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의 전진(서울 공보 제150호)
- 감독
- 윤창혁
- 제작년도
- 1972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1789년 혁명의 여름에 쓰인 인권선언은 재산과 생명을 불가침의 권리로 상정하였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 도둑질을 대가로 가혹한 형벌을 받은 장발장은, 불가침의 권리를 어긴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던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가혹한 처벌과 함께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도시를 둘로 갈라놓았다. 도시의 한 켠에는 전례 없는 풍요와 번영이, 다른 한 켠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빈곤이 자리를 잡았다. 도시에 넘쳐나는 이 빈곤과 마주하며 지식인들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말했다. 피에르 르루처럼 다수의 힘으로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며 ‘사회주의’를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세기말에 이르러 에밀 뒤르켐이나 마르셀 모스처럼 ‘연대’와 ‘증여’를 사회적인 것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행동과 사고를 관찰하며 문제를 분석해보자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을 말한 아돌프 께뜰레,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을 말한 루이 빌레르메, 그리고 사회학(sociology)을 말한 오귀스트 꽁트가 그들이었다. ‘social’이라는 형용사가 만들어 낸 렌즈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의 형상을 발견해 나갔고 또 발명해 나갔다. 관찰은 주장이 되었고, 정책은 안전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안전망은 도시의 삶과 습속의 ‘일반성’과 ‘정상성’ 창출을 목표로 했다. 이에 따라 남성의 경우,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은 후에는 (핵)가족을 구성하고, 내 집과 내 차를 마련한 후에는 주중에는 일터와 집을 오가고 주말에는 백화점이나 공원과 집을 오가는 ‘보통의 삶’이 20세기 들어 점차 일반화되어갔다. 20세기 중후반 서구사회는 그랬다. 1990년대 한국의 대학가에는 ‘포스트(post)’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다. 탈독재, 탈냉전, 탈사회주의라는 변화를 배경으로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너머(post)를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민족주의, 포스트발전주의 등, 대다수는 이른바 ‘선진국’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온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제 한국사회가 ‘정상’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상황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느 선진국처럼 민주주의를 누리고, 여느 선진국처럼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는 판단. 그렇기에 이제는 반봉건사회라든지 주변부 사회라 말하기 어렵다는 판단. 이런 판단들이 중첩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과, 이제는 민중을 대신하여 중산층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판단이 지식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유령은 다름 아닌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도시를 누비는 자동차의 숫자도 ‘아파트’라 불리는 주거 상품의 가격도 빠르게 늘어갔지만, 이렇다 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빠르게 증가한 것은 불안한 일자리와 불안한 삶들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사회가 경험했던 정상적인 삶의 일반화는 인류 중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고,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괜찮은 일자리, 자동차,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산층 가족을 구성하며 여가와 소비를 즐기는 삶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 간주한다. 안전망 없이 규범만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사회적인 것’을 말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담론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과 사회적 안전망의 뒷받침 없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에 관한 규범만 창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 없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구와는 다른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인 것’이 있던 것은 아닐까? 서구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습속을 창출하는 장치들이 있던 것은 아닐까?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 88 서울올림픽대회 폐회식 야경 원경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렇게 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1988 서울올림픽이었다. 정상적인 삶을 창출하는 안전망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의 외양이 만들어지는 모멘텀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아파트뿐만 아니라 백화점, 공원, 미술관, 공연장 등 정상적인 삶의 외양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배치하는 계기였다. 