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로랑
- 감독
- 베르트랑 보넬로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레아 세이두, 가스파드 울리엘, 루이스 가렐, 발레리아 브루니 떼데시, 제레미 레니에
무더위가 기지개를 펴는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콩닥콩닥 가슴 설레며 프랑스 앙시로 현장실습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기막힌 뮤직비디오 한 편을 메신저로 날려 보냈다. 오렌 라비(Oren Lavie)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Her Morning Elegance >이 몽블랑 아랫마실 앙시 호숫가의 느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객체들을 멋진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학생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Sun been down for days 며칠째 해가 나오질 않네요. A pretty flower in a vase 꽃병 속엔 어여쁜 꽃 A slipper by the fireplace 벽난로 옆엔 슬리퍼 한 짝 A cello lying in its case 케이스 안에 누워있는 첼로 Soon she's down the stairs 이제 그녀가 계단을 내려와요. Her morning elegance she wears 그녀가 갖춘 아침의 우아함 The sound of water makes her dream 물소리가 그녀를 꿈꾸게 하네요. 작품의 도입부는 읊조리는 음악과 함께 묘한 현기증 일으키는 스톱모션(픽실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느낌은 프랑스 슈농소 성 앞에 놓인 이브 생 로랑의 장식용 양 조각이 삶의 풍요를 위한 미적 환영이 된 것처럼, 고립된 평면 침상을 무한공간으로 확장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3분여간 펼쳐진다. 제작예산문제로 ‘이틀’이라는 짧은 촬영기간 동안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프레임마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연출한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의 신체 언어, 음악에 똑 떨어지게 맞춘 립싱크, 그리고 < 라라랜드 >를 넘어서는 여주인공 쉬르 숌론(shir shomron)의 매혹적인 잠옷 댄싱까지 모든 것이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앙시의 현장실습을 다녀온 날로부터 짙은 여독과 함께 잠 못 이루던 열대야가 뜸해지는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영상자료원으로부터 꽤 오랜만에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더위가 꺾이는 말복까지 여러 날을 지나며 개인적으로 아카이빙했던 자료와 영화제 본선작, 최신 업로드된 유튜브를 뒤졌지만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한 채 흔들의자에서 선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던 중 꿈결에서 불현듯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이 떠올랐다. 아마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새로운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서 어지럽고 살벌한 악의 도시 ‘고담시’로 박제화 되어가는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의 공포현실에 부드러운 충격 완화제가 되길 기대하면서 이 작품을 무의식중에 선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각극장’(1892), <하르피아>(1979) 현대는 100년 세월이 10년, 10년 발전이 1년 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쫓아가기 벅찬, 총알같이 빠른 급변의 세상이 되었다. 에밀 레이노가 프락시노스코프를 이용해 만든 ‘시각극장’(1892)의 마술 같은 시각놀이와 라울 세르베가 연출한 <하르피아 Harpya>(1979)의 기묘한 영상이 당시로서는 ‘억’ 소리 나는 충격이었겠지만 이제는 낡은 골동품이 된 것처럼, 라이드 머신에 쌀랑한 에어컨 바람과 입안을 톡 쏘는 얼음 콜라를 마셔도 다가오는 졸음을 쫓기 어려워진 그렇고 그런 3D 애니메이션들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이종교잡으로 진화한 간사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인간들에겐 식상해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은 세계 최고의 스톱모션회사 라이카(Laika)의 장편 애니메이션 < 쿠보와 전설의 악기 >(2016)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 자신이 직접 부르고 녹음한 음악에 범상치 않은 영상의 일탈을 잘 녹인 보기 드문 걸작으로, 기법면에서는 죠르쥬 멜리어스의 < 달세계 여행 >(1902)에서 출발한 특수효과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그리고 이제는 변곡점 시대에 이른 3D입체영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통적인 스톱모션과 세련된 메타몰포시스 영상 언어, 그리고 시적 몽타주 기법을 에셔의 초현실 그림처럼 우아한 몽환으로 엮어낸 빼어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오렌 라비는 앨범 전체의 작사, 작곡은 물론 가수로 출연하고, 감독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 작업 외에도 극작가, 연극 연출가, 무대 감독, 동화 작가를 종횡무진 오가는 다재다능한 예술적 소양을 갖춘 아티스트다. 올해는 오렌 라비의 철학적인 우화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독일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Wolf Erlbruch)의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일러스트 협업으로 또 한편의 어른아이들을 위한 명작동화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도 출간하였다. 그 동화책의 한 대목이 머리와 가슴으로 쏘옥 들어온다. “와우 멋진걸! 내가 정말 ‘나’였으면 좋겠어” ... ... “아! 네가 나구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 한편 오렌 라비와 공동 연출을 담당했던 유발 나단, 메라브 나단(Yuval Nathan, Merav Nathan) 부부는 여러 편의 스톱모션 뮤직비디오와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를 시각적으로 잘 해석한 <로빈 Robin>(2014)과 모래 질감의 속성을 잘 살린 <바다거북의 노래 Lose This Child>(2010)는 또 한편의 감수성 진한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로빈>(2014), <바다거북의 노래>(2010) 혹시 점심시간 전이라면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을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우고, 식사 끝난 오후라면 중독성 있는 부다바(buddabar)의 라운지음악 ‘Hotel Costes vol 10- paper aeroplane’을 디저트로 들으면서 고소달콤씁쓸한 거품이 코끝을 적시는 피넛키오와 아인슈페너의 절묘하게 변해가는 커피 맛을 생채기 난 감성의 치유제로 권해본다. Where people are pleasantly strange 사람들이 유쾌하게 낯설고 And counting the change 잔돈을 세고 있는 곳 And she goes 그리고 그녀가 가네요.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1. 설리 Sully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6) 그저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고마운 감독들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바로 그런 이름들 중 한 명일 것이다. 2014년. 