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
- 감독
- 김수빈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김수빈, 하강웅, 이순천, 이나미, 하노아
2020년 7월 7일부터 2021년 2월 10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라는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에 설치된 ‘북한영화특별관’에서, 모니터와 헤드폰을 이용해 북한영화 13편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극영화 〈용광로〉(민정식, 1949),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윤용규, 1952), 〈정찰병〉(전동민, 1953), 기록영화 〈수풍에프런공사〉(천상인, 1948), 〈영원한 친선〉(1948), 〈38선〉(강홍식, 1948), 〈남북련석회의〉(천상인, 1948),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 제작 〈조선시보〉 4편 등 11편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를 공동주최한 한상언 영화연구소와 한국영상자료원에 감사드린다. (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의 전시 소개 에서 전시 리플렛과 도록을 내려받을 수 있으며, 지금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해당 메뉴 에서 온라인 전시 를 체험할 수 있다. 또,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계정에서 한상언 박사가 전시 내용을 설명하는 강연 도 볼 수 있다.) 위 13편 중 〈 내 고향 〉( 강홍식 , 1949)과 〈 신혼부부 〉( 윤용규 , 1955)는 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른 북한 영화 5편과 함께 상영된 적이 있다. 2000년 6월 사상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대표단을 파견하며 남북 문화교류 바람도 촉진되어, 2003년 봄 전주국제영화제·대종상에서 북한영화 신작〈 살아있는 령혼들 〉(김춘송, 2000), 〈 청자의 넋 〉(표광, 2003) 등이 소개되었다. 또, 2002년 10월 이두용 의 〈 아리랑 〉(2002) 평양 상영회 때 남한 영화인들이 방북했고, 2003년에는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가 조직되어 2차 교류가 이어졌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및 비디오 심의에서 제한상영가·등급 보류 판정을 연거푸 받기는 했지만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목적으로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쌍붙기〉(1987)가 이즈음 수입되기도 했다. 이전에 남한의 극장에서 공개 상영된 북한영화라고는 2000~2001년에 연이어 개봉하거나 특별상영으로 소개된 신상옥 · 최은희 부부의 〈 불가사리 〉(1985)와 〈 소금 〉(1985)뿐이었으니 변화가 실감되는 시기였다. 물론 노태우 정권이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1990년에 관계부처가 북한영화를 신청자에게 제한상영하거나, 〈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엄길선, 1979)가 TV에서 방영된 사례가 있긴 했다. 근년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다시 여러 영화제에서 북한영화들을 소개하려는 바람이 일었으나, 2019년 베를린 교류추진특별위원회 회담은 불발로 끝났다. 2019년 제1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당시 명칭은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작이 〈 새 〉(림창범, 1992)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이 영화를 ‘불법’ 상영하던 90년대 초의 대학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 과정을 다루는 〈내 고향〉은 국정원이 상영불가 의견을 낸 바람에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배지 소유자만을 대상으로 제한상영 되었다. 이와 달리 〈신혼부부〉는 같은 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 상영되었기에 누구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제 개막 직전에 언론들은 〈신혼부부〉의 감독을 (이번 전시에서도 〈신혼부부〉 시나리오 작가인 주동인의 동생으로 소개되었고, 영화제작자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알려진) ‘주동진’이라고 보도했다. 2003년 영화제 개막이 임박해서야 성사된 고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의 방북, 그에 이은 북한영화 상영 결정 과정 및 영화제 폐막 이후 상영작 프린트의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경위 등은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부산일보에 연재한 칼럼으로 꽤 소상히 알 수 있다(김지석, 〈[스무 살 BIFF, 뜨거웠던 순간들] 19. 또 다른 전쟁 ‘프린트 반입’〉 (《부산일보》, 2015년 5월7일자). 한데 2015년에 게재된 칼럼인데도, 〈신혼부부〉의 감독 이름을 ‘윤룡구’라며 여전히 부정확하게 썼다. 이는 북한으로 간 윤용규의 활동과 영화를 남한에서 잘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해방 후 조선영화의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태우, ‘조선영화의 발전’, 《경향신문》, 1949년 1월 6일자, 이준엽·함충범, 2018:2 재인용)이라는 윤용규의 대표작 〈 마음의 고향 〉을 제작자 이강수 가 파리에서1993년에 다시 공개하고, 문화재청이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해 문화재 등재 필름으로 2008년에 등록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듯하다. 국내에서 ‘연출 윤용규’라는 이름이 적시되어 〈신혼부부〉가 일반 공개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1. 북으로 간 영화감독 일본으로 건너간 윤용규는 도요타 시로 감독의 〈항구는 바람풍 港は浮気風〉(1937) 등 ‘도쿄발성’이 제작하고 ‘도호’가 배급한 작품들의 연출부로 활동(이준엽·함충범, 2018:11)한 뒤 귀국했다. 1939년 초연된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1949)으로 윤용규는 감독으로 ‘입봉’했다. 〈마음의 고향〉은 공개되자마자 서울특별시 문화상 영화부문상을 받았고, 경무대에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가 관람할 정도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또, 최초의 한불 영화 교류작으로 1950년 파리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마음의 고향〉에 쏟아진 갈채와는 별개로, 윤용규가 남한에서 활동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윤용규는 해방 직후 잇달아 설립된 ‘조선영화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이 1945년 12월 16일 통합한 조직인 ‘조선영화동맹’ 서울시 지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하여 윤용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좌익 인사로 분류되어 감시 받았으며, 〈마음의 고향〉 촬영 현장과 후반 작업과정도 경찰이 사찰했다.(박철, 「서정적 수법이 탁월한 공훈배우 윤룡규」, 《조선예술》, 1957.8., 90쪽. 이준엽·함충범, 2018:14). 윤용규가 북으로 간 계기를, 2000년 12월 1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초창기 북한 영화와 일본인〉에서 일본 영화연구자 몬마 다카시가 진술한 바 있다.(지금은 온라인에서 해당 기사를 볼 수 없다.) 초창기 북한영화 편집에 참여한 키시 토미코에게 들은 내용을 근거로, 몬마는 윤용규가 ‘월북’하지 않고 ‘납북’됐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키시 토미코는 닛카츠 영화사 등에서 편집을 배운 뒤 ‘만주영화협회(이하 만영)’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 패전을 맞는다. 이후 만영은 중국 공산당 정권 하에서 ‘동북전영제편창(東北電影制片廠, 이하 동북전영)’으로 개편되었다. 키시는 동북전영에서 북한영화 제작에 조력했는데, 처음 담당했던 북한영화가 바로 윤용규의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이었다. 영화 제작 중에 윤용규는 자신이 북한으로 간 경위를 키시에게 설명했다 한다. 전쟁 중 찾아온 북한군 병사들이 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20분 내로 준비하라고 했고, 윤용규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나거나 준비할 틈도 없이 따라 나섰다고 키시는 전한다. 기실, 윤용규는 서울영화사의 창립 4주년 기념작 〈하얀 쪽배〉를 만들려던 참이었다.(〈서울영화사서 「하얀 쪽배」 제작〉, 《자유신문》, 1950년 5월 18일자. 이준엽·함충범, 2018:15~16 재인용) 결국 전쟁 중 북한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윤용규는 〈소년 빨치산〉(1951)과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을 연출한다. 이즈음, 한국전쟁 초기부터 제공권을 선점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 시기의 참상은 전후에 프랑스와 북한이 합작한 〈모란봉Moranbong, chronique coréenne〉(1958, 이 영화에 강홍식 과 함께 출연한 엄길선은 후일 1원짜리 구 화폐에 등장할 만큼 북한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가 되었고, 〈신혼부부〉의 주연 배우 김현숙과 1962년에 결혼했다.)을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연출자 장클로드 보나르도와 각본을 쓴 극작가 아르망 가티가 크리스 마커·클로드 란즈만 등과 방북하여 제작한 〈모란봉〉은 유엔군의 평양 폭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도 2010년까지 상영할 수 없었다. 1947년 건립된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도 파괴되어 촬영은 물론 후반작업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폭격을 피해 강계로 소개했던 북한영화인들은 1951년 5월부터 1953년 11월까지 장춘의 동북전영에서 중국 정부의 인력 협조와 물적 지원을 받아 영화를 만든다. 기록영화와 시보 여러 편 외에도 〈소년 빨치산〉(윤용규, 1951), 〈또 다시 전선으로〉(천상인, 1952), 〈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윤용규, 1952), 〈비행기 사냥꾼조〉(강홍식, 1952), 〈정찰병〉(전동민, 1953) 등 5편의 ‘예술영화’(극영화)가 장춘에서 제작되었다. 북한 정부는 이 시기 중국의 도움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며, 평안북도 의주·수풍·창성과 자강도 만포군 등에 소개한 촬영소에서 김일성이 영화 제작을 지휘하여 온전히 북한 영화인의 힘으로만 전쟁 시기를 극복했다고 주장한다.(유우, 2010:249~250) 1954년 말에야 촬영 및 제작 기반 시설이 복구되어 북한영화인들은 1955년을 전후해 평양으로 모두 귀환했다. 한데 휴전 이후 윤용규가 연출한 〈빨치산의 처녀〉(1954)는 장춘에서 평양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제작되었기에 마무리가 늦어져 1955년 1월에야 공개되었다.(한상언, 2011:289~290) 작업이 지연된 이유는 김일성이 외국영화와 비슷한 장면이 있다며 추가 촬영 및 보완을 지시했기 때문으로 일단 알려졌다. 그런데, 장춘에서 제작 중이던 〈빨치산의 처녀〉 작업이 늦어진 데는 주연배우 문예봉 이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참석한 직후에 사적으로 술회한 여행담 때문에 ‘반쏘분자’로 지목된 탓도 있었다. 휴전 직후부터 남로당계 숙청이 시작되어 1953년 8월에는 임화 가 처형당했고, 남한출신 인사들에 대한 견제가 이어진다. 월북 직후인 1949년에도 남편 임선규가 공격 당한 적이 있었던 문예봉은 이 위기를 어쨌든 넘긴다.(한상언, 2020:95~97) 2. 휴전 직후, 신혼부부의 세계 전쟁 중 북한이 제작한 극영화가 5편인데 그 중 윤용규가 연출한 작품이 2편이었으니, 감독 윤용규의 역량을 남북한 모두가 공히 인정한 셈이다. 윤용규 이전에 북한에서 극영화를 연출한 강홍식ㆍ 주인규 는 모두 배우 출신이었고, 연출 수업을 경험한 극영화 감독은 1951년부터 작품 활동을 한 남한 출신 민정식과 윤용규가 첫 세대였다. 윤용규가 북에서 처음 연출한 〈소년 빨치산〉은 1950년 10월 말 미군이 점령한 어느 마을에서 ‘미 제국주의’의 만행에 맞서는 소년들을 영웅으로 그린다. 이 작품은 1952년 6월 중국에서 열린 ‘제6차 국제영화축전’에서 ‘자유를 위한 특별상’을 수상하며 베이징의 13개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이듬해 중국의 ‘신년 경축 특선’에서도 북한 영화로는 유일하게 선정되는 등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유우, 2016:259)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은 유엔군이 수복한 강원도 고성을 배경으로 ‘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을 그리는 영화이고, 휴전 다음해에 나온 〈빨치산의 처녀〉는 인민군이 ‘전략적 후퇴’를 감행한 1950년 하순 후방 농촌 마을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민간인들을 보여준다. 〈신혼부부〉를 만든 다음에 윤용규가 연출한 〈어랑천〉(1957)도 전쟁 중 그가 만들었던 작품들이 구축한 시공으로 회귀한다. 