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권
- 감독
- 이혁수
- 제작년도
- 1980
- 출연
- 하우성, 사중전, 장혁, 옹소호, 민복기, 두계화, 김세옥, 이강조, 김영인, 최성규, 남포동, 권일수, 임예심, 조학자, 김유행, 박성식, 강영철, 김예성, 박양근, 박윤근, 홍윤정
2000년대 초반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시기였다. 세계 종말도 Y2K도 없었다. (있었어도 나 같은 서민은 모를 정도로 능력자분들이 잘 처리해 주셨다.) 그렇게 맞이한 밀레니엄에서 사람들은 뭔가 해방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2000년 이후의 삶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문화현상들이 나타났고, 이전부터 근근이 이어지던 서브컬쳐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영화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는데 과격한 상상력과 놀라운 실행력이 결합된 재미난 작품들도 많았다. 그런 경향의 일부였던 < 씨어터 >와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를 본 코너에서 소개하기도 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들 젊은이들의 재기가 꽃피우던 시기에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려 고독하게 16mm 카메라를 다찌마리로 수놓았던 어느 노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것이다. 2003년 8월 21일 주간지 ‘일요 서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퀵서비스 배달원의 애환을 그린 영화 < 퀵맨 >이 최근 극장에서 개봉 돼 화제다.”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 퀵맨 >은 퀵서비스맨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직업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둘째, 개봉됐다는 언급은 있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KMDb에는 개봉 날짜 및 관람객 수 표기란이 아예 비어있고 네이버 영화에는 2002년 개봉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위의 기사는 2003년 기사... 도시 전설이 보통 이런 식으로 탄생하곤 한다. 게다가 ‘화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말 <퀵맨>은 화제였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제’는 일반 관객이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영화는 1967년 < 새벽길 >로 영화인생을 시작해 1996년 < 알바트로스 > (그렇다 차인표 , 이휘재 의 국방부 퀘스트였던 그 영화다.)까지 쉼 없이 달리던 그가, 6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영화기 때문이다. 이혁수 라는 이름은 뭐랄까. 임권택 도 남기남 도 아니지만 상당한 다작에(KMDb 등록 감독작이 51편이다) 나름대로 인정받는 흥행작, 장르의 걸작도 필모에 몇 편 포함되어있는 (그 중 42번째 영화이고 86년에 연출한 < 여곡성 >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이다.) 감독이다. 그는 결코 거장도, 연타석 안타의 흥행 마술사도 아니었지만 영화인으로서 오랜 시간 갈고닦은 연출력을 통해 장르 영화의 구조를 튼실하게 구축할 줄 아는 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의 필모에는 권격 영화, 호러 영화, 사회 고발,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액션영화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한 때는 흥행사로 불리기도 했다. ‘삐용삐용 B무비’의 다른 필진인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애권 >에 언급되었던 ‘웃겨서 죽여버리는 권법’이 등장하는 < 소권 >이 이혁수 감독의 작품이며 이 작품은 장르 팬들의 애정을 받는 영화다. < 퀵맨 >은 그런 이혁수 감독이 2000년대에 들어 연출한 유일한 영화다. 영화가 제작된 2002년 당시는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한국 디지털 에로영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바로 이 시기였다. 클릭 엔터테인먼트와 봉만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 한국 영화계에 ‘새로움’이라는 화두가 실제로 눈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러나 이혁수 감독은 <퀵맨>을 16mm 필름으로 찍고, 등장인물은 퀵서비스 기사와 사악한 기업의 부사장이지만 영화의 골격은 무협영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권격 영화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놀라운 반전까지. 모델인 승희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난 미모 덕에 급상승 중이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의 술자리, 에이전시의 무리한 요구에 염증이 난 승희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의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 강사로 돌아간다. 