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오브 아이스
- 감독
- 안느 세비츠키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이네 마리 빌만, 발렌 케인, 엘다르 스카르, 앤더스 모달, 에이든 맥카들, 말콤 아담스, 폴 스베레 발헤임 하겐, 안네케 폰 데어 리페
서울 소재 극장인 단성사에서 1920~30년대 조선인을 대상으로 발행한 극장 소식지 《단성주보》 (제297호 / 1929. 1. 26.) 다시 만난 세계: 식민지 조선의 극장문화 이야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와 행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재조명합니다. 환한 조명이 빛나고, 한껏 치장한 배우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눈부신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우리는 종종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무대와 은막의 ‘스타’들이 내ᄈᆕᆷ던 빛은 정작 객석의 조명이 모두 꺼진 순간, 즉, 광막한 어둠이 그들을 온전히 감싼 후에야 발현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예술가가 늘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점이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배우로 사는 일은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일과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인이 되려면 먼저 “밥 굶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이규환 감독의 자조섞인 고백처럼, 배우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 곤궁함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처지는 최소한의 예술적 자율성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본과 필름 검열은 물론이고, 현장검열에 나선 임석경관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배우와 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불온한 언사로 낙인찍히면 꼼짝없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일도 다반사였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배우의 삶을 동경하여 신문사 질의응답란에 ‘배우 되는 법’을 문의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대개 헛된 꿈을 깨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식의 충고였다. 그만큼 배우를 둘러싼 전망들은 열악하고 어두컴컴했다.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된 현실적 문제 못지않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을 괴롭혔던 것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었다. 급격하게 밀려들어온 문명의 산물들을 받아들이며 세상은 빠르게 개화되었지만, 광대를 천시해왔던 해묵은 인습만큼은 쉽게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이들은 집안의 필사적인 반대에 부딪혀 아예 가출하는 일이 빈번했고, 여배우들은 화류계의 기생과 동일시되기 일쑤였다. 인간이 타자의 시각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할 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은 자기비하에 가까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풍자적 희극영화 < 멍텅구리 >(이필우, 1926) 중 배우 이원규 , 김소진 등 반면, 배우들이 관객들과 만나던 장소인 극장은 새로운 공론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극장의 공리성에 주목하는 시각은 ‘희대’가 설치되고 그 운영을 관장하던 ‘협률사’가 설립된 1900년대 초반부터 드러난다. *주1 최초의 실내극장이자 상설극장의 출현 이래 재래의 ‘구경꾼’들은 ‘관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때 극장을 출입하기 위해 요청되었던 입장료는 구경꾼의 무제한적 접근을 차단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이것은 일정한 입장료만 지불하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극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주2 극장은 관객의 문식력에 따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감각을 총체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힘입어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곳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관객의 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든 관객들은 극장의 파급력을 방증하고 있었고, 극장의 공리적 가치에 주목한 이들은 바람직한 극장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오늘날 ‘ 연극개량론 ’으로 불리는 대한제국기의 극장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즉, 친일적인 관점에서 문명개화를 내세웠던 이들은 일본의 신파극을 조선에 이입하려는 방식으로 ‘연극개량’을 강조했고, 반대로 ‘애국계몽’적 관점을 견지하던 이들은 연극이 저항적 민족성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연극개량론’은 극장문화의 가치를 철저하게 사회적 공리성의 틀로 해석하면서 당대의 배우들에게 ‘계몽’과 ‘교화’라는 과도한 책무를 부과해 왔다. 