이 영화는 1950년 11월, 미군에 밀려 패퇴하다 어랑천을 사수하려는 전투원들의 영웅주의와 인민들의 지원을 다룬다. 이렇듯 1957년까지 윤용규가 만든 영화들이 당대 북한 영화의 주된 소재였던 항일·반제·반미·공습과 학살의 기억(한상언, 2011:295~301)을 되불러오는데, 〈신혼부부〉는 예외다. 휴전 성립 후 전후 복구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는 당대를 그리며 삶을 재구축하려는 개인과 공동체, 국가의 시도를 다루는 〈신혼부부〉의 세계는, 애인이 미군 간첩임을 알게 되자 주저 없이 그를 사살하는 〈어랑천〉 주인공 박순봉(조효경)의 세계와는 판이하다. 무자비한 폭격을 당했던 평양에 막 복귀한 영화인들이 갓 세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안팎에서 만든 영화임에도, 〈신혼부부〉는 근과거였던 전쟁의 잔혹함이나 전후의 비참함을 재현하는 대신 ‘현재’라는 시공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가 자아내는 활력을 우선 포착하려 한다. 공장에서 5년 동안 선반 일을 하던 은실(첫 주연작 〈신혼부부〉의 연기부터 큰 호평을 받고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은실 역의 김현숙은 〈모란봉〉의 원정희, 윤용규가 시나리오를 쓴 〈정방공〉(오병초, 1963)의 최부실, 김정일의 두번째 반려자였던 성혜림 등과 함께 북한영화의 5~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연기자이며 연기 교육자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은 철도 노동자 김영철(〈내 고향〉에서 유격대원 관필 역할을 맡았던 유원준이 연기했다. 그는 1998년 타계할 때까지 북한의 ‘아버지’ 상을 구현한 배우로 통했다.)과 결혼하며 전업주부가 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반장(반장 역을 맡은 문예봉은 유원준과 더불어 〈내 고향〉의 주연이었다.)과 막내 옥단 등 공장 동료들이 은실을 자주 찾아주지만, ‘노동역군’의 자리를 떠난 은실의 낙담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자신처럼 결혼 후 공장을 떠났다가 공사장에서 다시 일하는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난 은실은, 일터를 떠난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여성을 집안에 잡아두고 싶다는 영철과 여성 노동자로서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다는 은실의 갈등은 그리하여 깊어간다. 철도노동자로서 목표량 달성에 성공하여 기쁨에 들뜬 영철은 은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면 당신이 한 것과 다름없는데 바깥일 참견할게 뭐 있소. 나만 보고 산다며?" 은실은 조목조목 반박한다. 소꿉놀이 같은 집 안에만 아내를 가두어 두는 태도는 잘못이며 여성을 노리개나 보상물로 보는 것이라고, 또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던 가부장적 태도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며, “당신을 옳게 도우려면” 자신도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은실의 싸움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들은, 경험이 풍부한 반장을 비롯해 목표 작업량을 달성하는 공장 여성반 동료들이다. 여성이 혁명투쟁과 생산에 앞장서는 모습은, 북한에서 윤용규가 연출한 영화에서 예사롭게 등장한다. 미군이 점령한 마을의 여성동맹위원장인 주인공을 유경애가 연기하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 〈소년 빨치산〉과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윤두헌이 숙청된 뒤부터 집체작으로 기록됐다.)이나, 〈어랑천〉(1957, 시나리오 한성)의 사례가 그러하다.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60년대 뮤지컬 영화 〈정방공〉의 시나리오도 앞서 언급했듯 윤용규가 썼다. 한편, 〈빨치산의 처녀〉(시나리오 김승구)의 문예봉과 〈어랑천〉 속 박순봉이 연기한 역할을 계승하듯 미군에 맞서는 여성전사(조유경)가 등장하는 〈녀성영웅광부〉(윤용규, 1960)의 시나리오는 〈신혼부부〉의 주동인이 썼으니, 은실과 같은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인물 조형은 윤용규와 협업한 당대 북한 영화인들의 공동창작 결과라 하겠다. 1955년 4월에는 ‘조중 영화배급 계약’이 체결되는데, 1956년 북한영화의 대표격으로 중국에 유일하게 소개된 영화도 〈신혼부부〉였다. 〈신혼부부〉가 1956년 8월 15일부터 8월 21일까지 베이징에서 상영될 때, 중국 언론은 “노동경쟁에서 나타난 개인영웅주의와 여성 노동자의 가치를 무시하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소개한다.(유우, 2020:157) 3. 소리와 노래 〈신혼부부〉에서 영철과 동료 철도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에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언덕을 산책하는 부부와 은실의 공장 동료들은 창공을 배경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와 함께 푸른꿈 키우며 / 당신과 나는" 부분적으로 뮤지컬 장르 양식을 채용한 〈신혼부부〉 가 제작되기 직전에 평양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무용 가극 공연을 채록한 〈아름다운 노래〉(전동민, 1954)였다. 그리고 북한 ‘예술영화’ 중 공연 채록을 제외한 평양 복귀 후 첫 작품이 바로 〈신혼부부〉였다.(유우, 2020:142) 〈신혼부부〉가 만들어진 이듬해인 1956년에는, 광주 출신 음악가 정추의 형이며 일본 니혼대학에서 유학했던 정준채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아 최승희의 무용극을 옮긴 〈사도성 이야기〉도 나온다. 컬러 필름으로 인민적 전통과 민족문화를 다루는 영화들의 시초라 할 작품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윤용규도 1958년에 북한의 네 번째 컬러 극영화 〈 춘향전 〉을 연출한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 <춘향전>」 , 한상언 블로그) 〈신혼부부〉가 나오기까지, 북한영화에 음악은 물론 사운드 기술이 도입된 기간은 기실 그리 길지 않았다. 북한의 첫 발성(토키)영화는 〈인민위원회〉(1947)였다. 정준채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받아 1945년에 월북한 뒤 연출한 〈인민위원회〉는, 소련 기술진들의 도움으로 녹음설비를 구축하여 1947년 준공되었으나 전쟁으로 파괴될 평양의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에 초창기 북한 영화는 소련 영화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사운드와 뮤지컬 장르의 도입에서 그 영향은 명백하다. 소련 영화사에서 사운드 녹음 기술을 처음 도입한 작품은, 1929년 11월에 상영된 아브람 룸 감독의 〈위대한 파업의 계획Plan velikikh rabot〉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학 연구자 김수환은 〈위대한 파업의 계획〉을 예로 들며, 서구뿐 아니라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도 사운드 기술이 처음부터 생산 및 산업의 문제, 노동과 기계의 소리를 담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한다. 김수환에 따르면, 소련 무성영화는 발성영화로 단숨에 옮겨가지 않았다. 소련에서 처음 토키영화가 상영된 1929년 11월은 “신경제정책이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바뀌는 시기”였고, 1920년대를 뒤흔들었던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의 실험적 미학주의가 ‘형식주의’로 공격당하고, 2년 뒤인 1934년에 소련의 문예 창작 공식 지침으로 채택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얼개를 드러내던 때이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혁명기의 전위적 몽타주 영화는 “만인을 위한 영화”인 토키영화로 변모해갔다. 사운드를 채용한 소비에트 영화는 크라카우어 식으로 표현하자면, ‘대기실’의 기간을 가져야 했다.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변화되는 중에 있던, 아직 혁명이 완수되어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이전의 세계, 그런고로 불투명한 잠재성과 가능성의 다발들이 공존할 수 있었던 “끝에서 두번째 세계”. 혁명기의 “실험적인 파토스”가 잦아들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지만, 도래할 그 무엇을 정확히 예측하지는 못 하는 때.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이를 대체할 시대가 목전에 다다른 이 상황은, 크라카우어가 말한 역사의 “대기실 풍경”, 혹은 “끝에서 두번째 세계”(크라카우어, 2012:232)와 흡사했다. 끝으로 향하기 위한 “대기실”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행기의 영화로 김수환은 〈홀로Odna〉(그리고리 코진체프·레오니드 트라우베르크, 1931)를 꼽는다. 〈홀로〉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변화하는 총체적인 ‘이행기’에 출현했다.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홀로〉는 개봉 때 발성 대사를 더했으며,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영화음악(작품번호 26번, 가사가 있는 노래도 포함되어 있다.)을 사운드 트랙으로 채용했다.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의 ‘시작’과 ‘끝’ 사이”에 걸쳐져 있는 영화. 무성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형적 발성영화도 아닌,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 양식에서는 이미 벗어났지만, 아직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독트린으로 따르지도 않는 ‘양가성’이 〈홀로〉를 특징짓는다. ‘다수의 집단적 주체’가 아니라 한 평범한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며, 제목이 이 개인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1920년대의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감독들은 이 제목이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정해졌으며, 당시로선 논쟁적인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 후 정태적 사실이 아니라 혁명 과정에서 운동하는 현실을 담으라는 정언명령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거해 소비에트 영화는 “만인을 위한 영화”를 자임하며 완전한 발성영화로 전환했으며, 그 과정에서 “승리한 계급의 요구이자 권리”로서 “마땅히 도래”해야 하며 “있어야 할” “흥겹고 즐거운” 소련을 제시하는 ‘스탈린 식 뮤지컬 코미디 영화’라는 변종을 낳는다. 이 새로운 장르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할리우드의 대체물로 작동했다.(김수환, 2017:436, 440, 443, 449, 450, 452, 457~458, 460, 462) 〈신혼부부〉의 양상들도 “이행기의 영화”인 〈홀로〉와 여러 모로 닮았다. ‘신혼부부’라는 제목이 표상하는 개인들의 내밀한 생활과 가정이라는 소우주도 ‘소년 빨치산’, ‘또다시 전선으로’,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비행기 사냥꾼조’, ‘정찰병’, ‘빨치산의 처녀’ 등 투쟁하는 공동체의 일원 혹은 집단을 호명하던 북한 ‘예술영화’(극영화)의 제목과는 퍽 다르다. 한편, “노동계급의 노동투쟁” 영화(유우, 2019:150)라고도 일컬어지는 〈신혼부부〉의 평양 선반 공장 노동자 은실, 열차 노동자인 영철과 그 동료들은 이전 북한 영화에 주로 등장했던 농업 공동체와는 절연한 상태다. 전쟁의 기억도 전혀 술회하지 않는 그들은 도시의 공장과 기관차·철로변에서 기계와 더불어 일하고, 직장 기숙사와 평양의 노동자 주택에서 여가를 보내며 평화롭게 노래한다. 신혼부부가 다투거나 속삭이는 말소리 외에도, 영화의 사운드 스케이프는 노동 생산 과정에서 분출되는 기계 소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토론과 노래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음성과 노랫소리는 기계음, 도시를 복구하는 건설 소음들과 함께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영화의 표면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새로운 소비에트에서 경험하는 삶의 내밀한 감정을 발산하고 때로는 당의 명령과 자신의 소명에 회의를 토로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방백처럼 들려주는 〈홀로〉의 사운드가 담당한 몫과 〈신혼부부〉의 소리와 노래의 역할은 특히 비슷하다. 3년을 넘긴 전쟁으로 초토화된 평양, 그 중에서도 집중적으로 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대동강변을 건설노동자들이 재건하는 장면을 익스트림 롱쇼트로 조망하거나, 평양 상공을 장식하는 불꽃놀이를 신혼부부가 바라보는 장면은, SF영화처럼 단숨에 혁명 소비에트의 수도를 세워 올리던 〈새로운 모스크바Novaya Moskva〉(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알렉산드르 올레닌, 1938)를 떠오르게도 한다. 전쟁 중이던 1951년에 작성된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 총 계획도」는 전후 인민경제 복구발전 3개년계획의 수립과 함께 수정되었는데, 실상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한다. 