한편, 코리아유통의 오 회장은 ‘코브라’라고 불리는 암살자에게 살해 당한다. 그는 사망 전 유언 동영상을 남겨 자신이 어릴 때 버렸던 유일한 혈육 ‘오승희’를 찾아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 유언을 본 고문 변호사 문 변호사와 부사장 태욱은 ‘오승희’의 사진 한 장을 그 가지고 그녀를 추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다르다. 문 변호사는 오 회장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그녀를 찾지만, 태욱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오 회장을 ‘코브라’에게 사주해 살해한 것이 태욱이기 때문이다. 회장을 살해하고 기업을 통째로 먹으려던 태욱에게 몰랐던 승희의 존재가 매우 성가신 것이었다. 태욱은 기어코 승희를 찾아내고야 만다. 위기에 빠진 승희는 우연히 만난 퀵서비스 기사 성민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적어놓은 줄거리만 보면, 적당한 액션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이런 식의 이야기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주무르는 자의 ‘감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영화의 모양을 결정한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 퀵맨 >을 어디에서든 검색한다면 많은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포스팅에서 이 영화가 ‘괴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통할 법할 이야기를 현재시제의 상황으로 변형시킨 뒤, 감독 본인이 가장 잘했던 시절의 연출을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암살의 실행자 ‘코브라’와의 결전이 아니다. (진짜로 멋지게 찍힌) 성민 최후의 결투는, 영화 내내 이태리제 소파에 앉아 암살자에게 지시를 내리던 부사장 태욱과 이루어진다. 이것은 마치 한 명씩 적들을 격파하며 올라가는 옛 무협영화의 공식이다. 게다가 성민이 위기에 빠지자 수많은 오토바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해 벌이는 깡패와 퀵서비스맨의 패싸움 장면은 마치 위험에 처한 사형을 구출하기 위해 단체로 출동한 ‘퀵서비스 문파’의 형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듯, 이 영화는 진지하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진지함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혁수 감독의 장기인 다찌마리 액션 장면을 떼어놓고 본다면 대사 하나하나, 상황 두 개 세 개가 황당하다. 이런 장면이 있다. 성민과 승희의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정말 아무런 두서가 없이) 호스트바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처음 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 여자 손님이 선수(호스트바 남성 접대부를 지칭하는 말)가 마음에 안 든다며 꼬장을 부린다. 그러자 마담이 오늘 처음 온 친구라며 장발의 청년을 소개하고 이 둘은 잠자리까지 가게 된다. 둘의 욕정이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여기까지 한 5분 걸린다) 갑자기 성민이 등장한다. 다짜고짜 신참 선수를 때리기 시작하는 성민. 장면이 바뀌어 한강둔치로 예측되는 곳에서 성민은 계속 구타하며 말한다. '달수야 임마! 사내놈이 할 짓이 없어서 고추장사를 해!? 내가 널 친동생같이 생각하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자 달수는 말한다. '형 그럼 어떻게 해! 취직도 안 되고 돈은 필요하고... 훌쩍훌쩍' '그래도 어떻게 고추 장사를 하느냔 말이야! 나는 널 이제 안 볼 거야!' 아무 말 없는 달수. 돌아가는 성민. 그러자 달수는 성민의 뒷모습에 대고 말한다. '형... 내가 잘못했어. 이제 고추 장사 안 할게.' 그러자 성민은 환하게 웃으며 달수에게 다가가 말한다. '그래. 잘 생각했어.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앞으로는 형과 함께 퀵서비스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달수는 퀵맨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소개에 할애된 시간이 무색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다. 이런 장면도 재미있지만, 여주인공 승희의 사정은 감탄이 나올 정도라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델 오승희는 코리아유통의 인물들이 찾던 승희가 아니었다. 진짜 승희는 그녀의 이모부인 박 선생(레전드 박동룡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이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던 것이다. 결국 문 변호사는 그녀를 찾아내고 한국으로 입국을 시키면서 태욱은 멘탈이 붕괴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쫓고 있던 오승희는 누구란 말인가? 물론 이 배역은 전혜윤 배우의 1인 2역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영화 시작할 때 오승희를 찾기 위해 들고 있던 사진에는 얼굴에 점이 하나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모델 오승희에게는 점이 없다! 