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살인 청부
- 감독
- 로몰로 구에리에리
- 제작년도
- 1992
- 출연
- 캐롤 엘트, 빅터 아고, 안나 카나키스, 필리페 레로이
첫 키스 신의 수혜자에서 이완용 단골 배우로 해방 후 미군정기(1945년 9월 9일~ 48년 8월 15일)까지 제작된 영화는 최인규 감독의 <독립전야>(1948)까지 29편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경찰의 지원 아래 만든 정책 계몽영화가 <밤의 태양>(박기채, 1948), <수우(愁雨)>(안종화, 1948), <여명>(안진상, 1948) 등 세 편이다. 이향(李鄕)은 이 가운데 <밤의 태양>(1948)으로 영화계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7’이라는 별명을 가진 불량배 역할이었다.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박기채 감독의 유난스런 호각 소리를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박 감독은 일반적으로 쓰는 ‘레디고’대신 먼저 ‘레디’라 외친 뒤 호각을 불었다.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모조품이 아닌 각종 총기가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특수효과 기술이 빈약해 실탄을 넣고 쓰다 보니 배우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향, 「예(藝)에 살다, 연기일생(12)」 , 『일간스포츠』, 1980.1.18) 그는 <밤의 태양>에 이어 김성민 감독의 <사랑의 교실>(1948)과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를 번안 각색한 <심판자>(1949)에 출연했다. 이렇게 조연에 머물렀던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에 고학생으로 위장한 방첩대 대위 신영철 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그는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됐을 때 자신을 구해준 술집 종업원 마가렛(윤인자)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위장 대남 간첩(정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권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향은 그 여간첩이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결말 부분의 키스 신을 찍기 위해 감독과 함께 1주일 동안 상대역인 윤인자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키스라고 해야 겨우 입술만 댔을 뿐인 어설픈 이 장면이 한국 최초의 키스신이 된 배경이다. [사진] 최초의 키스신으로 알려진 <운명의 손>(한형모, 1954)의 한 장면 이향은 <운명의 손> 이후 <인생역마차>(김성민, 1956), <마의태자>(전창근, 1956),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 <형제>(김성민, 1958) 등에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인생역마차>에서는 암흑가의 두목과 신문기자 1인 2역을, <마의태자>에서는 타이틀 롤을, <검사와 여선생>에서는 은혜를 입은 옛 은사를 법정에 세워야하는 검사 역을 맡고, <형제>에서는 남의 아내가 된 옛 애인 앞에 살인강도가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준 것은 <사랑의 교실>부터 <형제>까지 네 편에 불러준 김성민 감독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 후의 배역들이 앞의 작품들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거나 비호감형, 악역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멜로드라마 보다 시대극이나 활극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진] <형제>(김성민, 1958)에 출연한 이향_사진제공 김종원 그 예로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1959)의 일본 경찰 주임, <한말풍운과 민충정공>(윤봉춘, 남홍일, 1959)의 강압적인 일본 사신 하야시, <아아, 백범 김구 선생>(전창근, 1960)의 저격 미수범 한태구, <안개 낀 거리>(강범구, 1963)의 살인 청부 역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전창근, 1959) 이후에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신상옥, 1959) 등 이완용 배역만 무려 여섯 번이나 맡아 ‘이완용 단골 배우’가 되었다 .