결과적으로 식민지기의 배우들은 자신들을 천시하는 사회적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사회를 교육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인식론적 간극은 연극인들에게 괴리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할 만한 사건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3.1운동은 조선인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킨 대규모 사회운동이었으며, 그 여파는 사회 개조와 변혁의 열망으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제국은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실 이는 감시의 고도화를 목표한 기만전술에 불과했다. 광장의 정치가 제약당한 상황에서, 극장은 집단화된 조선인을 합법적으로 모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기에 극장에 대한 공리적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배우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인정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파극단 예성좌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윤혁 의 글 “ 신극배우 제군아 ”는 시대적 변화를 체감했던 이의 소회와 감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기에 눈길을 끈다. 1902년 정동에 세워진 협률사 (사진: “ 04. 현장 돋보기 2-일제강점기 이후 ”, 우리역사넷) 우리는 일찍이 인자한 부모와 사랑하는 형제를 이별하고 그리운 고향을 떠나 반도극계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였으며 얼마나 고생을 하였느냐. 아니 사회의 동정을 다소간 얻었느냐? 무엇 동정? 동정이 다 무엇이냐? 어림도 없다. 동정은 그만 두고 그네들이 과거 십년 동안 우리를 대한 태도는 어떠하였느냐? 예술이 무엇인지 극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물론 통틀어 놓고 연극하는 배우라고 하면 덮어놓고 '신광대'라고 하고 저급 인물로 인정하여 가까이 대해 주지 않고 경원(敬遠)하는 주의를 가졌었다. -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 233쪽. 《조선일보》, 1921. 9. 23. , 4면 참으로 무정 세상이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석금 영웅이나 성현이라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자. 고통과 고독이 없이 영웅이 된 자가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지금으로부터는 낙원의 꿈을 꿀 기회가 돌아왔다. 보아라. 저 굉장한 건축물을-다시 보아라. 소위 유식계급에서 새로 나오는 저 신극단 을 -이렇게 극장이 생기고 고상한 극단이 봉기하는 것은 실로 치하할 만한 일이다.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4쪽. 《조선일보》, 1921. 9. 23., 4면 우리는 오직 이때에 쿡 찌르는 것 같은 감상으로 고치고 깨달아 분투하고 노력함이 없을진대 과거 십년간 노력과 재래에 우리의 관객은 모두 새로 나오는 신극단 에게 빼앗길 것이요 종래야 극장다운 극장에는 들어가 볼 수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찌 맹연히 몸을 멈추고 있을소냐. 모쪼록 이를 갈고 어떻게 해서든지 분투 하고 노력 하여 참혹한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제군과 더불어 같이 힘쓰고 더욱 더욱 매진하고자 이렇듯 임리한 붓을 들었으니 *임리한: 흠뻑 젖어 뚝뚝 떨어지는 모양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5쪽. 《조선일보》, 1921. 9. 25. , 4면 윤혁은 자못 격정적인 어조로 ‘신극배우 제군’을 호명한다. 비록 그가 자신과 동료 배우들을 ‘신극배우’로 칭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신극’이란 ‘구극(전통연희)’에 대응되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기에 이 글은 신파극이 성행하던 기성 연극계에 보내는 전언이라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윤혁은 동료 배우들에게 ‘분투’와 ‘노력’을 당부하는가? 주목할 것은 그가 “ ᄉᆡ로 나오ᄂᆞᆫ 신극단 (새로 나오는 신극단)”의 활약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의 발표 시점인 1921년 9월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이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직후였다. 