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이카루스
- 제작년도
- 2013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 ) 언제나 많은 이해자들에게 둘러싸여 일찍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 신지는 불우한 작가였다. 신작이 발표될 때마다 적지 않은 리뷰가 나오기는 했지만 정리된 작가론이라면 지금도 결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동서고금의 영화, 음악, 문학에 정통했던 예민한 비평가였기 때문에 아오야마 신지를 논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는 그 대상에 필적할 만큼의 지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골치 아픈 도전이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소설가나 연극 연출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음악가로서의 활동도 단순한 취미로서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다재다능함이 아오야마가 하는 일의 전모를 한층 보이기 어렵게 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오야마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 끝내 아오야마론을 쓰지 않은 태만한 영화비평가 중 한 명이었으며, 너무나도 이른 그의 죽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씻어낼 수가 없다. 구로사와 기요시, 만다 구니토시, 시오타 아키히코와 같은 현대 일본영화의 이름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릿쿄대학 출신이었지만 세대적으로 가장 아래 세대였던 아오야마는 일찍부터 학생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었던 ‘릿쿄 누벨바그’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거쳐 영화계에 진입하게 된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의 일본영화 산업은 크게 침체되었고, 신인 감독이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얻는 길은 이미 완전히 막혀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 같은 반전통적인 작가가 영화계 밖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혼란을 틈탄 것이었다. 이처럼 혼미한 시대에 새롭게 등장해 성행한 것이 OV(오리지널 비디오)라고 불리는, 처음부터 렌탈 비디오용으로 양산된 저예산 영화였으며, 또 시장 확대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시작한 BS(위성방송)였다. 그리고 아오야마는 실로 OV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독을 경험한 후,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유료 BS 방송국 WOWOW에서 < 헬프리스 >(1996)를 찍으며 본격적인 데뷔를 장식했다. 이런 형태로 시작된 아오야마의 행보는 영화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져가는 와중에 영화란 무엇인가를 매번 되묻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헬프리스>는 현장에 결집한 인재들의 면모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후의 아오야마의 작품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첫걸음이었다. 일단 당시 WOWOW 소속이었던 프로듀서 센토 다케노리가 있다. <헬프리스>는 센토가 시작한 프로젝트 'J·MOVIE·WARS'의 하나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매년 비교적 저예산인 영화 4, 5편을 한데 모아 제작, WOWOW에서 프리미어 방영 후 극장 개봉하는 프로젝트로 해를 거듭할수록 신인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데뷔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여러 편의 묶음 제작은 손익의 상쇄에도 용이했기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없는 시대에 이를 대체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의식했다는 점에 센토의 비범함이 있었다. 또 하나 센토가 일본영화 프로듀서로서 선구적이었던 것은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야에 넣고 있었던 점이었다. 가와세 나오미의 < 수자쿠 >(1997)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그 가장 두드러진 성과였다. 아오야마가 센토가 프로듀싱한 < 유레카 >(2000)로 칸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에큐메닉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센토의 전략에 힘입은 바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센토와 함께 결정적이었던 것은 촬영감독 다무라 마사키와의 만남이다. 다무라는 <산리즈카> 시리즈로 알려진 급진적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집단 오가와 프로덕션 출신으로, 극영화에 진출하고 난 후에도 파격적인 롱테이크로 세간에 놀라움을 안겨준 소마이 신지의 < 숀벤 라이더 >(1983) 등에서 특이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특징으로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높은 감응력과, 살아있는 공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시선의 철저한 비인칭성을 들 수 있다. <헬프리스>의 시작 부분에서 기타큐슈의 거리 풍경을 위에서 포착하고 이윽고 위태로운 진자운동을 시작하는 공중 촬영이라고 하는, 그 어떤 자의 시점으로도 결코 환원될 수 없는 마이클 스노우의 구조영화마저 연상시키는 카메라워크를 보면 그것은 명백해진다. 