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세계
- 감독
- 안정민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노정의, 조수향, 권나라, 김진아, 김예나, 박수연, 신영진, 조병규, 정수한, 김정석, 전고은, 한경애, 이장미, 유청언, 박은영, 박솔, 김수현, 주유정, 김현주, 박성민, 김용필, 조완, 이경훈, 송희정, 박성민, 정의욱, 김용연, 이현웅, 이송이, 한다솔, 석주일, 한호정
‘전학 가기 전날 수향은 학교로 갈 준비를 한다.’ 이 짧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비를 지니고 있는지 영화 < 전학생 >은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박지인 감독의 단편 <전학생>은 ‘북에서 온 소녀’가 ‘남의 학교’로 전학을 가는 이야기이다. 소녀에게 전학은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만큼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수향의 고민은 예상치 못한 고비 앞에 반복된다. 새 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교복을 사러 가지만 그녀의 좀 다른 억양을 들은 가게 주인은 중국에서 왔냐며 그녀를 살피고 깜짝 놀랄만한 교복의 가격에 수향은 가게 문을 닫고 나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의 삶 역시 일면 달콤해 보이지만 녹록할 리 만무하다. 먼저 ‘남의 학교’에 갔지만 그만두고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친구를 만나 친구가 입던 교복을 전달받으면서는 기대에 불안이 자꾸만 덧입혀진다. 과연 다시 만난 세계에서 나는 받아들여질까, 버틸 수 있을까. 가깝지만 먼 나라의 학생이 되는 일은 이렇듯 구중궁궐의 문을 여는 일과도 같다. 닫힌 교문을 여는 일, 무거운 마음의 문을 미는 일 모두 수향에게는 온몸과 맘의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학을 준비하는 그 하루의 끝, 한밤중 집으로 돌아온 수향에게 엄마는 이야기한다. “우리 딸을 믿는다”고. 그리고 수향은 천 번도 넘게 연습했을 첫인사를 또다시 주문처럼 되된다. “안녕 나는 수향이라고 해”. 다음 날, 마침내 교복을 입고, 닫힌 교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 탁자 앞에서 수향은 무심한 선생님의 친절로 엉겁결에 정체가 탄로 나고 만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 준비한 문장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는 ‘북에서 온 전학생’이 된다. 로맨스 장르물에 가까운 청춘영화들과 거칠고 어두운 세계의 이면을 다룬 수많은 학원물들 사이에서 박지인 감독의 < 전학생 >은 교복과 교실을 벗어난 소녀의 세계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또렷한 변별성을 지닌 작품이다. 또한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충돌의 지점에서 생기는 파열음이 그저 성장통의 신음만이 아님을 사려 깊게 살피는 박지인 감독은 미덥게 캐릭터들의 마음속을 두루 살핀다.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태도와 서둘러 손을 내밀지 않는 조심스러움 덕에 <전학생>은 이야기의 흐름 이상으로 파고를 만들어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서두르는 법 없이 침착하고 단단하다. < 춘몽 > < 꿈의 제인 >을 통해 특유의 개성과 매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배우 이주영 은 라옥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북에서 온 소녀의 ‘언어와 심리’를 연기하는 ‘수향’ 역의 배우 박수연이 긴 잔상을 남긴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북한 소녀 수향 역을 온전히 받아들인 배우 박수연은 어떤 장치 없이도 화면과 관객을 아주 가깝게 끌어당긴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익숙하지만 새로운 말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뱉던 수향의 순간은 이 배우가 공들여 완성해낸 < 전학생 >의 결정적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의 집’은 단순히 놀이로만 규정하기엔 지극히 연구대상이다. 장난감 인형 하나의 문제 같지만 이 ‘놀이’에는 꽤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가 구현된다. 대게 소유주인 아이를 중심으로 일종의 역할극이 완성되는데, 인형이 기거할 집안에는 가재도구가 즐비하며 남녀로 구성된 부모와 (대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가 경험한 실제 세계에 따라 인형의 집은 가정을 넘어 학교, 상점으로 확장되며 가재도구의 수준도 달라진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자면 ‘놀이’처럼 규정되지만 인형의 집 놀이는 절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성장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나이에 맞는,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인형의 집’을 필요로 한다. 첫 장면을 웨스 앤더슨 방식의 정갈한 인형의 집으로 시작한 < 문라이즈 킹덤 >은 이제 소녀를 어린 동생들과 다르게 만드는, 캠핑으로 안내한다. 좋아하는 소년과 함께하는 일탈에, 소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챙겨 넣은 가방을 챙겨 들고 나간다. 텐트는 이제 소녀의 세계를 완성할 다음 단계의 ‘인형의 집’으로 자리한다. 조던 복트-로버츠Jordan Vogt-Roberts 감독의 코믹 드라마 < 킹 오브 썸머 The Kings of Summer >(2013)는 < 문라이즈 킹덤 >과 같이 자기만의 영역을 갈구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이상이 투영된 일종의 ‘인형의 집’ 놀이다. 영화의 또 다른 제목으로 알려진 ‘Toy’s House’로 설명하면 조금 더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뚜렷해진다. 사춘기에 접어든 열다섯 살 소년 조(닉 로빈슨)는 간섭이 심한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갈 궁리를 한다. 숲 속에 어른들이 모르는 집을 짓기로 결심한 그는 절친한 친구인 패트릭(가브리엘 바쏘)을 설득한다. 위험천만한 이 도전에 흥미를 느낀 친구 비아지오(모이세스 아리아스)가 가세하면서 이들 도주 멤버가 완성된다. 조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학교에 있는 비밀 공간을 아지트로 삼는 것과는 스케일부터 다르다. 그들이 발견한 숲은 도심과는 한참 떨어져 있어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완벽한 도피의 공간이며, 통나무집 설계도는 실제 집의 구조를 연구해 차근차근 그럴듯하게 만들어진다. 