이 점을 영화 초반엔 극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태욱의 부하 중 하나가 “사진엔 점이 있는데 이 여자는 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욱은 “요즘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점 하나 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대충 넘어가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 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아유유...’ 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몸이 조금 오그라든다. 결국 진짜 승희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가서는 지금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유혹>적 리얼리즘’이 이미 시도되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만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 막장의 세계에서도 이 진리는 통한다.) 그러니까 전직 모델 오승희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엮여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되었던 것이다. 불쌍한 사람. 그래도 성민이라는 듬직한 사랑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인연이란 것은 꼭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만날 수 있는 것일 텐데 여하간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는 그녀에겐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닮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런저런 산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액션에 관해서는 절대로 웃기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격투 씬 때문에 앞서 말한 황당함들 조차 잊을 수 있을 정도라면 조금 오바스러운 이야기일까? 특히 공장에서 펼쳐지는 내분으로 인한 코브라와 깡패들의 일대 다수 싸움, 마지막 개천에서 부사장 태욱과 성민의 결전은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원한 다찌마리였다. 이혁수 감독님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시고 본인의 내공을 풀어낸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액션 영화’라는 말은 있지만 ‘권법’이나 ‘권격’ 이라는 말은 거의 사장된 듯 싶다. 정말, 정말 마지막 권격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 퀵맨 >은 그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감독의 작별인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정의를 위해 세상을 등지는 쾌남의 시대는 없다. 세계는 그런 사람을 (예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완전한 멍청이로 보이게 재구성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의의 주먹은 현실에서 더욱 더 멀어져 만화 속에서 스크린으로 이주한 캐릭터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나는 이혁수 감독의 <퀵맨>을 보면서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고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는 단순하고, 영웅은 원래 바보다. PS : 영화의 주연인 윤세웅 (KMDb에는 ‘윤호’로 기재)씨는 배우 ‘ 윤양하 ’ 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는 많지 않은 수의 출연을 했지만 현재까지 성우로 맹활약 중이다. 전혜윤 윤호 송금식 감독: 이혁수 각본: 윤석훈 , 안진원
성룡의 < 취권 >(1978)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정무문 >(1972)으로 대표되는 이소룡 영화의 비장미는 이른바 ‘코믹 쿵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유하 감독의 < 말죽거리 잔혹사 >(2004)의 마지막 장면에 잘 드러난다. ‘아뵤~’ 하며 쌍절곤을 휘두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비틀비틀 취객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 이후 성룡은 < 사형도수 >(1978)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이른바 ‘소자’(小子) 장르를 굳건히 안착시켰다. 말썽만 피우던 철부지 아들이 가문의 복수를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승리하고야 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소룡의 <정무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룡의 <취권>도 무수히 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다. 성룡 역시 <취권>을 스스로 패러디하여, 웃음보가 터져서 깔깔대며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결정타를 날리는 소권(笑拳)을 소재로 한 < 소권괴초 >(1979)를 만들 정도였다. < 복권 >, < 원권 >, < 소권 > 이소룡 사후 본고장인 홍콩만큼이나 수많은 ‘짝퉁 이소룡’이 등장했고, 심지어 홍콩으로 수출까지 했던 ‘세계 2위의 무술영화 생산 국가’ 한국도 그 아류의 대열에서 빠질 수 없었다. 