아오야마와 다무라는 이후에도 < 새드 배케이션 >(2007)까지 오랫동안 콤비를 이루게 되지만, 그 관계가 일관성 있게 서로 익숙한 채로 의존하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먼, 더없이 긴장 가득한 것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유레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웅대한 환경 속에 인물을 던져놓은 다음 시간을 두고 그 생태를 쫓는다는 방향성을 정한 뒤, <달의 사막>(2001)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스탠다드 사이즈를 통해 의도적으로 공간을 한정하고, <호숫가 살인사건>(2005)에서는 멀티카메라 시스템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다무라를 굳이 세컨드로 돌린 것이다. 다무라와의 결별 후에 찍은 < 도쿄공원 >(2011)과 마지막 감독작 < 구름 위에 살다 >(2020)에서 나타나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로의 현저한 관심의 이동은, 결코 스타일적인 후퇴 같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단한 자기 혁신 끝에 처음으로 획득한 것, 더할 수 없는 복잡함을 경험해봤던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단순함의 경지였다. 아오야마는 다니엘 슈미트가 일본에서 찍은 걸작 <쓰여진 얼굴>(1995)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가까이서 관찰한 슈미트와 촬영감독 르나토 베르타와의 관계성으로부터 다무라와의 공동작업으로 연결되는 무언가를 배웠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서, <유레카> 이후 거의 모든 아오야마 작품에서 녹음을 담당하고 있는 기쿠치 노부유키 또한 다무라와 마찬가지로 오가와 프로 출신이다.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는 자살 충동 바이러스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SF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005)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아오야마 작품에서의 음향은 종종 시각적인 영상과 길항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건 소리의 공간성을 중시하는 기쿠치의 공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헬프리스>는 내용 측면에서도 아오야마에게 있어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만든 <유레카>, <새드 배케이션>과 함께 ‘기타큐슈 사가’를 구성하게 된다. 개개의 작품 테두리를 넘어 공통적인 캐릭터가 오고 가면서 전체로서 큰 강과 같은 거대한 서사의 너울을 형성하는 사가라는 형식은 근대소설사에 있어서는 포크너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오야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포크너의 영향을 받은 나카가미 겐지이다(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겐지는 그에게서 유래한다). 고대로 이어지는 신화적인 땅 기슈에서 살아온 나카가미는 스스로가 피차별 부락 출신이라는 사실에 마주하여, 그 장소를 ‘골목(路地, Roji)’이라고 이름 붙이고 활황일 때부터 소멸 후까지를 사가로 그렸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나카가미의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는 <로지예: 나카가미 겐지가 남긴 필름>(2000)을 보면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오야마는 나카가미의 기슈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기타큐슈로 단순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 로지예 >에서 역시 기슈 태생의 영화작가 이즈치 기슈가 나카가미의 텍스트를 낭독할 때 과장된 기슈 사투리가 특징적이었던 것처럼, 기타큐슈 사투리의 거의 음악적일 정도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 아오야마에게는 중요했다.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규슈 이외의 사람이라면 전부를 알아듣는 것이 쉽지 않은, 조야함과 순정을 겸비한 듯한 기타큐슈 사투리의 독특한 가락은 들으면 들을수록 ‘일본어’라는 통합된 개념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 간다. 그리하여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에도 인접한 기타큐슈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말이 폴리포닉하게 교차하는 다의성을 가진 공간으로서 재정의되게 되었다. 그리고 <새드 배케이션>에서 가장 깊이 탐구된 이 성격이야말로, 나카가미가 ‘골목’이라는 허구에 진정으로 기대했던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또한 나카가미로부터 물려받은 짙은 정치성, 특히 천황제나 국가라고 하는 대문자 정치에 대한 강한 관심에 있어서는 동시대 작가들보다 오시마 나기사 같은 작가와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이미 늙어버린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하여 >(2001)에는 그러한 아오야마의 정치성이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표출돼 있다. 