동경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는 재일본 노동자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조직된 동우회의 의뢰를 받아 순회연극단을 조직하게 되었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전 조선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나간 바 있다. 관객들은 기존 연극과 차별화되었던 주제와 형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으며, 그 반응은 기성 연극인들에게 분명한 위협으로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그리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해 봄의 담론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파극-신극’ 논쟁이 가로놓여 있었다. 논쟁을 주도한 현철은 신파극을 포함한 조선의 연극 전통을 모두 부정하며, ‘신극’의 요건들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 실체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을 통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동아일보의 전폭적 후원을 받고 있었던 동우회순회연극단 공연의 여파는 저널리즘을 통해 빠르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다. 토월회 공연 관련 기사 지면 (사진: “ 토월회의연극일막 ”, 《조선일보》, 1923. 7. 6., 3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윤혁에게 분명한 위기의식을 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동우회순회연극단의 사례를 자극제 삼아 동료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파극-신극’ 논쟁 당시 신파극계를 대표하던 이기세가 보여 준 수세적 입장에서 한발 나아간 태도라 할 수 있다. 즉, 윤혁의 초점은 그가 느낀 ‘감격’을 이야기하고 ‘각성’의 의지를 표면화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신광대”라는 표현이 함축하듯 오랜 기간 동안 모멸적 시각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있어 새로이 부각된 신극 집단은 배우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각 전환을 예증하는 징표로 인식되었다. 이제 그는 광대에게 베푸는 값싼 동정이 아닌 예술의 담당자에게 응당 부여되어야 할 존중을 욕망하기에 이른다. 다만, 그가 “낙원의 ᄭᅮᆷ”이라 이야기했던 기회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혁이 경계했던 것과 같이, 재래의 배우들은 부단한 자기갱신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언제든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인정투쟁의 장에 진입하게 된 배우들은 관객에게,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피부에 고이던 임리(淋漓)한 어둠을 잉크로 삼아 새로운 연대기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 주1. 조영규는 협률사가 일종의 연희회사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협률사 자체를 극장으로 보고 ‘최초의 관립극장’이라거나 ‘국립극장’이라 표현했던 기존의 학술적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조영규, 『바로잡는 협률사와 원각사』, 민속원, 2008, 95쪽.) 주2. 박노현, 「극장의 탄생」, 『한국극예술연구』 19, 한국극예술학회, 2004. 이광욱(극장문화사 연구자) l 읽고 생각하며, 말하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고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한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교수(동화 한국어문화학과), 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드라마, 일상성의 미학』(2024) 공저, 「카프 연극대중화론의 전개와 송영 풍자극의 매체미학」(2018), 「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 – 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2021), 「표류하는 조선영화 : <임자 업는 나루배>에서 <정춘삼>으로 –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과 식민지 조선영화 시장의 추이」(2022) 집필.
