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악몽A
- 감독
- 김아름
- 제작년도
- 2009
영국 정보국의 장교 맥스 바탄(브래드 피트)은 상부로부터 아내 마리안 부세주르(마리옹 꼬띠아르)가 마리안으로 위장한 독일군 스파이로 의심된다는 말을 듣는다. 맥스와 마리안은 카사블랑카에서 독일 대사를 암살하는 작전에 함께 투입되었다가 사랑에 빠진 사이다. 아내가 스파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맥스에게는 그 사실을 증명할 72시간 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맥스는 마리안 덕에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던 영국군 가이 생스터(매튜 구드)를 기억해내고, 그가 머무르고 있는 요양원으로 찾아간다. 이제 < 얼라이드 >에서 잊히지 않는 끔찍한 장면 하나가 등장한다. 가이 생스터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왼쪽 눈 주위에 상처가 난 그의 얼굴 한 측면만이 화면에 담긴다. 맥스는 아내의 사진을 그에게 건네며 그 여자가 마리안 부세주르가 맞는지 묻는다. 그때 가이 생스터가 고개를 돌려 얼굴 정면을 보인다. 오른쪽 눈이 아예 제거된 그의 얼굴 한 편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다. 그는 눈 망막이 박리되어 사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순간, 우리가 체감하는 충격은 단지 시각적으로 흉측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그의 얼굴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이 얼굴에 그가 지나온 시간의 역사가 오롯이 잔혹하게 새겨져 있지만, 그 얼굴은 정작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섬뜩함을 안긴다. 온전히 드러난 가이 생스터의 훼손된 얼굴은 마치 < 얼라이드 >의 세계를 감싸던 환상의 막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벗겨져 버리고 만 순간처럼 느껴진다. 환상이 거둬진 후, 우리가 대면하는 건 마리안의 정체를 판별하는 눈이 아닌, 그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텅 빈 얼굴이다. 사실관계를 밝혀 서사를 추동하는 힘을 일순간 멈춰 세우는 압도적인 ‘무(無)’의 형상이 여기 불현듯 끼어드는 것이다. 마리안의 실체를 밝히는 데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가이 생스터의 이 짧은 장면은 < 얼라이드 >라는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아직’ 폭로되지 않은 앎의 주변을 맴돌며 이 영화의 환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리안 부세주르로 불리는 여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물음이 결국 <얼라이드>의 표면적인 축이라면, 그 과정에서 영화는 자신의 환상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말이다. 첩보물로 보건, 멜로로 보건 이 영화의 구조는 균형적이지 않다. 낯선 남녀가 만나 부부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마침내 함께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영화가 할애하는 시간은 전체 분량 중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이 카사블랑카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와 포탄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장면도 압축적인 편집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대신, 영화의 나머지는 상부가 맥스에게 허용한 단 3일, 즉 아내의 정체를 알아낼 시간에 모조리 사용된다. 말하자면 영화의 절반은 서사가 포괄하는 사건의 비중과 범위에 비해 어딘지 서둘러 다급하게 다뤄지고, 이후는 반대로 그 세계를 의식적으로 느리게 연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전자를 사건의 시간으로, 후자를 심리의 시간으로 간명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불균형한 구조 혹은 서사의 속도에 대해서는 더 해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다. 맥스와 마리안은 첫 만남부터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는 가운데, 독일 대사를 피살하는 공동의 목적을 추진하면서도, 매혹적인 낯선 남녀의 위치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펼쳐내는 능숙한 표면의 활동이 우아하게 막힘없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그 흐름에서 빠져나와 표면의 활동을 물끄러미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정면을 응시하거나 자신의 정면을 노출하며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표출하는 대신, 마주 보는 순간에도 시선을 살짝 어긋나게 두거나, 제3의 시선들을 경유해서 상대에게 도달한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면서도 정작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이상 묻지 않는다. 하지만 내내 불명확하고 모호한 눈빛으로 상대를 관찰하는데, 그 눈빛은 상대에게 닿기 전에 이미 카메라의 눈 안으로 흡수되어버린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정면이 아닌 측면의 방향으로 함께 존재한다. 그 방향성은 무언가와의 대면을 최대한 미룸으로써 어떤 상태를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남겨두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이들이 나눈 감정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연기인지 묻는 일은 무용하다. 진심과 연기 사이를 오가는 활동이 빚어낸 어떤 상태만이 지금, 이들의 세계에서는 중요하다. 