애초에 <헬프리스>에서도 남자들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황이 쇼와 천황의 죽음과 겹쳐져 있었다. 죽여야 할 아버지가 이미 없어졌다는 사실이 남자들을 기댈 곳 없는(helpless) 고아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처럼 아오야마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독창성은 천황제나 국가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이 자신의 육체를 흐르는 피의 문제로 여긴 점에 있었다(전전의 국가이데올로기에서 일본 국민은 천황의 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후 아오야마의 관심이 아버지 죽이기에서 여성적인 것의 탐구, 모성이라는 헤어날 수 없는 굴레의 속박으로 옮겨갔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드 배케이션>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아무리 아이가 발버둥질해도 모든 것을 미소와 함께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사랑임에 틀림 없다. 온갖 저항이 모성으로 인해 무력화되는 개미지옥 같은 나라, 일본――절망적으로 여겨지는 한편, 그 끝없는 포용력에 희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서게 되는 그 지점에서 ‘기타큐슈 사가’는 닫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오야마의 미국문화에 대한 경도도 그 자신을 흐르는 피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여성>(1966)의 고다르는 당시 파리 젊은이들을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아오야마는 자신에게 흐르는 피의 절반이 코카콜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평생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영화와 음악, 문학 속에서 자라나면서 현실 국가로서의 미국에게는 환멸할 수밖에 없었던 빔 벤더스를 ‘그를 논하는 것은 나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동지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1) 아오야마가 보기에 전후 일본에게 있어서 미국은 아무리 그곳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발버둥질해도 본질적인 종속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전술한 천황제와 같은 형식의 문제였다. 그런고로, 패전 직후 도쿄를 무대로 젊은 자매가 자신들이 사는 집을 미군 상대의 위안소로 하여 살아가는 <퇴폐자매>의 영화화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애석하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원작을 아라이 하루히코 등이 각색한 그 각본에는 “일본은 미국에 점령당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미국인의 몸을 점령해 주겠어”라는 대사가 포함돼 있었다. 2) 지금 와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기타큐슈 사가’뿐만 아니라 아오야마가 남긴 모든 일들이 열린 채로 있는 거대한 사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뒤에 남은 우리는 끝내 완결되지 않고 중단되어 버린 그것들을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라도 상관없이 자신의 피에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이 사가의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 후지이 진시: 일본의 영화평론가이며, 현재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입문: 현대 할리우드 영화 강의』(2008), 『되살아나는 소마이 신지』(2011), 『모리사키 아즈마 당 선언!』(2013) 등에 편저자로 관여했으며 『이와나미영화의 1억개의 프레임』(2012), 『에드워드 양 재고/재견』(2017),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2017),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2022)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1) 아오야마 신지, 『나의 영화를 발견했다』(われ映画を発見せり), 세이도샤, 2001, 142쪽. 2) <퇴폐자매>의 시나리오는 《영화예술》 480호(2022년)에 실려있다(96-121쪽). (원문) 青山真治、未完のサーガ 藤井仁子 常に多くの理解者に囲まれ、早くから国内外で高い評価を獲得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青山真治は不遇の作家だった。新作が発表されるたびに少なくないレビューが書かれはしたが、まとまった作家論となると決定的なものは今も存在しない。彼自身が古今東西の映画、音楽、文学に精通した鋭敏な批評家であったために、青山真治を論じることは、批評家にとっては対象と匹敵するだけの知性と感性を求められる厄介な挑戦だったのである。青山はまた小説家、舞台の演出家としても成功をおさめ、音楽家としての活動もたんなる趣味として片づけら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かった。そうした多才さが、青山の仕事の全貌をいっそう見えづらくした面もあろう。かくいう私も、青山といつでも連絡がとれる距離にいながらとうとう青山論を書かなかった怠惰な映画批評家の一人であり、あまりにも早すぎる彼の死を前に、忸怩たる思いを拭い去ることができない。 青山は黒沢清、万田邦敏、塩田明彦といった現代日本映画の名だたる作家たちと同じ立教大学の出身だったが、世代的にいちばん下だった青山は、早くから学生映画の世界で評判をとっていた「立教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先輩たちとはいささか異なる経路をたどって映画界に参入することになる。