평양의 도시재건도 영화 스튜디오 건립의 경우처럼 소련과 동유럽 기술진 및 건축자재 원조에 기대어 진행되었으며, 건축설계자와 건설노동자들은 휴전 후 다시 발표된 「제2차 평양시 복구위원회 결정」에 따라 평양 중심부를 재설계하고 정치적 상징공간을 조성한다. (김태윤, 2022:97, 128) 〈신혼부부〉는 한국전쟁 이전 ‘민주기지’의 중심도시였던 평양이 전후복구 과정에서 명실상부한 북한의 수도로 자리매김해가는 이 과정을 집약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스크린에 재현하기 보다는 “있어야 할 세계”를 향한 사회주의적 열망으로 평양이라는 도시의 새로운 공간들, 노동자들의 일터와 집을 묘파한다.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로 신작로가 닦이며 건물이 다시 들어서고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인간 관계 및 계급, 유기물이나 비유기물을 포괄하는 새로운 우주가 형성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신세계에서 간간히 불리는 관조적인 노래들은, 스탈린 집권 이후의 소련 뮤지컬 코미디들이 지닌 무작정 흥겹고 쾌활한 음조나 동화와 같은 정조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해방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북한 문학예술을 지배한 사조는 소위 ‘고상한 사실주의’였다. 신생 국가의 바른 ‘기풍’을 위해 고상한 덕성을 갖춘 모범인물을 창출하는 문예창작을 주문하는 지침이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개 1930년대 이후 소련이 정초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랐으나, 해방 직후 북한의 ‘혁명단계’는 아직 사회주의를 달성하지 못한 인민민주주의 단계로 여겨졌기에, 이행 단계를 상정하는 개념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다 〈신혼부부〉가 세상에 나온 직후인 1956년 즈음, 김일성 일인 지도 체제가 확고해지고 중공업 우선정책을 채택하여 생산력이 증대하자 북한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사회주의 리얼리즘)’를 공식 기조로 언급하게 된다.(정영권, 〈북한영화의 역사와 미학-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 《씨네21》, 2018. 06. 27.)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로 치부된 전시 공산주의와 달리, 스탈린의 지도 하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세계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교시로 삼았던 ‘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마지막 세계, 즉 묵시록의 시간을 이미 거친 시간이었다. 그리고 1969년에 이르러, 〈신혼부부〉의 서정적인 노래들은 피와 불의 바다를 재현하는 ‘혁명가극’으로 변모할 것이다. 4. 대기실의 몽타주 〈신혼부부〉는 뮤지컬 장르를 일부 채용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 뮤지컬 코미디의 전형과는 궤를 달리한다. 물론 미디엄 쇼트와 바스트 쇼트가 주를 이루는 〈신혼부부〉의 화편화 전략은 언뜻 봐선 1950년대 소련 영화의 주된 경향들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무수한 회의와 망설임 끝에야 비로소 재건 중인 국가의 부름에 응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은실이나, 자신의 아내가 사회적 노동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걸 많은 시행착오 후에 깨닫는 영철은, 유토피아 건설을 향한 무한한 신념으로 무장한 ‘전형적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거하자면 되레 ‘부정적 인간형’에 가까울 이들 부부가 마침내 결단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 〈현기증〉과 같은 히치콕의 연출작에서 자주 만나기도 했던 - 줌인트랙아웃 쇼트는 여전히 아방가르드적이다. 문예봉이 분한 반장이 과거의 피땀어린 작업을 술회하는 시퀀스는, 전경에 기계를 배치하고 인물은 초점을 흐린 채 후경에 둔다. 공업 중심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신생국가 북한의 이념을 형상화하는 표현주의적 연출이라고 부연할 만한 장면이다.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영철이 사과하여 공장에 복귀하기까지 은실이 주로 머무는 집 내부와, 은실을 찾아와 집 밖에서 부르는 공장 동료들의 활력을 때로는 나누고 때로는 합하며 재배치하는 〈신혼부부〉의 편집 방법론은 1920년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영화의 몽타주를 전범으로 삼은 듯 보인다. 1957년에 공개된 윤용규의 〈어랑천〉을 보고 쓴 박철(평론가로 추정)의 아래 글(「서정적 수법이 탁월한 공훈배우 윤룡규」, 《조선예술》, 1957.8)은 윤용규의 작가적 역량, 특히 그의 몽타주에 대한 당대 북한 영화계의 높은 평가를 어림하게 한다. 전문은 한상언 박사의 블로그 에서 볼 수 있다.(현재 통용되는 표준 한국어 규정과 다른 표기 용례를 고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두었다.) “(전략) 전후에 제작한 〈신혼부부〉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복구 건설에 궐기하고 있는 인민들의 생활 화폭이 경쾌한 수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일군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공명주의와 개인주의가 우리의 건설 사업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었고 한편 가정에 대한 낡은 관념이 발전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극복되여 가는가를 이야기 해 주었다. 이 영화는 평화와 행복을 창조하고 있는 공화국 근로자들의 영웅적 노력투쟁과 이 과정에서 힘차게 일떠서는 전후 복구 건설의 웅장한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노동의 빠포스를 일관시키면서 공화국의 불패의 생활력을 과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윤룡규는 창작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상 감정을 작품에 정확히 반영시키고 있으며 역사 발전의 중요 모멘트에서 버려지고 있는 사변들을 감동적으로 모사하면서 자기 자신도 현실과 함께 발전해 나갔다. (중략) 선이 굵고 서사적인 수법에 능한 예술가와 섬세하고 서정적 수법에 능한 연출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윤룡규는 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다. 그의 이와 같은 창작적 특성은 영화의 분위기 묘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 뜨락또르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마을 안 골목길들에서 아이들이 환성을 올리며 달려 나온다. 길목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이며 돼지들이 달려드는 뜨락또르에 놀라서 기급하여 달아난다. 마을 아이들과 아낙네들의 신기로운 시선이 뜨락또르에 집중되자 운전대에 앉아 있던 명춘보는 그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면서 의기 양양행서 뜨락또르를 몰아간다.…… 이것은 영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의 한 장면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 장면은 전체 구성으로 보아 주선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 장면이 전후 관계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낙후한 생산도구로 농사를 지어 오는 농민들에게 있어서 근대적 농기계인 뜨락또르의 출현은 경이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룡규는 이와 같은 정황을 신기한 괴물의 출현에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닭, 돼지들의 유모라스한 화폭과 마을 어린이들과 아낙네들의 감정과 또 앞으로 농촌의 개변에 중요한 역할을 놀게 될 뜨락또르 운전수의 궁지에 찬 시선을 통하여 집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정적 분위기가 안받침되여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개간지에 뜨락또르가 도착하였을 때 이를 환영하는 농민들의 환희에 찬 감정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법은 〈신혼부부〉에서도 재치 있게 적용하고 있다. 례를 들어 신혼부부들이 시내로 구경을 나왔을 때 부닥치는 분위기 묘사는 지금까지 신방을 지키고 있던 신부의 감정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게 형상되였다. 복구 건설에서 로력적 위훈을 세우고 있는 인민들의 씩씩한 모습, 힘차게 일떠서는 웅장한 거리르 이 모든 정황은 신부가 상상하던 지난날의 그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벅찬 현실 속에 신부를 안내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자기를 뒤에 남겨 두고 훨씬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자각하게 되며 온화하던 그의 감정 세계에서는 파문이 일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 윤용규는 인간의 감정 세계에 침투하는 예리성으로써 신혼부부의 섬세한 감정의 교차를 파악하고 형상에 옮겨 놓음으로써 백화점 장면 또는 가정 내에서의 생활 분위기들에서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생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윤룡규는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인간들의 생활감정에 침투하며 생활적 디테일을 발굴하여 인물들의 성격을 형상해 내는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중략) 우수한 몬따쥬와 영화의 정확한 리즘과 템포의 조성은 관객들의 예술적 감흥을 환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다.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의 개간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경쾌한 리즘과 템포는 농민들의 노동에 대한 희열과 노동 과정에서 조성되는 율동과를 정확히 결부시켜 주었다. 〈신혼부부〉에서는 건설장 장면에서 얼마 길지 않은 화면들을 훌륭하게 몬따쥬함으로써 건설의 벅찬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묘사하였다.(후략)” 박철은 “역사 발전의 중요 모멘트에서 버려지고 있는 사변들을 감동적으로 모사”한다고 진술하며 윤용규 영화 속 몽타주의 힘을 꿰뚫는다. 그가 언급하는, 은실과 옛 동료가 만나는 공사현장 몽타주와 은실 부부가 산책하는 대동강변 몽타주는 인물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인물뿐 아니라 꽃, 아코디언, 책, 탁자, 스탠드, 창틀, 그림 엽서, 시계, 벽에 걸린 옷과 모자, 빨래, 사과, 밥상 등 실내 정물을 비롯한 〈신혼부부〉 속 사물들은 몽타주라는 이론과 실천의 근간이 되는 ‘파편’으로 작동한다. 이 “이질적인 시간들의 파편”은 “또 다른 생성의 잠재성을 내포하며 (사유의) 섞임, 교환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며, “‘잃어버린 것으로 기억된 것’이자 존재의 희미한 전조”로 현전하며 잠재적 카오스라 할 파편화 상태에서 충돌하고 투쟁하며 길항하다 어느 순간 “단박에 빛의 속도”로 결합하여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전대미문의 관계” (이정하, 2022:118~121, 327)를 미구에 창조할, 새로운 역사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하는 몽타주를 이뤄낸다. 글 서두에서 언급했던 전시 도록 64쪽에, 1956년 중국 영화 잡지 《대중전영》 15호 표지에 실린 〈신혼부부〉 컬러 스틸이 실려 있다. 은실은 사과를 깎고 있고 공장 막내 옥단이가 은실을 지켜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손짓을 한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사과는 부부생활의 ‘위기’를 맞게 될 은실과 영철의 신혼집 탁자 위에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놓여 있다. 사물과 사람이 부딪히며 접속하여 구축하는 〈신혼부부〉의 리듬과 템포는, “영화의 기계적 지각으로 시각적 무의식 지대, 나아가 일상적 무의식 지대”를 목도할 수 있으며, “이 일상적 무의식 지대가 우리의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고 파악되지 않는 비결정적 영역이자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의 틀에서도 빠져나가는 영역”이라던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속 한 구절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벤야민의 스승 에른스트 블로흐는 당대의 현실을 복수적이고 공시적인 시간성, 곧 ‘비-동시대성’이란 개념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하며 그 방법론을 현대예술의 몽타주에서 찾으려 했다. 블로흐에 따르면 몽타주는 근대 도시의 비-동시대적 시간성에 정합적인 인식 형태이다. 장기지속된 시간 동안 과거의 지층에 잠재해 있다가 현재라는 이질적 공간에 급작스레 출현하는 ‘역사적 징후’를 현시하는 형식인 몽타주는 바로 그러하기에 ‘지금-시간’을 혁명적 아방가르드로 이행시킬 ‘중지(중단)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몽타주로 해체된 과거의 대상들에서 이전에 현실화한 적이 없는 잠재적 힘을 포착하여, 사물에 잠재한 힘들을 해방하고 해방된 힘으로 미래를 축조할 초석을 마련하자고 블로흐는 주창한다. 