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위를 달리는 이층버스
- 감독
- 박광우
사진: “ 복합 장애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혈육 또는 이웃들과 별 이질감이나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20대에는 몸이 불편한 학우들의 활동 보조도 해보았다. 30대 이후, 장기 입원을 하거나 중병을 앓는 가족의 간병도 해보았다. 돌이켜 보면 삐거덕거리고 비틀대고 휘청이는 다양한 몸들과의 여러 활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활동들이 돌봄이란 단어로 일원화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활동 보조를 할 때도 돌봄이나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못했다. 그야말로 보조였고, 치료를 받는 이의 간병인이었으며, 집이 필요한 고양이와 공간을 나눠 썼을 뿐이다. 모두 돌봄으로 환원할 수 없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돌봄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 영국의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부터 배리어프리 상영을 제안받았다. 우리의 영상이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해 흔쾌히 허락했다. 상영일에 모니터를 가리고 사운드만 키운 채 영상을 청취했다. 영상의 사운드와 함께 누군가 장면 하나하나를 문장으로 읊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미 수십 번도 더 보아왔던 영상을 오직 사운드에 의존해 각 장면을 떠올리며 관람했다. 그때 함께 했던 시각장애인들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렇게 듣는 관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라는 관객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우리 안의 장벽(barrier) 하나가 허물어진(free) 셈이다. 그때서야 ‘배리어프리’가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장치임을 알게 됐다. <복합 장애> 포스터 (사진: “ Multi-Handicapped ”, IMDb)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 복합 장애 >(1986)를 보는 내내 몇 년 전 배리어프리 상영회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의 해방감이 상기되었다. 물론 이 영화에는 감독이 의도한 인터뷰나 설명 같은 건 전혀 없다. 헬렌 켈러 학교란 곳에 재학 중인 감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으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신체 언어와 공간 소음이 전부다. 게다가 영화 속 복합장애인들이 주고받는 고요한 수어 이미지와 그들의 신체가 외부 자극에 의한 감각을 다스리기 위해 내는 자기 자극음은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이다. 생각해보면 수어와 점자는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배우지 않아 모르는 언어인데, 복합 장애를 단순히 잘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몸의 어느 기관이나 감각의 결핍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외부 자극이 과도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소 괴성처럼 지르는 소리를 내거나(자기 자극음), 상대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하는(반향어) 등, 매우 적극적으로 신호를 내보낸다. 복합장애인들의 세계에서 비장애인들이 맞닥뜨리게 된 장벽(barrier)에 대해 감독은 굳이 해석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교감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 각자가 마주한 장벽을(barrier) 허무는(free) 것은 관객 본인의 몫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고 감독의 카메라 워킹을 따라가야 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복합장애인들의 교육 활동에 어떠한 서사도 부여하지 않는다. 가령 학생들이 수업을 받거나 선생님들이 커리큘럼을 고민하는 과정은 문학으로 치면 묘사와 대사로만 이뤄진 씬들이 교차편집되어 있을 뿐이다. 매일 매시간 학생들의 수업 내용이 달라지듯이 영화 또한 다양한 장애를 지닌 여러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교육 활동의 나열만으로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수평적으로 연쇄되는 각 씬 사이에 영상적 빈칸은 없다. 다만 비순차적으로 병치된 씬들이 축적될 때마다 마치 문단 사이의 여백 같은 것들이 생성된다. 그 빈칸을 채우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감독의 발걸음을 쫓으며 머리 속에서 자꾸 생성되는 공란을 채워나가다 보면 비로소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람 중인 ‘나’의 눈과 귀가 어디에 붙들렸는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장애를 둘러싼 세간의 윤리와 편견에 앞서 일단 잘 모르던 세계를 영화로나마 경험하고 감각해 보는 게 우선이다. 사진: “ 복합 장애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물론 이 영화를 통한 경험이 VR을 쓰고 여러 감각 장애를 체험해 보거나 복합장애인이 되어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은 시각과 청각이 어느 정도 온전하게 기능하는 자들이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처럼, 그의 카메라와 녹음기기처럼 관람객들은 오직 두 눈과 귀에 의지해 복합장애인들의 하루를 지켜봐야만 한다. 