(이향, 「예에 살다, 연기일생」 (19) 『일간스포츠』, 1980.1.27) 그는 1964년 한 해 동안 <동굴 속의 애욕>(강범구) 등 11편에 출연, 최다기록을 세우며 1991년 7월 29일 알츠하이머로 77세의 삶을 마칠 때까지 <원점>(이만희, 1967), <검은 장갑을 껴라>(이상언, 1971), <악인의 계곡>(김묵, 1974), <족보>(임권택, 1978),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초대받은 성웅들>(최하원, 1984) 등 모두 131편의 영화를 남겼다. [사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의 한 장면 단련된 몸으로 이미 맛본 단역 경험 독특한 저음이 만들어내는 광물성의 강한 목소리, 날카로운 눈매로 36년 동안 한국영화계의 길목을 지킨 이향은 1914년 2월 8일 서울 효제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근식(李根植)이다. 그는 아홉 살 때까지 강원도 홍청군 서면 동막리에서 자랐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자신은 일본 사람을 상대로 모피 장사를 했다. 이 소년은 집근처인 연동교회에 다니며 뒷날 부통령이 된 함태영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풍족한 아버지 덕에 서울주교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경신(儆信)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학기 초에 배재고등보통학교의 축구선수로 스카우트되는 바람에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그런데 축구가 싫어졌다. 이 학교를 나와 들어간 곳이 연희전문학교 별과(別科)였다. 별과란 축구와 야구선수로 구성된 일종의 특기 반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연극에 있었다. [사진] <이름없는 별들>(김강윤, 1959)에 출연한 이향 이 무렵 낭만좌(座)라는 극단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조연 배우가 나가는 바람에 급히 자리를 메워야 한다며 출연을 권했다. 그 대타로 나가게 된 것이 <아편전쟁>의 쿠리 역이었다. 작은 역할이었으나 칭찬을 받게 되자 학업마저 중단했다. 연극 일이 늘면서 한 선배가 그에게 “고향을 그리듯이 조국을 잊지 말라”며 시골 향(鄕)자가 들어간 예명을 지어 주었다. 이향은 <밤의 태양>에 앞서 해방 전 눈에 안 띄는 배역이지만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제작부장(이백산)이 불러 만났더니 영화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맡겨진 배역은 갑, 을, 병 세 명의 농부 가운데 한 명인 농민 역, 김유영 감독의 <수선화>(1940)였다. 의정부 촬영장으로 나갔더니 감독의 지시라며 바지저고리부터 입게 하고는 4, 5일 동안을 땅바닥에서 지내게 했다. 그래야만 농부의 분위가 몸에 밴다는 것이었다. 황달병을 앓고 있던 김 감독은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들것에 실려 나와서도 극성스럽게 현장을 지휘했다. (이향, 「예에 살다, 연기 일생(8)」 『일간스포츠』, 1980.1.14) 이향은 그 뒤 연극계의 선배인 극작가 이광래의 소개로 연극지망생인 처녀와 사귀었다. 1949년 ‘제3무대’라는 극단을 만들어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쁠 때였다. 손 씨인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대한통운의 전무였고 오빠는 아나운서였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선 그들의 교제를 적극 반대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동거로 맞섰다. 첫딸이 네 살이 되어서야 겨우 승낙을 받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1970년 이향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병마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그런 아내도 6남매를 남긴 채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이 글에는 < 나이트 크롤러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나이트 크롤러 >의 후반부에는 상황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장면이 한군데 있다. 심야의 격렬한 추격전 끝에 경찰들의 차가 전복되고 살인자의 차도 부서져 도로에 나뒹군다. 밤새 일어나는 말초적인 사건사고 현장을 촬영하여 방송국에 넘기고 돈을 버는 주인공 루(제이크 질렌할)와 그의 조수가 살인자의 자동차 곁으로 재빠르게 다가간다. 루가 먼저 다가가지만 그는 이내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멀어지면서 조수를 향해 어서 빨리 저 사람을 가까이에서 찍으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조수가 다가가자마자 살인자는 총으로 그를 쏘아 살해하고는 차에서 내린다. 몇 발자국 앞에는 루가 카메라를 들고 그를 찍고 있다. 이때 그 납득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살인자는 몇 초간 루를 잠시 노려볼 뿐 발포하지 않고 뒤돌아선다. 