또한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담론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정상적인 습속을 창출하기 위한 캠페인과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되는 계기였다. 이러한 도시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이들에 관한 드라마 <우리는 중산층>(1991)과 <말로만 중산층>(1991~1992)이 방영된 것은 올림픽 직후였다. 그랬기에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탄생을 말하고자 한다면 서울올림픽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논문에서 필자는 서울올림픽이 정상적인 삶으로서의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수단이자, 습속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정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문서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잡지와 도서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 서울의 골목 골목마다 남아 있는 권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또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통제하고자 한 권력의 강박을 보여주고자 했다. 서울올림픽을 도시와 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메가이벤트(mega event)로 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을 탈정치화시키고 우민화시키고자 올림픽을 개최했다고 하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가이벤트라는 프레임은 정상적인 삶과 습속을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에 한계를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책은 존 매칼룬과 요시미 슌야 등의 공연론을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이라는 기획에서 마무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공연의 기획에서 커튼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해 보고자 했다. 또 그 범위가 무대 제작에서부터 배우 준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기에 ‘연출’이 아닌 ‘드라마투르기(극작법)’로서 올림픽의 준비와 상연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사진: (상)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식전공개행사, 입장)( 1 , 2 )", (하)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 공개 행사( 1 , 2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럴 때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다. 권력을 손에 넣은 군인들이 사회 구성원들과 맺은 것은 그럴듯한 공연에 관한 계약이라는 것. 그런 군인들은 서울올림픽을 위해 전 국민을 배우로 동원했고, 관객이 될 외국인의 시선을 앞세워 서울이라는 무대를 만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과 무대 아래 감출 것을 나누었다는 것. 올림픽 이후에는 무대가 확산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연출하는 배우가 되어갔다는 것. 서울올림픽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은 군인을 대신하여 가상의 외국인과 공연 계약을 맺고 공연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는 외국인들에게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음으로써 한국사회 내 지지를 획득하는 사회적 질서로서의 88년 체제를 탄생시켰다는 것. 하지만 이런 공연 계약은 무대의 위와 아래를 나누어 사회적 갈등에 분열에 취약하다는 점.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극장도시’라는 표현에는 필자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필자가 거주하던 서울 관악구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꿈꾸며 상경한 이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공간이다. 서울은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좁기만 한 원룸이나 고시원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도시다. 이런 공간에 사는 이들이 불안과 우울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은, 한강이 되었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되었든 집 바깥의 어딘가 그럴듯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을 사진으로 남기며 자신의 삶을 전시 내지 상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럴듯한 공간의 다수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서울은 보여줄 수 없는 내 방과 보여주고 싶은 공원, 박물관, 백화점, 미술관 사이의 대비가 분명한 도시이자 무대의 위와 아래가 명확한 도시이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전시적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서울은 극장도시인 것이다. 