영화에서는 때때로 이 부분이 충돌을 일으킨다. 이 충돌이 윤리적인 문제로 확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감각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와이즈먼의 다소 차갑고 거침없는 카메라 워킹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뇌경화증을 앓고 있는 사촌동생을 만날 때마다 그가 내는 괴성과 자해에 가까울 만큼 세게 몸을 치는 행위가 어릴 땐 좀 무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와 급변하는 온도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우발적이라며 그를 제지하는데 급급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거나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 그의 몸은 더욱 크게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요동치는 감정이 그의 몸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감각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니면 평생 그를 무섭고 괴팍한 장애인으로만 여기며 기피했을 거다. 그를 마주할 때 교육받은 윤리의식과 사전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끊임없이 소통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좀 느리고, 광범위하며, 때때로 막막해 다소 시간이 걸릴 뿐이다. 헬렌 켈러 학교 학생들을 보며 사촌동생과의 소통의(혹은 소통불능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배움은 깜깜한 눈, 적막한 귀, 무성의 입 중 2개 이상이 교집합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가만히 있으려 해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상한 소리가 삐져나오는 몸으로는 수건 하나 접는 일조차 쉽지 않다. 비장애인들이 너무도 익숙하고 쉽게 해내는 모든 일들을 이들은 매우 느린 속도로 배우고 익히며 각자의 고비를 꾸역꾸역 넘어서야 그나마(학교와 선생님들의 교육이 지향하는) 사회화가 가능하다. 그 배움에 나이와 단계에 따라 자동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일관된 커리큘럼은 없다. 시계를 읽지 못하는 학생, 이름과 주소를 겨우 읽어내는 학생, 상대의 수어를 직접 만져야 대화가 되는 학생 등. 헬렌 켈러 학교라는 하나의 교육기관 안에서 작동되는 교육 과정은 온전히 학생들의 신체 상태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수어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혼자서 몸을 일으켜 밥을 먹는 것조차 쉽지 않다. 때문에 학생들 각자의 배움과 앎의 과정에 학년, 과목 등 시스템에서 정한 용어를 붙이기가 어려워 보인다. 어느 정도의 사회화와 점자, 수어 등 기본 언어도구를 익힌 뒤 그들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한 교육을 받지만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복합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에 진학 후 사회 운동가가 되었던 기적의 헬렌 켈러는 영화 속 복합장애인들이 재학 중인 학교 기관으로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영화 속 선생님들은 수돗가에서 짐승처럼 날뛰던 7세의 헬렌 켈러를 헌신적으로 붙잡고 그녀의 손에 끝내 “WATER”란 글자를 새겨 무지를 깨우쳐준 설리번 선생처럼 할 수 없다. 그들은 헬렌 켈러 학교에 재직 중인 피고용인이다. 교육 제도와 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받는 수업과 생활지도 또한 학교의 예산안과 지침 하에 시행된다. 그들이 소속된 교육기관의 목적은 헬렌 켈러의 기적이 아니다. 복합 장애 학생들은 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장차 직업을 구해 사회인으로서 기능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교육 시스템의 고리가 느슨해질 때가 있다. 식사 후 휴식 시간이다. 휴게 공간의 티브이가 켜지고 아이들과 선생님들 각자 편한 자세로 앉아 쉰다. 교육의 공백 속에서 아이들은 몸을 뱅글뱅글 돌리거나 반복적 입소리를 내고, 목적 없이 뛰어다닌다. 신기한 건 앞이 잘 안보이고 몸의 제어가 힘든 상황에서도 부딪치지 않게 서로의 간극을 조율해 나가기도 한다. 이때 허밍음 혹은 가스펠 같은 나지막한 한 선생님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One more river to go”로 시작되는 노래다. 가사는 ‘건너야 할 강’의 반복이다. 우선 ‘내’가 건너야 하고, ‘그녀’가 건너야 한다. 마치 선생님 자신과 그녀의 학생들을 위한 노래 같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느리고 더뎌 힘든 교육 활동이 일단락된 순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눈앞의 강이었던 배움 하나가 또 그렇게 실현된 셈이다. 영화는 헬렌 켈러 학교의 하루를 넘어 또 다른 하루인 주일로 넘어간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 하에 교회에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아름다움이란 말이 오직 신으로 일원화된 곳에 놓여 있다. 아이들의 수어는 설교와 찬송가의 내용을 번역하는 수단이 되고 성경과 신에 대한 의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잘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몸이 흔들리며 반향어를 내뱉어도 돌아오는 건 신을 향한 찬양과 성경구절뿐이다. 교회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던 무수한 몸짓, 소리, 그들의 언어가 모두 무력화 되어버린 것 같다. 설교자는 아이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내용만 전달한다. 모든 것들이 교회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다. 무진형제(미디어 작가 그룹) l 무진형제는 3명으로 구성된 작가 그룹이다. 세간의 지배적인 가치와 믿음체계로 굳어져버린 것들을(眞) 의심하고 해체시켜(無) 동시대의 ‘인간-환경 시스템’을 재구성한다. <삼속(三俗)의 담(談)>, <궤적(櫃迹)-기술된 선인(善人)들> 등을 작업했다.