バブル経済の崩壊後にあたる1990年代の日本映画は産業としては大いに低迷し、新人監督がメジャー・スタジオで仕事を得る道はもはや完全に閉ざされていた。北野武のような反伝統的な作家が映画界の外から突然出現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そうした混乱に乗じてのことにすぎない。この混迷の時代に新しく登場して盛んになったのが、OV(オリジナル・ビデオ)と呼ばれる初めからレンタル・ビデオ用に量産された低予算映画であり、また、市場拡大のためにオリジナル・コンテンツを必要としはじめていたBS(衛星放送)であった。そして青山は、まさにOVの世界で初めて監督を経験した後、開局間もない有料BS放送局WOWOWで『Helpless』(1996)を撮り、本格的なデビューを飾っ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かたちで開始された青山の歩みは、映画の定義がますますあいまいになっていくなかで、映画とは何かをそのつど問いなおすものにならざるをえなかった。 『Helpless』は、現場に結集した人材の点でも内容の点でも、その後の青山作品を規定する決定的な第一歩であった。まず、当時はWOWOWに所属していたプロデューサーの仙頭武則。『Helpless』は仙頭が立ちあげたプロジェクト、「J・MOVIE・WARS」の一本として製作されたが、これは毎年、比較的低予算の映画を4、5本まとめて製作し、WOWOWでのプレミア放映後に劇場公開するというもので、年を追うごとに新人監督に積極的にデビューの場を提供す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数本を束ねての製作は損益の相殺を容易にするもので、スタジオ・システムなき時代にそれに代わるシステムを構築しようと意識していた点に仙頭の非凡さがあった。もう一つ、仙頭が日本映画の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先駆的だったのは、早くから海外進出を視野に入れていたことだ。河瀬直美の『萌の朱雀』(1997)がカンヌ国際映画祭で受賞したのはそのもっとも目立った成果だった。青山が仙頭のプロデュースした『EUREKA』(2000)でカンヌの国際批評家連盟賞とエキュメニック賞を受賞するなど、フランスを中心に世界的な名声を得ていくことになるのは、この仙頭の戦略によるところが大きかったといえる。 青山にとって仙頭と並んで決定的だったのは、撮影の田村正毅(のちに改名してたむらまさき)との出逢いである。田村は『三里塚』シリーズで知られる先鋭的な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製作集団、小川プロダクションの出身で、劇映画に進出してからも、型破りな長回しで世間の度肝を抜いた相米慎二の『ションベン・ライダー』(1983)などで特異な個性を発揮していた。その特徴としては、キャメラの前で生起しつつある出来事に対する異常なまでの感応力の高さと、生きた空間を捉えるキャメラの視線の徹底的な非人称性を挙げることができる。『Helpless』の冒頭で北九州の街並みを真上から捉え、やがて危うい振り子運動を始める空撮の、何者の視点にも決して還元することのできないマイケル・スノウの構造映画さえ思わせるキャメラワークを見れば、そのことはあきらかだろう。青山と田村はその後も『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2007)まで長くコンビを組むことになるが、その関係が一貫して馴れあいからはほど遠い、きわめて緊張に富むものだった点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シネマスコープの『EUREKA』で人間を圧倒する雄大な環境のなかに人物を放ち、その生態を時間をかけて追うという方向性を極めた後、『月の砂漠』(2001)ではすでに滅びかけていたスタンダード・サイズに空間を意図的に限定し、『レイクサイド マーダーケース』(2005)ではマルチキャメラを採用したばかりか、たむらをあえてセカンドに回したのである。たむらとの訣別後に撮られた『東京公園』(2011)と最後の監督作『空に住む』(2020)に顕著な俳優たちの演技アンサンブルへの関心の移動は、断じてスタイル的な後退などではなく、こうした絶えざる自己革新の末に初めて獲得されたもの、複雑さを極めた者だけが到達することのできる単純さの境地であった。青山はダニエル・シュミットが日本で撮った傑作『書かれた顔』(The Written Face、1995)で助監督をつとめた経験を持つが、このとき間近で観察したシュミットと撮影監督レナート・ベルタとの関係性から、たむらとの共同作業に通ずる何かを学びとった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ちなみに、『EUREKA』以降のほぼすべての青山作品で録音を担当している菊池信之は、たむらと同様、小川プロの出身である。人を自殺させるウイルスの蔓延を音楽によって癒すSF『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2005)にあきらかなように、青山作品にとって音響はしばしば視覚的な映像と拮抗するほど重要なものだったが、それも音の空間性を重視する菊池の貢献あってのことだっただろう。 先述したように、『Helpless』は内容の点でも青山にとっては決定的だった。この作品は、のちに撮られる『EUREKA』、『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とともに「北九州サーガ」を構成することになる。個々の作品の枠を超えて共通するキャラクターが行きかい、全体として大河のような巨大な物語のうねりをかたちづくるサーガの形式は、近代小説史にあってはフォークナーによるものが広く知られているが、青山への直接の影響源となったのは、そのフォークナーの影響を受けた中上健次である(浅野忠信演じる主人公の役名、健次は彼に由来する)。古代につながる神話的な土地、紀州に生を享けた中上は、自らが被差別部落の出身である事実と向きあい、その場所を「路地」と名づけて活況から消滅後までをサーガとして描きつづけた。青山にとって中上の影響がいかに絶大であったかは『路地へ 中上健次が残したフィルム』(2000)を見ればあきらかだろうが、青山は中上にとっての紀州をただたんに自分の生まれ故郷である北九州に置き換えたわけではない。『路地へ』でやはり紀州生まれの映画作家、井土紀州が中上のテクストを朗読する際の誇張された紀州訛りが特徴的であったように、北九州弁のほとんど音楽的な魅力を再発見することにつながった点が青山にとっては重要だった。九州以外の者には日本人観客でもそのすべてを聴きと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ものの、北九州弁の粗野と純情を兼ね備えたような独特な調子は、聴くほどに「日本語」という統合された概念を不確かなものへと変えていく。こうして、海を挟んで朝鮮半島にも面する北九州の土地は、多様な人と言葉がポリフォニックに交差する、多義性の空間として再定義されることとなった。そして、『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もっとも深く探究されたこの性格こそは、中上が「路地」という虚構に真に期待していたものでもあったのである。 