사진: “ 서울 풍경 ”, 서울특별시 서울사랑 (문덕관) 박해남(사회학 연구자) l 계명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20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의 도시와 도시 속 삶들을 연구하고 있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필름포럼 은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연세대 동문으로 가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2012년 5월 개관하여 2013년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선정되었다. 필름포럼 영화관의 운영 주체는 ‘사단법인 필레마’로, 필레마는 ‘ 서울국제사랑영화제 (2003년 서울기독영화제로 시작)’ 운영도 함께 하고 있다. 예술, 독립, 기독 영화의 발굴과 상영을 추구한다. 본래 영화평론가인 임재철 씨가 종로에서 필름포럼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200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고, 2012년 사단법인 필레마가 임재철 평론가로부터 운영권을 인수하여 법인 성격에 맞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필름포럼이 입주해 있는 하늬솔 빌딩은 건물 자체는 도로변에 있으나 영화관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도로 뒤편 골목에 있다. 또한 인근에 대학교가 많고 자취생들이 많은 입지 특성상 자취하는 20대 대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실 거주인이 많지 않다 보니, 인근 지역 자체가 평일 낮에는 굉장히 활발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조용하다. 그러한 분위기는 필름포럼을 찾는 관객들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들 같은 경우 혼자 와서 영화를 보고 가거나 여럿이 오면 세미나를 하는 등의 학구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필름포럼이 위치한 하늬솔 빌딩 20대 관객들 같은 경우,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등 명작들을 필름포럼 스크린에서 처음 접해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 사는 50대 이상의 주민들 상당수는 그림 감상, 아카데미 강좌 수강 등을 이유로 방문했다가 카페도 이용하고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극장 현재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인원들은 성현 대표와 조현기 프로그래머를 비롯해서 팀장, 카페 매니저,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하여 전체 10여 명 정도다. 성현 대표는 영화관의 전체적인 기획과 경영 및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율 업무를 맡고 있고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상영작들의 큐레이션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는 본래 2명이었는데 현재는 1명인 상태다. 상영관은 2개관으로 1관은 90석이고 2관은 52석이다. 연중무휴이며 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한다. 외부 철제 계단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정원이 보여 지하인데도 지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원이 딸린 카페 같은 외관인데 유리문을 열면 로비가 펼쳐지면서 카페가 같이 있다. 카페는 갤러리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고, 카페 계산대에 영화관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키오스크나 직원을 통해서 티켓 발권과 음료 주문을 한다. 전체적인 건물 평수는 약 500평 정도인데, 이중 상영관은 350평 정도 규모이고 나머지 공간을 카페를 겸한 로비와 세미나실로 구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필름포럼 로비 전경 상영 시스템의 경우, 개관 초기에는 필름으로도 상영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바꿨다. 1관은 디지털 시스템을 모두 갖췄고, 2관은 아직 국제인증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서버를 갖추고 있다. 2024년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시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관도 1관처럼 디지털로 완전히 개편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영화관 로비가 카페이자 갤러리 역할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지향했던 필레마의 방향성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공간을 영화 상영 전 대기 장소로서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도 이용한다. 이 공간에서는 아마추어들에게도 전시 기회가 열려있는데, 운영자들이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관 상영관 내부 전경 관객과 함께 하는 공간 로비 중앙에는 출석부와 방명록이 놓여 있어서 관객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영화 출석부의 경우 여러 횟수가 쌓이면 영화관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을 수 있으며, 평론가처럼 출석부에 본인이 본 영화에 대한 별점과 한 줄 리뷰를 남기게 되어 있다. 이는 관객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오픈되어 있어서 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다른 관객들과도 나눌 수 있게 한다. 로비에 있는 ‘북 큐레이션’은 12권의 책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서 소개하고 있는데 상영 영화는 물론 현재 동시대성을 띤 책들이 섞여 있어서 관객들로부터 호응도가 매우 높다. 