고(故) 이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보라>는 제조공장에서 현장보건관리를 받는 과정을 차근차근 기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은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되어 있다. 영화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관점을 따라가기보다는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의 <병원>(1970), <내셔널 갤러리>(2014), <시티홀>(2020) 등을 만든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처럼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을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인터뷰 장면이 서너 차례 등장하지만 제작진이 직접적으로 사건에 참여하거나 등장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상황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스타일적으로도 거의 모든 장면에서 롱쇼트나 풀쇼트를 유지한다. 시스템에 관계하는 인간과 비인간 요소 모두를 고르게 관찰하려는, 휴머니즘적이지 않은 태도는 역설적으로 노동 시스템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삶의 고통을 지근거리에서 감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 거리는 피부 위의 보라색 멍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은 사용되지 않지만 시스템 내부와 고통의 지속시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비유적 혹은 사후적 클로즈업을 체험하게 된다. 시스템 관찰은 당연하게도 관리 및 운영 체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다양한 역할과 위치의 사람들을 포함한다. 노동자,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회사 관리직과 사원, 산업의학 전문의와 연구자, 산업안전보건감독관, 노조활동가, 관련 부서 행정 공무원 등이 그들이다. 영화는 사이사이에 1980년대 초에 석면을 다루는 공장에서 단 2년 일했을 뿐인데도 그 여파로 평생 폐병을 앓고 있는 나이 든 노동자의 인터뷰와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주관한 한국타이어공장 역학조사 보고회를 삽입한다. 짧은 인터뷰에도 숨 쉬기 어려워하는 석면공장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 사망사례와 공장의 유해환경 간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하는 보고회의 배치는 인과적이고 논리적인 설명 없이도 산업재해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석면처럼 오래전에는 그 유해성이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거나 난청이나 근골격계 통증처럼 장기간에 걸쳐 유해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병증의 문제가 있다. 노동은 반복과 지속시간 속에 있는 것이기에 산업보건관리는 제조과정뿐 아니라 그의 일상과 일생을 심도 있게 추적관찰 해야 한다. 술과 담배는 강도 높은 긴 시간의 노동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저 몇 개의 문답으로 끝난다. 보건관리 전문의가 작업현장에서 노동 패턴과 유해환경을 관찰하며 애쓰지만 하루 몇 시간 관찰로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강현 감독은 공장 전경을 보여줄 때는 롱쇼트로, 안전보건 감독관과 보건관리 전문의들이 노동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풀쇼트나 미디엄 쇼트로 거리를 두고 다큐멘터리를 진행한다. 심지어 철골이 노출되어 있는 공장은 때로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포착되기도 한다. 거기에 고통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노동자들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청각적인 클로즈업이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즉흥적으로 붐마이크와 휴대용 녹음기를 들이댔던 전형적인 미국 다이렉트 시네마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대화를 나눌 때면 붐마이크가 한 프레임 안에 늘 등장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무선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붐마이크를 사용해 상황의 대화를 포착한다. 그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갑자기 대화가 진행되어도 매우 선명하게 들린다. 공장의 소음들과 함께. 대부분의 경우 롱쇼트로 멀리서 포착하기 때문에 붐마이크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를 애써 치우거나 지우지 않는다. 노동자들과 산업관리 감독관이 나누는 대화, 관리직원과 보건 전문의가 나누는 대화들은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행위자들이지만 또한 그것에 제약받는 이들임을 알게 해준다. 