여든이 넘은 나이의 이 노감독이 < 저지 보이즈 >와 < 아메리칸 스나이퍼 >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그 장르로 인해 실패하는 영웅을 그려내면서 장르적인 영웅의 신화를 산화시키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과 감탄은 여전히 이스트우드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저지 보이즈>에서 삶의 낙천성에 대해 노래하던 가수들에게도,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전장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심판하던 저격수에게도, 그들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는 이제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숙명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공개될 이스트우드의 신작 <설리>는 2009년 1월 허드슨 강에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불시착시켜 탑승객을 모두 살린 설리 슐렌버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에서 생명을 구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스트우드가 영웅의 위대함을 얘기하는 영화를 찍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IMDb에 따르면, 설리는 이 사건으로 영웅이 되지만, 그 이후로 이 영웅의 삶이 처절하게 망가진다, 라고 적혀져 있다). 과연 이스트우드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저격수처럼,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 자신이 영웅이 되는 ‘성공적인 실패’를 경험한 ‘설리 슐렌버그’를 어떻게 그려냈을 것인가? 2. 내 친구 꼬마 거인 The BFG (스티븐 스필버그, 2016) 내게 2015년 최고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 스파이 브릿지 >였다. 이제 스필버그는 도저히 나쁜 영화를 찍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 원래부터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던 스필버그가 21세기부터 그 테크닉의 속도를 제어하는 방법을 알게 되다 보니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 감독이 그 페이스를 조절함으로써 영화를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것은 데이비드 핀처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느낌으로서의 장악이 아니라,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본인의 비전과 거의 똑같이 영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느낌으로서의 장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공개되는 스필버그의 신작 <내 친구 꼬마 거인>은 스필버그의 근작인 < 워 호스 > < 링컨 > < 스파이 브릿지 >와는 약간 다른 의미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로알드 달의 원작 동화를 각색하였고,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디즈니와 함께 만드는 영화인 이 영화는 여러모로 < 이티 >와의 접점이 보인다. 보호자가 온전하지 않은 아이. 우호적인 외계의 존재와의 만남. 게다가 <내 친구 꼬마 거인>의 각본을 쓴 사람은 <이티>의 각본을 쓴 맬리사 매티슨(그녀의 유작이다)이다. 역사 안에 휩쓸린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온 근래의 영화에서 다시 원래 스필버그가 잘하던 판타지, 모험 영화로 돌아온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가 어떤 영화를 완성시켰을지 궁금하다. 3. 뤼미에르 이전과 이후의 24프레임 24 Frames Before and After Lumiere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6) 2010년과 2012년. < 사랑을 카피하다 >와 < 사랑에 빠진 것처럼 >을 만들면서 지난 2000년대에 본인이 만든 영화 형식과 작별한 키아로스타미가 다시 돌아온다. 올해 공개될 키아로스타미의 신작 <뤼미에르 이전, 이후의 24프레임>은 2000년대에 가장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그때의 실험 정신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24분 15초짜리로 구성된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을 예정이라는 이 영화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한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현재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여러 사진과 그림(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영상과 사운드가 복합적으로 사용될 영화라고 하는 동시에, 키아로스타미 영화로는 처음으로 그린 스크린이 등장한다고 한다. 근래 영화의 트랜드라고 할 수 있을 ‘익스탠디드 시네마’의 개념의 영화가 될 것 같은 키아로스타미의 이번 신작이 2002년에 키아로스타미가 영화 < 텐 >으로 보여준 디지털 시네마의 혁명처럼 영화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된다. 4.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A Lullaby to the Sorrowful Mystery (라브 디아즈, 2016) 라브 디아즈는 2016년 현재 가장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라브 디아즈가 가장 솔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다른 라브 디아즈 영화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긴 러닝타임(482분) 동안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필리핀 역사를 쫓아간다. 너무도 참혹하고 끔찍해서 차마 생생한 컬러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듯이 탈색시켜버린 라브 디아즈의 흑백 화면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30분 사이에 잠깐 그 영화에 빠졌다가 그 러닝타임에 반비례되어 현실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4시간에서 9시간까지 긴 러닝타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역사와 하나가 될 때까지 그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게 만드는 라브 디아즈 특유의 영화적 태도가 그대로 묻어 있을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기도 하다. 5. 파리 이즈 해프닝 Paris est une fete (베르트랑 보넬로, 2016) 베르트랑 보넬로가 2014년에 < 생 로랑 >을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영화제 데일리에서 보넬로를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차기작에 대해 묻는 것이었고, 보넬로는 거기서 ‘8명의 젊은 청년들이 파리 시내에 폭탄을 설치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보넬로의 신작인 <파리 이즈 해프닝>은 보넬로가 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2년 전보다 좀 더 의미심장한 영화가 되었다. 지난해 11월에 파리의 곳곳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 사건은 들뢰즈의 말처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든다. 보넬로 본인은 다시 한 번 현대물을 찍고 싶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보넬로의 단순한 의도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일종의 예언이자 다시 한 번 그 비극을 복기하는 영화가 될 운명이 된 것 같다. 파리 테러 이후에 보넬로가 만드는 파리 테러 영화는 그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넬로의 의도대로 가장 ‘현대적인’이면서 가장 ‘동시대적인’ 영화가 될 가능성이 운명이 되었다. 영화란 때론 역사와 너무 가까이 닿아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