青山はまた中上譲りの深い政治性、ことに天皇制や国家といった大文字の政治への強い関心において、同時代の作家よりも大島渚のような作家とはるかに近い場所にいた。『すでに老いた彼女のすべてについては語らぬために』(2001)には、そうした青山の政治性がもっとも直接的なかたちで表出されている。そもそも『Helpless』では、男たちをさいなむ父の不在という状況が昭和天皇の死と重ねられていた。殺すべき父はもはや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事実が、男たちを寄る辺のない(helpless)孤児へと変貌させ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青山の政治面での独創性は、天皇制や国家権力というものを、自らの肉体を否定しようもなく流れる血の問題として考えた点にあった(戦前の国家イデオロギーにおいて日本国民は天皇の赤子と位置づけられていた)。その後の青山の関心が、父殺しから女性的なものの探究、母性による骨がらみの呪縛へと移っていったことは、この文脈において捉える必要がある。『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真に恐ろしいのは、どれほど子があがいてもいっさいを微笑みとともに受けとめてしまう母の「愛」にほかならない。あらゆる抵抗が母性によってすべて骨抜きにされてしまう蟻地獄のような国、日本――絶望的に思える一方で、その底なしの包容力に希望を探りあてるしかないという認識に立ったところで「北九州サーガ」は閉じられるのだ。 このように考えることで、青山によるアメリカ文化への傾倒ぶりも、彼自身を流れる血の問題であったとわかるだろう。『男性・女性』(Masculin, féminin、1966)のゴダールは、当時のパリの若者たちを「マルクスとコカ・コーラの子供たち」と呼んだが、その伝に倣えば、青山は自分に流れる血の半分がコカ・コーラでできているという事実から生涯眼をそむけることがなかった。だからこそ、自分と同じようにアメリカの映画と音楽と文学で育ちながら、現実の国としてのアメリカには幻滅するしかなかったヴィム・ヴェンダースのことを、「その人を論じることが自分について語ることに等しい」ほど重要な同志と感じていたのである 。青山の見るところ、戦後日本にとってのアメリカは、どれほどそこから独立しようともがいても本質的な従属関係からは脱け出せないという意味で、先述した天皇制と同型の問題であった。それゆえに、敗戦直後の東京を舞台に若い姉妹が自宅を米兵相手の慰安所にして生きぬく『退廃姉妹』の映画化が実現しなかったことが惜しまれてならないのだ。島田雅彦の原作を荒井晴彦らが脚色したその脚本には、「日本はアメリカに占領されたけど、これからはあたしたちがアメリカ人の体を占領してやるのよ」という台詞が含まれていた 。 今、あらためて思うのは、「北九州サーガ」のみならず、青山の遺したすべての仕事が開かれた巨大なサーガをな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がついに完結することなく中断されてしまったことを、後に残されたわれわれは糧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そこで扱われている事柄がいくらかでも自分自身の血に流れていると感じる者なら誰一人、このサーガの登場人物である事実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2001년 | 마술피리 감독, 시나리오: 정재은 | 제작: 오기민 | 촬영: 최영환 | 프로덕션 디자인: 김진철 | 음악: 조성우 CAST 태희: 배두나 | 혜주: 이요원 | 지영: 옥지영 | 비류: 이은실 | 온조: 이은주 2000년대 초 한국영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의외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의외’라는 건 산업적인 의미입니다. 요즘 같으면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 안에서 제작될 법한 아이템이 메인 스트림 안에서도 제작되곤 했다는 거죠. < 고양이를 부탁해 >가 그렇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의 ‘스무 살 여성’들이 세상과 맞닥트리는 이야기. < 여고괴담 >(박기형, 1998)의 오기민 프로듀서가 설립한 ‘마술피리’의 창립작인 이 영화는 당시 충무로 규모 있는 투자사 중 한 곳인 아이픽쳐스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메이저였던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맡았던 작품입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2001년 3월의 어느 날,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인천 월미도. 태희와 혜주와 지영과 쌍둥이 자매인 비류와 온조. 다섯 친구가 오랜만에 모이는 장면이죠. 버스를 타고 월미도에서 동대문 의류 상가로 이동하는 그들. 하지만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 앞에서 친구들은 옷깃을 꼭 여며야 했는데요, 그 바람은 마치 이 청춘들이 장차 겪게 될 현실이라는 거센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 바람은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대형 강풍기가 만들어내는 바람 앞에서 배우들은 ‘바람 맞는 연기’를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영상원 출신인 그는 < 도형일기 >(1997) < 둘의 밤 >(1999) 등의 단편으로 각광 받았고,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민규동, 1999)의 스크립터로 충무로에 진입한 지 2년 만에 자신의 장편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자인 오기민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프로듀서이기도 했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의 여성 감독은 흔하지 않았죠. 그런 이유로 정재은 감독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의 고유한 분위기는, 모니터 확인 시간입니다. 감독과 주연배우 다섯 명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니터 앞에서 친구들이 옹기종기 친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매우 정다웠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에게만 첫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최영환 촬영감독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오롯이 혼자 촬영을 책임져야 하는 첫 영화였습니다. 