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 감독
- 박승우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이종석, 문가영, 강유석, 류혜영, 임성재, 염혜란, 이서환, 김지현, 박형수, 정혜영, 윤균상, 김태훈, 김태정, 조범규, 박태린, 박성준, 전진서, 김도훈, 이유영, 남윤호, 황정민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 위 이미지와 영상에 표기된 참여자의 직급과 부서는 인터뷰 일자 기준이며,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영상 아카이브 기관 한국영상자료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영화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 보존, 서비스하는 영상 아카이빙 전문기관이다. 영상자료원은 자료의 수집 및 보존뿐 아니라 일반 시민이 영상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민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관인 ‘ 시네마테크KOFA ’에서는 국내외 고전,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 한국영화박물관 ’에서는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 영상도서관 ’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 그 외 연구 및 발간 사업, 소외 지역 및 시설을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 찾아가는 영화관 ’ 사업, DB 구축 및 한국고전영화 VOD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상암본원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5개 층을 운영하고 있으며(주차공간 제외) 지하 1층에 시네마테크KOFA 1, 2, 3관, 1층에 한국영화박물관과 교육실, 2층에 영상도서관, 3층에 수장고, 4층에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공용공간을 합쳐 대략 3,000평(9,912.11㎡) 규모이다. 2024년 3월 현재 보유자료는 영화 22,449편, 시나리오, 스틸사진, 포스터 등 관련 자료 1,350,028건으로 방대한 한국영화·영상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빙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지하 1층 영화관 시네마테크KOFA 1관 내부 전경 한국영상자료원의 정원은 96명이며, 조직은 원장과 사무국장, 이사회, 감사 외에 8개의 팀이 있는데, 전략기획팀, 경영관리팀, 수집팀, 보존관리팀, 디지털복원팀, 학예연구팀, 정보자원팀, 프로그램팀이다. 이러한 팀들의 명칭만으로도 자료원 전체 역할과 임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본원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igtal Media City, DMC) 내 위치하고 있다(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서울시 주관으로 2000년에 기본 계획을 수립해 2004년 본격적으로 조성 사업이 시행된 첨단 콘텐츠 생산 및 유통 단지다. 짧은 역사에 비해 빠르게 지상파 및 종편 방송사, 제작사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의 주요 기업·기관 등이 입주하며 영상 제작·유통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상미디어 생산지로 성장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자리한 서울경제진흥원 외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누리꿈스퀘어와 문화방송(MBC) 등이 인접해 있다. 50주년을 맞이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74년 1월 18일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34-5, 영화진흥공사 사옥 내에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셈이다. 냉전 경쟁이 심했던 박정희 정권기, 북한 국가영화문헌고가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에 가입하자 급하게 추진된 결과였다. 그러다 보니 초기 한국영상자료원은 제대로 된 조직과 공간, 설비를 갖추지 못했고, 1970년대 내내 제한된 시설과 인력으로 최소한의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이브 기관과 진흥기관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FIAF가 정회원의 조건으로 공간과 조직의 독립을 요구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서야 영화진흥공사로부터 조직적으로 독립하였고, 그 결과 1985년에 FIAF 정회원에 가입할 수 있었다. 1990년 9월 15일 예술의전당으로 이전하며 독자적인 공간을 갖추게 되었고, 공간의 이동과 함께 1991년 9월 1일 ‘재단법인 한국영상자료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시절 한국영상자료원 건물 입구 예술의전당 내 한국영상자료원의 공간은 대략 520평 남짓이었다. 총 520평의 한국필름보관소 공간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름 보관고, 영화 시사실, 영상 자료실, 보존 처리 공간, 사무실 등 남산동 영화진흥공사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공간 분할과 체제를 갖췄다. 이 공간을 바탕으로 한국필름보관소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됐다. 1994년 1월부터 영상자료 보존에 대한 국고지원이 시작되었고 1996년 7월부터 국내영화 필름 등의 제출제도가 시행되었으며, 2002년 6월 10일 영화진흥법 제24조의3에 법적인 설립 근거가 마련되어 현재의 형태인 ‘특수법인 한국영상자료원’으로 안착했다. 2007년 5월 16일 현재 위치인 상암동 청사(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로 이전하였고, 그해 6월 1일 영상도서관을 개관했다. 이듬해인 2008년 5월 9일, 시네마테크KOFA와 한국영화박물관을 공식 개관했다. 별도 청사의 마련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의 운영 역시 본격화된다. 2016년 5월 19일 영상자료 보존기술 향상과 이원 보존을 위해 파주보존센터를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층 영상도서관 내부 영상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 층별 구조를 중심으로 공간과 역할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하 1층은 시네마테크KOFA라 이름 붙은 3개의 극장(1관, 2관, 3관)이 있다. 