* 한국영상자료원 강좌 <2022 영화 글쓰기 키트: 영화 기자가 알려주는 리뷰 작성>의 과제 선정작입니다. 이 영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하얀 눈밭 위에 놓인 빨간 자동차일 것이다. 이는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 치유하는 서사의 정점이다. 끌어안은 두 사람의 형상에서는 다소 직접적이고 고전적인 위로와 연대가 묻어난다. 감독은 전작 <아사코>, <우연과 상상>에서도 두 인물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다. 아사코는 우연히 전 남자친구와 동일한 얼굴의 남자를 만났다. <우연과 상상>3부의 나츠코는 우연히 첫사랑과 닮은 여자를 만난다. 여기 <드라이브 마이카>도 예외는 아니다. 우연히 배정된 드라이버는 꼭 가후쿠처럼 가족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여기서도 가후쿠가 우연의 힘을 빌려 위로받고 나아가도록 만들까? 앞서 언급한 설산의 이미지를 보면 이는 결과적으로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카>에는 차별점이 있다. 그동안의 서사에서 연기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상대편에 부여된 몫이었다. 주인공은 첫만남에 상대를 오인하는 쪽인 관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인공 가후쿠가 아예 연극배우로 설정되었으며 그의 연극은 극중극 이상의 존재감을 갖는다. <아사코>와 <우연과 상상>을 떠올리면 주인공을 미사키로 설정하는 서사도 있음직하다. 그녀가 연극배우인 가후쿠와 그의 연극을 차례로 만나 상실을 극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왜 이번에는 관객, 즉 연기를 듣는 위치(청자)의 시선이 아니라 연기자, 즉 연기를 발화하는 위치(화자)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여줄까. “그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 그렇게 되면 난 이 역에 자신을 바칠 수가 없어.” 부인 오토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이어지는 씬은 가후쿠의 클로즈업한 눈물도, 오토가 떠난 빈 집도 아니다. 그것은 연극<바냐 아저씨>의 실연 장면이다. 여기서 가후쿠는 공연 도중 연기를 중단한다. 무대에서 뛰쳐 나온 가후쿠의 등 뒤로 “나도 말할거야. 내 아내는 달아났다고.”라는 대사가 지나간다. 영화를 위해 발췌된 <바냐아저씨> 대사들은 매번 가후쿠의 상황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를 보고 대사가 곧 그의 속마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1차원적이다. 그보다는 연기가 불가능한 상태를 선언하는 이 장면이 영화 2부의 시작임에 집중해보자. 시간이 흘러 2부의 마지막은 이전처럼 연기가 가능해진 상태의 가후쿠를 보여주며 닫힌다. 사실 그는 배우들의 뒷모습만 보고도 ‘무언가 일어났음’을 캐치하는 능숙한 연기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2부는 그가 대사를 발화할 수 없는 순간에서 시작해 대사를 발화할 수 있는 순간까지의 과정이다. 영화는 연기불가능 상태에서 출발해 가능 상태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우리가 따라가게 만든다. 발화의 사전적 의미는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를 하다’이다. 부인 오토가 죽던 날, 가후쿠는 자동차 안에서 시간을 끌면서 대화를 미루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실은 가후쿠를 이 상황 속에 가둔다. 오토는 첫 등장부터 흐릿한 형체와 또렷한 목소리를 보여주었고 딱 그 모습대로 자동차 속에서 반복재생된다. 2년 후,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바퀴는 여전히 카세트테이프의 릴과 겹쳐 보인다. 가후쿠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청자인 오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바냐아저씨’의 자리를 빌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후일 미사키에게 ‘아내는 2년 전 죽었어. 그 테이프를 듣기가 무서워졌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2년 전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는 행동은 스스로도 무섭다고 생각한 걸까. 그럼에도 오토에게 할 말이 남아있는 한 가후쿠가 선택할 수 있는 언어는 ‘바냐의 언어’밖에 없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아저씨>에는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다국적 배우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대사를 하되 연극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2부가 새롭게 시작되는 표면적인 이유는 가후쿠가 이 ‘다국어 연극’의 연출직을 위해 히로시마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곧 2부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화를 추동하는 힘이다. ‘바냐의 언어’에 갇힌 가후쿠의 앞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언어들이 기다리고 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터뷰에서 “연기의 바탕에는 불안이 깔려 있다”는 사고방식을 밝힌다. 이 말은 야외 리허설 장면에서의 연출가 가후쿠를 떠올리게 한다. 연기 현장의 하마구치 감독과 가후쿠는 둘 다 ‘날 것의 섬세한 무언가를 어떻게 지켜낼지’ 고민하며 그 불안을 누그러뜨리려 노력한다. 야외 리허설 장면에서 소냐와 엘레냐 역의 배우들은 연기 도중 가후쿠를 등지고 선다. 가후쿠는 연기를 볼 수 없음에도 확신있게 “방금 무언가가 일어났어”라고 외친다. 여기서 가후쿠가 발견한 ‘무언가’를 탄생시킨 주체는 잎사귀를 주워 내민 이유나의 손이다. 수화언어로 연기하는 이유나의 등장마다 우리는 그녀의 손이 보여주는 움직임에 빨려 들어간다. 첫 등장인 오디션 장면에서 카메라는 ‘손의 언어’를 복잡한 동선과 숏의 변화 없이 차분하게 보여준다. 