두 남녀가 독일군들을 죽인 후,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마치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처럼 결혼을 언급하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아무래도 성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성급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을 쫓아오는, 한번 마주하면 다시는 떨쳐낼 수 없을 그림자로부터 맹렬하게 달아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 얼라이드 >의 마지막 72시간 안에 등장하는 비행기 추락장면의 강렬함과 기괴함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맥스의 집에서는 마리안의 주최로 파티가 벌어지는 중이다. 맥스는 마리안을 스파이로 확신하는 상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한 시선으로 그녀의 행동을 쫓는다. 그러던 중,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밤하늘은 한순간 폭격의 굉음과 빛으로 가득 차는데, 공격을 받고 하강하는 적기 하나가 맥스의 시야에 잡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비행기가 그의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맥스가 마리안과 아기가 있는 2층으로 황급히 올라가자 창문으로 불에 탄 비행기가 돌진하고 있다. 맥스와 마리안은 불에 탄 채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창밖 비행기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무방비하게 쳐다볼 뿐이다. 우리가 가이 생스터의 얼굴 정면을 보고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과 불길함이 이들의 표정에서도 스쳐 간다. 이 찰나는 카사블랑카에 두고 온, 아니, 그곳을 떠난 후 이들이 내내 회피하던 그림자가 위압적이고 파괴적인 형상으로 돌아와 이들의 현재를 기어이 삼키기 직전의 순간처럼 경험된다. 다행히 비행기는 창문을 뚫고 들어와 이들을 덮치지 않고 집 뒤편의 언덕에 추락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이들 가족은 다시 평화를 되찾은 언덕으로 소풍을 나온다. 그들 뒤로 부서진 비행기가 보인다. 이 장면은 마치 의미를 규명할 수는 없으나 그 막강한 힘만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실재의 무시무시함과 마주한 뒤,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미 불구가 된 환상을 목격하는 것 같은 기분을 안긴다. 혹은 그것은 죽음을 바로 등 뒤에 두고 마지막으로 기어이 애를 써보는 환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결국 환상을 허락하지 않는 멜로의 비극일 뿐이라고 말해야 할까. 마리안 부세주르가 실은 ‘마리안 부세주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뼈아픈 과정에 그 비극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 얼라이드 >가 혼신의 힘으로 영화의 절반을 할애한 72시간은 단지 그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까. 맥스가 마리안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홀로 고투하는 3일이 펼쳐지는 동안,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바라보는 곳은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목적지가 아니다. 영화는 그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지에 닿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마리안과 맥스의 표정, 몸짓, 시선, 동선을 주시한다. 그들은 무언가 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직감한 상태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종종 서로를 몰래 응시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그들은 카사블랑카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서 연기한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지금까지 내내 서로에게 연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후반부에 도달해서야 우리가 절실하게 깨닫는 건, 이 연기를 누구도 거짓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진짜와 가짜, 본질과 연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바로 그 육체의 속삭임과 숨소리와 미소가 전부가 아니라면 여기, 다른 무엇이 있겠냐는 듯 이 세계는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카사블랑카의 사막 위에서 이들이 벌이던 섹스 장면을 떠올려보라. 위협적인 모래바람으로부터 차단된 좁은 차 안에서 그 모래바람에 둘러싸여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몇 시간 후 임무에 실패하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죽을 운명이며, 당장 일보만 걸어 나가도 모래바람에 휩쓸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한계로 뒤덮인 상황과 운명에 들러붙은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확보하는 중이다. 작지만 촘촘하고 위태롭지만 관능적인 딱 그 정도의 시공간이 그들이 지켜내려는 어떤 상태고 환상이고 우주다. 그러니 < 얼라이드 >는 과연 우리는 환상과 싸워 우리의 진실을 어디까지 알고 대면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얼마나 끝까지 필사적으로 책임지고 지키며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이 두 질문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이 영화는 알고 있다. 강하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그 환상의 힘을 바라본다. 가이 생스터의 얼굴 정면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만 무(無)가 아니라, 두 남녀의 시선이 측면의 방향에서 포기하지 않은 힘겨운 활동의 가능성을 이 영화는 믿고자 한다. 설령 그 끝에서 죽음이라는 필연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이 영화는 배신과 거짓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 환상을 온전히 안는다.
