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angchi와 한국요리 만들기] 삼겹살 구이
- 제작년도
- 2009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
< 구타유발자들 >이란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구타를 유발하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뮤지컬 오디션을 본 인정( 차예련 )은 교수 영선( 이병준 )의 차에 타고 한적한 강변에 내리게 된다. 목적이 뻔한 교수에게서 도망친 인정은 순박한 얼굴을 한 봉연( 이문식 )의 오토바이에 타게 된다. 그런데 봉연은 동네 양아치들의 두목이었다. 양아치들은 고등학생인 현재( 김시후 )를 목만 남기고 땅에 파묻는 등 학대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현재는 고등학교 시절 봉연을 괴롭히던 문재( 한석규 )의 동생이다. 봉연은 경찰이 된 문재를 여전히 두려워한다. 그들의 폭력은 서로 얽혀 있다.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폭력을 유발하고, 지금 권력을 쥔 쪽이 약한 자를 끝없이 괴롭힌다. 원신연 의 두번째 장편 < 구타유발자들 >은 지금 봐도 불편하다. 그들의 폭력에는 도대체 이유가 없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하다. 괴롭히고 싶으니까, 내가 힘이 있으니까. 현재를 괴롭히는 이유가 정말 그의 형 때문인 것일까? 봉연의 부하들은 과연 그런 과거를 알고 있을까? 그냥 괴롭힐 대상이 있으니까 폭력을 휘두른다. 그게 즐거우니까. 폭력이 그들의 놀이이니까. 마찬가지다. 교수가 인정을 강간하려 한 것은 그녀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판단한 아랫사람이니까. 누가 강하고 약한지 잘 알고 있는 교수는 시골 양아치들을 만나는 순간 고개를 숙인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육체적인 권력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는 도시에서 온 중년 남자일 뿐이니까. 시골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시골은 조용하고, 평화롭고, 인정이 남아 있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그런 인식을 부정하는 영화들은 차고도 넘친다. < 안개마을 >은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야만과 폭력을 그린다. < 김복남 살인사건 >은 마을 전체가 폭력을 용인하고 시스템의 일부로 이용하는 실태를 보여준다. 샘 페킨파의 < 어둠의 표적 >과 존 부어맨의 <딜리버런스>를 보면 시골이 오히려 더 끔찍한 폭력의 도가니다. <브레이크 다운>에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시골의 농부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다. 살아가기 위해서 폭력을 쓰는 것은, 자연에게 잘못 배운 생존법이다. 도시에서 온 중산층 남자들은 시골 사람들의 폭력에 당하다가 마침내 저항하면서 광기를 드러낸다. 그들에 맞서 폭력을 휘두르고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그것은 단지 광기일까? 어쩌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의 유전자가 아닐까?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크로마뇽인의 후손인 인간은 살인의 역사를 거듭해왔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성이라는 발명품으로 덮어씌웠지만 우리의 본성은 결국 폭력일지도 모른다. 시골은 포장이 허술하기에 인간의 본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아닐까? 일라이 로스의 < 그린 인페르노 >가 보여주듯, 식인종은 아주 순진하고 평온하다. 다른 사람들을 사냥하고 죽이고 먹는 것을 뺀다면. 원신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 구타유발자들 >을 구상하게 된 경위를 말했다. 단편 촬영 로케를 위해 인적이 드문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깊은 숲속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청년들과 만났다. 보는 순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함께 먹자고 권했다. 다 구워지지도 않은 빨간 고기를 쌈 싸서 먹으라고 건네주는 것을 다 받아먹었다.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거절한다면, 그들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죽이고 내버리면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 같은 깊은 산속이었다. 그 경험이 <구타유발자들>로 확장되었다. 시골에서 만난 양아치들. 그들의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외부의 이방인들에게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영선에게 강간을 당할 뻔했던 인정은 시골 양아치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그들과 같이 있는 것보다는 다시 영선의 차를 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명의 혜택을 한껏 누리고 사는 도시인이 보기에 시골 양아치들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인다. < 구타유발자들 >은 무척이나 불친절하고 불편하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인정이 교수를 따라 드라이브를 나선 이유는 오디션에 힘을 써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권력에 타협한 것 역시 죄다. 폭력의 희생자였던 현재는 자신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순간 동일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폭력의 연쇄사슬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그 순간 그들은 결국 구타를 유발하는 존재가 된다. 스스로 폭력의 자장 안에 기꺼이 들어갔으니까. < 구타유발자들 >은 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끝난다. 육체적인 폭력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눈을 괴롭힌다. 어쩔 수가 없다. 폭력으로 망가져버린 봉연은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당한 만큼 어딘가에 풀어내야 한다. 과거를 용서하고 새로운 문명인으로 살아가기에 그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는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의 치졸한 양아치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패자이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악인은 권력을 가진 경찰이 되었다. 두들겨 맞고 비명을 지르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악인들은 권력을 찾아 도시로 가거나 마을의 강자가 되었다. <구타유발자들>은 닫힌 공간 안에 그들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모두 몰아넣고 끝없이 폭력을 보여준다. 답답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한참이 지나고도 기억이 난다. 