청각적 클로즈업뿐 아니라 친밀성에 있어서도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클로즈업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중반 즈음에 노동자들이 보건관리를 위해 검사받는 자신들의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강당에서 함께 감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동자들은 관객으로서 영화화된 자신의 신체를 경험한다. 여기서 관객은 이미 앞서 해당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프레임 안의 프레임으로서 반복해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관객으로 경험하는 것을 함께 보게 된다. 따라서 이 장면은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속 스크린에서 난청이 있는 노동자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의사가 묻자 나이든 노동자는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당사자를 비롯해 다른 노동자들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사실 정보 차원에서 이 장면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장면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당사자에게도 반복이다. 관객은 이미 앞서 본 장면이고, 당사자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이 행한 것을 스크린 상에서 재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어떤 면에서 모든 영화 상영은 곧 ‘재연(re-enactment)’이며, 더 중요하게는 자신들의 신체가 어떻게 영화의 질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붐마이크의 지속적 등장이 영화 만들기라는 노동을 각인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여러 영화사의 중요한 운동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신체와 일상을 영화의 질료로 내어준 오데사, 키이우, 하르키우, 모스크바의 시민들을 영화 생산과정에서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오프닝과 엔딩에 관객과 극장상영 과정 자체를 포함시킨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의 실천 그리고 그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영화운동을 계승했던 제3 영화운동의 순간들 말이다. 특히 제3 영화 운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 쿠바에서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자(Julio García Espinosa)는 ‘미완의 영화(imperfect cinema)’를 주장한 바 있다. 1960년대 탈식민적인 정치적 영화를 주장했던 남미의 영화감독과 이론가들은 형식적으로 보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제1 영화로, 미학적으로 혁신적이고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던 유럽 영화를 제2 영화로, 탈식민적인 계급의식을 갖고 미학적 혁신을 꿈꾸는 영화를 제3 영화로 규정한다. 제3 영화의 변증법적인 실천 개념 중 하나로 주장된 ‘미완의 영화’는 텍스트 내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영화를 뜻한다. 형식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열려있는 영화는 언제나 상영과 그 이후의 토론을 통해 ‘매번’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언제나 과정 중에 있다. 각기 다른 관객들은 동일한 영화를 매번 다르게 감상한다. 재연이 기원을 보존하려 하지만 동시에 반복을 통해 그 기원의 완벽한 보존이 불가능함을 제시하며 반복된 수행의 단독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영화’ 개념에서 영화 상영은 매순간 반복될 때마다 참여자들이 그 상영의 의미를 결정짓고 따라서 반복된 상영은 단독성을 갖고 개별적 사건으로 의미화 된다. 독립영화 혹은 작은 영화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었던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제3 영화의 선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제작되었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해서 구성되었고, 관객 역시 노동자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었다. 대중을 타겟 관객으로 할 때조차도 일차적으로 영화를 시사하고 그 영화의 가치를 의미화하는 이들은 노동자 당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신체를 화면에서 보는 것이 익숙했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대부분 자신을 활동가의 위치에 놓았고, 자신들이 스크린에 옮긴 이미지의 주체를 영화생산자-관객의 위치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윤리적 태도라 믿었다. <보라>에서 약 50초 동안 지속되는 이 롱테이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제는 노동 현장을 다룬 많은 다큐멘터리들 역시 노동자 공동체에게만 소구되는 것을 넘어 일반 대중으로 관객층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가 화이트박스라 불리는 미술관 같은 극장 외의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되면서 새로운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 한편, 과거에 영상을 함께 공동제작하고 감상했던 노동자들의 공동체 혹은 노동조합은 예전만큼 공고하지 못하다. 