건축의 재료 역시 여기저기서 주워온 재활용이긴 하지만 통나무집의 재료로 하등 손색이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완성된 집의 모양새도 나쁘지 않다. ‘전원라이프’같은 이름을 가진 잡지 커버로 소개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통나무집 조와 친구들에게 통나무집이 주는 자유의 크기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통나무집에서의 아침, 찬란한 햇빛에 눈을 뜬 패트릭에게 조는 말한다. “숲에는 시간이 없어.” 숲의 생활은 규칙, 규율, 복종, 명령이 존재하는 바깥세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상향, 유토피아다. 조에게는 ‘욕실에서 마스터베이션하는 것’을 부끄럼 없이 지적하고, 여자 친구와 전화 통화에도 물색없이 끼어드는 창피한 아빠로부터의 도피를 뜻하며, 패트릭에게는 ‘햄버거 먹은 뒤에 감자튀김 먹는’ 것도 ‘주머니 없는 파란 셔츠’를 입었다고 사사건건 지적하는 아빠와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귀찮게 질문을 퍼붓는 엄마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저 괴짜처럼 보이지만 ‘나한테는 성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비아지오에게도 사회로부터 자체적으로 격리된 이 공간이 이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집을 나간 후 경찰서에 신고하러 간 부모들은 ‘납치범의 소행’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는” 당신의 아이들이 집을 나갈 이유는 족히 100가지도 넘는다. 사춘기는 그런 나이다. < 킹 오브 썸머 >에는 1950년대 미국, 약자인 여성들을 억압하던 제도에 맞선 소녀들의 일탈을 그린 로랑 캉테의 < 폭스파이어 >(2012)를 연상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많다. 소녀들은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꾸며 자신들만의 비밀동맹을 맺고 함께 살 공간도 마련한다. 하지만 애초 가졌던 동맹의 순수성과 달리 남성과 권력, 자본이라는 사회에 맞서 복수를 하는 과정에는 점차 과격한 행동과 범죄가 수반된다. 소녀들은 이로 인한 내부의 분열을 감당할 해결책을 결국 찾지 못하며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어른의 통제를 벗어난 4주간 감행된 숲에서의 생활, <폭스파이어>의 소녀들이 꿈꾸던 거창한 전복에서 오는 실패와는 강도를 달리하지만 <킹 오브 썸머>의 소년들의 생활에도 점점 고통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조는 패트릭에게 닭고기를 자급자족했다고 하지만, 실은 식료품점에서 구입해 와서 갈등이 깊어진다. 통나무집에 기거하는 근본취지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사춘기 이성 간의 꼬인 관계를 푸는 것도 쉽지 않다. 조가 좋아하던 소녀는 실은 자신이 아닌 패트릭에게 마음이 있었다. 상처받은 조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공고했던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고 즐거웠던 공동체 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숲이라는 대안을 찾기 전, 조가 먼저 독립해 집을 나간 누나에게 자신도 아빠에게서 벗어나게 제발 데려가 달라고, 집을 나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있다. 그때 누나는 “2년만 지나면 아빠가 널 못 보내서 안달일 걸”이라며 그를 설득한다. 조와 친구들이 그토록 절실히 열망했던 도피의 시간은 그 반항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신기루 같은 것일 수 있다. 소년들에게 결코 짧지 않은 4주간의 여름. 그들은 아무런 고통이 없는 무균실 같은 도피처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소년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반목했던 어른들과 화해하며, 그렇게 각자의 성장하는 시간이 지나간다. < 킹 오브 썸머 >(위), < 스탠 바이 미 >(아래) < 킹 오브 썸머 >는 지금 시대로서는 좀 유별난 형태의 고전적 성장담이다. 조는 ‘말 안들을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아버지의 독단에서 벗어나 ‘삐뚤어질 때로 삐뚤어지겠다’고 마음먹지만, 의외로 자연의 공간인 숲으로 발길을 돌린다.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도심으로 가 악행을 저지른다거나 익명의 공간인 SNS로 숨어들어 분노를 표출하는 요즘 아이들의 해소 방식과 비교해보자면 풋풋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아무리 봐도 이 정도면 사뭇 건전한 비행이다. 이 영화의 숲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의 배경과는 달리, 시종 햇살이 비치는 밝고 명랑한 숲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숲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조, 여름 한낮을 숲에서 낚시하고 뛰어노는 소년들의 모습, 모닥불이 타오르는 정경, 숲 속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몽타주 장면들이 주는 감흥은 마치 집나간 아이들의 성장담을 그린 지난 세대의 걸작 < 스탠 바이 미 >(1986)의 소년들의 모습과 포갠 듯 겹쳐진다. 특히 배경이 된 오하이오 주의 숲과 어우러진 오리지널 스코어는 심각하지 않은 소년들의 일탈을 완성해주는 훌륭한 재료다. <쥬라기 월드>의 테마파크에 발을 들인 자크 역으로 알려진 닉 로빈슨이 조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는데, ‘미소년’의 모습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의 포착인지라 보는 순간 빠져들 각오를 해도 좋다. 201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해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호수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순간을 캡처한 포스터의 이미지가 이 영화로 들어갈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정확한 규칙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해진, 일탈이 딱 싫은 어른의 나이를 지금 통과하는 중이라면,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나만의 룰을 원했던 그 시절의 열망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소한 감상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