 지체 없이 전달하기 시작했고요. 1878년 에디슨이 ‘북아메리카 리뷰North American Review’에 자신이 최근에 발명한 축음기가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지를 예견했을 때, 그 열 가지 목록 중 하나는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말”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이 뤼미에르는 영화를 가리켜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도구에 불과하며 미래 없는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어떨까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제논이 델포이 신전에서 무엇이 가장 훌륭한 삶인가에 대해 신탁을 청했을 때, 그가 받은 대답은 죽은 이들과 교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필로소피아라기보다는 네크로필리아에 더 가까운 신탁을 듣자마자 고대인의 글을 읽으라는 뜻이라고 이해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컴퓨터로 편집한 자료와 샘플을 구식 신시사이저 음색이나 어쿠스틱 악기와 뒤섞고, 라이브러리 음악과 영화음악에서 영감받아 만들거나 통째로 훔친 모티프를 인더스트리얼 드론과 추상적 노이즈에 엮으며 낭송이나 습득한 소리를 신비한 뮈지크 콩크레트/라디오 드라마풍으로 삽입해서 음악을 만드는 혼톨로지의 전략은 이미 고대에도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편집과 전유, 샘플링과 빙의, 그리고 아카이빙은 최근에야 발명된 게 아니라 기록 그 자체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조건이라는 거죠.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사태를 명료하게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우리의 영화에도 혼톨로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 과거를 새롭게 상상하는 동시에 미래를 새롭게 기억… 다중적인 시간 축을 동시에 나열…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어째서일까? 그의 말은 마치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고,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꽤나 길게… 꿈에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죽은 존재들의 무언의 호소에 민감해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미래가 과거의 미래, 곧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순수한 선행 기억상실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밀린 책을 쓰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시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뭘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건 약간의 시간만 흘러도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정지돈이 말하는 몇몇 고유명사들은 나도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 유현주 선생을 모시고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개 전혀 새롭게 들렸다. 혼톨로지? 물론 알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물론 혼톨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을 두어 번은 읽었으니까.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읽었다. 반쯤. 나원영과 강덕구가 번역한 마크 피셔의 글들도 읽었고, 큰 상관은 없지만 베리얼의 첫 두 앨범을 최근 LP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은 내게 매번 새롭게만 느껴지는 걸까? 내게 아주 많은 시간이 있다면 책상 앞에 앉아 이것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볼텐데.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한다. 마치 나는 입이 없고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처럼! 그럴 때면 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구글링을 하던 나는 시간에 쫓기는 흔들리는 눈으로 검색 결과들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내가 찾는 줄도 모르고 절박하게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유레카. 나는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한다. -자, 들어보세요 지돈씨. 혼톨로지 음악 경향의 창작 방식에는 작곡, 연주, 녹음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타인의 음반을 샘플링한 후 이를 편집하고 아날로그 음반의 노이즈를 증폭 혹은 삼입시키는 식으로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창작 과정은 작곡은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빙의되게끔 허용하는 것의 문제라는 트리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Maxinquaye]는 정해진 구조 없이 트리키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생략… 또 생략…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어때요, 제가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차용했는지 알겠어요? -빙의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홍상수에? -아니요, 근데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네요. 그건 일단 키핑 해둘게요. 제가 꽂힌 구절은 이거에요. ‘정해진 구조 없이’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저는 이게 이번 원고뿐만 아니라 우리 영화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구태여 매끈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단편들로만 채우는 거죠. 장면들, 인물들, 대사들, 장소들, 소리들, 작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고다르가 언젠가 자신의 영화에서 한 인물이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길을 걷는 장면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것처럼요. 대신 우리는 그걸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서 가져오는 거고요. -그게 뭐지?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이렇게 하는 거라니까요. -??? -바로 이렇게요! (다음 회에 계속) *이 글은 다음 글들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감기도령, 문피아, 2021) [참을 수 없는 가우초](‘크툴루 신화’)(로베르토 볼라뇨, 이경민 옮김, 열린책들, 2013) [영화, 축음기,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유현주.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9) 'Ice Cream as Main Course'(Jarvis Cocker and Chilly Gonzales) [영화와 시](정지돈, 시간의흐름, 2020)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아이스크림, 무슨 맛?'