다른 배우들의 다국어 오디션이 카메라로 쪼개지고 붙여지는 동안에도 침묵 속 ‘손의 언어’는 굳건하다. 유나와 윤수가 마련한 식사자리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카메라가 나머지 세 사람 의 등을 비추며 어둠 속에 위치할 때도 그녀의 손은 중앙의 빛나는 공간에 놓여있다. 가후쿠가 히로시마에서 만난 새로운 언어는 ‘손’외에도 존재한다. 그 중 한 가지는 침묵하되 매번 섬세한 응답을 보내 주는 드라이버 미사키의 언어이다. 미사키는 어디든 가 달라는 가후쿠의 질문에 긴말없이 ‘있다가 없어진 흔적의 공간’으로 차를 몬다. 가후쿠의 과거사를 들은 뒤엔 “소중하게 대해 온 게 느껴져 그의 자동차가 좋다”는 말을 고른다. 그 정점은 가후쿠가 생각할 만한 장소를 물을 때 그녀가 자동차를 툭툭 두드린 몸짓이다. “차 안이 좋겠네요”같은 말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 어쩌면 겉으로는 상응하지 않는 듯 보이는 문답이지만 드라이버 미사키가 가진 ‘운전수의 언어’는 결국 가후쿠를 아픔에서 건져낸다. 그를 설산 위의 빨간 자동차까지 데려간다. 다시 하마구치의 말로 돌아와 보자. 섬세한 연기의 탄생은 불안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 불안은 ‘바냐의 언어’를 붙잡고 싶은 가후쿠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정해둔 청자를 놓치기 싫은 불안감이다. 자신이 선택한 언어는 곧 자신이 선택한 청자와의 연결통로를 만든다. 이 다국어 연극 속에서는 상대배우의 낯선 언어가 끊임없이 낯선 연결통로를 만들고 있다. 가후쿠는 이 연극의 연출가로서 배우들이 감정을 제외하고 대본의 글자만 읽게끔 지시한다. 미리 결정하고 외워서 재현하는 감정표현과 그것을 서로의 큐사인으로 사용하는 순간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가후쿠 자신은 그것에 실패했다. 그는 오토가 가진 ‘꿈의 언어’를 습관적으로 되돌려 주었을 뿐이다. 꿈이야기의 소녀처럼 징표를 남기고 싶어한 오토의 부유를 끝내 눈치채지 못했다. 가후쿠가 ‘대본의 언어’뒤로 숨고, 오토가 ‘꿈의 언어’뒤로 숨었을 때 둘은 ‘좀 더 제대로 상처 받았어야’ 했다. 경계했어야 했다. 야외 리허설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유나가 상대 배우를 등 뒤에서 껴안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는 불쑥 상대의 눈 앞으로 수화를 등장시킨다. 통상의 음성언어에서는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서 있을 때 껴안지 않아도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낯선 손의 언어는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나뭇잎을 주워 주며, 바냐 아저씨의 가슴과 턱을 두드리며 말한다. 이 낯선 연결통로의 생성은 ‘무언가’를 만든 힘이고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를 안아주게 한 동력이다. “실제로 섬세한 연기가 탄생하는 것과 가후쿠를 비롯한 상처받은 영혼들이 재생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전개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감독의 대담 속 한 구절을 통과하며, <드라이브 마이카>의 차별점에 대한 실마리가 보인다. 물론 영화는 전작들의 장기인 ‘어긋남과 기다림’의 테마를 가후쿠-오토의 관계 속에 능숙하게 녹여낸다.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숏은 ‘오토를 외면한 가후쿠가 상처를 직면하고 나아간다’는 하마구치 식 서사구조 역시도 또렷히 전달한다. 다만 이번에는 여기에 연기자 가후쿠의 시선을 덧붙인다. 연기 불가능 상태인 가후쿠에서 시작해 연기 가능상태인 가후쿠에 도착하는 과정. 가후쿠가 연극을 둘러싼 새로운 언어들을 만나 불안을 겪고, 그 불안에서 탄생한 섬세한 위로를 경험하는 과정. 왜 이번에는 맞은편인 연기자의 시선을 경험하게 하면서 이 서사구조를 보여주었을까. <아사코> 속 아사코의 맞은편에는 새 남자친구인 료헤이가 있다. 료헤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아사코가 전 남자친구와 갔던 사진관에 놓인다. <우연과 상상> 속 나츠코의 맞은편에는 미카가 있다. 미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화 속 첫사랑의 자리에 놓인다. 이때 주인공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상대를 오인하고 맞은편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가후쿠의 시선을 경유하며 이 시간이 단순한 오인이나 관찰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연기를 ‘요구’하는 중임을 안다. 맞은편의 상대에게 낯선 언어와 낯선 연결통로를 제안하는 중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제안이 상대방의 재생을 촉구한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이는 그동안 스크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관객석에도 해당된다. 우리도 가후쿠처럼 하마구치 영화에서 주인공의 맞은편에서 자리한 채 낯선 언어를 제안받아 재생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냐는 야외리허설 장면과 동일한 정면샷으로 가후쿠를 안아준다. 하지만 객석을 등을 지는 것이 아닌 정면으로 마주보며 안아준다. 그렇게 연습 당시 두 배우 사이에 일어난 ‘무언가’가 드디어 객석의 미사키에게도, 스크린을 보는 우리에게도 허락된다.
