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감독
- 고영남
- 제작년도
- 1977
- 출연
- 김영애, 박근형, 김민정, 현혜리, 김운하, 조덕성, 전영주, 추석양, 홍윤정, 이정애, 최준, 김애라, 손영순, 권오상, 이예성, 박용팔, 임해림, 윤일주, 오세장, 이백, 김지영, 김신명, 김경란, 성명순, 최일, 임생출
<폭설>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기술 발전에 조응하며 미학적, 산업적 변화를 거듭해 온 매체이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기술사적 변곡점마다 영화 창작자들은 새로운 표현 가능성과 방법론적 도전에 직면해왔다. 최근 부상하는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이러한 영화 기술사의 연장선상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제작 방식과 미학 전반에 걸친 또 다른 전환을 예고한다. 최근 필자가 제작한 단편 < 폭설 >(2024)은 AI를 기반으로 전체 제작 과정이 이루어진 코즈믹 호러 영화이다. 전통적인 촬영과 후반 작업 대신 인공지능 생성 기술을 전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했던 시각 요소들을 구현할 수 있었다. AI 기반 제작 방식은 물리적 세트나 대규모 시각효과팀이 없이도 연출자의 순수한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혁신적 가능성을 열었다. <폭설>은 종말을 앞둔 2009년 겨울, 설국(雪國)을 배경으로 구축된 디지털 세계이다. 주인공 소요는 어릴 적 친구인 유코를 기다린다. 작은 섬마을에서 벌어진 초자연적 현상은 종말로 확대되고, 소요가 유코가 남긴 수취인 없는 유서를 떠올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특히 ‘몬사로(漢字道)’라 불리는 초월체. 형이상학적 존재를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비물질적이고 초월적 존재의 표현은 전통적 시각효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으나, 생성형 AI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시각적 표현을 달성할 수 있었다. <폭설> 제작에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AI 기술을 다층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시나리오에서 묘사된 ‘몬사로’라고 하는, 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시각화 작업은 정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을 안정화하기 위해 대규모 언어 모델인 Claude API를 활용하여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AI 프로덕션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시나리오의 핵심 시각 요소와 정서적 톤을 분석하고 이를 이미지 생성 명령어로 변환하는 중간 매개체로 기능했다. 독백으로 전개되는 14분 분량의 이 작품은 대화 장면보다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러한 접근은 AI 영화 제작의 특성을 고려한 의도적 선택이었다. 당시 AI 기술로는 자연스러운 대화 장면과 입술 동기화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면의 독백을 통한 서사 전개 방식을 선택하고 시각적 요소에 집중했다. <폭설, 暴雪> 중 전체 설국 시퀀스 제작을 위해 직접 촬영한 눈의 텍스처를 학습시켜 AI로 생성된 설산 배경 이미지를 기본 레이어로 사용하였고, 특히 사실적인 표현과 초현실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정했다. 여기에 ControlNet을 결합한 워크플로우를 구축했다. 기본 배경 이미지에 ComfyUI 노드 기반 워크플로우를 적용해 시네마틱한 로그 프로파일을 구현했다. 이후, 35mm 필름의 할레이션 효과를 재현하고, ControlNet으로 아나모픽 렌즈 플레어와, 얕은 피사계 심도와 대기 원근법을 구축했다. 이후 후반 작업에서는 Film Grain 노드로 Pro-Mist 필터 효과를 시뮬레이션 후, 시네마틱 톤매핑을 완성하여 애너모픽 스퀴즈와 쿨-웜 색상 대비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실제 영화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본 단계들이 점진적으로 추가되었다. 특히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 변환 기술을 여러 단계로 적용하며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AI가 때로 예측하지 못한 창발적 결과물 을 생성한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알고리즘적 우연성’을 오류로 인식했으나, 점차 이를 창의적 발견의 기회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전환했다. 특히 설산 시퀀스 작업 중 한 번의 생성 과정에서 AI가 만들어낸 모호한 형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본질적인 불안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발견했다. 눈보라 속에서 형체가 완전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신, 눈의 패턴 자체가 미묘하게 얼굴이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왜곡되는 효과가 우연히 생성되었는데, 이는 결국 최종 장면에 반영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계획한 이미지를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AI와의 대화적 창작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AI와의 협업을 통한 창발적 발견은 <폭설>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어령(御靈)>은 <폭설>의 후속 이야기를 다루는 인터랙티브 영화로, 관객의 선택에 따라 서사가 달라지는 새로운 형태의 영상 작품이다. <폭설>에서 구축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되, 인터랙티브 요소를 통해 관객이 직접 서사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AI 영화 제작 기법에 더해 실시간 선택 분기와 동적 서사 생성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 추가되었다. 