필름포럼 출석부 강연장에서는 자체적으로 기획한 인문/문화예술/종교와 관련된 아카데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네필 쪽에 포커스를 두고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했는데, 실제로는 예술영화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관객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시네마 브런치’는 월요일 오전 10시에 예술영화를 함께 보고 샌드위치 들고 영화관 안에 들어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영화에 대한 해설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큰 호응을 얻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큐레이션 된 영화들이다. 기획전 상영작들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기독교 영화들도 많다.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며 예술가의 삶이나 회화에 관련된 영화 기획전도 많이 열린다. 엠네스티와 같은 국제단체를 비롯하여 단체나 학교, 지역주민모임, 서점이나 사진관 등과도 협업한 기획전을 종종 개최하기도 한다. 필름포럼 세미나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527 하늬솔빌딩 A동 B1 2) 설립일 : 2005년 4월 22일 3) 대표자 : 성현 4) 규모 : 하늬솔빌딩 A동 1749.38m2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훨체어석) : 1관 90석, 2관 52석, 총 142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09:30~22:00, 연중무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평일: 성인 10,000원, 청소년 9,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7,000원 - 주말: 성인 11,000원, 청소년 10,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8,000원 - 단체 할인: 10인 이상 1,000원 할인 / 30인 이상 2,000원 할인 8)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주)필레마 서울국제사랑영화제(극장운영주최) - 문화선교연구원(이론, 학술배경 제작) - 필름포럼(극장) 9) 구성원 : 성현 대표, 프로그래머, 조현기 프로그래머, 팀장, 매니저 취재 일자: 2024년 11월 19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메가박스 코엑스는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의 1호점으로 2000년 5월 13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몰 지하에서 우주 콘셉트로 16개관, 4,336개석 규모로 문을 열었다. 현재 메가박스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지점으로 일반 상영관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의 돌비 시네마, MEGA | MX4D, 더 부티크 스위트, 프라이빗관 등 모든 특별관을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형 멀티플렉스 시대가 메가박스 코엑스의 등장 이후 열렸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개관 다음 해인 2001년 7월에는 하루 최다 관객 3만 명이 넘는 기록을 했다. 1990년까지는 뉴스에서 영화관 풍경을 취재할 때 서울의 종로나 충무로를 보여줬지만 이후로는 대부분 메가박스 코엑스를 촬영해 자료로 사용해왔을 만큼 한국 영화산업의 대표적인 장소로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메가박스’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가 영화관이라는 네모난 공간 안에 모든 것을 무한대로 담는다는 의미로 공간을 찾는 관객들에게 영화 외의 콘텐츠는 물론 오락, 카페 등 다양한 공간 경험을 제공하려는 멀티플렉스의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코엑스점 역시 카페, 패스트푸드점, 오락실, 키즈카페, 피규어샵 등이 입점되어 있다. 메가박스는 자체 제작하는 굿즈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는데 티켓이 굿즈 역할을 하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영화산업에서 굿즈가 가진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의 포스터나 스틸컷이 단순히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 영화 장면과 캐릭터 해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오리지널 티켓,’ ‘드로잉 카드’가 영화 팬들에게 호응을 받았으며 특정 영화의 메가박스 굿즈는 따로 구매를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다른 멀티플렉스들에 영향을 끼쳤다. 메가박스 코엑스 드로잉 카드 굿즈 20개의 상영관: 한국 멀티플렉스의 상징 2024년 기준으로 20개관, 3,384석이며 전체적인 콘셉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영관별로 각 기능과 목적에 맞게 특화되어 있으며 부대시설 등을 포함한 근무 인원만 하더라도 100명 안팎이다. 근무 부서는 크게 운영 파트, 부티크 파트, 영사 파트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운영 파트는 각종 행사와 단체 대관, 매표소, 매점 등을 맡고 있고, 부티크 파트는 ‘더 부티크 특별관’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영사 파트는 코엑스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와 전 지점에서 개봉하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의 시영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설팀, 미화팀, 코엑스 지점에 입점해 있는 부대사업 관리 업무 인원 등이 영화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메가박스 코엑스는 총 20개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하 2층과 지하 1층에 나누어져 있는데 실제로는 각 층이 분절된 느낌이 아니라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형태이다. 