애무와 체위를 권법에 응용하여(하지만 관객 정서와 검열문제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진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던) 사랑을 해야 잘 싸울 수 있는 이형표 감독의 < 애권 >(1980)을 시작으로 가공할 배치기를 선보인 김정용 감독의 < 복권 >(1980)과 원숭이의 동작을 응용한 < 원권 >(1980), 성룡의 ‘소권’보다 더욱 강력하게 상대를 웃겨 버리는 이혁수 감독의 < 소권 >(1980), ‘근육질의 짝퉁 이소룡’으로 명성을 날린 거룡과 함께 한 김시현 감독의 < 매권 >(1980)과 < 뇌권 >(1983), 영상자료원에 시나리오만 남아 있고 일체의 정보가 없는 남기남 감독의 <희권>도 있었다. 이미 제목들만 나열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당시에는 무슨 아무개 ‘권’만 붙이면 어지간히 흥행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당시 「경향신문」은 “국산영화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홍콩무술영화 아류와 저질유행어에서 따온 것들로 예술적 감각이나 함축성이 전혀 없다”며 “해괴하고 엉뚱한 영화제목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얼토당토않은 조어들이 판을 치면서 언어순화의 사회적 차원은 물론 시민들의 의식구조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이런 무질서한 풍토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 신애권 >, < 소애권 >, < 요사권 > 졸지에 시민들의 의식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는 대표 감독이 돼버렸지만, 무려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의 이형표 는 < 서울의 지붕 밑 >(1961) 등을 통해 소시민의 애잔한 삶과 일상을 정감 넘치게 그려온 감독이었다. 어쨌건 그는 당시 < 애권 >의 속편인 < 신애권 >(1982), < 여애권 >(1982), < 소애권 >(1983)을 차례로 만들며 그 흐름을 주도했다. 심지어 <여애권>의 서영란과 함께 일종의 스핀오프 격인 < 요사권 >(1980)을 만들기도 했다. 역시 다른 <애권>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무도인들로 들끓던 만주를 배경으로 한 <요사권>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홍색 하트 ♥ 그래픽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무림에 나타난 홍일점! 희한한 내용, 요상한 재주, 유별난 스타일의 액션도원경!” 그러니까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남들이 보기에 희한하고 요상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우리는 즐긴다!’는 그들만의 B급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 신나는 도입부 음악과 함께 < 애권 >이 시작하면 “1940년,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국경지대의 성문이 등장한다.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가 등장해 사기를 치고, 주인공 황석불( 강용석 )은 그들을 꼬나본다. 이때부터 뻔한 컨벤션과 장난스런 키치의 미학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분명 남한산성 어디일 텐데 사람들이 버젓이 중국옷을 입고 국경을 넘나든다. 주변에서 꿀차와 번데기를 파는 아줌마를 즉석 캐스팅했는지, 뽀글뽀글 싸구려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주인공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어머! 어머!” 하는 과도한 리액션까지 선보인다. 그때 ‘이 약을 먹으면 칼도 배를 뚫지 못 한다’는 얘기에 석불이 “내가 한 번 해 보겠소”라는 얘기와 함께 약장수의 배를 칼로 찌른다. 하지만 약장수가 배에 두툼한 책을 숨겨놓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예전에 < 황야의 무법자 >라는 영화를 봤는데 배에 솥뚜껑이 있더라구!”라며 느닷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의 실제 장면을 느닷없이 언급하는 황당함이란!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장대한 시작을 알렸던 셀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솥뚜껑을 방패삼아 총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한국의 ‘김치 무협’ 영화에서 패러디됐다고나 할까. 바로 석불은 죽은 아버지의 원수 옥달평을 찾아 만주로 온 것이다. 옥달평은 돈벌이가 목적인 살인 무술대회를 열어 무림을 어지럽히는 장본인이다. 강직한 일도관의 청담사부( 이강조 )는 옥사부에게 ‘무도는 마음부터 닦는 것’이라 충고하지만, 청담사부의 눈 밑에 짙게 드리워진 다크 서클은 그가 곧 살해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렇게 무림은 옥사부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찾아간 스승 화삼유( 배수천 )는 술주정뱅이 폐인이 돼 있다. 그래도 석불은 화삼유의 딸 쇼냥( 윤상미 )이 마음에 들어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한편, 옥달평은 예정대로 무술대회를 개최하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누가 봐도 용인 민속촌으로 보이는) 흑룡여관으로 고수들이 몰려든다. 