특히 관객의 선택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각적 요소들을 AI를 통해 구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실험적 시도이다. <어령>은 AI 기술이 단순한 제작 도구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경험을 창조할 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어령, 御靈> 중 <폭설>과 <어령>의 제작 과정에서 핵심 미학적 도전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얼굴 일관성을 유지하는 문제였다. 이를 위해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ComfyUI 기반의 얼굴 일관성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특히 AI 생성 영화에서는 동일한 인물이 장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AI가 매번 새롭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일관성 부재는 서사적 몰입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 치환 기술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영화 중반부의 주요 장면에서 특히 중요했다. 이 장면에서 인물의 대화와 표정은 서사적 긴장감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미묘한 변화를 시각화하기 위해, ComfyUI의 얼굴 치환 기능과 함께 감정 표현 보존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는 이미지가 지닌 감정적 뉘앙스는 유지하면서도, 얼굴의 미세한 형태적 변형을 통해 내적 변화를 암시하는 효과를 창출했다. 특히 인물의 얼굴이 대화 중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것은 관객들이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닌, 몰입적 요소를 강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용했다. <폭설, 暴雪> 중 공간 구현에 있어서는 Blender와 SketchUp을 기반으로 한 3D 모델링 작업에 더해, NeRF(Neural Radiance Fields) 기반의 공간 캡처 파이프라인을 접목하였다. 이는 AI 생성 영화에서 공간 연속성과 시각적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적 구현 방식이었다. 장면마다 공간의 형태와 구조가 미묘하게 변화할 경우 시청자의 몰입감이 저하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이 부분은 특히 신경 써야 할 주요 과제로 설정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3D 모델링을 통해 기본적인 공간 구조를 구성하고, 이후 NeRF 기반의 신경망 기술을 적용하여 실제 공간의 광학적 특성과 깊이 정보를 정밀하게 재구성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3D 공간 데이터는 AI 이미지 생성을 위한 프롬프트의 기준점으로 활용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서사 내 공간의 일관성과 장면 간 구조적 연속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어령, 御靈> 중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표정과 제스처의 자연스러운 구현이 중요한 도전이기도 했는데, AI가 생성하는 인물의 표정은 종종 부자연스럽거나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OpenPose 모델을 활용하여 인물의 자세와 제스처를 정밀하게 제어했고, 이를 통해 감정 표현의 섬세함을 구현하였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 인물 간의 시선 처리와 반응 표현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표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동적 장면 구현을 위해서는 Stable Video Diffusion(SVD)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정적 이미지 사이의 자연스러운 전환과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키프레임 기반 접근법을 적용했다. 주요 장면의 키프레임을 먼저 생성한 후, 중간 프레임을 보간(Frame interpolation)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는 특히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환경의 점진적 변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AI와의 협업 과정은 ‘대화적 생성’이라는 새로운 창작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명확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이 연출자의 세부적인 의도와 괴리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반복적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 과정을 통해, AI는 점진적으로 연출자가 설정한 시각적 목표치에 수렴하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제작 과정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AI 생성 이미지의 ‘제어 가능성’과 ‘창발적 우연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와의 ‘ 대화적 창작 ’ 