먼저, 지하 2층에는 일반 상영관 2개, 다양한 타입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컴포트 상영관 7개와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스크린 A/B 총 2개, 메인 특별관인 ‘돌비 시네마’와 ‘MEGA | MX4D’ 상영관과 매표소와 매점이 있다. 지하 1층에는 ‘더 부티크’로 스위트 5개 상영관과 코엑스점에만 있는 ‘프라이빗’ 2개 상영관이 있는데 프라이빗 전용 카페와 스위트 라운지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멀티플렉스답게 영화 관람 이외에도 고객들이 머무르고 즐길 수 있도록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오락실, 키즈카페, 피규어샵 등도 같이 입점되어 있다. 계단에서 로비를 내려다본 광경 중앙의 로비에 있는 대형 계단은 현재는 메가박스 코엑스의 상징과 같은데, 무대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는 2023년 소파를 정리하면서 리모델링한 것으로, 계단에 앉아서 보이는 화면과 좌측에 긴 스크린에 영화 예고편과 광고 등이 나오고 있으며 영화를 기다리면서 관객들이 쉬는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공간이 크고 이동 동선이 편리해서 영화 행사에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단은 관객석으로, 전광판은 행사를 생중계해주는 대형 모니터로 활용되고 배우들이 무대로 나오기 전에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개봉 영화의 무대 인사 같은 경우에도 여러 개의 상영관이 지하 2층 한 층에 연결되어 있어서 배우와 제작진이 효율적으로 한 번에 상영관을 돌 수가 있다. MX4D관과 돌비 시네마관을 통한 특별한 경험 메가박스 코엑스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중에서도 특별 상영관이 가장 중요한 영화관이다. 메가박스 최초 4D 상영관인 ‘MEGA | MX4D’와 ‘돌비 시네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MEGA | MX4D’는 메가박스가 AAM(Arts Alliance Media)의 한국지사 AMPA와 MX4D 도입에 관한 파트너십을 맺고 2024년 2월 코엑스점에 처음으로 오픈했다. 메가박스의 ‘MEGA | MX4D’ 상영관은 영화 속 장면에 따라 움직임, 진동, 물, 바람, 향기, 안개, 눈, 비 등 9가지의 모션 효과와 6가지의 환경 효과로 표현된다. 그야말로 대형 멀티플렉스이기 때문에 운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영관이다. 돌비 시네마는 2020년 7월 이곳 코엑스점에 1호점을 오픈했다. 현재 돌비 시네마 상영관 같은 경우 전 세계 14개 국가에서 29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재 오직 메가박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 시네마관 객석 이외에도 메가박스 코엑스는 여러 개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관 첫해인 2000년도에 세계 최단 기간(85일) 내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04년에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관’에 선정되었다. 관객 수와 관련한 기록은 꾸준히 이어 갔는데, 2005년에 연간 관객 수 619만 명으로 월드레코드에 등재되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1일 관객 33,235명으로 신기록을 기록했다. 또한 오픈 이래 14년 연속 연간 관객 수 400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관객 기록은 ‘한국영화 시장의 양극화’라는 숙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메가박스에서는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이나 ‘라이브 뷰잉’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 장르를 보여주거나 새로운 전달 방식의 포맷을 도입하고 확산하는 등으로 국내 영화산업의 다양성 제고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메가박스 코엑스 지하 2층 매점 앞 전경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24 2) 설립일 : 2000년 5월 13일 3) 대표자 : 점장 고혜경 4) 규모 : 지하 1·2층의 전용면적 21,487㎡, 6,500평 5) 극장 구성 - 1관(Laser) [Dolby Cinema] : 378석 - 2관(Laser) : 432석 - 3관(Laser) [COMFORT] : 348석 - 4관(Laser) : 332석 - 5관(Laser) [COMFORT] : 281석 - 6관(Laser) [COMFORT] : 285석 - 7관(Laser) [COMFORT] : 285석 - 8관(Laser) [COMFORT] : 255석 - 9관(Laser) [MEGA | MX4D] : 192석 - 10관(Laser) [COMFORT] : 166석 - 11관(Laser) [COMFORT] : 166석 - 12관(Laser) [THE BOUTIQUE SUITE 101호] : 32석 - 13관(Laser) [THE BOUTIQUE SUITE 102호] : 36석 - 14관(Laser) [THE BOUTIQUE SUITE 103호] : 36석 - 15관(Laser) [THE BOUTIQUE SUITE 104호] : 36석 - 16관(Laser) [THE BOUTIQUE SUITE 105호] : 36석 - 17관 [screen A] : 36석 - 18관 [screen B] : 30석 - 19관 [THE BOUTIQUE PRIVATE 1관] : 8석 - 20관 [THE BOUTIQUE PRIVATE 2관] : 10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09:00~03:00 연중무휴 7)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중앙그룹 계열 - 제작업 기업의 콘텐트리중앙 - 자회사 메가박스중앙(주) - 메가박스 코엑스 - 메가박스 코엑스 - 운영팀, 영사팀, 부티크팀, 자체 시설관리팀과 미화팀 운영 8) 구성원 : 운영, 부티크 파트에 BOX, CON, USHER, CS, MR 업무 담당자들로 구성 9) 주요 장비(영사 장비, 음향) : 레이져 영사기, 돌비 비전, 돌비 애트모스 취재 일자: 2024년 9월 10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