영화 스태프로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20대에서 시작해 벌써 30대의 중반이니 영화와 함께 자라온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첫 영화를 했을 때는 너무도 신기한 사회에 들어와 있구나 생각하며 적응해나가기 바빴지만, 현재는 현장 녹음팀으로서 지금까지도 현장의 소리들과 싸우며 지내고 있다. 아마 영화를 그만둘 때까지는 계속 싸울 예정이다. 현장 녹음팀은 대략 3~4명으로 구성되어있다. 4명일 때는 현장 녹음감독 밑으로 붐 오퍼레이터-세컨드 붐 오퍼레이터-붐 어시스던트 순으로 구성이 된다. 3명 시스템이라면 세컨드 붐 오퍼레이터가 빠지는 경우이다. 그중 나의 직책은 붐 오퍼레이터다. 붐 오퍼레이터란 붐폴이라는 긴 장대에 달려있는 마이크를 컨트롤 하여 녹음감독이 원하는 대로 수음을 할 수 있는 기술자를 말한다. 그리고 그 붐 오퍼레이터는 녹음팀의 제1 조수를 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붐맨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는 붐 오퍼레이터가 맞는 표현이다. 요즘은 여성들도 많이 하고 있으니 예전처럼 ‘맨’이라는 표현은 바르지 않다. 여느 다른 팀과 비슷하게 제1 조수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오랜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기술적인 부분은 이론으로 배워서는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운 친구들이 오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이런 부분 같다. 교육 과정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영화에는 여기저기 존재한다.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의 그림자, 배우의 동선을 항상 신경 써야 하고, 대사를 숙지하면서 주변의 소리를 신경 써야 하며, 오퍼레이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야 하는 등 그야말로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이는 일투성이인데, 이들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결국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해본 노하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예를 들어 카메라 앵글사이즈를 가늠해 알맞게 마이크를 배치해 놓았다고 해도, 더 좋은 수음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배우와 근접해지는 위치에 마이크를 둬야 한다. 그러려면 조명으로 생기는 마이크의 그림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하고, 카메라 앵글을 잘 피해 가면서도 연기하는 배우 쪽 마이크가 더 정확한 위치에서 수음을 할 수 있게 항상 오퍼레이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순간도 같은 장면이 없는 영화현장에서는 그래서 더더욱 이론보다 경험이 중요해진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NG는 특히나 사운드에 의해 생기는 것이 많다. 언제 어디서 잡소리가 날지 알 수가 없기에 촬영 준비 중에 계속 체크해야 한다. 갑자기 비행기가 지나가거나, 동네의 개들이 짖어 대거나, 누구의 폰이 울리기도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NG다. 평소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시계의 초침 소리나 냉장고, 환풍기 소리 또한 미리 체크하여 끄지 않으면 소리의 톤이 많이 달라져서 깔끔하지 못한 녹음이 된다. 그렇게 미리 체크를 했다 해도,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긴다. 특히나 여름은 미리 체크를 해두어도 어디선가 날아온 매미들로 사운드가 고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럴 때는 위에서 말한 현장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매의 눈으로 매미를 찾아 쫓아낸 후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생각보다 예민한 녹음 상황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스태프와 배우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에어컨과 히터를 항상 꺼야 잡소리가 없기 때문에 나 또한 매우 덥고 또는 매우 춥지만 에어컨과 히터를 내 손으로 꺼야 한다. 자주 발생하는 또 다른 NG의 경우는 배우들이 정해진 동선과 대사대로 연기하지 않고 애드리브를 친다거나 했을 때이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대사를 치기로 했는데, 다른 쪽으로 돌면서 대사를 친다든지 해버리면 마이크는 약속했던 동선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다. 애드리브로 수많은 명장면이 나왔다곤 하지만, 현장에서의 애드리브는 재미있으면서도 당황스러운 존재다. 그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장르가 코미디이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2012년 찍었던 < 사랑이 무서워 >란 작품이다. 