프로세스를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초기에 다양한 방향성을 탐색하는 ‘발산적 프롬프팅’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선택된 요소들을 정교화하는 ‘수렴적 프롬프팅’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접근법을 적용했다. AI가 제시하는 예상치 못한 가능성에 열린 상태로 창작 방향을 조정해나가는 쌍방향적 협업으로 프로세스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본 기획보다 흥미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AI 생성 요소들이 캐릭터의 심리적 상태를 더욱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발견은 제작 과정 자체를 재해석하게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도구적 활용을 넘어, AI라는 비인간 행위자와 상호작용하며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독특한 협업 모델을 경험하게 했다. 이는 AI가 창작 과정 자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변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향후 영화 제작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 전환이 영화계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를 고찰해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기대와 동시에 기존 질서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야기해왔다. 활동사진의 등장부터 유성영화, 컬러영화, 디지털 시네마에 이르기까지, 기술적 전환기에는 어김없이 미학적, 산업적 논쟁이 수반되었다. AI 기술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핵심적인 논점은 기술 자체의 속성보다는, 이를 창작의 도구로서 어떻게 사유하고 활용하는가에 대한 창작 주체 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작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창작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사례는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AI 기술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잠재력을 지닌다.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국제경쟁 AI 영화 부문의 공식 선정작 감독들이 영화 관련 교육 배경을 가졌거나 현업에 종사하는 인력들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 기술이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영화적 서사를 구축하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핵심적인 역량은 여전히 영화 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춘 인간 창작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나아가, 기존에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AI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영화적 표현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매체적 조건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과거 네오리얼리즘이 동시대 현실을 포착하는 새로운 영화 언어를 제시했고, 누벨바그가 기존의 영화 문법에 도전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했듯이, 새로운 기술과 도구의 등장은 늘 새로운 영화 언어와 미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열어왔으니, 현재 우리는 AI 기술이 촉발하는 또 다른 영화사적 변화의 과정에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 터이다. <폭설, 暴雪> 중 <폭설>의 제작 과정은 AI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전통적 방식과는 구별되는 연출 실험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시각화 작업부터 포스트 프로덕션의 특수효과 생성에 이르기까지, AI에게 연출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생성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피드백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새로운 형태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화적 창작’ 모델은 감독에게 AI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와 소통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단기간 내에 현재보다 훨씬 고도화된 기술이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급격한 기술 변화 앞에서 창작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술적, 미학적 변화를 끊임없이 수용하고 내재화하며 발전해 온 과정이었다. 