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미 투 헬
- 감독
- 샘 레이미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저스틴 롱, 로나 라버, 알리슨 로먼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 >(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 13일의 금요일 >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 나 홀로 집에 >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 미녀 삼총사 >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 디스 민즈 워 >(2012) < 쓰리데이즈 투 킬 >(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구니스 > < 그렘린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 폴터가이스트 >(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 스크림 >(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와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 스타 트렉 >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 인디펜던스 데이 >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 배틀스타 갈락티카 >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 위험한 청춘 >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블레임 > <아인> < 사이보그 009 >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 사탄의 베이비시터 >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
처음 본 슬래셔 영화는, 중학교 때 국도극장에서 본 < 13일의 금요일 >이었다. < 오멘 >과 < 엑소시스트 > 아니면 < 월하의 공동묘지 > 등 이미 보았던 공포영화에서는 귀신이나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했다. <13일의 금요일>은 달랐다. 분명히 사람인 누군가가 정글칼이나 도끼 같은 것으로 마구 난도질한다.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섬뜩했다. 물론 1편에는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 제이슨이 나오기는 하지만 회상이고, 꿈이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스가 대량살인을 벌이는 액션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지며 진짜 제이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제이슨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다. 번개를 맞아 무덤에서 되살아나고, 물속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 슬래셔 영화의 원조라 할 존 카펜터의 < 할로윈 >에 나오는 살인마 마이크 마이어스는 처음부터 악마였다. 존 카펜터는 마이어스가 순수한 악의 존재라고 말했다. 그를 쫓는 사람들은, 그의 가족조차도 어느 순간 알게 된다. 트라우마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을. <할로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 사이코 >는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다가, 어머니가 죽은 후 자신의 내부에 어머니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비극. 그가 왜 ‘사이코’가 되었는지는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 < 베이츠 모텔 >에서 상세하게 그려낸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왜 어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머니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80년대의 슬래셔 영화는 섬뜩했다. 대량 살인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무서우면서도 상쾌했다. 속편이 거듭되며 무섭다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제이슨 그리고 많이 다르지만 < 나이트메어 >의 프레디는 점점 스타가 되어 갔다. 제이슨의 하키 마스크, 프레디의 줄무늬 셔츠와 손에 달린 칼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아무리 무서운 것도 익숙해지면, 그 정체를 충분히 알고 나면 친숙해진다. < 링 >의 사다코마저도 이제는, 어떤 속편에 나와도 그저 코믹하게만 여겨진다. 캐릭터는 소중하지만 공포영화의 캐릭터는 거듭될수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가 2편에서부터 코믹으로 방향전환을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금 드라마 <애쉬 대 이블 데드>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웃으며 즐기는 과거의 향수. 그것이야말로 컬트의 미덕이다. < 더 파이널 걸스 >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혹한 적이 한 번은 있어야 한다. 그 때 열광했던 것이 지금은 창피한 일일지라도, 어렸을 때에 슬래셔 영화를 즐겨 보았다면 <더 파이널 걸스>는 보는 내내 낄낄거릴 수 있는 영화다. 맥스의 엄마인 아만다는 80년대 인기 슬래셔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에 출연했던 배우다.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대체로 그렇듯 잘 풀리지는 않았다. 진지한 배역을 맡고 싶지만 누구나 그녀를 스크림 퀸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맥스는 한참을 방황하다가 겨우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 오빠의 간절한 부탁으로 <캠프 블러드배스>의 상영회에 참석하게 된다. 컬트영화의 상영회가 그렇듯이, 등장인물이 술을 마시면 함께 마시고, 함께 라이터를 켜고,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하며 웃는 사이에 사고가 생긴다. 화재가 나고 비상구로 나갈 수 없었던 맥스와 친구들은 스크린을 찢고 뒤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나온 곳은 다름 아닌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 안이었다. 영화가 끝나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맥스와 친구들은 살인마인 빌리 머피를 유인하여 잡을 방법을 고안한다. 