각각 321석, 150석, 30-40석(가변적)의 좌석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3관에서는 상영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및 성인 강좌용으로 활용된다. 1관과 2관에서는 상영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영화의 예상 관객에 따라 1, 2관이 구분되어 운영된다. 대개 국내외 고전 및 예술영화, 독립영화 등이 상영된다. 1관과 2관을 합쳐 1일 2회 상영(오후 14~15시, 오후 18~19시)을 표준으로 하며, 경우에 따라 특별 편성되기도 한다. 무료로 운영되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이다. 1층 영화박물관 상설전시실 내부 1층에는 박물관과 교육실이 위치해 있다. 대략 300평 내외의 공간으로 상설기획 전시공간 755.12㎡(229평), 교육실 77.75㎡(24평), 수장고 및 로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은 기획전 공간과 상설전 공간으로 구분된다. 상설전은 한국영화사를 연대기로 볼 수 있는 “한국영화를 보다” 코너와, 초기영화의 역사를 체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초기영화로의 초대” 코너로 구성된다. 기획전시는 주로 한국영화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1년에 2회 내외로 진행된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이며, 운영시간은 10:30~19:00이다. 전시는 학예연구팀이 담당한다. 2층에는 영상도서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영상도서관은 국내외 영화 관련 서적, DVD 및 블루레이, 음반 등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자체 변환 VOD, 시나리오, 검열서류 등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1인 감상석 31석, 2인석 6석, 다인실(6인실, 8인실 각 1)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그 외에도 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보존고 및 디지털 아카이빙실, 카탈로깅실, 전산실, 필름 검색실 등이 위치한다. 3층에는 수장고가 위치한다. 영화필름 보관실 5실이 위치하고 있다. 2007년 이전 당시 3층 전부와 4층의 일부가 필름 및 비필름 수장고로 활용되었으나, 2016년 파주보존센터 건립 이후 대부분의 자료는 파주로 이전하고 영화필름 보관실만 위치하고 있다. 상암에는 주로 복사본인 활용용 필름들이, 파주에는 원본(네거티브) 필름을 포함한 유일본 등 보존용 필름들이 보존되어, 같은 자료를 다른 곳에 보존하는 이원 보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4층에는 사무실 및 회의실 등이 위치하고 있다. 3층 필름 보존실 내부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400 한국영상자료원 2. 설립일 : 1974년 1월 18일(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 3. 대표자 : 김홍준 4. 규모 : 연면적 9,912.11㎡ / 지하1층-지상4층 5. 공간 구성 1) 지하1층: 시네마테크KOFA 1, 2, 3관 및 매표소, 로비, 전시공간 - 1관 321석(일반석 317석, 장애인석 4석) / 2관 150석(일반석 148석, 장애인석 2석) - 3관 30-40석(교육장소로 이용 중) 2) 1층: 한국영화박물관 및 교육실 3) 2층: 영상도서관 및 수장고 외 - 영상도서관: 1인 감상석 31석, 2인석 6석, 다인실(6인), 다인실(8인) - 수장고(디지털 보존고) / 필름 검색실 / 디지털 아카이빙실 / D시네마 검수실 - 카탈로깅실 / 전산실 4) 3층: 수장고(필름 보존고 / 특수자료 보존실) 5) 4층: 사무국 6. 운영시간 1) 시네마테크KOFA: 화요일-토요일 첫 회 상영 1시간 전부터 마지막 회 종영 시각까지 2) 한국영화박물관: 화요일-토요일 10:30-19:00 / 영상도서관: 화요일-토요일 10:00-19:00 7. 입장료 : 없음 8. 조직 구성: 1사무국 2팀 9. 정원 : 96명 글/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취재 일자 : 2023년 9월 18일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한국 영화평론가가 '한국'영화를 대하는 법) 이 원고를 청탁받은 날, 나는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리는 대담에 참여했다. “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 ” 기획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1990s 시네필 대담 part 2”라는 제목의 대담이었다. 하길종 의 < 화분 >(1972)의 상영 뒤, 1990년대 사설 시네마테크를 운영했던 시네필과 1990년대생 영화평론가 사이의 대화를 만들고자 했다. 준비해 간 질문 중 하나를 옮겨보자. “이번 기획전 상영작을 보고 있자면 90년대 비디오테크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지금은 영화사의 ‘정전’으로 다뤄지는 영화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르코스프키, 고다르, 파스빈더, 앙겔로풀로스 뿐 아니라 데이비드 린치나 그리너웨이, 오시마 나기사처럼 당시엔 일정 부분 ‘컬트’로서 소화되던 감독과 영화들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영화역사의 만신전에 오른 이름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 대담과 붙여서 상영된 하길종의 <화분>은 하나의 예외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략) 이번 기획전에 <화분>이 포함된 것은 90년대 시네필들이 단순히 영화 교과서에 수록된 정전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영화를 (재)발굴 혹은 (재)발견하려 시도했음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기획전의 라인업을 보며 느꼈던 의문 중 하나를 옮긴 질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르코프스키, 고다르, 파스빈더 등의 이름과 함께 하길종을 배열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상영작이 꼭 <화분>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저 자리에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을 놓았더라도, 이만희 의 < 휴일 >(1968)이나 김기영 의 < 하녀 >(1960)을 놓았더라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어로 글을 쓰며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영화를 상대하는 한국의 영화평론가로서, 한국영화는 어딘가 이상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한국영화라는 이름 뒤에 무엇이 따라붙든 간에 그것을 어색하지 않게 납득하는 것은 아마 이뤄지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국영화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한국인이 만든 영화? 