핵심은 기술의 발전이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창작 도구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지, 창작 행위의 본질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질문하려는 욕구,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의지,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는 영화 고유의 시도는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는다. <폭설>의 제작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AI가 감독의 창조적 비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감독의 명확한 비전과 미학적 판단 능력이며, 이는 창작자의 경험, 감수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창작자는 상상하는 바를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AI 시대 영화 창작이 마주한 새로운 가능성이며, 지속적인 탐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궁극적으로, 매체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 창작자는 늘 그랬듯이 동시대의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해 발언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용하는 기술적 언어가 달라진다 해도, 영화를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주제는 지속될 것이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며 스스로의 미학적, 산업적 지평을 넓혀 온 예술 형태이다. AI 시대 역시 이러한 진화의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려는 우리들의 근원적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영화는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조응하며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될 것이다. 도구는 바뀌어도, 우리는 늘 그랬듯이 표현하고자 하니깐. 배준원(영화감독) l 표현자로서의 경계 없음을 안간힘을 다해 믿으며 표현합니다. <몬사로>(2025), < 폭설 >(2024), < 침묵 >(2023) 연출. 인간과 사회를 응시하며, 틈 사이로 비추는 균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똑바로 보자. 파국이 아니라 난국이다. < 기생충 >(봉준호, 2019)의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가족은 지배계급에 제대로 손상을 입히지도 못하고 폐허의 잿더미에 올라서 미래를 볼 용기도 없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다시 말하면 재현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순간적으로 출현했던 계급의식을 계급상승 욕망과 부유층 선망으로 다시 환원하며 건축가 남궁현자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유령은 애도를 가능하게 하며 마침내 무엇이 끝났는지 역사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을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파국은 과거를 파괴하는 폭력적 힘을 갖고 있지만 그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기택은 햄릿의 아버지처럼 유령이 되지도 못하며, 이 모든 연극의 조종자를 노출시키고 완전한 파국을 이끌어 낼 저력도 없다. 결말에서 기택은 박사장(이선균)을 죽인 후 방공호에서 근세(박명훈)가 있던 자리를 문자 그대로 대신한다. 기택은 자기 가족들한테 ‘친절했던’ 박사장에 미안함을 느끼고, 근세처럼 고장 난 복도의 센서등을 자신의 몸으로 대신 켜고 끈다. 한편 장남 기우(최우식)는 아버지가 실패한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기생충>의 난국을 응시해보자. 이 영화에서 각 계급이 처한 환경에 대한 묘사는 매우 디테일하다. 계급의 물질성을 드러내기 위해 온갖 '감각의 클로즈업'을 동원한다. 촉각, 후각, 시각, 운동감각 등 다채로운 감각을 동원해 부유층의 대저택과 다가구 반 지하 생활을 생생하게 시뮬레이션 한다. 햇빛과 비 같은 자연적 현상마저도 계급화된다. 햇빛이 안 들어오는 반 지하는 늘 축축해 빨래가 잘 마르지 않으며 수압이 낮아 변기에 역류현상이 일어나고 하룻밤 비에도 집이 물에 잠긴다. 하지만 큰 통창과 완벽한 배수시설을 갖춘 언덕 위의 대저택에서 비는 가족캠핑을 취소하게 만든 정도의 가벼운 방해꾼이자 다음날 미세먼지를 날려주고 상쾌한 공기를 안겨주는 고마운 자연현상이며 운치있는 풍경이 된다. 이러한 디테일 묘사는 부자와 빈자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승인되고, 관객들은 '맞아. 진짜 저렇지.'라고 존재하는 것을 승인하는 구조를 취한다. 이것은 기존의 것의 인정형식이다. 이러한 감각의 클로즈업은 계급화된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실 각 계급, 직업, 세대, 거주지역 등에 따른 특징들을 추출해 그 디테일을 적확하게 묘사해 내는 표현물은 최근 <피식대학> 같은 유튜브 기반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에서 유행하고 있는 특정 집단 시뮬레이션이 더 뛰어나다. <기생충>은 시뮬레이션을 넘어 오늘날 계급의식의 발현 계기를 목도하고, 그를 통해 누가 적대계급인지를 파악하며, 어떻게 적대계급을 무너트리거나 혹은 좌절하게 되는지 까지 가려 한다. 문제는 <기생충>이 그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난국에 빠졌다는 데 있다. 그 난국은 단순히 오늘날 계급구조가 극심한 양극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불안정한 새로운 계급의 출현, 생존게임에 가까운 경쟁사회, 지배계층에 대한 선망의식에만 있지는 않다. 사실 재현 그 자체의 난국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미 계급의식의 출현과 혁명, 그리고 실패 및 대안에 대해 진지한 우화를 만든 적이 있다. 전작 < 설국열차 >에서 기후재난으로 빙하기에 접어든 지구에서 꼬리칸에 있던 잉여 취급받던 사람들은 영구엔진을 가진 기차에서 지배계층이 있는 앞 칸으로 직선적인 전진운동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미 이 움직임을 예측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기획하고 혁명 그 자체를 이용하는 시스템 내에서 '단순하고 뻔한' 전진운동의 계급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존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영구엔진의 신화, 즉 시스템을 멈추고 아시아 소녀, 흑인 소년, 백곰으로 은유화된 소수자들은 탈출을 시도한다. 