역시 감독처럼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요, 이후 최영환 촬영감독은 < 피도 눈물도 없이 >(류승완, 2002)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2004) < 타짜 >(최동훈, 2006) < 세븐 데이즈 >(원신연, 2007) < 전우치 >(최동훈, 2009) < 베를린 >(류승완, 2012) < 도둑들 >(최동훈, 2012) < 국제시장 >(윤제균, 2014) < 베테랑 >(류승완, 2014) <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2016) 등의 카메라를 잡습니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 월미도까지 온 혜주(이요원)은 쌍둥이 자매인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를 발견합니다. 인형 뽑기에 빠져 있는 자매. 이미 적잖은 인형을 뽑았는데요, 이 장면을 위해 마련한 소품이 아니라 진짜로 뽑은 거라고 하네요. 이재용 감독의 < 순애보 >(2000)에서도 역시 쌍둥이 자매로 데뷔한 이은실, 이은주 자매는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혜주는 오랜만에 만난 지영(옥지영)에게 염색이 촌스럽다며, 집에서 혼자 한 거 아니냐며, 타박을 합니다. 배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 때문에 촬영은 잠깐씩 중단되곤 했습니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 다섯 명의 친구가 다 모였습니다. 한편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이 조금 독특했던 건, 한국영화 최초로 전문 조감독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도제 시스템에선 조감독은 감독으로 가기 위한 통로이고, 연출부에서도 퍼스트, 세컨드, 써드 등으로 위계가 형성되어 있죠. 하지만 전문 조감독은 감독에 종속된 직책이 아닙니다. 감독과 수평적 입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지금은 ‘옥고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옥지영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첫 영화였습니다. 패션 모델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실제 이름과 같은 ‘지영’이라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했죠. 이 영화로 배두나, 이요원과 함께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배두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창 주목 받던 라이징 청춘 스타였습니다. 2000년 봉준호 감독의 < 플란다스의 개 >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던 그녀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한 뼘 더 캐릭터의 영역을 넓혔죠. 특유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순수하고 꿈꾸는 듯한 이미지가 황금비율로 섞인 캐릭터가 바로 ‘태희’였습니다. 배두나는 이 캐릭터로 백상예술대상과 춘사영화제와 부산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이 영화에 안착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녀가 받았던 네 개의 영화상, 즉 백상예술대상과 디렉터스컷 시상식과 청룡영화상의 신인여우상, 그리고 춘사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은 모두 <고양이를 부탁해> 덕분이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꿈 많은 태희(배두나), 현실적인 혜주, 약간은 어둡고 세상에 냉소적인 지영, 굳건한 자매애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비류와 온조.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다섯 친구가 세상과 드디어 대면하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넷플릭스에서 이탈리아의 자동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그것이 등장하던 순간,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경찰차의 차종이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라는 모델의 스포츠카였기 때문이다. 차 한 대의 가격이 3-4억 원 이상 나간다는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린 경찰은 다큐 제작진에게 뭘 놀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 경찰은 스포츠카, 아니 경찰차 트렁크에 실린 구급상자 시스템을 보여주며 자신들은 난폭 운전자들을 쫓는 일 외에도 (이렇게 비싼 차니까) 위급상황 발생 시에 헬기보다 더 빠르게 응급처치를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날씨가 안 좋아 헬기가 뜨지 못해도 차는 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비싼 차니까) 법이 인정한 질주 가능한 경찰차라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역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나라답다. 한 가지, 한국 못지않게 이탈리아 역시 경찰차의 디자인 색상이 예쁘지 않다는 점이 눈에 밟혔다. 