(오마이뉴스) 'Tony Blair was worried Oasis would trash Downing Street'(NME) 'Noel looks back in anger at drinks party with Blair'(The Observer) <디스 이즈 팝>(S01XE0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50 Best Britpop Albums'(Pitchfork)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스티븐 프라이스, 2000) <레트로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7)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전주국제영화제 엮음, 프로파간다, 2021)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크래클의 형이상학- 아프로퓨처리즘과 혼톨로지'(마크 피셔, 420 옮김, 네이버블로그 '좋습니다') '레이브 이후의 런던'(마크 피셔, gkd 옮김, 네이버블로그 'K-atacccombb') '트릭놀로지의 유령들'(이엔씨, 포스타입 '알 수 없는 평론가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할란 앨리슨, 신해경.이수현 옮김, 아작, 2017)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우리 아빠는 최고야. 우리 아빠는 무서워하는 게 하나도 없다. 커다랗고 험상궂은 늑대도 안 무서워한다… 우리 아빠는 최고야… 고릴라만큼이나 힘이 세고, 하마만큼이나 늘 기분이 좋다. 우리 아빠는 최고야… 그리고 나를 얼마나 웃겨 주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좋다. 왜 그런지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아빠>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대다수의 영국 관객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2000년에 발표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말이다. 출간과 동시에 아이를 둔 가정의 필독서가 되었고, 이후로 매년 아버지의 날이면 아이들은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머그잔을 선물한다. (때마침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회가 지금 서울에서도 열리고 있다) 마커스 아미티지의 2014년 단편 < 우리 아빠 >도 비슷한 대사로 진행된다. “우리 아빠는 나를 학교에서 데려오고… 이발소에 함께 가기도 하지… 우리 아빠는 신문을 볼 때면 늘 불평을 늘어놓고… 금요일에는 항상 피시 앤 칩스를 먹고… 휴일에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지...” 초반만 하더라도 주인공의 아빠는 그림책 속 아빠처럼 멋지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평범한 (혹은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의) 아빠로 여겨진다. 크레용으로 그린 이미지는 그다지 그림 실력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 보이는데, 여기에 담긴 모습에도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야수파의 회화처럼 그 속에는 뭔가 거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거친 기운은 이내 핸드헬드 카메라로 급박하게 찍은 영상처럼 불안정하게 끊임없이 부유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과 동네 풍경은 왁자지껄하다. 처음엔 그저 활기 넘치는 소란스러움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빠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면서 표현은 강렬해지고, 움직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우리 아빠는 신문을 볼 때면 늘 불평을 늘어놓지… ‘빌어먹을 세상, 내 탓이 아니야’…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것들, 우리 나라에서 당장 꺼져버려’…” 소란스러운 거리의 풍경 속에 10대 또래들의 일탈이 언뜻 보이기도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방관, 방치하는 듯하며, 이주민과의 갈등이 담기기도 한다. 어쩌면 그건 그저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와중에 빚어진 후끈함의 여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주인공인 아이는 그림책의 감성을 가진 ‘순수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복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말이 꽤나 어리숙하게 들린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말을 더듬는 횟수가 잦아지고, 발음도 뭉개진다. 오프닝에서 굵은 활자로 “My” “Dad”라는 제목이 등장한 것처럼, “My” “Dad” “Says”라는 대사는 단단하고도 투박한 글꼴로 이야기 사이에 줄곧 등장한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이미지에는 차츰 균열이 생긴다. 크레용 그림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거나 프레임 이미지가 찢어지면서, 그 아래로 활자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이미지를 비집고 등장하는 활자는 신문 기사를 뜯어 붙인 입체주의의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하며, 다다의 활자 차용처럼 의미를 없애버리는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아빠에 대한 언급이 되풀이되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활자의 개입도 더 강도를 높인다.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개입하는 이 활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짐작하듯 ‘아빠가 늘 보는 신문’이 뱉어내는 표식들이다. 줄기차게 선정적이고도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옐로우 저널리즘. 아빠는 신문을 안 읽어서 거칠고 무식한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읽어서 거칠고 무식하다. 신문이 처음부터 아빠를 거칠고 무식하게 세뇌시켰다기 보다는, 아빠의 불만을 신문이 ‘이민자의 문제’로 여기도록 ‘프레임’을 짜줬다. 불안을 불만으로, 불만을 분노로, 분노를 혐오로, 그리고 증오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크레용 그림과 활자의 뒤엉킴, 반복되면서 겹치고 뭉개지는 내레이션이 카오스를 이루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이 경찰과 맞서고 있다. 훌리건의 모습을 한, 반이민자 집회의 장면. 양측의 충돌이 벌어지는 순간 영상은 정지한다. 멈춘 그림이 찢어져 나가면서 그 아래로 거친 흑백 사진이 드러난다. 포토저널리즘에 전형적으로 쓰이는 사진 이미지이다. 이를 통해 < 우리 아빠 >는 이 이야기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지칭한다. 사진이 크레용 그림의 실체를 폭로해내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드러내는 것은 바로 주인공의 얼굴이다. 마침내 보여지는 아이의 얼굴은 생각보다 앳되다. 돌이켜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10살 안팎의 아이로 여겨지다가, 중간에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인 듯싶었는데, 다시 10살 초반대로 변한다. 아이는 아빠라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어느덧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책의 마지막은 아빠와 아이가 두 팔 벌려 꼬옥 끌어안은 장면인데 반해, 마커스 아미티지의 < 우리 아빠 >에서는 한껏 겁먹은 아이가 아빠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2015년) 한국에 소개된 외국 단편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작으로 꼽는다.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 작품이기 때문이고, 새로운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 < 우리 아빠 > 감상하기 https://vimeo.com/97812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