한국 자본이 투입된 영화? <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2023)에서 노라(그레타 리)는 남편에게 해성( 유태오 )을 설명하며 “Korean”이라는 단어를 아홉 번 사용한다. 그의 대사 속 한국인은 “평범한 직업과 평범한 삶을 사는 어른이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한국계(Korea) 친구와는 다른 한국인(Korean) 친구인 한국인-한국인(Korean-Korean)이다. 이 대사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반발감 혹은 어색함이 한국영화를 대하는 나, 동료 평론가들, 그리고 온라인상의 무수한 글로써 존재하는 시네필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갖는 어떤 공통감일지도 모른다. <패스트 라이브즈> 중 대담으로부터 일주일 뒤 한국영상자료원의 ‘ 한국영화 100선 ’ 발표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 171명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 69명이 참여한 이 리스트를 통해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순위가 공개된 10편의 영화 중 절반이 21세기 영화이며, 봉준호 , 박찬욱 , 이창동 이라는 세 명의 이름뿐인 이 리스트를 두고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리스트에 오른 100편의 영화를 전부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10편의 영화 를 적어서 보냈지만, 그 영화들이 한국영화에서의 ‘한국’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화들은 한국의 파편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며, 한국영화라는 전체는 그 파편들의 집합을 통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케이팝을 필두로 무분별하게 난발되고 있는 접두사 “K-”가 결국 그 모든 파편의 집합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영화평론가의 일상과 비평에 관한 생각을 터놓는 지면에서 갑자기 왜 한국영화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의 시네필들이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단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후순위로 미뤄두고,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들을 해외 영화들만큼 열심히 챙겨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한국이 무엇으로 구성되고 재현되는지, 그것은 항상 이야기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의 “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영화 ” 발표 녹취록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그 위에 2024년 버전의 ‘한국영화 100선’을 겹쳐 놓는다면, 한국영화는 마치 과거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뒤 봉준호와 박찬욱에 의해 부활한 것만 같다. 그리고 무수한 ‘비천한’ 영화들이 누락되어 사라진다. 나는 이 ‘비천한’ 영화들, 함연선의 발표에서 등장한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곽재용, 2004)와 < 달마야 놀자 >(박철관, 2001)를 포함한 일련의 조폭 코미디를 포함해, < 마파도 >(추창민, 2005), < 중천 >(조동오, 2006), < 고사: 피의 중간고사 >(창, 2008)처럼 지금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을 영화들이 나의 ‘비천한’ 한국영화의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이 영화들이 얼마나 비천하고 구리며 지루하건 간에, 이 영화들은 한국을 담아내는 것으로서 보였다. 한국영화라는 하나의 장르 속에서, 한국은 영화적 장소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불쾌함을 자아내는 것일지라도. 지금의 한국영화들은 그것의 반대로 향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떠올려 보자. < 밀수 >(류승완, 2023)는 극 중 등장하는 지도상 군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군천’이라는 가상의 지명을 사용한다. 소재만 바뀐 같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 모가디슈 >(류승완, 2021), < 교섭 >(임순례, 2020),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은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을 찾아내려는 기묘한 시도를 선보인다. 이들 영화에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이라는 각기 다른 중동 국가는 한국에서 폐기된 것처럼 느껴지는 ‘야만성’을 간직한 곳으로서, 한국과 대비되는 야만의 땅으로서 묘사될 뿐이다. 아예 지구 바깥으로 향하는 < 더 문 >(김용화, 2023)이나 국가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한 미래를 그리는 < 정이 >(연상호, 2022)와 같은 영화들은 한국이라는 장소에 영화가 묶여있고 싶지 않다는 의지 표명에 가까워보인다. <중천>, <모가디슈> 중 <경마장 가는 길>, <괴물> 중 ‘한국영화 100선’의 리스트를 작성하며, 나는 두 편의 영화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한국영화가 한국을 찍는 방법,” "충무로가 한국을 영화적 장소로 대했던 마지막 순간." 전자는 장선우 의 < 경마장 가는 길 >(1991)이고, 후자는 봉준호의 < 괴물 >(2006)이다. <경마장 가는 길>을 보며 우리는 90년대 서울의 풍경을, 붉은 십자가로 가득한 야경과 무너지기 이전의 삼풍백화점과 사람으로 가득해 “산책이 노동이 된” 길거리를 목격할 수 있다. <괴물>을 보며 여의도 한강공원의 풍경을, 합동분향소와 한강의 매점을, 일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장르적 장소로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장소가 해외 로케이션으로, 그린스크린으로 옮겨감에 따라 사라진 풍경들, 길을 걷고 뛰는 사람들. 