직선운동의 실패는 고전적인 진보서사의 몰락을 의미한다. <기생충>도 <설국열차>처럼 양극화 현상과 계층의 이동 사다리를 알레고리화 하기 위해 수직운동을 부각시킨다. 언덕 위의 부유한 단독주택과 저지대의 다가구 반지하 주택, 반지하 주택과 아예 보이지 않는 지하의 방공호, 실내외의 오르내리는 계단들, 하강하는 비, 산수경석은 모두 계급의 위계화와 계층이동을 알레고리화 한다. 여기에 수직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운동(pedestal down)은 그러한 수직운동을 더 부각시킨다. <설국열차>가 전진운동에서 탈출해 체제 바꾸기의 희망을 엿보는 것으로 끝났다면, <기생충>은 계층이동을 시도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 비극을 제시한다. 그 비극의 심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기생충>은 계급재현의 곤란함을 자기 반영적으로 시각화하고 서사화한다. 기택(송강호) 가족은 몰락한 중산층으로 프레카리아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알바를 전전하며 안정된 직장 없이 살아간다. 영화 초반 그들은 전원 백수로 묘사된다. 그들의 유일한 자산은 가족 네트워크이다. 장남 기우(최우식)는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이 연결시켜준 고액 과외자리를 소개받고 학력을 위조해 IT 기업 CEO인 박사장의 딸 다혜(정지소)를 가르치게 된다. 기우는 박사장의 아내인 연교(조여정)의 의심을 받지만 수업참관 이후 신뢰를 얻고 동생 기정(박소담)을 아들 다송의 미술심리치료교사로 소개한다. 이후 기우와 기정은 계략을 세워 원래 근무하던 문광(이정은)과 윤기사(박근록)를 쫓아내고 아버지 기택과 어머니 충숙(장혜진)을 각각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로 채용시킨다. 모두가 불안정한 생존게임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유사계급에 속한 이들을 가차 없이 사다리에서 밀어낸 기택(가족)은 당연하게도 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다. 그런 기택이 마침내 계급의식을 갖게 된 것은 이성적 논리나 도덕률이 아닌 '냄새' 때문이다. 기택은 자기를 고용해주고 매너도 좋은 박사장에게 고마워한다. 심지어 같은 가장으로서 동일시를 한다. 그러나 근세가 다송의 생일 파티에 난입하고 박사장이 더러운 냄새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자 기택은 즉각적으로 분노하고 그제야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그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는 이전에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유일하게 선을 넘어 오는 것이라고 했던 것으로 언어화되기 이전에 신체적으로 환기되는 즉각적인 혐오다. 기택은 근세와 구별 지으려 했지만, 박사장은 냄새로 그들을 같은 계급으로 묶는다. 그에 반응해 기택은 박사장을 적대적 계급으로 파악하고 그를 살해한다. <설국열차>의 '혁명을 위한 직선운동'처럼 <기생충>에 나온 수많은 계급적 상징과 알레고리는 체제 균열을 가져올 행동이나 사유를 촉발하지 못한다. 그것은 산수경석처럼 낡고 닳았기 때문이다. 직선적인 전진이나 수직운동과 구도는 이미 영화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기호이고 지나치게 자명하다. 그것은 적극적인 의미독해를 요청하며 수많은 약호해독의 비평들을 양산해내지만 비판적 힘을 갖지 못한다. 오늘날의 '웰메이드'영화는 좁은 의미의 미스터리 장르가 아닐 때조차도 관객들의 문제해결을 기다리는 미스터리가 된다. 이것은 또한 비판이론과 비평이 처한 난국이다. 이론과 비평은 결코 죽지 않았으며 오히려 양과 접근성의 측면에서는 흥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보제공 혹은 연쇄적인 동어반복의 재승인과 서사풀이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어쩌면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봉준호 감독이 정교하게 여러 기호들을 흩뿌려 계급의 의미작용을 설계하면 할수록 암호해독의 쾌락만 커질 뿐 그 비판적 힘은 더 약화된다. 이미 <기생충>은 텍스트 내에서 비평을 초청하고 있으며 그 쾌락은 텍스트 가장자리의 안쪽을 끊임없이 맴돌도록 설계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상징”이라는 말이 기우의 입을 통해 두 번 언급된다. 기우는 영화 초반 민혁에게서 할아버지가 수집하고 있다는 수석을 선물로 받고 말한다. “민혁아, 이거 진짜 상징적이다.” 클로즈업된 수석은 영화 전체를 은유화 하는 큰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안이 이미 텅 비어 있고 믿음만으로 유지되는 물신(fetish)에 불과하다. 가부장제와 계층이동을 통한 계급상승은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가능성을 잃은 오래다. 기우는 수석 선물을 받고 집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행인에 대적할 용기를 얻는다. 그 싸움은 슬로우모션으로 스펙터클하게 그려지지만 그래봤자 오줌을 뿌리는 순간일 뿐이며, 이미지의 스펙터클화는 기우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 뿐이다. 수석은 자명하게 계층상승과 출세의 욕망 그리고 가부장의 힘을 ‘상징’한다. 기택을 원망하는 충숙이나 기정과 달리 기우는 장남으로서 자기가 앞으로 물려받을 가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택을 존중하고 보호하고자 한다. 하지만 대책 없는 기택처럼 그 수석은 텅 비어있는 기호다. 심지어 기우가 빗물에 잠긴 집에 돌아왔을 때 수석은 말 그대로 물에 뜬다. 기우는 수석이 자신을 따라온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가벼워 물에 떴을 뿐이다. 