한편 죄르지 루카치가 정초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익히 알려져 있듯 몽타주를 리얼리즘 미학에 반하는 형식주의 방법론의 정점으로 여겼다. 루카치에게 있어 “통일성을 깨뜨리고 유기적인 것의 소멸을 야기”하는 몽타주는 역사적 데카당스의 징후를 드러내는 명백한 표징일 뿐이었다.(이정하, 2022:326~327, 329, 332~333, 335) 블로흐의 역사의식을 빼 닮은 사유를, 후학인 모스크바-타르투 학파를 대표하는 문화기호학의 창시자이며 영화이론가였던 유리 로트만의 저작 『문화와 폭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트만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의 관계는 대칭이 아니다. 미래는 가능태의 공간이며, 현재란 아직 전개되지 않은 의미 공간의 갑작스러운 점화이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미래의 모든 발전가능성을 자신 안에 담지하고 있다. 이 가능성 중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인과 관계나 핍진성의 법칙을 따르진 않는다. 미래의 선택은 우연히 실현된다. 그러하기에 그 선택은 극도로 높은 정보성을 지니게 된다. 동시에 폭발의 순간은 잠재적 가능성으로만 남은 다른 노선들을 잘라내고 인과 관계의 법칙이 다시 작동하게 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폭발의 순간은 체계의 모든 정보성이 급격히 늘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완만한 발전은 이제 완전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노선으로 도약한다. 체계 내의 모든 요소가, 혹은 폭발로 인해 미래의 운동가능성이 구축한 망 속으로 우연히 들어온 다른 체계의 요소조차, 폭발의 결과로 태어나 미래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지배적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단계에서 이미 그것은 사건들의 예측 가능한 연쇄를 만들어낸다. 폭발적인 역사의 국면에서 이루어진 모든 미래 예측의 경험들이 증명해주는 바는, 역사의 급격한 전환을 정확히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폭발이 소진되는 순간은 전개 과정의 전환 국면을 표상한다. 역사의 영역에서 이는 향후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자기를 인식하는 지점에 해당한다. 이후의 발전 과정은 의식적으로 우리를 폭발의 최초 지점으로 되돌릴 터이다. 이미 발생한 사건이 관찰자의 판단에 투영되며 새로운 존재성을 획득한다. 이때 사건이 근본적인 변모를 겪게 되는데, 즉 우연히 발생했을 뿐인 사건이 이제 유일한 가능성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관찰자의 의식 속에서 예측불가능성이 법칙성으로 탈바꿈한다. (로트만, 2014: 29~32) 『문화와 폭발』을 한국어로 옮긴 김수환은, 로트만이 쓴 구절을 공들여 인용해가며 다음과 같은 역자 해제를 썼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다룬 이 시(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예술가」)에서 제시되는 영감의 순간은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는, 예측 불가능한 폭발의 국면과 다르지 않다…. “기호학적 지층에 뚫린 창문”으로서 폭발은 불가피하다. …만일 그 창문이 없다면, ‘기호계’ 역시 존속 할 수 없다. 창문(폭발) 없는 기호계(문화)는 더 이상 약동하는 생성의 메커니즘이 아닌 죽어버린 감옥이 될 뿐이다. 폭발은…가능한 것이 아닌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향해 조준된 개념이다…. 문화와 폭발, 그것은 모든 허용된 예측가능성의 경계 너머로 돌파하는 예외적 사건의 행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작동의 원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지나갈 균열의 장소, 곧 “기호학적 창문”을 요구했던바, 바로 그 창문이 ‘폭발’의 이름으로 대두한 것이다.”(로트만, 2014:310~311, 315, 329, 332~333) 〈신혼부부〉에는 말 그대로 ‘창문’이 수 차례 대두하며 다음과 같은 몽타주를 동반한다. 영철이 누워 있는 직장 기숙사 창문 밖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걸려 멈춘 달의 형상. 공장을 그만두고 답답해하는 은실이 바깥을 내다보는 창에 걸린 레이스 커튼의 미세한 흔들림. 이 장면들은 연속적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찰나의 이질적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며 새로운 시간성을 개시한다. 다시 김수환을 인용하자면, 폭발은 “기존의 상황을 급변시키는 급격한 단절의 사태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사태를 가능케 하는 어떤 조건의 급작스러운 개시”를 뜻한다. 또, 폭발은 혁명적 사건의 발생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위한 가능성의 급작스러운 열림이다. 이는 연속적 과정들의 시간성 안에서 온전히 재현될 수 없기에 분절되고 탈구된 시간이 되며, 이 ‘빠져나온 시간성’ 안에서 불가능했던 잠재태가 가능태로 변모한다. (로트만, 2014:332, 334)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탐색하며 창문을 바라보는 은실과 영철 부부는 이 시공에 개시되는 “폭발의 시간성”에 휘말린다. 해방공간의 전후 동안 남북 양측에서 윤용규의 동료였던 임화도 일제강점기에 쓴 글에서 벤야민과 블로흐, 로트만을 연상하게 하는 역사관을 밝힌 바 있다. 「조선영화발달소사」, 「역사·문화·문학: 혹은 시대성이란 것에의 일 각서」 등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임화가 조선영화 및 역사기술을 다룬 저작의 구조를 살피며, 손이레는 임화가 뒤엉킨 시간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영화의 형성 과정을 기술한다고 분석한다.(손이레, 2018:376~379) 손이레에 따르면, 시급히 과거를 탐구하기 위해, 임화는 위기라는 감각을 압도하는 지금-여기의 조건을 강조한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발견적 접근은 임화의 시간성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일부분이 아직 과거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가 아니라 현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과거이며,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에 대하여 우리의 주요한 관심이 향해 있기 때문이다. 임화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성이 뒤얽혀 있음을 “현실성”과 “가능성”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 과거의 가능성 중 현실화된 것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과거: 현실화된 것 중 한때 가능성이었던 것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 현재의 가능성 중 미래에 현실화될 것 임화가 역사를 통해 모색하려는 바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방통행로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가능성과 현실화된 가능성들의 관계,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조건 관계를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현실성과 가능성 간의 혼종을 내비치지만, 동시에 과거와 미래의 접촉면인 현재의 어떤 가능성이 현실화되는지는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도 임화는 지적한다. 가능성과 현실성의 뒤얽힘에서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현재가 생성되고, 현실성의 조건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배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화가 식민시기부터 암중모색했던 이 조건들의 창문은, 그에게만은 휴전 직후에 영영 닫히고 말았다. 5. 대기실 밖으로 나서다 〈신혼부부〉 제작을 전후한1954-56년 사이에 ‘전후복구3개년계획’이 진행된다. 1956년 말에는 천리마운동이 노동강화·경쟁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경제 자주노선 천명은 물론 정신개조를 위한 장기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조선필림’ 로고조차 평양 복귀 직후엔 모스필름의 그것과 닮은 인민 형상이었다가, 천리마운동이 시작되고 사람들 사이에 말이 끼어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는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1956년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대의원 회의에서 비밀연설을 하며 점화한 스탈린 격하 운동의 시기와도 겹친다. 따라서 북한도 소련의 상황에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55년에는 남로당계를 대표하던 박헌영이 우선 제거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전후복구를 위한 경제 원조를 청하러 동구권 국가를 방문 중이던 김일성을 윤공흠 등이 비판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반당종파분자로 몰린 서휘 등 4인의 연안파는 중국으로 탈출한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 외에도 소련파 등과의 연합정권 성격이 짙었던 북한이 확고한 김일성 단일 체제로 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에는 영화감독 정준채의 동생인 음악가 정추와 모스크바 영화학교 유학생들도 연루되었으며, 이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소련으로 망명한다. 영화 〈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 김소영 , 2017)가 다루어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역사다. 이즈음 김일성은 영화 등 예술창작노선에도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는데, 윤용규가 〈어랑천〉을 발표하는 해인 1957년 1월17일에는 조선영화예술촬영소에서 연설했고, 1960년 무렵엔 김정일에게 영화예술 ‘영도자’의 지위를 승계한다. 이 시기에 북한은 자유주의적 문화예술인을 “반동적 부르주아 작가”라 칭하며 ‘반우파 투쟁’도 전개한다. 1956년 1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문학예술분야에서 반동적 부르주아사상과의 투쟁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결정을 내려 기석복, 정률 등을 “협애한 지방주의 및 종파주의” 혐의로 1952년에 비판 받은 김남천, 이태준 등을 지지하는 부르주아 작가이자 종파분자로 지목한 뒤, 같은 해 4월에는 “이러한 부르주아 반동 작가들이 전파한 사상적 악영향”을 완전히 숙청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또, ‘8월 종파 사건’ 직후인 1956년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 나선 김일성은 카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혁명으로 확립하여 “자본주의 사상잔재 버리고 당과 혁명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예술인”이 되라고 요구한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는데, 1958년에야 북한과 중국에서 ‘반우파투쟁’이 일단락되며 예술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료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만을 천명하는 교조적 통제가 문화예술계마저 지배하게 되었다.(유우, 2020:148) 〈신혼부부〉가 상영된 이듬해에는 천리마노동운동을 처음 다룬 영화인 〈행복의길〉(전동민), 한설야(그는 1960년대 초에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대표작 『력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김일성을 항일유격투쟁의 민족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일인 체제 강화를 선전하는 영화 〈백두산이 보인다〉(김락섭)가 연달아 나온다. 북한영화가 끝에서 두번째 세계의 대기실을 나와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 때를 이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후, 1960년대에는 “당과 혁명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기적적인 성공을 거두는 천리마 영웅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1960년 11월 김일성이 ‘작가, 작곡가, 영화 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천리마 시대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하자」라는 연설을 통해, 문예 창작에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현실적 주제, 즉 “천리마의 기세로 내달리고 있는 우리 인민의 이 위대한 창조적 생활”과 “천리마 시대 사람들의 보람찬 생활과 영웅적 투쟁 모습”을 형상화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유우, 2020:182) 또, 앞서 언급한 〈정방공〉을 비롯해, 〈갈매기호 청년들〉(1961), 〈붉은 꽃〉(1963) 등 스탈린 식 뮤지컬 영화들도 다수 만들어졌다.