그 와중에 맥스는 엄마가 연기하는 낸시가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맥스와 친구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세계는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다. 하지만 즉흥 연기가 가능하듯 시나리오를 따르면서도 다른 결말은 가능하다. 80년대 슬래셔 영화를 제대로 패러디하면서도 새로운 경지에 이른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이 그랬듯이. 하지만 맥스와 친구들은 웨스 크레이븐이 결코 아니었고, 그들의 어설픈 계획은 어긋나기만 한다. 게다가 회상이 시작되면 그들도 함께 흑백의 과거로 돌아가야 하고, 중요한 장면에서는 갑자기 모든 동작이 슬로우 모션이 된다. 사실 아만다는 슬래셔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파이널 걸스가 아니다. 아만다가 연기하는 영화 속의 낸시는 처음에 죽어버린다. 게다가 진짜 파이널 걸스였던 폴라는 엉뚱한 짓을 하다가 맥스와 친구들의 눈앞에서 요절해버린다. 맥스는 파이널 걸이 아닌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절대로 섹스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이미 죽어버린 ‘파이널 걸’ 대신 처녀인 자신이 살아남기로 한다. < 스크림 >이 보여준 것처럼, 파이널 걸스가 동료와 함께 살아남는 것도 가능해졌으니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코미디처럼 보이는 슬래셔 영화의 공식을 가지고 노는 < 더 파이널 걸스 >는 추억에 기댄 유희다. 기억 속의 슬래셔 영화를 가지고 온갖 농담을 던져보는 코미디 영화. 전혀 무섭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다. 단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얼마큼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비례해서 즐거움과 유쾌함의 강도가 높아지는 영화다.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이해영 감독의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다. 2015년 6월 18일 개봉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소녀’ ‘미스터리’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베일을 벗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공포영화의 정석을 기대했던 관객의 예상과는 꽤나 달랐다. 낯익은 상징들로부터 출발한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예상을 훌쩍 넘어서버렸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으며 웰메이드 미스터리의 탄생을 알렸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비밀스럽고 강렬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세계에 대해 이해영 감독과 김성욱 평론가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 2015년 6월 29일(수)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욱(이하 ‘김’) :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잘 보는 편인데, 공포영화는 안보는 편이다. 군 시절 의무대 행정기록병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시신을 많이 봐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웃음), 이후 공포영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하 ‘경성학교’)은 보통 공포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감독 본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우선, 두 편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 > < 페스티발 >)이 모두 동시대적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역사극이다. 그리고 전작들은 ‘장르적 컨벤션’이 익숙한 영화가 아니었지만 <경성학교>는 장르가 명확한 영화다. 먼저 이렇게 <경성학교>의 시대적, 장르적 설정을 한 계기를 묻고 싶다. 이해영 (이하 ‘이’) : 일단 < 경성학교 >는 결과적으로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사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전작 두 편을 연출할 때까지, 장르 컨벤션 자체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거친 적이 없다. 이거야말로 창작자로서 성실하지 못한 거구나, 반성이 들었다. 방법을 달리해야 영화를 더 오래, 더 내공 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장르라는 것을 직면하자. <경성학교>의 시작은 그랬다.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고 다른 장르들이 더해졌다. 결국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장르를 비틀고 뒤트는 복합장르물로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장르적이면서도 탈장르적인 결과물이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1930년대라는 시대는 기획 단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자기숙학교, 미스터리한 일들’만으로는 기획 자체가 규정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여고괴담’이라는 거대한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찾기조차 어려우니까. 이 모호한 설정은, 1930년대라는 시대 위에 두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영화로서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지금이야 < 암살 >도 있고 < 아가씨 >도 있지만, 이전까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편수도 적었고, 성공한 적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기존 영화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930년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인 직접적인 도화선이기도 했다. 김 : < 경성학교 >와 관련해서, 예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두 편의 추천작을 생각하게 됐다. 그 하나가 < 이블 데드 >(샘 레이미, 1981)이고, 다른 하나가 < 세일러복과 기관총 >(소마이 신지, 1981)이다. <이블 데드>는 호러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잘 만든 솔직한 호러일까, 라는 궁금증에 선택했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호러가 자신에게는 미지의 장르라 말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소녀가 주인공인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택했다고 했는데(이: 맞다. 