그리고는 잠시 후 뒤 따라 오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한다. 왜 그런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느 관계도 없다. 주인공의 목숨이 부지되는 그 흔한 장면에서처럼 상대방의 총알이 떨어졌기 때문도 아니다. 살인자가 곧 이어질 경찰들과의 총격전을 위해 총알을 아껴야 한다고 찰나에 판단한 것이리라 추정하는 건 그의 냉철함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는 눈앞에 있는 루의 조수를 당장에 쏘아 죽인 사람이 아닌가. 그는 냉철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루를 쏘지 않고 얌전히 뒤돌아섰는가. 이 장면의 의문스러운 불투명이 이 영화의 흥미로움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 나이트 크롤러 >는 루에 관한 영화다. 그는 심야의 유혈 낭자한 사건 사고들을 하이에나처럼 쫓아다니며 찍어서 방송국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에 넘기고 돈을 챙긴다. 장물이나 훔쳐 팔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사고 장면 촬영분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걸 두고 루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꽤 근사하고 자부심 넘치게 표현한다. 우린 그의 과거를 전혀 모르거니와 그가 혼자 사는 반미치광이라는 사실 외에는 현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미치광이 루 역할을 맡아 열연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를 칭송하는 평가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고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다만 < 나이트 크롤러 >가 배우의 열연과 캐릭터의 완성 측면으로만 접근될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예컨대 <나이트 크롤러>는 같은 L.A.의 밤을 배경으로 했던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이클 만의 < 콜래트럴 >이다. 의외로 <콜래트럴>의 빈센트(톰 크루즈)와 <나이트 크롤러>의 루는 여러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빈센트가 L.A.라는 거대 도시에 무지한 이방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인물이 이 도시의 밤을 밤새 헤매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들의 활동 시간은 전적으로 밤의 시간이다. L.A.의 밤이라는 배경을 <콜래트럴> 이후에 이렇게 실제적으로 차갑고 적막하며 정신질환적인 정서로 그려낸 영화는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콜래트럴>의 빈센트, <나이트 크롤러>의 루 두 인물 사이의 더 흥미로운 유사성은 이들이 완벽하게 흥정의 달인이며 요설가라는 점이고 그것이 종종 그들의 내재된 광기를 번뜩이게 한다는 점이다. 흥정은 대개 자부심으로 가득한 요설에 의해 그들 쪽으로 유리하게 성사된다. 빈센트가 흑인 재즈 뮤지션을 살해할 때 그가 펼치는 내기의 흥정(빈센트는 자신이 내는 재즈에 관한 문제를 맞히면 살려주겠다고 흑인 뮤지션을 꼬드긴다)은 루가 사람들을 상대할 때마다 발휘하는 그 비열한 사업수완으로서의 흥정과 요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상 루는 조수가 총에 맞아 죽도록 고의적으로 일을 꾸민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이 가르쳐 준 흥정의 기술로 도리어 자신에게 (급료를 올려 달라는) 흥정을 걸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둘 다 각자의 사업 때문에 밤을 헤매고 있는 것이지만 그 사업의 형태가 사실은 둘 다 청부업이라는 점이다. 빈센트는 살인 청부업을 하고 루는 촬영 청부업을 한다. 다르게 표현할 때 둘의 사업의 연관성은 더 확실해진다. 둘의 사업은 어원적으로는 같은 일이다. 빈센트는 밤새 사람들을 쏘고(shoot) 다니고 루는 밤새 사람들을 찍고(shoot) 다닌다(그리고 이 어원의 동일성은 우리가 제기한 후반부의 그 의문스러운 장면에서 정확히 어떤 효과를 발휘하고 만다). 빈센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루가 오게 되어 있다. 이들이 바로 잔인한 도시의 밤을 완성하는 부패한 가상의 짝패일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다. 결국 빈센트는 L.A.의 지하철 안에서 쓸쓸하게 싸늘한 시체로 죽어 갔고 그는 밝고 따뜻한 햇볕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반면에 루는 수사관의 엄포에도 끄떡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거짓으로 꿰맞췄으며 밝은 대낮에 제 발로 경찰서를 나와 사업을 번창시킨다. 