(정영권, 같은 기사) 한편, 〈신혼부부〉의 인간형은 곧 시대정신이 되는 천리마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철과 은실은 전후 복구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성심을 다하면서도 회의하고 부부싸움도 하는 평범한 소시민적 인간이다. 문예봉이 연기하는 선반 공장의 작업반장 선배도 목표량 달성을 위해 동료들을 곡진하게 추동하지만, 천리마 시대의 초인적 영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신혼부부〉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전후 복구와 새로운 공화국 건설 과정에서, 개인 영웅주의를 되레 비판하는 작품으로 당대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세계는 천리마 운동으로 정향된 것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천리마 시대와 이후에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이 아닌 다른 시공으로 향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품고 대기실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이렇듯 사뭇 ‘비-동시대적’인 작품을 창작한 윤용규는 1955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발탁되고, 1964년에는 중앙위원이 된다. 같은 해에 그는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이 되고, 배우로도 활동하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후 ‘복고주의자’로 몰려 한동안 영화계에서 떠나있어야 했다. 윤용규와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던 문예봉도 1969년부터 활동을 중단했다. 잡지《조선영화》 1965년 4월호에 나운규 를 회고하며 찬사를 섞은 일이 빌미가 되었다 한다. 윤용규는 1980년 〈춘향전〉을 다시 한번 만드는데, 유원준과 공동연출했다. 일제강점기의 첫 발성영화인 < 춘향전 >( 이명우 , 1935)에서 성춘향을 연기했던 문예봉이 이번엔 이몽룡의 모친 역을 맡아 북한영화계에 복귀했다. 또, <마음의 고향>에서 주인공 도성의 어머니로 분했던 김선영 이 이 작품에서는 월매로 등장한다. <춘향전> 제작 후에 다시 활동이 뜸하던 윤용규는, 1984년 5월 22일에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 하는 역사적 위업에서 연극 영화 예술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자기의 임무와 책임에 충실했”다며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이준엽·함충범은 훈장 수여의 실제 연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약 한 달 전인1984년 4월 19일, 신상옥과 함께 첫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에서의 활동을 기정사실화하고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최은희가, 〈마음의 고향〉으로 자신을 주연배우로 부상시켜 준 윤용규에게 사의를 표했다는 해석이다. 훈장을 받은 윤용규는 1986년에 〈가야금에 깃든 사연〉을 연출했는데, 이 작품 이후의 행적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영화 연구자들은 윤용규가 다시 활동을 중단한 까닭을 최은희·신상옥이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탈출한 사건과 연관하여 유추한다. (이준엽·함충범, 2018:28, 46~48)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전환의 국면이 배태한 영화 〈신혼부부〉와, 시간성이 분기하는 역사와 현실을 현시하는 역량을 지녔던 영화인 윤용규가 ‘오래된 미래’인 과거에서 도래한 2021년. 지금-여기 또한 무언가 다른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끝에서 두번째 세계’의 대기실일 지도 모른다. 다시 김수환에 기대자면, 혁명의 진정한 아포리아는 그것의 시작이 아니라 끝의 지점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모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기실에서 〈신혼부부〉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시네마테크 KOFA의 큰 스크린에서 〈신혼부부〉를 꼭 다시 보고 싶다. 참고문헌 - 이준엽•함충범, 「남한과 북한에서 제작된 윤용규 감독 영화에 대한 비교 연구」, 『한민족문화연구』 제63권 63호, 2018. - 유우, 「한국전쟁기 중국에서의 북한 영화에 관한 연구」, 『현대영화연구』 25호, 2016. - 한상언, 「6.25전쟁기 북한 영화와 전쟁 재현」, 『현대영화연구』 11호, 2011. - 한상언, 「전후 북한영화의 재건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84호, 2020. - 유우, 「북한과 중국의 영화 교류 연구(1956~1966)」, 『비교문화연구』 제59집, 2020. - 김수환, 「혁명과 소리」,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2』, 박종소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17. -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 유우, 「한국전쟁 이후 북한영화의 제작 및 중국에서의 상영(1955∼1960)」, 『영화연구』 82호, 2019. - 김태윤, 「전후복구시기 ‘수도’ 평양의 탄생과 상징공간의 조성(1953~1956)」, 『도시연구: 역사·사회·문화』 29호, 2022. - 이정하, 『몽타주』, 문학과지성사, 2022. - 유리 로트만, 『문화와 폭발』, 김수환 옮김, 아카넷, 2014. - 손이레, 「도래(해야)하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고유성: 임화의 조선영화론 재고」,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영화 이론/비평의 감정 어린 시간』, 김소영 엮음, 2018, 현실문화연구 * 가독성을 위해 본문에 필자 이름과 발행시기, 해당 쪽수만 괄호 안에 표기했던 문헌 서지정보를 인용한 순서대로 밝힙니다.
달달 하다. 우선 제목부터 달달 한 애니메이션, < 도쿄 마블 초콜릿 >. 이 애니메이션은 구성이 특이하고 재미있는데, 어느 커플의 사랑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나눠 두 가지 이야기로 풀어준다는 것이다. ‘전력소년’(28분)과 ‘또 만나요’(27분)라는 두 편의 이야기로 같은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먼저 본 이야기의 밋밋함을 뒤에서 채워내며, 보는 이들의 입안에서 달콤한 마블링을 완성해 낸다. 눈이 내리는 로맨틱한 도쿄 어느 곳에서 남녀의 감정이 뒤섞인다. 사랑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이 쓰디쓴 오해와 달달 한 설렘이 만나 달콤쌉싸래한 초콜릿을 만들어낸다. 지나친 소심함 탓에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못해 항상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곤 했던 남자는 새로 사귄 여자 친구에게는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는다. 반면 항상 텀벙대며 실수를 연발, 연애에 실패해 왔던 여자는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그에게, 또 실수를 저질러 차이기 전에 먼저 이별을 선언할 준비를 한다. 함께 쌓아온 시간들에 대해 이렇듯 다른 견해를 가지고 상반된 선택을 하는 그들의 이름은 역시 남자와 여자. 남자의 이야기를 먼저 보는 순서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반대순으로 보면 색다른 즐거움이 있는, 조리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레시피가 바뀐 마냥 또 다른 맛이 나는 재미가 있다. 자, 그럼 리뷰의 시선도 한번 뒤집어 보자. 극 중 초반, 이들이 부르는 연가에서 중요한 악상기호가 되어주는 캐릭터 하나가 말 그대로 난입한다. 그런데 안 귀엽다. 이질감이 든다. 갑자기 포켓몬스터가 등장한 느낌이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키와 방향성이 되는 ‘미니로바(미니 당나귀)’ 라는 캐릭터를, 도대체 왜때문에 이런 생김새로 그려 넣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좀만 더 귀엽게 디자인해줬더라면! 짜증스러울 정도로 소심한 남자와 코미디 같은 비극들을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여자. 내 친구라도 공감 안가고 답답한 이 둘은 그치지 않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연의 향연들 속에서 소꿉놀이 수준의 연애를 닭살 하나 돋지 않고 한다. ‘사랑한다’도 아니고 ‘좋아한다’이다. 물론 그들은 진지하며 한없이 로맨틱하다. 이 작품은 < 인랑 >과 < 공각기동대 >로 유명한 프로덕션 I.G에서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만든 ‘연애작품’이라 한다! 그렇다 한들 2008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08)에서 경쟁부문 대상을 탄 작품이기도 하다니 제법 볼 만한 작품인 듯싶다. 내 연애세포들의 나이를 알고 싶다면 이 애니메이션을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보는 내내 지루했고 끝난 후에는 가려운 뒷목을 긁고 있다면 당신은 제법 숙성되거나 단단해진 심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고, 말랑말랑하고 달달 한 기분이 되어 있다면 당신은 순수하고 로맨틱한 사람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좋으므로 안심하고 보자. 당신이 여자라면 ‘또 만나요’부터, 남자라면 ‘전력소년’부터 감상할 것을 추천해 드리는 바이다. 어차피 DVD도 각기 다른 디스크로 분리되어 있다.
'산책, 양산을 든 부인' '야외 습작. 왼쪽을 마주보는 여인' '야외 습작, 오른쪽을 마주보는 여인' 같은 영화를 두 번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리메이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위대한 모네를 생각하는 중이다. 1875년 클로드 모네는 <산책, 양산을 든 부인>을 그린 다음 거의 같은 구도로 1886년 <야외습작, 왼쪽을 마주 보는 여인>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그해 이 작품과 하나의 짝을 이루는 <야외습작, 오른쪽을 마주 보는 여인>을 그렸다. 이 작업은 반복이지만 둘 사이의 차이에는 아르장퇴이으의 철교와 봄꽃이 만개한 들판에서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다음 다시 베퇴이으에서의 겨울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모네는 같은 대상을 다시 그렸지만 그는 그 대상이 이미 같은 시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대상이라고 불렀다. 그런 다음 수련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베르니에서의 수련. 그리피스가 <국민창생>을 찍고 있을 때 모네는 그의 정원에서 수련으로 천지창조를 하고 있었다. 하나의 수련. 다음 수련. 오전의 수련, 오후의 수련. 여기에는 예술에서의 독특한 보편성과 특수한 일반성 사이의 대립이라는 다소 까다로운 질문이 뒤따라온다. 핵심은 예술이 행위이기 때문에 반복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배움을 영화에로 가져오고 싶다. 동일한 작업이 반복될 때 나는 거기서 종종 진정한 행위를 발견하곤 한다. 히치콕은 1934년 영국에서 <암살자의 집>을 찍은 다음 할리우드로 건너와서 1956년에 <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를 다시 만들었다. (두 편의 영어제목은 모두 이다) 오즈는 1934년과 1959년에 두 편의 <부초>를 찍었다. 또한 1949년에 < 만춘 >을 찍은 다음 같은 이야기로 1962년 예기치 않게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된 < 꽁치의 맛 >을 찍었다. 프리츠 랑은 몇 차례이고 지치지 않고 마부제 박사의 커튼 뒤로 돌아갔다. 작품에서 무언가 반복될 때 왠지 예술에서의 순수한 순간성이랄까, 혹은 그것이 담보하는 영원성이 손상 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질문을 바꿔보고 싶어진다. 영화에서 반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대신 반대로 이들 작품 안에 들어와서 무엇이 반복을 성립시키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영화에서의 일반적 규칙을 유지시키는 따분한 보편성으로부터 재빨리 빠져나와 반복을 성립시키는 바탕 위에서 보다 우월한 형식을 향해 도약하려는 의지의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서편제 >, < 천년학 >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다. 무언가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잘 전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 여기에는 분명히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 니체의 교훈.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가장 성공적인 반응은 실패이다. 그런 다음 거기서 무엇을 덧셈하는가, 혹은 뺄셈하는가. 다소 멀리서 임권택 의 영화를 따라가고 있으면 뭐랄까, 몇 차례이고 같은 영화를 두 번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이 임권택의 참된 운동 중의 일부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 자신은 이런 운동에 대해서 반복해서 경멸을 표시했고 때로는 대담의 형식을 빌어서 자기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두렵다고도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한다. 