그때 <경성학교> 시놉시스를 쓰는 중이었다.), 교복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웃음), 후반부의 복수를 감행하는 그러한 쾌감의 순간이랄까, 이런 정서는 약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 < 세일러복과 기관총 >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녀가 마침내 느끼게 되는 쾌감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실제로 ‘쾌감’이라는 대사도 결코 잊히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 경성학교 >는 그와 정반대여야만 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무게감과, 생체실험이라는 다소 예민한 소재를 다룬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관객에게 통쾌한 복수극을 경험하게 하면 안 되고, 주인공 소녀 ‘주란’ 스스로도 후련하게 해소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란은 끔찍한 실험의 피해자고, 그녀가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비극적인 폭주여야 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날 이야기였다. 금욕적이랄까. 폭주하는 액션을 연출하면서도 절제에 대한 강박이 많았다. 김 : 공포영화의 공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 경성학교 > 역시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물’이다. 물속에 잠긴 소녀들, 수족관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 등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공포의 이미지는 금기를 넘어서게 할 정도로 강력하고, 이 이미지가 이야기에 아직 소환되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직접성과 충격적인 진실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투영되는데, 이 영화에서 물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4.16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목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성을 띠는 공포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지는 않았다. 물론 관객이 무서워하거나 놀라기를 바라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장치해놓기는 했지만, 영화는 결국 ‘소녀적’이라는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대표적 수단이었다. 영화에서 물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때로는 몽환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미스터리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주란과 연덕 두 소녀의 내밀한 우정을 묘사할 때는 성적 긴장감을 풍성하게 표현해주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수장된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로 귀결된다. 영화 속 ‘물’의 상징과 정서들을 따르다보면 불가피하게 4.16의 이미지가 연상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4월 16일 당시 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프리프러덕션 단계, 그러니까 촬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막막했다. 그 위로 영화 속 설정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악몽에 시달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과도한 사회적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만큼은 막아야 했다. 일차적으로는 물 설정 자체를 빼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워낙 대수술이었고 물리적으로 불가능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4.16에 대한 상징으로 손쉽게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얄팍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 4.16을 읽어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김 : 그게 공포영화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이미지가 불분명하기에 쉽게 장르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 예전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공포영화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와 섞여도 공포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르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공포영화에 코미디가 섞이면 코미디 영화가 되고, 사회문제가 얽히면 사회성이 짙은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 경성학교 >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공포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거기서 얻지 못하는 불만족이 컸던 것 같다. 다른 장르 안에 공포가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경성학교>를 본 관객과 연출한 감독의 이질감이기도 하고, 큰 틀에서 공포영화를 장르적으로 만들어갈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 : 동의한다. 전작들은 철저히 취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따르더라. 고심 끝에 장르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장르로 딱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기대하고 오는 장르와 보면서 느끼는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만들면서도, 마케팅을 하면서도 ‘공포’라는 장르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성욱 선생도 인터뷰 초반부터 공포장르를 언급하셨고, 그 안에서 이 영화를 읽어내고 계시다. 