그중에는 ‘흐르는 별’이라 불리는 유성(遊星)권의 달인도 있다. 헤어스타일부터 동작까지 ‘짝퉁 성룡’이라 할 수 있는 석불은 아버지의 원수를 찾는 와중에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쇼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 운운하며 “저도 시를 참 좋아합니다”라고 접근한다. 쇼냥이 들고 있는 책을 향해 ‘마음의 양식’이 아닌 “책은 양식의 마음이죠”라는 썰렁한 대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나중에 적들과 싸울 때는, 적의 무기를 피해 조롱하면서 “삐빠빠룰라~ 멀리 기적이 우네~”라며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기도 한다. 만주를 배경으로 아무리 포스트모던하게 시공간을 뒤섞었다지만 잠시도 ‘자투리 개그’를 쉬지 않는다. 그저 보다 보면 자연스레 적응되는 경지까지 가게 되니, 그냥 마음 편히 당대 오락영화의 능청스런 풍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석불이가 놈에게 잡혔소. 내일 구하러 가야겠소. 사랑해 주시오.' 좀 다른 얘기지만, 남기남 감독의 < 영구와 땡칠이 >(1989)의 도입부를 기억하는가. 닫힌 문을 배경으로 성우가 “어린이 여러분, 우리 함께 영구를 불러보기로 해요. 하나, 둘, 셋! 영구야~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자, 다시 한 번 불러볼까요? 하나, 둘, 셋!”이라 말하고 어린 관객들이 일제히 “영구야~”하고 부르면 심형래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러니까 관객과의 인터랙티브를 시도하는 그런 의도적인 조악함이 당시에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굳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원래 그것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 취권 >에서도 빠지지 않는 설정이었다. <취권>에서 성룡의 스승인 소화자(원소전)도 마지막 대결에 느닷없이 “영화에서 이런 중요한 장면에 내가 빠질 수 없지!”라고 외치며 등장했으니까. 게다가 술병을 달고 사는 화삼유는 누가 봐도 소화자를 패러디한 것 아닌가. 1~6번 순서로 편집되어있는 애권 의 다양한 권법들 하지만 알고 보니 화삼유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폐인 행세를 한 것이었다. 석불이 악당들에게 잡혀 가자 “석불이를 구하러 가야겠소. 어서 나를 사랑해 주시오”라며 대놓고 화류계의 여자를 만나 애권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애무난무권’이니 ‘일심충천권’이니 ‘양인상상권’이니 하는 이름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관객이 보기에 그저 똑같이 여자 몸을 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구조된 석불도 본격적으로 쇼냥과 함께 애권을 익히고, 결국 흐르는 별과 최후 대결을 벌이게 된다. 갑자기 싸우다 말고 포옹과 키스를 하려 하니 흐르는 별은 당연히 징그러워 질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석불은 마치 적과 함께 탱고를 추듯 “이것이 바로 만주의 마지막 밤의 탱고다!”라며 애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정체불명의 애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흐르는 별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사랑이 날 죽이는 구나~” 그렇게 먹구름이 낀 무림은 홍콩 사람들도 듣도 보도 못한 애권으로 인해 평화를 찾게 된다. 애권이 독특한 것은 그 애권의 최대 적이 체력의 감퇴도 아니요, 의지의 부족도 아닌 바로 주인공의 권태기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 신애권 >에서는 급기야 장인인 화삼유가 복수를 위해 사위의 외도를 용인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제 더 이상 아내를 보면서는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막장 드라마’는 장르를 초월하여 존재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기발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어설프고 조악한, 대체 이런 현기증 나는 권법이 어디 또 있었던가. / 글: 주성철 (씨네21 기자) 강용석 배수천 이강조 윤상미 김정란 감독 이형표 각본 이일목 촬영 양영길 개봉극장 아세아극장 개봉일 1980-04-24 관람인원 61,286(서울)명
이탈리아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작명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김치 무협’이라 명명할만한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한국을 중국처럼 꾸미고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은 채 버젓이 소림사까지 등장시켜 ‘무림’이 어쩌고 ‘중원’이 어쩌고 했던 일련의 무술영화들이다. 만주 웨스턴의 활황에 이어 이두용 의 태권액션영화들마저 그 명맥이 끊긴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소룡과 성룡의 등장 이후 모두 넋이 나간 채 명절마다 성룡 영화만 기다리며 한국액션영화의 독창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에 김영일 , 왕룡 , 정진화 같은 몇몇 액션배우들이 대부분 전북 고창에서 촬영한 일련의 ‘짝퉁 무술영화’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 소림사 주방장 >(1981)같은 영화들은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의 평가는 가혹했다. 