임창정 배우와 김규리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정말 김수미 배우의 현란한 애드리브 덕분에 현장 사람들 모두 웃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어야 했다. 촬영 중에 터지는 나의 웃음 때문에 재미있는 컷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니 정말 매 순간 정신을 다잡으며 집중을 했어야 했다. 애드리브 말고도 < 베를린 >이나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 등과 같이 외국어 대사가 많은 작품들도 오퍼레이팅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이크는 배우가 대사를 할 때, 그 배우와 매우 가깝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 정도가 대화를 하는 씬이면 마이크는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가며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본을 외워야 하는데 그 대본의 대사가 외국어가 되어 버리니 실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실수가 없기 위해 외국어 대사라 할지라도 촬영 내내 대본을 계속 보며 외워야 한다. 해외 촬영 시에는 언어로 인한 어려움뿐 아니라, 주변 소리 통제도 쉽지가 않다. 일단 언어소통이 쉽지 않아 식당의 음악 소리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통제하려면 통역하는 사람을 불러 현지 제작부에게 설명을 해야 하니 빠른 진행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해외 촬영을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해외에선 사이렌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울린다는 것이다. 슛 중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NG이기 때문에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얼마 전 < 보안관 >을 촬영할 때는 그야말로 ‘바람과의 전쟁’이었다. 기장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영화라 늘 바닷가 근처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에 마이크에 바람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윈드젬머라는 바람 소리를 부수는 역할을 하는 커버를 마이크에 씌워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선배들의 경험에서 나온 나름 특수한 아이템을 하나 추가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스타킹이다. 스타킹을 씌우면 바람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어 생각보다 많이 바람 소리를 잡아준다. 그러나 현장에서 쉽사리 사기도 어려워 현장의 여자 스태프들에게 변태라는 놀림을 받으며 스타킹 구걸(?)을 해야 하는 정말 뜻밖의 어려운 점이 있었다. 사극 또한 녹음이 어려운 장르 중에 하나이다. < 방자전 > 때 섭외된 많은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 중 민속촌 촬영 때에는 한옥 특유의 낮은 천장과 좁은 공간 때문에 녹음이 쉽지가 않았다. 마이크는 인물의 머리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낮은 천장 때문에 마이크의 높이가 낮아 화면에 마이크가 노출되는 NG도 많이 생겼다. 어느 정도 소리의 톤을 무시하고 인물 밑으로 마이크 위치를 설정해보기도 했지만 이 역시 좁은 공간 때문에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또한 사극 특성상 촬영 장소가 유적지나 관광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멀리서 들려오는 도로 소음이 많은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버스나 대형트럭 등이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NG가 나곤 했다. 그 시대엔 차량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기가 무척 어려웠다. <방자전>을 촬영할 땐 배드씬이 많았는데, 그런 씬 들을 촬영할 때는 무척이나 긴장을 해야 한다. 현장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얻으려면 모든 스태프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에 남아 슛을 간다. 베드씬은 배우들도 후시 녹음을 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나에겐 부담이 많이 되는 촬영 중 하나이다. 이렇듯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실제 영화를 봤을 때 관객에게 배우의 숨소리까지 내 손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소리를 잡아내고 그 소리로 영화의 집중도를 더 높여 줄 수 있는 직업. 그것이 붐 오퍼레이터인 것이다. 물론 만들어지는 소리들도 있겠지만 좋은 소리를 녹음해야 결국 좋은 사운드 디자인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한다.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내가 영화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영화에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붐 오퍼레이터가 되길 희망한다.