이제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두고 ‘업계 표준’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전학 온 아이, 아이들의 괴롭힘,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익숙한 방식의 전개다. 앞부분은 의도적으로 과한 절제를 했다. 엄격하게 억압되어 있던 극의 분위기가 중반 이후 점차 사건의 본격화를 맞으며 깨지고, 비밀이 밝혀지고, 억압감이 해소되며 리듬감을 얻고, 빠른 호흡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전체를 설계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초반부의 갑갑함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상대적 만족도가 훨씬 높았던 것도 약간 의외의 지점이었고. 결과적으로 감독이 바란 영화와 관객이 경험한 영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던 셈이다.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김 : 극중 시즈코가 과거의 시즈코( 고원희 )와 현재의 시즈코( 박보영 )로 둘이다. 그리하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둘의 반복에서, 혹은 소녀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설정에서 계속 제기된다. 불분명한 부분은 과거의 시즈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연덕이 편지를 자신에게 쓰라며 ‘네가 쓰고 보는 것도 너니까, 편지나 일기나 똑같아’라 말한다. 영화에서 일기는 중요한 설정이다. 일기 혹은 편지의 설정은 어디에서 근원했나. 이 : 애초 영화는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챕터 구분의 기준은 일기장이었다. 과거 시즈코에 대한 조각난 기억의 기록, 일기에 적힌 글귀 등이 각 챕터를 리드했다. 연덕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여는 프롤로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주란 중심의 명쾌한 이야기로 정리하자는 취지로 챕터와 프롤로그 모두를 없애면서 영화 속에 남아 있는 일기라는 설정은 끝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여지를 둔 채로 존재하게 됐다. 원래 의도와 달라지면서 근거나 설명이 축소된 게 제일 큰 차이일 거다. 그럼에도 일기는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두 소녀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으로서도 존재하고, 주란이 연덕의 비밀을 풀어내는 결정적인 열쇠 역할로서도 기여하고 있다. 두 소녀의 존재를 중첩시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1930년대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꼭 담고 싶었던 화두였다. 타고난 태생적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요받던 시절의 공기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김 : 퀴어 코드보다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심지어 교장이 후반부에 내뱉는 말, “인정받고 싶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이 : 주란은 끝내 연덕에게도 버려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정 혹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 있었을 거다. 세상에서 버려진,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소녀가 마지막으로 찾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너만 있으면 돼”라는, 집착에 가까운 우정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인 유카( 공예지 )와 과거의 시즈코의 존재 역시 주란이 연덕을 더욱 원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내가 욕심을 좀 더 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감정에 치중한 ‘소녀드라마’에 공을 들였을 거다. 실제로 완고가 되기 전의 시나리오는 소녀들의 질투와 우정, 사랑 등에 대한 드라마 비중이 높았었다. 그러나 대중성을 염두한 수정 작업이 거듭되며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현재의 수준이 됐다. 드라마가 단출해졌으므로 인물마다 명확한 키워드를 부여했다. 예컨대 주란은 나약함, 버려짐, 의존적, 그리고 맹목적인 애정에의 갈구…. 연덕은 조각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래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 하는, 비밀을 가진…. 유카는 명확하게, 질투. 교장 캐릭터 같은 경우는, 중반을 넘어서며 그녀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총정리하고 압축한 단 하나의 단어가 필요했다. 1930년대 조선의 신여성, 지식인이었던 그녀의 유일한 욕망. 그녀를 끝까지 질주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인정욕’이었다. 이걸 말씀대로 ‘사랑에의 갈구’라고 읽는다면 결국 교장부터 주란, 연덕, 그리고 모든 소녀까지 공통된 정서로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창작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이다. 김 : 교장 캐릭터가 독특했던 것은 아마도 < 경성학교 >가 처음으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로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 전작들이다. 이 영화는 장르적 외피를 갖게 되면서 악인이 등장한다. 극중 박보영 이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원 씨가 ‘이끼나사이(가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특별한 캐릭터가 부각된다. 이 : 교장의 비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교장이 등장하는 신이 많지 않다. 편집 과정에서 교장의 비중이 높아지니 엄지원 의 존재감이 강해서 전체 균형이 깨지더라.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라 존재감이 너무 없어도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배우 엄지원의 역할이 컸다. 엄지원은 사전 준비가 무척 철저한데, 세 줄짜리 대사를 36가지 정도의 버전으로 준비해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본인의 준비 여부와 무관하게 감독과 대화를 하며 협의하는 것을 즐긴다. 