아무튼 현실에선 경찰차가 가장 눈에 띄지만 영화를 볼 때는 경찰차에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반면에 범죄자들의 차량은 디자인과 색상이 캐릭터와 맞물려 하나의 성격이나 태도를 나타내주는 잣대로 평가하곤 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도미닉(빈 디젤)이 타는 닷지 차저와 브라이언(폴 워커)이 타는 토요타 수프라의 차종 자체가 그들의 캐릭터를 대변했듯 말이다. <히트>에서 LAPD 빈센트 반장(알 파치노)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지가 그리 중요한가? 기억도 잘 안 난다. 참고로 이 글을 쓰려고 일부러 찾아보니 1992년형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LX 모델이었다. 미국 내 웬만한 택시와 경찰차는 대부분 이 모델이 공급된다. 도미닉의 입장에서 깔보자면 무개성 보급형인 것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경찰차 <블루스 브라더스> 경찰차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유독 경찰차에 꽂힌 적이 있다. 존 랜디스 감독의 1980년 작 <블루스 브라더스>를 보던 중이었다. 망나니 제이크(존 벨루시)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형제인 엘우드(댄 애크로이드)가 경찰차를 몰고 나타나자 대뜸 “이 똥차의 출처는 어디냐?”고 따져 묻는다. 그가 끌고 나온 낡은 경찰차는 1974년형 닷지 모나코로 엘우드는 경찰 공매에 나온 낡은 중고차, 즉 경찰이 쓰다 버린 차를 돈을 주고 주워 타고 온 것이었다. 차체의 앞뒤 모두 넓은 직사각 형태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옛날 회수권 비율의 직사각형이 떠오른다. 1970년대에 주로 만들어 보급했던 이 모델은 4문 세단의 중형차로 전륜 구동에 넓은 무게감을 강조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경찰차였다. 엘우드는 이 차가 “경찰 엔진에 경찰 타이어, 그리고 경찰 서스펜션을 겸비한, (석유 파동 이후 적용된 차체 규제가 적용되기 이전 모델이라) 일반 휘발유로도 잘 나가는 차”라고 자랑한다. 사실 이 낡은 닷지 모나코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제이크와 엘우드 형제가 이 차를 몰고 시카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벌이는 황당한 모의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자라온 고아원이 밀린 세금 5,000달러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돈을 구해보겠다며 밴드를 결성해 콘서트를 연다. 요주의 인물로 찍힌 망나니 형제가 도시를 휘젓고 다니니까 영문을 모르는 경찰들은 그들이 무슨 범법을 저지를지 몰라 그 뒤를 바짝 뒤쫓는다. 영화 후반부, 두 형제가 경찰을 따돌리고 공연장에 도착하기 위해 벌이는 추격 장면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범죄 영화 규모의 카체이스 액션을 선보인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형제를 뒤쫓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서로 부딪쳐 뒹굴며 종잇장 구겨지듯 짓이겨지는 장면은 명불허전이다. 당시 SNL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댄 애크로이드가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존 랜디스 감독과 함께 액수 불명의 엄청난 제작비를 써댔는데 스튜디오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탄생한 명장면(?)이었다고 전해진다. <다크 나이트>(2008)에서 조커(히스 레저)가 바주카포를 날리던 지하도, 조커의 지시로 고담시 시민들이 브루스 웨인을 덮치던 고가 아래 도로 같은 시카고 시내 도로를 블루스 브라더스 형제가 십수 년 전에 이미 닷지 모나코를 타고 질주한 바 있다. 무모한 카체이스 촬영 <프렌치 커넥션> 1971년형 폰티악 르망 <블루스 브라더스>의 경찰차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정작 경찰이 모는 경찰차에 끌린 건 아니라는 소리다. 허나 경찰이 타고 있는 차를 모두 경찰차의 범주에 넣는다면 <프렌치 커넥션>(1971)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에게 1972년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R등급 최초 작품상 등을 안긴 이 영화는 뉴아메리칸 시네마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작자인 필 댄토니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영화 <블리트>를 제작했는데 그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감독과 함께 기존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로 점철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추격 장면은 자동차가 자동차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기차를 추격하는 장면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약 거래 사범들을 뒤쫓던 지미는 킬러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는 도망치는 그를 추적한다. 그런데 킬러가 기차를 타자 열차 고가 밑 도로를 마침 지나가던 시민의 차량인 1971년형 폰티악 르망(하드탑 세단)을 무작정 빼앗아 뒤쫓는다. 앞서 소개했듯, 이 장면은 촬영 현장 분위기를 알고 다시 보면 불편해서 제대로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하게 촬영했다. 