유기성과 총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상징은 더 이상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그 의미의 무게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봉준호 감독이 시각적 기호와 의미가 유기적이고 총체적으로 꽉 짜여 있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와 <기생충>에서 반복했던 모티브, 상징, 알레고리를 통한 의미화(signification) 작업 자체에 회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급혁명이든 계급의식이든 문화재현의 정치학으로는 비판적인 무게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것이 정교하게 구체적 공간과 소품들을 통해 은유화 되고 시뮬레이션 될수록 오히려 모방과 복제의 과정을 거치며 온라인에 빠르게 퍼져나가는 ‘밈(meme)’이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수석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수석은 낡은 자명한 상징이지만 외국인들에게 수석은 미스터리하고 동양적이며 아름다운 소품으로, 수수께끼 같은 재밌는 밈이 된다. 한국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외국인 관객에게 산수경석의 의미를 해석해 주며 문화적 우위도 가질 수 있다. <기생충>은 위에서 기술한 계급 재현의 곤란함을 모두 반영하고 의미화하면서도 물에 뜬 수석처럼 그 의미의 정치적 힘은 텅 비어 있다. 텅 빈 수석은 정치적 힘과는 전혀 상관없이 생산되는 관객의 암호해독 쾌락을 응시한다. <기생충>은 문화재현의 정치학의 아포리아를 수석에 이입시킨다. 재현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난국이다. 기우는 다송의 그림을 처음 볼 때 또 다시 "상징"을 언급한다. 기우는 벽에 걸린 다송의 그림을 보고 “진짜 상징적이다”라고 말한다. 기우는 기정을 미술교사로 데려오기 위해 다송의 그림 뒤에 해석할 많은 것이 있는 것처럼 과장한다. 기정 역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 연교에게 다송의 그림이 정신분열과 트라우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해석해 준다. 사실 다송의 그림은 어떠한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그 그림은 다송이 밤에 목격한 근세를 그린 것이다. 기호 해독의 과장되고 과잉된 의미화는 타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린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기호가 더 이상 의미작용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엉뚱한 것을 가리킬 때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으며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은, 무게를 갖고 중력에 영향을 받으며 물리적으로 그곳에 존재하는 자연과 신체이다. 기정이 살해당했을 때에도 계급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던 기택은 박사장이 근세에게 불결한 냄새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자 곧 자신이 적대해야할 계급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를 깨닫는다. 비판적 의식은 기호화하기 어려운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신체성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박사장의 태도는 근세의 신체와 기택의 신체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즉각적으로 계급 정체성과 집단성을 구성한다. 냄새가 유발하는 구분 없음은 언어적이고 의식적인 기호를 초과한다. 그리고 드디어 행동을 할 힘을 얻게 된다. 비, 돌, 냄새 같은 자연적인 것의 사용은 유사한 맥락에서 고려될 수 있다. 계급의식은 계단과 산수경석처럼 의미화 되자마자 즉자적으로 가벼워지고 '밈'화 되는 기호 이전의 원초적인 기호들, 즉 보다 자연적이고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이미지 기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영겨진다. 기우가 기택이 박사장을 죽이고 사라진 후 텅 빈 기호가 된 산수경석을 다시 산 속 시냇가, 즉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그런 이유다. 하지만 역으로 홍수나 냄새와 같은 자연적이고 신체적인 단위가 아니면 계급의식은 형성될 수 없다는 뜻이며, 이러한 자연화 된 기호화의 반복은 저소득층 혹은 가난한 자들을 문명과 대립되는 비체적 존재로 낙인을 찍는다. 냄새로 엮인 그들은 개별적 존재로 구분할 수 없다. 계급화된 얼굴의 자연화는 계급재현의 실패와 계급의식에 대한 냉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재현 실패의 원인은 오히려 과잉될 정도로 스펙터클하고 세련된 스타일, 디테일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클로즈업된 감각들, 정합적이고 정교한 의미작용으로 인한 약호해독의 '쾌락' 그 자체의 몰두와 네트워크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정보화된 영화 이미지에 근거한다. 기택은 근세와의 계급적 친화성을 신체적으로 자각한 후 방공호에 기거했던 근세의 자리를 차지한다. 근세의 자리를 차지한 후에는 박사장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근세와 구분되지 않는 비체적 상태의 기택은 순응적인 근세의 의식을 받아들인다. 근세와 기택의 몸은 그 자체로 센서등을 대신 작동하며 자본에 복종하는 부품이자 모스부호를 보내는 몸-기호가 된다. 몸이 아니면 의미화가 불가능하다. 