물론 지금의 영화들에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 여름날 >(오정석, 2019)의 거제도, <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2021)의 서울, < 아워 바디 >(한가람, 2018)의 한강공원, < 썬더버드 >(이재원, 2021)의 정선과 같은, 여전히 사람들이 걷고 대화하며 싸우고 도망치고 뒤따를 수 있는 영화적 풍경으로서의 한국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충무로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인상을 반복해서 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이기에 한국영화에 관해 말해야 한다는 의무가 존재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셔널 시네마의 기획을 재차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살아가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을 담아내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엄태화 의 <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다. 이것은 마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20)나 “호라이즌 제로 던”(2017)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에서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 이전의 서울을 아주 짧게만 보여준다. KBS의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모던 코리아> 제작진이 참여한,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짧게 보여주는 푸티지 영상은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저 멀리서부터 마치 밭이 갈리듯 땅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도큐먼트’로서의 아파트 이미지와 CGI로 그려진 아파트 숲의 연결은, 비록 그것이 완전한 폐허를 그려낼 뿐인 그린스크린 촬영의 결과물일지라도 연속성을 지닌다. 아주 짧게만 등장하는, 민성( 박서준 )이 대지진을 목격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곳은 지하철 3호선 금호역과 약수역 사이의 도로로, 실제 도로의 건물들을 스캐닝하여 제작되었으며, 저 멀리서 장충체육관의 건물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려내는 세상은 모두 세트와 그린스크린 촬영을 통해 제작되었으며 로케이션 촬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기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경마장 가는 길>이 그러한 것처럼 1990년대 초 종로의 길거리와 서초동의 모습을 담아내지도, <괴물>이 그러한 것처럼 2000년대 중반의 한강공원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다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실제의 지리적 공간을 끌어와 장르적 장소로 재가공한다. 물이 말라버린 한강 바닥에 넘어져 있는 동호대교, 금호동의 황궁아파트에서 한강을 건너 마주한 압구정의 백화점, 아파트에서 도망친 민성과 명화( 박보영 )의 뒤로 보이는 구 서울역과 그들이 도착한 명동성당. 물론 이 이미지들은 (서울역 정도를 제외하면) 명시적인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공간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서울의 지리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공간들이 드러날 뿐이다. 당장 비슷한 (그리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처음엔 알려졌었던) < 황야 >(허명행, 2023)를 떠올려보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작동하는 지리학이 보다 구체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나아가 지난 몇 년 간 재개발 이슈가 존재해온 금호동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황궁아파트의 생김새 자체가 익숙한 이미지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난 60년 동안 아파트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장소였다. *주1 아파트는 성공의 트로피이자 욕망의 대상이었으며, 중산층 거주 형태의 기본형이자 일상의 장소였고, 종종 비밀스럽고 두려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장르적 장소였다. 영화 속 아파트의 모습, 아파트가 그려지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그려내는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스트-아파트-아포칼립스라 부를 수 있을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오래된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바로 옆에 붙어 공존하는 서울의 특수성을, 실제의 지리학 위에 펼쳐냄으로써 ‘한국’이라는 맥락을 획득한다. 나는 이 영화가 대단한 걸작이거나 수작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부동산 자본주의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다만 < 해운대 >(윤제균, 2009)나 < 곤지암 >(정범식, 2018)에서 실제의 지역을 분리해 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 또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가상의 지명을 내세우고선 실제의 지도 위를 가리킨다거나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성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영화들과 달리, 어쨌거나 한국을 영화적 토양으로 삼아보려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울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비춘 아파트 그러니까 이 글은, 결국 한국영화가 뭔지 여전히 모르겠는데도 ‘한국의 영화평론가’라는 이름표로 활동하고 있는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재차 질문하는 글이다. “K-”라는 접두사가 붙은 일련의 영화들 속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 아래 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이 비천한 영화들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을 발견할 수 있을까? *** 주1. 『아카이브 프리즘』 vol. 13, 한 국영상자료원, 60~82쪽. 박동수(영화평론가) l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 2021년 독립영화비평상 당선.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