당신이 잘 알만한 사례. 그런 의미에서 나는 < 천년학 >이 < 서편제 >의 속편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이 영화를 다시 찍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년학>은 <서편제> 이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치 <서편제 version 1.5> 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많은 이야기가 그 후일담이지만 또 그만큼 많은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진행된다.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서편제>가 처음 시작했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음 <천년학>을 다시 시작할 때이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미처 <서편제>에서 하지 못한 버전의 다른 줄기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서편제>에서 송화의 동생 동호는 가족을 떠난 다음 고수로서 북을 놓아버리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 <천년학>에서 동호는 가족을 떠나는 것까지는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그런 다음에도 계속 북을 두드리며 누나 송화를 찾아다닌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장군의 아들 >을 만들면서 임권택은 “이제까지 부정해왔던 영화들, 그런데 몸에 익어버린 것들로부터 얼마나 떨치고 나왔는지 나 자신을 한번 점검해보고 싶은 거요” 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은밀한 예를 들고 싶다. < 만다라 >를 찍은 다음 원래 임권택이 만들려고 한 영화는 비구니에 관한 이야기 < 비구니 >였다. 겉으로는 <만다라>에서 스님을 찍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비구니를 찍음으로써 서로 젠더(sexual difference)로서 하나의 짝패를 이루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삶 속에서) 소승불교를 다룬 다음 (한국전쟁을 경유하는 역사 안에서) 대승불교를 다루려는 것이 불교에 대한 임권택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질문이었다. 그러나 <비구니>는 1987년 6월 11일 제작가처분 재판 이후 제작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임권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좀 더 기다린 다음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를 찍었다. 당신이 <비구니>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시나리오를 함께 읽어보면 두 영화의 상당히 많은 씬이 서로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 잡초 >를 볼 수 없지만 거의 같은 이야기를 현대로 옮긴 < 맨발의 눈길 >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임권택은 성공한 영화를 반복한 적이 없다. 반대로 그 영화가 불만족스러울 때, 무언가를 망쳐버린 것에 대해서 보상을 요구하기라도 하듯이, 미처 치루지 않은 셈을 마저 청산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마치 그 자신의 억압의 귀환이기라도 한 것처럼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분명히 통과에 실패한 무언가가 웅성거린다. 그때 둘 사이의 차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 내일 또 내일 >, < 오염된 자식들 > 나는 어쩔 수 없이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순서를 역순으로 본 영화들이 있다. 그때 나중에 온 것을 먼저 본 다음 먼저 온 것을 나중에 보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종의 전도된 관계의 네트워크를 발견하게 된다. < 오염된 자식들 >이 막 개봉했을 때 먼저 보고 난 다음 < 내일 또 내일 >을 한참 뒤에 보았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원작 소설을 각색하였고, 각자 각색을 했으며, 서로 다른 배우들이 출연한다. <오염된 자식들>은 유익서 의 원작 「비를 타고 오른 망둥이」를 나한봉 작가가 각색하였고, 정일성 이 촬영했으며, 안성기 가 주연이고, 화천에서 제작하였다. <내일 또 내일>은 김용성 의 동명 원작소설을 홍파 감독이 각색하였고, 이석기 가 촬영했으며, 이덕화 가 주연이고, 현진에서 제작하였다. 이 두 편의 영화가 시간적으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내일 또 내일>은 1979년에 만들었고, <오염된 자식들>은 1983년에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순서를 뒤집어서 보았을 뿐만 아니라 기억 안에서 서로 너무 멀리 있었다. <내일 또 내일>을 처음 보았을 때 단지 내가 이미 이 영화를 어디선가 보았다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저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다음 며칠 후 <오염된 자식들>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임권택 감독님과 두 번째 전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고 순서대로 영화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둘을 거의 연속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는 희미했고 인상적인 설명 이상으로 둘을 묶는 것은 까다로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을 돌리지 않고 <오염된 자식들>은 <내일 또 내일>을 다시 만든 것입니까, 라고 질문했고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라는 무심한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다. 여기서 지금 작가(les auteurs)들은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변주한다는 작가주의 이론을 따분하게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엔 거기 머물면서 활동하는 힘이 그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말하자면 내부의 힘. 거기엔 멈추지 않고 거듭 되돌아와서 미처 감당하지 못한 것을 끌어들여 자기를 다시 구성하는 것이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반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순서대로 따라가 볼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 내일 또 내일 >을 건드린 다음 < 오염된 자식들 >을 만져볼 것이다. <내일 또 내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안에서 인물들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의 선은 느슨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이접은 거의 종합을 와해시킬 정도로 서로 섞이고 끌어당기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조정되지 않는다. 단지 거기 변주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 그들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공생을 하고는 있는데 각자의 기호들이 만들어내는 힘이 어떤 협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을 불협화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서로 모호한 채로 머물면서도 이미 수없이 본 진부한 이야기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있을 때, 그렇다, 착취라고 할 수밖에 없는 관계 사이에 생겨나는 교차의 규칙들은 어디에 기대고 있는 것일까. 그러므로 여기서는 먼저 이야기의 선을 따라가면서 갑자기 생겨나는 굴곡들을 쳐다볼 것이다. 이상할 굴곡들, 어쩌면 얼룩들. 거기서 잠시 환상이 멈추고 무언가 응답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접었지만 그것을 바라볼 때 매듭처럼 보이는 무언가, 라는 이것임. 진우와 규화 규화와 미연 아마도 나는 지금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가장 난처한 순간 중의 하나에 머물고 있는 중일 것이다. 무언가 비스듬히 자리 잡고 있는 장면들. 그 사이에 끼어드는 잔인함. 구태여 바쟁을 빌려 설명하면 < 내일 또 내일 >은 잔혹영화이다. 세상에 대한 이상한 비전, 화면 위에 표현되는 것과 정반대의 내밀한 내용들. 그 사이에서 살과 신경을 필요로 하는 긴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쟁의 예. 루이스 부뉴엘의 멕시코 영화들. 윌리엄 와일러의 < 작은 여우들 >. 히치콕의 < 패러다인 부인의 사랑 >. 아마도 트뤼포라면 <염소좌 아래서>를 추가했을 것이다. 내가 떠올린 예. 임권택의 이상한 영화들. 나는 다소 장황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니는 규화와 진우는 고향 죽마고우이다, 라고 썼지만 주인과 노예에 가까워 보인다. 이 영화의 첫 장면. 함께 걸어가던 규화는 길거리 리어커 과일상에게서 귤을 집어 들며 다짜고짜 진우에게 계산을 하라고 말한 다음 그냥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러면서 규화는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우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자기가 계산을 한다. 규화와 진우, 미연은 어려서 소꿉놀이를 할 때부터 친구였고 진우는 미연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며 열심히 연애편지를 썼지만 규화는 그 사이에 “힘으로 미연의 육체를 점한 다음 자기의 여자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규화는 그걸 진우에게 비밀로 하고 지금 미연을 대전에서 만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기차를 타러 가는 규화를 바라보는 진우는 그걸 이미 알고 있다.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와 그걸 비밀로 삼고 있는 친구. 그런데 이 사이에는 긴장이 없다. 혹은 시작하자마자 그런 긴장으로 이 영화를 진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왜냐하면 규화는 미안한 감정이 없고, 이 영화는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진우의 체념한 목소리로(voice_over_narration)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이야기가 진우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정작 이야기의 진행은 규화의 편에 서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진우의 동선을 놓치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영화를 보다가 지금 진우는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조차 한다. 규화가 미연을 몰래 만나는 건 알지만 그 둘 사이의 시간의 디테일은 진우가 알 수가 없다. 그때 영화는 규화를 따라서 이동한다. 대전에 내려간 규화는 미연에게서 잠자리를 취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다. 물론 규화는 미연에게도 미안함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내일 또 내일>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시작한다. 이야기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데 그들 사이의 관계의 감정이라는 문제로 들어오면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왜 이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이상한 관계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임권택은 이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떤 우여곡절도 없이, 추호도 설명할 생각 없이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이상한 여기. 여기에는 두 개의 환상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과정의 환상이고 다른 하나는 겪음의 환상이다. 그 둘 사이에서 주인공들은 견뎌야만 한다. 말하자면 고통 속의 기쁨, 그리고 기쁨 속의 고통을 보는 쪽과 공유하지 않으면서, 아니 그러기는커녕 매번 반대의 자리에서 주고받으면서, 그 자리로 갈 때마다 재빨리 반대의 자리로 오면서, 두 개의 과정이 소진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당신이 임권택 의 영화에 익숙하다면 여기에 또 다른 낯선 기호들이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은 시각적 내러티브와 청각적 선율이 서로 모순되게 작동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그는 이러한 불협화음이 간신히 만들어놓은 흥을 깨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그 대목에 음악이 없는 편이 좋다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 내일 또 내일 >은 반복적으로 (연주를 포함한) 노래가 끼어든다. 산울림은 이 영화를 위해서 새로이 작곡했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내일 또 내일’ 이외에도 ‘유리인형’과 ‘어디로 갈까’를 듣게 된다. 