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똘
- 감독
- 오멸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김민혁 , 이경준 , 양정원, 조은, 성민철 , 박철용, 고경만
오멸 감독의 (혹은 자파리 필름의) 새로운 영화 < 지슬 >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보았다. 영화제가 시작되고, 주말을 넘기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 영화에 대해서 말했다. 한 지인은 후반부 내내 우느라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극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사람은, <지슬>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자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어떤 영화일까. 영화를 통해 어떻게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을지 무척 궁금했다. 이번 영화 역시도 감독의 전작들(< 어이그 저 귓것 >(2009)과 < 뽕똘 >(2009))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심플한 어감의 제목이 달렸다. 영화는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된 양민학살의 사건을 배경으로 다룬다. 민중항쟁의 배경에는 일본 패망 후 남한을 통치했던 미군정 체제의 사회문제와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좌익세력의 활동과 군정경찰, 극우 반공단체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제주 4·3사건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지슬 >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없이 죽어간, 역사의 기록에서 누락된 사람들을 스크린으로 불러와, 단순히 선과 악의 편을 나눠 기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 희생된 주민들 개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전쟁에 희생된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했듯, 영화 속의 사람들도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흉흉한 소문을 피해 산 속으로 피신할 뿐이다. 집에 남아있겠다는 노모와 키우던 돼지를 뒤로 한 채… 그리고 그들을 뒤쫓는 군인들이 있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징집돼 당신의 부모와 형제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결국 그 둘은 만나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오멸 감독의 카메라는 대학살의 참상을 전시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과정을 마치 씻김굿을 하듯 건조하고 비장한 톤의 흑백화면으로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장엄한 진혼곡을 경험하는 느낌이다. 주민들은 스멀스멀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시종일관 낙관적인 태도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면서 칠흑 같은 어둠의 동굴 속에서 긴 시간을 버틴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 청년은, 잿더미로 변한 집터에서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품에 지키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감자. 마을 사람들은 그 사연을 모른 채 청년이 들고 온 잘 익은 감자를 맛있게 나눠 먹는다. 제를 치루고 음복을 하듯. 영화는 이렇듯 제의의 형식(1장 신위(神位), 2장 신묘(神廟), 3장 음복(飮福), 4장 소지(燒紙)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 묻고 선동하기보다는, 죽은 사람들을 먼저 위로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밀스런 영화의 제목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뜻한다고 한다.
5월에 본 두 편의 독립영화, < 좋은 배우 >(175min/B&W/2005)와 < 뽕똘 >(98min/Color/2010)은 연극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은 배우>는 소개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음에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다행히 한국영상자료원의 ‘발굴, 미개봉 장편독립전’ 프로그램을 통해 뒤늦게 관람의 행운을 얻었다. 이 영화는 < 페어러브 >(117min/Color/2009)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 전작이기도 하다. <뽕똘>은 오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2010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곧 개봉관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이 영화 역시 ‘해피투게더, 독립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미리 볼 수 있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을 내놓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두 영화는 각기 다른 화법으로 질문을 던진다. < 좋은 배우 >의 주인공 수영은 고시준비를 그만두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극단에 들어간다. 극단의 연출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하고, 배우들은 그의 요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연극 연습의 지난한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쓸쓸한 겨울의 풍경과 함께 흑백화면으로 담아낸다. 반면 엉뚱하고 경쾌한 어감의 제목인 < 뽕똘 >은 제주도 특유의 풍광을 오합지졸의 캐릭터들과 함께 발랄한 리듬으로 담아낸다. 배우 성필은 제주도에 왔다가 우연히 배우모집 공고를 보고 오디션을 본다. 감독 뽕똘이 만들려는 영화는 전설의 물고기 돗돔을 소재로 한 ‘낚시 영화’다. 두어 명의 스태프가 전부. 시나리오는 감독의 머릿속에만. 얼핏 들어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이 영화들을 보면서, 극중 인물들이 마치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물론 그들의 삶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또 만족하는 작업을 내놓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한 없이 진지하지만 그럴수록 몽상가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극 연출가와 영화감독의 작업은 내내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고, 배우들과의 관계는 때로 위태로워 보인다. 일회용 도시락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고, 심지어 산속에서, 지붕도 없는 폐건물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쉽게 예술가의 칭호를 붙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신념이 확고할수록 삶과 예술은 초현실적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창조할 뿐이고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 좋은 배우 >의 배우 수영과 < 뽕똘 >의 감독 뽕똘은 모두 실패하고 만다. 수영은 결국 극단 생활을 접고 결혼을 한 뒤 회사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제 연극이란 그의 인생에서 한 페이지의 무용담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정체불명의 제주도 감독 뽕똘은 촬영 내내 카메라에 테이프를 넣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뽕똘은 정말로 영화를 찍고 싶긴 했던 것일까. 수영은 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추위와 배고픔을 견뎠던 시간들. 거창한 야망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이 좋아서 말이다. 배우 성필은 친구가 된 뽕똘을 용서하면서 묻는다. ‘너에게는 영화는 뭐냐’고. 뽕똘은 주저 없이 대답한다. ‘자파리’ 그래 어쩌면 예술은, 우리의 삶은 자파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