봉연의 순박한 얼굴이 악마로 변하는 순간과 문재의 야비한 웃음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저 멀리 시골 어딘가에 그런 악인들이 있다고 <구타유발자들>은 말하지만, 정작 폭력의 발원지는 도시 아니 문명 자체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목만 남기고 우리를 땅에 묻어버리지는 않지만 이미 우리는 폭력의 연쇄사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김지곤 은 2009년 어느 날, 오랜 시간 산복도로에서 살아오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고, 손자들(할머니들은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를 이렇게 부른다)이 놀러 오면 수제비나 라면을 뚝딱 만들어서 술판을 벌인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 풍토, 이웃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젊은이들의 연애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오랜만에 만난 스태프가 반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할머니의 시간과 기억은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굵은 손마디로 포착되거나, 오랜 시간 할머니 곁을 지켰던 사물들(못, 낡은 대야, 이름 모를 풀과 꽃, 시멘트 바닥)의 응시로 이어진다. 김지곤 이 < 할매 >(2011)와 < 할매:시멘트 정원 >(2012)에 이어 < 할매-서랍 >(2016)을 만드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제목이 눈에 띈다. 할머니가 단독으로 등장하다가 할매와 시멘트, 정원은 콜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되비치는 관계에 놓인다. 최근작에서 할매와 서랍 사이에 놓인 하이픈은 시간(2009-2015), 관계(이 놈-손자), 공간(집과 폐허), 사물(시멘트로 구성된 집과 벽-풀과 꽃)의 연결이 부각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할머니들은 정든 집을 떠나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네 친구였던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더 이상 이웃으로 지내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반주(飯酒) 공동체는 말필 할매의 아들들과 스태프 모두를 포함하면서 점점 대가족이 되어간다. 마치 산복도로가 자생적인 골목과 계단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된 것처럼 <할매> 연작을 통해 스태프도 산복도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실제로 김지곤은 할머니들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술과 노래를 사랑하고, 막걸리 사 들고 찾아오는 손자들을 살갑게 맞아준다. 온정으로 이어진 소박한 이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랜 기간 살았던 집을 강제로 허물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정책을 비롯한 부산시의 고압적인 행정은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사물들에 무관심하다. 처음에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던 부산시의 계획은 빌라 건축으로 변질되었고, 할머니들의 집터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폐허로 변해갔다. 할머니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기록하는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 또한 변해간다. 철저하게 목소리로 등장하던 감독의 존재(< 할매 >)는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할매:시멘트 정원 >, < 할매-서랍 >)으로 변했으며, “카메라 치워라”고 얘기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의 얼굴을 찍게 된다.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을 찍고 있는 기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카메라의 거리감은 감독과 할머니의 거리감을 좁혀나가는 표지가 된다. 하지만 5년이 흐를 동안 이별과 해체가 이어지기도 한다. 말필 할머니의 개 해피는 이사 간 집을 찾지 못해 실종되었고, 스태프들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계단-골목-계단으로 연결되는 산복도로의 비좁고 구불거리는 길들은 평평한 땅이 되었다. < 할매-서랍 >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김지곤 과 스태프가 할머니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한 축으로 삼고, 다른 쪽에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공간과 사물 인서트들을 디졸브한 이미지로 구성한다. 사람과 공간의 머무름/사라짐은 이미지의 겹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상실을 극대화한다. 또한 이 영화는 ‘할매’ 연작의 마지막 영화임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첫째로 전작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체적 날짜를 명기한 자막이 13차례 등장한다. 산복도로의 정의와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대한 부산시의 발표를 제외하면 태풍이 불어 닥친 어느 날의 기록, 해피가 있었다는 사실,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의 말, 할머니들의 이삿날, 할머니의 79세 생일잔치, 평상을 만든 기념으로 함께 먹은 삼겹살 등 감독이 체감한 산복도로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둘째로 영화의 타이틀이 러닝타임의 중간쯤에 삽입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김지곤의 카메라는 산복도로의 이웃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철거 후에도 할머니의 집터에서 몇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버려진 냉장고와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것이 서랍을 여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서랍을 닫는 형태는 할머니의 대가족으로 편입된 스태프의 모습과 산복도로의 계단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던 할머니들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졌다는 기록이다. 특히 전작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산복도로의 조감도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이곳을 바라보라는 감독의 요청 같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시선에 담긴 산복도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길과 계단,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동맥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덩그러니 놓인 할머니의 집터를 포함한 산복도로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전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참혹한 조망이긴 하지만, 김지곤이 포착한 그곳의 자생적인 생명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시멘트를 뚫고 풀이 자라날 것이며, 천막으로 덮어놓은 땅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