그중에는 인스트루멘탈 버전으로 녹음한 ‘바람 부는 강 너머’가 포함되어 있으며(이 노래들은 「산울림 4집」에 다른 방송 드라마를 위해 작곡하고 연주한 곡들과 함께 실려 있다), 임권택도 기꺼이 여기에 호응하여 이 영화 이전에 발표한 노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인트로 부분을 발췌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이 노래들은 이야기를 방해하고 있으며, 때로 가사 말은 은유적 비유로 읽히면서 마치 드라마의 예언자이거나 변사와 같은 역할을 하려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미셀 시옹의 지적처럼) 모든 노래 가사 말은 이야기에 덧붙여지는 순간 그것이 의도치 않는다 할지라도 일종의 몽타주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걸 임권택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그렇게 한다. 이때 이 노래들은 단순하게 주인공들의 진부한 드라마와 기이한 심리상태의 긴장 사이에서 어떤 명령처럼 들린다. 명령? 그렇다. 고통스러운 정감이여, 다시 한 번. 마치 진행되는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반복되어야 하기라도 하듯이 거기서 노래라는 통로를 통하여 달콤한 명령처럼 울려 퍼진다. 가희 이야기는 삼각관계에서 좀 더 복잡한 조합으로 옮겨간다. 졸업을 한 다음 규화는 기자로 입사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진우는 자취방에서 수공으로 인형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미연을 단념한 진우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데 그 여자를 만나는 자리에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이유로 규화를 찾아와 함께 나간다. 거기서 규화는 가희를 만난다. 말하자면 행위의 반복. 마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처럼 외상적 상황이 반복되고 미처 보지 못한 규화와 미연의 관계의 시작을 보는 것처럼 이야기는 진행된다. 모욕감을 느낀 진우가 먼저 떠나면서 “난 널 미워하고 싶어. 하지만 미워할 수 없으니까 난 참 딱한 놈이야” 라고 말하며 규화에게 돈을 건네준다. 하지만 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규화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계 좀 풀러”라고 요구하자 진우는 “미쳤구나. 넌 날 버렸어. 시계 주지. 이게 마지막이야. 절교야” 라고 말하고 떠난다. 그리고 그날 밤 규화는 가희를 데리고 호텔에 간다. 물론 여기서 벌어지게 될 상황은 자명하다. 그런데 진행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처음에 두 사람은 호텔 방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얌전히 앉아있다. 규화는 설득을 하지만 가희는 거절을 한다. 규화가 가희에게 다가가 (한편으로는) 무릎을 꿇고 (그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을 가하면서 섹스를 요구하지만 가희는 “자꾸 그러면 때릴 거야”라고 말하고는 규화가 벗긴 세미부츠를 빼앗아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쳐서 쓰러트린 다음 가방을 들고 재빨리 방문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규화는 복도까지 쫓아 나온 다음 가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질질 끌면서 방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가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쳐 넣고 핸드백을 집어던지고 발로 그녀를 짓누른다. 그런 다음 흠뻑 젖은 그녀를 다시 방문 바깥으로 끌고 나가 핸드백을 집어던지면서 “갈 테면 가봐”라고 쫓아내고 문을 닫아 버린다. 복도에서 망설이던 가희는 돌아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기면서 규화, 규화, 라고 이름을 부르며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이 장면은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감정선이 절단되는 듯한 각자의 거절 때문에 놀라게 되고 그런 다음 떠나려던 그녀가 되돌아와 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기면서 애처롭게 규화의 이름을 부를 때 포기해버린 (자유로운) 선택이 난처하게 만든다. 두 사람을 묶는 것은 폭력적인 행위의 교환을 나눈 다음에 이루어진 사랑의 행위이다. 이 새로운 조합이 생겨나는 동안 진우는 좀 더 이상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진우가 사는 자취방은 거대한 저택의 정원 저편인데 그 안채에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면서 한낮에도 잠옷에 가까운 옷을 입고 외롭게 지내는 미망인이 집사를 거느리며 살고 있다. 그녀는 종종 창문 바깥에 보이는 진우의 방을 쳐다보면서 시간이 나면 그를 방문하곤 한다. 그리고 진우가 가희를 만나러 외출하던 날에는 자신의 죽은 남편의 옷을 빌려주는 호의를 보여주면서 마치 오래된 아내처럼 직접 옷매무새를 만져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진우는 사랑의 기호에 대해서 몹시 둔감하거나 혹은 리비도의 몸짓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차라리 진우가 사랑하는 대상은 규화라고 하면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임권택 은 이 둘 사이에 게이 커플로서의 어떤 흔적도 남겨놓지 않는다. ( 김용성 의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갑자기 이야기는 여기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 가희는 큰 회사 회장의 애지중지하는 외동딸이었으며 “멋대로 어디론가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진 다음 한참 후에야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딸의 마음을 붙잡은 규화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 바로 그 순간 미연은 임신을 하고 이것이 추문이 되어 학교에서 퇴직을 당하고 서울로 규화를 찾아온다. 깊은 저녁 남산 레스토랑에서 만난 규화는 미연에게 임신중절을 요구하지만 거절하자 바로 눈 앞 낭떠러지에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며 밀어버릴 듯한 행동을 취한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조지 스티븐스의 <젊은이의 양지>에서 공장 노동자 조지가 재벌 집 외동딸 안젤라의 눈에 들자 동거하던 여자 앨리스를 보트에 태워 물에 처넣는 순간이다. 물론 이 영화는 시어도어 드라이저가 1925년에 쓴 「미국의 비극」을 각색하면서 자연주의 기법의 시선으로 다룬 냉혹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멜로드라마의 신파로 옮겨놓았다. 나는 임권택 이 원작소설을 경유하여 영화와 소설 어느 쪽의 영향 관계 아래 놓여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처구니없게도 규화의 행동은 레스토랑 음식을 서빙 하는 여자가 창문 바깥을 향하여 주문한 음식이 나왔으니 식기 전에 먹으라는 외침으로 마치 해프닝처럼 갑자기 중단된다. 무언가를 찢어버리는 것만 같은 개입. 사건을 포기해버리는 것만 같은 연쇄망의 절단. 하려던 행위가 중단되었을 때 여기에 고스란히 남은 불만족의 경제학은 다음 이야기의 장면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씬을 반복해서 보았고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꿈속의 무대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그래서 꿈속의 나쁜 행위에 대해서 누군가 꿈 바깥에서 외쳐서 깨우는 것만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그 유명한 프로이드의 예. 아버지, 지금 제가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세요. 여기서 다시 시간이 점핑하고 나면 출산을 앞둔 미연은 진우의 자취방을 찾아온다. 병원에서 딸을 낳은 미연은 진우에게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라는 충고를 한다. 말하자면 미연은 자신이 운명의 가장 밑바닥에 추락했을 때조차 진우와 맺어진다는 상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충고에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진우는 고향에 돌아가 결혼을 한다. 그 사이에 규화는 가희와 결혼을 한 다음 미국에서 비즈니스에 큰 성공을 거두고 돌아와 회사의 전무가 된다. 자, 이제부터 미연과 그 딸의 이야기가 남는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틀렸다. 영화는 여기서 삼분의 일이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며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규화와 결혼을 했지만 가희는 여전히 가출벽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집을 떠나면서 연극 연출자와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게다가 그녀는 미연과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규화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진우는 고향에서 결혼을 했지만 그의 아내는 새로운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날 때마다 요사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유혹한다. 미연의 딸은 그녀의 아버지가 키우고 그녀는 혼자서 가난하게 전화 교환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이때 이 모든 이야기를 규화에게 들려주는 사람은 (다소 놀랍게도) 예전 진우가 살던 자취방의 저택 주인인 미망인이다. 심지어 그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연의 집 주소도 갖고 있다. 여기까지 쫓아왔을 때 나는 거의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 그대로의 부조리. 삶의 일상생활이라는 장소 안에서 진부한 인물들은 계속해서 활동하면서도 매번 기괴한 선택을 반복해서 하면서 점점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들어나간다. 여기서 가능한 것들 중에서 매번 가장 나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단지 그들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야기는 잘 알겠는데, 잘 알 뿐만 아니라 이런 진부한 이야기의 진행에 대해서 비슷한 수많은 영화의 제목을 알고 있는데,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감정선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 내일 또 내일 >이 만족스럽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이 영화에 까다로운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상하게도 임권택 은 < 왕십리 >에서 < 오염된 자식들 >, 혹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세상의 밤 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왜 그런 것일까. 뭐랄까, 여기에는 곤궁에 처한 임권택이 있다. < 족보 >에서 < 짝코 >를 거쳐 < 만다라 >로 가는 임권택이 있지만 반대로 매번 마치 그 자리에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처럼 이 안으로 되돌아온다. 지금, 여기라는 문제는 단순하게 임권택에게 동시적인 삶의 평행관계가 아니다. 만일 여기서 올바른 대답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는 < 길소뜸 >의 냉담함과 < 티켓 >의 참혹함 사이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무언가 계속해서 실망스러운 과정의 반복. 그 안에서 부서지는 과거. 새로 떠오르는 기괴한 교환 관계. 임권택은 몇 번이고 물어본다. 그런 계약관계를 맺어도 괜찮은 것일까. 말하자면 당연히 몰락해야 하는데도 그 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세계라는 암흑. 자기가 포함되어 있는 세계의 변화와 영화가 바라보는 세계 사이의 무심함 사이에서 임권택은 반복해서 어디까지 몰입하여 건드려보아야 할지와 어디까지 다가간 다음 멈춰 서서 쳐다보아야 할지를 측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때의 이유이다. 임권택은 반복을 통하여 부분과 관계 사이에 놓인 암흑과 현실적인 동일성을 얻고 싶어 한다. 반복을 통하여 얻은 매번의 새로운 관계.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영화)와 (영화의) 세계 사이에 놓인 불화를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암흑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서사가 사라진 시간 안으로의 진입.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월드. 강제된 선택의 상황. 나는 당신에게 임권택이 <티켓>이후 < 화장 >까지, 1985년 이후 2014년까지 두 번 다시 우리와 평행하는 시간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물론 <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구니를 따라 산사를 떠돌면서 현재의 시간과의 끈은 느슨해진다. 