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정해둔 나만의 애니메이션 장르가 있다. 제작기법이나 국적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 구분이랄까. 그중에 하나가 ‘용감한’이라는 장르다. 나만의 ‘용감한 애니메이션’으로 꼽아둔 작품 중 하나가 < 내 이름은 꾸제트 >다.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년 꾸제트는 알콜 중독인 엄마가 마셔버린 맥주 캔들을 주워다가 다락방에서 피라미드를 쌓으며 노는 아이다. 집 나간 아빠가 그리워서 아빠를 망토 걸친 슈퍼히어로로 그려 넣은 연을 날리기도 한다. 연의 뒷면에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아빠와 함께 있다는 어린 닭(영계)도 그려놓았다. 혼자인 엄마는 그날도 술에 취해서 다락방에 있던 꾸제트를 혼내러 올라오다가, 꾸제트가 무서워서 닫아버린 다락문에 부딪혀서 세상을 뜬다. 엄마마저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꾸제트는 경찰 아저씨 레이몽의 도움으로 보육원에 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그곳의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꾸제트가 엄마 머리 위에서 다락방 문을 닫고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사고지만 살인의 순간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니. (최근 청각장애를 지닌 소녀가 수화가 아닌 구음을 내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을 용감하게 담았던 애니메이션 < 목소리의 형태 >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잠시 후 꾸제트가 벽에 기대어 앉자 연이 창밖에서 날아 들어와 꾸제트 앞에 떨어진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연만큼 마음도 추락하는 느낌을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그 용감한 장면에 디테일이 깃들어 있다. 히어로 아빠가 웃고 있는 노란색 연을 꼬옥 끌어안는 꾸제트의 모습, 그때 꾸제트가 기댄 벽에 가득 그려진 무심한 듯 간절한 낙서가 그렇다. 결코 캐릭터와 이야기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려는 정성이 엿보인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어울린다. 캐릭터는 물론이요,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배경 세트까지 오롯이 그 질감과 수작업의 공로가 들여다보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어쩌면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끝끝내 해내려는 의지를 담기에 참 좋은 그릇이다. 여기에 캐릭터 인형의 손에 들린 작은 책가방, 책상 위의 앙증맞은 크레파스, 다락방에 널브러진 미니 사이즈의 책들이 더해져서 꾸제트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장면 장면이 그런 아름다움으로 빚어져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인 레이몽 아저씨가 꾸제트를 차에 태워 보육원으로 가는 순간이다. 꾸제트가 창밖으로 날린 연이 푸른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가도록 사이렌을 울리며 액셀을 밟아주는 레이몽 아저씨와 해맑게 웃는 꾸제트의 표정이 정갈하고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연을 함께 날려주는 어른이 이 세상에 한 명쯤 존재한다는 것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질 파리의 동명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는 이처럼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를 알록달록한 화면에 담았다. 파란 머리, 빨간 코,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꾸제트를 중심으로, 당근색 머리의 보육원 대장 시몽, 부끄러울 때면 노란색 앞머리로 얼굴의 반을 가려버리는 알리스, 꾸제트가 반한 갈색 머리의 당찬 소녀 까미유 등 아이들 각자의 사연도 아프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아이들은 온몸으로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이 아이들의 성장담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정성스런 손길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화려한 몸개그, 헛소동, CG의 세례 없이도 그게 가능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찬찬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세밀한 질감은 이 아이들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어주고 싶거나 두 팔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증폭시킨다.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함께 연을 날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