하지만 이 차이는 귀결의 차이에 해당할 뿐이다. 두 인물의 다른 귀결은 왜 일어나게 된 것인가 재차 물을 때 다음과 같은 점이 핵심이 될 것이다. 자신의 세계와 대상에 대한 지배력 혹은 통제력을 지닌 것인가 그렇지 못한 것인가. 빈센트는 상실했으나 루는 성취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빈센트의 사업은 맥스라는 운전기사를 지배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균열을 맞는다. 루는 완전히 반대된다. 조수가 반기를 일으키자 그 즉시 살인을 꾸민다. 루는 처음에 어떠한 지배력도 통제력도 지닌 바 없었지만 그것을 무섭게 성취해간다. 그런데 어떻게 성취해갔느냐가 정작 중요하다. 그가 다루는 세계와 대상 즉 사건사고의 현장에 대한 연출력을 총동원하면서다. 의외로 < 나이트 크롤러 >의 서사적 핵심은 루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사악하고 끔찍한 괴물인가 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루는 어떻게 현장에서의 조작적인 연출력을 증대해 가는가에 있다. 그 연출력 증대의 궤적을 따라 그의 악함은 저절로 강조되는 것이다. 이 연출력에의 강조야말로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루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연출력이란 기껏해야 사소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현장의 경찰들이 윽박지를 때 그는 자신의 촬영이 허가받은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 루가 젊은 부부의 집에 잠입해 들어갔을 때를 보자. 그는 벌써 대담해진다. 부부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루는 냉장고의 외관에 붙어 있는 사진들의 배열을, 시청자가 상상적 서사를 알아서 일으키도록, 보기 좋게 조작한다. 현장의 사물을 연출하는 것이다. 동시에 집 마당에 서 있는 부부를 적절한 극적 앵글로 포착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다음 사건에서는 차량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의 시체를 차 쪽으로 일부러 끌어와 더 참혹한 이미지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이제 그의 연출의 영역은 단지 소도구의 배치가 아니라 효과적인 프레이밍으로 확장된다. 이즈음 루는 방송국 뉴스 담당자에게 자신이 “프레이밍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그로써 오히려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시청자들의 시선을 화면에 더 오래 잡아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루의 연출력은 끔찍할 정도로 과감해진다. 가령 도시 외곽 부유층 백인 저택에서의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루는 인명을 구하려 들기는커녕 현장성 포착이라는 미명하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방치하고 카메라를 돌린다. 일종의 사건의 방치라는 간접적이지만 치명적인 연출법을 행하기 시작한다. 도주하는 범인들을 일부러 신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어서는 더 과감한 연출법이 가해진다. 살인범들이 있는 곳을 경찰에 알려 총격전을 유도하고 미리 기다리다 그것을 찍는 것이다. 간접적인 방치가 아니라 직접적인 유도의 기술이 유용되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질문했던 장면이야말로 루의 연출력이 최고조에 달한 장면이다. 왜인가. 이 장면은 사건 이후의 순간도 아니고, 사건에의 방치도 아니며, 유도도 아니다. 루, 자신이 몸소 나서서 살인하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연출하고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의 이 악랄한 연출력을 가장 반기는 것은 역시 루와 거래하는 텔레비전 뉴스 책임자 니나(르네 루소)다. 자신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루가 영감을 주는 것 같다며 니나는 결국 감동하여 말한다. 그때 자신들의 일이란 더 자극적이고 더 참혹한 이미지로 가득한 방송,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목이 잘린 여인이 소리치며 달리는 것”과 같은 이미지의 완성이다. 따라서 우리가 질문했던 장면에 이르러 우린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왜 상대는 그때 루에게 총을 쏘지 않은 것인가. 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쏘지 못하는 것이다. 루의 카메라가 상대방의 총보다 더 과격하고 힘이 세며 상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만들어 낸 루의 연출력이 상대의 살의보다 더 강력하고 악랄하기 때문이다. 