그런 다음 <축제>를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하면 호남 저 시골 마을로 내려가 장례식을 치르는데 모든 시간을 바치고 있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 창(娼) 노는 계집 >조차 현재의 시간에 이르자 문득 영화가 끝나버린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말하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이 영화는 한지(韓紙)를 따라 현재의 시간을 떠나 불가능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미망인 말하자면 여기서는 당신께서 이 질문을 안고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 바란다. 아직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는데도 여기에 다시 규화와 미연의 딸 옥희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다. 규화는 세속적 성공을 노리면서 가희를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옥희를 데려가야만 하고 미연은 자기가 딸을 키울 결심을 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국영화사 안에서 < 미워도 다시 한 번 >(과 그 변주들)에서 수 없이 보았다. 임권택 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규화는 미연과 다시 한 번 그녀의 집에서 섹스를 나눈 다음 옥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진우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규화를 찾아온다. 그때 진우에게 미연이 술집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은 규화이다. 말하자면 규화는 옥희를 데려온 다음에도 계속해서 미연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사진을 진우에게 보여준다.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는 정념의 지옥. 모든 관계가 망가졌는데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생활이라는 기계. 하여튼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거의 맹목적인 사슬. 규화는 이제 사업에만 몰두하고, 미연은 옥희의 주변을 맴돌고, 진우는 미연의 주변을 맴돌고, 가희는 규화의 주변 바깥을 떠돈다. 이때 규화의 부동산 사업 확장을 위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물로 갑자기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미망인이 다시 (난데없이?) 그 앞에 등장한다. 미망인은 단지 “땅을 사자는 사람은 많아요. 우리 측에서 땅을 팔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들어요. 허지만 안 팔아요. 내 땅을 내놓을 이유가 생긴다해도 선진물산에는 팔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그 회사에 이규화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라는 대답을 전한다. 그 대답은 당신이 올바르게 내가 보낸 편지를 읽을 줄 안다면 당신에게만 팔겠다, 라는 뜻이다. 물론 규화는 그것이 전달되는 회로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하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대답의 행위도 알고 있다. 말하자면 그 행위는 그 둘의 관계에서 오로지 목표의 경제학 안에서는 옳지만 전체 안에서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잃어버리는 행위가 된다. 그러는 동안 미연은 옥희를 되찾아가고 그런 미연을 데리고 진우는 고향으로 다시 한 번 더 돌아간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서 그 둘은 소꿉장난 시절의 행위를 반복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돌아간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규화가 실패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했던 사업은 부도의 형식으로 되돌아오고 미망인은 경제적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된다. 희생의 경제학은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때 비로소 가희는 규화와의 인연이 다했음을 깨닫는다. 둘은 바닷가까지 함께 드라이브를 한 다음 포옹한다. 그리고 피로에 지친 규화는 잠깐 잠이 든다. 그가 깨어났을 때 발견하는 것은 파도가 치는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가희의 하이힐(뿐)이다. 처음 규화를 때렸던 그 신발. 자동차 앞창 유리에는 그녀가 마치 피처럼 붉은 립스틱으로 써놓은 유서가 남겨져있다. “규화! 진실된 자리에 앉고 싶었어요. 방황을 끝내며, 가희” 마치 잠깐의 꿈과도 같았던 도약의 입구와 끝. 규화와 자본을 중재한 매개항의 소멸. 하지만 여전히 그는 자기가 도착해야 할 곳을 알지 못한다. 규화는 (감옥에서 풀려나온 가희의 아버지를 경유하여) 다시 한 번 미망인의 곁으로 간다. 자기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한 다음 모든 것을 가져간 유일한 사람. 그녀는 규화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선택을 들려준다. “당신의 날개를 꺾어놓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안했어요, 두려웠어요,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규화라는 파랑새를 붙잡고 싶었어요” 이 메시지를 올바르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운명론의 간극이 존재한다. 최종순간이란 결국 무엇인가. 규화는 자신이 손에 넣고자 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실패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돈의 관점에로 이야기를 옮기면 이것은 하나의 자본이 다른 자본에로 이행하는 과정 중에 규화가 잘못 끼어든 잠깐 동안의 오류(인 척하면서 정확하게 작동한 재전유)로서의 매개의 사건이 소멸하는 시간이다. 임권택 은 이야기 안에서 규화를 선과 악 사이에서 나쁜 존재로 설명하는 대신 이중의 관점을 취해서 처음에는 규화를 자본의 환상이라는 무대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주체로 만들고 그런 다음 마치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가정된 (다소 도식적으로 설명하자면) 평균이윤율 경향 저하의 법칙에 따라 시장에서 배제시킨다. 말하자면 주체로부터 대상에로의 이동. 물론 이것을 이야기가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야기가 종종 교훈극처럼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교훈? 자본의 순환 속에서 마모되어가는 주체의 소멸에 관한 교훈. 멜로드라마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에서 규화에게 추락을 안겨주는 것은 그의 감정이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의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는 시장 주기 안에서의 산업의 이동과 이자의 증가에 따른 자본의 해체과정이다. 여기서 사용된 부엉이들이 다소 불편하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임권택은 현대의 삶 안에서의 경제활동에 관심이 많다. 이때 임권택의 관찰은 인간이 경제 활동에 개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반대로 경제가 인간의 활동에 개입하는 방식과 순서에 있다. 이 순간 이야기에 말 그대로 별안간 전도가 벌어진다. 그가 여기서 지식의 도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1979년이 분할하는 삶의 방식 안에서 화해하지 못하는 것들 사이의 충돌을 건드린다. 영화가 자기가 살아가는 시간 안에서 새로이 나타난 기호들을 다루는 까닭은 일어났던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가져다주고 있는 분쟁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쳐다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 내일 또 내일 >은 어느 순간에 이르면 거의 와해직전까지 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을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기가 그 힘에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자기 영화를 다룬다. 내가 궁금한 것은 무엇이 그를 밀어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그 힘으로부터 영화를 방어하느냐는 것이다. 이야기는 순환을 그린 다음 규화를 고향에 함께 살고 있는 미연과 진우, 그리고 옥희에게로 이끈다. 그리고 거기서 그가 보는 것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미연과 진우, 그리고 옥희이다. 규화는 옥희와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그 앞에 나타난 미연은 옥희를 안고 아무 말 없이 딸에게 준 선물인 장난감 타조를 집어던진 다음 그 자리를 떠난다. 거절당한 선물.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은 규화는 역에 와서 기차를 기다린다. 그때 진우가 다리를 절면서 나타난다. 그리고 규화에게 말한다. “빨리 니 마누라랑 딸을 데려가라, 둘 다 나에게는 큰 짐이야. 그렇다고 지금 찾아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변칙처럼 지름길만 찾아 미친개처럼 날뛰는 네 놈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전에는 찾아가려고 발광을 해도 내주지 않겠어. 그렇다고 따라나설 미연이도 아니니까. 당당하게 대로를 택하기 전에는 말이다.” 규화는 잘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지은 다음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때 막 개발되고 있던 강남의 풍경이 멀리 보이면서 걸어가는 규화의 롱 쇼트 위로 진우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규화는 옥희를 통해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규화라는 하나의 인간은 옥희를 통해서가 아니라 미연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길고도 끈질긴 구원의 되풀이에서 손을 들고 난 후에 내가 얻은 단 하나의 결론이다. 오미연이라는 여자는 이규화라는 남자 없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갑작스러이 끝을 맺는 것만 같은 이야기의 끝. 누군가 이야기의 줄기만을 따라왔다면 그래 알겠어, 규화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충분해, 하지만 진우는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라고 질문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임권택 의 궁극적인 실패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실패는 < 내일 또 내일 >에 미학적 기준을 들이미는 말이 아니다. 진우는 규화를 끈질기게 저쪽에서 이쪽으로 잡아당기려간옛寧?쓴다. 이 쪽? 그렇다. 말 그대로 임권택이 생각하는 (아직은 그래도) 가능한 세계, 무심코 지나가 버렸지만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되찾아야 할 시간,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어지는 장소. 세 사람 사이의 교집합으로서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 규화(와 미연)의 딸이 (부(富)가 만들어내는 불행을 맛본 다음)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동네. 그 무엇보다도 규화가 자발적으로 플래시백이 유일하게 가능해지는 풍경. 만일 진우가 없었다면 규화는 되돌아와야 할 (저 쪽으로부터) 이쪽의 지평도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는 그 둘 사이의 고리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의 희생적인 노력이 뒤따르고 있다. 그것을 임권택은 진우의 목소리를 통해서 “구원의 되풀이”라고 개념화한다. 여기에는 단순하지만 몹시도 분명한 이분법이 그 둘 사이를 쪼개내다시피 하고 있다. 이때 그 둘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진우라는 매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에게 기회가 왔을 때조차 기꺼이 규화를 위해서 그 자리를 비워놓은 다음 자신이 무효라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말하자면 진우는 지치지도 않고 과거와 현재 사이를 왕복운동 하면서 그 둘 사이의 순환을 거의 참을 수 없는 단계까지 기다린 다음 기회가 다가오자 있는 힘을 다해서 규화를 여기로 잡아당기려는 이행의 시도를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그런 되풀이 운동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 임권택은 먼저 (진우와 같은) 매개자를 삭제한 다음 (규화처럼) 주체에서 대상으로 추락하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바라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 오염된 자식들 >에서 되풀이 될 것이다. (계속) 1979년 120분 컬러 1.33 감독 임권택 주식회사현진 각본 홍파 촬영 이석기 조명 장기종 편집 김희수 음악 산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