그러한 가운데 삽입된 이 장면은 과거 노동 현장을 다룬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들이 주요하게 상영되던 방식을 재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장면은 한국 노동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쓰기이자 관객층 변화에 대한 논평이 된다. 이 장면은 또한 개인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인 < 설리반의 여행 >(프레스턴 스터지스, 1941)의 유명한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 <설리반의 여행>에서 유명한 코미디 영화감독인 존 설리반은 자신의 영화경력을 반성하며 가벼운 코미디보다는 현 시대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민중의 모습을 그린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돌이로 위장해 가난을 체험하려 하지만 줄곧 실패한다. 그러다 신분증을 빼앗기고 싸움에 휘말려 법정에서 6년의 중노동을 구형받는다. 그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하층민이 된다. 설리반은 강제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위한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고, 수감자들이 고된 노동 후 디즈니 만화 <장난기 많은 플루토>(1934)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깨달음을 얻은 설리반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감독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코미디를 만들며 꿈의 공장인 고전 할리우드 시스템을 재승인한다. 하지만 설리번은 <플루토>가 코미디라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 영화가 신체극이었다는 사실이다. 슬랩스틱의 과장된 그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신체 사용은 몸을 쓰는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영화는 누구에게 말 거는가? 이 질문은 노동 영화에서 늘 중요한 쟁점이었다. <보라>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하는 몸’을 검사받는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은 <설리반의 여행>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며 즐거워하는 노동자들의 장면과 어떤 면에선 중첩된다.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지루하고 음울할 것으로만 상정하는 것 역시 편견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고통을 담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편견이다. 노동하는 신체의 전시, ‘보라(고통의 색)’의 스펙터클은 그들 자신의 신체의 고통을 감각하게 하면서도 즐겁게 만든다. ‘보라’는 단순히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산업재해와 관련해 성찰하고 고민하고 행동해야할 지점이며 반복된 일상이다. 재연(재상영)을 통해 과거 사건의 당사자이자 목격자가 되는 노동자-관객, 그리고 그 목격자들을 바라보는 스크린 밖의 관객은 ‘보라’를 신체적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에 대해 성찰한다. 동문서답의 대답이 유발하는 웃음은 소음과 먼지, 유해화학물질 그리고 반복된 팔과 어깨의 사용으로 인한 병증과 고통, 즉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을 경유한다. <보라>는 50인 이상 규모의 공장 노동자들로 시작해, 네트워크 서버 관리자, 딸기 농장의 노동자들, 취미 사진촬영이 전문가 수준에 이른 이들까지 오늘날 자본주의 노동의 양태를 기록한다. 영화는 농부와 제조공장 노동자들의 육체노동을 전시하고 가상 디지털 네트워크 역시 노동자들의 밤샘 노동을 통해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디지털 정보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물질 노동이 비물질 노동을 떠받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의 형태는 진화론적이거나 단절적인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주류 산업이 서비스, 금융, 디지털 플랫폼 같은 비물질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서 근대적 형태의 공장 노동, 농장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디지털 산업에서도 노동자 없이 컴퓨터와 가상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의 형태들은 여전히 포스트포디즘 체제하에서도 공존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사진 취미처럼 놀이와 노동이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생산양식까지 치밀하게 최신의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감독은 여전히 지속되는 노동자들의 고통 받는 몸을 스크린에 가장 중요한 스펙터클로 표현한다. 이러한 강조가 과거의 생산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오늘날 지워지고 비가시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고유한 노동자의 몸을 역사 속에 기입하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안간힘이다.”