캐릭터 자체는 등장할 때마다 인자한 얼굴 너머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긴장감을 주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가면 그 자체에도 매번 진심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란과 눈을 마주치고 신뢰를 주는 미소를 지을 때에도, 치유를 위한 처방을 할 때에도, 혹은 소녀들을 감금하고 숨통을 끊어놓을 때조차. 모든 순간이 진심인 여자였으면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때마다 진심인 사람, 얼마나 섬뜩한가. 김 : 많은 이가 < 경성학교 >를 브라이언 드 팔마의 < 캐리 >(1976)와 비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악령>(브라이언 드 팔마, 1978)과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캐리>의 전반적인 설정, 이를테면 사춘기 소녀의 성장, 초자연적인 능력, 그것으로 인한 파멸의 이야기가 유사하긴 하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분노의 악령>에 나오는 차일드리스(존 카사베츠)가 <경성학교>의 교장과 가깝다. 아이를 괴물로 키우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제하여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인물이 바로 차일드리스다. <경성학교>의 교장 역시 소녀들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하려 한다. 두 영화 모두 괴물성을 통제하려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괴물이 된 소녀들. 하지만 두 영화의 차별점은 <경성학교>의 후반부에서 소녀의 초자연적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장르적 변화가 도리어 <경성학교>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만큼 여러 레퍼런스가 언급됐다. 그중에서도 <분노의 악령>이 어쩌면 언급된 영화 중에서 유사점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 경성학교 >는 중후반부에 이르러 펼쳐지는 다른 색깔들로 그 모든 영화와 차별점을 갖는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 ‘업계 표준’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한 것들의 조합으로 진행되지만 마침내 끝내 새로운 이야기인. 다만, 중반 이후 장르의 변이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복합장르물로 끝맺음된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미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걱정이었다. 대부분 ‘업계 표준’처럼 관성대로 진행될 관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 19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서는 괴물이 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 < 오멘 >(리처드 도너, 1976)에서 < 캐리 >와 <분노의 악령>까지. 1970년대 전쟁, 살인, 암살을 지켜보았던 아이들의 분노의 에너지가 이런 식의 ‘몬스터가 된 아이들’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분노의 악령>은 그런 괴물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반발하는 이야기다. < 경성학교 >도 이와 유사하게 봤다. <경성학교>는 ‘이상한 방식으로 4.16을 경험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아이들이 받아들일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교장이 주란에게 훈련을 시킨다며 헤드폰을 씌우고, 백색의 동그란 스크린을 보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분노의 악령>에서 아이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트라우마를 통해 계발하는 장면처럼, 이 장면은 백색의 스크린과 이상한 소리들로 표상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 : 1930년대를 기준으로 생체실험을 할 때 어떤 방식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약물이나 차, 혹은 향 같은 전통적인 것과 차별되는, 이질적인 설정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교장이 씌워준 헤드폰에서는 신호음 같은 삐-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는 소녀들의 절규가 기괴하게 섞여 있다. 이게 반복적으로 주입되면 어떤 소녀는 이명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발작으로 이어진다. 주란도 이명과 몇 가지 부작용을 얻게 되기는 하지만 찰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뇌파를 자극한다, 같은 거다. 이 신에서의 사운드 디자인은 몇 가지 버전을 반복 시도하며 공을 들였다. 관객들도 어느 순간 넋을 놓고 ‘알 수 없는 먹먹함’에 압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마지막에 주란과 연덕이 축음기를 고치고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 기본적으로 여자 보컬이길 바랐다. 꼭 1930년대 음악이 아니어도, 다소 현대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구체적인 레퍼런스도 정해놓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다보니 문제는 ‘언어’였다. 가사가 한국어여도, 일본어여도, 영어, 혹은 제3국 언어여도 정확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음악을 들려주기보다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래서 두 소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저수지로 함께 달려가며 즐거움이 충만했던 그때 흐르던 음악을 삽입했다. 화면이 암전되는 순간 숲을 달리던 두 소녀의 밝은 웃음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이 : < 경성학교 >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차기작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고민이 많이 된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이럴수록 더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정말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 이를테면 우아함에 대한 강박, 훌륭한 감독 코스프레(웃음) 같은 껍데기. 이번에도 그런 것들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나를 부수고 싶다. 작정하고 치열해질 거다.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