기우는 산수경석의 상징, 즉 가부장의 자리와 신분상승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어와 가시화된 재현을 포기하고 얻은 센서등을 통한 몸-기호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는 생존 신호 정도에 국한되며 계급의식이나 체제균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떤 면에서 <기생충>은 오마주한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와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 보다도 퇴행적이다. <하녀>에서 하녀 명숙(이은심)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가족에 불길함을 불어넣고 그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인지를 폭로하게 만들며 마지막까지도 그 불온함을 거두지 않는다. <설국열차>는 미미하지만 체제 바깥으로의 운동을 시도한다. 반면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은 계급 상징과 알레고리가 더 이상 정치적 언어로서 작동하지 않는 재현의 난국을 회피하기 위해 하층계급을 자연화하며 생존만이 겨우 가능한 방공호로 추락시킨다. 의미의 무게를 만들고 물질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들은 몸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급의식은 개별 신체가 구분되지 않는 자연적이고 비체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가능하고 그마저도 지속되지 못한다. <기생충>은 결국 계급화된 얼굴을 재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설국열차>에서 '멈춤'이라는 다른 속도를 상상했던 것처럼, 수직 사다리를 흔들어 놓는, 전혀 다른 계급을 창안하고 호출해야 하는 것 아닐까?
본 게재 원고는,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누가 작년 최고의 작품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는가. <기생충>은 역대 한국 영화 매출액 1위를 달성함은 물론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을 받아내며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기생충>은 개봉 이후 흑백판으로도 다시 상영하며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코로나로 영화관을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흑백판을 올레TV나 LG 유플러스 TV에서 상영하여 집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생충>은 ‘계급투쟁’을 다룬 영화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잘 바라본다면 모든 인물에게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계급이 나눠져 있는 탓에 여러 사건이 나타난다. 사업에 도전했지만 계속해서 실패를 경험한 아버지 김기택(송강호),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어머니 박충숙(장혜진), 명문대에 지망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장남 김기우(최우식), 미대 지망생인 장녀 김기정(박소담). 이 가족은 모두 백수이기에 윗집, 카페의 무료 와이파이를 빌려 쓰고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저택에 살던 박 사장(이선균)의 집으로 네 명의 가족들이 모두 취직하게 된다.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집에서 일하면서 팬티 사건을 꾸며내거나 자잘한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사장 가족은 아들인 다송의 생일을 기념하여 캠핑을 떠나게 된다.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에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집을 자신의 집인 마냥 들어앉고 쓰게 된다. 그렇게 여유롭게 행복한 분위기를 만끽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뜬금 없이 초인종이 울리게 된다. 충숙은 인터폰으로 예전에 쫓겨났던 가정부 문광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문광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 준 충숙은 집 지하실로 내려가 나오지 않는 문광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광과 그의 남편이 몰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기택 가족은 문광에 의해서 자신들이 박 사장의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박 사장에게 알려질 위기에 처한다. 서로 협박을 계속해가며 심각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위기는 두 가족이 일자리를 걸고 싸우는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박 사장이 기택에게 죽게 됨으로써 끝이 난다. 누가 이러한 뜻밖의 전개를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박 사장의 죽음은 여러 사람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도대체 왜 박 사장이 죽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기택이 박 사장을 갑자기 죽인 전개는 모든 관객들에게 이들에게 충격적인 전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전개도 쓸데없이 나온 전개는 아닐 것이다.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인 것은 자살 행위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택의 행동은 민감하던 기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고 그 방아쇠가 당겨져 박 사장에게 향했다는 추측들이 많다. 하지만 기생충이던 기택이 숙주인 박 사장을 죽인 행위는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기생충은 숙주와 공생관계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자살 행위가 된 것이다. 