2000년 | 태원엔터테인먼트 감독: 김영준 | 원작: 김혜린 | 각본: 정용기 김영준 | 제작: 정태원 | 촬영: 변희성 김태환 | 미술: 오상만 | 음악: 김준선 CAST 신하: 신현준 | 설리: 김희선 | 준광: 정진영 | 라이: 장동직 | 타루가: 김학철 | 곽정: 기주봉 | 사준: 서태화 | 창룡: 이한갈 | 아신: 김수로 | 아리수: 류현경 < 쉬리 >( 강제규 , 1999)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자본’입니다. 충무로에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예전엔 시도되지 못했던 프로젝트들이 등장합니다. < 비천무 >는 당시까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약 40억 원)를 들인 영화였습니다. 김혜린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 팬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했고, 특히 중국 로케이션을 개척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천무>는 김혜린의 만화를 원작으로 김영준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운명을 초월한 사랑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모습을 무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역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죠. 표면적으로는 고려 유민의 후예 진하, 몽고 장군과 한족 첩의 서녀인 설리, 한족 권문 세가의 자손 준광 사이에 흐르는 숙명적 사랑과 비극적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그와 함께 14세기 원나라 말엽을 살아간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욕망, 애증, 배신, 갈등 등을 비장미 있게 담아냅니다. 황포강의 서늘한 바람을 등지고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600킬로미터에 있는 횡점에 청명상하도 세트장이 있습니다. 버스로 7시간 정도 되는 거리죠. 이곳은 120여 채의 건물, 6량의 다리, 9개의 부두, 6척의 배가 있는 당대 중국 최대 규모의 세트장이었는데요, 북송 시기의 생활상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 있었습니다. 촬영이 없을 때는 관광지로 이용됩니다. 원수의 손에 모든 것을 잃은 뒤 분노의 화신 자하랑으로 다시 태어난 진하 역의 신현준입니다. 자하랑은 ‘자줏빛 이리’라는 뜻이죠. 그는 이후 설리와 재회하지만, 그들 사이엔 이미 세월의 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눈 설(雪) 배꽃 리(梨)’, 설리 역을 맡은 김희선의 모습입니다. 순수함을 대변하는 몽고의 여인 설리는 고려 유민의 아들 진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합니다. 권문세가의 아들 준광 역의 정진영입니다.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잃어야 하는 슬픔으로 분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진하와 준광은 강호의 의리를 나눈 친구지만 설리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두고 갈등에 사로잡힙니다. 현장 공개 신에서 설리는 아들에게 무술을 가르칩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독감에 걸린 김희선은 액션 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번 재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신현준과 김영준 감독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호흡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은 종종 닮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는 후문입니다. 스태프들은 넓은 세트장에서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언어 문제가 가장 중요했는데요, 한국 스태프들이 기초적인 중국어를 익히긴 했지만 때로는 한 장면을 정확히 설명하느라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제작비 40억 원은 당시까지 한국영화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가 중국 내 판권 구매를 담보로 42만 달러(약 5억 원) 상당의 현물 투자를 했습니다. <비천무>의 액션은 중국 무술의 ‘찌르기’의 현란한 기교와 일본 단칼 승부의 정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베기’와 ‘회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액션 신의 비중이 큰 <비천무> 현장에선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습니다. 무술감독 마위청은 <동방불패> 시리즈의 무술팀 일원이었으며, <모험왕>(1995)의 무술감독이었습니다. 진하를 엄호하는 열명의 무사 ‘철기십조’가 지붕 위를 날아다니듯 누비는 장면은 이<비천무>의 압권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크레인 2대에 열명의 배우가 나누어 매달리는 와이어 액션 기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세트로 준비한 기와지만 수십 장이 깨질 때는 제작진이 무척 긴장해야 했습니다. 철기십조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지붕에 떨어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 당시 김영준 감독은 촬영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