더 센 짐승 앞에서 물러나는 약한 짐승처럼 상대는 돌아선다. 루가 카메라를 든 자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마치 총을 들고 겨누고 있는 것처럼 상대에게 맞서고 있다. 따라서 물러서지도 않고 도망갈 기색도 없다. 마치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로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죽일 수도 있으리라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론 카메라가 당장에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리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루의 카메라가 상대방의 총보다 훨씬 더 센 것이다. 총이 카메라를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든 자가 총을 든 자를 존재론적으로 제압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두 악한이 마주하여 일으키는 이 장면의 흥미로움이다. 우리는 총을 쏘는 것과 카메라로 찍는 것이 하나의 단어(shoot)로 계열화될 수 있음을 미리 지적했다. 사람을 쏘고 다니는 남자와 사람을 찍고 다니는 남자가 이 순간 격돌하였을 때, 이 영화에서라면 가치의 면모에 있어서 동일하게 악한 두 인물이 격돌하였을 때, 쏘는 자는 찍는 자에게 결코 대항하지 못한다. 루의 찍는 행위가 연출이라는 전체에 직접적으로 해당한다면 상대의 쏘는 행위란 루의 그 연출 계획안에 들어 있는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카메라와 총 사이에 놓인 악의 완력 관계는, 이 영화에서 루가 행하는 카메라의 악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 잔혹함인지 역설하고 있다. 어느 날 아무런 정보도 예고도 없이 그저 좀 대강 보아도 되는 스릴러이겠거니 하고 보게 된 < 나이트 크롤러 >에서 문득 내가 접한 매혹의 지점들이 바로 이상의 것들이다.
<오페라복스>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지명도 있는 작품 6편을 선정하여 일반 대중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장시간으로 지루하고 내용을 이해하기가 난해한 오페라를 30분으로 압축시켜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오페라복스>는 화려하고 감성이 풍부한 화면과 깊은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실제 오페라 무대의 한계를 뛰어 넘는 영상미를 보여준다. 웨일즈 국립오페라단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고 대규모 합창단이 코러스를 맡아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뛰어난 이 작품은, 줄거리, 곡해설, 작곡자 소개 등이 수록되어 보다 더 깊이 있게 각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탈리아 만토바 공작은 여자 없이는 못 사는 바람둥이. 밤마다 현란한 가면을 쓰고 다른 부하들과 파티를 즐기는 만토바 공작. 만토바 공작의 삶은 매일 다른 여자와 연애하고 싶어하는 바람둥이에게 딸이 농락 당하자 불쌍한 딸을 데려오고 공작을 찾아가 따질 때 공작의 광대인 리골레토가 공작을 두둔하자 딸의 아빠는 광대 리골레토에게 저주의 말을 한다. 저주의 말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리골레토. 우연히 살인 청부업자를 만나게 된다. 뭔가 일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흐른다. 광대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다. 딸을 걱정하는 광대. 딸은 아버지에게 걱정하니 말라고 하고 아버지는 안심하나 딸은 공작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이후가 된다. 공작에게 빠진 딸과 찾는 아버지 공작의 집 앞에서 딸을 달라고 외친다. 겨우 딸을 만나게 되고 만토바 공작을 암살을 사주하게 된다. 아버지를 말리는 딸 그 상황 공작의 노래소리가 들리고 다른 여자에게 고백하고있는 공작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살인청부업자가 공작에게 다가가고.... 배를 타고 가는 광대의 복수의 비장한 표정과 함께 공작의 시체를 강에 버리려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온다. 리골레토의 절규. 약 11년 전, 2000년도 즈음에 모 잡지 부록 비매용 VHS로 나온 것을 보고 비디오를 너무 반복해서 봐서 화면이 잘 안나오게 되어 한 동안 우울해하며 지내던 기억이 있는 작품이다. <오페라복스> 중 이번에 소개한 작품은 `리골레토`. 비극과 반전이 잘 짜여지고 연출, 음악, 편집, 애니메이팅, 인형 완성도와 표현 모든 것이 짜임새있게 잘 표현된 작품이다. 스톱모션의 여러 표현 기법 중 퍼펫 애니메이션의 표현과 연출을 교본처럼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