숙주가 죽었으므로 기생충인 기택이 이제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또 다른 숙주를 찾아서 기생하는 것이다. 결국에 결말에서의 기택은 독일인이라는 숙주에 기생한다. <기생충>의 결말은 배드 엔딩? <기생충>에서는 기택 가족이 문광을 몰아내고 취직하는 듯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이야기나 박 사장 가족이라는 숙주 하나에 여러 기생충끼리 다투면서 자신의 숙주를 차지하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3막 구조를 취하는 영화로 이야기의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구분이 용이하다. 부정과 긍정이 변하는 장면을 쉽게 나타내어 상황이 변화함을 쉽게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이 관객들의 몰입도를 더욱 더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기생충>의 결말은 어떠한 영화보다도 더 절망적이었다. 봉준호의 이전 작품들인 <괴물>이나 <설국열차>도 절망적인 결말로 끝난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생충>은 그러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엔딩을 보여줬다. <괴물>에서는 박강두가 딸 현서를 잃었지만 덕분에 살아남은 세주를 양아들로 입양하고 다시 매점을 운영하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설국열차>에서는 비록 거의 모든 인물들이 죽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열린 결말로 해피 엔딩이라고 말했고 요나와 티미는 열차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러한 것 하나 없이 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이다. <설국열차>나 <괴물>의 주인공들은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생충>은 주인공들이 가해자라는 점에서 <괴물>이나 <설국열차>보다 더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두 가족을 너그럽게 받아줘 취직 시켜주고 아무 잘못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박 사장 가족은 믿었던 두 가족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렸다. 이렇게 거의 모든 인물이 피해를 봤고 모두 행복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불행하게 끝나버렸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절망적인 영화는 잘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생충> 속 계급투쟁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간에 심각하게 벌어진 차이뿐만이 아닌 두 가족, 두 기생충 사이의 계급투쟁도 담겨 있다. 결국에는 한 기생충이 다른 기생충을 몰아내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문광 가족은 전멸했고 다른 기생충인 기택 가족은 세 명이서 살아남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가난한 자들은 의외로 똑같은 가난한 자들을 적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생충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숙주처럼 부유한 사람은 매우 쿨하게 그들을 잘 받아주지만 가난한 기생충들은 항상 자신의 숙주를 차지하려는 다른 기생충들을 적대하는 것을 보아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기생충> 냄새의 의미 기생충 속 냄새의 의미에 대해선 봉준호 감독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냄새는 빈부격차를 확실히 보여주는 장치로 사람의 현실과 처지를 잘 보여주고 지켜야 할 인간의 예의가 붕괴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도 부유한 박 사장의 냄새와 기택의 냄새의 차이는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냄새가 언급되는 많은 장면 속에서 모든 이들의 빈부격차를 알려준다. 봉준호의 <기생충>, 영화계를 뒤흔들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달한 봉준호의 작품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이외에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초로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영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을 수상하고 한국 최초 세자르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수상의 위업을 달성하여 한류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기생충은 스토리나 연출만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 아니다. ‘제시카 외동딸’ 버전 독도는 우리 땅, 기택의 명대사들을 수도 없이 뽑아내어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이러한 <기생충>은 여전히 전세계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처음 상영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봉준호와 <기생충>은 더욱 더 언급되며 계속해서 영화계를 상징하는 영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는 작품을 쓰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닌 것만큼 앞으로도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도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