‘인디다큐 시간여행’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기획하는 정기상영회로, 이번 ‘다큐와 픽션 사이를 횡단하는 7가지 방법’ 기획전은 일주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큐와 극을 나누어 사고하는 역사가 유구하지만 이번에 소개될 감독들은 장르나 종류가 중요할 소냐 자유롭고 또 자율적이다.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로, 그것은 나를 억압하는 어떤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스스로를 짓누르는 짐 중 과거만 한 무게가 또 있겠나?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과거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고 자신의 길에 당당해지는 방법을 찾아낸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요세미티와 나 >에서 요세미티가 과연 무엇이냐. 재밌게도 감독의 독립영화 인생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맥 G3 컴퓨터다. 애플 하면 보통 트랜드 세터 이미지지만 영화 속 요세미티는 상구식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담고 있는 사물을 가지고 있을 거다. 영화에서 요세미티는 8년 차 생일파티를 치르는데, 그 시간은 감독이 영화와 함께 보낸 세월이기도 하다. 요세미티는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의 마지막까지 감독의 영화작업을 지켜준다. 감독이 헤매고 막힐 때마다 보루가 되고 작업의 완성을 담보하며. 이 작품은 그런 요세미티에 대한 애도인 한편 독립영화 감독으로 살아온 감독의 역사에 대한 애정이다. 느리고 볼품없고 걸리적거리고 애태우지만 자기를 자기답게 지탱해주는 감독의 독립영화사. 요세미티는 그 역사와 매우 닮았고 또 그 세월의 동료였다. 우리들도 세상의 속도나 리듬과 어긋나더라도 자신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영역들을 가지고 있다. 징글징글하게 오랜 관계,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지만 자꾸만 끌리는 취미나 일거리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고유한 역사를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빈티지 골동품 요세미티는 ‘자기’ 시간의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자기 위안이 아니다. 요세미티의 생애는 이 세상이 부과하는 지나치게 빠르고 소모적인 시간의 속도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시간이 느리고 버퍼링 걸리는 문제가 아닌 거다! <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는 두 방향에서 ‘말하기’가 주는 해방감을 전한다. 우선 성폭력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편견 어린 사회적 시선에 의해 정당한 권리를 얻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는 소중한 출구가 된다. 이 ‘말하기’는 말하는 주체를 존중하기에 자유롭다. 한편 영화의 ‘말하기’는 과거에 대한 스스로의 권리 및 결정권을 주장하기에 자율적이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묵살하는 폭력적 사회의 귀를 후벼 파고 들어간다. 이처럼 커뮤니티 뒤풀이, 함께 나서는 활동, 성교육 강의 등등 부당한 현실로부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말하기’의 차원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고, 당당한 만큼 영화는 기쁘고 힘차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 앞에서 숨죽이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존재가 되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말하기’들은 독백도 아니고 피해자 증언도 아니다. 결국 여기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소외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회를 거부하는 저항이다. 그리고 그 ‘말하기’는 생존에서 출발해 버라이어티한 욕망에 대한 권리까지 닿는 존재의 주장이다. 나아가 그녀들의 말하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말을 둘러싼 문제를 대하는 중요한 지침을 주기도 한다. TV를 돌리고 있자면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무수한 말들이 서로 경쟁하며, 온갖 미디어와 일상에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 질색인 말들에 대항하여 이 영화가 전하는 ‘말하기’는 값지고 통쾌한 발차기가 된다. 미디어가 다양성(variety)을 억누르는 말을 전파하는 반면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버라이어티(를 위한) 토크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문제 삼고, 한편으로는 시간 앞에서 굳건하다.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나를 옭아매고 억압한다면 그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삶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위의 영화들이 보여준 것처럼 사랑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독립영화는 사랑과 용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기쁜 활동이다. 유독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고 맞이하는 가을 하늘처럼 가슴 뚫리는 영상들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