무국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 소림사 주방장 >의 흥행 이후 ‘저질 무술영화들이 판친다’는 요지의 1982년 무렵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중국 전통의 고증도 무시한 채 마구 치고 박거나 엉뚱한 에피소드로 웃기는 무국적 단세포식 날림”이라며 “가끔 수입되는 중국, 홍콩영화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그들의 영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키자는 어설픈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내한하는 홍콩영화인들마저 이들 영화를 보고 ‘무대가 한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어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액션영화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별개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정진화 가 있었다. 1956년생인 정진화 는 < 돌아온 외다리 >(1974) 등 이두용 사단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김선경 감독의 < 특명 >(1976)을 비롯 역시 김선경 감독이 연출하고 왕호와 황태수(본명 황정리 ) 등 선배 액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 흑룡강 >(1976), < 밀명객 >(1976) 등에 출연했다. < 복권 >(1980), < 소림사 주방장 >(1981), < 무림걸식도사 >(1982) 등에 늘 함께 출연했던, 그러니까 늘 정진화를 괴롭히는 익숙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김영일 이 < 소권괴초 >(1979) 등 홍콩으로 건너가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마지막 세대 배우였다면, 정진화는 이런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한 거의 유일한 토종 배우였다. 홍콩 무술영화들을 연구하고 모방은 하되 순수 국내파였다고나 할까. < 무림악인전 >(1980)으로 김정용 감독과 만난 뒤 배치기를 필살기로 하는 코믹무술영화 <복권>(1980)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당대 한국 무술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성룡에게 로웨이가 있었다면 정진화 에게 김정용 이 있었다고 할 만큼, 그는 김정용 감독의 일련의 무술영화들에서 주인공을 도맡았다. 그의 남다른 점은 왕호 , 거룡 , 왕룡 등의 선배들이 이소룡의 아우라를 좇는 사람들이었다면 < 복권 >을 필두로 장발을 한 채 성룡식 코믹 액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사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코믹한 동작들은 성룡의 < 사형도수 >(1978)와 < 취권 >(1978)에서 유래한다. 위 두 영화에서 코주부 스승으로 출연한 원소전 캐릭터 역시 그대로 가져왔을 정도다. 아무튼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에는 성룡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장발의 정진화를 모방한 하우성 주연, 김선경 감독의 < 산동 물장수 >(1982)라는 영화도 나왔다. < 소림사 주방장 >은 이후 < 소림사 용팔이 >(1982), < 소림사 주천귀동 >(1982), < 소림사 왕서방 >(1982) 등 무려 10여 편이 넘는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정진화 의 출연작들은 ‘아마존’같은 해외사이트에 마치 홍콩영화인 것처럼 출시돼 있다. ‘Elton Chong’이라는 영어이름으로 등록된 그를 보고 한국인 배우 정진화로 연결 짓는 해외 액션마니아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작품들 중 수작에 속하는 < 무림 걸식도사 >(1982)는 < Invincible Obsessed Fighter >,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 >(1982)은 < Magnificent Natural Fist >, < 홍도경 >(1985)은 < Dragon Against Vampire >라는 제목으로 출시돼 있다. 이후 김정용 감독과의 파트너십은 계속되어 < 람보 >나 < 인디아나 존스 > 시리즈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는 < 아라한 >(1986)은 당대 무국적적인 한국 액션영화의 황혼기라 할 수 있으며, < 팔도 쌍나팔 >(1987)은 현대물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 돌아이 >(1985)가 당시 충무로의 양지의 액션영화였다면 그 반대 지점의 영화가 바로 <팔도 쌍나팔>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990년이 되기 이전 이른바 ‘개인기’를 지닌 액션배우들은 정진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후 충무로를 떠난 그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TV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 글: 주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