이 장면의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첫 제작 회의에서 제작자 필은 스태프들을 모아 놓고 “내가 지금 최고의 추격장면을 담은 영화를 기획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블리트>보다 더 멋진 추격 장면을 넣자며 허풍 아닌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감독은 촬영이 시작됐음에도 추격 장면에 대해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둘은 서로 차일피일 아이디어를 내놓길 미루다가 하루는 촬영장으로 향하면서 뉴욕 거리를 산책하는데 마침 두 사람이 걷던 도로 아래로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더란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본 제작자 댄은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뉴욕의 고가 철도를 올려다보며 위아래로 무언가 동시에 달려나가는 추격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자동차가 기차를 쫓는 장면의 콘셉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1970년대에는 지금처럼 카체이스 전문 촬영 장비인 러시안 암 같은 특수 장비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고 그렇다고 차량을 개조해서 찍을 생각도 해보던 시기가 아니라 무식하게 추격 장면을 ‘진짜로’ 연출해서 찍어야 했다. 애초 이들의 연출 방향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추구하는 범죄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에 실제로 추격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훗날 촬영감독은 “주인공이 탄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사람과 차 사이를 간신히 비껴가는 등의 영화 속 추격 장면은 연출된 게 아니라 전부 실제상황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촬영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진 핵크만의 스턴트 운전 대역으로 빌 힉크만이라는 스턴트 전문가가 맡았는데 바로 <블리트>(1968)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그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FBI 요원으로 등장해서 주인공 형사 지미(진 핵크만)의 속을 긁는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감독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무모한 스턴트 촬영을 모두 해냈다. 무사한 게 다행이었다. 물론 사고도 있었다. 세컨드 유닛 촬영감독이 고가철도 아래쪽에서 지미 역의 배우 진 핵크만이 직접 차를 모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카메라는 자동차 트렁크에 있었고 엄청난 속력으로 질주 중이었다. 그런데 촬영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의 차량이 옆 차선에서 같이 달리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뛰어드니까 진 해크먼이 왼쪽으로 핸들을 급히 꺾은 것이다. 그래서 옆 차와 충돌하고 이어 다리 기둥과 부딪쳤는데 촬영감독이 그 충격으로 트렁크에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고. 다행히 배우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영화 역사의 비극으로 남을 뻔한 촬영현장이었다. 또 <프렌치 커넥션>은 제작진의 영화를 향한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 캐릭터에도 반영된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 지미는 프랑스 마약단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들을 쫓다가 거의 반 미치는 상태가 되어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쫓은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그것은 범죄자의 뒤를 쫓던 캐릭터가 이성을 잃고 점점 자신이 쫓는 범죄자와 닮아가곤 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지미가 평소 범인들을 추적할 때 타고 다니는 자신의 차가 1971년형 포드 LTD(Brougham Hardtop Sedan)인데 이 모델은 경쟁사 차량인 고급형 세단 링컨 콘티넨털에 대항하는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만들어진 차량이었다. 극 중 프랑스 마약단이 미국으로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수단으로 링컨 콘티넨털을 이용한다는 설정의 디테일도 이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장된 해석일까.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은 경찰과 범죄자, 영웅과 악당의 기준을 모호하게 제시한 <프렌치 커넥션> 이후 알 파치노가 동성애자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분하는 <광란자>(1980), 선배 요원의 죽음에 분노해 범죄와 결탁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하는 특수요원 이야기 <리브 앤 다이>(1985) 등의 영화를 통해 일관된 주제를 밀고 나갔다. 물론 이들 영화에도 우악스러운 카 체이스 장면을 빼놓지 않고 등장시켰다. 경찰차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면 함께 찾아보시길. 경찰차의 추격이 인상적인 영화와 반대로 경찰에 쫓기며 질주하는 악당들의 카체이스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다음 연재에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